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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
아라키 노부요시, 일본적 성적 에너지를 구현해 온 사진작가

에로틱함을 주된 지향점으로 삼는 사진작가 중 일본을 대표하는 인물이자 세계적으로도 거물급인 예술가이다. 


그의 작품세계는 말초적 자극이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것에서 정말 천재적 창의성의 충격을 받을 작품까지 폭이 넓다. 이는 그의 왕성한 창작욕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런 에너지에 따라 다작을 하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전의 경우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가 구속되거나, 지역사회에서 전시반대 데모가 일어나거나 독실한 종교인들에 의해 작품이 불타는 등 테러를 당하는 일도 왕왕 있었다. 확실히 그의 사진 중 일부는 소아성애, 가학/피학성 성애 등의 터부적인 주제들을 포함하고 있는건 사실이다. 

하지만 워낙 성이라는 주제에 있어 폭넓은 관심이 그의 무수한 작품들에 걸쳐 펼쳐져 있기에 그러한 변태적 취향이 곧 그의 지향점이라 보는 것은 틀린 말이다. 


그러나.. 확실히 그가 성이라는 주제에 굉장한 집착적 취향을 갖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고 본인도 인정하는 바이다. 

1940년 생(동경 출신)으로 우리 나이로 72세이며 이번에 지진피해를 크게 입은 치바현의 치바대학에서 사진과 영화를 전공했다. 졸업 후 일본 최고의 광고회사인 덴츠에 카메라맨으로 입사, 꼬박 10년을 채워 일한 뒤 개인 스튜디오를 차려 독립한다. 


덴츠 퇴직 1년전 결혼한 요코는 그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그녀는 수필가였다. 암에 걸린 요코를 90년에 사별했는데 그 전 수개월간 그녀의 죽음의 과정을 감성적으로 기록하였다. 이 과정은 영화 '도쿄 맑음'으로 극화되었다. 

서구에서, 가장 일본적인, 이른바 변태적인 취향을 반영한 작품세계로 알려져 현재는 에로티시즘의 일가를 이룬 것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위 두 사진은 무엇을 나타내려 한 것일까.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각별하여 남대문 시장의 풍경 등은 성의 한편으로 그의 작품세계의 주요한 소재의 하나이다. 


 도마뱀과 함께 한 아라키

- 출처 : http://histmisc.egloos.com/3601798




 2007.4.20

아라키 노부요시 인터뷰 기사
아라키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작가다. 일본인이라면 적어도 그의 이름과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아라키를 한마디로 명쾌하게 정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정체불명의 사진가라고 말하는 평론가도 있다.

아라키는 연구하기 쉬운 대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범재이고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천재이기 때문이다. 아라키의 이름 앞에는 언재나 천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지난 11월15일부터 열리는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소설서울,이야기도쿄]가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고,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진정한 예술가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미국의 어느 영화감독은 아라키의 사진에 대해‘사진으로는 도저히 표현하기 힘든것들 이를테면 섹스의 냄새까지도 필름에 담아내는 사진가’라고 아라키를 평하기도 했다.일본의 사진평론가 이이자와코우타로우씨는 연구를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있으면 아라키는 벌써 또다른 일을 벌이고 저만치 가 있기 때문에 아라키의 자료를 수집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자가 아라키씨와의 단독인터뷰를 신청하는 기획서를 그의 에이전시 사무실 AaT Room 에 보낸 뒤 꼭 일주일만인 11월26일 회답이 왔다.

이튿날27일,장소는 신주쿠 야스쿠니도오리의 재즈바.시간은 오후 7시. 그 날도 아라키씨는 [히또즈마에로스시리즈]의 촬영이 있었다고 한다. ‘히또즈마’ 란 ‘남의 처’ 라는 뜻이다.벌써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다른 사진가가 이런 타이틀로 사진작업을 한다면 가차없이 포르노작가로 분류되어 버린다.그러나 일본에 아라키의 사진을 포르노라고 말하는 비평가는 이제 없다. 아니, 없다기 보다는 그런 발언을 하기를 주저하거나,어쩌면 이제 그만 지쳐버렸는 지도 모르겠다. 유일하게 아라키만이 지치지 않고 정력적으로 자신의 작품활동을 계속한다. 

[히토즈마에로스시리즈]는 소요샤(雙葉社)가 발행하는 주간지 ‘주간대중(週刊大衆)’에 5년째 연재중인 시리즈다. 사진집으로도 현재6권이 나와있다.62세의 정력적인 천재 사진가를 기자가 만나봤다.
”굴 요리가 어떻게 된 거 같아.속이 너무 안 좋은데…,물 좀 줘 물”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아라키씨가 모습을 나타냈다.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썬글래스, 피카츄를 연상케 만드는 귀 윗부분의 세운 머리칼, 팔(八)자모양의 콧수염은 보는 이에게 기묘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원색의 티셔츠에 멜빵차림의 아라키씨, 바지는 검은색 가죽바지 였다. 그는 눈썹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기술도 갖고 있었다.

