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일지
1954년 경북 경주 출생, 대륜고 졸
1980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 경문고 교사
1984년 프랑스 푸아티에 대학원 불문학 석사
1989년 프랑스 리모주 대학원 불문학 박사
1990년 「경마장 가는 길」 발표
1993년 미국 아이오와대학교 창작프로그램 참가
현 동덕여대 국문과 교수
주요작품 「경마장 가는 길」,「경마장을 위하여」,
「경마장에서 생긴 일」,「경마장의 오리나무」,
「경마장은 네 거리에서」,「새」,「진술」,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 등
하일지, 시네로망 <마노 카비나의 추억> 출간
“나에게 <쥬라기 공원>은 따분할 뿐”
<경마장 가는 길> 등 일련의 경마장 시리즈와 <새> <진술> 등을 통해 새로운 소설을 해온 작가 하일지씨가 또 한번의 실험을 감행했다. 지난 2월에 <마노 카비나의 추억>(민음사 펴냄)이라는 시네로망을 내놓은 것이다. ‘시네로망’이란 영화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읽히기 위해 쓴 시나리오.
<마노 카비나…>는 50살의 시인 서인하가 자신에 관한 문학 관련 다큐멘터리를 찍는 현장에서 만난 23살의 여자 강수미를 보면서 느끼는 심리적 변화와 그로 인한 내면 파괴를 그리고 있다. <경마장 가는 길>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 등의 소설이 영화화되고, <경마장 가는 길>을 직접 각색하는 등 하일지씨와 영화계의 인연은 꽤 가까운 편. 처남을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갑자기 체포된 철학교수의 독백으로 이루어진 소설 <진술>도 배우 박광정이 감독 데뷔작으로 영화화하고 있다. 현재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인 하일지씨는 <마노 카비나…> 이후 2편을 더해, 총 3편의 시네로망을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왜 시네로망을 쓰게 됐나.
<마노 카비나…>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 파리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작가로서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했던 19편 작품 가운데 하나다. 영화쪽 일도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 중 하나라는 생각으로 썼다. 우리나라엔 정제된 시나리오가 없다. 실제 영화대본, 촬영대본은 이해하기 힘들고, 독자들이 읽을 만한 출판물이 없다. 시나리오에 관심있는 젊은 영화 지망생들이 읽거나 교재로 쓸 만한 텍스트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텍스트를 하나 선물하면 좋겠다 생각했다. 물론 영화화되면 좋겠지. 다만 보통 영화는 영화제작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하는데 나는 영화제작을 생각하지 않고 문학으로서 작품을 만들어본다는 생각을 한 것뿐이다. 그 자체도 임자를 만나면, 좋은 운명을 만나면 좋은 작품이 되겠지. 시네로망이라는 것은 영화화되어야 생명을 얻는 것이니까.
‘마노 카비나’란 어떤 의미인가.
리투아니아에 있는 평범한 카페 이름이다. 2년 전 리투아니아에 처음 갔는데 첫날 마노 카비나에서 율리아라는 영문과 학생을 만났다. 천사같이 예쁜 아이였다. 1시간 정도 대화를 나눴는데 그 표정과 미소를 잊을 수 없어서 거기 머물던 열흘 동안 매일같이 그 카페를 찾아가 하루종일 기다렸는데 못 만났다. 이듬해에 강연이 있어서 그곳에 또 가게 됐다. 그때도 일주일 동안 꼬박 그 카페만 갔다. 누구나 가슴속에,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가슴속에 가지고 있는 기억, 그러나 현실 앞에선 의미없는 사랑의 기억이 있다. <마노 카비나…>에 등장하는 서인하는 그런 비현실적인 사랑의 추억을 감추고 있는 시인이다. 그래서 그의 현실의 사랑은 서툴다. ‘마노 카비나’란 그런, 적극적인 사랑이 아니지만 나한테는 너무나 강하게 남아 있는 사랑을 의미한다. 사실은 지금 율리아를 다시 만난다면 알아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괴롭다. 사실상 알아보기 힘들지 모른다. 이미 내 기억 속에 고정된 어떤 이미지로만 남아 있으니까.
시네로망을 썼다는 데서, 소설에서 시네로망으로 전업한 프랑스 누보로망 계열의 작가 겸 영화감독 알랭 로브그리예가 연상된다.
