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쓰여진 글이라 지금과는 또 많이 다르겠지만 참고할 만 합니다.
지금은 아예 한국 에로영화 시장이 고사되어 버린 상황이라고 함.
나는 어떻게 에로 비디오 작가로 시작해 감독으로 활동하다 모바일 야설 아티스트가 되었는가
비디오, 출시되다
그 분은 바로 에로계의 강우석이라고 불리우던 클릭 엔터테인먼트의 이필립 감독이었다. (봉만대 감독은 에로계의 홍상수 혹은 김기덕이었다. 비교 대상이 좀 애매하긴 하지만 이필립 감독이 장르와 이야기에 충실한 정통 상업 영화를 만들었던 반면에 봉만대 감독은 자의식이 묻어 나는 작가주의 성향의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제가 <신사동 이야기>를 너무 인상적으로 봤거든요. 언젠가 만들어야지 하고 간직하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연락드리게 됐네요. 혹시 지금 다른 일 하고 계신가요?'
'아니요. 다른 일 없구요. 영화과 학생입니다.'
'그래요? 여기도 조감독 중에 D대 연영과 학생 한 명 있는데... 그럼 일단 사무실로 한번 오실래요?'
'네?'
'그럼 언제가 좋을까요?'
'저야 뭐 아무 때나 좋습니다.'
'그럼 내일 모레 어떠세요?'
'네. 그럼 그 날 뵙겠습니다.'
사무실로 오라는 말을 듣고 솔직히 조금 쫄았다. 누군가에게 지나가는 소리로 '에로 비디오는 제대로 못 만들면 제작자한테 맞기도 한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이 순간까지도 누군가에게 맞은 적은 없다. 아마 그 얘기가 헛소문이거나 내가 글을 잘 썼기 때문인가보다.) 그렇게 초조함과 설레임 속에서 몇 일을 보낸 후 클릭 엔터테인먼트 사무실로 찾아갔다. 사무실은 청담동 신선 설농탕 옆 건물에 위치해 있었는데 멀리서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커다란 간판이 인상적이었다. 건물 앞에서 크게 심호흡을 하고 씩씩하게 사무실로 올라가 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이필립 감독과 처음 만났다.
'안녕하세요. 이필립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촬영현장에서의 이필립 감독(가운데 팔짱 끼신 분)
이필립 감독의 첫인상은 아주 다이나믹한 야전 체질 그 자체였다. 지금 당장이라도 대본만 있으면 카메라를 들고 사무실 밖으로 뛰어 나가 영화를 찍어올 준비가 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시나리오 잘 봤어요.'
'감사합니다.'
'근데 전체적으로 너무 어두운 것 같애. 패러디도 지나치게 노골적이고...'
'네...;;'
대중 상업 영화 패러디가 대세였던 에로 비디오 세계에서 <중경삼림>이라는 예술 영화를 한국적 에로 비디오로 풀어낸 후 스스로를 혜성처럼 나타난 대단한 시나리오 작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현역 최고의 에로 감독에게 이런 저런 지적을 당하고 보니 서서히 착각에서 깨어나면서 등에는 식은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십여분간 에로 업계의 제작 여건과 현실 그리고 최종 수정 사항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베드씬 몇 개만 더 넣어주시고요. 너무 노골적인 패러디는 수정해주시고 좀 밝은 느낌으로 가 주셨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이런 건 심의에서 걸리거든요? 일단...'
한 마디로 등장인물들이 섹스하면서 너무 괴로워하기만 해서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내 작품 속의 주인공들은 왜 섹스를 하면서 괴로워했던 걸까? 아마도 내가 작가주의의 헛바람이 들어 뭔가 있어 보이고 싶어서 - 섹스란 행복한 행위인데도 불구하고 뭔가 잔뜩 인상 찌푸리고 심각해야 할 것 같은 -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영상물 등급 위원회의 심의기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 데 한국 에로 비디오가 일본 성인 영상물보다 재미가 없는 이유는 감독들의 재능이나 제작 노하우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영등위의 심의 때문이었다. 성인용 비디오 심의 기준이 어린이와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는 게 아닌가! 만약 김기덕 감독이 극장 개봉 영화가 아니라 에로 비디오를 만들었다면 작품은 출시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영등위의 강력한 심의 기준 때문에 일본 본토의 우수한 성인 영상물들이 합법적으로는 수입되지 못했고 그 때문에 한국 에로 비디오 시장이 치열한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보호 육성되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으로 동영상을 다운 받는 행위가 지금처럼 대중화되어 있지 않았었다.)
현역 최고의 에로 비디오 감독에게 시나리오 작법과 영상물 등급 심의 위원회의 심의 기준에 대한 강의를 들은 후 집으로 돌아와 밤새도록 방에 틀어박혀 키보드를 두드려 댔다. <부기 나이트>에서 주인공이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던 자신의 재능을 유명한 포르노 감독에게 인정받은 후 집을 뛰쳐나와 업계로 투신하는 장면만이 머릿 속을 맴돌았다. 그 때가 막 2002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이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축구에 열광할 무렵 나는 방에 틀어박혀 시나리오만 다듬고 다듬고 또 다듬었다. 비디오만 출시되면 세상이 한 번 뒤집어 진 후 엄청난 혁명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망상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메일과 전화 통화로 몇 번인가 수정 작업을 거친 후 마침내 최종 수정본이 통과되었다. 이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다 한 셈이었다.
<그녀는 떠났다. 지중해로...> 中
1. 원룸 앞 (실외 / 밤)
신사동 원룸 거리.
성훈, 으슥한 골목에 서서 담배를 피우며 원룸 출입구를 노려 보고 있다.
(나레이션)
성훈
매일 많은 사람과 스쳐 지나간다.
그들은 때때로 친구가 되기도 한다.
성훈, 손목 시계를 본다.
(나레이션)
성훈
2002년 6월 2일 9시.
신사동.
그녀의 원룸 앞.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한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난 반드시 그녀를 갖고 말 것이다.
으슥한 골목에서 원룸 출입구를 노려보며 다 피운 담배 꽁초를 던진다.
꽁초, 육감적인 몸매를 흰색 투 피스 정장 스커트로 감싼 혜연의 발 아래로 굴러간다.
혜연, 걸어가다가 발 아래로 굴러 온 꽁초를 하이힐로 지긋이 밟아 준 후 미소를 지으며 계속 걸어간다.
(나레이션)
성훈
우리는 무척 가까이 있었다.
5시간 후 나는 이 여자와 섹스를 한다.
13. 편의점 앞 (실외/밤)
편의점에서 콘돔을 사 가지고 나오는 성훈.
민희, 콘돔에 바코드 기계를 대며 살짝 얼굴을 찌푸린다.
(나레이션)
성훈
드디어 100개째 콘돔을 샀다.
그리고 6월 3일 0시 1분. 지금 알았다.
민정에게 나는 완전히 잊혀진 존재라는 것을...
해가 뜨면 사랑이 끝난다는 노래가 있다.
내 심정이 그렇다.
어떻게 잊지?
그래 100명의 여자와 자는 거야
18. 신사동 거리 (실외/새벽)
성훈, 쌀쌀한 새벽 공기가 추운 듯 팔짱을 꽉 낀 채 천천히 걷는다.
(나레이션)
성훈
이번엔 오래 했다.
난 조루가 아니다.
하지만 몸 안의 정액이 아직 덜 빠졌다.
기분이 그리 썩 좋진 않다.
역시 이 남은 정액을 빼 줄 수 있는 여자는 민정이 밖에 없다.
39. 편의점 (실내/밤)
승완, 다시 구석으로 와서 맥주를 마시며 민정이 승완에게 남긴 편지를 읽기 시작한다.
(나레이션)
승완
그녀는 편지와 함께 섹스 티켓을 한 장 주었다.
시간은 1년 후, 장소는 안 보인다.
45. 편의점 (실내/저녁)
승완, 혼자 편의점 물품을 나르고 정리하고 분류하며 바쁘다.
갑자기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 온다.
약간 촌스러웠던 민희, 세련된 숙녀로 변해 있다.
승완
니가 올 줄 알고 있었어.
민희
빚 갚으러 왔어요.
승완
괜찮아...너만 있으면 돼.
민희
지난 번엔 고마웠어요.
승완
물어 볼 게 있는데...
승완, 주머니에서 민희가 승완에게 남긴 편지를 꺼내 보여준다.
승완
이런 티켓으로도 섹스를 할 수 있니?
시간은 오늘이고 장소는 알 수 없는데...
민희, 승완의 티켓을 자세히 본다.
민희
이런 티켓으론 섹스를 할 수 없어요.
유효 기간이 지났거든요...
민희, 승완의 티켓을 받아 찢어 버린 후
핸드백에서 비디오 테잎 하나와 수표 몇 장을 꺼내 카운터 위에 놓는다.
민희
또 놀러올께요.
민희, 가게에서 나간다
'아 참 이름 따로 생각해 두신 거 있으세요?'
'이름요?'
거의 대부분의 에로 비디오 감독들과 스탭 그리고 배우들은 본명을 사용하지 않았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대부분 그렇게 한다기에 나도 별 생각없이 대충 이름을 불러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그럴 필요 없었던 것 같은데 하여간 정말 별 생각 없이 지은 이름이라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최종 수정본을 넘긴 후 당연히 촬영 현장 구경오라는 연락이 올 줄 알고 기대감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었는 데 몇일 뒤 촬영 끝났으니 원고료 입금할 계좌 번호와 주민등록번호를 알려달라는 전화가 왔다. 촬영은 2박 3일만에 끝냈다고 했다. 조금 놀랐다. 1년 전에 연출부로 참여했던 작품은 영화사 출근한 날부터 촬영 끝날 때까지 7개월 정도가 걸렸고 촬영 끝난 지 반년이 지난 그 때까지 아직 개봉 날짜조차 정해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정확히 2년 후에 개봉했다.)
반면에 에로 비디오는 몇 시간만에 쓴 시나리오가 일주일 만에 촬영을 마치고 출시까지 하다니... 바로 이거다! 싶었다. 그 스피드와 기동성에 완전히 매혹되어 버렸다. 무엇보다 나의 상상이 거의 실시간으로 영상화 된다는 사실이 감동적이었다. 어영부영 계좌번호를 불러준 후 내 이름을 걸고 출시된 비디오가 전시되어 있는 장면을 보기 위해 동네 비디오 대여점으로 달려갔다.
데뷔는 했다만...
헉! 에로 비디오... 리뷰 中
'지중해'의 섹스는 그다지 즐겁지 않으며 언제나 그 안엔 결핍이 존재한다. 이건 에로영화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분명히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중경삼림’을 인용하고 있는 이 영화는 수많은 내레이션이 흐르고, 영화 중간에 화자가 바뀌며(금성무에서 양조위로 넘어가듯), 편의점의 민희는 (캘리포니아가 아니라) ‘지중해’라는 단란주점으로 떠난다. 남자2는 그녀의 기억을 간직하려는 듯 편의점에 취직하고, 민희는 잠깐이지만 편의점으로 돌아온다. 영화의 인물들은 인터넷과 캠코더를 통해 건조한 관계를 맺고, 예기치 못한 공간에서 스친다. 그리고 금방 잊어진다.
'지중해'는 에로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육체관계의 허무함을 전한다. '40명의 여자'를 계획했던 남자1의 야망은 엄마 뻘되는 아줌마와의 옥상 섹스로 귀결된다. 유부녀 혜연은 여전히 채팅에 열중하는 듯한데, 여기에 첫 장면이 겹치면서 영화는 한번 더 뒤틀린다. 레즈비언 섹스의 도입부와 서로 엉킨 혜연과 지현의 육체. 그러면서 그녀들은 각자 또 다른 섹스 파트너를 찾아 나섰던 셈이다. 그리고 남자2는 캠코더에 담긴 그녀들과의 섹스장면을 보며 자위한다(이 장면은 비누와 대화하던 양조위를 연상시킨다).
만약 당신 또한 이 영화를 보며 에로티시즘에 빠진다면, 당신은 그들만큼이나 외로운 게 틀림없다. 어쩌면 당신은, 에로비디오라는 거울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셈이다.
- 김형석 에로비디오 애널리스트
고독은 섹스만큼이나 퇴폐적이다. 왕자웨이(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은 등장인물들의 외로움을 감각적인 화면 속에 가두면서 퇴폐적인 분위기를 한껏 자아내고 있는데, <그녀는 떠났다. 지중해로…>는 왕자웨이 감독의 스타일을 뒤따르며 그 퇴폐적인 분위기를 에로비디오 버전으로 탈바꿈시켰다.
감독('이필립 투'라는 예명을 사용한다. '이필립'이라는 감독도 있는데 둘이 어떤 관계인지, 동일 인물인지 아닌지 알 도리가 없다)은 캠코더와 인터넷, 현대를 대표하는 두 문명의 이기를 통해 현대인의 고독을 이야기한다. 덕분에 <그녀는 떠났다. 지중해로…>의 섹스는 건조하다. 고독이 자아내는 건조함은 에로 비디오에서는 쉽게 발견하기 힘든 분위기이다.
덧붙이자면 놀랍게도 유부녀 혜연과 민희는 레즈비언 연인 사이이며, 제목에서 말했듯 민희는 지중해로 떠난다. 단란주점 '지중해'로.
- 김유준 영화 칼럼니스트
신작 진열대에 최신 헐리웃 여름용 블록버스터 작품들 옆에 당당하게 꽂혀 있던 <그녀는 떠났다. 지중해로...> 의 이미지와 어느 일간지에 올라왔던 비디오 리뷰 기사를 처음 읽었던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의 에로 비디오 데뷔작 자켓 모델은 에로계의 검은별 은빛이었다. 그 전까지는 하소연 팬이었는데 그 날 이후 은빛을 더 좋아하고 있다.
두 어시간 투자해 쓴 글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본격적으로 시나리오 작업에 뛰어들었다. 부귀 영화를 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판매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 다음 작품으로는 워킹 타이틀의 <노팅힐> 패러디를 시도했다. 제목은 <내 애인은 에로 스타>. 에로 스타와 비디오 알바생의 사랑 이야기. 이걸 쓰면 돈이 된다는 생각으로 신나게 시나리오를 써서 보냈더니 아이디어는 좋은데 문제가 있다고 했다. 바로 봉만대 감독의 디지털 비디오의 내용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뒤져 보니 컨셉이 똑같았다. 아쉽지만 깔끔하게 포기한 후 이번에는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 다음 작품인 <타락천사> 패러디를 시도했다. <중경삼림>으로 재미를 봤으니 <타락천사> 패러디도 통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 좋은데 제작비가 너무 많이 나올 것 같아 힘들겠다고 했다. 연이은 헛스윙으로 잠깐 좌절하다가 다시 몇 편의 시나리오를 써서 보냈는데 역시나 계속해서 거절을 당했다. 역시 남의 돈 받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에로 비디오 작가로 데뷔하긴 했다만 변한 건 하나도 없었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번 것도 아니고 다음 작품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도 아니었다. 또 다시 막막해졌다. 에로 비디오 작가로 데뷔하기만 하면 바로 감독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계속되는 거절에 지쳐 포기하니까 '잠 자는 개에게 햇빛은 비추지 않는다'는 말처럼 더 이상 아무런 연락도 오질 않았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었다.
예전처럼 고시 준비하듯 공모전을 준비하고 단편 소설을 끄적이며 허무하게 시간을 소비하던 중 친하게 지내던 독립 영화 감독에게 전화가 왔다. 1년 전 <정액의 힘>이란 단편 영화를 만든 적이 있는 데(현재 cj엔터테인먼트 독립영화관에서 상영 중...^^;;) 그 작품을 계기로 친해진 감독님이었다.
'나야. 신감독.'
'아~안녕하세요?'
'요즘 모해?'
'그냥 학교 다니고 놀아요.'
'에로 조감독 한번 해 볼래?'
'네? 하하! 그게 좀...'
'그냥 해 봐. 뭐 어때? 재밌잖아.'
그랬다. 재밌을 것 같았다.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만 두드리는 생활이 지겨웠고 무엇보다 현장의 열기가 그리웠기 때문이다.
물론 여배우 나체에는 전혀 관심 없었다.
'감사합니다. 시켜만 주시면 열심히...'
나의 에로 비디오 조감독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첫 에로 비디오 조감독 작품이었던 <2x8 사춘기이야기> 원제는 '성인식'
에로 비디오 조감독
신감독의 에로 비디오 조감독 제안을 받아들이고 나자 갑자기 진로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그토록 바라던 현장으로 가는 길은 열렸다만 에로 비디오 업계로 올인한 후 뒷일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슬슬 졸업은 가까워지고 있었는데 학창 시절 내내 예술과 인생에 대한 고민에만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한 결과 남들 다 있다는 그 흔한 토익 점수도 없었고(시험 본 적 없음) 학점도 2점대 초반이어서 취업은 힘들 것 같았다.(취업용 성적표를 뽑아보니 3.15였다...ㅋ) 졸업하면 당연히 영화 감독이 되는 건 줄 알고 있었는데 막상 졸업할 때는 됐건만 감독이 되는 길이 전혀 보이지 않아 막막한 심정이었다.
이런 시나리오대로라면 졸업할 때까지 에로 비디오 작업만 하게 될 테고 졸업 후에는 말로만 들어오던 진짜 에로 비디오 인(人)이 되는 것인데 이 험난한 세상을 에로 비디오 조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헤쳐 나갈 자신이 없었다. (요즘 인기 가수로 활동 중인 하유선과 성은의 인터넷 기사를 보면 과거 에로 배우로 활동한 경력을 터프하게 언급하는 댓글들을 볼 수 있는데 그런 글들을 보면 괜히 가슴이 아프다.) 밤새도록 게임을 하면서 진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고 다음 날 오후에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신감독에게 받은 핸드폰 번호로 전화를 해 보았다. 그 번호의 주인은 이제 막 제작사를 차려 활동을 시작한 이ㅇㅇ감독이었다. 그 동안 신감독과 함께 작품을 제작해 왔지만 신감독이 충무로 연출부 일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조감독이 필요하게 된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이감독님. 신감독님 소개로 전화드렸습니다.'
