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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연애담 읽는 블로그 있다는데…

[World View] '정보·논쟁'서 '스토리'로… 인터넷 커뮤니티의 진화

실연담 공유 사이트 감·친·연 알면 신세대


요즘 젊은이들의 유행과 관심사는 빠르게 변한다. 요즘 젊은이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가장 '핫'(hot)한 곳 중 하나인 '감자의 친구들은 연애를 하지(감친연)'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아시는지. 알고 있다면 나이에 상관없이 청춘이다.


이 사이트는'홀리겠슈'(필명)가 운영하는 블로그로 연애 실패담을 공유하는 공간이다. 다른 말로 이 곳은 '노령과년 싱글인을 위한 자기주도 연애학습의 전당'으로 통한다.


홀리겠슈는 폭주하는 제보 가운데 매일 한 편씩 골라 사연을 재구성에 사이트에 올린다. 방문자들은 수백 개의 댓글을 달아 분노와 위로, 충고를 공유한다. 개설한 지 1년 만에 방문자가 500만 명을 넘어섰다. 블로그가 인기를 끌면서 지난 2월 같은 제목의 책도 나왔다.


이 사이트가 주목 받는 또 다른 이유는 새로운 인터넷 커뮤니티 문화의 탄생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키워드는 바로 '스토리'다.


국내 인터넷 커뮤니티의 역사는 올해로 13년째. 카메라 마니아들의 정보공유사이트로 출발한 '디시인사이드'와 'SLR클럽'은 커뮤니티의 효시이자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야구 애호가들의 집결지 'MLB클럽' 게임전문 사이트 '루리웹' 요리사이트 '82쿡'등도 하루 방문자와 게시물이 수십 만에 이르고 일 평균 조회수가 수 백만에 달하는 대표적인 사이트들이다. 이들은 9~13년의 시간을 거치며 단순히 취미를 공유하는 것을 넘어 활발한 '자게'(자유게시판) 문화를 통해 인터넷 여론을 주도해왔다. 포털 사이트의 독주가 심화되는 추세에 맞서 인터넷 생태계의 다양성을 지키는 '재야의 독립군'역할을 하기도 했다.


감친연 역시 이와 유사한 경로를 걷고 있다. 한 사람의 개인 사이트로 출발해 특정한 관심을 가진 이들의 집결지가 됐으며 현재는 연령대별 채팅방을 운영하고, 광고를 유치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진화의 가능성도 보여주고 있다.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게시물과 이를 통한 정보의 공유와 논쟁이 기존 커뮤니티의 특징이라면 감친연은 공감과 위로, 적극적인 개입을 통한 스토리의 완성이 방문자들을 열광하게 한다.


이를 두고 새로운 세대의 등장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성호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PC와 게임기가 대중화된 1980년대 이후 출생한 이들은 스토리와 미적 요소를 통해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게임의 작동원리에 익숙한 이른바 '디지털 네이티브'세대"라고 말했다. 이 세대의 경제참여가 활발해지면서 새로운 커뮤니티 문화가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큰 화제를 모았던 SLR 클럽의 24인용 군용텐트 사건도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지난달 30일 SLR클럽 자유게시판에 "24인용 군용텐트 혼자 치기 가능할까?"란 글이 올라오자 어떤 이가 "저 칠 수 있습니다"라고 답했고, 수천 개 댓글이 달리며 공방이 벌어졌다.


국방부 트위터 대변인이 이에 대해 "어려울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내놓자 "그래? 그럼 한번 해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 결과 지난 8일 서울 신월동 신원초등학교 운동장에서 'T24(24인용 텐트를 뜻함) 페스티벌'이 열렸다. 이 행사에 2,000명의 인파가 몰렸고 지상파 TV 9시 뉴스에도 보도됐다. 이른바 본격적인'소셜 축제'로 진화한 셈이다. 이성호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재미와 의미를 추구하면서 흥미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내려는 욕구가 맞물리며 예기치 않은 폭발력이 나타난 것"이라며 "인터넷 커뮤니티 문화의 진화 방향을 엿볼 수 있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2012.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