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시절 이소룡한테 맞는 성룡 이때 18세였는데 얼굴은 30대후반[1]
목차
1 개요
2 일대기
2.1 어린 시절
2.2 연기자가 되다
2.3 독립, 그리고 성공
3 스턴트와 부상
4 기타 매체와의 관계
5 한국과의 관계
6 외국에서의 활동
7 생활
8 기타
9 성가반
10 영화 목록
11 성룡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
1 개요
추석 설날때 만나는 친척중 가장 반가운 사람[2]
홍콩 출신의 영화배우. 표준중국어로는 청룽[3], 광동어로는 쉔룽, 서양에서는 Jackie Chan이라고 부른다. 본명은 진항생이라고 알려져 있었으나 사실은 '방사룡'이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국민당군의 스파이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본명을 숨기고 '진'씨로 가장했다고. 그래서 성룡의 아들은 본명인 '방조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2 일대기
2.1 어린 시절
파란만장한 유년기를 보낸 인물로, 집안이 가난해서 정규교육도 받지 못해 문맹이 되었고, 그로 인해 성룡은 대본을 읽지 못하여 동료가 대신 읽어주는 대사를 외워 연기를 하는 등 많은 고난을 겪었다. 80년대 성룡이 대스타가 된 이후에도 이것이 걸림돌이 되어 자신은 사인회에서 팬의 이름을 써주지 못하는 것을 가장 가슴아프게 생각한다고 고백하였다. 부인인 임봉교는 그에게 대본을 읽어주다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일화도 있다. 물론 후에 문맹에서 벗어났다.
이런 그의 생애를 다룬 영화로 용의 흔적:성룡과 그의 잊혀진 가족이 있다.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작으로 왠만한 성룡팬들도 이 영화의 존재를 모른다.
2.2 연기자가 되다
부모님이 오스트레일리아로 모두 돈을 벌러 떠나고 혼자 남겨진 성룡은 간점원 희극학교(경극 학교)에 들어가 10년 동안 연기와 무술 훈련을 받았는데, 이때 훈련이 어찌나 혹독했던지 성룡은 고문이라고 회고한 바 있다. 여담으로 희극학교 4년 선배가 홍금보고 4년 후배가 원표로, 이들은 훗날 '칠소복'으로 이름을 떨친다. 1988년에 나온 유가위가 감독하고 홍금보가 주연한 영화 칠소복이 바로 이 시절을 그린 영화이다.
여길 나온 뒤로 여러 영화에서 온갖 엑스트라 및 조연을 맡았는데 1974년에는 에로틱 영화인 금병매에서 조연으로 나오기도 했다. 이 시절 별별 영화에서도 엑스트라 및 악역까지도 맡았는데 영 타이거 같은 경우는 국내 비디오로 성룡이 주연인양 나와서 멋모르고 빌려보던 이들이 얼굴에 점을 붙이고 찌질이 악당 졸개로 나와 주인공인 택시기사에게 맞아 뻗는 모습에 놀란 추억을 겪기도 했다.
성룡이 찌질이 악당 졸개로 나오는 영 타이거(1973) 국내 비디오 표지. 엉뚱한 사진을 박아 놓아 이것만 보면 전혀 예측을 할 수 없다. 그나마 엑스트라치곤 좀 비중이 높긴 하지만, 주인공에게 맞다가 애원하며 빌다가 주인공이 그냥 가자 뒤에서 비겁하게 반격하다가 맞아 나가떨어지며 퇴장한다.(...)
영 타이거 장면.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왼쪽 턱 근처에 큼직한 점을 붙이고 나오는데 정말 악당 그 자체로서 나와 여자도 가차없이 죽인다. 밑 사진은 주인공에게 맞아 뻗어서 빌면서 애원하던 장면(...).
그 밖에도 당시 한국을 오고가면서 한국 영화 및 한국과 홍콩 합작 영화에서도 엑스트라를 연기했으며, 이소룡 영화 2편에서도 스턴트맨[4]으로 활약했으나, 불투명한 장래를 비관하여 일을 접고 호주로 갔다. 1973년 이소룡이 사망하면서 홍콩 영화계는 포스트 이소룡을 찾느라 혈안이 되었는데, 성룡은 스턴트맨이 아닌 주연으로 쓴다는 나유(羅維, 로웨이) 감독의 연락을 받고 홍콩으로 돌아온다. 성룡이란 예명도 새끼 용(소룡)을 뛰어넘는 어른 용(성룡)이 되라는 뜻으로 나유가 지어줬다.그리고 신정무문을 비롯하여 이소룡 영화 모방작에 줄기차게 출연. 비록 주연을 맡았지만, 당시 쿵후영화는 그야말로 '마구 찍어낸 쌈마이 영화'였고 나유 감독도 예외는 아니었다. 노예계약에 가까운 조건으로 고만고만한 영화를 찍던 성룡은 회의를 품게 되고 점차 나유와 사이가 벌어진다.