'네.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연출을 하고 싶으신 건가요?'
'감독이요? 시켜만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하.'
'처음부터 연출은 힘들고 일단 조감독부터 하시는게 어떠세요? 분위기 파악도 할 겸...'
'네. 사실은 저도 그렇게 알고 연락 드렸습니다.'
'일단 사무실로 오세요. 저희 사무실이...'
밤사이 꽤나 많은 고민을 했건만 다음 날 해가 뜨자 언제 그랬던가 싶을 정도로 아무 생각 없이 명랑한 기분이 되었고 드디어 현장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대감에 두근 두근 설레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일을 한국형 로망 포르노를 현실화 시키기 위한 이런 저런 망상성 계획을 짜면서 보낸 후 이ㅇㅇ감독의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은 목동의 한 고층 오피스텔에 자리 잡고 있었고 클릭 엔터테인먼트 사무실 보다는 규모가 작았다. 충무로에 영화 제작사가 천 여개 정도 있지만 그 중 메이저 급으로 분류할 수 있는 영화사는 열군데 정도 밖에 안 되는 것처럼 에로 비디오 제작사도 통틀어 5~60여개 정도가 있었지만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져 있는 메이저로 분류될 만한 회사는 유호 프로덕션, 클릭 엔터테인먼트, 씨네프로 정도였던 것 같다. 내가 일하게 된 회사는 메이저 급이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디바 필름이란 곳에서 투자를 받아 작품을 제작하게 된 독립 제작사 스쿨 씨네마였다.
'안녕하세요. 이ㅇㅇ감독입니다. 저녁 아직 안 드셨죠?'
이ㅇㅇ감독의 첫 인상은 이필립 감독과는 달리 조금은 냉정해 보이는 유능한 청년 사업가 느낌이었다. 예술 영화 매니아 출신으로 사무실 책꽂이에는 각종 미학 이론 관련 서적들이 꽂혀 있었고 영화 관련 서적들도 많이 있었는데 그 중 고다르 관련 서적들이 인상적이었다.
일단 근처 상가의 삼겹살 집으로 자리를 옮겨 나의 경력과 장래 포부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시종 일관 로망 포르노가 어쩌구 일본 V-cinema가 어쩌구 횡설 수설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얘기를 흥미롭게 들은 이ㅇㅇ감독은 우리 같이 힘을 모아 한국 에로계에서도 뭔가를 이루어내보자 정도로 대화의 결론을 지었다.
이ㅇㅇ감독도 나처럼 예전에 에로 비디오 대본을 써서 판매한 적이 있었는데 내가 <그녀는 떠났다. 지중해로...> 시나리오를 판매한 가격의 3분의 1정도의 가격에 시나리오를 판매해 왔다는 사실을 알고는 잠시 허탈해 했다. 역시 클릭 엔터테인먼트는 메이저 제작사였다. 그 날의 대화는 에로 비디오 업계에도 메이저와 마이너 제작사의 간극이 결코 좁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사무실로 돌아와 감독과 조감독의 관계로 일을 편하게 하기 위해 말을 편하게 놓기로 친절하게 합의한 후 앞으로 진행 사항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음 작품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데 혹시 간직해둔 시나리오 있으면 얘기 좀 해달라고 해서, 조금 걸리긴 했다만 이필립 감독에게 보냈다가 퇴짜 맞은 '내 애인은 에로스타'의 기획안을 조금 들려주었다. 이ㅇㅇ감독은 나의 기획안을 듣고는 '그거 괜찮겠네 이번 작품 그걸로 하고 싶은 데?' 하면서 시나리오를 보내달라고 했고 나는 이게 왠 떡이냐 싶어 집으로 돌아와 시나리오를 이메일로 쏘아 주었다.
시나리오를 다 읽은 이ㅇㅇ감독은 참 좋게 봤다며 다음 작품으로 '내 애인은 에로스타'를 하기로 결정한 후 최종 수정 사항에 대해 이런 저런 지시를 내려 주었다. 나는 '역시 좋은 기획안은 임자가 있구나'는 생각에 행복해 하며 열심히 시나리오를 썼는데 몇 일 뒤 우려하던 사태가 벌어지고야 말았다. '내 애인은 에로스타' 시나리오를 투자자인 디바 필름 사장님한테 보여줬는데 봉만대 감독의 '디지털 비디오'와 내용이 똑같다며 퇴짜를 놨다는 것이다. 나는 소재가 비슷하긴 하지만 봉감독의 작품이 작가주의 성향의 작품이라면 나의 시나리오는 <노팅힐>을 패러디한 철저한 대중 상업 영화라고 항변했지만 물론 씨도 먹히지 않았다.
결국 원래 준비하고 있던 '성인식'이라는 제목의, 지방 소도시의 다방에서 일어나는 사춘기 재수생의 이야기를 준비하게 되었다. 시나리오를 다시 다듬는 동안 시간이 비어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장민기 감독과 박선욱 감독(칸느에서 상을 받은 송일곤 감독의 단편 영화 '소풍'의 촬영 감독)에게 이메일로 퇴짜맞은 시나리오를 보냈다.
몇 일 뒤 장민기 감독(대표작은 뮤직 비디오 스타일의 촬영기법을 업계 최초로 도입한 '여자 기숙사'시리즈)에게 답장이 왔다.
'시나리오는 내용도 좋고 완성도도 탁월해 인상 깊게 봤지만 현재 에로 비디오 시장은 작가들에게 정상적인 시나리오비를 지급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습니다. 다른 일 찾아 보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장민기 감독은 이미 비디오 시장의 몰락이 돌이킬 수 없는 사회 현상임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냉정하게 시장이 없어질테니 다른 일을 찾아보라는 장민기 감독의 이메일을 다 읽은 후 또 밤을 새며 고민하다가 이ㅇㅇ감독에게 시나리오 다 썼다는 전화를 받고 다음 날 프리 프로덕션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 씩씩하게 사무실로 출근했다.
프리 프로덕션
<성인식> 시나리오 中 (출시 제목은 ‘2X8 사춘기’)
#12. 다방 안. 낮.
Title 영숙을 만나다.
다방 문을 열고 들어가는 성진. 카운터에 이모가 들어오는 성진을 못 마땅한 눈으로 째려본다.
이모 : 학원에서 공부 안하고 이 시간에 여긴 왜 왔어?
성진 : 오늘 공부도 안돼구 해서 이모 배고프다. 밥 있어?
이모 : 대충 알아서 챙겨먹구 가.
이모 돌아서서, 손님이 있는 테이블로 간다. 성진, 밥을 챙기는 척 하다가 이모의 눈치를 살피다 카운트로 몰래 다가가 거의 엎드린 자세로 몰래 돈을 꺼내려고 한다. 마침 카운트 쪽으로 다가오던 영숙, 성진을 몰라보고 비명을 지른다. 당황하는 표정의 성진.
이모, 성진을 나무라고 있다. 영숙을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는 성진.
영숙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짓는다.
영숙 : 미안해. 애, 난 니가 언니 조카인 줄 모르고... 이름이 뭐니? 난 어제 새로 온 미스 리... 아니 내 이름은 영숙이야.
성진 대꾸도 않는다.
여 종업원 : 화가 많이 났나 보구나.
성진, 심통이 난 표정을 하고 있다.
영숙 : 어떻게 해야 니가 화가 풀리겠니?
영숙, 주머니에서 만원 짜리 한 장을 꺼내서 영진에게 내민다.
영숙 : 자 받어. 이거 누나가 사과하는 뜻으로 너에게 주는거야.
성진, 영숙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는 코웃음 치더니 돈을 보고서는 돈을 재빨리 받아서 주머니에 넣는다. 머쓱한 웃음을 짓는 성진. 일어선다.
# 25. 다방 밖. 낮.
영숙 달려와서 성진의 앞을 가로막는다.
영숙 : 성진아, 너 왜 그래?
성진 : 왜 그러냐구?
영숙 : 내가 뭘 어쨌다구?
성진 : 그걸 왜 내게 물어.. 누나가 더 잘 알텐데?
영숙 : 내가 더 잘 알단구? 뭘?
성진 : 그렇게 시치미 떼면 내가 모를거라 생각했겠지?(화를 버럭내며) 더러워!더럽다구..
영숙 : 더럽다구? 내가?
성진: (화를 내면서)그럼 시바..,,이 놈 저 놈 아무에게나 다 주는데.. 구럼 깨끗하다고 생각해?
영숙 : (놀라는 표정에 금방이라도 울 것 같다) 니가 그걸 어떻게?
(잠시 침묵하다가) 성진아! 미안해.
성진 : 미안하단 말이면 다 돼는거야? 날 갖고 논거야..
응.. 내가 멍청해보이니까.. 한번도 안 해 본 아다라서 날 따 먹고 싶었던거야.. 응.. 시바 날 좋아한 게 아니라 그냥 한번 장난 쳐 본거지? 그렇치? 장난쳐본거야.. 그렇지?
영숙 : 성진아.. 아냐.. 그게 아냐!
성진 : (잠시 침묵하다가) 우리 이모 가게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가줘.. 누나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말 없이 성진을 쳐다보고 있는 영숙, 성진 돌아서서 뛰어간다.
# 26. 다방 안. 낮
영숙 : 언니 미안해요, 갑자기 이렇게 떠나게 되서.
이모 : 그래.. 나도 너무 섭섭하다.. 얘.. 그동안 정도 많이 들었는데... 어디 가든지 부디 잘 살아.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성진.
# 27. 다방 밖. 낮.
영숙, 양손에 가방을 들고 걸어가고 있다. 뒤를 한 번 돌아보는 영숙, 다시 길을 걸어간다.
숨어서 영숙의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성진. 성진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비디오 출시 예정일이 한달 정도 남았으므로 제작을 서둘러야 했다. 일단 배우를 캐스팅하고 장소를 헌팅하는 게 제일 급선무였는데 배우는 에로 배우 매니저들을 통해 구하면 되고 장소는 발로 뛰어서 섭외해야 한다고 했다.
장소 헌팅과 섭외는 충무로 연출부 생활 6개월 동안 수 없이 해 왔던 일이라 자신 있었는데 문제는 유명한 스타가 나와 극장에 걸리는 영화가 아니라 비디오 대여점에 은밀하게 배급되는 에로 비디오라는 사실이다. 이거 어떻게 진행해야 하나 고민은 됐다만 섭외해야 할 장소가 다방, 비디오방, 모텔 이어서 업종의 특성상 사장님들이 에로 비디오 제작에 호의적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초저예산이었기 때문에 각각의 촬영 장소들은 한 동네에 위치해 있어야 했다. 무엇보다 2박 3일 동안 다 찍어야 하는 데 여러 장소를 순회 공연할 정도의 시간적 여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대본의 느낌이 중소도시였기 때문에 일단 서울에서 가까운 중소 도시를 조사한 후 무작정 떠났다.
그 곳은 에로 비디오 촬영에 이상적인 도시였다. 다방이 많았으며 높은 건물도 거의 없고 논과 밭이 있어 적당히 시골스러운 분위기까지 간직하고 있었다. 우리는 차를 타고 지나가며 동네 구경을 하다가 제일 먼저 보이는 다방 간판 앞에 차를 주차시켰다.
다방이라 하면 왠지 에로틱한 레지들도 많을 것 같고 동네 아저씨들의 사랑방 비슷한 느낌일 줄 알았는데 우리가 찾아간 다방에는 할머니 한 분과 중년의 아주머니 한 분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다방 안으로 들어가자 할머니가 '얘들이 여기 왜 왔을까?' 라는 당혹스러운 느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여기 사장님 좀 뵙고 싶은데...'
'내가 사장인데?'
'아 저는 디바 필름의 이ㅇㅇ감독이라고 합니다. 영화를 한 편 찍으려고 하는데 다방이 필요하거든요.'
'무슨 영화요?'
'그냥 조그만 비디오 영화요.'
'그래요? 근데 우리 다방이 별로 볼 품이 없는데...'
'아니요. 저희 영화 분위기에 딱 맞는 걸요. 적당히 품격도 있고요.'
'그래? 그럼 그렇게 해. 근데 너무 이상한 건 안 찍을 거지?'
'그럼요.'
'얼마 줄거야?'
할머니 사장님은 우리가 어떤 영화를 찍으려고 하는지 대강 눈치 챈 후 바로 가격 협상에 들어갔는데 장소 대여료로 하루 매출의 서너배 정도가 넘는 금액을 부르며 아예 뽕을 뽑으려고 했다. 우리는 적당히 그 반액 정도의 가격에 합의를 본 후 다시 연락드리겠다는 말과 함께 명함 한장을 남기고 다방에서 나왔다. 그런 식으로 비디오 방과 모텔 헌팅은 일사 천리로 진행되었는 데 그 도시의 업소 사장님들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에로 비디오 제작에 협조적이었다.
<2x8 사춘기이야기> 여주인공 박희수양
장소 헌팅이 끝나고 배우 캐스팅을 시작했다. 길거리 헌팅을 하게 될 줄 알았는데 그렇게 해서 캐스팅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전문 매니저를 통해 발굴된 배우들 중에서 선택하는 시스템이라고 한다. 이ㅇㅇ감독은 평소 알고 지내던 매니저들에게 전화를 한 후 프로필 사진을 이메일을 통해 받은 후 후보 리스트를 작성했다. 여배우 후보로 총 20장 정도의 프로필 사진이 왔는데 그 20명이 현재 에로 비디오 업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배우 전부라고 했다. 에로 비디오 업계가 그 정도로 영세했다. 몇 명 안 되는 배우들도 오래 활동해 봤자 3~4개월이고 소비자들이 새로운 얼굴을 원하기 때문에 여배우들은 끊임없이 물갈이 된다고 했다.
에로계의 탑스타 하소연과 은빛의 사진이 없었는 데 그들은 클릭 엔터테인먼트 전속 배우들이라서 캐스팅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작성한 여배우 후보 리스트 매니저들 몇명에게 전화해 배우를 직접 보고 싶다고 전화를 한 몇 일 뒤 드디어 여배우들을 만나게 되었다.
혹자는 연예계 X파일을 생각하며 여배우와 감독의 은밀한 뒷거래 현장 쯤을 상상해 볼 수도 있겠으나 배우와의 미팅은 사무실에서 아주 건전하고 사무적으로 이루어졌다. 주연 여배우는 이ㅇㅇ감독이 이미 기존에 활동하고 있는 스타급 배우로 결정해 놓았었기에 이번 여배우와의 미팅은 조연을 결정하는 자리였다.
신인 여배우 '지나'는 매니저 한 명과 함께 해맑은 얼굴로 사무실로 들어왔다. 감독과 매니저가 계약 조건에 대한 협의를 하는 동안 나는 사람 수 만큼 커피와 차를 타서 나른 후, 호기심 어린 시선을 태연하게 가장하며 여배우 '지나'의 얼굴을 천천히 관찰하였다. 이리 보고 저리 보고 아무리 봐도 그냥 평범한, 어디에서고 흔히 볼 수 있는 작고 아담한 체형의 귀염성 있는 아가씨였다. 한마디로 에로 배우라고 해서 특별히 에로틱하거나 섹시한 느낌은 전혀 없는 밝고 건전하고 명랑한 인상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던 중 매니저가 갑자기 바디 미팅 얘기를 꺼냈다.
'바디 미팅 하셔야죠?'
'괜찮아요. 별 이상만 없으면 되죠. 안 하셔도 됩니다.'
'아니예요. 할 건 해야죠.'
'아니... 배우가 부끄러울 수도 있으니까요 그냥 넘어가셔도 됩니다.'
'지나가 부끄러워 한다구요? 하하. 부끄럽니?'
'안 부끄러워요. 나 할 수 있는데...'
바디 미팅이 뭔지 전혀 감이 오지 않는 가운데 여배우 지나는 갑자기 쇼파에서 일어나 입고 있던 코트와 겉옷을 훌러덩 벗고는 사무실 창가 앞에 서서 홈쇼핑 속옷 모델처럼 포즈를 잡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나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 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조감독! 카메라 가져와.'
뭘 해야 할 지 몰라 당혹스럽던 차에 잘 됐다 싶어 카메라를 준비해 감독에게 주었고 감독은 지나의 바디를 위 아래로 천천히 건조한 시선을 유지하며 찍기 시작했다. 바디 미팅이라 함은 에로 비디오에 출연해야 할 여배우의 몸에 보기 흉한 상처나 문신의 유무 여부를 확인하는 오디션 같은 것이라고 했다. 말을 듣고 보니 그럴 만도 했다. 그랬다. 바디 미팅은 반드시 거쳐야할 중요한 제작 절차였다. 그렇게 남자 배우들과도 미팅을 가졌고 순조롭게 주요 배역들의 캐스팅을 마무리 지었다.
문제가 있다면 여주인공의 옛날 애인 역이었는 데 비중이 너무 작아 경제적인 이유로 캐스팅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에로 배우들은 한 컷을 출연하더라도 하루 일당을 줘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너무 작은 배역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시킬 수도 없는 게 베드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고민하던 중 인터넷 채팅 싸이트가 떠올랐다. 여배우 캐스팅이면 몰라도 남자 배우라면 어떻게든 인터넷으로 구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채팅 싸이트 몇 곳에 동시 접속한 후 대화방을 하나씩 만들었다.
'에로 영화에 출연할 남자 배우 모집합니다.'
잠시 후 호기심 성 쪽지가 무수히 날아오기 시작했는 데 대부분 사진을 보내달라고 하면 꽁무니를 빼고 도망을 갔다. 그런 와중에 사진을 보내오는 이가 딱 한 명 있었는데 무슨 이유로 에로 배우를 하고 싶다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훤칠하게 잘 생긴 젊은 아저씨였다.
'저 진짜 에로 배우 꼭 하고 싶거든요? 시켜 주실꺼죠?'
