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cinside의 창립자 겸 전 대표이사 사장. 보통 유식대장 이라는 이명으로 불리며, 키뮤식, 김무식 등의 이명으로도 불렸다.
Contents
1 김유식의 인생역경
1.1 과거
1.2 Dcinside 창업
1.3 횡령사건
1.4 대표이사 사퇴
2 인격
2.1 디시 내 활동
2.2 만두를 좋아함
2.3 정치 성향
2.4 주식
2.5 소덕
2.6 그 외
3 저서 및 칼럼
3.1 김유식 칼럼
3.2 저서
1 김유식의 인생역경 ¶
1.1 과거 ¶
원래는 하이텔 시절부터 활동해왔던 올드 유저로, '김유식의 횡설수담' 라는 코너에서 특유의 입담으로 많은 인기를 모았다. PC통신을 처음 시작한건 1990년 하이텔의 전실 케텔에서부터였다고 한다. 하이텔의 네임드 유저였던 Pc Tools와 친분관계가 있다.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가 디지털 카메라를 보고 잘 팔릴 것 같다 라는 생각에 국내에 와서 DC인사이드를 차리고 온라인으로 판매를 시작했다. 이 '창립 금액'에 관한 건 말이 많은데, 김유식이 일본에서 일본AV(이하 야동)를 몰래 가져와서 구워서 팔았다는 소문이 가장 어울리게 느껴지겠지만(그래서 김유식은 '야동팔아 디씨세웠다.' 라는 말을 아직까지 듣고 있다) 실상 그가 한 것은 하이텔 장터란에 동경유학생센터 라는 이름의 구매 대행업체를 세워 당시의 명동역 지하상가 업체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금액으로 중개업을 하여 많은 판매고를 올린 것이다.
야동 판매 이야기가 나오게 된건 김유식이 최종적으로 적발된 죄명이 음란물 판매 혐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때 팔았던건 음란물이 아니라 무사 쥬베이(수병위인풍첩)였다고 한다.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 CD 등 중계업체는 그 문화적 특성상 저 죄목으로 많이들 잡혀 들어가곤 했다.
PC통신 유저 시절이었던 1996년. 북한의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당시 정부의 미온한 대처에 대해 의심하는 글을 올리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안기부 대공분실에 연행된 적이 있었다. 실컷 고문당한 후 PC통신에 '안기부 대공분실 이야기'라는 글을 올리다가 한번 더 연행되었다고 한다(다행히 훈방조치 되어서 빨간줄은 안 그어졌다).[1]
사실 위 고문 얘기에는 음란물 판매와 얽힌 뒷얘기가 있다...
1.2 Dcinside 창업 ¶
1999년 7월 설립해서 하이텔에 컨텐츠를 제공하는 회사로 출발, 초기 직원 3명에 단칸방에서 DC인사이드를 시작했으나 디지털 카메라의 인기가 날로 높아짐에 따라 2000년 3월 법인으로 전환하고 점점 사업규모를 늘려서 국내에서 가장 큰 디지털 카메라 공동구매 사이트가 되었다. 부업으로 노트북도 취급한다.
DC인사이드의 DC는 디지털 카메라 라는 뜻을 담고 있으나, 디지털 컨텐츠, 디지털 커뮤니티 라는 뜻 역시 담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 및 주변기기를 취급하며 기업 간 거래와 광고·홍보, 이벤트 대행, 디카 초보자들을 위한 촬영강좌, 출사(DC 유저들이 단체로 나와서 사진을 찍는 대회), 자체 인터넷 뉴스(?) 사이트인 디씨뉴스를 통한 정보제공 등도 한다.
2005년 3월 20일 34세의 나이로 디씨뉴스 관리 직원이었던 박유진(당시 27세)과 결혼했다. 프로포즈를 소주방에서 했는데, 대사는 "개죽이처럼 꼭 안아줄께" 였다고 한다.