나유는 오사원이 설립한 사원영화사에 잠시 성룡을 대여(…)해줬는데, 이때 원화평과 찍은 사형도수(1978)와 취권(1978)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성룡은 흥행의 보증수표로 떠오른다.
2.3 독립, 그리고 성공
한편 성룡은 나유와 계속 영화를 찍다간 평생 소모품으로 살다 끝나리란 절망감[5]에 빠져서 야반도주를 하려다가 나유 부인에게 들켰다. 자초지종을 들은 나유 부인은 '그럼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냐?'고 묻고, 성룡이 '직접 감독하고 싶다.'고 요청하자 흔쾌히 허락한다. 이렇게 탄생한 소권괴초(1979)에서 성룡은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코믹함을 가미한 액션을 내세우며, 독자적인 영화세계를 정립한다. 소권괴초 또한 괜찮은 흥행성적을 올리면서 마침내 성룡은 골든하베스트로 이적한다. 여기서 내놓은 첫 작품이 사제출마(1980)다.
코믹한 무술인 기믹으로 잘 나오지만 취권으로 뜨기 전에는 진지한 역 쪽이었다. 코믹 이미지로 성공한 다음에도 중안조로 진지한 분위기로 가 보거나 화소도처럼 홍콩 느와르 스타일의 영화에 출연한 일도 있는데, 그다지 좋은 성과는 올리지 못했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와 신주쿠 사건으로 다시 느와르 스타일에 도전했다.
3 스턴트와 부상
버스터 키튼의 영향을 받은 아크로바틱 묘기와 좋은 유머 감각을 바탕으로 영화를 재밌게 만드는 남자. 과격한 스턴트 액션 때문에 몇번 죽을 뻔했고, 온몸에 부상을 입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현재 성룡의 스턴트팀 성가반은 홍금보의 홍가반, 원표의 원가반과 함께 홍콩에서 손꼽히는 스턴트 그룹이다. 딴지일보에서는 그의 이러한 대인배 기질을 "내 몸이 특수효과" 정신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보험회사에서는 아직도 그를 요주의 인물로써 기피하며 블랙리스트 1순위라고 한다. 이 기록은 기네스북에도 현재 생존중인 연기자에 의한 최다 횟수 스턴트(Most stunts by a living actor) 라는 제목으로 등재되어 있다.
이토록 몸이 성할날이 없었기에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는 별명이 붙을정도로 몸이 만신창이였는데, 가장 위험했던 사고로 1985년 유고슬라비아에서 '용형호제'를 촬영하다가 잡았던 나무가지가 부러지면서 머리부터 추락, 두개골이 함몰된 적이 있었다. 이사고의 후유증으로 오른쪽 청력을 잃었고 머리를 35바늘이나 꿰멘 탓에[6] 흉터가 생겼다 한다.[7] 성룡이 장발을 고수하는 이유이기도 하며 영화 초반부에 스포츠 머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장발로 변하는 게 이것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예전처럼 장발보다는 단정한 컷트 스타일을 유지 중.
1994년 '홍번구'를 촬영할때 다리에서 호버크래프트로 뛰어내리는 장면에서 착지를 잘못해 오른쪽 발목이 90도로 꺾이며 골절됐다. 깁스 자국을 가려야 했기에 운동화모양을 본떠서 만든 특수 양말을 신고 촬영을 마쳤다. 이 역시 엔딩 크레딧에서 확인 가능.
흔히 성룡은 대역을 쓰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실 영화 마케팅 측면에서 과장한 수사일 뿐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영화 비룡맹장(1988)에선 극장에서 본 관객도 식겁할 정도로 대역이 티[8]가 확 났다. 그렇다고 '대부분의 스턴트를 직접 소화한다'는 표현이 맹숭맹숭해서 뻥 좀 섞은 걸 가지고 거짓말쟁이라고 몰아붙이진 말자. 18K가 순금이 아니라고 해서 구리 도금과 동급 취급할 순 없잖은가. 게다가 대역을 안 쓰며 액션씬 찍다가 정말 저승사자 만날 뻔했던 걸 생각해주자. 위에 부상당한 걸 봐도 이해해줘야 하지 않을까?[9]
홍콩에서 만든 영화에서는 악동부터 열혈남아까지 다양한 캐릭터를 맡았지만, 할리우드 진출 작품에서는 캐릭터가 '웃기는 동양인 꼰대'로 굳어버렸다. 근래 들어서 나이 탓인지 젊을 때의 그 아크로바틱함이 줄어들어 많이 아쉽지만, 그래도 여전히 실력은 좋다.