'네. 일단 번호를 주시면 내일 회의 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다음 날 이ㅇㅇ감독은 한참 동안을 컴퓨터에 올라온 사진을 들여다 보았다.
'이미지가 괜찮긴 한 데 처음 하면 좀 어려울 수도 있거든... 그게 좀 걸리네.'
'왜요?'
'베드신이 아무렇게나 막 하고 싶은 데로 하는 게 아니라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적당히 지켜줘야 하는 게 있거든. 그거 말고도 처음 하면 시행 착오를 겪을 수도 있고 아무래도 전문 배우 보다는 못하지.'
그 날 저녁 아저씨는 사무실로 찾아왔다. 직접 만나보니 생각보다 활달하고 유쾌했으며 말도 시원스럽게 하는 남자답게 멋있는 건장한 스타일이었다. 저 정도라면 뭘 해도 잘 할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ㅇㅇ감독도 그런 생각을 했는지 만난 자리에서 곧장 캐스팅을 결정지었다.
헌팅과 캐스팅을 마무리 짓고 나자 남은 건 제작 스텝을 구하는 일이었다. 감독님이 에로 비디오 찍을만한 촬영 감독 아는 사람 없냐고 해서 나와 단편 작업을 같이 했던 친구에게 연락했더니 가격만 맞으면 촬영 장비 일체와 촬영부까지 구해오겠다고 했다. 그렇게 가격 조정을 한 후 스텝 꾸리는 것도 마무리 지었다.
이제 남은 것은 프리 프로덕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문서 작업이었다. 늦은 시간까지 사무실에서 촬영 일정표와 소품 구분표, 의상 연결표를 작성했다. 문서 작업이야 연출부 시절 워낙에 많이 했던 일이라 엑셀의 'V-LOOK UP'까지 활용해 멋드러지게 마무리 지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모든 프리 프로덕션 작업을 마친 후 집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지금 잘 하고 있는 건지, 나중에 후회하는 건 아닌지, 지금이라도 도서관에 가서 토익 공부를 해야 되는 건 아닌지 등등 잡다한 고민을 했는 데 잠시 후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중간에 잠깐 잠에서 깼는데 지하철은 마침 그 때 '충무로 역'을 지나고 있었다. 게슴츠레 눈을 떠 보니 점점 멀어지는 파란색 3호선 충무로 역 간판이 보였다.
'충무로'...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사실 내가 가고 싶었던 곳은 바로 저기였는데 지금 나는 너무 멀리 가고 있는 건 아닌지 조금 걱정이 되었다. 아무리 로망 포르노가 예술이네 어쩌네 해도 극장 개봉 영화의 매력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꿈에서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 들어 괜시리 가슴 한 켠이 서늘해졌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비디오 자켓 촬영을 위해 청담동에 위치한 스튜디오로 향했다.
누군가에게 뒤쳐졌다는 허탈함
그렇게 한참 정신없이 <2X8 사춘기 이야기>의 조감독을 준비하던 때가 2003년 초였는데 이런 저런 루트를 통해 클릭 엔터테인먼트에서 한 신인 감독이 <태극기를 꽂으며>라는 쇼킹한 작품을 만들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허허... <태극기를 꽂으며>라니... 설마 태극기가 그 태극기? 제목 자체는 발칙하다만 그래봤자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 남자가 일본 여자들을 성적으로 정복하는 이야기겠거니 생각하고 피식 웃어줬는데 대강의 줄거리를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DVD로 출시된 <깃발을 꽂으며>
<태극기를 꽂으며>(출시명은 <깃발을 꽂으며>)는 독립 운동가의 후손인 호스트가 촛불 시위에 참여했다가 뭔가를 깨달은 후 미군 사령관 부인과 부시의 아내를 덮친다는 이야기였다. 정치적인 문제와 작품의 퀄리티에 대한 문제는 논외로 해두고 일단은 그런 컨셉의 작품이 기획, 제작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이거 서두르지 않으면 영영 뒤쳐질지도 모른다는 불안 초조감에 휩싸이는 순간이었다. (예전에 이필립 감독이 ㄷ대 연극 영화과 출신 조감독이 한 명 있다고 했었는데 그가 바로 <태극기를 꽂으며>로 2003년 초 대한민국을 충격의 도가니에 빠뜨린 공자관 감독이었다.)
그 이후의 진행 사항은 워낙에 시끌 법적했던 관계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딴지일보 공자관 감독 인터뷰 참조) 결과적으로 상당히 실망스러운 기승전결을 가진 해프닝이 되버렸지만 에로 비디오로 뭔가를 시도하려 했던 사람이 있다는 사실과 그 사람이 내 나이 또래의 연극 영화과 출신이라는 사실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다른 이에게 뒤쳐졌다는 불안 초조감과 프로젝트 자체의 야심찬 스케일에 감동을 받은 오묘한 상태에서 비디오 자켓 촬영을 하는 스튜디오로 향했다.
비디오 자켓 촬영
감독이 적어준 약도로 제대로 찾아가긴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ㅇㅇ스튜디오가 없었다. 이상하다 싶어 한참을 헤매이던 중 감독에게 전화가 한통 왔다.
'어디야?'
'여기 도착하긴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ㅇㅇ스튜디오 간판은 없는데요?'
'못 찾겠지?'
'네. 아무래도 약도가 잘못 된 것 같아요.'
'맞아. 잘못 됐어. 그 반대편으로 와야 돼.'
'어쩐지... 금방 갈께요.'
'아니. 오지 말고 청담동 사거리 있지? 주유소 앞에.'
'네.'
'거기서 여배우 픽업해서 와.'
'여배우 누구요?'
'박희수. 우리 주연 배우.'
드디어 주연 여배우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이미 사진(여비서 스타킹 표지 사진)으로는 봤지만 실물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어떻게 인사를 해야 되는지 내 소개는 어떻게 할 것인지 이리 저리 궁리하고 있는데 횡단 보도 맞은 편에서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미소녀 한 명이 펑퍼짐한 청바지를 입고 성큼 성큼 걸어 오는 게 보였다. 확실히 배우는 배우였다. 꽤 먼 거리였지만 얼굴 전체에서 반짝반짝 연애통신 특유의 광채가 나고 있어 바로 알아 볼 수 있었다. '저 아가씨가 그 아가씨구나.' 싶어 유심히 보고 있었는데 내가 자기를 픽업하러 나왔다는 것을 눈치 챘는지 나를 힐끔 힐끔 바라 보았다.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조감독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근데 스튜디오가 어디예요? 못찾겠어!'
살짝 짜증을 내는 그녀를 데리고 감독이 말해 준 스튜디오로 향했다. 얼마 안 되는 거리를 함께 걸으며 분장 언니와 핸드폰으로 이런 저런 얘기하는 걸 들어 보니 일본 미소녀 스타일의 첫인상과는 달리 지극히 현실적인 성격의 소유자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유명 명품 브랜드 매장이 위치한 건물 지하로 내려갔는데 이미 대부분의 매니저와 스텝들이 도착해 있었다. 스튜디오 사장으로 보이는 사진 작가가 조수와 함께 이리 저리 조명 세팅을 하고 있었고 스텝들끼리는 이미 안면이 있는 듯 매우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그들만의 담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눈치로 보아하니 회사에서 자켓 촬영 진행을 담당하는 홍보 실장도 와 있는 것 같았는데 정작 감독이 아직 오지 않아 조감독인 나는 당장 뭘 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밖에서 기다려야겠다 싶어 나가려는데 마침 감독이 들어왔다. 감독은 스튜디오로 들어온 후 스텝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나도 감독의 소개로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러는 사이 스튜디어 한 쪽 구석에 말 없이 앉아 있던 참한 인상의 홍보실장이 천천히 걸어 왔다.
'감독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여긴 조감독입니다. 인사드려. 최실장님이야.'
'안녕하세요. 조감독입니다.'
'네, 잘 부탁드릴께요. 근데 자켓 촬영 컨셉은 잡아 오셨어요?'
'아니요.'
'그럼 이건 어떠세요?'
홍보 실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가방에서 주섬 주섬 잡지에서 오려낸 듯 보이는 사진들을 꺼내 보여주었다.
'좋은데요? 이걸로 가죠.'
잠시 후 몇 장의 사진들을 사진 작가에게 보여준 후 촬영 컨셉에 대해 회의를 시작했고 바로 배우들을 불러 촬영에 들어갔다. 별 다른 소품도 없이 그냥 스튜디오에 있던 가구들과 소품들을 이용해서 세팅을 한 후 촬영하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평소 연구하고 있던 일본 성인 비디오 자켓 사진들과 자연스레 비교가 되었다. 일본 우수 성인 비디오 제작사들인 moodyz, madonna, ruby 등에서 제작되는 예술적인 수준의 자켓 디자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런 식으로 촬영한다는 건 나의 장인 정신으로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상상력의 빈곤 그 자체였다.
내가 해도 이거 보다는 잘 할 수 있겠다 싶어 많이 답답했는데 지금은 조감독의 본분에 충실해야 할 때였다.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매니저들과 의상, 헤어, 분장 스텝들에게(의상, 헤어, 분장 세 파트를 한 명이 담당) 극영화에서 하던 그대로 의상 연결표와 촬영 일정표 등을 나누어 주었다. 매니저들과 스텝들은 내가 나누어 준 문서들을 보고는 깜짝 놀라면서 이 문서를 업계 표준으로 정한 후 제작사들에게 쫙 돌려야 한다며 흥분하고 있었다.
'와... 진짜 잘 만드셨네요.'
'네?'
'여기 적힌 대로만 준비하면 되는 거죠?'
'그래주시면 고맙죠.'
의상, 분장, 헤어를 맡은 분이 특별히 더 좋아하는 눈치였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일반적인 비디오 제작 현장에서는 이런 의상 연결표나 시간 단위로 구분되어 있는 촬영 일정표를 제작하지 않는다고 했다. (시나리오 없이 줄거리만 몇 줄 적힌 종이 몇 장만 갖고 촬영을 진행하는 현장도 있다고 한다.) 그런 사정을 전혀 모르고 있던 나로서는 조금 오바를 한 셈인데 잘 했다고 칭찬해 줘서 기분은 좋았다.
한참을 칭찬을 듣고는 별 다른 할 일이 없어서 스텝들 간식을 사러 나갔다 왔는데 스튜디오 분위기가 조금 싸늘해져 있었다. 자존심 쎄 보이는 사진 작가 아저씨가 혼자 씩씩 거리고 있었고 감독은 역시나 잔뜩 삐진 듯 보이는 여배우에게 가서 뭔가 위로의 말을 해 주고 있었다.
자초지종을 들어 보니 여배우는 왼쪽 얼굴이 더 이쁘다고 생각해서 왼쪽 얼굴을 중심으로 찍어달라고 했는데 사진 작가는 오른쪽에서 찍으려고 해서 의견 충돌이 있었다고 했다. 별 일이 다 있다 싶었는데 성깔 좀 있어 보이는 사진 작가는 결국 주연 배우를 빼고 촬영을 진행했다. 저러다 화해하고 다시 촬영에 임할 줄 알았는데 여배우는 끝까지 화를 풀지 않았고 사진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냉랭해진 분위기를 살려본다고 감독이 직접 나서 '이런 포즈로도 찍어주세요' 하면서 직접 민망한 포즈를 취하기도 했는데 결국은 비디오 자켓에 메인 여배우 사진이 빠진 상태로 출시가 되는 당황스러운 사태가 벌어지고야 말았다.
반면에 조연 여배우 '지나'는 작가의 의도대로 열심히 포즈도 취해주고 상냥하고 친절해 스튜디오의 분위기를 제법 살려 주었는데 결국 그녀가 비디오 자켓의 주인공이 되었다.
촬영이 끝나고 감독과 홍보실장을 따라 저녁을 먹으러 스튜디어 근처의 곰탕 집으로 갔다. 그제서야 그녀와 정식으로 인사를 했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녀는 에로 비디오 제작사 홍보실장답게 식사 내내 업계에 떠도는 다양한 소문과 유명 인사들에 대한 이런 저런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해 주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사람들의 사생활과 명예에 관한 내용이라 차마 공개할 수 없어 조금 안타깝다.) 얘기를 듣는 내내 '와~' '진짜요?' '싸나이네요' '최고다' 따위의 감탄사만 남발했던 기억이 난다.
한 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드디어 촬영 당일...
전 날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새벽같이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다방으로 달려갔다. 다방 사장님 할머니를 깨워 문을 연 후 스텝들 추위에 떨지 말라고 난로를 켜 놓았다. 다방 안이 어느 정도 따뜻하게 덥혀지자 졸음이 왔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깜깜했던 하늘이 지평선 끝에서부터 서서히 투명한 파란색으로 밝아오고 있었다.
밤새도록 무슨 문제라도 생기지는 않을까 싶어 잠도 제대로 못자고 걱정을 했었는데 막상 현장에 도착하고 나니 전날 느꼈던 불안, 초조함은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고 빨리 촬영을 하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에로 비디오 조감독이라는 타이틀에 자신이 없어 잔머리를 굴리고 온갖 고민을 하며 망설였던 과거의 나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질만큼 유쾌 상쾌한 기분이었다.
'영화를 찍고 싶으면 그냥 찍으면 될 것을 무슨 고민과 걱정을 그렇게 많이 한 건지...'
다방 입구에 선 채 잔뜩 폼을 잡고 있는 사이에 스텝들의 차가 하나 둘씩 도착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모바일 성인 동영상 서비스
첫 촬영은 여자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있는 다방 레지 영숙을 성진이가 훔쳐보는 씬이었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없던 씬이지만 상가 일층 화장실을 눈여겨 본 감독의 순발력으로 새로이 추가된 씬이었다. 충분한 준비 작업 후에 제작에 들어가는 극영화 현장에서는 드문 일이지만 2박 3일이라는 제한된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 에로 현장에서는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고 했다.
이 씬 자체로도 여자 화장실 훔쳐보기 동영상으로 서비스할 수 있을 정도의 완성도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비디오 촬영을 하면서 동시에 모바일 동영상도 제작해달라는 투자사 쪽의 주문을 반영한 결과였던 것 같다. 예전에 투자사 사장과 감독의 저녁 식사 중에 오고 간 대화 내용이 생각이 났다.
'이감독님, 요즘 모바일이 유행이잖아요.'
'네.'
'그래서 우리도 말이지 이번 작품을 찍으면서 모바일 동영상 서비스 할 것도 만들어줬으면 하는데...'
'음...'
'그냥 베드씬만 따로 편집해도 되는데 여유가 생기면 신경 좀 써 주세요.'
'한번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조감독이 너무 착하게 생겨서 배우들이 말을 들을지 모르겠네.'
'하하...'
'아무래도 기가 쎈 사람들이라 말 안 들으면 화도 내고 그래야 될 텐데... 괜찮겠어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맞다. 우리 조감독 혹시 배우 해 볼 생각은 없어요? 순진한 재수생 역에 딱 어울리는데...'
'제가 연기는 자신이 없어서요.'
'에이 잘 할 것 같은데...'
'제가요... 숫기가 없거든요. 남들 앞에서 말도 잘 못하고...;;;'
갑작스런 에로 배우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하며 마무리 했던 그 날의 대화 내용을 되돌이켜 생각해보니 이런 식으로 촬영 내용이 변경되고 추가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시나리오 내용도 중요하지만 여체를 상품화 할만한, 돈이 될 것 같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무조건 찍어야 했던 것이다. 처음에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는 에로 비디오로 아트한다는 마인드가 있었기 때문에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다른 현장에서는 에로 비디오 한 편을 찍으면서 모바일 동영상 작업만 하는 수준이 아니라 편집만 달리 해서 서너편으로 나눠 출시하기도 했으니 그다지 무리한 주문도 아니었던 셈이다.
스텝과 배우들이 도착하자마자 다방 일층에 위치한 상가 화장실로 이동해 조명 세팅과 배우 분장을 시작했다. 분장과 세팅이 끝나자마자 감독의 지시로 배우들이 화장실로 들어가 말 그대로 연기를 했고, N.G 한번 없이 촬영을 마무리 지었다. 훔쳐보기의 특성상 카메라도 주인공의 시점에서 훔쳐보는 연기를 해야 했는데 촬영 기사는 에로 비디오 촬영이 처음임에도 불구하고 능숙하게 연기를 했다. 그런 식으로 매 씬마다 스피디하게 촬영이 이루어졌다.
스타니슬랍스키와 에로 배우
배우들은 '뭐 이런 것 쯤이야' 하는 식으로 매 씬마다 상황별로 연기를 후딱 후딱 해치웠다. 매우 능숙하고 노련해 보이기는 했다만 스타니슬랍스키를 연구하며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진실된 감정을 이끌어내보려는 정도의 직업 의식은 없는 것 같았고 단지 짧고 굵게 화끈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개념인 것 같았다. 보통 에로 배우 출연료는 일당으로 계산되는데 하루 일당이 왠만한 아르바이트 몇 달치 월급과 비슷했으니 금액만 놓고 본다면 고소득의 아르바이트였던 셈이다.
사실 배우 뿐만 아니라 이 현장에서 그 정도의 직업 의식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 자신도 에로 비디오로 예술 한 번 해 보겠다고 뛰어 들긴 했다만 촬영을 진행해 가면서 현장 특유의 노가다 분위기에 서서히 젖어들었음을 부인하진 않겠다.(예술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도 잘 모르겠다.)
드라마 씬 촬영이 진행되가면서 서서히 베드씬을 찍을 차례가 다가왔다. 촬영 순서표를 짤 때 배우들 옷 벗고 공사할 시간을 감안해 일부러 베드씬만 몰아서 배치해 놨었는데 드디어 그 때가 된 것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사전 작업이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베드씬을 찍기 전에 배우들이 샤워를 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분장 언니가 말해줘서 알았는데 처음 그 얘기를 듣고는 난감할 뿐이었다.
'조감독님 배우들 샤워는 어디서 해요?'
'샤워요? 샤워씬 없는데요?'