”어디서 왔다 했지? 마자마자, 한국에서 오셨댔지” 기자와 사진기자를 번갈아보며 아라키씨는 눈썹으로 인사를 했다.웃음이 터져 나오려는걸 겨우 참았다. 아라키씨는 사진기자에게 “그대는 왜 또 카메랄 들고 다녀?사진은 원래 못생긴 사람들이 찍는 거라구,당신은 찍는 거 그만두고 모델 하라구,아하하”라며 인사를 대신했다.
아라키:이번엔 또 뭘 물어 보실려구 하는감?

기자:한국에서의 첫 전시회 축하 드립니다. 어떻게 해서 사진전이 열리게 되었는지 들려주십시오.
아라키:그러니까 이전부터 전시회의 얘기는 여러 번 있었는데,의견과 상황이 잘 안 맞았다고나 할까…암튼,전시회란 작가로써 자신의 이미지를 전달해야 하는데,뭐 전시회 한번 하려하면 이건 빼자,요것 두 빼자 하니까,나 두 할 맘이 안 생기지.근데 이번엔 내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줬고,좌우지간 뭔 일 생기면 큐레이터가 다 책임 진다구 해서 하자고 한 거예요.

그 미술관 관장님이 직접 찾아 오셨더랬지요. 적어도 헤어(헤어누드)정도는 걸지 않으면 재미없지 않겠는가 하는 것과 긴바쿠(결박)는 나의 애무표현 이니까. 꼭 전시하고 싶다는 요구를 들어줬지요.모레 서울에 갈 예정인데 서울일정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기자:기획자가 전시회의 사후처리까지 책임을 진다는 건 바람직한 것 같습니다.
아라키:이쪽(일본)을 욕하자는 건 아니지만 아사히신문사만 해도 나중에 생길 일만 걱정하는 이상한 습관같은 게 있어요.

그런걸 생각하면 그 관장님은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분위기로 보면 뉴하프(트랜스젠더)도 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었는데,서울측에서 본인들(한국의 뉴하프)의 의사를 타진한 결과 사진을 내걸어도 좋다고 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거절 당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나 본데,오히려 본인들이 모두들 기뻐했다고 그랬다는군요…사진이란 건 그런 거죠. (테이블 위의 잡지를 펼쳐보며)옛날에 Zoom이라는 잡지가 있었지.조금 더 두꺼웠으면 좋겠는데 하하하 

기자:Zoom In은 페이퍼보다는 웹의 독자가 더 많은 잡지입니다.
아라키:음,한국은 일본보다도 인터넷 인구가 많다는 얘길 들었죠. 지금 한국이 세계1위지 아마?인터넷 인구 말이야.

기자:1위는 아마도 스웨덴이 아닐까 합니다. 두 번째쯤 된다고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진기자:아라키씨 잡지의 표지가 보이게 포즈를 좀 취해 주세요
아라키:(모델처럼 포즈를 취하며)이렇게 해달라고?하하하.하는 수 없지 뭐.찍어오라고 그랬죠. 편집장이라든가…사실 이런 포즈는 안 해주는데…오늘 특별서비스예요.하하.

기자:이번 전시회의 타이틀인[소설서울,이야기도쿄]는 두 도시에 어떤 연관성이 있습니까?
아라키:제목은 소설서울이지만,처음부터 서울에 들어가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게 아니에요. 1982년 처음 한국에 갔을 때,부산으로 들어갔어요. 

부산항에 거의 도착했는데 배가 바다위에 멈춰 섰어요. 동이 틀 때까지 한 두세 시간쯤 배 위에서 기다려야 된다는 거에요. 

어둠이 서서히 걷히고, 어슴푸레 부산항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가슴이 막 두근거렸어요.뭔가 드라마틱하고 자,이제부터 드디어 뭔가가 시작된다 하는 기대감으로 설레었죠. 

부산에 내렸더니 아침에 생선을 떼러 온 아주머니들이 포장마차같은데서 식사를 하는 거에요.기웃기웃 하고 있는데 막 들어오라고 하는 거에요. 

그 때 처음 먹은 게 진로소주랑 거 뭐더라 혓바닥에 달라붙는 움직이는 문어발 같은걸 먹었죠. 그 덕에 결국 설사를 하게 됐지만 하하하.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면서 목포라는 곳엘 갔는데,어릴 적 자란 동네의 분위기가 그 곳에 있었어요.
뭐랄까 발가벗은 여자아이가 빗물에 패인 도로 가에서 천진난만하게 놀고있고, 지렁이에게 오줌을 갈기는 소년하며, 구정물위에서 놀면 고추에 병균 들어간다는 아이엄마의 고함이라든가, 이제 그만 들어와서 밥 먹으라는 한국어가 들려오는 그런 분위기가 1950년을 전후한 동경의 분위기와 매우 흡사했죠.
지금은 사라져 버렸지만 그땐 다들 골목에서 놀았드랬죠.

기자:아라키씨의 어렸을 적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아라키:그러니까 그때의 목포와도 같은 분위기 속에,근처에는 요시와라라는 유곽이 있었고,또 연고 없이 죽어버린 유녀들이 묻히는 묘지와 그 묘지를 관리하는 절이 있었는데,그곳이 나에게는 놀이터 였죠.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사람의 인생이란 주변을 인식하기 시작하는 대여섯 살부터 열살 사이에 그 기본 틀이 정해져버리는게 아닌가 합니다.죽음의 분위기가 주변에 널려있었어요.

