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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 여섯단계 법칙

나/ㅓ 2003. 2. 4. 18:56 Posted by 로드365

몇 년 전 미국 네티즌 사이에 <케빈 베이컨>이란 게임이 한 동안 인기를 끈 적이 있다. 게임 방식은 이렇다. 할리우드에서 아무 배우나 한 명 골라 중견 배우인 케빈 베이컨과 여섯 다리만 건너면 연결이 되도록 배우들의 영화를 배열한다.

예를 들어 케빈 베이컨은 메릴 스트립과 같은 영화에 출연했고 다시 메릴 스트립은 로버트 레드포드, 로버트 레드포드는 폴 뉴먼…. 이런 식으로 해서 결국 전혀 일면식도 없었을 것 같은 다른 배우와 여섯 번만에 연결을 짓는 방식이다.

놀라운 것은 제 아무리 무명에 단역으로 출연한 배우라도 이런 식으로 여섯 번이면 반드시 케빈 베이컨과 연결이 된다는 사실이다. 세상만사는 서로 연결이 되어있다는 주장을 증명한 셈인데 언젠가 미국의 통계학자는 우연히 비행기 옆 좌석에 앉은 사람과 여섯 다리만 건너면 반드시 서로 연결이 된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의아스럽게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 한 사람이 평생 살면서 만나 안면을 튼 사람의 숫자가 적게 잡아 100명이라고 가정한다면 다시 그 100명이 또 다른 100명, 그러면 10,000명이 다시 100명해서 여섯 단계만 거슬러 가면 대한민국의 모든 인구를 거의 망라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미 삼아 생전 처음 만난 사람과 케빈 베이컨 게임을 한 번 해 보기를 바란다.

북경의 나비가 날개 짓을 하면 태평양 건너 미국에 태풍이 몰아친다는 복잡계 이론과도 일맥상통하는 현상인데 최근에는 네트워크 과학이란 분야가 관련 서적의 활발한 출간으로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는 중이다.

여섯 단계 법칙은 인터넷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구글의 기본 작동 원리이기도 하다. 웹 페이지 하나에는 보통 수 십여 개에 이르는 하이퍼링크가 있다. 구글은 한번 방문한 웹 페이지에서 발견한 하이퍼링크를 갈무리 한 뒤 다시 하이퍼링크로 연결된 수 십여 개에 이르는 각각의 웹 페이지에 있는 또 다른 하이퍼링크를 갈무리한다. 이런 식으로 몇 단계만 거슬러 가다 보면 이론적으로는 인터넷상에 존재하는 태반의 웹 페이지를 모두 갈무리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구글이 수십억 페이지에 이르는 웹사이트를 순식간에 검색해 갈무리 할 수 있었던 것은 구글 자체의 능력이라기보다는 수많은 네티즌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수십억 개의 상호 연결된 하이퍼링크가 이미 존재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구글은 단지 고도의 소프트웨어 기술로 이를 체계 있게 갈무리만 했을 따름이다.

여섯 단계만 거치면 세상만사가 하이퍼링크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사람장사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치인의 선거운동에도 적용될 수 있다. 별다른 노력 없이도 인터넷과 인맥을 활용해 태반의 지지자와 연결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컴퓨터 네트워크처럼 변함없이 튼튼한 하이퍼링크로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옆 사람에게 전달한 메시지는 어느 지점에서인가 점점 신호가 약해지면서 끊어지거나 이런 저런 잡음이 섞이면서 애초의 메시지와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전달 될 수 있다.

체인의 경우를 상상하면 간단하게 이해가 된다. 100개의 고리로 연결된 체인이 있다고 가정하자. 99개의 고리가 아무리 튼튼하다 해도 나머지 하나만 부실하다면 그 체인은 곧 끊어져 아무런 쓸모가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다.

따라서 튼튼한 유권자 조직은 분별없는 마구잡이 네트워킹으로만 되지는 않고 각각의 네트워크에 존재하는 허브와 노드에 해당하는 사이트나 네티즌을 찾아내야 만들어 질 수 있다. 그 네티즌이나 친구의 말이라면 모두가 군소리 없이 따르는 준거집단이나 준거인을 되도록 많이 찾아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말처럼 쉽지는 않다. 기성세대의 경우 이런 준거집단이나 준거인이 사회적 권위를 가진 명망가나 직장의 상사 같은 연장자일 것으로 판단하기 쉽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다. 인생상담을 위해서는 직장상사를 찾아가는 30대 직장인이 정치적 견해만큼은 새파랗게 젊은 20대 대학생의 의견을 따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의 관심사에 따라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휴먼 네트워크, 특히 한국처럼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연결된 사회에서는 적절한 카페나 게시판 혹은 같은 관심사를 공유한 사람들이 주로 찾는 웹진 등이 그런 허브와 노드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낼 수 있다.

사실 어느 순간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네트워크 과학을 운위하고 있지만, 네트워크 다시 말해 인맥이란 것이 전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다만 컴퓨터가 없던 예전에는 불가능했던 수학적 분석과 체계화가 자연계와 사회현상을 거의 완벽하게 리얼타임으로 재현해 낼 수 있는 테크놀러지를 인류가 손에 쥐게 되면서 새삼스럽게 조명을 받고 있을 따름이다.

<오마이뉴스>는 이곳을 즐겨 찾는 네티즌에게 인터넷상의 허브와 노드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 내고 있는가? 독자 여러분 각자가 평가해 보기를 바란다.  


민경진 기자    

2002/11/06 오후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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