'호호. 조감독님 에로 처음이세요?'
'네.'
'베드씬 찍기 전에 배우들 샤워해야 되거든요. 혀를 이용한 특정 부위 흡입 연기도 해야 될텐데 때라도 밀리면 곤란하잖아요. 일종의 매너죠.'
'아~ 그렇군요. 샤워 준비해 놓을께요.'
감독에게 달려가 샤워 어디서 해야 되냐고 물어보니 모텔에서 샤워를 시키라고 했다. 프리 프로덕션 기간 중에 섭외해 둔 모텔을 찾아가 숙박용 객실을 남녀 배우용으로 따로 하나씩 얻어 놓고 배우들을 데려가 각각의 방에서 샤워를 시켰다. 샤워를 마친 주연 배우 두 명을 데리고 오는데 그들만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베드씬을 앞두고 있는 극중 연인 사이였지만 대화 내용은 무척이나 천진난만했다.
'오빠 스타 잘해?'
'잘 하지. 넌 잘 해?'
'그래도 나한테는 안 될껄? 난 삼천승 넘어.'
'와~진짜 잘한다. 밥만 먹고 스타만 했냐?'
'넌 왜 이거 하게 됐어?'
'나이트에 놀러갔다가 캐스팅 됐어. 오빠는?'
'뭐 어영 부영하다가 하게 됐지.'
'조감독님 초보예요? 운전이 좀 서툰 것 같애.'
'미안요.'
'차라리 내가 하는 게 낫겠네요.'
'오빠는 운전 잘해?'
'난 면허 없는데?'
'헉...'
베드씬
날은 어느덧 어두컴컴해져 있었고 어두컴컴한 지하 다방에서는 베드씬 촬영 준비가 시작되었다. 베드씬 준비 작업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남녀 배우의 그 곳 공사였는데 여배우는 그 곳에 일종의 패드 비스무리하게 생긴 헝겊 같은 걸 붙이는 것 같았고, 남자 배우는 스타킹을 돌돌 말아 물건에 씌운 후 고무줄을 이용해 벗겨지지 않도록 마무리 작업을 했다.
남자 배우용 공사도구(여성용 스타킹 + 노란 고무줄)
충무로 극영화 연출부 시절에도 베드씬을 준비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정말 난리가 아니었다. 전 스텝들이 긴장한 채로 배우가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을 도왔고, 촬영 직전에는 배우들이 편하게 베드씬에 임할 수 있도록 꼭 필요한 스텝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세트에서 철수하기까지 했다. 매 테이크마다 여배우 몸을 가려준다고 이불을 준비하고 추위에 떨지 말라고 휴대용 난로도 준비했었다.
반면에 에로 비디오 배우들은 베드씬 연기에 아무런 거리낌도 수줍음도 없었다. 특별히 준비해야 될 것도 없었고 마음의 준비를 위한 사전 작업도 필요 없었다. 베드씬 연출은 특별한 요구 사항 없이 다양한 체위를 순서대로 지시해 주는 수준이었다.
'그러니까 다리를 벌려서 하는 체위 있잖아요. 그걸 뭐라고 하더라?'
'아~가위치기요?'
'네. 그걸 꼭 해 줬으면 좋겠거든요?'
'그러니까 정상위로 시작해서 후배위로 넘어갔다가 가위치기로 끝내란 말씀이죠?'
'네. 시간은 한 5분 정도로 해 주세요.'
'한 번에 가실 거예요?'
'일단은 한 번에 가죠. 중간 중간에 키스 같은 건 알아서 해 주시고요.'
'레디~액션!'
감독의 레디 액션 싸인이 떨어지자 마자 몇년 사귄 연인처럼 다정스럽게 애무를 시작한 후 다양한 애드립까지 구사하며 능숙하게 베드씬을 연기해 냈다.
'탁...탁...철썩...철썩...헉...헉...'
조용한 다방 안은 어느 덧 남녀 배우의 살과 살이 부딪히는 소리와 거친 숨소리로 가득차게 되었고 드라마 씬 촬영 때와는 달리 조금은 숙연한 분위기로 변해갔다.
<2x8 사춘기 이야기>의 베드씬들
베드씬이라는 게 보는 사람은 재밌을지 몰라도 연기하는 당사자들에겐 노가다 그 자체였다. 당시 에로 비디오 업계에는 영상물 등급위원회에서 정해준 노출의 제약을 서커스에나 나올 법한 아크로바틱한 체위로 극복해보려는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에로 배우들은 허리에 상당히 많은 부담을 느낀다고 했다. 여배우들의 수명이 짧은 이유가 베드씬의 엄청난 노동량 때문이라는 말도 있었다. 특히 남자 배우들의 노동량은 여배우들의 두 세배 수준이라 베드씬 연기를 위해 평소에 꾸준히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땀을 뻘뻘 흘리며 진지하게 베드씬 연기를 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나도 그들의 열정에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촬영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에서...
베드씬을 마지막으로 첫날에 예정되었던 모든 촬영을 마무리 짓고 숙소로 향했다. 도착해서 잘 준비를 마치자 시간은 벌써 새벽이었고 아침 촬영 까지는 5시간 정도 남아 있었다. 여배우는 사려 깊은 분장팀장과 함께 숙소를 쓰기 때문에 걱정되지 않았지만 혈기 왕성한 남자 배우들이 행여나 숙소를 빠져나가 피시방에라도 가지 않을까 싶어 확인차 가보았더니 하루 종일 피곤했는지 옷도 벗지 않은 채 코까지 골면서 자고 있었다. 괜히 의심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내일 잘 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숙소로 돌아가 촬영 진행 사항을 최종 점검한 후 스텝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제일 먼저 일어나 스텝들을 깨워야 한다는 부담감에 밤 잠을 설치게 될 줄 알았는데 우려와는 달리 하루 촬영을 무사히 마쳤다는 뿌듯함과 보람찬 기분에 눕자마자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오늘 촬영은 주로 야외에서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아침 일곱시에 일어나 스텝들을 깨우고 동네 식당에서 아침을 해결한 후 첫 촬영지인 고등학교 운동장으로 향했다.
방학이었기 때문에 다행히 학생들은 보이지 않았고 날이 추워서인지 운동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에로 비디오 촬영에는 이상적인 조건이었다. 주인공 성진이 발랑 까진 친구에게서 섹스 테크닉에 대해 강의를 받는 씬이어서 배우들만 잘 해주면 그다지 어려울 것도 없었다. 배우들을 불러 놓고 운동장 한 가운데에 카메라를 세팅하고 촬영을 시작하려는데 학교에서 아저씨 한 명이 달려 나왔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여기 책임자가 누구예요?'
'제가 담당잔데요?'
'촬영하는 거 허가라도 받으셨나요?'
'아니요.'
'그럼 안 되는데... 잠깐 와주시겠어요?'
뭔 일인가 싶어 아저씨를 따라 교무실로 갔다. 쌀쌀한 바깥 날씨와는 달리 교무실 안은 따뜻했다. 젊은 아가씨 한 명과 아저씨 서 너명이 사무를 보고 있었다. 나를 데려온 아저씨는 성적 떨어진 학생 나무라듯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공공 장소에서 촬영을 하려면 허가를 받으셨어야죠.'
'아! 그렇구나. 몰랐습니다. 저기 운동장 구석에서 조금만 찍다 갈꺼거든요.'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하면 안 되게 되 있거든요. 무슨 촬영이예요?'
'예. 연극 영화과 졸업 작품입니다.'
'연극 영화과 다녀요?'
'네.'
'무슨 내용인데요?'
'고등학생들의 우정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학생이어도 그렇지 이런 식으로 허가도 받지 않고 운동장을 사용하면 안 되죠. 자. 이거 작성하세요.'
'이거 작성 좀 해 주세요.'
아저씨는 나에게 운동장 사용허가선지 뭔지를 내밀었다. 뭔 일인가 싶어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계속 쳐다보고 있던 아가씨가 사태 파악을 했는지 나를 응원해주었다.
'뭐 어때요? 보아하니 오래 있지도 않을 것 같은데. 그냥 쓰라 그러세요.'
'아니야. 모든 일은 절차가 있는 건데 이렇게 아무렇게나 하면 안 되지.'
'그럼 잠깐만 있다가 갈께요. 감사합니다.'
나는 아저씨가 시킨 대로 서류 작성을 마치고 나왔다. 교무실에서 운동장 사용 허락을 받고 나와보니 촬영은 거의 다 끝나 있었다. 오늘 촬영은 주로 야외에서 이루어질 예정인데 매번 이렇게 태클이 들어오면 내가 좀 피곤해길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운동장 촬영을 마친 후 하교길에 주인공 성진이 영숙을 등에 업고 가는 장면을 찍으러 이동을 했는데 학교 보충 수업이 끝난 건지 수백명의 아이들이 정문 안에서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호기심 많은 학생들인지라 야시시한 화장을 한 채 노출이 심한 미니 스커트를 입은 여자가 남자 등에 업히는 장면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당연히 촬영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고 현장 진행을 책임져야 하는 조감독인 나는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학생들이 카메라 쪽을 쳐다보지 못하게 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저기요. 학생. 카메라 보지 말아주세요.'
'이거 뭐 찍는 거예요?'
'쟤 누구야? 못 보던 앤데?'
'카메라가 왜 저렇게 작어?'
학생들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고 촬영은 계속 딜레이 되었다. 이대로라면 촬영 일정이 연기 될 수 밖에 없었는데 덩치가 크고 인상이 좀 험악한 남자 배우가 촬영장 주변에서 기웃거리던 학생들에게 눈을 부라리며 고함을 질렀다.
'야! 뭘 봐? 그냥 안 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카메라 주변을 얼쩡 거리던 학생들은 남자 배우가 한 소리 하자 거짓말 처럼 가던 길을 가기 시작했다. 내가 쩔쩔매는 모습을 보며 답답해 하던 여배우는 남자 배우의 등에 업힌 채 깔깔 거렸다.
'호호. 오빠 최고. 옛날에 좀 놀았나 보네?'
'빨리 안 가? 뭘 봐?'
연기에 몰입해야 할 남자 배우의 도움으로 학교 앞에서 여자를 등에 업고 걸어가는 촬영을 무사히 끝낼 수가 있었다.
다음 촬영은 여배우 영숙이 옛날 애인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장면이었다. 옛날 애인 역은 촬영 전 날에 인터넷 채팅 싸이트에세 캐스팅한 신인이었다. 감독과 스텝들은 다음 촬영지인 동네 놀이터로 이동했고 나는 근처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는 신인 아저씨를 픽업하러 차를 몰고 나갔다. 아저씨는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타세요.'
신인 아저씨를 차에 태우고 촬영장에 가는 동안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에로 연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아요. 나중에 비디오 껍데기에만 안 나오면 되요.'
'껍데기에 나오면 안 되요?'
'조그맣게는 나와도 되는데 크게는 싣지 말아주실꺼죠?'
'그럼요. 남자 얼굴 크게 나온 비디오를 누가 빌려보겠어요.'
'돈은 오늘 바로 입금되나요?'
'네. 촬영 끝나면 바로 현금으로 드릴께요.'
'제가 카드빚이 좀 있어서 급하거든요.'
'아~네.'
왜 에로 배우를 하겠다고 나선 건지 궁금했었는데 미스테리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연기 경험은 있으세요?'
'초등학교 때 학예회에서 주인공 해 본 적 있어요.'
'와~잘하시겠네요.'
'제가 오늘 연기 하려고 에로 비디오 몇 개 빌려서 연구했는데 뭐 제대로 연기하는 것도 아니던데요? 그 정도 쯤이야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거예요.'
'네.'
'근데 공사는 어떻게 하는 거예요?'
'스타킹을 돌돌 말아 똘똘이에 씌우고요 고무 밴드로 마무리 해 주시면 되요?'
'제가 해야 되나요? 그러다 발기라도 되면 어떡하죠?'
'글쎄요. 보통 발기는 잘 안 되는 것 같던데요?'
'제 물건이 좀 크거든요. 참 여배우는 이뻐요?'
'네. 성격은 좀 터프하지만 일본 미소녀 스타일이예요. 몸매도 좋고.'
'베드씬은 힘든가요?'
'아니요. 그냥 하던데로만 해 주시면 되요.'
이감독의 말대로 확실히 에로 연기가 처음이어서 그런지 궁금한 것도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아 보였다. 경제적인 이유로 캐스팅을 하긴 했다만 베드씬 찍는 도중에 실수라도 할까봐 걱정이 되었다.
'적당히 하는 척만 하면 되는데 너무 오바하지만 않으시면 되요.'
'오바요?'
'음... 에로 배우이기 이전에 여자잖아요. 적당히 눈치봐서 좀 싫어하는 것 같다 싶은 행동은 하지 말아야죠. 예를 들어 너무 들이댄다든가 지나칠 정도로 세게 마찰한다던가... 터치도 신경 써 주시고요.'
'터치요?'
'예를 들어 손가락을 빳빳이 세워 집어 넣으려고 한다든가 그런 행동은 좀 그렇잖아요.'
'복잡하네요. 그냥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면 되는 건줄 알았는데.'
'체위는 감독님이 정해주신 순서대로만 하시면 되구요.'
'풍차돌리기 같은 것도 하나요? <정글 주스> 보니까 여자 위에서 뺑글 뺑글 돌기도 하던데.'
'우리 감독님은 자연스런 체위를 선호하시니까요 걱정 하지 않으셔도 되요.'
'제가 허리가 좀 안 좋아서요 부탁 좀 드릴께요.'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촬영장에 도착했고 대강 인사를 나눈 후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신인 아저씨는 여배우가 마음에 들었는지 '놀이터에서의 즐거웠던 한 때'를 리얼하게 연기해주었다.
연기력도 기존의 남자 배우들에 비교해 전혀 밀리지 않았다. 매니저들은 자기 회사 소속 배우들을 쓰지 않고 민간인을 썼다며 조금 못 마땅해 하는 눈치였지만 감독은 신인 아저씨의 연기를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았다.
야외에서의 촬영이 끝나고 두 사람의 베드씬을 찍기 위해 다방으로 이동했다. 다방 쪽방에 이불을 깔고 세팅을 하는 동안 아저씨는 공사를 하기 위해 스타킹과 고무줄을 들고 다방 구석으로 갔다. 여배우는 남자가 신인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조금 걱정이 되는 눈치였는지 살짝 짜증을 내며 담배만 벅벅 피워댔다.
아저씨가 공사를 마치고 돌아오자 아니나 다를까 우려하던 사태가 벌어지고야 말았다. 프로 배우들이 공사를 한 것과는 달리 경험이 없던 신인 아저씨는 행여 발기라도 되지나 않을까 싶어 물건을 있는 힘껏 고무줄로 꽉 조여놓은 것이다.
'저기 조감독님. 너무 꽉 조여서 좀 아프니까 빨리 좀 끝내주세요.'
'허허... 연기를 잘 해야 빨리 끝나죠.'
감독의 체위 순서 지정이 끝나자마자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아저씨는 뭐가 그리 고통스러운지 인상을 박박 쓰면서 베드신 연기에 임했고 그러다 보니 예상 외로 리얼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평소 운동을 열심히 했는지 체격도 좋았고 근육도 제법 있는 편이라 전문 배우를 해도 잘 할 것 같아 보였다. 첫 베드씬 촬영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다음 베드씬 촬영을 위해 장소 이동을 하려는데 매니저들이 아저씨에게 접근해 뭔가 대화를 시도하려는 것 같았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아마도 캐스팅 제의가 아니었나 싶다.
두번째 베드씬 촬영은 조금 힘들었다. 처음 베드씬이 이별 후에 다시 만나 재회의 섹스를 하는 것이었다면 이번 베드씬은 즐거웠던 한 때의 모든 정열을 불싸지르는 연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카메라와 조명을 세팅하는고 있는데 아저씨가 나에게 다가왔다
'저기요. 다른 배우들은 ㅇㅇ 받는다는데 왜 나는 반값이예요?'
'다른 배우들은 이틀 찍잖아요.'
'물어보니까 베드씬 수는 나와 별 차이도 없던데 조금 더 올려주시면 안 되요?'
'일단 감독님에게 말씀드려 볼께요.'
'이게 생각보다 너무 힘들어서 그래요. 헉...헉...'
이번 베드씬은 더 힘들었다. 분량도 거의 두배에 가까웠고 감독이 요구하는 체위도 버라이어티했다. 아저씨는 서서히 지쳐갔고 여배우도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한 테이크가 끝날 때마다 땀을 비오듯 흘려대는 배우들에게 찬 물로 적신 수건을 갖다 주었는데 다음 테이크가 끝나면 다시 땀을 비오듯 흘려댔다. 특히 아저씨는 생전 처음 해 보는 듯한, 허리에 무리가 가는 격렬한 체위를 소화하느라 매우 힘들어했다. 더구나 이번에도 물건을 고무줄로 꽉 조여놨기 때문에 이중 삼중의 고통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아저씨 그렇게 조이면 안 아파요?'
'갑자기 튀어 나올까봐 그렇죠. 쪽팔리잖아요.'
조명기의 열기와 두 남녀 배우의 열기 때문에 촬영장은 점점 더워졌고 아저씨의 혼신의 힘을 다한 열연 덕분에 감독도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마지막 베드씬 촬영이 끝나고 식사를 하기 위해 삼겹살 집으로 이동했다. 아저씨는 감독 바로 옆에 앉아 페이 인상 협상을 벌이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거부하던 감독도 워낙에 아저씨가 열연을 펼친 터라 결국 인상해 주고야 말았다.
저녁을 먹고 난 후 얼마 남지 않은 분량을 촬영 하는 동안 사람들에게 나눠줄 돈을 찾아오기 위해 은행에 가서 돈을 인출해 왔다. 촬영장 밖에 차를 주차해두고 현금을 계산하고 있는 동안 촬영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는데 감독에게 전화가 왔다.
'돈 다 찾아왔지?'
'네. 지금 나누고 있어요.'