내 사진의 주요테마인 섹스랄까 성과 죽음은 거기에서 연유한 겁니다. 지금 교토와 헬싱키에서 열리고 있는 [꽃의 인생]이라는 사진전의 꽃들은 어릴 때 본 무덤에 바쳐진 꽃들이 그 출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 사진이란 사실 공부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기자:그런 분위기에 매료되어 계속해서 한국에 가셨군요.
아라키:음 그렇다고 할 수 있죠.암튼 여자도 한번 만나면 왠지 그 뒤에 또 한 번 더 만나보고 싶다는 미련이 남는 것처럼 사진도 그런 거에요.그런 매력에 이끌려 몇 번이고 찾아간 거지요.만약 비행기로 서울에 가서 젊은 여대생이 술 시중드는 기생집에라도 갔더라면 그걸로 끝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작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지요.

기자:대학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한때 동경대를 목표로 공부했었다는 얘길 들었습니다만.
아라키:하하하,다 조사해가지고 왔으면서.그냥 인터뷰 오지말고 적당히 쓰지 그랬어.

하하. 내가 다닌 우에노고등학교는 소위 엘리트들이 모이는 고등학교 였어요.
학교에선 동경대의 시계탑이 보일 정도로 동경대와 가까웠고,입시위주의 공부를 하는 분위기 속에 동경대 이외에는 대학으로 치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죠.시력이 나빠서 나에게는 그 시계가 잘 보이지 않았죠.하하하.그래서 동경대에 들어가는 건 그만뒀어요.

그건 농담이고,선생님에게 문예에 소질이 있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죠.그래서 처음엔 동경대학의 문학부에 가려고 했었는데,9과목의 평균점이 모두 90점 이상 되지 않으면 입시의 기회조차 부여되지 않았드랬어요.
한 세과목이라면 해볼 만도 했는데,뭐든지 다 잘하는 인간이란 있을 수 없죠.동경대에 가려고 5수까지 하는 친구들도 있었는데,학위받아서 출세하려고 몇 년이고 썩히고 있다가는 폐인이 돼버려요.인생이란 계절처럼 일년을 주기로 움직이는 거니까 다음해에는 다른걸 하지 않으면 안돼요.지금도 별 후회는 없죠.

그래서 뭔가 색다른 걸 해보고 싶어 택한 게 사진이에요. 그땐 사진을 교육하는 대학이 수도권에 세 곳 있었는데,일본대학과 동경사진대학(현 동경공예대학),그리고 국립 치바대학이었어요.일본대학은 사립이라 수업료가 비싸서,동경사진대학은 당시 단기대학이라 재미 없을 것 같아서,그래서 택한 게 치바대학사진인쇄공학과였죠.

그런데 유기공학이라든가 암튼 공학위주로 수업이 진행돼는 거에요.난 찍고 싶었는데.그래서 학과공부엔 별 흥미를 못 느끼고,사진을 찍으러 다니거나 디자인과라든가 건축과의 미학수업을 기웃거리곤 했죠.그 시절엔 이탈리아의 리얼리즘 영화에 푹 빠져 있었어요.

졸업논문은 [텔레비전을 위한 영화]였어요.영화가 먼저 만들어지고 나중에 텔레비전용으로 재구성하는 게 아니라 최초부터 텔레비전을 위한 화면비율로 영화를 만든다는 거였지요.즉 클로즈업의 연속인 영화가 되는 거죠.전쟁이 끝난 뒤의 어수선한 분위기속에,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을 찍으러 다녔지요.16mm보렉스카메라를 돌리면서 사진도 찍었지요.그 작품이[삿찡]이에요.16mm는 제대로 완성을 못 했지만,[삿찡]으로 제1회 태양상을 수상했어요.[삿찡]이 나에게 있어 사진의 시작이었지요. 또한 삿찡은 어린시절의 내 모습이기도 해요.

기자:삿찡으로 사진가가 되셨군요
아라키:하지만 그 정도 까지 생각했던 건 아니에요.대학시절 사진잡지 등을 보며 사진응모를 많이 했었어요. 내게는 어떤 면에서 아르바이트였다 할 수 있죠.2중3중으로 응모를 해서 매달3만엔 정도는 벌었던 것 같아요.그 즈음 아사히신문사 출판부로부터 입사를 권유 받기도 했는데,신문사라는 게 사람을 시간으로부터 구속시킬 것 같아서 별 생각이 없었어요.만약 러브호텔에서 막 절정으로 가려고 하는데,화재현장으로 헬기타고 취재나가라고 하면 도중에 그만둬야 하잖아요.농담이구,암튼 그 즈음 광고대리점덴츠에 다니는 선배로부터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덴츠에 입사했어요. 낮에는 미인다방이라는 곳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오후에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었지요.

