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완 좋은 연기의 비결 / 이영미
최근 방송이 끝난 텔레비전 드라마 <하얀 거탑>에서 김창완의 연기를 보면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좋은 작품에는 늘 명연기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이 작품의 김창완 연기는 의외였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김명민이나 이정길의 연기에 대한 반응이 “역시!”라는 감탄이었다면, 김창완의 연기에 대한 반응은 “어라, 김창완이 저런 연기를!”이었다. 그는 연기 수업을 본격적으로 받은 바 없는 가수 출신의 연기자이며, 중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본격적인 연기를 시작했고, 단골 역은 주로 가수이거나, 그가 지어 불렀던 노래들이 ‘착한’ 분위기를 고스란히 유지하는 맘 좋은 아저씨였다. 그러니 이번 <하얀 거탑>에서 예전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훌륭히 만들어낸 것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도대체 연기 훈련을 받지 않은 그가 이런 연기를 훌륭하게 해낼 수 있는 비결은 무얼까. 그와 일면식도 없는 내가 연극평론가로서의 상식을 동원하여 설명해 본다면, 그것은 그가 지니고 있는 ‘이완’의 태도인 듯하다. 연기에서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고 완전히 이완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 타인 즉 자신이 연기할 ‘인물’을 받아들이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그러나 이는 말처럼 쉽지 않다. 남 앞에 서서 자신의 온몸을 보여주는 것이 연기이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긴장을 풀어야지’ 하는데 몸이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연기에 쓸데없는 힘이 들어간다.
이런 이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훈련으로 조절 가능하지만 개인차가 있다. 평소의 성격이나 태도, 사고방식, 습관 같은 것에 큰 영향을 받는 것이다. 남에게 자신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의욕이 넘치는 사람들에게, 몸과 마음을 비우는 이완은 쉽지 않다. 주로 젊고 미모가 출중한 배우들에게서 경직된 연기가 많이 나타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들은 남 앞에서 예쁘게 보이는 것이 습관화되어 웬만한 훈련으로 그것이 깨지지 않는 것이다. 미모의 여배우들이 결혼과 출산, 이혼 이후에 컴백할 때에 연기력이 놀랍게 향상되어 있는 것도 예쁜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긴장이 몸에서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창완은 애초부터 불필요한 긴장이 매우 적은 사람으로 보인다. 초기 산울림 노래에서부터 그의 목소리는 이완되어 있다.(30년 전 신인 시절 어느 라디오방송에 출연한 그는, 어떻게 하면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같은 창법이 가능하냐고 묻는 진행자에게, 이완된 목소리로 “사흘만 굶으면 다 이렇게 나와요” 하고 재기발랄한 답을 했던 기억이 난다.) 악다구니 쓰고 사는 세상사로부터 조금 떨어진 듯한 ‘허허실실’ 분위기도 이런 이완의 태도에서 나온다고 보인다.
그래서 그는 연기에서, 이완된 몸과 마음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 특별히 더 잘하려고 하지 않으며 그냥 생긴 그대로를 보여준다. 긴장을 풀고 자신을 비웠으므로 자신이 아닌 ‘인물’을 자기 안에 채우고, 그것을 자신의 어떤 부분과 쉽게 일치시킨 다음, 그저 자신을 욕심 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만약 그가 아무리 자기를 비우고 이완해도 자신의 몸에 그 ‘인물’이 머무는 것이 부자연스럽다고 판단된다면, 아마 그는 그 연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쓸데없이 힘주며 ‘오버’할 것 같지는 않다.
자신의 삶이 아닌 타인의 삶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자기를 비우고 이완하는 태도는 필수적이다. 자신을 비울 수 없는 무당은 남의 영혼을 받아들일 수 없고, 그를 치유하고 위로할 수도 없다. 그것이 꼭 연기자나 무당뿐이랴. 지금의 종교인이든 교사이든 정치인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영미/대중예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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