그의 영화에는 스턴트 중 사고, NG 등을 총집해서 올리는 전통이 있다. 이는 서구권에서 촬영된 영화에도 남아있다.
4 기타 매체와의 관계
인기를 반영하는 듯 서구에서도 애니메이션 시리즈[10]가 나오고 철권의 레이우롱 등 여타 캐릭터에도 영향[11]을 끼치게 된다.
성룡을 주인공으로 한 게임도 가끔 나온다. 몇 개 꼽자면 PC엔진으로 발매된 '성룡' 플랫폼 액션게임, PS1로 나온 재키찬 스턴트 마스터[12]가 있고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스파르탄 X도 실은 성룡 주연의 쾌찬차가 모티브인 게임이다. 정작 분위기는 원작과 거리가 먼 오히려 사망유희류의 이소룡 영화스럽게 나왔지만…. 그리고 비공식 해적 게임이기는 하지만, '홍콩 97'에서도 얼굴을 비춘다.(…) 무슨 게임인지는 생략.
그러나 그중에도 흑역사가 있었으니 바로 카네코에서 발매된 '재키 찬 - 쿵푸 마스터'라는 실사 격투게임이다.[13] 카네코에서 제안해서 나왔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였다고 본인도 스스로 인정한 흑역사다. 마메 롬도 풀려서 직접 해볼 수도 있는데 뭐라 말조차 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묻어나온다. 그런데 의외로 유튜브에서 고수들이 플레이하는 경기영상을 보면 게임이 굉장히 완성도 높고 재밌어 보인다.
이 게임에서 성룡은 직접 플레이어블로 고를수는 없고 중간보스 및 최종보스로 등장.[14] 3가지 배리에이션이 나오며 코스츔과 무술이 달라진다. 근데 성룡 외에는 그렇다할 임팩트가 없다. 나머지 플레이어 캐릭터를 담당한 배우나 전체적인 게임 분위기가 너무 싼티나보여서. 철권의 레이 우롱은 특별한 언급은 없지만 아무리 봐도 성룡을 오마쥬한 캐릭터.
5 한국과의 관계
예전에는 추석, 설날 등 가족이 모이는 명절 때만 되면 성룡 영화를 하나씩은 개봉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었다. TV에서도 성룡 영화 하나씩은 틀어줬다. 80년대 방영판에서는 주로 배한성이 성룡을 더빙했는데, 유성검의 대결[15]이나 권정, 소권괴초, 사제출마 같은 방영판에서 연기했다. 그러다가 90년대 초중반부턴 고인이 된 장세준이 주로 연기하면서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나 미라클, 용적심, 쾌찬차, 용형호제 같은 영화에서 연기했다. 장세준의 죽음 이후엔 이재용, 홍시호, 김일 등 여러 성우가 번갈아 맡기도 했다.
무명이었던 젊은 시절에 한국에서 머물며 한국 홍콩 합작영화를 여럿 찍었다. 한국에 있는 동안 밑바닥 생활을 하며 고생을 많이 했으며 그 덕에 한국어가 아주 유창해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진짜 한국인인 줄 오해할 정도이다. 홍콩 구룡반도에 있는 스타의 거리에 있는 그의 동판을 보면 핸드프린팅과 함께 그의 사인이 본인이 직접 쓴 4개국어로 적혀있는데, 이중 하나가 한글.
MBC의 '영원한 따거 성룡'이란 프로에서 그의 여러가지 면모를 보여줬다.
한국에는 불국사나 창덕궁 등에서 로케 촬영을 하게 되면서 지내게 되었고, 이 당시 한국 음식과 문화를 익혔다고 한다. 방송 중 식사로 육개장을 먹는데, 정말 빨리 먹는다. 그리고 안 남기고 다 먹는다! 먹고 나선 휴지로 자리를 깨끗이 닦는다…![16]
이 당시 한국 여자를 사귀어 8년간 장거리 연애를 했다고 밝혔으며[17] 한국어도 그 덕에 배웠다고 하는데, 장발 단속에 걸렸다가 한국어가 능숙해 도리어 중국인 흉내를 내는 게 아니냐며 경찰서로 끌려간 적도 있었다고. 과거 하루 하루 먹을 것을 걱정할 정도의 시절을 겪어서 그런지 여러 근검한 생활 태도를 보여줬다. 또한 이 방송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콜렉션을 공개하기도 함.