로브그리예를 좋아하고 그에 대한 논문도 썼다. 그가 부럽기도 하지만, 더 존경하는 작가는 카프카다. 로브그리예도 소설, 시네로망을 쓰고 영화감독도 하는 등 많은 작업을 했는데, 그의 세계가 나와 닮진 않았다. 그는 시를 쓰지 않았는데 나는 썼다는 점도 다르다. 문학세계에서 오히려 추앙하는 사람은 카프카다. 물론 작품세계나 시네로망 등에서 로브그리예에게서 힌트를 받긴 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다다르고 싶은 건 카프카다. 사실 로브그리예도 그렇고, 현대작가들은 모두 카프카를 흠모한다.
<마노 카비나…>가 독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나.
내가 우리 문학에서 운신이 힘든 이유는 난해한 작가로 몰렸기 때문이다. 우리 아들이 <마노 카비나…> 보더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그러더라. (웃음) 나는 쉽고 편하게 읽게끔 짜여져 있다고 생각하는데 <경마장 가는 길> 때부터 사람들은 내 작품을 조금 어려워하더라. 그건 오랫동안 길들여진 문화의 차이일 수 있는데, 그 차이가 굉장히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것 같더라. 그래서 <마노 카비나…>도 실험적으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첫 번째부터 너무 어려우면 독자들이 시네로망 읽는 것을 두려워할까봐 실험을 억제하고 아주 쉽게 썼는데도 아들놈이 그런 말을…. (웃음) 그러나 영화가 예술이라면 형식의 실험은 중요하다. 예술은 근본적으로 다른 작품과 다르게 뭔가 자꾸 새롭게 하는 것이니까. 그래야만 예술이다. 사르트르도 “무엇을 쓸 것인가 선택했다고 해서 작가라 할 수 없다. 그것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선택함으로써 비로소 작가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형식적 탐구는 예술가의 중요한 사명이다. <경마장 가는 길> 찍을 때 장선우 감독이 카메라 워킹에 대해 말해보라 그러더라. 카메라는 클로즈업, 줌인, 줌아웃 등 사람의 지각능력보다 훨씬 다양한 기능을 갖고 있다. 그런데 영화인들은 카메라의 기능의 재미에 빠져 무작위로 쓰고 있다. 그런데 현대영화는 카메라의 불필요한 기능들을 많이 쓰지 않는다. 그리고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것이 인간의 지각능력에 가깝기 때문이다. 카메라가 움직이지 않으면 우리의 현실, 진실이 얻어진다. 카메라의 기능을 너무 많이 쓰면 진실은 안 보이고, 볼거리만 보이게 된다. 엔터테인먼트가 되어버린다는 말이다. 할리우드 상업영화는 온통 현란한 테크놀로지로만 이루어져 있어 지루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테크놀로지가 모든 것을 삼킨다는 말도 나오는데….
그런데 사실 대중은 되게 심약한 것 같다. 테크놀로지에 왜 그렇게 쉽게 현혹되는지. 가령 <쥬라기 공원> 같은 것이 내게는 따분한 영화인데 그렇게 흥행을 하니 할말이 없다. 대중이 영화를 오락이나 휴식으로 받아들인다 해도 그게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다. 권태롭잖은가. 그래서 권태로움을 극복하려고 더 현란한 테크놀로지를 보일수록 난 더 따분하다. 감동이나 기쁨이 내가 원하는 방향하곤 좀 다른 것 같다. 그럴수록 인생이 권태로워진다. 머리는 텅 비어가는 것 같고. <마노 카비나…>도 사람들은 뭔가 사건이 많고 볼거리나 엔터테인먼트를 집어넣기를 원했다. 그러나 난 우리나라 영화가 스케일을 키우려 하지 말고 섬세한 디테일로 승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파리로 가기 전 이야기를 해달라. 교사생활을 하다가 떠났는데.
80년대 초 전두환 집권 초기에 3년 동안 고등학교 국어교사 생활을 했는데 현실에 대한 깊은 절망을 느꼈다. 당시 분위기는 살벌했고, 그런 속에서 미래가 안 보이는 듯한 좌절감에 빠져 있었다. 그때 떠나지 않고 계속 한국에 있었다면 십중팔구 전교조에 가입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 내가 있다고 역사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해서, 83년에 파리로 떠났다.