'근데 배우들 계약서를 써야 되는데 근처에 복사할 만한 곳 있나?'
'지금 열두시 가까이 됐는데 없을 것 같은데요.'
'그럼 피시방 가서 출력해 올래?'
'이메일로 저장돼 있나요?'
'나한테 원본이 있으니까 한글로 타이핑 해서 출력하면 되잖아.'
'네...;;;'
감독에게 계약서 원본을 받아 동네 피시방으로 갔다. 계약서는 스텝용과 배우용이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았는데 계약서에는 '을'은 '갑'이 원하면 재촬영에 응해야 하고 노출 연기도 거부할 수 없다는 말이 있었다. 나도 이 계약서에 싸인을 해야 하는데 감독이 원하면 벗어야 되는 건가 싶어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촬영장으로 돌아와 보니 촬영은 거의 마무리 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1박 3일' 간의 촬영 기간 동안 어느 새 친해졌는지 촬영장 구석에서 담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을 한 명 씩 불러 계약서에 싸인을 받았는데 스텝들은 '갑'이 원하면 노출 연기를 거부할 수 없다는 조항을 보고서도 싸인을 했는데 원래 이런 식으로 일이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이런 저런 잡일들을 마무리 하는 사이 촬영은 마무리 되었다. 촬영장 청소와 기자재들을 정리하는 사이에 감독은 사람들을 불러 돈 봉투를 나누어 주었다.
사람들은 금액을 확인 하고는 '수고하셨습니다' 인사를 한 후 차를 타고 뿔뿔이 흩어졌다. 이제 막 정들만 했는데 이별이라니 조금 아쉽긴 했다. 촬영이 끝났다는 말에 다방으로 온 할머니 사장님은 임대료를 조금 더 달라며 생떼를 쓰기 시작했다. 촬영 기간 동안 다방을 찾아 온 손님 수가 대 여섯 명도 안 되었고 촬영팀 덕분에 횡재한 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기료가 많이 나왔네 단골들 불평이 대단하네 어쩌네 하면서 위자료까지 물어달라는 식이었다. 감독은 이리 저리 사장을 어르고 달래서 협상을 마무리 지었고 기분 좋게 다방에서 빠져나왔다.
감독과 함께 사무실로 가서 짐 정리를 마친 후 편집 스케줄을 잡고 집으로 가는 새벽 첫 전철에 올랐다. 밤을 새웠음에도 불구하고 잠은 오지 않았고 정신도 똘망 똘망했다. 첫 조감독 참여 작품을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었다는 뿌듯함에서 였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어느 새 충무로 역이 다가오고 있었다.
음모는 절대 불가!
다음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아 편집을 시작했다. 찍어놓은 분량을 이어 붙이기만 하면 되는 작업이므로 별다른 어려운 점은 없었지만 컴퓨터가 자꾸 다운이 되서 많이 짜증이 났었다. 편집 작업시 가장 중요한 것은 베드씬에서 배우들의 음모 노출 부분을 다 잘라내야 하는 것이다. 영상물 등급 심의 위원들이 에로물을 심의할 때 베드씬 부분은 조그셔틀을 돌려가며 초단위도 아닌 프레임 단위로 체크를 한다는 것이다. 조금만 거뭇 거뭇하더라도 다 편집을 했고 그러다 보니 베드씬 분량만 앞뒤로 돌려가며 보게 되어 사무실은 편집하는 몇 일 동안 색정에 달뜬 남녀의 신음 소리가 떠날 새가 없었다. 거의 24시간 정도 집중적으로 신음 소리만 듣다 보니 이제는 성의 있는 신음 소리와 무성의한 신음 소리를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편집을 마치고 영등위에 심의를 넣은 몇일 후 다시 편집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베드씬 부분에서 배우들의 음모가 노출되었다는 것이다. 편집할 때 특별히 주의해서 컷팅을 했기 때문에 음모가 노출되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데크에 비디오 테잎을 넣고 플레이를 해 봐도 도저히 음모 노출 부분을 찾을 수가 없어 결국 다시 프리미어 프로그램을 돌려 프레임 단위로 찾아보았다. 프레임 단위로 돌려가며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0.4초 정도 거뭇 거뭇한 음모가 노출되어 있었다. 심의위원들은 역시 전문가였다.
재편집을 해서 심의를 넣고 통과된 다음 공장에서 작품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고 몇일 후 대여점에 출시가 되었다. 투자사에서도 만족하는 눈치였고 작품 자체도 그리 나쁘지 않은 편이었지만 아쉽게도 언론에서는 아무런 관심도 보여주질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새로 출시되는 에로 비디오가 홍보 효과가 있을 정도의 분량으로 언론에 기사화되려면 오고가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게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20세기 소년
대여점에 출시가 된 후 씨네21이나 필름2.0, 무비위크 등의 영화 잡지들과 인터넷 영화 관련 싸이트들을 돌아다니면서 <2X8 사춘기>를 본 사람들의 리뷰나 감상문 따위를 찾아봤지만 단 한 건의 글도 올라와 있지 않아 조금 실망스러웠다. 크게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찾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정말 작품에 관한 글은 한 줄도 없었다. 극장에 걸리는 영화라면 작품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실망을 했더라도 최소한 욕글은 올라오기 마련인데 에로 비디오는 욕글마저 없었다. 이감독이 다음 작품을 구상하는동안 그렇게 방 안에 틀어박혀 온종일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세상은 우리 작품에 아무런 관심도 보여주질 않았다.
단순 비교하기는 좀 그렇지만 '20세기 소년' 이란 만화를 보면 주인공 일당들이 학창 시절에 클래식같은 점잖은 음악만 틀어주는 교내 음악 방송국에 난입해 록을 트는 장면이 있다. 감옥같은 학교를 바꿔 버리겠다는 나름대로 어린 학생들의 치기 어린 행동이었는데 이어지는 장면은 변함없는 일상이었다. 뭐 그 비슷한 심정이었던 것 같다.
이대로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다음에는 더 잘 만들어서 아무런 반응이 없는 인터넷에 최소한 욕글이라도 올라오게 하고 싶었다.
몇 일 후 이감독에게서 전화가 한 통 왔다.
'다음 작품은 정하셨어요?'
'그거 때문에 전화했는데 이번엔 니가 한번 연출해 볼래?'
'아~'
'내가 옆에서 제작 부분을 도와줄거니까 그렇게 어렵진 않을거야.'
'그래도 그게... 제가 해도 될까요?'
'왜? 연출 하고 싶어했잖아. 한번 해 봐.'
'너무 갑작스러워서...'
'한 달 뒤에 출시해야 되니까 서둘러야 되거든. 생각해 둔 거 있어?'
'음... 저기 90년대 후일담이라고요...'
'90년대 후일담? 제목은 좋은데 내용이 뭔데?'
'80년대 운동권 선배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90년대 지방 소도시에 위치한 대학가에서 펼쳐치는 운동권 동아리에 몸담은 적 있는 선후배'들'간의 사랑과 섹스 얘기죠.'
'오~좋은데? 한번 보내봐!'
'네. 그럼 조금 손 봐서 오늘 내로 보낼께요.'
90년대 후일담
'90년대 후일담'은 원래 졸업 작품으로 기획된 작품이다. 내가 대학을 입학한 90년대 후반만 해도 80년대 운동권 선배들의 흔적이 학교에 남아 있던 시기였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학번들은 그런 흔적들에 그리 쉽게 적응하지 못했고 그 흔적들을 무관심으로 지워나가는 세대가 되었다. 사라져 가는 흔적들 속에서 욕정과 색욕의 늪에 빠져 방황하는 청춘들을 세밀하고 끈적한 터치로 묘사한 작품인데 학생이 찍기엔 분량이 너무 길고 베드씬이 많아 캐스팅에 어려움을 겪다가 잠정 연기한 작품이었다. 프로듀서가 함께 만들어보자고 제의해오자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시나리오를 조금 더 야하게 수정해서 이감독에게 보냈다. 이감독은 시나리오가 에로 비디오로 만들기엔 조금 어려운 듯 하지만 일단 사장에게 보여준다고 했다. 투자 결정을 기다리는 몇 일동안 내 머리속에는 대학 생활을 하며 들어왔던 수많은 에로틱한 야사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누구랑 누가 술을 마시고 사라졌는데 다음 날 아침에 나타나더라. 방학 때였는데 누구랑 누가 버스에서 내려 자취방으로 손 잡고 가더라. 길 지나가던 중이었던 아무개 방에서 여자 신음 소리가 온 동네 떠나가도록 들리더라.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데 무슨 과 아무개가 콘돔 한 박스를 사 갔는데 편의점 앞에는 무슨 과 누구가 기다리고 있더라 등등... 규모가 작은 대학가 자취촌이라 그런 야사들이 셀 수도 없이 많았고 소문도 빠른 편이어서 그런 비스무리한 일이 누군가의 눈에 발각이라도 되는 날이면 한 동안 술자리의 안주감이 되는 걸 각오해야만 하는 분위기였다.
아~이런 이야기들만 다 모아서 시나리오를 써도 에로 비디오 백편은 만들 수 있겠구나 싶어 벌써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잘 되면 시리즈로 만들어서 나중에 ‘원소스멀티유즈’ 전략으로 연극도 만들고 야게임으로도 만들고 캐릭터 상품도 제작해 봐야지 등등의 망상에 빠져 생각만으로도 행복한 몇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결정적으로 졸업을 한 학기 앞으로 앞두고 있었지만 졸업 작품을 못 만들고 있었는데 에로 비디오 입봉작으로 졸업 작품까지 한 큐에 해결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산학 협동이었다.
사장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다. 대사들도 잘 와닿지 않고 이야기가 억지로 전개되는 것 같아 재미가 없고 결정적으로 야하지 않다고 했다. 에로 비디오가 야하지 않으면 게임 끝이다. 아무래도 졸업 작품을 목적으로 기획된 시나리오라 어느 정도 점잖빼고 있던 게 사실이었다.
야하지 않다는 반응에 자존심이 상한 나는 바짝 분발해 다시 시나리오를 썼다. 이번에는 미이케 다케시의 '비지터Q'를 참조해 여자의 그곳으로 들어간 남자의 물건이 어떤 이유로 인해 빠지지 않는다는 환타스틱한 설정까지 삽입했고 인터넷 야설을 뒤져 최대한 더럽고 저속한 대사와 나레이션도 시나리오 구석 구석에 촘촘히 넣어 주었다. 마지막으로 예전부터 꼭 해 보고 싶었던 '엔딩 부분에서 뜬금없이 등장 인물들이 춤을 추는 장면'도 삽입했다.
반응은 당연히 좋았다. 에로 비디오 답다는 것이다. 기존의 트렌드와는 너무 달라 조금 어려운 것 같긴 하지만 에로 비디오로 출시할 수 있을 만한 코드가 있어 그리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지 제목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90년대 훗일담'이라니... 사장은 전혀 납득하지 못했다. 내 딴에는 몇 년전까지만 해도 한국 문단을 휩쓸었던 '80년대 후일담' 문학을 섹스 이야기로 패러디한다는 의도가 있었지만 에로 비디오 업계의 반응은 냉담할 뿐이었다. 곰곰이 생각한 후 ‘욕정은 오래 지속된다’ 라는 제목을 제안했지만 사장은 제목은 나중에 회사에서 알아서 짓겠다며 일단 찍어오라고 했다.
수정된 ‘90년대 후일담’ (출시명:코리안 파이) 시나리오
1.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 잔뜩 힘을 주고 있는 동명.
벽에 '독어과 산소 학번 대표 창녀 신민지 011-9934-102x'라고 씌어진 낙서를 본다.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한다.
동명
저...독어과 산소 학번 대표 창녀 신민지씨죠?
민지 (핸드폰)
네...그런데요?
동명
한 번 하는데 얼마예요?
동명이 한 손에는 핸드폰, 한 손에는 디카를 화장실 벽에 대고 아무렇게나 셔터를 눌러댄다.
디카의 이미지들 연속...
민지 (핸드폰)
기본인 콘돔 착용하고 좆박고 쑤시고 사정하기 1만원. 옵션으로는 유방 만지기 5천원 좆 빨아주기 1만원 항문 빨기 1만원 69자세로 성기 애무 1만5천원 딥 키스 1만원 추가하고 특수 옵션으로는 한 번 사정하고 다시 박기 1만5천원 콘돔 미 착용 후 질내 사정비 1만원 콘돔 미 착용 후 배위나 보지털에 사정 5천원 사정 후 입으로 뒷마무리 해주기 5천원 보지 속에 자지 넣은 후 10분 후부터 5분 추가시 마다 1만원 추가 성교 후 같이 샤워하기 5천원 빨아주기로 입에다 사정하기 5천원 추가하는 대신 보지에는 삽입 불가하고요 성교하다가 사정만 입에 하기 1만 5천원 성교 중 온몸 입으로 핥기 1만 5천원 추가입니다. 체위 옵션으로 정상위는 기본형 두 다리 들고하면 5천원 추가 자지 꽂은 채 들고하는 것은 5천원 추가 후배위는 5천원 추가 한 다리 들고 하기 5천원 항문 성교비는 1만 5천원 추가 여성 상위는 5천원 추가 그리고 성교 과정에서 좆빨기, 삽입 장면, 펌프질, 사정 장면 등 사진 촬영은 1장당 2만원이고 성교 전 과정 비디오 촬영 테이프는 1개당 5만원입니다.
2. 캠퍼스 운동장
동명, 초췌한 얼굴을 하고 아무도 없는 학교 운동장 한 가운데에서 뺑글 뺑글 돌고 있다.
3. 타이틀
욕정은 오래 지속된다
4. 민지의 원룸
침대에 누워 있는 동명. 민지, 침대 위에서 여성 상위 체위로 허리를 돌리고 있다. 동명, 신들린 듯이 디지털 카메라를 찍고 있다. 터지는 후레쉬 빛 사이로 현란하게 돌아가는 민지의 허리.
민지
원래는 한 장당 2만원인데 디카니까 써비스로 한 장당 2천원에 해 줄께.
동명
고마워.
민지
또 오는 거 알지? 홍보 많이 하구...
동명, 사진기를 내려 놓고 민지 위로 올라가 후배위로 민지를 찍어 내리기 시작한다.
민지를 들고 뒤에서 박아 대며 온 방을 쓸고 다니기 시작하다 사정을 한 후 쓰러진다.
민지
근데...오빤 누구야?
동명
나? 나는... 니 선배다.
동명, 대답없이 담배에 불을 붙여 하늘로 내 뿜는다. 민지, 동명의 품에 안겨 지긋이 눈을 감는다.
5. 지선의 원룸
텔레비전이 켜 있는 어두운 원룸. 지선이 텔레비전 앞에 우두커니 앉아서 무표정으로 화면을 응시하고 있다. 그렇게 화면을 보고 있는 그녀의 뒤에서 이불이 들썩이더니 현민이 일어나 앉는다.
현민
자기 나 말고 몇 명이랑 해 봤어?
지선, 대답하지 않은 채 계속 텔레비전을 본다.
현민, 지선의 뒤로 다가와 어깨를 마사지 해 준다.
현민
몇 놈이랑 해 봤냐구?
지선, 계속 대답하지 않는다. 현민, 갑자기 지선의 목을 잡고 자신의 무릎 위로 엎어뜨린다. 현민, 지선의 바지를 벗겨 엉덩이를 깐다. 매섭게 지선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때리기 시작한다. 한대, 두대, 세대, 네대, 다섯대... 지선의 엉덩이가 점점 현민의 손바닥 자욱으로 붉게 물든다. 현민, 갑자기 지선을 내 팽개친 후 바닥에 엎드린다. 지선, 현민의 바지를 벗겨준 후 올라 타려고 한다. 현민, 그녀를 내 팽개친다.
바닥에 쓰러지는 지선.
현민
여성 상위는 안 돼.
현민, 지선의 엉덩이를 들어 후배위를 시작한다.
미친 듯이 내려찍는 현민.
현민
너의 과거 용서할 수 없어. 더러워.
현민, 반복된 행위 끝에 사정을 한 후 바닥에 쓰러진다.
그 때 밖에서 초인종 소리가 난다.
지선
누구세요?
동명
니 선배다.
갑자기 문이 덜컹 하고 열리더니 동명이 들어와 현민의 위로 올라타 조르기를 시도한다.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현민. 그러나 동명의 팔이 현민의 목덜미를 감싸기 시작하고 기술이 제대로 걸리자 현민은 방 바닥을 손으로 치기 시작한다. 둘을 떼어 놓으려 달려드는 지선. 그제서야 조르기를 푸르는 동명.
지선
선배님... 왠 일이세요?
동명
취직이 안 되 집에서 쫓겨 났다... 당분간 여기서 지낸다. 씨발, 지방대.
현민, 바닥을 떼굴 떼굴 구르며 목을 만지고 기침을 하며 괴로워 한다.
6. 지선의 방
지선, 동명, 현민 조그만 탁자에서 밥을 먹고 있다. 지선과 현민은 조금씩 소심하게 먹는데 동명은 우걱 우걱 무식하게 먹는다. 현민은 자꾸 동명의 눈치만 보고 지선은 힘없이 한 숟갈 한 숟갈 떠 먹는다. 밥 그릇을 비운 동명, 지선에게 빈 밥그릇을 내 민다. 지선, 밥을 하나 더 퍼서 동명에게 준다. 동명, 이번에도 무식하게 밥을 비우고 텔레비전 앞으로 가서 벌러덩 드러누워 텔레비전을 본다. 한숨을 쉬는 현민. 현민, 지선을 노려본다. 지선, 고개를 숙인다. 현민, 입술만 움직여 '씨발년'이라고 말한다.
7. 지선의 방
동명, 침대 위에서 대자로 누워 자고 있다. 지선,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현민, 지선 옆에 나란히 앉아 있다가 동명의 눈치를 보며 슬금 슬금 밖으로 나간다.
8. 복도
복도 끝으로 달려가는 현민의 뒷 모습.
