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들’ 최동훈 감독 “나는 내러티브 주의자”(인터뷰) 2012.8.1
[경제투데이 장병호 기자] ‘전우치’를 통해 판타지로 시선을 돌렸던 최동훈 감독이 다시 범죄의 세계로 돌아왔다. 지난달 25일 개봉한 영화 ‘도둑들’(제작 케이퍼 필름)은 마카오 카지노에 숨겨진 희대의 다이아몬드 ‘태양의 눈물’을 훔치기 위해 모인 한국과 중국 10인 도둑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범죄의 재구성’ ‘타짜’와 비슷한 듯 하면서도 전혀 다른 성을 지닌 작품이다.
냉혹한 범죄 세계를 통해 인간의 이면을 담아냈던 최동훈 감독은 ‘도둑들’에서 순정과 낭만이라는 테마를 끄집어냈다. 호화 캐스팅이 펼치는 다채로운 캐릭터의 향연과 더불어 전작에서 엿볼 수 있었던 내러티브에 대한 고민도 변함없이 이어졌다. 장르영화를 추구하면서도 그 속에서 늘 변주를 꿈꾸는 최동훈 감독을 영화 개봉 전인 지난달 1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만났다.
▶ 영화의 구상은 어디서 출발했나?
이야기의 출발은 김윤석과 김혜수였다. “마카오 박(김윤석)이 한국과 중국의 도둑들을 불러 모은다. 그런데 자기가 부르지 않은 팹시(김혜수)가 온다면 이야기가 어떻게 될까”에서 구상이 시작됐다.
▶ 처음에는 ‘오션스 일레븐’과 많이 비교됐다. 영화를 보고 나니 홍콩영화의 느낌이 강했다. 레퍼런스를 삼은 작품은 없었나?
특별히 ‘오션스 일레븐’을 염두에 두거나 피하려고 하지 않았다. 도둑 영화가 워낙 하위 장르라서 좋은 영화는 많지 않았다. ‘리피피’나 ‘아스팔트 정글’ 같은 고전 영화를 좋아하기는 했으나 레퍼런스로 삼지는 않았다. 다만 촬영하면서 ‘카사블랑카’ 같다는 생각은 했다.
▶ 도둑들의 이야기지만 순정과 낭만을 이야기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것이 애초의 목적이었다. 도둑들이 나와서 열심히 카지노를 털고 끝나는 영화는 재미가 없었다. A로 시작해서 B로 끝나는 느낌의 영화를 찍고 싶었다. 그래서 낭만적이고 코믹하면서도 액션이 가미된 다채로운 느낌을 살리고자 했다. 공간이 바뀔 때마다 이야기의 국면도 바뀌게 구성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나는 장르영화를 있는 그대로 만드는 것도 재미없고 관객들도 좋아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장르의 관습에서 15도쯤 벗어난 이야기가 더 재밌다.
▶ 다양한 캐릭터가 초반부터 동시에 등장한다는 점이 전작들과의 차이점이다. 시나리오 쓰는 과정에도 다른 점은 없었나?
보통 시나리오 쓰면서 인물 구상을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인물 구상을 다 해야 첫 줄을 쓸 수 있었다. 시나리오 초고는 20일 만에 썼지만 앞선 세 달 동안 가만히 앉아서 인물 구상만 했다. 그리고 매번 혼자 시나리오를 썼는데 이번에는 친구와 같이 썼다.
▶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탄탄한 스토리가 인상적이다.
나는 스토리가 매우 중요한 내러티브 주의자다. 언제나 내러티브가 단선적이지 않고 복잡하게 가기를 바란다. 그 안에서 인물이 빛나기를 바란다. 이야기 구조도 신경 많이 쓰고 고민 많이 한다. 이번에는 다섯 개의 공간으로 나눠서 이야기를 구성했다. 특히 해외 촬영에서는 관광 영화를 찍지 않고자 했다. 그래서 홍콩에 들어가는 장면에서도 뒷골목만 찍었다.
▶ 이야기에 대한 고민이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깜깜한 극장에 들어가서 보는 영화인데 결말을 알고 보면 재미가 없지 않나. 나는 영화를 일종의 마법이라고 생각한다.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목표가 있다면 계속 영화에 빠져들면서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 이번 영화는 대부분 상상을 통해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간접적으로나마 도둑이 된 기분은 어땠나?
