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rss 아이콘 이미지




이를테면 그는 이런 작가다. 소설은 10년 만에 한 권씩 쓴다. ‘베스트셀러의 보증수표’라는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이 기다렸다는 듯이 선정한다. 그런데도 “오프라의 독자는 내 독자와는 다르다”며 선정을 사양한다(이번에 9년 만에 화해했고, 다시 선정됐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정식 출간 전, 가제본(假製本)을 싸들고 휴가를 떠난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달 이 작가를 페이스북 창립자 주커버그, 위키리크스 설립자 어산지 등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했다. 

스티븐 킹 이후 소설가로는 10년 만에 처음으로 ‘타임’ 표지 모델이 된 것도 그였다. 

이 작가의 이름은 조너선 프랜즌(Franzen·52). 조선일보가 그를 한국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이메일 인터뷰했다. 

―좋은 문학은 독자의 영혼에 지울 수 없는 화인(火印)을 찍는다. 당신의 ‘자유’를 읽으며 내게 찍힌 화인을 확인했다. 당신이 ‘자유’를 소설로 쓰고 싶었던 첫 번째 이유는.

“나는 소설가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것 같고, 따라서 내가 할 일은 소설을 쓰는 일이다. 예전에 하나의 장편소설을 완성한 1년의 기간을 세 번 경험했는데, 그때마다 나 자신에 대해, 세상 속에서의 나의 위치에 대해 참 편안하게 느꼈다. 소설을 쓰는 게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그런 경험을 하고 싶었다. 또한 예술은 예술가가 청중에게 전하는 일종의 선물과 같다는 말에 동의한다. 난 ‘자유’라는 작품 속에서 세상에 대한 나의 경험을 깊숙이 파고들어, 세상에 대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독자들을 위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당신의 열 가지 창작 원칙 중 “작업실에 인터넷을 연결해두고 있는 사람이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는 여덟 번째 원칙이 인상적이었다. 인터넷은 왜 좋은 소설을 막는가. 반대로, 좋은 소설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믿는가.

“훌륭한 소설을 쓰려면 좋은 본보기가 되는 훌륭한 작품을 많이 읽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소설은 우리를 우리 자신 밖으로 끌어내고,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인식되면서도 우리와 똑같지는 않은 인물들을 만나게 한다. 

소설은 우리로 하여금 자아를 내려놓고 다른 사람들에게 동정심이나 공감을 느끼게 만든다. 반면, 인터넷은 모두 자아에 관한, 자아가 원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은 그런 소음으로 가득 찬, 자기 중심적 세상에서 피난처가 될 수 있다.”

―인터넷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은 아마도 미국보다 더욱 그 현상이 심할 것이다. 심지어는 전화기로도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세상이다. 당신의 그 원칙은 앞으로도 유지될 것인가.

“가끔 나는 작업실에 블랙베리 스마트폰을 가지고 간다. 그러면 그날은 아마도 좋은 글을 쓸 수 없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그러니 나도 작업실에 인터넷 연결을 차단하는 데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원칙은 여전히 진실이라고 믿는다. 그런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으면 나는 글을 잘 쓰지 못한다. 

다행히 내 작업용 컴퓨터에는 인터넷 접속을 차단시켰고, 작업실엔 전화기가 없다. 우리에게 쏟아지는 모든 뉴스와 정보, 나쁜 오락물로부터 피난처가 될 책들을 써내려면, 내겐 그런 종류의 고립이 필요하다.”

― 전작 ‘인생수정(The Corrections)’과 관련,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 선정 도서가 된 것이 300만 부 판매에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언론에 본인의 우려를 드러낸 이후로 ‘잘난 체하는 속물’로 오인 받는 등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오프라는 이번 책 ‘자유’도 자신의 북클럽 선정 도서에 포함시켰다. 오프라 북클럽 독자들과 비교할 때 당신 책의 독자층은 어느 정도 다르다는 의견은 여전히 유효한가? 지금까지 미국에서 판매된 100만 부 중에 당신이 겨냥한 독자층은 몇 부 정도 포함됐다고 보는가?