그때 나가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천우신조였다고 생각한다. 교단에 서면서 작가로서도 일이 잘 안 되고 선생으로서도 재미를 못 느끼고 앞이 안 보이는 느낌이 들면서 독학으로 불어공부를 시작했다. 한두장씩 읽어가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빠져들어가더라. 그런데 나이 든 교장이 국어선생이 불어책 읽는 걸 사사건건 못마땅해했다. 나중엔 오기가 생기더라. 독학으로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을 사전 찾아가면서 다 읽었다. 그때 내가 20대 후반이었는데 그 자리에 그냥 주저앉아 있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파리 가서 6년 동안 빨려들어가듯 앉아서 공부만 했다. 영화며 소설이며, 그때 했던 공부가 크다. 돌아왔을 때는 득도라도 한 기분이었다. 시간강사 하면서 13개월 동안 책을 4권 썼다. 원고지 매수로는 7천매 이상 분량의 글을 써댔다.
작가를 꿈꾸고 돌아온 것인가.
프랑스에 있을 때는 내가 소설가가 될 수 있으리라 믿지 않았다. 프랑스에서 세계문학을 읽어보니 일괄적인 흐름이 있더라. 소위 세계명작이라는 책들이 전부 다 염세적이었다. <고도를 기다리며>나 카뮈나 사르트르 같은 누보로망, 카프카도 그렇고. 당시 나는 염세주의자가 아니고 퍽 낙천주의자이고 이상주의자라고 스스로 진단했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염세주의자가 되었다. 그러다보니 소설을 쓰게 됐다. 내 소설을 보면 사실 모두 염세적이다. <마노 카비나…>도 사랑은 달콤한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점에서 염세적이고. 프랑스에 있을 땐 한국에 돌아가면 참한 선생님이 되겠다 했는데 와보니까 교수 되는 절차가 보통 복잡한 게 아니더라. 그래서 한 학기 시간강사 하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 방학하자마자 <경마장 가는 길>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로 몇 학기 동안 강사를 했지만 마음은 이미 교단을 떠났다. 10년을 전업작가로 살았는데, 혼자 오래 작업을 하니 지치더라. 그래서 덜 지치기 위해 강단에 섰다. 한 3년 됐으니 또 어떻게 될지 모르지.
작품 구상은 어떻게 하나.
원래 작품 구상을 안 한다. 일단 첫줄을 쓰고 다음 줄을 쓰고, 이렇게 쭉 따라나가다 보면. 학교에서 배울 때는 구상을 하고 인물을 설정하고 이렇게 배우는데, 그건 쓸모없는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미리 오랫동안 구상하지 않았다. 피카소가 “나는 작업을 하기 전에 구상을 하지 않는다. 작업을 함과 동시에 나의 구상은 시작된다. 그리고 작업이 끝남과 동시에 구상도 끝난다”고 했다. 그것이다. <마노 카비나…>도 리투아니아 카페에서 만난 여자의 이미지, 일종의 사랑의 고통, 그림자 같은 이미지만으로 출발했다.
영화계에서 <마노 카비나…>에 대한 이야기가 있나.
아직 기다리고 있다. 인연이 돼서 좋은 작품이 나오면 두 번째, 세 번째 작품까지 영화화할 수 있는 힘을 받겠지. 3편까지 쓸 생각이고, 조금씩 더 실험적인 형식으로 갈 것이다.
글 위정훈 oscarl@hani.co.kr·사진 이혜정 hyejung@hani.co.kr
하일지 인터뷰, '그는 나에게 소설을 아느냐고 물었다'
하일지가 문제삼고 있는 것은, 언어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언어의 미궁에 빠져 결국은 언어에 의해서 처참히 죽어 가는 인간들의 헐벗은 혹은 겉도는 영혼에 관한 것이다.
거북이알 속에는 거북이가 없고 붕어빵 속에는 붕어가 없듯, 하일지의 [경마장...] 소설에는 경마장이 없다. 물론 경마장이란 용어는 군데군데 나온다. 그런데 왜 거기 박혀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곳에서 눈에 띄며, 설사 그것이 눈에 띄더라도 소설을 읽는데는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카프카의 [성]이나 [법]처럼 몇 번 등장하는 것으로도 소설의 얼개와 의미를 완전히 제압하는 것과도 다르며, 마르케스류의 '마술적 리얼리즘의 몽롱한 아우라'와도 다르다. 또한 천박한 자본주의, 베팅으로 연명하는 카지노의 다른 버전을 의미하는 것도 물론 아니다.
'경마장'이란 무엇인가?
