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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 Strawberry Fields Forever !

자/ㅗ 2012. 8. 24. 17:22 Posted by 로드365



이름 존 윈스턴 오노 레논(John Winston Ono Lennon)[1]

생년월일 1940년 10월 9일

혈액형 O형

사망 1980년 12월 8일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비틀즈의 멤버중 한 명이었다.


국내에서는 비틀즈 시절 곡들 보다 Imagine과 같은 솔로 곡들이 더 알려진 편이다.


물론 "All You Need Is Love"가 국내에서 유명하지만 대부분 러브 액츄얼리 OST로 알고 있다(...)


목차  

1 경력

1.1 I was the Warlus : 유년부터 비틀즈 전성기까지

1.2 But Now, I'm John : 비틀즈 붕괴와 솔로 활동

1.2.1 비틀즈의 붕괴

1.2.2 솔로 활동

1.3 The Dream is Over : 세상을 떠나다

1.4 Strawberry Fields Forever : 죽음 이후의 존 레논

2 기타

2.1 솔로 디스코그래피


1 경력 




1.1 I was the Warlus : 유년부터 비틀즈 전성기까지 



비틀즈 시절의 존 레논. 국내에서는 안경 쓴 이미지가 많이 굳어졌지만, 이 시기의 존 레논은 상당히 미남이다. 


어릴 때의 가정환경은 그다지 좋지 못했는데, 아버지는 존 레논이 어릴 때 가출해 실종되었고, 어머니인 줄리아 레논도 다른 남자와 동거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의 언니인 메어리 부부(통칭 미미 이모)에게서 자랐다. 6살 때 아버지가 돌아와 몇주간 같이 생활했었고, 후에 어머니가 데리고 가지만 같이 살지는 못하고 다시 미미 이모 곁에서 살게되었고, 아버지는 다시 실종됐다. 존 레논은 근처 고아원이었던 스트로베리 필즈(Strawberry Fields)에서 자주 놀았으며, 이 때 Walrus(바다코끼리)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15살 때 엘비스 프레슬리의 "Heartbreak Hotel"을 듣고 락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학교 근처에 살던 어머니의 집을 오가며 밴조를 배워 음악에 관한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16살 때 보호자인 미미 이모를 졸라 17파운드짜리 기타를 구입하고, 비틀즈의 전신이 되는 밴드 "쿼리멘(The Querrymen)"을 결성하여 활동한다.[2] 친구의 소개로 폴 매카트니와 만나게 되고 폴이 밴드에 합류한다.[3] 얼마 후, 밴드에 공석이 생기자. 폴의 소개로 조지 해리슨을 만났고, 밴드에 합류한다.


그러다 존 레논이 17살 때, 어머니 줄리아 레논이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어머니의 죽음은 존 레논의 삶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똑같이 유방암으로 어머니를 잃었던 폴과의 우정이 깊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폴에게서 기타를 배우기도 했다고(존은 코드 잡는 게 서툴렀다.). 이 때문에 존 레논은 특히 어머니와 관련된 곡을 자주 썼으며, 첫째 아들 이름도 줄리안 레논으로 지었다. 1960년 스튜어트 서트클리프가 합류하고 밴드 명을 "실버 비틀즈"로 변경하고 활동하다가 후에 피트 베스트가 들어오자 밴드명을 "비틀즈"로 결정한다. 이후 스튜어트 서트클리프는 밴드에서 개인적인 사정[4]으로 탈퇴하게 되고, 피트 베스트는 나머지 멤버의 불만 때문에 '로리 스톰 앤 허리케인즈(Rory Storm and Hurricanes)'의 드러머 링고 스타로 교체되게 된다. Please Please Me 녹음 때까지만 해도 링고 스타의 자리는 불안 불안했으나, 결국 링고 스타로 확정된 채 본격적으로 비틀즈가 출범한다.



아내 오노 요코와 함께.



비틀즈 활동 초기 존 레논은 폴 매카트니와 함께 거의 대부분의 곡을 썼으며, 이 둘의 협력은 레논-매카트니라고 칭해진다. 그러나 'Rubber Soul'에서부터 존 레논의 자의식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In My Life', 'Nowhere Man' 등이 바로 그런 곡.


사실 'Rubber Soul' 녹음 전부터 존 레논은 비틀즈의 역사에 큰 영향을 주고 말았다. 존 레논은 "비틀즈는 예수보다 유명하다(popular)"라고 발언했는데, 이 때문에 기독주의 국가인 미국에서는 비틀즈 상품을 모아놓고 불태우는 등 큰 반감을 사게 되며. 비틀즈는 기자회견을 하게 되었고 존 레논은 "한 인간으로서 신이나 예수보다 위대하다는 의미는 아니고 그냥 친한 기자와 한 얘기일 뿐 오해다."라고 꼬리를 내렸다.[5][6] 이 뒤로 기존 음악성과 아이돌을 탈피한다. 결과적으론 아이돌 그룹에서 역사상 실험적인 밴드로 남는 터닝 포인트가 된다. 게다가 이 뒤로 라스트 옥상 라이브를 제외하곤 라이브가 없긴 하다.

존 레논의 실험적인 작곡의 예론 싱글 음반 'Paperback Writter/Rain'에서 처음 등장한 백마스킹을 생각해낸 것이었고, Revolver에서 사이키델릭 곡을 대부분 작곡한 것 등이 있다.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에서부터는 폴 매카트니가 밴드의 주도권을 잡게 되는데, 이때부터 레논-매카트니 체제는 흔들리기 시작하지만 그렇다고 둘이 큰 대립 구도를 갖춘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이 당시 폴 매카트니와 존 레논의 곡을 합쳐 만든 'A Day in the Life'는 비틀즈 역사상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곡 중 하나이며, 폴 매카트니는 존 레논의 아들인 줄리안 레논에게 'Hey Jude'라는 곡을 써주기도 했다. 'Yellow Submarine'에서는 녹음 중간 존 레논이 장난으로 개 짖는 소리를 냈다가 폴 매카트니와 함께 그것을 바탕으로 곡을 작곡한 'Hey Bulldog'이 수록되어 있다.


'Magical Mystery Tour'에서 존 레논은 'Strawberry Fields Forever'[7], 'I am the Walrus'[8]라는 곡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더욱 확고히 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