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승승장구
그 후 카메론은 터미네이터시나리오를 들고 제작자 게일 앤 허드를 찾아가 터미네이터 속편을 비롯한 모든 권리를 1달러에 넘길 테니 자신을 감독으로 기용하라고 제안한다[3].
640만달러라는 비교적 저예산으로 만든, 미래사회의 암울한 묵시록이 담긴 SF액션 터미네이터(1984)는 '테크 느와르'란 평과 함께 대성공을 거뒀고 이때부터 그의 형편이 피기 시작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카메론은 <에이리언2 Aliens>(1988)의 감독으로 발탁된다. 카메론은 <터미네이터>와 <에이리언2>의 성공으로 영화사의 돈을 맘대로 쓸 수 있게 되자 새로운 특수효과를 개발해가면서 시각세계의 표현영역을 넓히는 데 주력했다. <어비스 The Abyss>(1989)에서도 그랬고 타이타닉 <Titanic>에서도 제작비가 예산을 초과하자 감독료를 포기하면서 매달렸다.[4] 바다를 배경으로 테크놀러지의 오용이 가져올 위험성을 경고하는 <어비스>는 전작과 달리 역동적인 액션보다 중년부부의 헌신적인 사랑과 미지와의 조우를 해저 심연에 펼쳐낸 카메론의 SF 동화였다. 7천만 달러를 들인 <어비스>는 평은 좋았으나, 대중들이 즐기기엔 다소 심심한 내용이 되었기에 카메론의 메이저 영화로써는 처음으로 상업적으로 실패하게 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개발된 신기술은 이후 터미네이터2에서도 유용하게 활용되었으며, 내용적으로도 <타이타닉>을 비롯한 훗날 카메론 영화의 원형을 담고 있다. 테크놀러지와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적 지지, 희생적인 사랑에 의한 구원의 모티브는 카메론의 승부수다.
<어비스>에 이어 1억 2백만 달러가 투입된 터미네이터2 <Terminator 2: Judgement Day>(1991), 1억 2천만 달러의 <트루 라이즈 True Lies>(1994), 급기야 2억 달러 이상의 제작비를 퍼부은 <타이타닉>까지 카메론은 할리우드 영화의 제작비 상승을 주도해왔다. 하지만 97년 <타이타닉>까지를 놓고 볼 때 정교한 세공품인 그의 영화는 <어비스>를 빼놓고 모두 성공을 거뒀다. <어비스>의 디지털 특수효과로 만들어낸 의인화된 물 캐릭터[5], 몰핑기법으로 창조한 터미네이터 2의 T-1000의 변신장면, <트루 라이즈>의 1/4을 차지한 실사와 컴퓨터그래픽의 구분이 모호한 합성 등 불가능해 보이는 표현의 한계에 도전했고 매번 기록을 경신했다. 그 자신이 특수효과 제작자로써 영화계에 뛰어들기도 했던만큼, 모형 제작의 달인이자 특수효과 제작자인 스탠 윈스턴과 특수효과 전문업체인 디지털 도메인[6]을 설립하기도 했다.
3.3 흥행 신화 1 : 타이타닉
스필버그와 루카스가 베이비붐 세대의 이상과 현실을 영상으로 옮긴 대표주자라면 카메론은 그저 SF 액션영화를 뛰어나게 잘 만드는 감독이라는 부당한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특수효과의 향연과 스펙터클, 멜로드라마의 문법을 결합한 <타이타닉>은 최고의 테크놀러지를 동원해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낸 장인의 경지를 보여줬고, 1998년 아카데미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한 11개 부문을 수상하며 그런 평가를 일축하였다.[7] 미국 내 수익과 해외 수익을 합쳐 1년 동안 무려 18억 4천만 달러를 벌어들인 <타이타닉>은 총수익 9억 2천만 달러를 벌어들인 <쥐라기 공원>의 역대 최고 흥행기록을 깨고 영화 사상 최고의 제작비를 들여 최고의 수익을 올린 전대미문의 블록버스터가 됐다.
3.4 흥행 신화 2 : 아바타
이후 다큐멘터리 영화들[8], 혹은 TV 시리즈에 가끔씩 참여하였던 카메론은 2009년, 감독으로선 12년만의 신작 아바타를 내놓고서 영화사에 남을 영상혁명을 보여주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아바타는 2009년 12월 개봉하였으며 초반 로튼토마토 100%를 받고 전야제부터 매우 커다란 열기를 모았다. 그리고 극장 개봉 2개월 만에 결국 타이타닉의 기록을 뛰어넘었다.