9. 민지의 방
현민, 민지의 방 문을 덜컥 하고 열고 들어 온다. 자고 있는 민지, 눈을 부비며 일어난다. 현민, 민지에게 돈 다발을 뿌린다. 민지, 바닥에 떨어진 돈 다발을 줍는다. 현민, 화장실로 들어간다.
10. 민지의 방 화장실
현민, 오줌을 누고 있다.
현민
씨발...씨발...씨발...씨발...
민지, 오줌을 누고 있는 현민의 뒤로 와 팔로 목을 감아 귀에 입술을 대고 속삭이기 시작한다.
민지
오늘 이상한 손님이 왔어.
현민
혹시...
민지
우리과 선배라던데?
현민
이런...제기랄.
현민, 몸을 부르르 떨고 물을 내린다.
11. 민지의 방
현민, 엉덩이를 뒤로 쭈욱 들고 있는 민지의 뒤에 서 있다. 잠시 후 바지를 벗고 삽입을 시작한다. 지선의 엉덩이를 잡고 뒤에서 하다가 그녀를 눕힌 다음에 앉은 자세로 하기 시작한다. 활짝 웃고 있는 지선의 얼굴을 떠 올리며 혼자 중얼대기 시작한다.
현민
니가 한 만큼 나도 할꺼야. 니가 한 만큼 나도 해야 널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애.
니가 한 만큼 나도 할꺼야. 니가 한 만큼 나도 해야...윽
현민, 크게 한 숨을 쉬며 플라톤의 포스터 처럼 비장한 포즈를 하고 지선의 위로 쓰러진다.
현민, 죽어가는 듯이 한숨을 쉰다.
민지
집에 가. 시간 됐어.
현민
알았어.
현민, 일어난다.
민지, 휴지를 꺼내 리얼하게 음부를 닦기 시작한다.
12. 지선의 방
지선,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고 동명은 누운 채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동명, 혼자 깡소주를 비운다.
지선
왠 낮술? 우리 농활 온 거 아니잖아요.
동명
그래도 그 땐 치열했다.
지선
치열하면 뭐해요...지방대 생 주제에...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우리 삽질한거예요. 삽질.
동명
대학은 서울에서 다녀야 겠더라.
너두 편입 준비나 해라.
지선
소원 풀었네요...서울...가고 싶어했잖아요...
동명
솔직히 여기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취직도 안되구... 운동도 못하구...
너무 암울하잖아. 역시 대학은 서울에서 다녀야 되.
동명, 계속해서 깡소주를 비운다.
동명
난 인생의 낙오자야. 너 나 아직도 사랑하니?
지선, 말 없이 드러눕는다.
지선
모르겠어요. 사는 게 너무 피곤해요.
동명, 지선의 옆자리에 눕는다. 누워 있는 지선을 쳐다 본다. 지선의 위로 올라간다.
지선
어...선배 모해요?
동명
바닥이 뜨거워서 좀 옮길려구...
동명, 지선을 넘어간다. 지선, 눈을 감는다.
동명, 누워있다가 다시 지선의 위로 올라간다.
지선
어...선배 모해요?
동명
이쪽 바닥이 더 뜨겁네...여기 온돌이지?
동명, 다시 넘어 간다. 지선, 다시 잠든다.
동명, 가만히 누워 있다가 자고 있는 지선의 옷을 벗긴다.
지선, 잠에서 깬다. 둘의 눈이 마주친다.
지선
선배 뭐 해요?
동명
우리... 결혼할래?
지선
나랑 몇 천번 했잖아요. 또 하고 싶어요?
동명, 허겁 지겁 지선의 옷을 벗긴다. 지선, 동명이 옷을 벗기기 편하게 엉덩이를 들어 준다. 동명, 별 감흥 없이 지선에게 삽입한다. 천천히 허리를 돌리기 시작하는 동명. 정상위, 측배위, 후배위, 가위 치기를 하지만 사정은 하지 못한다. 하지만 둘의 호흡은 정말 잘 맞는다. 동명, 한숨을 쉬며 결합을 푼다.
동명
이젠 지겨워서 못하겠다. 이건 섹스가 아니야. 이런 게 섹스 일리 없어.
결국 성은 환상이란 얘긴가? 씨발...
동명, 재떨이에 길게 침을 뱉는다. 엉덩이가 까인 채로 엎드려 있는 지선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13. 복도
현민, 현관문에 귀를 대고 듣고 있다. 문이 열리자 동명이 나온다. 숨는 현민.
동명, 건물에서 나가고 현민은 집 안으로 들어간다.
14. 지선의 방
현민, 현관 앞에 서서 엎어져 있는 지선을 경멸을 가득 담아 바라본다.
지선, 그런 현민을 흘낏 보구 한숨을 쉰다. 현민, 뚜벅뚜벅 지선에게로 걸어 온다.
지선
다 들었니?
현민, 지선의 엉덩이를 찰싹 때린다. 엎드려 있는 지선, 움직이지 않는다.
현민
다 들었어.(찰싹) 너 미쳤구나?(찰싹) 너 미쳤구나?(찰싹) 나 아직 군대 안 갔어!(찰싹)
안 갔다구!!(찰싹) 나 군대 가면 버릴꺼야? 어? 버릴 꺼냐구! (찰싹, 찰싹)
현민, 미친 듯이 손바닥을 날리다가 삽입을 하려고 한다. 순간 바닥에 얼굴을 박은 채 움직이지 않던 지선. 확 돌아 누워 현민의 눈을 응시한다. 현민, 놀란다. 지선, 일어나 현민을 엎어뜨리고 올라 탄다.
현민
내가 여성 상위는 안 된다고 했지?
현민, 일어나려고 하지만 지선은 꿈쩍 않고 오히려 현민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지선
아이~이쁜 우리 아기. 가만 있어라~착하지?
현민의 발버둥이 점점 사그러든다. 지선, 얌전한 현민의 얼굴을 가슴 속에 묻는다.
지선
우리 아기 착하지. 얌전하게 있어라. 그럼 이뻐해 줄께~?
현민, 그런 지선의 얼굴을 보고 있다가 갑자기 울먹이기 시작한다.
현민
으앙...나 안 버릴꺼지?
지선
그럼~! 내가 우리 이쁜 애기를 왜 버려. 안 버려. 미치도록 이뻐해 줄께. 알지?
지선은 서서히 발기하는 현민의 성기를 몸 안에 넣기 시작한다. 현민은 눈물을 닦고 활짝 웃기 시작한다. 지선은 서서히 허리를 돌리기 시작하고 현민도 그에 응한다. 현민이 처음으로 정상위를 시작한다. 점점 가속이 붙어 정상위에서 가위치기로 그리고 두다리 어깨 올리기로 가면서 절정에 다다르기 시작한다. 절정과 함께 정적이 찾아오고 둘, 서로를 사랑과 신뢰로 가득찬 눈길로 응시한다.
현민
누나...고마워.
현민, 지선의 이마에 키스를 하고 사랑스럽게 안아준다.
15. 거리
동명, 골목 한 가운데에 서 있다가 골목 귀퉁이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한 여자에게 다가간다.
동명
야... 나 사랑하니?
여자
미쳤니?
동명, 여자의 따귀를 갈기고 어디론가 성급히 걸어간다. 어이없다는듯이 동명을 바라보는 여자.
16. 민지의 방
민지, 방에서 혼자 체위 연습을 하고 있다. 이렇게도 자세를 잡아 보고 저렇게도 자세를 잡아 보고 열심히다. 정상위로 누워 있는데 갑자기 문이 덜컹 하고 열린다. 다짜 고짜 들어오는 동명. 난데 없이 민지의 위로 올라 탄다.
민지
돈 주세요. 선배님.
동명
나 갈 곳 없이 외로워. 우리 연애나 하자.
민지
기본인 콘돔 착용하고 좆박고 쑤시고 사정하기 1만원.
옵션으로는 유방 만지기 5천원 좆 빨아주기 1만원 항문 빨기 1만원이구요...
동명, 민지의 입을 막는다.
동명
진심으로 사랑하는 건 얼마야?
민지
그런 건 없어...악!
동명, 갑자기 삽입을 해 버린다. 무지 막지하게 박아대기 시작하는 동명. 민지, 괴로워 한다.
민지
난 대가 없는 섹스는 못 해.
민지, 두 손으로 동명의 머리를 잡아 얼굴에 가까이 댄다.
민지
너 큰 일 났 어.
동명
으...악! 뭐야 질경련이야?
민지
내가 큰 일 난다고 했지? 난 사랑 같은 건 모른단 말야.
동명, 애처로이 삽입한 성기를 빼려고 한다.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고 마치 섹스하는 것 같아 보인다. 온갖 체위를 동원해도 빠지지가 않는다. 동명, 지쳐서 쓰러진다. 눈을 감는다.(C.L)
동명의 나레이션
나는 내 나름대로 버텼어. 나를 생각하는 만큼 타인에 대해서도 생각했고 그 때문에 죽도록 얻어맞기도 했어. 그런데 때가 되니까 결국은 모두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더군. 나만 돌아갈 장소가 없더라구.
마치 의자 차지하기 게임 같은거지. 씨발...이럴 줄 알았으면 공부 열심히 하는 건데...
동명, 마침내 울기 시작한다. 민지, 그런 동명을 보다가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꺼낸다.
민지
나 좀 도와줄래? 돌아온 선배 드디어 사고 쳤다.
17. 지선의 방
지선과 현민, 나란히 침대 위에 누워 있다. 현민, 지선의 가슴에 안긴 채로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현민
누나. 선배가 사고쳤대요.
지선
왜?
현민
민지의 질경련에 걸려서 괴로워 하고 있대요. 우리가 도와줘야 되요.
지선과 현민, 벌떡 일어나 옷을 입고 나갈 준비를 한다. 현민, 나갈 채비를 다 하고 현관에 서 있다. 지선, 화장대 앞에서 메이크 업을 하고 있다. 한숨을 쉬는 현민. 지선, 마침내 립스틱을 다 바르고 나간다.
18. 거리
달리고 있는 현민과 지선.
19. 민지의 방
지선과 현민, 방으로 들어 온다. 동명과 민지는 이불 속에서 괴로워 하고 있다. 지선, 결합된 상태로 괴로워 하고 있는 동명에게 다가간다. 민지는 한가로이 담배만 피우고 있다. 동명, 신음을 내고 있다. 동명, 지선을 쳐다 본다. 지선의 뒤에서 후광이 보이고 마치 천사가 다가오는 것 처럼 보인다. 지선, 동명 옆에 앉아 머리를 자애로운 표정을 하고 쓰다듬어 주기 시작한다. 동명, 신음을 그치고 지선을 바라본다. 민지, 부러운 듯이 둘을 보고 있다. 지선, 그런 민지를 보고 신비로운 빛이 나는 손으로 민지의 머리도 쓰다듬어 준다. 민지, 긴장을 푼다. 그러자 민지의 질경련이 풀리고 동명과 민지는 결합 상태에서 풀려난다. 그제서야 민지에게서 풀려 나와 떼굴 떼굴 구르기 시작하는 동명. 동명, 지선을 멍한 얼굴로 쳐다 본다. 모두들 지선을 응시한다. 순간 지선이 손가락을 딱 치자 어디선가 흥겨운 음악이 흘러 나오고 모두들 신나게 춤을 추기 시작한다. 드디어 손에 손을 잡은 동명과 지선.
동명
날 용서해 주겠니?
지선
여전히 사랑하고 있어요.
지선, 동명에게 윙크를 한다. 지선의 발 아래 무릎을 꿇고 쓰러지는 동명. 흐느끼고 오열한다.
그런 둘을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현민과 민지. 서로의 손을 꼬옥 잡는다.
20. 길
동명과 현민, 민지와 지선과 나란히 서 있다.
동명
나 희망을 가져 볼께.
지선,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현민
누나... 제대 할 때까지 기다릴꺼지?
지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동명과 현민, 지선에게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간다. 점점 멀어져 가는 동명과 현민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지선의 옆에는 민지가 서 있다. 민지, 뒤에서 지선의 옆으로 다가와 지선의 손을 꼬옥 잡아 준다. 지선, 눈물을 흘린다. 민지, 지선의 눈물을 혀로 닦는다.
21. 암전
22. 지선의 방
지선, 침대 위에 누워서 편지를 읽는다. 옆에는 민지가 누워 있다.
현민의 나레이션
누나가 정말 그리워. 하루에도 몇 번씩 누나 생각만 해.
아직도 내 손가락에는 누나 속살냄새가 남아 있는 것 같애.
지선의 옆에 이불이 들썩이더니 민지가 지선의 젖을 잡는다.
지선... 현민의 편지를 읽다 창 밖을 본다. 민지, 지선의 꼭지를 쭈욱 잡아 뺀다.
지선
그 놈의 욕정 오래도 지속된다.
23. 엔딩 자막
롤링 타이틀 올라가고 배경 화면으로는 동명이 디카로 찍었던 민지의 사진이 깔리고...
민지의 나레이션
기본인 콘돔 착용하고 좆박고 쑤시고 사정하기 1만원. 옵션으로는 유방 만지기 5천원 좆 빨아주기 1만원 항문 빨기 1만원 69자세로 성기 애무 1만5천원 딥 키스 1만원 추가하고 특수 옵션으로는 한 번 사정하고 다시 박기 1만5천원 콘돔 미 착용 후 질내 사정비 1만원 콘돔 미 착용 후 배위나 보지털에 사정 5천원 사정 후 입으로 뒷마무리 해주기 5천원 보지 속에 자지 넣은 후 10분 후부터 5분 추가시 마다 1만원 추가 성교 후 같이 샤워하기 5천원 빨아주기로 입에다 사정하기 5천원 추가하는 대신 보지에는 삽입 불가하고요 성교하다가 사정만 입에 하기 1만 5천원 성교 중 온몸 입으로 핥기 1만 5천원 추가입니다. 체위 옵션으로 정상위는 기본형 두 다리 들고하면 5천원 추가 자지 꽂은 채 들고하는 것은 5천원 추가 후배위는 5천원 추가 한 다리 들고 하기 5천원 항문 성교비는 1만 5천원 추가 여성 상위는 5천원 추가 그리고 성교 과정에서 좆빨기, 삽입 장면, 펌프질, 사정 장면 등 사진 촬영은 1장당 2만원이고 성교 전 과정 비디오 촬영 테이프는 1개당 5만원입니다. 마지막으로 진심으로 사랑하기는... 무료입니다. 그럼 앞으로도 많은 이용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nd-
프리 프로덕션
몇 년간 숙원이었던 대학가에서 펼쳐지는 야사들을 영상화 할 수 있게 되어 너무 기뻤다. 사장님의 오케이 싸인이 떨어진 후 유능한 후배들과 함께 프리 프로덕션 작업을 시작했다. 따로 헌팅할 것도 없었다. 그냥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에 가서 이곳 저곳을 둘러보기만 하면 되었다. 겨울 방학이 아직 끝나지 않아 한적했고 몇 일 후면 바로 저기서 베드씬을 찍을 수 있겠구나 싶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에로 영진공] 코리안 파이 - 허접한 입봉 감독의 VOD 코멘터리 참조)
조금 까다로운 헌팅 장소는 두 군데였다. 여대생의 자취방과 학교 강의실.
다행히 착한 후배들의 도움으로 여대생 자취방 헌팅은 금방 되었는데 강의실은 어떻게 진행해야 할 지 도무지 감이 오질 않았다. 강의실 안에서 칠판을 배경으로 한 베드씬을 꼭 찍고 싶었는데 경비 아저씨한테 뭐라고 해야 되나 궁리하던 중 이필립 감독에게서 전화가 왔다.
'최작가님? 요즘 뭐해요?'
'저 요즘 조감독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작가는 못하겠네? 글 안 쓸거예요?'
'써야죠.'
'글 써 둔 거 있으면 좀 보내줘요. 좀 급하거든.'
'감독님도 잘 지내셨죠?'
'나 잘 지내지. 나 회사도 옮겼어요.'
'네?'
'유호라고... 아시죠?'
'그럼요. 잘 알죠. 그런데 써둔 건 없는데 특별히 생각해 둔 내용이라도 있으신가요?'
'최작가 맘대로 써서 보내주세요. 내가 의사 친구가 있으니까 병원이 배경이어도 좋아요.'
'네. 알겠습니다.'
'다음 달 말까지 한 편만 보내주세요. 그럼 부탁드릴께요.'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이번 작품 연출이 끝난 다음에 예전에 써 둔 시놉 중에서 발전시키면 될 일이었다. 이필립 감독과의 작업은 언제나 배울 부분이 많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사실 가장 신경이 쓰이는 부분은 배우 캐스팅 문제였다. 내 시나리오의 세밀한 터치와 미묘하고도 끈적한 뉘앙스를 연기로 표현할 수 있을 만한 에로 배우를 어떻게 찾아야 할 지 감이 오질 않았다. 우리 화사의 제작 여건상 사전에 만나 대본 연습을 한다던가 현장에서 제대로된 연기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을 것 같았고 우연히 훌륭한 배우를 만나는 수 밖에는 없었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예산의 문제로 촬영을 24시간 이내로 끝내야 했다. 시나리오가 총 24씬 정도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한 시간에 한 씬 정도를 찍어야 되는 빡쎈 스케줄이었다. 아침 7시에 만나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촬영을 끝내야 된다는 얘기였다. 촬영 장소가 다 대학가 근처라서 이동 거리는 길지 않아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연기의 퀄리티에는 문제가 좀 생길 것만 같았다. 하지만 대안은 없었다. 그냥 잘 찍는 수 밖에... 감독 입봉작이니 만큼 꼭 잘 찍고 싶었고 그냥 어느 비디오 대여점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작품을 찍고 싶진 않았다.
루이스 칸과 베토벤 5번 교향곡
예술의 창조는 욕망의 충족이 아니라 욕망의 시작이다. 베토벤이 그의 5번 교향곡을 작곡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그 교향곡을 필요로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그 교향곡 없인 살 수 없다.
