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rss 아이콘 이미지




나 잭 니콜슨은 매력적인 인생을 살았다. 자고 싶은 여자와도 자 봤고 하고 싶은 역할도 다 해봤다. 물론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누가 관심을 가지겠나 싶어 잠적한 적도 있다. 우울한 생각에 더이상의 성장은 끝났다는 생각도 들더군.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배우 생활을 시작하던 때가 생각나기도 한다. 어쨌든 난 표현하지 않고는 행복할 수 없는 인간이다. 그래서 배우가 된 거겠지. <어바웃 슈미트>는 다시 한번 이 진리를 떠올리게 해준 영화다.

“난 66세고 얼마 전 정년 퇴직을 했단다... 우드먼의 중역이었는데 그 새파란 놈한테 밀려나고 말았어... 보험사정평가며 부서 관리는 아무나 하는 줄 알아? 개뿔도 모르는 왕재수 새끼!… 66세라고 하니까 할아버지 같지? 사실 폭삭 늙었지 뭐. 눈가엔 주름이 자글자글 목살은 처지고 귀털은 수북, 발목엔 혈관이 비친단다. 내가 봐도 추해. 어렸을 땐 내가 특별한 줄 알았어. 남다른 운명을 타고 났다고 믿었지…”- '탄자니아 소년 엔두구에게 보내는 슈미트의 편지' 중에서.

늙더니 변했다

오지랖 넓은 잭 니콜슨은 친구가 많다. 그중 워렌 비티는 그의 조언을 가장 충실하게 듣는 동료 중 하나다. 지난 1981년, 비티는 자신이 각본, 제작, 출연에 연출까지 맡은 <레즈>의 주인공으로 누가 가장 잘 어울릴지 니콜슨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데?” 니콜슨의 말에 비티가 말했다. “음… 여자 주인공이 단 1초도 생각하지 않고 날 버리고 선택할 수 있는 남자 정도면 되지 않을까?” 니콜슨의 대답. “그런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밖에 없어. 바로 나.” 물론 워렌 비티는 자신의 영화 <레즈>의 주인공 역을 끝까지 절친한 친구 잭 니콜슨에게 양보하지 않았다. 극중 작가이자 여성 인권 운동가인 브리안(다이앤 키튼)은 극작가 유진 오닐(잭 니콜슨)과의 불륜 관계를 청산하고 미국인 공산주의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존 리드(워렌 비티)의 품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왕년의 섹시 가이 비티도 의식할 만큼 잭 니콜슨은 여자를 좋아한다. 그는 할리우드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색마(色魔)다. 스스로 “내가 아는 모든 여자들과 자 봤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건 보통이니 <배트맨>에 함께 출연했던 킴 베이싱어가 “그렇게 여자 밝히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핀잔을 줄 만도 하다. 그의 여자 관계는 몹시 요란했다. 62년 배우 산드라 나이트와 결혼한 이후에도 안젤리카 휴스턴, 레베카 브루사드, 그리고 라라 플린 보일 등등 매혹적인 여성들의 품을 거쳐 왔다. “스크린 안에서는 26세 연하인 여자와 연애를 하고 스크린 밖에서는 33세 연하인 여자와 연애를 할 만큼” 광범위하고 혈기왕성한 배우 아니 남자 잭 니콜슨, 그가 최근 변했다. “여자 없이는 하루도 못 잤는데 이젠 혼자 자는 날이 많아졌다”는 고백에서 힌트를 얻은 것만은 아니다. 최근 작 <어바웃 슈미트> 때문이다. 거기엔 우리가 보아온 잭 니콜슨은 없다. 대신, 볼 거라곤 듬성듬성 빠진 흰머리와 둔한 몸에 쓸쓸한 어깨뿐인 한 늙은이가 있다. 이젠 허리가 아파서 당구대에 몸을 바싹 붙이지도 못하고 노안 때문에 당구대 끝이 잘 보이지도 않는다는 니콜슨은 딱 자신의 나이와 같고 딱 그만큼 비루한 삶의 중년 슈미트를 연기한다. 매력적인 악당이 초라한 소시민으로 강등되는 바로 그 대목에서, 니콜슨은 호기로운 카리스마로 박제돼 있던 진심을 드러낸다. 슈미트는 그동안 니콜슨이 맡은 캐릭터 중 가장 말수가 적고 가장 초라하지만 동시에 가장 가깝게 다가와 스크린 밖으로 손을 내민다. 굳게 다문 입술을 보고 있노라면 그 손을 덥석 잡고 싶을 정도다.

