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의 보물찾기
한국인들이 미국에 와서 처음 보는 것 중에 하나가 '게라지 세일(Garage Sale)'이다. 미국 자동차문화와도 관련이 깊은 게라지 세일은 한국인들에게 독특한 문화적 체험을 하게 한다. 나도 미국에 온 뒤 주위 한국인들에게서 게라지 세일에 대해 듣게 됐지만, 실제 그 참맛을 느낀 것은 내 자신 직접 체험해본 뒤였다.
용어 자체가 낯선 독자들을 위해 먼저 `Garage'라는 말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 좋을 듯싶다. 영영사전에는 그 뜻이
1.a building or indoor space in which to park or keep a motor vehicle.
2. A commercial establishment where cars are repaired, serviced, or parked.
로 나와 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자동차 차고나 자동차 수리소라고나 할까? 실제 한집당 평균 두세대씩 차를 갖고 있는 미국인 가정집에는 게라지(차고)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게라지 세일이란 자기집 차고에서 자기가 쓰던 물건들을 진열해놓고 일반인들에게 파는 행사를 말한다.
미국 실용정신의 상징
게라지 세일에서 접할 수 있는 물건들은 정말 다양하다. 큰 것은 침대, 소파, 책상, 자전거, 컴퓨터, 텔레비전, 오디오에서부터 작은 것은 옷, 타월, 그릇, 책, 인형, 장난감, 장식품에 이르기까지 없는 것이 없다고 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1만3700달러 가격표가 붙은 지엠의 임페라(Impala)를 게라지 앞에 팔려고 내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또 거의 새 것 같은 것이 있는가 하면, 수십년도 더 된 중국 골동품이 나오기도 한다.
독자들에게 미국의 게라지 세일을 소개하는 이유는 미국인들의 실용정신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나를 비롯한 한국인들은 체면을 중시해서인지 남들이 사용하던 중고품을 다시 쓰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부끄럽다는 말이 적절하지 않다면 그냥 내키지 않는다고 해도 좋다. 친척끼리 물건을 돌려 쓰는 경우는 많지만, 얼굴도 모르는 남의 물건을 쓰는 것은 정말 흔치 않다.
솔직히 한국에서는 쓸만한 물건인데도 그냥 버리는 것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파트 경비실 앞에 가보면 멀쩡한 물건을, 그것도 수거비까지 내가며 그냥 버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최근 경기침체 이후 소비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과거처럼 근검절약을 무조건 권장하기도 힘들게 됐지만, 아직 쓸 만한 물건을 그대로 휴지통에 버리는 것은 우리 모두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미국인들은 중고품을 쓰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물건에는 귀천이 없다고 할까?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을 돈주고 사는데 새것이든 헌것이든 남의 눈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는 식이다. 미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한 강의시간에 미국인 강사가 게라지 세일을 미국의 특징적인 이벤트 중 하나로 소개하기도 했다. 그 강사는 게라지 세일에서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엄청나게 싸게 산 사례를 신명이 나서 설명했다.
혹시 상대적으로 형편이 넉넉지 않은 미국인들만 게라지 세일에서 물건을 사는 것은 아닐까? 물론 그런 사람들이 게라지 세일을 더 적극적으로 이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겪은 경험의 범위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옆동네는 랜싱에서 부자들이 몰려사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곳에서 열린 게라지 세일에 몇차례 간 적이 있는데, 집주인과 손님들이 서로 반갑게 인사하며 대화를 나누는 것을 자주 목격했다. 손님이 바로 이웃집에 사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게라지 세일의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미국 내 특정지역이 아니라 전 지방에 걸쳐 보편화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말에 다른 지방으로 여행을 가서도 여러번 보았다. 인터넷으로 보면 뉴질랜드 등 같은 영어권 나라에서도 게라지 세일이 시행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라지 세일에 나온 물건들의 값은 전적으로 주인들 맘이다. 싼 것은 불과 수십센트하거나 아예 무료로 나눠주는 것도 있고, 비싼 것은 수백달러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대개는 아주 비싸도 수십달러 선을 넘지 않는다. 가격이 싸다고 물건의 질이 다 형편없는 것은 아니다.
운이 좋으면 사용하는 데 전혀 이상이 없고 흠도 거의 없는 고가의 물건을 단 10달러나 20달러에 사는 짜릿한 행운을 맛볼 수 있다. 물건들이 빽빽이 진열돼 있는 게라지 안을 살필 때는 마치 보물을 찾아 밀림 속을 누비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사진설명-지난 11월2일 미국 미시간주 오케모스시의 한 가정집에서 열린 게라지 세일에서 찾아온 이웃 주민들이 원하는 물건을 찾고 있다]
한국인에게는 특히 고맙다
게라지 세일은 한국인들에게는 다시없이 고마운 존재다. 앞서 미국에 처음 온 한국사람들은 살림살이가 하나도 없어 가재도구를 마련할 때까지는 며칠씩 거실이나 방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생활한다는 얘기를 했다. 한국인들이 가재도구를 마련할 때 부닥치는 가장 큰 고민이 새것을 살 것이냐 아니면 중고를 살 것이냐 하는 것이다.