안 그래도 나쁜 버릇이 생겼다. 부산에서 촬영하다 숙소 근처 시립미술관에서 전시회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나도 모르게 ‘여기서 하나를 훔치면 뭘 훔칠까?’ 고민하더라(웃음).
▶ 관객들이 최동훈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건 범죄처럼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을 대리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독 입장에서는 그 최전선에서 간접적으로 범죄를 경험하는 것인데 어떨지 궁금하다.
그렇기도 하다. 하지만 사실 내 영화에서 범죄 과정은 짧게 등장한다. 오히려 내 관심은 범죄를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어떻게 대화하고 놀고 싸우며 배신하느냐에 있다. ‘도둑들’도 범죄는 장르적 외피일 뿐이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사랑하고 속이고 배신하면서 느끼는 감정이 더 중요했다.
▶ 전지현의 캐스팅은 의외였다.
전지현 뿐만 아니라 이정재까지 의외라는 반응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전지현과 김혜수가 한 화면에 나오는 것을 보고 싶었다. 서로 다른 기질을 뿜어내는 배우가 함께 나오는 걸 좋아한다. ‘타짜’에서도 조승우와 김혜수가 안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나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 전지현과의 작업은 어땠나?
전지현은 그녀만의 매력이 있었다. 극중 예니콜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면은 있다. 털털하고 왈가닥이면서 아주 긍정적이었다. 무엇보다 유머러스했다. 첫 만남부터 걱정이 안 됐다.
▶ 후반부에서 김윤석이 펼치는 와이어 액션 신은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
그 신의 모티브는 ‘전우치’와 ‘클리프행어’였다. ‘전우치’에서 와이어 액션을 지겹게 하다 보니 그냥 와이어를 매달고 찍는 게 낫겠다 싶었다. 영화에서 액션은 극적 긴장의 최고치이지만 동시에 연기이기에 촬영하면서 상황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 이번 와이어 액션 신도 15회차 정도 찍었는데 콘티대로 찍지 않았다. 중간에 마카오 박이 멈추는 장면은 촬영 과정에서 즉흥적으로 만든 부분이었다.
▶ ‘전우치’ 때부터 스케일 큰 액션에 대한 욕심이 엿보인다.
어릴 때 액션 영화를 좋아해서 액션의 쾌감을 보여주고 싶다. 김성수 감독도 지나가나 나보고 “넌 액션영화 감독이야”라고 하더라(웃음). 하지만 ‘도둑들’은 액션도 중요했지만 인물들의 대화 신을 더 잘 찍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우연적인 것에 굉장히 민감하다. 현장에서도 많은 부분을 고치고 또 고친다. 오손 웰즈도 “감독은 뭐하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우연을 창조하는 사람”이라고 답하지 않았나.
▶ 중국 배우 임달화는 어떻게 캐스팅했나?
시나리오와 함께 편지를 보냈다. 범죄영화지만 멜로가 있어서 좋다고 했다. 문제는 임달화의 스케줄이 되는 지였다. 다행히 한 달 동안 스케줄이 빈다고 해서 그 시기에 맞춰 마카오에 갔다. 또한 마카오에서는 액션 신을 촬영하는 게 금지돼 있어서 총격 신은 임달화가 한국에 와서 이틀 동안 촬영했다.
▶ 극중 예니콜이 위기에 처했을 때 잠파노(김수현)가 와서 구해주는 장면이 있다. 후반부에 가면 마카오 박이 팹시를 구하는 장면으로 반복되는데 특별한 의도가 있었나?
“완전 사랑의 감성이구나”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영화에 대한 적인 느낌이 그랬다. 막 질주만 하는 장르영화도 좋지만 영화 속에 이런 감성이 끼어드는 국면이 있으면 했다.
▶ 멜로영화 욕심이 있는 건 아닌가?
멜로영화는 잘 못 찍을 것이다. ‘도둑들’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로 끌어올린 결과다(웃음).
▶ ‘전우치’에 대한 반응이 전작들에 못 미쳤다. 그때 심정은 어땠나?
이제 점점 한국영화랑 할리우드를 비교하는구나 싶었다. 무서운 싸움이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좀 더 잘 써야겠다는 생각도 했다(웃음).