참고로 취권은 코믹한 무술을 만들려던 성룡이 술에 취한 권법을 만들면 어떨까하며 궁리하다가 동작 하나하나를 만들다가 탄생한 무술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미 중국 지공권 계열 무술들 중에 취팔선권이 존재한다. 시조가 무려 수호전의 노지심.[18]
한편 신인 시절에 최무룡과 합작영화에서 대결을 펼친 적 있는데, 훗날 신화에서 최민수와 대결, 보기 드물게 부자 2세대와 맞겨뤄본 사나이가 되었다.
6 외국에서의 활동
AVGN이 꼽은 성룡의 스턴트 액션 베스트 10
80년대 초반에 할리우드 진출을 노렸으나, 할리우드에서 골든 하베스트가 제작하여 나온 캐논볼 1, 2에선 엑스트라를 벗어난 수준에 불과했다. 홍콩 자본으로 미국인 제임스 글리켄하우스가 감독한 프로텍터는 미국인들이 편집하면서 참패했고 이 편집판을 보고 경악하면서[19] 성룡이 편집한 버전[20]이 뒤에 나오게 된다. 이 재편집판 평이 압도적으로 좋은 편이다.
그 밖에 이 무렵, 미국에서 찍은 배틀크리크도 참패하면서 미국 버라이어티 지로부터 아시아의 듣보잡 D급 배우라는 비웃음적인 기사로 매도당한 적도 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1996년 홍번구가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뒤늦게 할리우드에 성공적으로 재진출하면서 버라이어티 지는 12년전의 그 배우가 성공적으로 할리우드에 왔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찍은 러시아워 시리즈는 흥행에 성공했지만, 할리우드에서 찍은 턱시도나 상하이눈같은 작품은 그냥 그런 흥행을 거둬들인다.
7 생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티베트에 대한 발언으로 지탄을 받은 적이 있는가 하면, 한국의 기부천사 김장훈씨에게 직접 한국어로 편지를 보내(쓴 사람은 스티브 유) 그의 기부활동을 응원하고 자신도 4,000만 달러를 기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4,000만 달러를 기부하겠다는 건 사실이 아닌 듯하나[21], 이후 2009년에는 전 재산에 대해 기부 의사를 밝혔다. 이때 기자가 "아들도 있으면서 왜 물려주지 않고 기부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했었는데 "내 자식이 능력이 있으면 내가 물려주지 않아도 알아서 많이 벌 것이고, 내 자식이 능력이 없다면 물려줘봤자 탕진할 것이다."라고 답하였다. 오오.
뒷세계에 연루된 사생활 및 난잡한 여성 문제로 인해 홍콩 내에서의 평은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이라고도 한다. 알다시피 성룡은 홍콩 영화계에서도 감독이 함부로 터치 못하는 배우중 하나로 파워가 강했고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22]의 완벽주의라 실베스타 스탤론만큼[23]이나 각본 수정과 제작 과정에 개입을 많이 하는 편이다. 다작에 대충 찍어대는 왕정과 완벽주의의 성룡과는 애초에 상성이 안맞을 수밖에…. 게다가 성룡의 시티헌터로 만난 이들의 결과가 가히 안습이라….
성룡과 감독간의 트러블은 꾸준히 있었는데 중안조를 찍을때는 황지강(黃志強) 감독과 의견충돌이 있었고 취권2를 찍을때는 무술연출씬에 관해 의견이 갈려 유가량(劉家良)[24] 감독과 대놓고 싸웠었는데 유가량 감독은 빡쳐서 초반부 격투씬만 완성시키고 이후 메가폰을 놔버렸다고 한다.[25] 성룡이 출연한 영화의 도입부분에 成龍作品이란 자막이 뜨는 거는 감독들이 성룡과의 불화나 여러 사정으로 도중하차해 성룡이 이어서 연출한 거라 보면 된다.
하여튼 왕정은 "성룡의 시티헌터" 이후로 소심한 복수를 하게 되는데 이연걸 주연의 탈출(1995)이란 영화에서 장학우가 맡은 역할인 룡위란 인물의 기믹을 외모는 이소룡 짝퉁이지만 성격이나 사생활(주색잡기와 실제 무술실력이 별로라는 설정), 그리고 아버지와 매니저 진자강까지 모습을 흡사하게 설정해 누가 봐도 성룡임을 알게끔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깠다. 한술 더떠서 아예 스턴트를 직접 한다고 구라치고 대역을 쓰는 장면까지 있다. 그러나 이 룡위가 극중 후반에 아버지가 구타당하는걸 보고 분노하여 멋지게 테러리스트를 때려잡는 장면을 집어넣은걸 보면 소송 방지용 인것으로 보인다.