현실에 발붙이다

잭 니콜슨은 올해 65세다. 슈미트도 65세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는 무려 서른 살 차이 나는 헬렌 헌트와 호흡을 맞출 만큼 젊어 보여야 했는데, 이제야 제 나이를 찾은 셈이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이 사건(?)을 기념이라도 하듯 올해 초부터 잭 니콜슨의 행보에 주목해오다 기다렸다는 듯 “<어바웃 슈미트>에서의 잭 니콜슨의 연기는 생애 최고”라는 찬사를 보냈다. 급기야 그는 이 영화로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 늘씬한 미녀 배우 니콜 키드먼과 함께 코를 부비며 끌어안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니콜슨은 네번째 오스카상 수상을 코앞에 두고 있다. 연기 경력 50년의 베테랑이 한두 번 후보에 올라본 것도 아닌 오스카 잔치에 요즘 예년 같지 않게 긴장하고 있는 모양이다. 오스카 후보작이 발표되자마자 <어바웃 슈미트> 이후 애덤 샌들러와 촬영한 <앵거 매니지먼트>라는 제목의 영화에 관한 인터뷰 일정을 모조리 취소해 버린 걸 보면.

<어바웃 슈미트>는 황혼의 나이를 훌쩍 넘어선 잭 니콜슨에게 특별한 영화다. 이 작품은 또 할리우드영화치고 참 기이한 로드무비다. 감독 알렉산더 페인은 힘든 여행 후에 자아를 되찾는다는 할리우드 로드무비의 안락한 판타지를 깨뜨린다. 코믹하지만 슬프고 황량한 여백이 웃음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슈미트는 하루 아침에 세상의 벼랑 끝에 몰린다. 평생을 몸 바쳤던 보험 회사에서 은퇴하고 나니 아내는 갑자기 세상을 뜨고, 알고 보니 그 아내에게 사랑하는 다른 남자가 있었으며, 그 남자는 자신의 친구였고, 금지옥엽인 딸은 날건달과 결혼을 결심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외면하기까지 한다. 남부러울 것 없던 중산층의 일상에 감당할 수 없는 구멍이 생긴 것이다. 결국 슈미트는 삶의 의지를 딸의 결혼을 반대하는 데 불태우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그로선 딸이 있는 덴버로 향하는 여정보다 당도한 후 겪는 사건이 더 험난하다. 그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고 더 비참한 건 아무도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주로 과장된 연기로 호평받아온 니콜슨에게 연기 변신과 촬영에 관한 질문이 쏟아질 만했다. “페인 감독과의 작업은 즐거웠다. 프로듀서 해리 기테스도 죽마고우라 편했고. 근데 자꾸 슈미트가 ‘작은’ 남자가 되라고 충고하더군.” 슈미트의 충고를 받아들인 건 백 번 잘한 일이다. <어바웃 슈미트>의 묘미는 삶의 균열을 무기력하게 응시하는 ‘작은 남자’ 슈미트, 아니 니콜슨의 존재다. 갑작스레 추락하는 인생에 몸 둘 바 모르는 그는 슬픔과 황당함을 꾸역꾸역 속으로 삼키면서도 간간이 유머를 발휘한다. 슈미트는 아이처럼 순진하게 유성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소원을 빌기도 하고 “왜 엄마의 관을 싸구려로 맞췄냐”는 딸의 당돌한 질문에 멀뚱하고 허무한 눈빛으로 답하는 남자다. 딸에게 외면받고 돌아서는 길, 아내를 탐한 친구의 전화기에 화해의 메시지를 녹음하지만 버튼을 잘못 눌러 삭제되는 그 구차한 순간은 코믹한 동시에 비극적이다. <어바웃 슈미트>에서 니콜슨은 캐릭터의 바닥까지 남김 없이 다 보여준다. 종잡을 수 없는 외모, 핏기 없이 거무튀튀한 얼굴, 한참 풀린 눈동자, 좀비 같은 걸음걸이 등은 절망에 찬 슈미트의 바닥까지 치고 내려간다. 그러나 슈미트를 보는 가장 큰 즐거움은 바로 이때쯤 일을 저지를 것 같은 기대과 배신감이다. 10m짜리 버스 트레일러를 타고 고속 도로에 오르는 슈미트는 <이지 라이더>의 마약 중독 변호사 핸슨의 일탈과 방황을, 남의 아내에게 달려들어 기습적으로 키스하는 슈미트는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의 챔버 같은 외설스러운 용기를, 그리고 딸의 결혼식 날 마이크 앞에 서는 슈미트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유달의 빼어난 독설을 은근히 기대하게 만든다. 그러나 감독의 고백대로, 슈미트는 그런 기대를 젠틀하게 배반하며 뜻밖의 감동을 선사한다. “미국의 다양한 매너리즘을 종합한 국민 캐릭터에 대한 코미디”라는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리사 슈워츠봄의 호평은 곧 판타지 혹은 악몽의 힘을 빌려온 니콜슨의 캐릭터가 비로소 현실에, 미국 사회에 발을 디디고 섰다는 데 대한 찬사와 다름없다.

