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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으로 충무로에 "재앙"을 몰고 왔다.


...라고 네이버 프로필에 당당하게 써져있는 인물(...). 그야말로 충무로의 초대형 핵 테러였다고 전해진다.


장만철이 본명이며, 영화 감독으로 유명하지만 대학 시절부터 10년가량을 민중문화운동에 앞장섰다고 한다. 그러다가 역시 민중문화운동에 참가하고 있던 선배의 소개로 영화계에 입문하게 되었다고 한다. 제5공화국때 선우로 필명을 바꿔 영화평론을 하다가, 창작 시나리오와 MBC-베스트셀러 극장 시리즈의 대본을 몇편 쓰고는 선우완 감독과의 공동 연출로 '서울예수'라는 영화를 만들며 영화 감독으로 데뷔.일본 동경 아시안 페스티벌 영화제 초청하면서 호평을 받는다.


88년에는 '성공시대'를 만들어 작품성/흥행 양쪽에 성공을 하였으며, 93년작인 화엄경 같은 경우는 대종상 수상을 거두고 해외에서도 상당한 관심을 받는 작품이었다.(94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알프레트 바우어상을 수상했다. 사실 이 상은 명예상같은 것이라 본상보단 좀 미흡한 평을 받지만,예술창안 효과상이라는 또다른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며 1961년 한국영화 마부가 수상한지 33년만에 2번째로 수상했다.)


그리고 94년작인 '너에게 나를 보낸다'로 서울관객 80만이 넘는 엄청난 대박을 거두며 서편제에 이은 단관 극장 체제 한국영화 역대 흥행 2위에 남게된다. 당시에 이 관객 수치는 헐리우드 블럭버스터들이나 도달하는 수치였기에 화제가 되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정말 그럴듯하다.


이 '너에게 나를 보낸다', '화엄경(고은의 시가 원작이긴한데,내용이 난해하다)', '꽃잎','경마장가는 길(동명의 소설이 원작)'은 90년대 국산 영화들 중에선 상당한 비중의 작품들이다. 1996년작 꽃잎은 가수 이정현의 데뷔작으로 고등학생이던 그가 당시 전신을 노출한 신이 충격과 화제가 되었다. 이 영화는 방콕 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으며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조명한 이 영화를 두고 당시 태국에선 1992년에 시위대를 사격한 태국 군부 문제를 연계하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97년에는 국산 영화중 사상 최고의 문제작 이었던 '나쁜 영화'를 제작하는데, 말 그대로 길거리 양아치들의 끝없이 비참하고 우울한 삶을 고어하게 그려내고 있어 화제였다. 당시 배우들은 죄다 길거리에서 실제 양아치들을 데려다 썼다고 했는데, 사실 그 중 비중이 있는 인물들은 배우들이었고 몇명은 지금 잘 나간다(...). 엔딩 크레딧에서 이름이 나온 이름들은 김꽃지, 안내상, 송강호, 이문식, 박준형, 명계남, 오승욱, 문성근, 김태희 등등이라고 한다. 단, 폭주족들은 실제 폭주족을 데려다 썼다고 한다(크레딧에도 80여명의 폭주족이라고 나온다).


관람한 관객들은 호평 반, 험담 반이지만 그래도 호평에 관한 부분은 대부분 좋은 이야기였다. 당시까지는 말 그대로 한국의 예술영화를 선도할 젊은 감독, 잘 팔리는 영화는 아니지만 좋은 의미의 문제작을 만들 능력을 갖춘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었다.[1]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정말 뭐가 문제라는건지 알 수 없다. 이전 영화들이 호평도 받고 흥행도 성공하고 화제도 모으고 꽤 잘 나가던 영화감독이기도 했다.