거기다 무슨 바람이 분 것이지 미국인 스티브 유의 한국 데뷔를 위해 은근슬쩍 그를 밀어주고 있어서 한국에서조차 안 좋은 시선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2010년에 개봉한 '대병소장'(大兵小將: Little Big Soldier)이라는 영화에서 스티브와 같이 출연하였는데[26] 이게 홍콩을 제외한 중국 본토에서는 2010년 2월 14일, 음력으로는 1월 1일, 즉 설날에 개봉했고 1억 위안의 흥행을 기록하여 흥행에 성공했지만, 정작 홍콩에서는 같은 중국인데도 불구하고 11일 늦은 2월 25일에 개봉했고 홍콩사람들이 개봉도 하기 전에 다운받아서 봤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중국본토의 1/100밖에 안되는 흥행 실적을 기록했다.
2009년 4월에는 중국인은 강력한 통제를 받아야 한다. 지나친 자유는 대만처럼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고 망언을 해 병크를 터트렸다. 중국 내의 보수 언론에서는 이 부분을 검열하여 보도한지라 크게 파장이 일지 않았지만, 홍콩이나 대만 등 선진의식이 높은 지역으로부터는 강력하게 비난을 받았다.
또한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 때 티베트 사태로 프랑스 등에서 봉송되는 성화를 끄려고 덤벼든 사람이 있는 등 크고 작은 시위가 생기자 "성화봉송을 막으려하는 자는 따끔한 쿵후의 맛을 보여주겠다"라는 발언으로 2ch의 열광적인 비아냥을 얻기도(…)했고[27][28]
탈모도 심해졌다. M자 탈모인데, 장발은 가발을 쓰고 다니는 듯하다. 지금껏 한번도 공개된 적이 없지만, 영화 대병소장의 NG영상에서 공개되었다. 진행 정도로 보아 상당히 오랫동안 탈모가 있었던 듯. 홍콩에는 성룡이 모델로 나온 발모제가 있다.
자신의 개인 경호원이기도 했던 노혜광과 사이가 틀어지자 퇴직금도 주지 않고 내쫓아서, 의리없는 스타로 뽑히기도 했다.#
8 기타
통영시 명예시민 겸 홍보대사다. 해저터널이나 미륵산 케이블카에 성룡이 직접 쓰레기를 들고 있는 사진과 함께 쓰레기 좀 버리지 말라는 글이 쓰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코믹 무술 이미지가 커서인지, 진지하게 나온 영화들은 해외 흥행이 신통치 않다. 중안조(1993) 라든지, 뉴 폴리스 스토리, 신주쿠 사건같은 영화들은 평은 괜찮을지언정, 해외 흥행은 참혹했다.(홍콩 흥행도 마찬가지로 그다지 안 좋았다. 중안조로 대만 금마장 영화제 및 홍콩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수상한 거와 대조적) 더불어 90년대만 해도 한국 극장가에선 흥행 성공을 대표하는 이름이기도 했으나…. 2000년대 와서는 많이 잊혀지고 있다. 2010년에 영화 베스트 키드에 출연했는데, 이 영화는 포비든 킹덤과 더불어 그동안 제자로만 출연했던 성룡이 스승으로 출연하는 이색작.
성룡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애니도 있다.(#)
한때 소셜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사망설이 떠돌았으나 곧 루머로 밝혀졌다. 현재 성룡은 2011년 9월에 개봉한(해외) 영화 '신해혁명' 제작, 공동 감독 겸 주연으로 참여했는데 로튼토마토 점수가 20점도 안되는 악평에 시달리고 흥행도 기대 이하이다. 공교롭게도 그의 100번째 영화라서 이 영화의 악평이 가슴아플 듯. 한국에선 2012년 3월 15일 개봉했으나 시사회도 없이 잠깐 개봉하고 DVD로 직행할 예정이라고...
2012년 7월 현재는 무려 22년만에 나오는 용형호제 3편에 나온다. 가발을 쓰고 나이 예순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무척 힘들어하는데 이것이 거의 사실상 액션 코미디물로선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말이 많다.
9 성가반
성룡이 만든 스턴트맨들과 같이 작업했던 무술가들의 집단. 홍금보의 홍가반과 함께 홍콩 영화에서 고난도의 스턴트들을 작업한다. 개개인이 자신의 무술을 선보이는 홍가반과 달리, 이 쪽은 모두가 하나되어 큰 그림을 그리는 무술을 시도하고 있다.