“얼마 동안은 힘들었다. 언론으로부터 욕을 먹고 싶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 사건 덕분에 내 얼굴이 좀 더 두꺼워졌고 따라서 상처를 덜 입게 된 것 같다. 성공한 책을 쓴 사람은, 오프라를 불쾌하게 만들지 않았다고 해도, 대중에게 어떤 반감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어떤 타깃 독자층을 두고 작품을 쓰지는 않는다. 나는 늘 아주 다양한 독자들이 재미있게 볼 소설을 쓰기 위해 노력해왔다. 

오프라와 문제가 있었던 것은, 내 책이 오프라 북클럽 선정 도서가 되면 특정 독자들-특히 남성들-이 책을 사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표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독자가 남성 독자라는 뜻은 아니었다. 나는 책을 통해 모험을 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쓴다. 그리고 오프라의 팬들을 포함해, 최근에 나온 내 두 소설을 좋아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것을 보고 기쁘면서도 무척 놀랐다.”

―본격문학 작가로서, 당신은 10년 만에 처음으로 ‘타임’지의 표지 인물이 되었다. 그 이후 당신에게 생긴 변화는?

“변한 것은 별로 없다. 내가 ‘타임’ 표지에 실리자 나에 대한 어떤 반발이 일었던 건 사실이다. 발표 직후 잠시 동안은 길거리에서 나를 붙잡고 말을 거는 사람들이 늘어났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일들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타임으로부터 ‘미국의 위대한 소설가’라고 불렸다. 그렇다면 본인이 생각하는 ‘위대한 소설가’들은 누구인가? 다시 말해서, 당신이 매우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이 있다면? 

“내가 매우 좋아한다고 꼽아온 작품은 너무나도 많다. 북미의 생존 작가 중에서는, 나는 항상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캐나다의 단편소설가 앨리스 먼로(Munro·70), 그리고 오랫동안 나의 개인적 영웅이었던 미국 소설가 돈 드릴로(DeLillo·65)를 꼽곤 한다. 

하지만 나는 늘 존경할 만한 새로운 작품을 발견한다. 가장 최근에 읽은 위대한 작품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감는 새’와 18세기 새뮤얼 리처드슨의 소설 ‘파멜라’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소설을 다 읽고 극찬했다고 하는데, 기분이 어떤가. 한 나라 지도자의 시간을 이렇게 많이 빼앗아도 되는가? 

“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 그는 장편소설을 읽을 게 아니라, 나라를 통치해야 한다! 하지만 물론 그가 ‘자유’를 읽었다는 얘기를 듣고 무척 자랑스러웠다. 왜냐하면 그는 특히 내가 생전 처음으로 전적으로 존경한 미국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새 소설은 9년 만에 썼지만 종종 ‘뉴욕타임스’ ‘뉴요커’ 등에 에세이는 발표해왔는데, 소설과 에세이를 쓸 때에 당신의 태도는 어떻게 다른가.

“어떤 글이든지 글 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지만 소설보다는 비소설이 쉬운 편이다. 그 이유는 해결해야 할 기술적 문제들이 훨씬 적기 때문이다. 에세이를 쓸 때는 이미 내가 낼 ‘목소리’와 관점이 존재하므로, 흥미로운 주제와 에세이를 구성하는 재미있는 방법만 찾아내면 된다. 반면에, 소설을 쓸 때는 내 삶 전체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소설을 하나 쓸 때마다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한국에서는 당신 책의 첫 번째 번역본이 나왔다. 한국과의 인연이 있는가? 한국 문학이나 한국 영화에 대한 경험이 있는지 궁금하다.

“유감스럽게도 한국 문화에 대한 경험이 별로 없다. 하지만 한국이 역동적인 나라가 된 것에 감탄하고 있고, 역사적 비극인 북한이 안타깝다. 당신이 좋은 한국문학이나 영화를 소개해줬으면 감사하겠다.”

― 본격문학을 잘 읽지 않는 세상이다. 한국 역시 그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문학의 미래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그리고 문학의 존재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소설은-그 어느 때보다도-소음과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현대 문화로부터 피난처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을 그런 문화에서 끌어내 올 수 있도록 흡인력 있는 ‘문학’ 소설을 쓰는 데 매진하고 있다. 본격문학 작가들 스스로가 자신의 책은 많은 독자들이 읽지 않을 거라고 단념하고, 점점 더 자기 자신만을 위해 쓰는 것이 정말 더 위험하다. 본격문학의 위기는, 우리 작가들이 위기상황을 잘 파악하고 지혜롭게 행동한다면 큰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 선정 도서가 되지 않았다고 해도 당신의 소설을 좋아할 한국의 독자들을 위해 한마디 부탁한다.