2000년 거짓말이라는, 사회적 이슈로까지 번진 작품을 발표한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의 원작자인 작가 장정일 의 작품을 영화화 한 것. 신인 여배우와 실제로 화가이자 모 대학강사라 알려진 남주인공이 성행위를 하는 장면을 매우 사실적으로 찍은 영화로써 줄거리, 기승전결, 대사도 거의 없다. 그저 여관에서 몰카찍은 듯한 성행위장면의 연속이다. 관객들은 주류감독이 내놓은 작품인지라 왠지 이해를 하는척 해야 뭐가 있어보일 것 같아서 대놓고 돌을 던질수는 없고, 그렇다고 이해를 하자니 도대체 알맹이는 없고... 이 와중에 이 괴작이 어느 해외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니 더욱 알쏭달쏭했으나 현재 이 작품은 예술영화로 언급되거나 하는 일도 없이 걍 흑역사에 가깝게 묻혀버린 상태 (그러니 사실 문제는 '거짓말'이라는 이 영화에서 이미 시작된 것).[2]


2001년 영국 영화 평론가이자 감독이던 토니 레인즈가 그의 다큐멘터리 영화까지 만든 바 있다.장선우 행진곡 이때만 해도 해외에서도 주목도 받기도 하던 괜찮은 감독이었다. 거짓말이 호불호가 갈리긴 해도.


문제는 2002년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서 시작된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항목을 확인하기 바란다.


이 인간의 영화 스타일은 사실 자기 입으로도 혼란이 어떻고 카오스가 어떻고 하는 식이다. 아마 자기 자신도 정확히 모를 것이다(...). 스토리보드나 콘티나 그런건 어디다 쓰는건지도 잘 모르고 닥치는대로 카메라를 들이대다가 좋은 장면이 있으면 그 장면들 위주로 영화를 이어가는데, 예술영화에서라면 또한 저예산 영화에서라면 그것도 나름 의미는 있을지 모르지만... 자뻑이 너무 심했다. 그리고 이런 무질서에 감독의 자뻑이 결국 자본을 만나서 완전 쓰레기를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씨네21은 이 영화를 어떻게든 옹호하려고 했다가 딴지일보에게 욕을 처먹기도 했다.


이걸로 100억씩이나 꼴깍 날려버린 바람에 제작사 기획시대는 완전 쫄딱 망했고 배급사튜브 엔터테인먼트는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2005년 결국 영화배급사업을 정리(튜브 픽쳐스라는 영화사만 남겨둠)해 사라져버렸다. 장선우 자신도 영화판에서 완전히 쫓겨나서 제주도에서 카페를 차리고 살아가는 것만 나중에야 알려지게 된다.[3] 그리고 2004년 '귀여워'라는 영화에서 조연으로 출연(!). 그러나 그게 다였다. 게다가 이 귀여워의 감독은 장선우의 제자(...)로서, 일부 엑스트라는 나쁜 영화의 주인공들인 가관인 수준. 그리고 이 영화도 흥행은 말아먹었다. 그리고 장선우의 제자 역시 스승처럼 상업 영화계에서 버로우를 탔다.[4]


일설에는 스승의 몰락을 슬퍼한 제자가 그를 자기 영화에 억지로 자리를 내서 출연시켜 줬다고도 한다. 


여담이지만 한때 박재동 화백과 함께 바리데기 애니화 작업을 시도하기도 했다고 하고[5] 몽골 초원을 배경으로한 거대한 스케일의 영화를 구상하기도 했다지만 영화판에서 완전히 쫓겨난지라 구상이 현실화되기는 그른듯 하다.[6]


2011년 씨네21 제797호에서 장선우 재평가를 하며 지금 뭐하나? 특별 취재했다. 장장 15페이지가 넘는 코너로 유달리 씨네 21의 장선우 사랑이 돋보였는데 아직도 차기작 계획을 하는 그에게 국내 영화계 투자가 어렵다면 그의 세계를 그리워하는 해외 영화계의 적절한 도움이 있다면 불가능하지는 않다라는 기사를 썼다. 그러나, 이 기자의 말처럼 해외에서 장선우에게 제작비를 대줄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요약하자면 예술 영화 찍던 감독인데 제작비 엄청 들어간 거대 핵폐기물 SF영화 하나 때문에 경력이 완전히 망가진 감독 정도로 말할 수 있다. 작가주의 감독에 속하기도 했는데 정성일 평론가가 당시에 썼던 평론에 따르면 박광수, 장선우, 이명세 셋을 높게 쳐주었다. 근데 지금까지 경력을 이어가고 있는 감독은 이명세 한명뿐(…). 박광수 감독은 그래도 나은편이라 2006년 박신양, 예지원 주연의 "눈부신 날에"를 찍고 영화활동을 쉬고 있다. 자주 안만드시는 분이라, 다시 나올수야 있지..