어느날 회사내부를 찍으라는 작업이 있어서,사내를 돌다가 문서부에 타이프라이터로 근무하던 요코를 꼬시게 된 거지요.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내 나름대로 다큐멘트한 작품 [센티멘틀한 여행]을 발표한 게 나에게 있어 사진가 선언이에요. ‘자 지금부터 시작이다’ 라고 한 셈이죠.그 다음해에 회사를 그만 뒀어요.사진이란 인생이고 또 나 자신이지요. Life란 객관이 아니고 주관이기 때문에 사진은 주관이라는 등식이 성립됩니다.왜 센티멘틀인가 하면 먼저 결혼이란 게 센티멘틀한 여정이고,동시에 사진이란 게 센티멘틀 하기 때문입니다.나는 지금도 센티멘틀한 여행을 하는 도중이에요.

기자:그 여행은 언제까지 계속됩니까?
아라키:끝이 없는 여행이지요.센티멘틀을 버리면 그걸로 끝이에요.

기자:[센티멘틀한 여행]은 1,000부를 자비출판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다 팔리셨나요?
아라키:다는 안 팔렸어요.그것보다도 그 전에 [제록스 사진첩]이란 걸 70부 만들어서 내가 보내주고 싶은,그러니까 그 70부가 7,000아니70,000의 효과를 낼것 같은 유명인들에게 보냈더랬어요.왜 70부인가 하면, ‘70년도여서 70부 찍은 거예요.하하 진짜에요. 그게 자비출판의 시작이라고 할까, 아니지, 회사의 복사기를 무단사용(私用)했으니까 자비라고는 할 수 없고, 하하하 아무튼 그게 처음이에요.

[센티멘틀한 여행]은 당시 키노쿠니야서점(일본 최대규모의 대형서점임)4층에 자비출판코너라는게 있어서 거기에 책을 위탁했었어요. 광고라는 것도 없었고 어쩌다 책을 펼쳐본 사람들이 마음에 들면 사는 식이었는데 그게 제법 팔렸지요.서점측에서 책의 안내문 같은걸 써달라고 그랬는데 내심 조금 부끄러워서 잘 못 알아보도록 왼손으로 글을 썼어요.하하하.

기자:지금까지 260여권의 사진집을 내셨는데 왜 그리도 많은가요?
아라키:내게는 사진이 일기와도 같은 거예요. 매일매일의 연속이지요. 사진집은 매일 먹는 음식을 매일 배설하는 것과 같은 거에요. 참았다가 며칠 만에 누면 큰 게 나올지도 모르지만 몸에 좋은 건 아니에요. 아하하하. 모았다가 내게 되면 벌써 시대에 어필할 수 없는 작품이 되는 수가 있어요.

기자:그 많은 사진의 공통된 테마는 성과 죽음이라는 데
아라키:맞아요.최근에는 그 성에대한 그리고 죽음에 대한 감정이 절정에 달해 있는기분이에요.즉 작품도 절정에 달해 있다고도 할 수 있지요.
기자:성과 죽음을 보는 아라키씨의 시각을 조금 설명해 주십시오.
아라키:성은 다른 말로 살아있는 생명이라고 할 수 있어요.그 대극은 죽음이지요. 하지만 이 둘은 인생에 있어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에요.공존하고 있지요.
죽음을 항상 의식하면 지금 살아있다는 기쁨을 배로 느낄 수 있어요. 죽음이 좋은 사람이란 없죠. 지금 열리는 [꽃의 인생]은 죽음의 의미가 짙게 배어있는 사진들이에요

어느날 요코가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에 데려갔었죠.1990년의 얘기에요. 의사가 나만 따로 불러서 육종이라고 아마 올 해를 넘기기 힘들다고 하는 거에요. 입원을 시켜놓코 병원을 나왔는데,도쿄가 그렇케 우울하게 보인건 처음이지요.도쿄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어요. 아직 날이 더운데 내게는 벌써 겨울이 와 버린거에요.그때 찍은 사진들이 [겨울로향해]지요.

어느날 아침 면도를 하고 있는데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어요.위독하다고.그래서 막 병원으로 가는데,꽃집에 들러 목련을 한 다발 샀어요.요코가 좋아했던 꽃이지요.병원 계단앞에 섰는데 계단에 드리워진 목련의 그림자가 그렇케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거에요.그걸 또 한 컷 찍고 병실에 갔었죠.고비는 넘겼어요.조금 나중에 요코가 죽었는데,빈 병실에 전에 사들고간 목련이 시들어 말라있고,밖에는 발코니 밖으로 목련이 새로 막피어있었지요.시들어버린 목련을 사 들고 병실에 갔을땐 아직 요코가 살아있었는데,지금은 죽고 없다 라든가 밖에 새로 피어난 목련은 병실 밖으로 나간 요코일지도 모른다 라든가, 죽음이 삶을 부르고 삶은 또 죽음으로 사라졌다든가 그런 생각들이 무수히 교차했지요. 그게 나중에[꽃의 인생]시리즈의 또다른 틀이 된거에요.