“이름도 들어본 적 없을 한 미국 작가의 책을 읽어준 한국의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 
어수웅 기자 jan10@chosun.com



 조너선 프랜즌의 ‘창작원칙 10가지’

1. 독자는 친구이지, 적이나 구경꾼이 아니다. 

2. 소설은 놀랍거나 미지(未知)의 것에 관한 작가의 모험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 쓴 소설들이다. 

3. 절대 then(그리고 나서)을 접속사로 쓰지 말고 and(그리고)를 써라. 한 페이지에 and가 너무 많이 나올 때 미봉책으로 then을 쓰는 것은 성의 없고 어조를 살릴 줄 모르는 작가나 하는 짓이다. 

4. 아주 두드러지고 독특한 1인칭 화자의 목소리가 저절로·필연적으로 나오는 경우가 아니라면, 3인칭 시점으로 써라. 

5. 무료이고 누구나 얻을 수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한 소설은, 그 소설의 바탕이 된 자료와 더불어 평가절하된다. 

6. 철저히 자전적인 소설일수록 순도 높은 창작을 요한다. 카프카의 ‘변신’보다 더 자전적인 소설을 쓴 사람은 없다. 

7. 작가는 무언가를 집요하게 뒤쫓을 때보다 차분하고 정적일 때 더 많은 것을 보게 된다. 

8.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작업실에서는 좋은 소설을 쓰기 어렵다. 

9. 흥미로운 동사들을 쓴다고 해도 글까지 흥미로워지지는 않는다. 

10. 작가는 등장인물들에 애착을 느껴야 한다. 설사 나중에 작품 속에서 그 인물들에게 무자비하게 대하더라도 말이다.
 




★ <타임>지 표지에 실린 단 두명의 소설가는?
 소설《자유》는 미국에서 출간 직후 뉴욕타임스와 아마존닷컴 베스트 1위에 올랐고, 시사주간지 <타임>은 표지에 ‘미국의 위대한 소설가’라고 작가를 소개했다.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 선정도서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읽고 극찬한 《자유》는, 영미 주요 언론의 2010년 ‘올해의 소설’ 로 선정되었다. <타임>지 표지에 소설가가 실린 것은 2,000년 스티븐 킹 이래 조너선 프랜즌이 처음이다. 작가 조너선 프랜즌은 올해 또 다시<타임>(5월 2일자)에서 발표한 ‘2011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되었다. 

《자유》는 미국에서 2010년 8월 말 출간 후 4개월 만에 하드커버(신간 종이책)는 76만 부, 전자책은 23만 부가 판매되어, 순수문학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미국 연간 종합 베스트셀러 ‘하드커버 + 전자책’ 판매 합계 순위 7위에 올랐다. 현재는 종이책 판매만 미국 내에서 100만 부를 돌파했다. 조너선 프랜즌을 국내에 소개한 출판사 (도서출판 은행나무) 역시 조너선 프랜즌의 전자책 출간을 서두르고 있다. 

소설 《자유》는 미 중서부에 거주하는 겉보기에 모범적인 중산층 가정 월터와 패티 부부를 중심으로 3대에 걸친 가족사를 통해, 중년 부부의 위기, 성적 욕망과 스릴, 세대 간의 갈등 등 사랑과 결혼의 본질을 고찰한다. 다국적 기업의 변호사로 일했던 남편 월터와 졸업 후 바로 결혼한 패티 버글런드 부부와 그들의 자녀 제시카와 조이로 구성된 안정적인 가정은 2000년대의 시작과 함께 미스터리한 존재로 전락한다. 

자유의 여신상에서부터 자유 민주주의, 자유 시장 경제, 언론의 자유에 이르기까지, ‘자유’는 미국을 대표하는 상징적 이념이 되었다. 작가는 더없이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는 인물들의 개인사를 다룬 가족 드라마 속에, 저널리스트와 같은 시각으로 바라본 오늘날 사회의 면면을 자연스럽게 녹여내며, 자유의 의미를 여러 각도로 조명한다. 지금 조너선 프랜즌의 《자유》 가 주목받는 이유이다. < 홍지수 옮김. 734쪽. 1만7900원>  -
황보연 기자  mixa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