▶ 판타지 장르도 좋아한다고 들었다. 또 다시 도전해볼 생각은 있는지?
예산의 한계 안에서 더 창조적이어야 할 것 같다. 규모로는 할리우드를 못 따라가니까 더 기발하고 의외적인 걸 만들어내야 한다. ‘전우치’ 같은 영화가 또 나온다고 해도 예산 면에서 150억 원을 넘는 건 어려울 것이다. 나는 전작에 대한 일종의 작용과 반작용으로 다음 작품을 만든다. 그런 면에서 ‘도둑들’은 초심으로 돌아온 작품이다.
▶ 확실히 ‘도둑들’은 ‘범죄의 재구성’의 느낌이 있다.
‘범죄의 재구성’에서 박신양과 염정아의 뒷이야기가 있었는데 빠른 이야기로 인해 편집에서 삭제했다 나중에 후회했다. ‘도둑들’은 그때 삭제한 부분을 다시 부활시킨 것 같은 영화다.
▶ 앞으로도 범죄의 세계에 매혹될 건지 궁금하다.
나는 좋아하는 세계가 많다. 서부극도 좋아하고 로맨스도 좋아한다. 쓰다 그만 둔 시나리오도 서랍 안에 많이 있다(웃음). 앞으로 더 찬찬히 고민해봐야겠다.
최동훈 감독이 만든 네 편의 영화에 모두 출연한 배우 김윤석. 그들에겐 '감독과 페르소나' 같은, 조금은 낯간지러운 수식어보다는 좋은 선후배나 종종 만나는 술 친구 혹은 현장에서 마음 잘 맞는 동료 같은, 소박한 설명이 더 잘 어울려 보인다. 그들이 네 번째 시너지 효과를 보여준 [도둑들]에서, 최동훈 감독은 영화의 설계자 혹은 배후 같은 캐릭터를 배우 김윤석에게 선사했고, 김윤석은 '마카오 박'이라는 만만치 않은 캐릭터를 만들어 감독에게 돌려줬다. 그들과 함께한 한 시간의 인터뷰. 가끔은 두서 없게, 하지만 유쾌하게 이어진 이야기를 전한다.
글 l 김형석(영화 저널리스트) 구성 | 네이버 영화
[도둑들] 최동훈 감독, 김윤석 인터뷰
"관계에 대한, 낭만적 케이퍼 무비"
영화가 시작하면 '케이퍼 필름'이라는 로고가 뜨잖아요? 영화의 장르적 성격을 감독이 관객에게 던져 주고 시작하는 셈인데, 꽤 흥미로운 시작이었어요.('케이퍼 필름'(caper film)은 큰 건의 절도 사건을 소재로 여러 명의 프로페셔널 범죄자들이 모이는, 범죄 영화의 서브 장르 중 하나다. 그리고 최동훈 감독과 아내인 안수현 프로듀서가 만든 영화사 이름이기도 하다.)
최동훈: 어렸을 때 가장 가슴 설렜던 게 홍콩의 골든하베스트 영화사 로고예요. '당, 당, 당, 당' 하면서 빨간 로고가 뜨잖아요? 그런 것에 대한 향수도 있고… 이번엔 오프닝 타이틀을 만들고 싶더라고요. 요즘은 보통 오프닝 타이틀을 안 만들지만요.
김윤석: 사실 예전에 [007] 영화는 다 오프닝 보는 재미였는데 말이죠.(웃음) 이번엔 어떻게 바꿨을까, 그러면서.
최동훈: 저는 이번에 오프닝 타이틀을 만든 게 굉장히 좋았어요. 그리고 여기에 '케이퍼 필름'이라는 제작사 로고가 같이 뜨니까 기분이 묘하더라고요.([도둑들]의 오프닝 타이틀은 가수 나얼의 쌍둥이 동생인 유대얼의 작품이다 - 편집자).
최동훈: 취향이죠. 고전 영화에 대한 끝없는 사랑….(웃음) 그냥 장르영화가 아니라 낭만적인 그 무엇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타짜](2006)도 낭만적이긴 하죠. 하지만 [타짜]가 음울한 낭만이라면, [도둑들]은 고독한 낭만의 느낌에 유쾌한 것들이 섞여 있었으면 했어요.