기자:노부요시(経惟) 는 불교식 이름이라고 들었는데 아라키씨는 종교가 있습니까?
아라키:없어요. 내겐 여자가 종교랄까 하하하

기자:아라키 어록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다양한 명언(?)을 남기셨는데,이를테면 렌즈는 남근이다. 셔터를 누르는 것은 사정하는 것이다.모든 여자는 여우(女優)다.여자가 없는 사진은 사진이 아니다. 에 대한 부연설명을 조금 부탁 드립니다.
아라키:음,다 말 그대로에요.아, '렌즈는 남근이다'는 이전의 것이고,요즘은 바꿨어요.‘카메라는 수용기다’ 라는 말로 바뀌었어요.즉 카메라자체가 여자라는 말과 상통하지요. 그런 면에 있어 사진가는 남자보다도 여자에게 적합한 일이라 생각합니다.여자가 즉 카메라이니까요. 여자를 찍지 않는 사진가는 사진가로서 레벨이 낮다고 난 생각해요. 그렇게 매력 있는 피사체를 찍지 않는다는 건 아까운 일이에요.
기자:과거 경시청으로부터 작품을 압수당하기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아라키:일상다반사지요. ‘80년대엔 매일처럼 불려 다닐 때도 있었어요. ‘헤어가 아니냐?’ ‘아니다 그림자다’ 하며 싸우기도 하고 벌금형을 선고 받기도 했어요. 큐레이터가 구속된 일도 있지요. 지금 같으면 헤어 정도는 아무런 문제도 안되지요.

기자:스스로를 지칭하여 “에로 리얼리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아라키:공상적인 에로가 아니라 에로란 리얼이 아니면 안 된다는 거지요. 관념이라든가 공상이 아닌 현실에서의 에로를 추구한다는 의미에요. 스트레이트랄까 자기 기분에 대한 솔직한 표현이지요. 자신에게조차 거짓말 하면 안 되요. 그런 면에 있어 한국인들은 자기 기분을 스트레이트로 표현하는 점이 퍽 맘에 듭니다. 그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길이나 시장에서 부여잡고 싸우는 사람들도 많이 봤어요.특히 한국 여자들은 너무 무서워요.하하하.

기자:이번 서울 전시회의 작품에 도마뱀과 고양이가 자주 등장하는데,이들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아라키:그건 도마뱀이 아니고 도마뱀붙이 에요.(일본에는 주택가에 많이 서식한다) 키우는 고양이 치로가 잡아다 준 건데,한마리쯤은 자기가 먹고 남은건 나에게 가져다 줘요.그게 햇볕에 말라비틀어진 거지요.그 말라붙은 도마뱀붙이는 나의 성을 상징하지요.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나의 성기에요. 난 그걸 야모린스키 라고 부르는데 하하하 러시아어예요. 고양이는 물론 치로짱(짱;이름뒤에 붙이는 애칭)이지요. 에로보다는 치로죠 하하 너무 어려운 말을 해버렸네.

기자:치로는 지금 몇살쯤 되지요?
아라키:하하하 한 80살쯤 되나? 우리 요코가 데려다 키우던 거니까 벌써 14년,15년쯤 됐나...난 원래 고양이를 좋하했던건 아니지만...치로는 요코가 남기고 간 분신같은 거에요
기자:아라키씨를 소재로 한 영화 [도쿄 맑음]은 한국에서도 개봉되었습니다.영화속의 아라키씨는 조금 과장되고 미화된 것이 아니냐는 말을 하는데,영화속의 시마즈와 실제의 아라키씨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아라키:역시 영화니까 다소의 과장이 있죠.사실 그 남자배우 ‘타케나카 나오토’가 맘에 안들어.하하하. 너무 오버를 해요.그 영화 뒷부분에 내가 나와요.

기자:못본거 같은데 정말이십니까
아라키:정말이라니까.뒷부분에 차장역으로 나와요.잘 봐야 해요.하하하

기자:디지털 사진을 보는 시각과 앞으로 디지털카메라로 작업할 계획이 있으신가요?
아라키:하하 그렇치 않아도 이번에 새로 하나 샀어요. 서울 갈 때 가져가려고 말이죠.이태원에 ‘여보여보’라는 뉴하프 의 클럽이 있는데 거기 가서 촬영하기 위해서예요.

기자:이번에 구입하신 게 첫 디지털 카메라 이신가요?
아라키:전에 선물받은 게 있어 썼었는데 고장나서 새로 샀죠.

기자:제가 2001년 동경에서의 [소설서울]전시회때 토크쇼에서 ‘아라키씨의 디지틀사진에 관한 의견’을 여쭈었었는데 기억 나십니까? 사진도 결국 물장사라 물을
만나지 않으면 참된 사진이 아니라고 하셨었는데…아마 평생 안 쓸거라고…
[영화 ]
아라키:앗,하하하,(당황스러움과 웃음이 교차한다.)그땐 정말 그렇게 생각했었죠. 사실 그레이드라든가 화질도 떨어지는건 사실인데,써보니까 나름대로의 좋은 점이 있어요.난 과거완료형이 아닌 현재진행형 사진가니까요.하하하.