2009년 7월 15일, 한겨레에서 갑자기 바른말운동에 나서겠다고 했는데, 김유식 본인부터 바른 말을 안 쓰고, 디시의 지금 꼴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1.3 횡령사건 ¶
2008년 11월 18일에 횡령 및 주가조작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밝혀졌다. 1, 2위 디시 대주주들이 주식으로 한탕하려던 것에 휘말린 것. 요즘엔 주식으로 돈 날린 거 제하고도 디씨 자체가 적자라서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2009년 4월 10일 사채를 동원해 IC코퍼레이션을 인수하고 유상증자하는 과정에서 70억을 횡령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었다. 최근에는 주갤에다가 유명해지는 방법으로 횡령을 저지르세요라는 리플을 달았다.
2009년 5월 22일 결국 추적 60분에 얼굴이 모자이크된 채로 출연하는 굴욕을 당했다.
2009년 7월 12일 횡령 건은 1차 수사결과 무혐의로 밝혀졌다. 하지만 추가 조사 결과, 상습적으로 횡령을 하였다는 것이 밝혀져 2009년 10월9일 현재 2년 6개월의 실형이 선고되었다. 다만 직원이 올린 글로 보아 그가 정말로 고의적으로 횡령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2010년 1월 13일 DC에는 수감중인 김유식의 항소심을 앞두고 '김유식 탄원서명 갤러리'가 개설되었다. 유식대장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디씨유저들이 지속적으로 서명을 벌였다. 그리고 2심에서 감형이 확정, 2010년 1월 28일 집행유예로 석방되었다. 재판부에서는 횡령금액 가운데 상당부분이 회수되고, 상호합의가 된 점, 그리고 개인적으로 착복한 금액이 없는 점을 들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고. 디씨 내에서는 재판부가 소녀시대 2집 발매에 맞춰서 석방해준 거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사실 유명세와는 달리 디씨의 경영 사정이 지속적으로 악화되자 개선해보고자 우회상장 했던거다. 물론 개선치 못하고 바지사장 노릇만 했다. 투자자라고 접근했던 이들이 사실 기업사냥꾼 및 사기꾼들이라 단물만 빨리고 털려버린 것.
디시인사이드 폐쇄 가능성이 퍼지기도 했다.
1.4 대표이사 사퇴 ¶
횡령 사건으로 구치소에 수감된 뒤, 돌연 대표이사에서 사퇴하겠다는 글을 남겼다. 석방되기는 했지만 대표이사로 복귀할 확률은 미지수. 그래도 김유식 에세이 갤러리에서 계속 연재하고 운영자 권한도 있는 걸 보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다. 참고로 '대표이사직에서 사퇴했다면서 무슨 권한으로 계속 글을 올리는가?', '지금도 출근한다면, 당신의 공식적인 직위나 직함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는 2010년 6월 현재, '주식회사 디시인사이드 이사'라는 답변을 하고 있다. 구치소에 수감되자 마자 임시로 대표이사를 사퇴한 뒤 집행유예로 풀리자 마자 다시 복귀한걸로 보인다. 아마 더 이상 대주주도 아니고 기업이미지를 위해 자진사퇴 후 월급임원으로 재기할 요량인것 같다.
2 인격 ¶
2.1 디시 내 활동 ¶
은근히 디씨 이곳저곳에 그의 이름을 내걸고 리플을 달거나 게시물을 쓰면서 활동하는등 내부 커뮤니티에 관심이 많으며, 이 때문에 갖은 삽질도 마다않는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디씨의 큰 형님이기 때문에 시비걸다가 방법당한 회원도 있다고 한다. 참고로 시비를 건 것은 아니지만 어느날 소녀시대 갤러리에서 껄떡대는 걸 아내에게 꼰지른 디시인사이드 3대 유저 중 한 명인 다빈치 코드를 3년 차단 먹여버렸다. 하지만 김유식은 다빈치 코드에게 역으로 낚여서 떡실신당함.
이게 정확히 맞는 정보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현재 대표 에세이에 올라온 댓글을 보면 그는 다빈치 코드를 차단먹인 적도 없고 또 디씨에는 차단3년 같은건 없다고 본인 스스로 말했다.