영화 [경마장 가는 길]을 보면서 강수연이나 문성근이 언제 마권을 사러 가는지, 가는 길에 도대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다. 포르노그라피 적인 욕망의 분출과도, 시인 유하가 말하는 '욕망의 마그마'와도 다른 것이다.
그러면 유토피아냐고? 그것도 아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어떤 인물도 경마장을 희망의, 구원의, 우리가 마지막으로 도달해야 하는 희생의 나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그것을 빌미로 무한이 많은 리좀의 세계로 뻗어 가는 출발점에 있을 뿐이다.
그러니 '말 달리'는 경마장을 생각하면서 읽어도 그만이고, 마권이 휘날리는 경마장을 생각하면서 읽어도 그만이다. 아니 '경마장'이라는 언어에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 소설을 읽는데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소설에서 경마장이란 '馬 달리는 곳'이 아니라 그 의미를 완벽하게 지우고 저마다 개개인의 독서 자장 속에서 텅 비어 있는 공간으로서 경마장의 의미가 탄생하기를 바라며 작가가 고안해 낸 전략적인 우연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경마장에 오리들이 꽥꽥거려도 아무 것도 신경 쓰지 말고 독자는 가던 독서의 길을 우회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것은 분명하진 않지만 인간의 마음속에 저마다 이정표로 삼고자 하는 언어적 주술의 차연일 뿐이다.
그 전략을 하일지는 어린 시절 길을 묻는 사람들에게 대답을 해주던 어른들의 대화 속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동네 어른들에게 길을 물으면 한번도 가보지도 않은 경마장을 중심에 놓고 경마장을 돌아서 오른쪽으로 가서..."하던 것이 무척 재미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난 한번도 경마장에 가본 적이 없다"면서 빙그레 웃는다. 한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어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곳. 말달리는 곳이니 엄청나게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고 그것이 눈에 띄지 않을 리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없을 수 있고 찾지 못할 수도 있는 헛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독자의 심리를 읽는 것이 중요하다
언어를 통한 일종의 착시현상을 이렇게 은유적인 형태로 구현할 수 있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상징이 아닌 은유적 소설 쓰기의 매력을 누구보다 완결된 소설 건축물을 통해 드러내고 있는 작가. 소설이 짜여지는 천, 텍스트라는 사실에 대해서 누구보다 자의식이 강한 작가, 그가 하일지인 것이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에 대해 "소설가는 자신의 소설을 읽고 있을 독자를 항상 염두에 두고 소설을 써야 한다. 독자의 심리를 읽을 줄 아는 자가 완결된 구조의 소설을 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일지는 말한다.
언어적 착시현상, 언어라는 관념을 착시현상이라는 감각적이고 시각적인 것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산문에서도 가능하다는 것. 묘사가 전혀 없는 서술의 형태로 정황을 드러내는 능력을 가진 작가가 바로 하일지인 것이다.
혹시 여러분 중에 누군가는 기차 안이나 지하철 안에서 내적 관음증으로 여고생의 교복을 벗기고 치마를 내리고 은밀한 곳에 손을 넣어보는, 혹은 한복을 입은 여자를 무릎에 앉히고 그 치마 폭 안에서 격렬하고 유연하게 섹스하는 것을 상상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일지 소설 [경마장 가는길], [경마장의 오리나무], [경마장의 네거리에서] 등에 등장하는 일련의 관음 장면들은, 섹스조차도 거리를 두고 상상을 통해 현실보다 더 리얼하게 할 수 있다는 또 다른 '거리'에 관한 것이다.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감정적인 언어와 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대상과 섞이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페니스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 상상적 관음의 극치는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그 상황 자체에는 나와 타자의 소통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와 상상력을 총 동원해서 어떻게 놀이를 만들어 내는가가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다. 가볍게 노는 방식으로 '진지함의 진부함'을 걷어버리고 사는 의미를 묻는 소설.
소설? 모방과 야합의 사생아에 불과한 것
그의 소설은 '가는 길', '네거리' 같이 모두 불투명한 언어들, 목소리의 모방일 뿐이라고 한다. "소설 공부를 하면서 바흐찐의 다성성에 많은 매력을 느꼈다. 특히 소설은 언어의 모방이며 목소리의 모방이다."라며 지난 시절 카프카와 도스도예프스키에 관한 독서편력을 얘기했다.