기자:물장사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아라키:한국어로 물의 의미를 잘 모르는데,뉘앙스가 잘 전달 안되면 어쩌지. 여자를 말할때 색(色)이 있는 여자와 물(水)이 있는 여자가 있어요.비슷하면서도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의 것인데,요즘에는 물이 있는 여자가 많이 줄어들었어요.지구도 우주도 물이 부족하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있는데 여자도 물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기자:현재 진행중이신 작업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십시요
아라키:[일본인의 얼굴 시리즈]를 찍고 있어요.앞으로의 계획이란 …음, 나 자신이 사진이고 내 일상이 곧 사진이지요.일상을 쉬지않고 계속 찍는게 내 스타일입니다.

기자:끝으로 한가지만 더 질문드리겠습니다. 작품에서 여자를 결박하는 의미는 무었입니까?
아라키:하하하 묶어두지 않으면 도망가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그 행위는 나게있어 SM적인 의미는 없어요.

기자:잘 알겠습니다. 오늘 바쁘신 가운데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아라키:아, 피곤하다. 아리라앙 아리라앙 아라키요…
어디서 많이 들어본 곡조를 아라키씨가 콧노래로 부른며 한시간 전 부터 기다리고 있던 잡지사의 편집장이 있는 테이블로 이동한다. 아라키씨는 정말 바쁜가 보다.

바쁜 일정가운데 인터뷰를 허락해주신 아라키노부요시씨와 AaT Room관계자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인터뷰:김형욱(본지 일본통신원 wooksphoto@hotmail.com)
사 진: Kurusu Sachi (Tokyo Institute Of Polytechnics )


내가 사랑하는 바로 이 렌즈<아라키 노부요시>

아라키 노부요시
1940년생, 1964년 제1회 태양상 수상. 저작은 200권이 넘는다고 한다.
최근의 사진집으로 [寫眞私情主義] [사진시대]등. 

작업(일)으로 주로 쓰시는 카메라 렌즈를 알려 주십시오.
"내 경우는 일이나 사적으로나 구분하지 않고 전부 같이 아라키의 사진이지. 하지만 부탁받은 일로 찍을때 많이 쓰는것이 펜탁스 67이네. 전기통신공사를 그만둔후부터 벌써 27년간 사용하고 있네. 찰칵 찰칵하고 찍는다는 느낌이 들어 좋지. 찍히고 있는 여자도 젖어들지. 렌즈는 90미리 f2.8과 105미리 f2.4를 쓰네. 나로서는 포트레이트의 업은 105미리 하나로 좋을 정도지만 야한 잡지의 경우는 젖가슴이 나와야 하니까 90미리로도 찍고 있어요. 
최근의 카메라맨으로 여자를 찍을때에 와이드 렌즈로 접근해서 왜곡현상을 내며 찍는 경우가 많이 있잖아. [육안이 아닌 렌즈의 시점으로]라면서.... 하지만 나는 밸런스가 무너지는것은 안되지. 67판의 90미리에서 105미리 정도의 표준렌즈로 여자를 품을수있을 정도로 거리감이 좋아. 촉각보다는 시각적인 애로가 중요하지. 포트레이트는 말이야, 사랑에 빠진 기분으로 찍지않으면 안되지. 

렌즈는 어떤것을 중요시 생각하십니까?
특히 따지지는 않아. 그러나 지나치게 차분한 정감이 나오는 렌즈는 싫어. 너무 좋은 렌즈는 싫단 이야기야. 그렇다고 질이 와장창 떨어지는 렌즈도 안되지. 적당히 알맞게 묘사되는 펜타 6x7이 좋지않어? (웃음) 
사람들은 말이야 [콘탁스의 촉촉한 묘사가 좋아] 라고 말하잖아. 나온것을 보면 확실히 틀린점이 있더라구. 하지만 그게 아니란 말이지. 
지금 내가 하고있는 것은 스트로보를 스트레이트로 찍으면서 일부러 난폭하게 찍어대서 분위기를 깨뜨리지. 그런 놈이 렌즈의 미묘한 보케라든지 묘사라든지 신경쓰지 않아. (웃음)  애용하고 있는 헥사같은것도 적당한 묘사가 맘에 드는 이유야. 
실은 환갑기념으로 라이카를 사용할려고 한적이 있어. 하지만 말이야, 역시 너무 좋은 카메라이더군. 그런것은 말이야 금발신사들이 아니면 못쓰겠더라구, 나 머리털 없지만 말이야.(웃음) 
거칠게 찍을수도 없고 약동감을 낼수없어. 1개월만에 그만뒀지. 라이카로 참을만한 아라키가 아닌셈이지. 
사진가는 말이야, 카메라에 영향을 받지. 그래서 카메라와 좋은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되지. 무엇을 사용하는가에 따라 그사람을 알수있어. 내경우는 너무 좋은 카메라는 안어울려. 

렌즈를 어떻게 구분해서 사용하십니까?
렌즈보다는 카메라의 메카니즘에 좋고 싫고가 있어. 감는것이 느리다던가, 소리가 맘에 안든다거나 하면 바로 사용하지 않게 된단 말이야. 
네가 필름의 정리는 사용한 카메라별로 분류하고 있어. 다만 세기말에서 신세기로 바뀐 [지금]의 기분은 역으로 찍은 카메라는 관계없이 작품을 막 섞어볼까하고 생각하고 있어. 그것이 가장 자신을 알수있지. 그래서 이제부터 여자를 찍을때 디지털 카메라를 써볼까 해. 사실은 맘에 들진 않지만.... 은염만으로는 시대의 맛을 느낄수없잖아. 

