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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약속을 깜박 잊게 하는 것, 불 위에 올려놓은 저녁밥을 홀랑 태우게 하는 것, 런던발 뉴욕행 비행기 안에서 뉴욕이 가까워질수록 아쉬워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제 직업입니다. (하략)

스티븐 킹은 1947년 미국 메인 주에서 태어났다. 그가 두 살 무렵에 아버지는 가정을 버리고 떠났고, 홀로 남겨진 킹의 어머니는 아들을 키우기 위해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자리는 늘 일정치 않았고,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어 어린 시절의 킹은 이곳저곳을 수없이 이사다녀야 했다. 때문에 다른 가정의 아이들과 달리 따뜻한 부모의 보살핌을 받고 자랄 수 없었다. 그런 킹에게 삶의 변화를 준 것은 다름 아닌 양자로 입양된 형 데이비드 킹이었다. 데이비드는 당시에 '데이브의 잡동사니(Dave's Rag)'라는 이름의 동네 신문을 소량 발행하였는데, 스티븐 킹은 여기에 자기의 창작 작품을 실었다. 제법 반응이 좋아 판매가 오르자, 자신감을 얻고 아예 소설 단행본을 만들어 팔기도 했는데 이 또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는 학교 선생님에게 들통나면서 중지되었고 받았던 돈도 모두 돌려주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형인 데이비드와 친구 크리스 체슬리와 함께 많은 단편들을 쓰며 활발한 작품활동을 했는데, 이 시절의 습작과 도전이 이후 그의 작품 활동에 큰 밑거름이 된다.
 

 젊은 시절의 스티븐 킹.
 

 스티븐 킹이 12세 무렵에 그의 삶에 영향을 끼친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이모집에서 우연히 발견한 잡지 박스였다. 여기에는, <납골당의 미스터리>를 포함한 다양한 SF, 호러, 판타지 잡지가 담겨 있었는데, 이 잡지들을 탐독하며 공포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이당시 그에게 영향을 준 작가로는 공포의 거장 러브크래프트는 물론이고, [나는 전설이다]의 작가 리처드 매드슨, [사이코]의 작가 로버트 블록(Robert Bloch), [바디 스내처]의 작가 잭 피니 등이다. 그리고 1965년, ‘나는 소년 도굴꾼이었다(I Was a Teenage Grave Robber)’가 만화잡지에서 소개되며 처음 세상에 이름을 알렸는데, 이후 꾸준히 소설을 발표하며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이 당시 집필한 소설들은 훗날 [스티븐 킹 단편집(Night shift)]에 수록되었다. 

그러나 젊은 스티븐 킹에게 글을 써서 얻는 수익은 극히 적었다. 그래서 생계를 위해 세탁 공장 인부와 건물 경비원 등을 전전해야만 했는데, 1971년에야 간신히 작은 공립학교의 영어 교사 자리를 얻었지만 수입은 여전히 날아드는 청구서를 처리하느라 바쁠 정도로 적었다. 때문에 그는 각종 성인잡지에 단편 소설을 싣고 그 돈으로 밀려드는 청구서들을 해결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꾸준히 첫 장편소설 [캐리(Carrie)]를 집필했는데, 안타깝게도 스티븐 킹은 완성되기 전에 작품을 쓰레기통에 처박은 채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나 우연히 아내인 테비사가 쓰레기통에서 이 작품을 발견해서 읽어보곤 조언과 함께 독려를 아끼지 않아 완성에 이르게 하였고, 이 작품은 2,500불의 계약금을 받고 출판 계약을 하였다.

[캐리]로 일약 스타 작가로 등극한 스티븐 킹은 두 번째 작품으로 [살렘스 롯]을 출간하며 다시 큰 인기를 끌었으나, 홀어머니가 [캐리]의 출판 직후 자궁암으로 죽음에 이르자 알코올 중독증에 빠져 이후 약 10여 년 동안 심각한 약물중독 증세를 보인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에도 [샤이닝], [스탠드], [다크타워], [애완동물 공동묘지], [사계(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스탠 바이 미 등 수록)], [부적], [그것]을 비롯하여 20여 편을 출간하며 최고의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