이렇게 살아남았다

32세의 풋내기 잭 니콜슨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영화는 마약 중독 변호사로 출연한 <이지 라이더>(1969)다. <이지 라이더>의 콜럼비아 시사실, 반문화와 반체제로 점철된 영화를 보던 영화사 중역들은 막이 내리기도 전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와중에도 “그나저나, 그 삼삼한 사내는 누구냐”고 묻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이 삼삼한 사내는 LA 구석에서 대마초를 피워대던 할리우드의 반항아 패거리들 중 유일하게 나잇값을 하는 존재가 됐다. 60~70년대 잘나가던 그의 동료 중 대부분은 정상의 위치에서 미끄러지거나 제 발로 은퇴하거나 조연으로 전락했다. 동료 배우들 중 잭 니콜슨을 가장 동경하는 사람은 동갑내기인 워렌 비티와 로버트 레드포드다. 이들은 “잭은 지금 신기록을 수립하고 있는 중”이라며 그 기록 뒤에 숨겨진 비법을 궁금해한다. 그도 그럴 것이 15분마다 새롭게 기념할 일이 생긴다는 변덕스러운 미국 대중문화 속에서 니콜슨은 스타와 배우의 이미지를 모두 챙기고 유유자적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비기는 있었다. 그는 웬만한 시나리오는 두 번만 읽으면 다 외워버릴 정도로 영리하고, 영화제 기자 회견 전에는 철저히 준비를 해갈 만큼 현명하다. <차이나타운>의 촬영현장에서 그는 JJG(J.J. 기티, 주인공 이름)라고 쓰인 재킷을 단 한번도 벗지 않았으며 우주 비행사로 출연한 <애정의 조건>에서는 엄청나게 비싼 우주 비행사용 시계를 늘 차고 다녔다. <배트맨>에서 조커로 출연할 당시엔 그가 허무주의 철학자 니체에 빠져 살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소문. 그러나 <어바웃 슈미트> 이후 그는 “내 나이 예순이 넘었지만 아직도 잘하고 있는지 불안하다”며 겸손을 떨기도 한다.

MGM영화사의 애니메이션 파트에 처박혀 있던 니콜슨의 진가를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은 ‘할리우드에서 백 편의 영화를 만들고도 단 한푼도 잃지 않았다’는 B급 영화의 대부 로저 코먼이다. 그가 제작한 <크라이 베이비 킬러>라는 B급 영화로 데뷔한 이후 니콜슨은 8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연기에 재주가 있었던 그는 각양각색의, 그러면서도 미국 사회 곳곳을 채우고 있는 인물들을 연기해 왔다. 피학적인 치과 의사(<흡혈 식물 대소동>), 록 가수(<싸이크 아웃>), TV 리포터(<여행자>), 사립 탐정(<차이나타운>), 몰락한 노동 운동가(<호파>), 암흑가의 조직원(<프리지가의 명예>), 칼럼니스트(<제2의 연인>), 부패한 해군 대령(<어 퓨 굿맨>), 도끼 살인마가 된 아버지(<샤이닝>), 반항적인 정신병자(<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악마(<이스트윅의 악녀들>), 미국 대통령(<화성 침공>), 그리고 조커(<배트맨>)까지. 지난 30년 동안 할리우드에서 영화 만들겠다 마음먹은 사람은 누구나 주인공으로 잭 니콜슨을 캐스팅 리스트 맨 위에 올려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리고 대부분 이들은 원하는 것을 니콜슨으로부터 끌어냈다. 간호사를 교살하고(<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식탁 위해서 제시카 랭과 파격적인 정사를 벌이고(<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아내와 아들을 죽이려고 도끼를 휘두르며(<샤이닝>), 권력으로 진실을 은폐하는 거대한 거짓을 내뱉고(<어 퓨 굿맨>), 구겨진 웃음을 지어 보이고(<배트맨>), 선을 밟지 않으려고 뒤뚱거리다 개를 쓰레기통에 처넣어 버리는(<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열연을 통해 그는 매번 기립 박수를 받았다. 잘난 주연 배우들의 트레이드마크인 허영심과 자만심에서 자유로웠던 그는 그만큼 배우 인생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다양한 캐릭터와 대단한 감독들을 만날 기회를 얻었다.