일원들은 다음과 같다. 다만, 위키백과의 정보를 가져온 것이라 영어 이름이기도 하지만, 중국이름을 알더라도 얼굴이 안 알려진 사람이 많고(…), 한국인도 있다. 해당 부분에 대해서는 추가바람.
※ 이전 멤버와 현재 멤버 모두 포함되어 있다.
Michael Tse(마이클 체, 본명은 사천화) - 작품은 알려지지 않음
Colin Flora
Brad Allan (브래드 앨런, 풀네임은 브래들리 제임스 앨런(Bradley James Allan)) - 스턴트팀 리더. 성가반에서 최초로 아시아인이 아닌 사람. 빅타임(Gorgeous)[29]에서 성룡과 함께 두 차례에 걸쳐 싸움을 한 사람.
Paul Andreovski - "나이스 가이"를 비롯한 여러 영화에 출연. 성룡의 개인 복싱 코치.
Anthony Carpio
Chris Chan (Chan Sai-Tang)
Chan Man-ching
Chan Tat-kwong (Chan Daat-Gong)
Andy Cheng (Cheng Kai-Chung)
Johnny Cheung (Cheung Yiu-Wah)
Danny Chow (Chow Yun-kin)
Joe Eigo
Fung Hak-on (Fung Hark-On)
Hon Chun
Dani Hu(Fok Chan Keung)
Louis Keung (Mak Wai-Cheung)
Benny Lai (Lai Keung-Kuen)
Rocky Lai (Lai Keung)
Sam Wong (Lai Sing-kwong / Wong Ming-Sing) - 스턴트팀 리더.
Ben Lam (Lam Kwok-Bun)
Chris Li (Li Kin Sang)
Lee Chun-kit – Project A Part II, Police Story 2, Miracles
Nicky Li (니키 리, 본명은 이충지(Li Chung-Chi)) - 스턴트팀 리더.
Ken Lo (켄 로, 본명은 노혜광(Lo Wai-Kwong)) - 성룡의 개인 경호원. 취권2의 마지막 싸움에서 발차기를 보여준 사람. 이연걸의 영화에도 종종 등장한다.
Mars (화성. 본명은 Chiang Wing-fat / Feng Sing) - 성룡의 최고 대역배우.
Pang Hiu-sang
Frankie Poon (Poon Bin-chung)
William Tuen (Tuan Wai-Lun)
Wan Faat
Paul Wong (Wong Kwan)
Jon Foo (Jonathan Patrick Foo)
He Jun (Hoh Gwan)
Ng Kong (Wu Gang)
Park Hyun Jin
Lee In Seob
Han Kwan Hua
Ron Smoorenburg - 성룡의 CIA(Who Am I?)에서 노혜광과 함께 1대2 옥상 결투를 벌인 사람. 위키백과쪽 명단에는 없다. 본인 사이트에 의하면 성룡을 비롯한 홍콩영화인들이 자신을 노동력 착취 내지 과소평가했다고 징징대고 있다. 생긴 건 이 분 닮았더만
10 영화 목록
※ 출처 - Daum 영화. 각 정보에 대해 추가바람 및 수정바람.
1971 협녀, 광동소로호
1972 정무문, 흑연비수(합기도)
1973 용쟁호투
1974 사왕일후
1976 소림문, 소림목인항, 신정무문, 유성검의 대결
1977 이소룡 일대기 생과 사, 신 당산대형
1978 소권, 오룡대협, 사학비권, 비도권운산, 취권, 사형도수, 금강혈인
1979 당산비권, 소권괴초, 용권, 조수괴초
1980 사제출마, 배틀 크리크
1981 캐논볼
1982 용소야
1983 용등호약, 오복성, 프로젝트A
1984 캐논볼2, 대복성, 쾌찬차
1985 복성고조, 복성고조2, 폴리스 스토리, 용적심, 프로텍터
1986 용형호제
1987 프로젝트A 2
1988 비룡맹장, 폴리스 스토리2-구룡의 눈
1989 미라클
1990 액션 진기명기, 용형호제2, 화소도
1992 쌍룡회, 폴리스 스토리3-초급경찰, 성룡의 시티헌터
1993 프로젝트 S, 중안조
1994 취권2
1995 성룡의 썬더볼트
1996 폴리스 스토리3, 홍번구
1997 나이스 가이
1998 러시아워, 성룡의 CIA
1999 젠 엑스 캅, 희극지왕, 빅타임
2000 이소룡-전사의 여행, 엑시덴탈 스파이, 상하이 눈
2001 러시아워2
2002 아트 오브 액션, 턱시도
2003 트윈 이펙트, 메달리온, 상하이 나이츠
2004 트윈 이펙트2, 뉴 폴리스 스토리, 80일간의 세계일주
2005 신화-진시황릉의 비밀
2006 사대천왕, BB프로젝트
2007 러시아워3
2008 쿵푸팬더, 포비든 킹덤-전설의 마스터를 찾아서
2009 건국대업, 성룡의 쿵푸 마스터, 신주쿠 사건
2010 대병소장, 쿵푸팬더 홀리데이 스페셜, 스파이 넥스트 도어, 베스트 키드
2011 쿵푸팬더2, 신해혁명, 샤오린:최후의 결전
11 성룡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
대복성자(참고로 여자다) - 괴짜가족
레이 우롱 - 철권
마이트 가이 - 나루토
권성 샤키 첸 - 수권전대 게키렌쟈
쳉푸 - 더블 드래곤(네오지오판)
홍푸 - 아랑전설
추가바람
----
[1] 실제 이장면에서 성룡은 코를 다치고 갈비뼈에도 실금이 갔다고 한다...흠좀무.