DCINSIDE의 갤러리 개설에 개인적 취향을 많이 반영시키기도 하고 아래 언급하는 횡령 사건으로 인해 이미지가 많이 실추되기도 했으나 디시 대부분에서는 여전히 유식대장이라 부르며 좋아하고 있다.
2.2 만두를 좋아함 ¶
김유식은 만두,특히 '김치왕만두'를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 때문에 2003년부터는 "만죽대장"이란 별명이 붙기도 하였다. 그래서 갤러리를 신설하고 싶으면 만두 한 박스를 조공으로 바치면 된다는 말이 있다.(이하 만두조공) 실제로 동방 프로젝트 갤러리는 만두를 DC 본사로 반입한 끝에 개설되기도 하였다...실제 약 2008년 전까지만 해도 갤러리 하나 만드는데 많은 노력이 들어갔는데, 특히 남자 연예인 갤러리의 경우 수많은 사람들이 짤방까지 동원해서 애원해도 안들어주는 바람에 만두조공을 통해서 겨우 갤러리가 만들어지게 되는 케이스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여자 연예인 갤러리의 경우엔 신청한 사람이 거의 없어도 만들어지는 경우가 꽤 많았다(...) 그러나 2009년을 전후한 시기부터는 별다른 노력없이도 갤러리를 잘 만들어준다. 만두까지 조공하면서 갤을 만들어달라는 사람들이 새삼 불쌍해보여서 그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으나.... 물론 그로 인해 사람들이 갤 만들어진 당시에만 활동하고 식어버려서 정전갤(속칭 잉여갤..)이 되버린 갤들도 상당히 많아졌다.
2.3 정치 성향 ¶
자신의 말로는 우익 뉴라이트 성향이라고 하는데, 사실 4년전만 해도 노빠였다. 노빠였다가 노무현에게 실망하고 우익으로 돌아섰다고. 주간경향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난 노빠가 아니고 극우에 가까워"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은 주식 갤러리에 쓴 덧글이나 5.18 관련 문제에 대한 덧글[2]이나 천안함 침몰사태 당시 보여준 행동, 그리고 연평도 해안 포격 사태가 일어나자 빠르게 연평도 북괴도발 갤러리를 신설하고 디시인사이드 페이지 위에 뜨는 글을 "미친 개는 몽둥이가 약이다!" 라고 적어놓는 등 확실한 보수성향을 보인다. 그 외에도 "언제까지 용서만 하나요? 원통합니다!" "강력히 대응하지 않으면 되풀이됩니다!"등 페이지 제목글이 상당히 자주 바뀌고 있는데 저열한 북한의 행위에 상당히 분노하고 있는 듯 하다.
정치적으로는 보수쪽이라고는 해도 과거 대공분실 끌려가서 코렁탕 잔뜩먹고 온 경험이 있기 때문에 PC통신이나 인터넷에서 개인이 쓴 글이나 언론보도에 관해서는 정부가 규제해선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대형 사이트에서 의무적으로 시행하게 된 인터넷 실명제에 반대하기도 했었다.[3] 그냥 북한을 혐오하는 쪽에 가까운 듯. 본인은 우익이라고 생각하는데 정치성향 테스트 해보니까 중립으로 나왔다고 한다.
연평도 해안 포격 사태 이후 디씨뉴스에 칼럼을 썼는데 논리가 상당히 저열하다는 평이 많다. 가카가 북한에 약하게 대응한 것이 종북주의자들 때문이라는 논조가 많은 사람을 자극한 것 같다.
조선일보와의 1월 12일자 인터뷰에서 자신을 반북보수 성향이라 밝혔다. 우리민족끼리 테러 사건으로 대변되는 디시인사이드 내 반북 운동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보다 공격적인 사이트 배너도 그러한 일환에서 나왔던 것이다.
인터뷰에 따르면 노무현 정권 시절 정부 관계자가 김유식을 자기 편으로 알고 도와달라고 했다고 하며 김유식은 "난 당신들 편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공개적으로 천명할 필요가 있었다고 한다.