최동훈: 눈치 채셨군요.(웃음) 사실 그런 신이 구축하기가 굉장히 어렵거든요. 시나리오에 안마 받는 장면까진 있었어요. 그런데 윤석 선배에게 "눈을 가리죠" 그랬더니 좋대요.(웃음) 마카오 박의 눈을 안 보여주니까, 이게 묘하게, 팹시에게 냉담한 것 같으면서도 그의 속을 모르겠더라고요. 그리고 처음엔 둘이 떨어져 있다가 나중엔 딱 붙죠. 넓은 투 쇼트에서 타이트한 투 쇼트로 마무리가 되는 신인데, 거기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대사는 마카오 박의 "우리가 무슨 로미오와 줄리엣은 아니잖아?" 이 대사예요. 하드보일드 대사죠.
- 1, 2. 안마방 장면의 마카오 박과 팹시. [도둑들]의 낭만적인 느낌을 잘 드러내는, 하드보일드 영화 톤을 연상시키는 신이다.
- 사실 [도둑들]은 한국 상업영화의 최전선 같은 느낌이거든요. 예산도 그렇고, 캐스팅도 그렇고, 감독에게 붙은 '흥행사'라는 수식어도 그렇고. 기획 단계에서 부담을 먼저 안고 갈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김윤석 씨는 시나리오를 읽고 어떤 느낌이셨나요?
최동훈: 부담감보다 호기심이 먼저였던 것 같아요. 야, 이거 만들어지면 정말 재밌겠다….
김윤석: 홍콩에 도둑들이 모인다. 중국 배우들과 함께 한 프레임에 걸리고, 나는 중국어를 하고….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흥미진진한 부분이 많았어요. 그리고 와이어 액션 부분 같은 경우는 컴퓨터그래픽으로 시뮬레이션을 만들어 주길래 봤는데…. 이걸 나보고 하라고? 이걸? (모두 웃음) 그런데 후반에 기관총이 나오는 걸 보고서 감이 딱 왔어요. 초반에 케이퍼 필름 같은 세련됨이 있다면, 후반은 완전히 용병들과 싸우는 거구나…. 바로 갈겨버리는 그런 느낌이구나….
최동훈: 사실 그 부분도 수많은 제약이 있었어요, 제작자(이자 아내인 안수현 프로듀서)가 "이거 꼭 수류탄까지 터트려야 해?" 그러더라고요.(웃음) 사람들이 너무 가짜라고 느낄까 봐 그랬던 것 같아요. 난 "상관 없다"고 했어요. 한국영화에서 총이 등장한다는 것에 대해 사실 어떤 거부감 같은 게 있거든요? 실제로 이게 가능한 거냐는 건데…. 그런데 그것이 자연스럽게 가길 원했어요. 어차피 외국에서 오는 사람들이 총을 가지고 오는 거니까요, 그런 부분을 의식하지 않고 그냥 드라마로 빠져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부산에서의 액션 장면은, 제가 [전우치](2009)에서 와이어 액션을 경험했기에 찍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대신 [도둑들]은 더 '생짜' 느낌이었고 더 어려웠던 거죠. - 사실 이 영화는 마카오에서 그냥 끝날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마지막에 부산으로 오면서부터, 아니 사실은 마카오의 지하 주차장에서부터 첸 역을 맡은 임달화 씨가 홍콩 느와르 분위기를 내면서부터, 케이퍼 필름에서 액션 스릴러로 서서히 바뀌죠. 그래서인지 [도둑들]은 정통 케이퍼 필름임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다른 느낌을 주고요.
최동훈: 사실 액션이 시나리오엔 그렇게 많진 않았어요.
김윤석: 반 페이지였죠. 그걸로 한 달을 찍었고요.(웃음) "창문으로 튀어 나가는 마카오 박…"
최동훈: (김윤석의 말을 이어받으며) "… 총알을 피해 건물의 벽을 타 넘는다."(웃음) 그런데 전 사실 액션 영화를 찍기 바랐다기보다는 '관계'의 영화로 끝나길 바랐어요. 만약 마카오에서만 끝났다면 이 영화는 그냥 [오션스 일레븐]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찍고 싶진 않았고요, 어쩌면 카지노 장면은 미끼 같은 걸지도 몰라요. 저는 도둑들 안에서 벌어지는 사랑과 배신과 암투와 음모…. 그런 관계를 그리고 싶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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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기억에 남는 건, 캐릭터와 배우라는 존재"
- [범죄의 재구성](2004)의 사기꾼들, [타짜]의 도박꾼들, [전우치]의 도인들, [도둑들]의 도둑들…. 항상 사회 규범 반대편에서 암악하는 질서 교란자들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 오셨는데요, 어떤 지향점이 있는 건지요. 반복되는 '복수'의 테마도 그렇고요.