언어는 정확하게 무엇을 지적하고 그 의미를 밝혀주는 도구가 아니라 기존의 언어를 모방하여 태어나는 야합의 사생아라는 것이다. 이 사생아의 실체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진술]은 진술과 진술을 뒤엎는 반진술 사이의 긴장력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살인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는 얼개를 가지고 있지만 누가 죽고 누가 죽였느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심지어는 왜 죽였는가에 대한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일지가 문제삼고 있는 것은, 언어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언어의 미궁에 빠져 결국은 언어에 의해서 처참히 죽어 가는 인간들의 헐벗은 혹은 겉도는 영혼에 관한 것이다.
"사람이 자신의 입장을 밝히려는 말을 하면 할수록 자신 스스로 조차도 확신하지 못하는 자기의 언어에 의해서 낯설어지는 순간이 생긴다. 변명을 하면 할수록 궁색해지고 진술인데도 자신이 느끼기에는 거짓말 같은" 그런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이다. 그 심리적인 상황 자체가 정도의 차이에 따라서 정신분열자와 정상인을 나누는 기준이 된다. 그러니 광인과 정상인은 한끝 차이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진술]은 인간이 주장하는 진리에 대한 언변 자체가 헛것이며 따라서 언어로 도달할 수 있는 진리에 대한 탐문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나 가능할 것인가의 문제를 "감정적 판단이 전혀 배제되어 있는 드라이한 언어로, 주관적인 판단을 제거해가면서 서술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인간이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 아니냐고 되묻는다.
그렇다면 자연스러운 언어가 아닌 강요에 의해서 이루어진 언어라는 것은 거의 질문과 대답이 어떤 합일에 이르지 못하고 따로 노는 것, 의사소통의 합리성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가정에 불과 한 것이다. 어쩌면 정직한 것은 눈, 시선의 움직임 뿐 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거리' 때문이다. 렌즈와 대상 사이의 거리가 역설적으로 대상을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하일지 소설의 '거리' - '소통'의 또 다른 이름
인간 사이에 도저히 넘어서지 못하는 저마다의 벽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 그것은 악을 쓰며 의사소통의 합리성을 고집하는 것보다 솔직하고 정직한 것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상상을 통한 육체적 간음만큼 내 안에서 내 언어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란, 즉 소통을 바라며 끙끙거리지 않고 소통 자체를 문제삼을 수 있는 테마가 있을까. 그러니 하일지 소설의 '거리'는 바로 '소통'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하일지는 "소설의 거리 자체는 소설 창작의 목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한 편의 소설이 어떤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하나의 조건임에는 틀림없다. 그것은 또한 한 편의 소설이 이룩하고 있는 미학적 성취의 정도를 측정하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서양소설사의 흐름을 개관하는 데 상당히 유용한 하나의 시각을 제시해준다."고 말한다.
또 그는 "고백체의 소설은 아주 나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자신의 어떤 의미가 상대방에게 전달되기를 강요하는 또 다른 방식일 뿐이며 심리적인 고백이라는 것 자체를 믿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아무리 진실로 감정적인 발언을 섞어가며 떠들어도 상대방이 내 의도를 얼마 나 알아듣고 수긍하며 진실로 가슴 아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하물며 강요된 진술의 경우에는 어떨까.
소설을 소설로 생각할 수 있는 것, 어떤 의미를 만들어내야 하는 기계가 아니라, 작품으로 존재하기를 바란다는 그의 바램은 소설이 소설적 기법만으로도 충분히 인간의 적나라한 삶의 실상을 드러낼 수 있다는 믿음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 믿음으로 9권의 책을 냈고 이제 한 권의 책을 '더' 내고 나면 '더'이상 소설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할만큼 했고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그 자신만만함이 부럽다.
** 하일지 약력
1955년 출생. 프랑스 푸아티에 대학에서 불문학 석사학위를, 리모주 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동덕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소설로 [경마장 가는길](1990), [경마장은 네거리에서](1991), [경마장을 위하여](1991), [경마장의 오리나무](1992), [경마장에서 생긴 일](1993),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1994), [위험한 알리바이](1995), [새](1999), 번안소설로 하일지 판 [아라비안 나이트](1997∼1998)가 있으며, 시집 [시계들의 푸른 명상](1994; 영문판, Blue Meditation of the Clocks, 1994, USA: Pine Press), 문학이론서 [소설의 거리에 관한 하나의 이론](1991) 등이 있다.
- 최성실 critima@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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