1-2년 정도 미국에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값비싼 새 물건을 사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이 된다. 금전적인 부담도 크지만, 한국에 똑같은 용도의 물건을 두고 온 경우가 많고, 설령 많은 돈을 주고 사더라도 도로 한국으로 들고 가야 하는 불편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인 단기 체류자들은 게라지 세일 같은 데서 값이 싼 중고품을 사서 쓰다가, 1-2년 뒤 한국으로 돌아갈 때는 다른 한국인들에게 되팔거나, 아니면 버리고 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내 경우 미국에 와서 가장 큰 돈이 들어간 물건은 침대 매트리스다. 다른 것은 몰라도 매일 깔고 자는 침대를 중고로 사기는 어딘지 찜찜해서 침대 할인점에 가서 2인용과 1인용을 합해서 228달러에 샀다.
하지만 프레임과 스프링박스, 헤드보더가 딸리지 않은 것이어서 맨바닥에 매트리스만 깔고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미국의 침대는 우리 것과는 구조가 약간 다르다) 그러다 보니 게라지 세일에 갈 때마다 싸게 나온 쓸만한 침대가 없나 하고 두달 가까이나 헤맸다.
그러나 나온 물건 자체가 거의 없고, 간혹 나온 것은 값이 비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다가 토요일 오후 혹시나 하고 찾아간 교회에서 주최한 한 게라지 세일에서 매트리스만 빼고 헤드보더와 프레임, 스프링박스 일체를 단돈 10달러에 사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더욱이 싣고갈 트럭이 없다는 내 말에 교회 사람들은 다른 교인의 미니밴을 불러 배달해주는 친절까지 베풀었다. 그날 저녁 침대 조립을 끝낸 뒤 잠자리에 들 때의 기분이란!
게라지 세일은 주로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사이에 열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간은 대개 아침 8-10시부터 시작해 오후 4-5시에 끝난다. 일요일까지 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지는 않다. 게라지 세일에 대한 정보는 주로 신문을 통해서 얻는다.
미국신문들은 기사 종류별로 따로 묶음을 하는 섹션화가 일반화되어 있는데, 게라지 세일 광고는 각종 생활광고들이 실려 있는 `분류광고면'에 있다. 나 자신 미국에 온지 두달 정도는 매주 금요일 아침 한부에 50센트하는 지역신문을 사보는 것이 정해진 일과였다.
미국인의 삶을 볼 수 있는 게라지 세일
게라지 세일을 쫓아다니다 보면 자기가 사는 도시나 동네의 특성을 보다 빨리 파악하게 된다. 광고에 나와 있는 집 위치를 보고 지도를 뒤져가며 게라지 세일 장소를 찾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중소도시의 경우 대부분의 도로가 격자형으로 반듯반듯 정리돼 있고, 주택들도 띄엄띄엄 여유있게 배치돼 있어 주소만 가지고 집을 찾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미국 도시지도는 알파벳 순서대로 거리이름과 그 옆에 지도상의 위치를 적어놓은 표가 실려 있다. 이처럼 게라지 세일 자체가 자동차가 없으면 접근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곳 랜싱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부자동네와 가난한 동네가 나뉘어 있다. 랜싱은 정확히 말해 랜싱을 중심으로 해서 그 동쪽에 붙은 이스트랜싱, 다시 그 동쪽에 붙은 오케모스와 헤즐렛이라는 네 도시로 이루어져 있다. 오케모스에는 주로 돈많은 백인들이 몰려 살고, 랜싱에는 가난한 흑인과 히스패닉들이 살며, 그 중간지대인 이스트랜싱에는 미시간주립대가 위치해 있다.
또 게라지 세일은 미국인들의 사는 모습을 보다 가깝게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게라지 세일의 일종인 에스테이트(estate) 세일의 경우 손님들을 직접 자기집 안으로 들여놓기 때문에 미국인들의 집안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다.
게라지 세일에 나오는 집주인들의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어떤 집에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만 앉아 있는가 하면, 어떤 집은 젊은 부부가 어린애 3명을 나란히 데리고 나오기도 한다. 또 찬바람이 쌩쌩부는 속에서 젊은 엄마가 3-4학년짜리 딸아이와 유모차에 누워 있는 아기를 데리고 유일한 손님인 우리를 맞이할 때는 애처로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가끔은 할아버지부터 어린 손자까지 3대가 함께 게라지 세일을 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게라지 세일에 가면 거의 예외없이 볼 수 있는 게 집주인들이 들고 나오는 사각형 철제 상자이다. 우리네 구멍가게에서 쓰는 금전출납기 같이 생긴 것인데, 집주인들은 받은 돈과 거스름돈을 그 상자에 넣어 보관한다.