-루이스 칸-
나도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내가 만들기 전에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던 그런 작품. 누군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창 밖을 내다 본 후 '오늘은 왠지 최감독이 만든 작품을 보고 싶어지는 걸?' 할 수 있는 그런 작품.
학교 헌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디카로 찍은 이미지들을 보며 콘티를 구상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방으로 들어오셨다.
'너 요즘 뭐하고 다니냐?'
'그냥 이것 저것요.'
'낼 모레 졸업인데 취업은 어떡할꺼냐?'
'지금 준비하는 게 있어요.'
'뭘 준비하는데?'
'영화요.'
'무슨 영화?'
'잘 되면 말씀 드릴게요.'
'잘 되면 꼭 말해 줘라.'
잘 되서 꼭 말씀드리고 싶었다. 내가 이런 훌륭한 작품을 만들었다고...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울 만한 작품을 만들지 못해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다. 안타깝다. 어서 그런 날이 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감독 입봉은 했다만
워낙에 저예산이라 따로 조감독을 둘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감독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하는 일은 조감독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달라진 것이라고는 레디 액션을 내가 직접 부르고 한 테이크가 끝난 후 오케이와 NG를 결정하는 것뿐이었다.
24시간의 촬영은 말그대로 눈깜빡할 사이에 지나갔다. 학창 시절에 공부를 하던 강의실과 캠퍼스의 낭만을 즐기던 운동장에서 베드씬을 찍으려니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거의 한시간에 한 씬을 찍어야 하는 (이동시간과 식사 시간까지 계산하면 그보다 더 시간이 촉박했기에) 빠듯한 스케줄 때문에 이런 저런 고민을 할 여유는 없었다.
촬영을 무사히 끝낸 후 때마침 터진 'h양 몰카 사건' 때문에 출시도 별 무리 없이 이루어졌지만 '코리안 파이 VOD 코멘터리'에서 언급했듯 반응이 좋지 않다는 점이 문제였다. 회사의 반응도 시장의 반응도 그리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차기작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이피디와도 ‘나중에 꼭 다시 보자’는 이메일 한통과 함께 연락이 끊어지는 바람에 다시 기회를 찾아 헤매는 고독한 하이에나 신세가 되어 버렸다.
감독 입봉은 했다만 작가 입봉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작품이 끝나고 나니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 됐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되나’ 하는 허탈한 마음에 정처없이 로스트템플과 헌터에서 이름도 알 수 없는 상대방과의 치열한 전투로 하루 하루를 보내던 중 이필립 감독의 도움으로 작가일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에로 비디오 작가일을 하게 된 것은 좋았는데 문제는 대여점 시장 여건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보통 회사를 꾸준히 다닌다거나 어떤 일을 열심히 성실하게 하면 다 그런 건 아니더라도 조금씩 발전하거나 현상 유지는 되어야 계속 일할 맛이 생기는 법인데 에로 비디오 작가의 대본 가격은 한편이 끝날 때 마다 점점 다운되어 갔다.
살아있는 개구리를 끓는 물 속에 집어 던지면 못 버티고 뛰어나가지만 서서히 온도가 높아지는 물 속의 개구리는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한다는 실험 결과가 있듯 나도 점점 다운되는 대본 가격에 어떻게든 적응하려했지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에로 비디오 자체가 더 이상 시나리오를 요구하지 않는 단계로 진화해 나갔다.
나의 시나리오
<내 애인은 레즈비언>
- 레즈비언 커플과 사귀게 된 이성애자 남자 이야기
대학 동창인 동명과 민아. 이들은 애인은 아니지만 잠자리도 함께 하고 집도 같이 쓰는 친구 사이일 뿐이다. 그들은 특별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만 하면서 자신들이 하고 싶어하는 일인 소설을 쓰며 살아간다. 어느 날 동명이 이빨이 아퍼서 치과에 갔다가 고등학교 때 첫사랑이었던 간호사 수아를 만난다. 간호사인 옛사랑 수아를 만나자 동명은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변한 수아에게 여지없이 빠져들고 만다.
수아의 초대로 설레이는 마음으로 그녀의 집에 놀러 간 동명. 수아는 현영이라는 여자와 같이 살고 있었다. 그 둘은 동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명 앞에서 찐한 키스를 나눈다. 수아는 레즈비언인 것이었다. 수아의 애인 현영이 약속이 있다고 나간 사이에 동명은 수아에게 진정한 남자를 가르쳐주겠다고 제안한다. 제안을 받아들인 수아. 결국 동명과 수아는 섹스의 즐거움을 탐험하게 되는 친구로 지내기로 약속하는데 이것이 동명에게는 딜레마였다. 수아에게 특별한 감정을 지니지도 않은 채 그녀와 단순히 섹스 파트너로만 지낼 수 있단 말인가? 특히 잠자리를 같이 하는 오랜 친구 민아가 있는데 말이다. 이것은 레즈비언 섹스 파트너가 있는 수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동명과 수아는 궁합이 너무 잘 맞아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서로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수아와 가까워지자 이제는 민아가 문제다. 가장 친한 친구를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에 깊은 절망감에 휩싸인 민아는 수아와 자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겁을 주기 시작한다. 동명은 중간에서 갈등하기 시작한다. 민아는 혼란스러워 하는 동명에게 수아를 뒷조사해 그녀의 난잡했던 과거의 성관계 때문에 붙여진 '떡걸' 이라는 별명을 들먹이며 수아와 동명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하려고 애쓴다. 수아의 난잡했던 과거를 알아감에 따라 갈등하는 동명. 그러나 궁합이 너무 잘 맞는 수아를 놓치기는 싫다. 민아는 가장 사랑하는 친구이고 수아는 너무 잘 맞는 여자이다. 동명은 모두와 함께 행복해 지기 위해 셋이 모인 자리에서 둘에게 공평하게 잘해 줄테니 세명이 함께 살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시작한 세명의 동거 생활. 동명은 둘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애 쓴 나머지 살이 빠지고 기력이 쇠하기 시작한다. 그런 동명에게 실망하는 수아와 민아. 마침내 수아는 레즈비언 기질을 발휘, 민아와 사랑에 빠져버리고 소설가 지망생인 민아도 소설 밑천을 삼기 위해 색다른 경험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수아와 민아는 드디어 애인이 되고 동명은 둘의 집에서 쫓겨난다.
1년 후...
동명은 텔레비전에서 레즈비언 소설을 써서 대박을 터뜨린 민아의 인터뷰 장면을 보게 된다. 밝은 표정으로 인터뷰 하는 민아의 옆에는 수아가 있었고 그 장면을 보던 동명은 갑자기 이빨이 아파 온다. 치과에 가게 된 동명. 그 병원은 수아의 레즈비언 애인이었던 현영이 의사로 있는 병원이었다. 현영은 진료가 끝난 후 동명에게 자신도 수아처럼 남자를 느끼고 싶다며 섹스의 맛을 가르쳐 달라고 한다. 동명은 현영에게 섹스의 맛을 가르쳐주기 시작한다.
<딸녀>(원제는 ‘SM엔터테이너’였는데 회사에서 당시 인터넷 상에서 딸녀가 유행한다는 이유로 딸녀라는 제목으로 변경)
- 무라카미 류의 '도쿄 데카당스'와 일본의 원조교제 소녀 이야기 '바운스'를 한국의 대학생 출장 호스트 이야기로 패러디한 작품
명문대 철학과 재학 중인 현학은 항상 인생은 괴로움일 뿐이라고 말한다. 애인 민선과 행복하지만 인생의 형이상학적 문제로 괴로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현학은 집이 가난해 등록금이 없다. 착한 애인 민선은 그에게 돈을 주지만 아직까지 100만원이 모자란다. 한 중년의 고상하게 보이는 포주 아줌마에게 길거리에서 픽업 당한 현학은 그녀에게 핸드폰 번호를 넘기고 바로 다음 날부터 손님을 받기 시작한다.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출장 호스트로 나선 현학은 하룻 동안 세 명의 손님을 만난다.
오전에 만난 첫 손님은 일 끝나고 집에 들어가는 20대 콜걸이다. 그러나 만나 보니 자신의 애인 민선 이었다. 그녀는 현학에게 연애는 끝나고 이젠 비지니스 관계라며 철저하게 현학에게 본전을 뽑기 시작한다. 민선은 손님과의 관계를 역전시켜 현학에게 손님들에게 당한 스트레스를 풀기 시작 한다. 현학을 손님으로 여기고 재연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피학의 쾌감을 느끼기 시작하는 현학. 그녀에게 한참을 분풀이 당한 후 만난 손님은 현학의 옆집에 살고 있는 30대 여류 화가. 그녀는 이렇게 만나 색다르다며 반갑게 인사한다. 그러나 이웃 사촌은 사촌이고 비지니스는 비지니스라며 그에게 모델을 시킨 후 아틀리에 한 가운데에 세워 놓은 후 갖가지 체위로 자위 행위를 시키며 괴롭히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만난 40대 여교수. 그녀는 현학의 담당 교수다. 어처구니 없어 하는 여교수. 그러나 장사는 장사. 수업은 수업. 여교수는 혹독하게 현학에게 하루 종일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 시작한다. 여교수에게 행복이 뭐냐고 묻는 현학. 여교수는 그런 단어는 너같은 것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대답하며 다시 한번 괴롭히기 시작한다. 여교수는 일을 치른다음 현학에게 자신의 전속 남창이 될 것을 제의 한다. 현학은 자신도 바라는 바라며 다음 날부터 여교수의 집에 들어가 생활한다.
여교수에게 진정한 SM교육을 받으며 하루 하루를 보내며 현학은 점점 진짜 SM엔터테이너가 되어 간다. 그런 생활에 만족하며 지내던 중 여교수의 옛날 제자였던 현학의 후배 순지가 여교수를 찾아온다. 현학보다 먼저 여교수의 노예 생활을 하다가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바람에 그 자리를 현학이 메꾼 것이다. 이제 귀국한 순지는 현학을 몰아내려 한다. 여교수의 집에서 나오게 된 현학은 아줌마를 찾아간다.
아줌마를 다시 만난 현학. 아줌마는 현학에게 돈을 주며 자기와도 한번 하자고 제의한다. 아줌마는 피학 성향이 있어 자기를 괴롭혀 달라고 한다. 그녀를 가학하기 시작하는 현학. 그녀를 신나게 가학하던 중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로 돌아가서 공부만 열심히 하는 생활을 하고 싶어져 이제 이 세계와는 손을 씻고 싶다. 그러나 아줌마는 현학에게 널 이렇게 보내긴 아깝다며 계속 일하라고 설득하려 한다. 거부하는 현학. 자신을 붙잡으려는 아줌마를 뿌리치고 나가려고 하던 찰나 아줌마는 현학에게 최면을 걸고 현학은 정신을 잃어 버리고 쓰러진다.
정신을 차린 현학... 개가 되어 있다. 철학적인 인생의 고뇌에서 해방된 현학은 너무 행복해 보인다. 정신을 차려 보니 개처럼 바닥에 엎드려 혓바닥을 내밀고 있는 현학. 애인 민선의 집이다. 민선의 애완견으로 생활하게 된 현학, 아줌마의 최면에서는 예전에 풀려 났지만 개처럼 사는 게 더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민선도 자기를 버리지 않을 꺼라는 생각에 행복하다. 민선은 현학을 인간접시로 만들어 친구들과 회 파티를 연다. 현학의 몸 위에 회를 놓고 맛있게 먹는 민선 친구들... 친구들은 현학 같은 남친을 가지고 있는 민선을 부러워 한다. 파티가 끝난 후 공원에 산책을 간 현학과 민선.... 둘, 벤치에 앉아서 쉬고 있다. 민선, 막대기를 던지자 현학이 막대기를 물고 돌아 온다. 민선, 현학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현학, 웃으며 행복해 한다.
<윤락행위방지법>
- 안마일을 하는 여자를 사랑하게 된 남자가 그녀를 구출하기 위해 윤락행위방지법을 어겨가면서 사랑을 이루려고 하는 이야기
취업을 하지 못해 결국 형이 운영하는 만화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동명은 불규칙한 생활과 외로움 때문에 불면증에 걸려 있다. 오랜 밤 근무 후에도 여전히 잠들 수 없는 그는 일하는 외의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방안에서 보내며 아령 따위를 드는 운동을 한다. 그의 생일날, 그는 혼자서 케익을 사 들고 군 입대 전 여자 친구인 미나를 만나러 간다. 그녀의 원룸으로 찾아 가지만 그녀는 새 남자 친구(맛사지 업소 사장)와 신나게 섹스를 하던 중이었다.
갈 곳이 없어진 그는 심야 영화를 보러 비디오 방으로 간다. 거기서 같이 봐도 되냐며 동명의 방으로 들어오는 여자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채연. 신참내기 맛사지 걸이다. 만화 가게 주인이 종업원인 동명을 위해 그녀를 생일 선물로 보냈던 것이다.
재밌게 영화를 보고 나온 두 사람. 동명은 그녀와 밤새도록 데이트를 하게 된다. 데이트를 한 후 그들은 동명의 방으로 가서 육체적 사랑을 나누고, 그날 밤 채연은 순수한 면이 있는 동명에게 반해 사랑하고 있음을 선언한다. 그 다음날 아침, 동명은 그녀가 하늘에서 자신의 생일을 맞아 보내준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그녀에게 청혼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맛사지 업소에서 일하는 여자고 그녀의 단골인 만화 가게 주인이 동명의 생일 선물로 자신을 보낸 것이라고 고백한다. 그런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겠냐고 말하며 울어버리는 채연. 하지만 그들은 동거하기로 결정한다.
그녀가 맛사지 업소에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마다 절망감에 빠져버리는 동명. 그는 그녀를 구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러나 일을 그만두라고 채연을 설득하려는 그의 시도는 그녀의 거절로 실패하고 만다. 무기력함의 끝에 몰린 그는 평소에 열심히 운동을 통해 키워왔던 자신의 힘만 믿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 무작정 맛사지 업소로 향한다. 당당하게 업소를 찾아가 사장을 찾는 동명. 사장은 맛사지 걸(미나)과 섹스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사장실 문을 박차고 들어간 동명. 사장이 섹스를 하고 있던 차라 놀라고 그 상대가 자신의 옛 애인 미나라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란다.
치밀한 준비 끝에 나선 그이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섹스를 방해해 열받은 사장의 기세에 밀려 몇대 맞게 된다. 옆에 서 있던 미나도 쓰러져 있는 동명을 하이힐로 밟아 댄다. 방에서 도망 나와 채연의 손을 끌고 나오려고 하지만 결국 혼자서 허둥지둥 도망치고 만다.
집에 돌아와 좌절감에 사로잡힌 그는 자신을 한심하게 여겨 만화가게 건물 옥상에 올라가 투신 자살 시도를 하려다가 경찰서에 신고를 하게 된다. 그러나 안마 시술소는 여전히 정상적으로 영업을 하고 있고 채연도 돌아오지 않고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는다. 마침내 그는 자신이 스스로 업소를 찾아가 윤락 행위를 한 뒤 증거물을 채취해 경찰서에 신고하게 된다. 동명은 윤락 행위를 이유로 불구속 입건 되지만 업소 주인과 채연을 비롯한 종업원들은 도주한다.
어느 날 밤 채연이 피투성이가 되어 동명의 만화 가게로 뛰어 들어 온다. 경찰의 추적에 쫓기고 있는 맛사지 업소 주인이 동명을 해꼬지 하러 오는 중이라며 같이 도망가자고 한다. 동명은 도망칠 수 없다며 당당하게 업소 주인을 기다린다.
마침내 잔뜩 독이 오른 사장이 야구 방망이를 들고 만화 가게로 들이 닥친다. 동명에게 달려드는 사장. 채연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둘은 만화가게에서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장을 뜨게 된다. 채연은 경찰서에 신고를 한 후 동명을 구하기 위해 난장판에 뛰어 들어 셋이서 싸우게 된다. 잠시 후 채연의 신고로 만화 가게에 들이닥친 형사들. 맛사지 업소 사장은 구속되고 채연은 사장에게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된다. 동명은 이 사건을 계기로 채연과 행복하게 살게 되고 채연의 평소 소원이었던 바다를 보러 전철을 타고 동해 바다가 아닌 월미도로 떠난다.
<망사부인>
- 망사가 잘 어울리는 옆집 여자와 벌이는 일상의 연애 이야기
동명은 친구 영호와 함께 원룸에서 살며 취업을 준비하는 백수다. 어느 날 옆집 아줌마 진숙의 망사 스타킹을 신은 뒷모습에 홀려 그녀를 따라가다 잠깐 머뭇거리는 사이 놓쳐 버린다. 하지만 진숙과 똑같은 망사 스타킹을 신은 미애를 발견하고 그녀를 따라간다. 미애는 출장 마사지 아줌마다. 동명은 그녀의 전화 번호가 적힌 명함을 줏어 들고 모텔로 가 그녀를 불러 낸다. 그녀를 옆집 아줌마 진숙이라고 생각하고 진숙에 대한 욕망을 해결하지만 테크닉을 배우고 싶어 친구 영호를 불러내 미애와 섹스를 시켜 놓고 몰래 구경하며 섹스 테크닉을 전수 받는다.
동명은 영호에게 섹스 테크닉을 전수 받고 함께 집으로 돌아오던 중 진숙을 만난다. 진숙과 영호는 이미 알고 지내던 사이였고 진숙은 영호와 함께 동명을 집으로 초대한다. 집으로 초대 받은 동명은 영호의 지원하에 진숙을 꼬셔 섹스를 하는데 성공한다. 섹스에 성공한 동명은 그녀에 대한 욕정을 사랑으로 착각하게 된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지하 주차장에서 섹스를 하던 진숙과 동명. 동명은 진숙에게 애정을 고백하지만 거절당한다. 마침 진숙의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오고 진숙은 동명을 매몰차게 차 버린 후 남편에게 돌아간다. 홀로 남은 동명은 남편에게 안겨 있는 그녀를 쿨하게 포기한다.