아라키류의 렌즈 워크라면?
삼각대를 사용할때는 와장창 조이지. 항상 집 발코니에 셋트해논 카메라로 하늘과 길거리를 주시하고 있어요. 그것은 구석 구석까지 핀트가 나오도록 조여주지. 하지만 말이야, 삼각대없이는 f5.6이나 f8정도가 좋아. 자동이 가능한 카메라는 자동으로 찍는것이 좋고.... 

필터는 사용 안하시죠?
전혀 사용하지 않아. 하지만 [겨울에] (1990년) 를 찍을때 길모퉁이에 다니는 사람들을 지우기 위해 진한 안바 필터를 끼우고 슬로우 셧터로 사람들을 지운적이 있지.겨울 길모퉁이에 죽음의 이미지를 내기 위해서 말이지. 
마누라가 죽음을 앞두고 있을때 였어. 특별한 때는 나도 그정도의 테크닉을 사용해. 

줌렌즈는 사용하십니까?
사용 안하지. 그건 말이야, 사진가를 망치는 가장 큰 원인이야. 자신이 줌이 돼서 움직이지 않으면 안되지. 그냥 서있는 채로 밖에 더해? 
가깝게 찍고 싶으면 자신이 직접 다가서서 찍고, 넓게 찍고프면 뒤로 물러서고.... 뒤로 물러설 곳이 없으면 벽을 부수고라도 물러서야지. 

무인도에 렌즈 하나만 가져 가라고 하면 어떤것을?
하하하!... 재미있는 질문이네. 집에는 대지진을 대비해서 미놀타의 TC-1과 트라이 엑스 필름을 10롤, 그리고 2천만원을 자루에 넣어 놓고 있어. 피난갈때 그것 하나 들고 찍기부터 할꺼야. 사진가 답지? 
그래서 TC-1이라고 할까? 그 놈은 작고 단단하기때문에 좋지. 살아 남는 놈은 작고 단단한 놈이지.
//포스팅

‘변태’와 ‘천재’라는 극단적인 평가 받고 있는 사진작가 아라키 노부요시
“내게 성(性)은 삶 그 자체, 성이 없는 인생은 죽음과 마찬가지다”
아라키 노부요시는 파격적인 소재 때문에 외설과 예술 사이에서 논란을 일으켜온 일본의 사진작가. 
그의 도발적인 작품세계를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려 화제다. 오는 2월23일까지 서울 일민미술관에서 열리는 <소설 서울, 스토리 도쿄>가 바로 그것. 아라키는 한국에서 여는 첫 전시회를 위해 지난해 11월 내한했다. 직접 만난 아라키의 솔직한 모습은 그의 사진만큼이나 파격적이었다.