최동훈: 지향점이라… 음… 그런 게 있었으면 하셨군요.(웃음) 그건 사실 말로 설명하기가 힘든데요, 제 영화적 지향점은 음…. 첫 번째로 가장 중요한 건 흥미진진함이에요. 그리고 두 번째는… 이렇게 이야기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주인공은 고독해요. 여러 캐릭터들 속에서요. 사실 [타짜]의 고니(조승우)도 그렇고 마카오 박도, 메인 플롯의 주인공은 고독하고 떠도는 사람들이에요. 저도 왜 그렇게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변 인물들의 서브 플롯들을 강화시키고, 속내를 잘 안 들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주인공은 오히려 조금 누르죠. [타짜]의 고니도 처음엔 막 떠들어 대다가 뒤로 갈수록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아요. 마카오 박도 소문 속에만 존재하던 사람이었죠. 영화 초반 20분엔 등장도 안 하다가, 쓱 나와서 도둑들이 모두 모여 있을 때 얘기 던지고 사라지고요. 그런 것에 매료되는 게 있어요.
김윤석: 시나리오 받을 때마다 느끼는 건, 이야기가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캐릭터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아요. 최 감독 영화는, 캐릭터가 굉장히 강하죠. 캐릭터와 이야기가 막 부딪혀서 상충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요. [도둑들]도 다이아몬드 훔치고 뭐 그런 얘기처럼 보이지만, 결국 영화를 떠올리면 이야기보다는 캐릭터가 남아요. [타짜]도 마지막 대결의 이야기 같은 것보다는, 정 마담(김혜수), 고니, 평경장(백윤식), 아귀(김윤석) 이렇게 캐릭터가 남잖아요? 최동훈 감독의 시나리오엔, 모든 것이 사람에서 시작해서 사람에서 끝나는 느낌? 아무리 힘들어도 낭만이 있다, 그런 느낌도 있고요.
최동훈: 사실 스토리라는 것에 목을 매요. 저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스토리는 잘 기억이 안 나요. 그러니까 알랭 들롱의 영화는, 아무리 장 피에르 멜빌 감독이 [암흑가의 세 사람](1970)을 만들어도, 결국은 보석상 터는 얘기일 뿐이고 남는 건 알랭 들롱, 이브 몽탕… 그 배우들인 거죠. 저는 영화의 정체가 거기에 있는 것 같아요. 캐릭터가 스토리를 조정해가야 하는데, 짜여진 스토리 안으로 들어오면 캐릭터가 빛을 잃죠. 언제나 전 그 싸움이 재미있어요. 시작할 땐 스토리로 시작하지만, 끝날 땐 캐릭터로 끝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셈이죠.- 1. [도둑들]의 마카오 박. 그는 최동훈 감독의 주인공들이 지닌 외로움과 떠도는 느낌을 역시 지니고 있다. 2. 팹시와 씹던 껌이 비 오는 날 술 마시는 장면. 이 영화가 지닌 톤과 함께, 두 캐릭터의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 각 캐릭터들이 서로에게 내뱉는 듯한, 그런 대사들도 감독님의 그런 생각의 일환이겠군요.
최동훈: 그렇죠. 이 사람은 어떤 투로 말을 할까? 동사부터 나오는 사람도 있고, 어순이 다른 사람도 있고, 짧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길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는 거죠. 마카오 박은 중국말을 하는데, 이 영화에서 가장 기괴한 점은, 말이 안 통하는데 또 다들 말이 통해요. 앤드류(오달수)가 중국 쪽에 있고, 잠파노(김수현)가 화교로 설정되어서 자연스러운 것도 있지만, 마카오 박이 이쪽에 중국말 했다가 저쪽엔 한국말 해주고, 그렇게 섞어서 이야기해요. 아주 자연스럽게.