아바타 이후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 아바타가 성공하면 후속작을 내겠다라고 언급한 바 있으며, 실제로 아바타의 속편이 2012년이나 2014년 중에 개봉될 것으로 보인다. 그외의 차기작으로써는 두 편이 거론되고 있는데 세계 기록 갱신 도전 중에 사망한 잠수부 이야기를 다룬 실화 기반의 영화, "다이브"와 총몽의 실사화판인 "배틀 엔젤"이 그것이다. 그러나 카메론은 "배틀 엔젤"은 아직 영화화하기에 기술력이 부족하다고 했기 때문에 "다이브"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커보인다.#
...하지만 벌써 신작이 나왔다! 이름은 Laser Cat 5
[9]
4 취향과 성격
개인적으로 카메론은 젊은 시절에 부인이었던 한 웨이트리스[10] 이외에도 제작자 게일 앤 허드, 여성감독 캐서린 비글로우[11], 배우 린다 해밀턴과 결혼과 이혼을 거듭했다. 현재 부인은 타이타닉에 조연으로 얼굴을 비친 배우 수지 에이미스.("로즈"의 손녀딸로 잠깐 등장.)
재미있는 것은 (첫 부인을 제외하면) 결혼한 상대 모두가 할리우드에서는 유명한 억척 여성들 뿐이라[12] 이 아저씨의 특이한 여성 취향이 잘 드러난다. 실제로 카메론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여주인공들은 대게 페미니즘 성격이 강한 용감한 여성이거나, 아예 여전사나 투희다.
여담이지만 그가 제작한 작품들을 보면 로맨스물에는 십중팔구 NTR 요소가 들어 있다(…).
그리고 이 인간의 작품을 보면 알겠지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현대화된 기계문명을 신랄하게 까댄다. 어떻게 보면, 테크놀러지를 비판하기 위해 정작 최신의 테크놀러지를 아낌없이 퍼부어가며 만든다는게 참 아이러니. 영화평론가 듀나는 이에 대해 '테크놀러지를 제대로 비판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그 테크놀러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 뿐'이라는 간지폭풍의 평론을 남기기도 했다.
왕의 귀환. 2009.12.14
Grand Space Opera
'타이타닉'의 감독이 12월 17일 <아바타>를 들고 다시 우리 곁을 찾는다. SF 대서사물 '아바타'는 내일의 영화를 창조한다는 당돌한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영화 혁명은 이제 시작이다.
“14년 동안 꿈꾸고, 4년 동안 그 꿈을 실현했다.” 폭스 사의 톰 로트만 부회장은 영화계의 제왕 제임스 카메론의 신작 <아바타>를 이와 같이 소개했다. 전 세계 영화사상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영화(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바다를 무대로 한 멜로물 <타이타닉>은 12년 전 극장 관객 수입 18억 달러라는 대기록을 남겼다)의 감독은 깊은 바다 속을 촬영하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내팽개쳤다. 하지만 이 기간은 카메론이 혁명을 준비하는 기간이기도 했다. 이제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사진사실주의적인 3차원 특수효과로 무장된 엄청난 우주모험이 눈앞에 펼쳐진다.
Q: <아바타> 촬영 계획은 어째서 그토록 오랜 기간 당신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겁니까?
처음으로 이 이야기를 상상했을 때부터, 내 머릿속엔 이미 굉장히 구체적인 구상이 서있었습니다. 나는 내가 운영하는 특수효과 회사인 디지털 도메인이 디지털 효과 분야에서 세계적인 리더가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그러자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내 이름 덕분에 투자금을 끌어 모을 수 있으며, 그 돈이면 내가 포토리얼리스틱한 등장인물들이 엮어가는 공상과학 대서사시를 만들면서 부딪치게 되는 “문제들”을 우리 회사가 해결할 수 있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디지털 도메인의 기술자들이 나한테 그 문제들은 돈을 아무리 많이 쏟아 부어도 해결되지 않을 거라고 말해죠. 그들 말이 옳았습니다. 당시 기술은 아직 앞으로 갈 길이 멀었죠. 할리우드가 여러 편의 영화를 만들어가면서 한 조각 한 조각 퍼즐을 맞추듯이 기술을 습득해나가야 했습니다. 그러니 그 동안 나는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그렇게 한 겁니다.
Q: <타이타닉>이후 12년 동안 카메라를 잡고 싶어서 손이 근질근질하지는 않았나요?