사실 그의 평소 행보를 보면 변희재와 비슷하게 진보에서 점차 보수화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처음 노무현을 지지했다가 이후 손학규를 지지, 그리고 조갑제와 가깝다고 말하는 것들을 보면 그의 정치성향은 완전히 우파쪽으로 돌아섰다. 실제로 그 스스로가 했던 말처럼 이제 그를 보수로 여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잘 관찰하면 정권교체기를 기점으로 해가 지나면서 스탠스가 바뀌는게 보인다. 생계형 보수라고 봐도 무리없을듯. 회사 살려야지
말솜씨는 꽤 부족한편이라 100분토론에 나왔다가 상대패널과 시민논객에게 제대로 발리기도 했다. 능력 좋아도 말솜씨는 부족한 사람도 있을수 있으니 깔 건 없지만 너무 방송토론을 쉽게보고 섣불리 나섰다는 비난과 이것때문에 인터넷 실명제 가속화되겠네 하면서 김유식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차라리 실명제를 반대하는 관련 전문가가 나섰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2.4 주식 ¶
주식에 관심이 있어서 전부터 주식 갤러리를 드나들었고 08년 10월 17일 화학 업체인 메이드에 80억원을 투자하였으나 10월 24일 기준 단 일주일만에 36억을 날렸다. 지못미. 그날 주식갤이 순간 개명당한 이유가 그것이다.
김유식이 주식에 얽히면 영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
2.5 소덕 ¶
멀리서 소녀들에게 애정어린 눈빛을 보내고 계신 유식대장 그리고 제시카는 외면한다
이전부터 소녀시대, 그 중에서도 태연의 팬으로 알려져있다. 그래서 다른갤에 비해서 자주 태연 갤러리에 출몰하기도 한다.
2011년 7월에는 이런 글도 올렸다. #
2.6 그 외 ¶
무신론 갤러리에 관심을 보이고 정모때도 출몰한걸 보면 무신론자 인듯.
자신의 저서인 개드립 파라다이스 공지를 올리면서, 특히 KIA 타이거즈 갤러리에 자신이 어린이 타이거즈 회원이었음을 인증했다. 실제로 공지에 김유식 자신이 일부 기아 갤러들 리플에 답글을 단 것을 보면 사실인듯. 회원에 가입하면 라디오를 주었기 때문에 그랬다고 하였고 김성한 선수를 제일 좋아했다고 밝혔다.#
그 동안 보수성향을 보였던 김유식의 글을 보건데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칼럼이 올라올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모습이였고 네티즌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3.2 저서 ¶
일본인과 성문화 (1998, 학영사)
나는 일본 성문화가 두렵다 (1998, 하늘빛)
김유식의 원조횡수 (1999, 문화사랑)
인터넷 스타 개죽아, 대한민국을 지켜라! (2004, 랜덤하우스중앙)
개드립 파라다이스 (2011, 가쎄) - 디씨의 전 갤러리 공지로 홍보한다! 어디서 책을 팔어?
여담으로 인터넷 서점에서의 인기 순위를 참조하면, 그의 저서 중에서 가장 잘 팔린 것은 일본인과 성문화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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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당시의 이야기는 디씨인사이드 "김유식 대표 에세이 갤러리"( http://gall.dcinside.com/list.php?id=yusik&no=46&page=7&bbs= )에 실려있다.
[2] 정사갤에서 "김유식님 5.18 민주화운동이라고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에, "지금은 성역화 되어 있어서 못 건드리지만 언젠가 역사가 재평가 할 것입니다." 라고 답변을 달어, 정사갤러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사실 그가 5.18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그의 자유인데 문제는 5.18과 희생자들을 비하하는 글들을 알바가 지우는 것을 막은 것, 그의 멘탈을 짐작해볼수있다..
[3] 디씨도 대형 사이트로 취급되어 현실적인 규제인 실명제를 벗어날 수는 없지만, 변칙적인 형태로 이를 도입하여 자유도를 높였다. 주민등록번호를 입력은 하지만 가입하지 않아 신상 문제에서 약간은 자유롭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