김윤석: 그거… 진짜 어려웠어요. 어색하지 않게 하려면….
최동훈: 보는 사람들은 몰라요. '어? 김윤석이 연기 잘 하니까 중국말 원래 잘 했나 봐' 이렇게들 생각하시는데…. (김윤석을 보며) 사실은 선배, "셰셰"랑 "따거" 밖에 모르잖아요.(웃음) - 워낙 자연스러우니까 관객들이 그냥 넘어가는 것일 수도 있죠.
김윤석: 중국어에 감정을 실어야 하잖아요. 처음엔 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 농담처럼 이야기하는데, 마카오 박이 쓰는 중국어는 아침 아홉시부터 저녁 여섯시까지 쓰는 중국어고, 앤드류가 쓰는 중국어는 밤 열 시 이후부터 새벽 다섯 시까지 쓰는 중국어라고….(웃음). 앤드류는 무슨 속어 같은 중국어를 쓰잖아요. 사투리 같기도 하고, 못 알아 들어도 아무 상관 없어요. 그런데 나는 굉장히 논리적이고 멋있고 세련되게 해야 하니까, 이거 발음 때문에 미~치는 거예요. 그런데 나중에 진짜 점점 감정이 붙기 시작하는데, 나중에 웨이홍을 만나는 장면이 되니까 정말 내가 중국어를 하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최동훈: 그리고 대사도 사건을 이어가는 대사가 있고, 감정을 표현하는 대사가 있고 캐릭터를 설명하는 대사가 있잖아요. 그걸 섞게 되고요. 그런데 캐릭터를 드러내는 대사 같은 경우는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써요. 팹시와 씹던 껌(김해숙)이 비 올 때 술 마시면서 하는 대사 같은 경우는, 계속 고쳐 썼던 거예요. 한 단어 한 단어 모두 다시 바꿔 보고…. 그런 게 영화 찍는 재미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아마 할리우드 영화 같으면 그런 신 빼라고 했을 거예요.
"함께 한 네 편의 영화. 긴장과 시너지"
일반적으로 배우가 감정을 표현할 때 목소리의 고저로 표현하는데, 김윤석 씨는 톤의 변화는 거의 없이 그 속도나 장단으로 표현하시는 것 같아요. [도둑들]은 그런 방식이 더 두드러지게 느껴졌고요.김윤석: 연극을 하면서 자연스레 체득이 된 것 같은데요, 아무리 화를 내고 그래도 '말'이라는 건 다 부서져요. 우리끼리 하는 말 중에, "대사를 다리미로 다린다"는 표현이 있거든요. 저는 힘이 더 중요하다고 봐요. 영국에 셰익스피어 연극으로 유명한 존 길거드 경이라고 있잖아요. 연출가 피터 브룩이 로열셰익스피어극단에서 존 길거드와 [리어 왕]을 할 때였는데, 길거드가 연기하는 걸 보고 "저 배우는 목소리로만 연기한다!" 그러면서 감탄했다는 거죠. 몸으로 연기하는 것보다 목소리로 연기하는 게 훨씬 더 섬세하다는 걸 존 길거드는 영리하게 알아챘다는 건데…. 저도 정확한 전달의 힘, 문장의 힘이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호흡이죠. 감정을 발산하더라도 호흡으로 깨끗하게 정리해줘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저도 그런 연기를 좋아하고요. 그리고 특히 최 감독의 영화엔 대사가 주는 리드미컬한 맛이 있어요. 그 맛을 살리기 위해서는, 중간에 이상한 걸 넣으면 안 돼요. 그래서 제 개성을 안 넣어요. 문장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쫙~ 하는 거죠. 그리고 연기는 대사와 대사 사이에 나온다는 얘기도 있거든요. 그 사이가 중요한 것 같아요.
최동훈: 홍콩의 해상 레스토랑에서 마카오 박이 팹시를 처음 만나는 장면이 있어요. 뽀빠이(이정재)가 문을 살짝 열어주면 그 틈으로 팹시가 마카오 박을 쳐다 보면, 마카오 박이 천천히 팹시를 쳐다보거든요? 팹시가 "많이 변했네?" 그러면, 마카오 박이 뽀빠이에게 "잠깐 얘기 좀 할까?" 그런 장면이 있어요. 그런데 그때… 시선은 아직 뽀빠이에게 안 갔어요. 대사하는 도중에 가요. 그런 게 멋진 거예요. 그걸 볼 때 느끼는 쾌감의 정체는, 굳이 연기를 안 하는 거예요. 상대 배우랑 주고 받고 듣고 말하고, 이것만 하고 있는 거죠.