아, 그 카메라라면 나는 놓지 않았어요! 그 사이에 4 편의 다큐멘터리를 찍었는데, 그러느라고 해저 탐사를 여섯 차례나 다녀왔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좀 더 도움이 될지 모르겠는데, 보통 이런 종류의 탐사 여행에는 9개월 정도의 준비 기간과 2개월 정도의 촬영 기간이 소요됩니다. 말하자면 장편 영화 한 편 찍는 것과 맞먹는 시간이죠.
Q: 그래도 우리가 그 사이 당신의 픽션 작품을 볼 수 없어서 몸이 달았었다는 점 정도는 이해하시겠죠?
다른 사람들이 인내심이 없는 게 내 탓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난 해저 세계를 너무 좋아해요, 그건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죠.
Q: 요즘 나오는 많은 입체영화들은 여전히 3D를 트릭 정도로만 활용하는 것 같습니다만.
나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바타>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우리의 경우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트릭 같은 건 멀리합니다. 나는 3D 방식을 “환경적인” 방식으로 이용합니다. 다시 말해서 전체를 감싸는 힘으로 이용한다는 말이 되겠죠. 3D는 연출에 이미 녹아있습니다. 칼라이기 때문에 영화를 만들지는 않습니다. 영화를 만드는 건 어디까지나 이야기가 좋기 때문이죠. 칼라는 그런 다음에 입히는 거죠. 테크니칼라가 처음 나왔을 무렵만 해도, “하느님 맙소사, 이 영화는 칼라로 만들면 정말 근사하겠는데! 가을 단풍이 환상적이겠어, 황금빛과 오렌지 빛이 화면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멋지게 장식 하겠어”라는 식의 말을 쉽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칼라를 입히기 때문에 영화가 좋다고 생각한 거죠. 이거야말로 당연히 멍청한 소리죠. 만일 당신이 단지 “3D로 찍으면 근사하기 때문에” 영화를 찍는다면, 졸작이 나올 확률이 매우 높을 겁니다.
Q: 3D 말이 나온 김에 묻겠습니다. 혹시 자제분들 사진도 3D로 찍어주십니까?
물론 아니죠. (웃음) 그렇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죠, 그건 확실합니다. 1939년엔 칼라로 찍은 영화가 고작 두세 편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흑백 영화였죠. 1955년엔 장편 영화의 3분의 1이 칼라였고, 3분의 2는 흑백이던 것이, 1960년대에 들어와서 이 비율이 역전되었습니다. 1970년대엔 예술영화를 지향하는 사람 말고는 흑백영화를 찍을 수도 없게 되었고요. 나는 3D도 이와 비슷한 변화 과정을 밟게 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2D를 대체하게 될 거라고 봅니다.
Q: 당신은 항상 보편적인 이야기로부터 시나리오를 구성합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타이타닉>을 끌어냈고, <아바타>만 하더라도 포카혼타스 전설에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듣고 보니 그렇군요. 결말이 똑같진 않지만, 포카혼타스나 <늑대와 춤을> 같은 이야기가 직접적인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나는 스튜디오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포카혼타스>나 <늑대와 춤을>, <푸른 골짜기>를 모두 가져다가 쉐이커에 넣고 잘 버무리면 <아바타>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랬더니 이 사람들이 모두 겁을 잔뜩 집어먹더군요.
Q: 그 사람들이 공포에 부들부들 떨면서 2억 4천만 달러짜리 수표를 당신에게 내밀던가요?
아니죠. 일단 떨게 만든 다음, 곧바로 안심시켰죠. “방금 말씀드린 건 모두 잊어주시죠. 사실은 우주에서 벌어지는 <주라기 공원>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라고 덧붙였거든요. 그랬더니 그 사람들은 넋 나간 사람들 같았어요. “자, 자, 빨리 합시다! 어디에 서명하면 되느냐?”고 묻더군요. 사실 난 그 사람들에게 <타이타닉>을 팔 때도 비슷한 방법을 썼어요. “바다속으로 가라앉는 배 위에서 벌어지는 <로미오와 줄리엣>입니다. 더 이상 뭐가 필요 하겠습니까?”라고 말했거든요.
Q: <아바타>를 찍으면서 완전히 백지 수표를 받으셨나요?
폭스 사가 한 때 제작을 포기했었습니다. 1년쯤 작업을 진행했을 때였는데, 모든 걸 중지하겠다고 하더군요.
Q: 뭐라고요? 그게 정말입니까?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든다는 거였어요. 그러다 폭스가 결정을 번복했어요. 그 사람들은 내가 다른 스튜디오에서는 그 작품을 할 수 없을 거라고 확신했던 모양입니다. 그들과의 인연(<에일리언 2>, <어비스>, <트루 라이즈>, <타이타닉>)을 생각하면, 나로서도 그이들과 <아바타>를 만드는 편이 훨씬 좋았지요.