정성일 평론가 본인도 김기덕, 임권택, 홍상수로 갈아타서 장선우 감독은 완전히 잊혀졌다. 참고로 당시 유일하게 성소재림 쉴드쳐준 평론가도 정성일 한 명뿐이었다영화 보는 눈이 의심되는데


사실 이전 영화들은 좋은 영화도 다수 있기 때문에, 성소 하나로 기억되기엔 아쉬운 점도 있다. 이재용 감독도 비슷한 경우다. 정사,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들로 흥행과 비평으로 크게 성공했다가 다세포 소녀 영화로 아주 작살나버렸기에.[7] 하지만 그래도 이분은 초호화 배역으로 여배우들이라도 찍고 살아나기라도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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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본적인 능력도 없는 완전 막장급의 감독이었다면 애초에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찍을 돈조차 끌어올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 용서는 것은 아니지만(...)

[2] 사실 거짓말까지는 봐줄만 했다...라는 의견이 의외로 많다. 그 이유는 거짓말 자체가 60년대 프랑스의 상황주의영화 기법을 따르고 있었고, 관객에게 지속적인 쇼크를 주면서 중간중간 정치적/사회적 구호를 삽입한다는 그 나름의 기법에 충실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결국 해외에서는 별로 새로울게 없는 것이었지만 당시 여러모로 경직되어있던 사회였던 한국에서는 쇼킹한 영화였고, 그러한 위치가 영화사적으로 의미가 있었다는 것. 참고로 유럽 등지에서 상을 받거나 호평을 받은 이유도 상황주의 시대 영화의 한국적 재현이라는 평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다시 말해 그들에게는 하나의 키치로 인식되었던 것.

[3] 이 카페는 그럭저럭 명물화 되었는지 관광 잡지등에 가끔씩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영화감독이 영화판에서 쫓겨나 차린 카페가 명물이 되는게 좋은 일인지는...

[4] 이 본문을 보고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까 첨언하자면 귀여워는 저질 영화가 아니다. 평론가들이 입을 모아 2004년 한국영화계 최고의 데뷔작이라는 찬사까지 한 바 있다. 백상예술대상 신인감독상까지 받았다. 단, 대중들의 취향과는 심히 어긋난 작품이었고, 덕분에 네이버 평점 4점대를 찍었다. 평론가의 시각과 대중의 시각이 어긋난 예 중 하나로 들 수 있을듯. 그나마 2010년 창피해라는 영화를 찍었다.

[5] 뉴타입 한글판에서 소개된바 있다. 박재동 화백과 함께 중앙아시아에 스케치 여행을 가기도 했다고.

[6] 짬밥으로 보면, 현재는 좋은 취급을 해 주는 사람이 거의 없는 (임권택이나 있으려나?) 90년대 이전의 올드 감독들과 박찬욱, 봉준호 등으로 대표되는 21세기 이후 좋은 평가를 받는 신예들의 세대 사이에 끼어서 더 위치가 엉성한 측면도 있다. 게다가 영화 하나를 완전히 말아먹었으니...

[7] 근데 다세포 소녀도 평론가들의 평은 나쁘지 않았다. 의심스러우면 당장 씨네21 사이트로 가서 다세포 소녀 평점을 검색해 보라. 무려 평점 6을 찍었다(...). 딴지일보에서도 호평을 날렸다 극장에서 보고온 관객들의 악플이 바다를 이룬 사례가 있다. 역시 평론가는 재미있어.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