한국 사람들 중에는 아침 일찍부터 아이들을 차에다 싣고 게라지 세일 순례에 나서는 이들도 있다. 물건에 대한 소중함을 모른 채 풍족하게 사는 데만 익숙한 우리네 아이들에게 남들이 쓰던 물건도 얼마든지 나에게 소중한 물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귀중한 산 교육이 되지 않을까?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남들보다 먼저 손에 넣으려면 시작시간에 맞춰 아침 일찍 게라지 세일에 가야 한다. 당연히 아이들은 토요일 아침의 달콤한 늦잠을 포기해야 한다.(미국에서는 토요일 학교가 쉰다) 우리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부지런한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산 교훈을 얻지 않을까?
아이들이 게라지 세일에 적극 참여하도록 하려면 어른들이 나름대로 유인책을 쓸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자기 스스로 장난감이라 동화책 같은 물건을 고르도록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귀찮아 하던 아이들도 보물창고 같은 게라지 세일에 재미를 붙이면 졸린 눈을 비비며 아빠, 엄마를 따라 나선다.
게라지 세일을 즐기는 법
짧은 경험에 근거한 것이지만, 몇가지 요령만 알아두면 게라지 세일에서 더욱 쉽게 더욱 큰 기쁨을 얻을 수 있다. 먼저 남들보다 현장에 일찍 가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내용이 괜찮을 것으로 예상되는 게라지 세일에 가보면 시작시간이 되기도 전에 사람들이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집주인들은 대개 미리 정해진 시간을 정확히 지킨다.
그래서 일부 손님들은 집주인에게 미리 전화를 해서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예약해 두는 사례도 있는 것 같다. 이 때문인지 일부 집주인들은 신문광고에 아예 `no early bird(사전 방문 사절)'이라고 써놓는다.
두번째는 자투리 돈의 경우 값을 깎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벽시계 5달러, 카세트테이프 2개 2달러, 겨울용 방한장화 1달러, 자전거 3달러해서 합이 11달러면, 10달러로 깎는 것이다.
대부분의 집주인은 `오케이'한다. 자전거가 3달러라고 하니까 이상하게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내 자신의 실화다. 게라지 세일이 열리는 곳이 어디냐도 중요하다. 다시 말해 부자동네에서 하는 게라지 세일일수록 다양하고 좋은 물건들이 많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실제 한 부자동네의 게라지 세일에 갔다가 엄청나게 많은 물건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게라지 세일은 일반 상점처럼 물건이 항상 진열돼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타이밍이 특히 중요하다. 적당한 값에 필요한 물건이 나왔다 싶으면 망설이지 말고 잡아야 한다. 몇주를 고생한 끝에 괜찮은 소파용 탁자를 찾았는데, 가격문제로 혼자 고민하는 사이 웬 미국 여성이 선수를 치는 바람에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사실 값도 큰 것이 15달러, 작은 것이 8달러로, 물건을 감안하면 그리 비싼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미국의 축제인 할로윈을 위한 의상도 마찬가지다. 9월 중순이 넘어가면서부터 주위 한국인들에게서 10월말에 열리는 할로윈 축제에 맞춰 아이들 분장의상을 게라지 세일에서 사두는 것이 좋다는 얘기를 듣고서도 귓가로 흘렸다.
그러다가 막상 축제일이 다가오면서 눈을 부릅뜨고 분장의상을 찾았지만 실패했다. 결국 게라지 세일에서는 1달러면 충분할 것을, 근처 할인점에 가서 무려 15달러나 주고 살 수밖에 없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주의해야 한다.
견물생심이라고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인데, 좋아보이고 가격이 괜찮다고 덜커덩 사버리면 꼭 후회하게 된다. 대개 그런 물건은 집에 가지고 와서도 자리를 찾지 못하고 거추장스러운 신세를 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라지 세일에도 세분하면 몇가지 종류가 있다. 일반적인 게라지 세일 외에 이사가면서 하는 무빙세일, 재산을 처분한다는 개념의 에스테이트 세일, 자선바자회 성격의 러미지 세일이 있다. 이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이 러미지 세일이다. 주로 교회 같은 데서 교인들로부터 물건을 기증받아 하는데 자선바자회 성격이 짙어 가격이 더욱 싸고 물건이 많아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에스테이트 및 무빙세일도 일반 게라지 세일에 비해 물건이 많은 편이다.
미국인들의 실용정신이 배어있는 게라지 세일을 `수입'해 우리식으로 정착시키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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