Q: 그래도 그 사람들, 혹시 당신한테 어느 정도 겁먹은 건 아니었습니까?
결과적으로 보면, 그 사람들이 나를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아바타>는 만들기 너무 힘든 작품이었습니다. 우리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장애물과 맞닥뜨려야 했고, 그때마다 무수히 많은 좌절을 맛보았습니다. 하긴, 이 정도 규모, 특히 이 정도로 실험정신으로 가득 찬 영화를 만들려면 그 정도는 아마 각오해야 할 평균일 겁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모든 사람들이, 그러니까 나나 스튜디오 모두 결과에 만족하고 서로에 대한 신뢰감을 유지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비결은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죠. 그것만이 영화 한 편을 만들면서 마주하게 되는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감독으로 데뷔할 땐 누구나 스튜디오와 대립적인 관계에 서게 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차츰 대립이 희석되게 마련입니다.
Q: <아바타>를 만드느라고 그처럼 오랜 시간을 보내고 나서, 막상 영화가 스크린에 걸리게 되니 기분이 좀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이상한 기분이 들더군요. 8월 초에 촬영장 문을 닫고 모션 캡쳐 용 컴퓨터를 정리하고 나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첫 촬영을 시작한 이후 4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꼬박 매달렸던 일인데. <타이타닉>을 찍느라고 내 인생의 2년이라는 시간을 바쳤는데, 이번에 <아바타>를 위해서는 4년을 바쳤다는 것이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더군요.
Q: 당신은 <아바타>를 청소년기에 탐독하던 공상과학소설에 대한 오마주라고 말씀하시더군요.
나는 열 네 살 무렵에 틈만 나면 외계인이나 로봇, 우주선 등을 그리곤 했습니다.
Q: 혹시 당신의 중학교 3학년 시절 공책을 입수한다면, 최초의 나비 족 크로키를 발견할 수도 있을까요?
그와 비슷한 그림들은 분명 있을 겁니다. 꼬리 달린 미녀들의 그림도 있을 거고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아바타>를 지금까지도 내 안에서 숨 쉬고 있는 열 네 살짜리 소년을 위해 만들었습니다.
Q: 할리우드에서 그토록 오래 머물면서 어린 아이의 영혼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 때문에 나는 할리우드에서 머물지 않습니다. 나는 파티 같은 데에는 가지 않고 에이전시도 들락거리지 않고, 비즈니스용 점심 따위도 하지 않습니다. 나는 사교 놀이 같은 건 전혀 하지 않습니다. 나는 일 이야기를 해야 할 때만 할리우드에 갑니다. 그뿐이죠. 나는 말리부 집에서 지내는 것이 아주 편합니다. 아내는 파리에 가서 살면 좋겠다고 하지만서도요. 내가 만일 이사를 가게 된다면, 십중팔구 뉴질랜드로 갈 겁니다.
Q: 피터 잭슨이 사는 거리에 집만 한 채 장만하시면 되겠군요. 길예르모 델 토로도 최근 그리로 이사 갔다고 하던데요.
나도 알고 있습니다. 길예르모는 나와 아주 친한 친구죠. 그 친구는 <호빗>을 끝낸 다음부터 그 곳에 눌러 살 결심을 했습니다. 아내 수지와 나도 그곳에 사는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해보았습니다.
Q: 모든 것으로부터 먼 곳으로 간다는 데 대한 두려움은 없으십니까?
오히려 바로 그 점이 내 마음에 듭니다. 서구 문명이 멸망할 때, 나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 있고 싶습니다.(웃음) 아메리카가 21세기에도 살아남을 가능성은 아주 희박합니다. 나는 다른 종족들이 우주에서 우리를 지켜보면서 분명히 “하느님 맙소사, 당신들은 정말로 멍청이 집단이로군요”라고 말하리라고 생각합니다.
Q: 그게 바로 <아바타>의 주제죠.
네, 그렇습니다. 작품을 끝내고 난 다음 내가 제일 흥미롭게 생각한 게 바로 나 자신이 개인적으로 대체에너지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대체 에너지 개발에 필요한 돈을 모아주어야 합니다.
Q: 다음 작품을 보려면 또 12년쯤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실 참입니까?
아닙니다. 그런 걱정은 하지 마세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해마다 신작을 하나씩 내놓겠다고 말할 처지는 못 됩니다. 2년마다 한 작품씩이면 어떻겠습니까?
Q: <아바타>가 만일 흥행에 실패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그거야 아주 간단합니다. 내 머리에 총 한 방 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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