음식물을 클로즈업해 찍은 <서울 식정> 연작 앞에서 포즈를 취한 아라키(위)
아라키 노부요시(63).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일본 최고의 사진작가이자 외설과 예술의 중간 선상에서 끊임없이 논란을 일으켰던 ‘문제작가’. 특히 여성의 성기를 드러내거나 여체를 로프로 묶는 장면을 연출하는 사진으로 전시회 때마다 외설 시비가 불거졌고 심할 경우 전시 기획을 맡은 큐레이터가 체포당하는 등 수난을 겪기도 했다.
그런 그의 파격적인 작품 세계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개인전이 한국에서 처음 열려 화제다. 서울 일민미술관에서 오는 2월23일까지 아라키 개인전 <소설 서울, 스토리 도쿄>를 선보이고 있는 것. 이번 개인전에서는 서울과 도쿄 두 도시의 풍경 외에 꽃과 음식, 여성의 누드 등을 전시한다. 여체를 로프로 묶어 표현한 ‘긴바쿠(결박)’ 연작은 18세 미만에게 관람을 제한한다.
지난해 11월에 아라키가 자신의 한국 개인전을 위해 내한, 팬들과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작은 키에 동그랗게 나온 배, 대머리 양쪽에 남아있는 어설픈 은빛 바람머리…. 직접 만난 그는 동네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아저씨의 모습이지만 재치 넘치는 언변과 타고난 쇼맨십, 온갖 논란 속에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은 당당함은 예술가로서의 자신감을 확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다음은 아라키와의 일문일답.
-한국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 첫 전시회를 여는 소감이 어떠한가?
“한국은 나의 또 다른 고향이다. 같은 아시아라서 그런지 일본과 많이 닮았다. 한국은 일곱번 방문했고 부산, 목포, 서울 등 전국을 차례로 돌며 작품을 많이 찍었다. 특히 10년 전쯤 서울의 허름한 도시 뒷골목 진흙더미에서 엉덩이를 내놓고 밝게 웃으며 뛰어 노는 한 소녀를 만났는데, 그 소녀를 보는 순간 사랑에 빠져버렸다. 강한 생명력을 내뿜는 그 소녀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고(이는 전시실 입구쪽에 전시돼 있다), 지금 이 소녀가 어떻게 컸을지 너무 궁금하다. 그 소녀를 만나고 싶어 한국에 다시 왔다(웃음). 이번 첫 전시회는 아주 만족스럽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전체적으로 구성이 잘됐다. 특히 서울과 도쿄의 사진들이 한국의 ‘비빔밥’처럼 잘 섞여져 너무 기쁘다.”
“자극을 가하면 여체는 더욱 아름다워진다”
-성에 탐닉한다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성이 빠진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나? 성은 내게 삶 그 자체이고, 성이 없는 인생은 죽음과 마찬가지다. 앞으로 성에 대해서 계속 탐구할 것이다.”
-주로 여성의 누드를 찍어왔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여체는 매우 아름답다. 아름다운 피사체를 찍고 싶은 것은 모든 사진작가의 소망이다. 그런데 나는 ‘누드’라는 말에서 눈물(淚)이 떠오른다. 눈물 같은 체액은 끈적거리는 느낌을 주고, 그 느낌은 작품 전체를 더욱 에로틱하게 만든다. 여체뿐 아니라 꽃, 음식에서도 그 끈적거리는 느낌을 살리려고 했다.”
그의 말처럼 다양한 꽃과 순두부찌개 위 달걀 노른자, 지글거리는 고기, 빨간 김치 등의 음식물을 낯선 각도에서 클로즈업해 찍은 <에로토스(에로스+타나토스)> 연작이나 <서울 식정(食情)> 연작은 묘한 에로틱한 분위기를 자아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당혹감을 느끼게 한다.
-왜 아름다운 몸을 로프 등으로 묶어 사진을 찍는가?
“음… 아무것도 가해지지 않은 여체는 밋밋한 느낌이 든다. 무언가 자극을 가함으로써 여체는 더욱 아름다워진다. 키스할 때를 생각해봐라. 자극을 가하면 가할수록 더욱 강렬하고 아름다워지지 않는가.”
-사진 속 여성들이 옷을 벗고 있거나 심지어 묶여있기도 한데 표정은 매우 자연스럽다.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는가?
“내가 귀여우니까(웃음). 내가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으니까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사진을 찍을 때 항상 연애하는 기분으로 임한다. 사진을 찍는 그 순간만은 모델과 나는 연인관계다. 연인과 함께 있는데 왜 표정이 부자연스럽겠는가.”
-당신의 사진이 여성학대라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까도 말했듯 사진을 찍는 그 순간 나와 모델은 연애를 하고 있다. 연애에도 다양한 형태가 있듯이 나의 욕정이 다양하게 표현된 것뿐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나만의 욕정이 아니라는 것, 상대방도 원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모델인 여성도 원하는데 그것이 왜 여성학대인가. 여성학대라면 모델들의 표정이 이처럼 자연스러울 수 있겠는가.”  
삶과 죽음에 대한 기억들을 담는 ‘생과 사의 비빔밥’이 바로 사진
사진작가인 그에게 아내 요코의 존재는 절대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는 자신이 ‘진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한 것은 바로 아내 요코라고 강조한다. 가장 자신의 감정이 충만하게 나타나는 것도 바로 아내의 사진. 71년 아내와의 신혼여행을 담은 연작 <감상적인 여행>에서는 삶의 충만함, 넘치는 성(性) 에너지가 느껴지는 반면 90년 아내의 죽어가는 모습을 담은 <겨울의 여행> 연작에서는 생과 사가 교차되면서 나타나는 삶의 허무함,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아득한 심경 등이 흑백 풍경을 통해 나타난다. 이들의 삶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개봉한 영화 <도쿄, 맑음>이 바로 그것이다.

그의 작품은 에로틱한 분위기를 자아내면서도 짙은 허무감이 배어져 나온다.
-이번 개인전에서도 아내의 사진이 많이 전시됐다. 아내 요코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아내의 사진을 찍기 전에는 주로 보도용 사진을 찍었는데, 아내의 사진을 찍으면서 사랑을 가진 존재를 찍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존재를 찍을 때 진정한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고 이런 사진만이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음식과 꽃에 몰입하게 된 것도 아내 때문이다. 아내를 간병할 때 아내가 먹는 음식을 찍으면서 강한 생명력을 느꼈고, 아내가 죽기 직전 선물했던 꽃봉오리가 아내가 죽은 직후 꽃을 피우는 것을 보고 일련의 ‘생의 전달’을 느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음식과 꽃 등에서도 생과 사를 동시에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2백50여개의 작품집을 낼 정도로 작품을 많이 찍었다. 다작을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나는 변비보다는 설사를 하는 타입이다. 찍고 싶은 피사체가 있다면 무조건 여러 각도에서 많이 찍어낸다. 오랜 시간 고민해서 작품을 하나 만들어내는 차분한 성격이 아니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당신에게 사진이란 무엇인가?
“내가 바로 사진이다(웃음). 나의 삶과 죽음에 대한 기억들을 담는 ‘생과 사의 비빔밥’이 바로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