<조건만남>
- 조건만남을 즐겨하는 여자들을 다큐 형식으로 그려낸 이야기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현상은 역시 정보통신과 성의 만남인데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등장은 성 산업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마침내 ‘조건’ 이라는 단어가 인터넷에 등장했다. 한때는 접속이라는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 정도로 채팅의 세계에는 연애의 낭만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2002년 이후의 채팅은 오로지 ‘조건’으로 통일되었다. 이런 배경에서 우리는 인터넷 조건 만남의 실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 조건녀 두명을 섭외 한 후 취재에 나선다.
VJ는 인터넷 조건 만남을 즐겨 하는 성인 여성 두 명을 섭외 후 밀착 취재에 나선다. 첫번째 조건녀의 이름은 진영. 그녀는 상고 졸업 후 조그만 중소 기업에 경리로 취직했다고 한다. 그러나 회사에서 나오는 월급 만으로는 생활이 너무 힘들어 조건 만남을 시작했는데 조건 만남을 시작한 이후로는 경제적으로 매우 풍족하게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두번 째로 섭외한 조건녀의 이름은 희정. 그녀는 실제로 사창가에서 일하지만 장사가 안 되어 틈틈이 조건 만남을 하고 있다. VJ는 그녀들과 그들이 만나는 남자들을 취재하며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인터넷 조건 만남의 모든 것을 밝혀 낸다.
<원조 노래방 아줌마>
- 노래방 알바를 뛰어야 하는 여자들을 다큐 형식으로 그려낸 이야기
카드빚과 외도로 인해 집을 나가는 아내가 하루 평균 33명이라고 합니다. 가출 아내는 외도 상대와 살림을 차리거나, 노래방 도우미를 하면서 생활비를 충당하기도 하고 찜질방을 전전하며 가끔씩 가정이 그립거나 외로움을 견딜 수 없을 때는 다시 남편을 찾지만 그리 오래 머물진 못합니다. 이 영화는 그 여자들의 아픔과 상처를 리얼하게 보여 주면서 더불어 그녀들의 남편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것입니다.
남편1
아내가 노래방 알바를 시작했습니다. 가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월급도 괜찮았고 아내와 싸운 적도 없고요. 그런데 느닷없이 더 이상 이렇게 살기 싫다며 아내가 노래방 일을 시작했습니다. 아내가 미친 것 같았습니다.
아내1
저는 한 가정의 주부였습니다. 남편도 있고, 아이들도 있고, 겉에는 아무 문제없는 평범한 가정처럼 보이지만 마음이 답답합니다. 세상에 저 혼자인 것 같고, 저에게 지워진 책임들이 무겁게만 느껴집니다. 가장 힘든 것은 권태와 지겨움이었습니다.
남편2
아내는 최근 4개월 동안 거의 집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생각해서 참고 또 참았는데 아내는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노래방에서 아내를 본 것 같다는 어느 친구의 말에 이렇게 또 다시 노래방에 아내를 찾으러 가게 됩니다.
아내2
IMF가 터지고 다니던 직장이 부도나는 바람에 남편이 직장을 잃었습니다. 그 후 집안 일만 하다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일당이 너무나 작았어요. 그러다 채팅으로 알게 된 남자의 꼬임에 넘어가 노래방 알바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기타
<야시장13>
- 그 유명한 야시장 씨리즈 13편
<달콤한 불륜>
-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의 한 에피소드를 에로 스타일로 패러디
<불륜, 그것이 알고 싶다>
-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의 한 에피소드를 에로 스타일로 패러디
<바람난 여자들>
-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의 한 에피소드를 에로 스타일로 패러디
그렇다면 2005년 비교적 최근의 작품인 불륜 시리즈 대본 가격은 얼마였을까?
- 여러분이 얼마를 상상하든 그 이하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비디오 업계의 급격한 변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정말 열심히 썼다. 출시가 된 작품의 그늘 뒤에는 기획 단계에서 엎어지거나 대본 작업을 다 마친 후에 엎어지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실제 작업을 한 시나리오 수는 출시된 작품 수의 두 세배쯤 될 것이다.
에로 비디오 작가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후 부터는 감독 입봉 때와는 달리 어줍잖은 예술을 한다는 자의식을 버리고 최대한 시장의 need를 예측한 후 그 욕망을 충족시켜준다는 마인드로 일을 했기 때문에 시장과 회사의 반응도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비디오 업계의 생태 환경 자체가 변하는 것은 아무리 열심히 대본을 쓴다고 해도 작가 한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필립 감독도 처음 몇 편 정도는 그래도 이야기가 있는 영화 느낌이 나는 시나리오를 요구했지만 점차 극영화 느낌이 아니라 페이크 다큐라던가 방송국 오락 프로그램의 한 꼭지 같은 느낌의 대본을 원하게 되었다. 결국 예산 때문이었다.
에로 비디오 제작은 점점 수익이 나지 않는 장사가 되어 가고 있었고 그런 이유로 많은 금액을 투자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얼마나 짧은 시간에 빠르고 화끈하게 치고 빠질 수 있느냐가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한마디로 더 이상 시나리오가 필요없다는 얘기였다. 한 페이지 정도의 아이디어를 정리해 놓은 시놉시스 정도면 충분했다.
이제는 떠나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모바일 야설 작가
뭘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한 심정으로 잡코리아를 뒤져보았는데 그래도 오랜 시간 동안 글을 쓰면서 돈을 벌었던 과거가 있기에 최대한 경력을 살리고 싶었다. 그러던 중 구인란에서 알게 된 '야설 작가' 일은 나의 취미와 재능을 살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야설 작가'를 모집한다는 구인 정보를 클릭해 보니 다른 조건은 없었고 기본적으로 성인 문화에 거부감이 없어야 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글솜씨를 짐작할 수 있을 만한 샘플 야설을 한 편 보내야 된다고 했다. 나이, 경력, 학력, 성별 제한이 없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써 놓은 야설은 없지만 그 동안 써 둔 에로 시나리오는 무궁 무진 했기에 그 자리에서 바로 몇 편을 이메일로 보냈다.
그래도 입사 지원을 한 셈이라 초조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로스트 템플과 헌터에서 방황하고 있었는데 몇 시간 뒤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최작가님 핸드폰이죠?'
'네.'
'여기 oo입니다. 이메일 읽어봤는데 저희와 함께 일을 해 주셨으면 해서 연락드렸습니다.'
합격이었다.
나의 모바일 야설 작가 일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p.s. 에로 비디오 대본 작업은 클릭 엔터테인먼트와 유호 프로덕션에서만 했기 때문에 ‘남로당’에서는 관람 할 수 없습니다. ^^;;
회사에서 온 첨부파일에는 '미시아줌과몰래섹'이라는 제목의 샘플 야설 한 편과 '검수 기준'이라는 제목의 엑셀 파일이 하나씩 있었다. 처음에는 제목이 무슨 뜻인지 몰라 당황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미시 아줌마와 몰래 섹스를 한다'는 뜻인것 같았다. 나이트 클럽에 놀러간 회사원이 섹스에 굶주린 미시 아줌마와 정열을 불태운다는 이야기였는데 중요한 건 내용이 아니라 성행위의 묘사였다. 열장 중 여덟장 정도가 성행위 묘사였다.
업체에서 원하는 야설이 무엇인지에 대해 감을 잡은 후 검수 기준을 읽어보았다.
지나치게 자극적인 저속한 단어 사용 금지(자지, 잠지, 보지, 좆, 조개, 고추, 꼬추, 페니스, 클리토리스, 씹, 구멍, 오입, 빨통, 동굴, 항문, 정액, 성기, 대음순, 소음순, 국물, 애액, 털, 부랄, 젖, 사타구니, 똥꼬, 둔부, 허벌, 걸레, 질, 클리토리스, 지스팟, 육봉, 터널, 00cm, 오랄, 애널, 추행, 농락, 당한, 강간, 겁탈, 능욕, 치욕, 굴욕, 농락, 유린, 반항, 강제, 강압, 꿇려, 잠든, 잘때, 기습, 술취한 납치, 억지, 무참, 추행, 패륜, 처참, 몰래, 몰카, 도촬(도둑촬영), 근친 : 누나, 오빠, 형, 언니를 제외한 모든 근친성 호칭, 이모, 고모, 엄마, 아빠, 형부, 처제, 딸, 아들, 자매, 남매, 형수, 처제, 제수, 도련님 등, (성매매)티켓(다방), 콜걸, 나가요, (성)접대(부), SM, (벗고)알바, 여학생, 미소녀, 어린소녀, 어린제자, 자율학습, 제자,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교복, 담탱, 양호실, 담임선생님, 교장선생님, 양호선생님(그냥 선생님, 교생선생님은 허용), 어리다, 소녀, 원조, 쑤시다, 빠구리, 빨다, 싸다, 박다, 핥다, 따먹다, 떡치다, 범하다, 덮치다, 당하다, 찢다, 묶다, 가두다, 끌다, 찍다, 뚫다, 후리다, 맛보다, 따먹다, 오입하다, OO치기, 내뿜다, 뿌리다, 벌리다, 쪼이다, 돌리다, 겁주다, 억지로, 후비다, 저질, 퇴폐, 혼음, 몽땅, 사까시, 삽입, 년, 놈, 다굴, 담탱, 쪼가리, 꼰대, 씨팔(모든 욕설 포함), 스와핑, 교대로, 차례로, 앞뒤로, 번갈아, 동시에, OO들, OO앞에서, OO보는데, 한방(곳)에서, 바꿔서, 난잡, 함께, 집단, 경찰, 여경, 비구니 등 공권력이나 종교에 관련된 명칭 전체), 미성년자와의 행위 불가, 반인륜적 관계 금지, 배설(방뇨, 배설시의 오물, 인체에 부착된 오물, 정액, 여성생리, 출산 등을 묘사하여 혐오감 유발), 성기구(진동기, 오이, 가지, 물건을 성기와 비슷하게 만드는 등 성기구, 야채, 성기모양의 물건을 이용), 성매매, 몰카, 변태적 성행위, 동성애등의 소재 금지, 특정인물을 연상시키는 이름 사용 불가, 노골적 정사 묘사 금지, 강간, 혼음, 근친, 스와핑 불가, 한 사람과의 관계 후 곧바로 다른 사람과 행위가 이어지는 경우 불가(단, 최소 한시간 이상, 다른 건물로 장소 변경시는 허용) 등등...
한 페이지 전체가 금지와 불가로 가득했는데 결국 요점은 삼강오륜의 선을 넘지 말라는 것이었고 이는 영상물 등급 위원회의 심의 규정과 거의 같았기 때문에 실제 야설 창작 작업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내 글을 담당하는 관리자의 말에 의하면 야설 작가를 지원하는 대부분의 지원자들이 처음에는 문학적 야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글을 보내온다고 했다. 그러다 업체에서 원하는 스타일의 샘플 야설을 읽은 후에나 감을 잡기 시작하는데 자신의 작품 세계를 버리지 못하는 작가는 그 단계에서 야설 집필을 포기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의 야설은 문학적 야심이나 작가의 자의식 없이 장르에 충실한 편이었고 맞춤법도 거의 틀리지 않아 일하기가 수월한 편이라고 했다. 이게 다 에로 비디오 작가로 탄탄한 기본기를 다졌기 때문일 것이다.
다년간 탈락과 낙방의 좌절감만 맛보다가 오랜만에 들은 칭찬이라 기분은 좋았다. 비록 사람들에게 드러내 놓고 떳떳하게 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야설이라도 프로 의식을 갖고 예술적으로 쓰기만 하면 언젠가 나도 예술가의 경지에 오르게 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 두편 쓰는 것도 아니고 일주일에 서너편 씩 수십편을 몇 달 정도 쓰다 보면 그런 생각은 한 달 이상 지속되기 힘들다. 더구나 익명으로 오랜 시간 동안 작업하다 보니 상당히 허무했다. 그래서 지금 남로당 글도 본명으로 쓰고 있다.
회사와의 연락은 철저하게 이메일로만 이루어졌고 원고료도 온라인으로 입금시켜주는 시스템이었다. 교통비를 아낄 수 있고 만나기 싫은 사람 억지로 만나야 되는 일이 없는 점은 좋았다만 매일같이 남녀간의 지리한 성교 과정을 묘사하다보니 서서히 자의식과 작품 세계가 분리되어갔다.
에로 비디오 작업이 가내 수공업 공장 분위기였다면, 야설 작가 작업은 컨베이어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대규모 기계화 공장 같은 느낌이었다만 그래도 쓴 만큼 돈을 받는 재미에 그만 둘 수는 없었다. 프리랜서로 일을 하면서 가슴 졸이지 않고 얼굴 붉히지 않고도 꼬박 꼬박 일한 만큼 돈을 받을 수 있다는 건 엄청난 메리트다.
야설이지만 주 소비계층의 요구 수준이 의외로 높기 때문에 퀄리티가 좋지 않으면 조회수가 올라가지 않는다. 조회수는 바로 돈이었다. 간혹 내가 쓴 야설이 조회수가 높아져 베스트에 오르면 회사에서는 수고했다며 조회수에 상응하는 보너스를 보내왔다.
때론 야설의 퀄리티가 낮더라도 제목 덕분에 베스트에 오르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보통 작가가 임의로 지은 제목 보다는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트렌드를 연구한 후 회의 끝에 네이밍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서비스 되는 야설의 표절이나 도용의 문제도 심심치 않게 생기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다른 회사 작품들도 꾸준히 모니터 했다. 다른 회사 야설의 조회수 증가가 우리 회사의 금전적 손실로 연결되는 제로섬 게임이었기 때문에 회사들과 작가들 사이의 생존 경쟁은 치열했다.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작을 꿈꾸던 탄탄한 실력을 갖춘 소설가 지망생들이 아무리 작정을 한다고 쓴다 하더라도 초단위의 소모적이고 스피디한 프로페셔널 야설의 세계에서 오랜 시간 버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어서 업체에서 원하는 야설을 꾸준히 써 낼 줄 아는 성실한 작가들은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야설 작가는 일종의 전문직이었고 회사에서도 실력 있는 작가들에게는 보너스도 주고 꽤 괜찮은 대우를 해 주는 편이었다.
모바일 상의 야설은 분량으로는 단편, 중편, 장편의 세 종류로 나뉘어 진다. 단편은 A4 세장, 중편은 여섯장, 장편은 열장 정도이다. 물론 분량이 많을 수록 원고료도 높다. 장르별로는 유부녀/아줌마, 누나/처녀, 여대생/가정교사, 체험/첫경험, 오피스/사무실, 일본/해외 등의 하위 장르로 분류되는데 근친상간, 수간, 강간, 로리타, 미성년자, 성매매 특별법에 저촉 될만한 소재의 이야기들과 지나치게 노골적인 단어들이 포함된 야설은 철저하게 심의에서 걸러진다.
몇 년 전 야설로 유명한 한 성인 싸이트에서 독자 게시판에 올라온 야설들을 모바일 상에서 서비스하려고 한 적이 있었는데 게시판에 있던 인기 야설들 대부분이 심의의 기준을 통과하지 못해 기획 자체가 무산되어 버렸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모바일 야설의 심의 기준은 엄격하다. 가끔 모바일 상에서 서비스 되던 야설이 인터넷 야설 게시판에 올라가는 일이 있는데 그런 모바일 야설들은 금기의 벽을 넘어서는 쾌감이 없기 때문에 하드코어한 인터넷 야설에 비해 인기가 없는 편이었다.
내가 주로 쓰는 장르는 유부녀/아줌마였다. 특별히 나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는 건 아니었는데 유부녀, 아줌마 캐릭터의 특성상 이야기거리가 많을 수 밖에 없어 다른 장르에 비해 이야기를 풀어나가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돈을 벌어서 딱히 뭔가를 해야겠다는 목적 의식 없이 번듯한 직장 다니는 친구들 정도는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굉장히 열심히 야설을 썼다. 그러나 글 써서 돈을 버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과거 군대 시절을 포함해 노가다라 불리우는 육체 노동을 해 본 적이 있는데 이러한 육체 노동들만큼이나 글을 쓰는 일도 힘들었다.
이상하게도 A4 열장 정도 분량을 남녀의 성행위로 빽빽하게 채우고 나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상당한 피로감이 느껴졌다. 처음 한 두달 정도는 한 편을 쓰고 나면 이 삼일 정도는 아무 글도 쓰고 싶지가 않았다. 야설을 쓰고 있지 않을 때라고 하더라도 머릿 속에서는 끊임없이 다음날 써야할 야설 생각이 떠나지 않았고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점점 집중력도 약해져서 책상 앞에 오랜 시간 동안 앉아있는 일도 쉽지가 않았지만 이를 악물고 꿋꿋이 키보드를 계속해서 두드려 댔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마라톤을 할 때 주변의 환경자극으로 인한 신체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하는 행복감인 마약과 같은 약물을 투여했을 때 나타나는 느낌과 유사하다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가 느껴졌다.
작성자:에로영진공 위원 최경진(krrrr19@naver.com). 2008.7.16.
'가 > 궁금하다.이것'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봉천동 귀신 보았소? (0) | 2011.08.30 |
---|---|
김일성 시신이 썩지않는 이유 (0) | 2011.07.12 |
샤테크? (0) | 2011.07.04 |
그녀들은 왜 대중앞에 가슴을 노출할까? (0) | 2011.07.03 |
리바이스도 스키니진 만드나? (0) | 2011.06.28 |
아프리카 BJ 별풍선 수익은 얼마나 되나? (0) | 2011.06.26 |
영화 '쇼생크탈출'에 나오는 '지후아타네오'가 진짜 있나? (0) | 2011.06.24 |
모나미153 볼펜 (0) | 2011.06.22 |
대학 등록금 절반으로 내리면 정말 대학이 망할까? (0) | 2011.06.10 |
제시카 고메즈, 한국에서 그동안 얼마나 벌었을까? (0) | 2011.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