[2] 90년대 명절 특선영화로 성룡은 단골손님 이었다.
[3] 한국기자들이 이 발음으로 이름을 주로 쓰는데, 성룡 본인은 그냥 재키 첸으로 불러달라든지 아니면 한국 발음인 성룡으로 써달라고 한 바 있다…. 그럼에도 청룽만 고집하여 쓰는 이유는 외래어 표기법 때문. 신해혁명 이후의 중국인은 모두 표준중국어 발음을 따라 쓰도록 되어있다.
[4] 정무문에서 이소룡에 맞고 날아가 죽는 일본인 관장의 스턴트를 했었는데, 당시 한 사람이 장비 없이 날아간 거리로는 최고였다고 한다. 용쟁호투에선 이소룡에게 너무 세게 맞아서 이소룡이 사과의 의미로 다음 영화에선 성룡을 조연으로 시켜주겠다고 약속했으나 그만 이소룡이 사망했다. 안습. 이후 인터뷰자리나 사석에서 그 때 맞은 부위가 하필이면 코라서 지금 코가 이렇게 크다며 본인도 우스개 소리로 이 때의 일을 가끔씩 이야기 하고 있다.
[5] 이소룡 사후 나유는 그를 대체할 만한 배우를 찾고 있었고 그의 작품은 주로 전형적인 이소룡식 비장함과 상투적인 내용의 작품을 연출해 성룡으로썬 회의감이 들었던 것.
[6] 이 사고장면은 용형호제의 엔딩크레딧에서 여과없이 나온다. 1986년 초반, 한국일보라든지 국내 신문 광고로 당시 성룡이 용형호제를 찍다가 몇 바늘을 꿰멨을까요? 1.33바늘 2.34바늘… 이렇게 퀴즈행사를 열었었다…!
[7] 함몰된 흉터를 마개같은 걸로 막았으며 이것을 긴머리로 가린다는 말도 있다.
[8] 대역은 전가락이 했다. 그는 전소호의 동생이며 홍가반의 스턴트맨이자 액션배우다.
[9] 할리우드에서 촬영할 때 스턴트맨 노조 때문에 직접 스턴트를 못 한다고 불평한 적 있다.
[10] '재키 찬 어드벤쳐' 시리즈. KBS에서 방영했었다. 마지막에 진짜 성룡이 나와 몇마디 하는 씬도 있고, 주인공 성우가 진짜 성룡이라고 한다.
[11] 4편부터 성룡의 느낌이 강하다.
[12] 성룡이 모션캡처까지 해서 액션을 찍었다.
[13] 비슷한 게임으로 모탈 컴뱃이 있다. 잔혹한 피니쉬까지 비슷하다.
[14] 후속작에서는 셀렉트가 가능하다.
[15] 왕우가 주연이고 성룡은 악역. 재미있게도 더빙이 배한성-양지운 컴비였다.
[16] 자세히 보면 고사리 나물이나 계란은 먹지않고 남겼다. 하지만 밥공기는 뚝딱 해치웠다. 그리고 고아원 어린이들과 축구를 하고 짜장면을 먹는데 김치를 달라고 귀여운 투정도 부린다. 근데 배추김치가 아니라 열무김치가 나오자 잠깐 시무룩해하지만 싫은 내색없이 맛있게 먹는다.(성룡은 배추김치를 좋아했다. 그런데 생소한 열무김치가 나와서 그랬던 것.) 오오!