괴팍하면서도 유약해보이는 잭 니콜슨이 연기한 인물들은 대개 결점과 콤플렉스로 똘똘 뭉친 불완전한 사람들이다. 자기 연민과 무기력한 반항심, 불안함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과장된 몸짓과 극적인 웃음을 지으며 어둠의 세계로 들어가길 자처했다. 그 어둠의 세계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혹은 아예 현실을 거부하는 방법으로 그려졌다. <잃어버린 전주곡>에서 니콜슨은 잘나가는 피아니스트지만 스스로 유전 노동자의 삶을 택하고, <차이나타운>의 마지막 장면에선 “여긴 그냥 차이나타운일 뿐이다”라고 읊조리며 현실에 절망한다. 또 니콜슨 최고의 역작이라 평가받는 <샤이닝>에선 인간이길 거부한 잭 토랜스로 분해 눈을 희번덕거리며 광기를 토해낸다. 부적응과 좌절이 폭발해내는 힘은 도리어 건조하다 못해 냉랭하다. 이런 니콜슨에게 천의 얼굴이라는 수식어는 새삼스럽다. 어쩌면 연기 변신 운운하는 건 “연기로 삶의 에너지를 얻는다”는 그의 진심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일 수도 있다. 그가 차린 첫번째 제작사의 이름이 자유자재로 변신하고 예언의 힘을 가진 바다의 신의 이름을 딴 ‘프로테우스’ 였던 것도 다 의미가 있다. “나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역할을 많이 맡아왔다. 극적인 경험을 통해 자유자재로 변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맡아야 힘이 난다.” 니콜슨이 밥 라펠슨, 버트 슈나이더, 스티브 블라우너 등의 이니셜을 딴 BBS 그룹에서 당시 청춘들의 방황 및 미국 중산층의 갈등을 묘사한 작품들에 몰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흥미롭지 않은 삶은 죽은 삶”이라는 지론으로 산 니콜슨은 이 과정에서 ‘미국 현대 영화사의 산 증인’이라는 또다른 타이틀을 얻는다.

여전히 섹시하고 여전히 성장한다

잭 니콜슨은 두려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30년 동안 함께 산 부모가 실제로는 조부모고, 다정했던 누나가 알고 보니 친모였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도 그는 “연기가 좀 되는 집안이군”이라며 중얼거렸을 뿐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어린 시절 난 광포한 장난꾸러기 아이였다”고 인정한다. “인근 주민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나와 노는 것을 무척 신경 썼다.” 그러나 어른이 된 그는 누구든 자기 편으로 만들고 맘만 먹으면 원하는 것을 해내는 사람이 됐다. 거만한 독단 없이도 모든 것을 자기 페이스대로 끌어 가고 타인을 설복시키면서도 웃음을 주는 재주가 있다. <어바웃 슈미트>의 프로듀서이자 40년지기 친구 기테스는 “가끔 우리 엄마가 나보다 잭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고 고백하기도 했을 정도. 이것을 카리스마, 간단하게는 인간성, 좋게는 매력이라고 부른다. 잭 니콜슨은 항상 스스로 재미있는 삶을 위해 가차 없는 결단력을 보여왔다. 물론 매춘부 폭행 사건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지만 사람들은 스크린 안에서 맹렬히 돌진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그런 사실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린다. 대중은 도덕적인 니콜슨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방종은 시대를 가로지르며 그를 빛나는 스타로 만들어준 대단한 에너지가 되었다. “난 내 안에 걷잡을 수 없는 폭력을 안고 산다.” 그 안의 폭력은 이제 폭력이 아닌 무언가로 바뀌려 한다. 급변한 시대가 그에게 어떤 배우의 모습을 원할지, 그가 얼마나 더 성장할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렇게 치명적인 유혹의 웃음을 흘릴 수 있는 환갑이 넘은 남자 배우가 또 나타날 것인지도 확신할 수 없다. 확실한 것은 그는 여전히 미워할 수 없는 건달이고, 모두들 악하거나 누추한 그를 사랑한다는 사실이다.

"지니의 결혼은 아무런 문제도 없었단다, 기쁘지 않니? (중략) 내가 덴버에 있었을 때 해야 할 일을 하려고 했지, 지니가 매우 큰 실수를 하고 있다고 설득하려 했었단다. 그런데, 실패했구나. 이제 그 애는 머저리와 결혼을 했고 어떻게 손쓸 도리가 없구나. 난 약하단다. 그리고 난 실패자란다... (중략) 내 인생이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 영향을 주었을까? 내가 생각하기엔 아무것도 없구나, 전혀... 아무것도… (중략) - 워렌 슈미트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