[17] 이때 정윤희와 열애설이 나기도 했었다. 하지만 사실무근으로 판명. 후에 폐간된 영화 잡지 로드쇼와 인터뷰에서는 그 여자를 정말 사랑했었지만 그녀 집안 반대로 결국 헤어졌단다. 그리고 1984년 이젠 대스타가 되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몰래 그녀를 다시 만났다고 했다. 이미 그녀는 유부녀가 되었지만 서로 오래전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작별인사를 나누었다고.
[18] 거기에 다른 유파로는 이태백류가 있다는 말까지 있는데...이것은 믿거나 말거나 수준의 이야기.
[19] 국내 개봉 및 비디오판이 이 미국편집판이다. 국내 개봉 및 비디오판에선 NG장면이 안 나오는데 일본개봉판 및 나중에 재편집판에선 나온다. 유튜브를 찾으면 볼 수 있다.
[20] 엔딩이나 주요 장면이 추가 및 편집되면서 분위기도 확 달라졌다.
[21] 김장훈은 남에게 돈을 받아 기부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아마 그런 이유에서 김장훈 측에서 안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22] 한장면을 무려 1,000번을 반복하여 찍은 적도 있다. 폴리스 스토리 3를 찍을 당시 갈등이 많아서 당계레 감독은 당시 인터뷰로 영화 3편을 찍으며 받는 스트레스를 이거 하나로 받는다고 투덜거렸을 정도이다.
[23] 재미있게도 둘이 람보 4에 같이 나올뻔 했다.하지만 역시나 둘은 각본 문제로 엄청 다투고 결국 성룡이 나오길 거부했다. 원래 각본대로라면 성룡이 악당으로 나와서 람보 덕에 갱생하여 돕는다는 줄거리인데 성룡은 이 각본을 보고 악역 아시아인이 백인 덕분에 갱생한다니 이건 아시아에 대한 모독이 아니냐며 격분했다고. 그런데 어차치 각본을 바꿨어도 둘이 엄청 각본이나 여러 제작을 두고 서로 충돌했으리라는 전망이 압도적이다.
[24] 홍콩 유명 무술가. 유가량 감독의 아버지인 유심(劉湛)은 황비홍의 제자였던 임세영(林世榮)의 제자였다고 한다. 거기에 의형제인 유가휘(劉家輝, 본명 승금희(冼錦熙))와 유가영(劉家榮)도 무술가로 유명하다.
[25] 유가량은 이 취권2의 흥행에 고춧가루를 뿌리고자 유덕화를 기용해 취권3를 찍어 동시기에 같은 제목의 영화가 나오게 된다. 그러나 되려 취권3가 발렸다.
[26] 윈난성(운남성)에서 촬영, 제작했다. 관련기사1, 관련기사2
[27] 진중권은 "취권 찍을때 마신 술이 아직 안깼나?"라고 비꼬았다.
[28] 다만 이러한 발언들에 대해서, 성룡 본인이 중국 본토에도 진출하여 연예활동하는 입장이라 중국 정부에 밉보이는 발언을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란 것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그가 부모랑 떨어져서 좀 불우한 시절을 보낸 데는 하나의 중국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시대적 상황이 관련되어 있으며, 성룡 본인이 중국인, 그것도 한족이기 때문에 하나의 중국 원칙에 어긋나는 상황을 용납하지 못하는 게 한족으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연걸이나 다른 홍콩 배우들처럼 그냥 입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될거 가지고 왜 그렇게 나서야했는지도 의문. 뭐 이연걸도 영웅 촬영 당시 대륙 정부에 대한 아첨을 한껏 늘어놓은 적 있지만.
[29] 여기엔 아래에서 설명할 노혜광도 나오는데, 그냥 앨런의 고용주 역할. 두 번째 싸움 중간에 앨런에게 "괜찮지?(Are you Okay?)"라고 물었다가 앨런이 노려보자 "괜찮대, 괜찮대!"라며 좋아하는 모습이 압권. 출처
'사 > ㅓ'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대공원에서 하루 제대로 놀기, 이런 컨텐츠는 어디에? (0) | 2012.09.14 |
---|---|
서드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 행복하게 살기 (0) | 2012.08.30 |
셀란트로피스트 Celanthropist (0) | 2012.08.14 |
섹드립 (0) | 2012.08.13 |
성을 주제로 하는 캠페인 포스터 Campaign Poster 모음 (0) | 2011.07.19 |
선교 (0) | 2011.06.17 |
세계에서 가장 키 작은 남자 (0) | 2011.06.12 |
성교금지의 날 (0) | 2011.06.05 |
섹스 발명왕 2006년 (0) | 2011.06.05 |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 (0) | 2011.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