김윤석: 가장 중요한 대사를 할 때는, 내가 말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상대방의 말을 듣고 하는 반응이 중요한 것 같아요. (감정을 크게 넣어서 표정을 오버하며) "너, 왜 그랬어!" 이러는 게 아니라 (읊조리듯 기자를 바라보며) "왜 그랬어…" 이게 맞는 것 같더라고요. 모건 프리먼 같은 배우가 그러잖아요. "연기는 히어링, 즉 듣는 것"이라고. 100퍼센트 히어링이라는 거죠. 100퍼센트 집중을 해라, 네 말은 저절로 나온다는 거죠. 상대방의 반응을 바라는 리액션이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고요.
최동훈: 이거 참 서로들 자화자찬이….(웃음)- [범죄의 재구성]의 이 형사 역을 시작으로, 네 편의 영화를 모두 김윤석 씨와 함께 하셨는데요, 감독 입장에서 한 배우와 계속 함께 하려면 꾸준히 새로운 걸 제시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을 것 같아요. 반대로 배우 입장에서도 계속 그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을 것 같고요.
최동훈: 저는 윤석 선배와 개인적으로 굉장히 친해요. 자주 만나고, 술도 자주 마시고, 우리 영화 말고 다른 영화 얘기도 많이 하고, 연극 얘기도 많이 하고…. 사실 영화 촬영을 할 때는 시나리오에 대한 끝없는 의심과 끝없는 확신 사이를 왔다 갔다 해야 하거든요? 저는 주로 배우를 믿고 맡기는 타입이에요. 사실 영화 현장에선 카메라 앞에 배우를 던져 놓고 찍게 되잖아요? 제일 힘들고, 뭐랄까… 가장 철학적인 사람이 배우죠. 그래서 배우를 아무렇게나 막 가져다 놓을 수 없는 거고, 세팅을 정확하게 해야 해요. 어떻게 보면 긴장 관계가 계속 있는 거예요. 엘리베이터 상판에서 마카오 박과 뽀빠이가 대결하는 장면도, 그 대사를 한 달 동안 고쳤어요. 윤석 선배가 이 대사를 어떻게 할까… 마카오 박이 그 긴 전투를 벌이고 여기까지 왔는데… 마카오 박이라면 뽀빠이를 어떻게 대우할까…. 대사가 많으면 좀 쉬운데 몇 줄 안 되니까 더 어려운 거죠. "정 안 되면 뭐 시나리오대로 하죠" 그럴 수도 있지만, 저도 그런 모습을 보이기 싫은 거예요. 한 달 동안 고민해서라도, 배우가 그 장면을 연기를 하고 싶도록 만들어야 해요. 그런 긴장이 있는 거죠.
김윤석: 저는 대사를 줄이는 걸 좋아해요.(웃음) 저는 절대로 애드립으로 대사를 안 늘려요. 함축해 놓으면 좋아하고, 대사를 많이 주면 "아니 왜 이렇게 많이…" 그래요.(웃음) 그리고 이번에 마카오 박도, 의도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꼭 '9회말 투 아웃'이더라고요. 꼭 수면 밑에 있다가 마지막에 수면 위로 올라오는 캐릭터예요. 그리고 한 바탕 해프닝을 해줘야 하는데, 이게 실패하면….(웃음) (최동훈 감독을 바라보며) 동반 추락이야, 동반 추락!(웃음) 그래서 이번 같은 경우도, 마카오 박 액션이 제대로 안 나오면 어떻게 하나 고민 많이 했어요.
최동훈: 그런데 윤석 선배가 이런 게 있어요. 재작년 말 겨울에 병원에 입원할 일이 있었는데, 그때 오셨어요. 시나리오가 4고 정도 나온 상태였는데, 그땐 엔딩이 부산이 아니었어요. 그냥 홍콩에서 끝나는 거였죠. 문병 와서 복도로 안수현 PD랑 나가더니, "이거 홍콩에서 찍으면 우리 못 돌아온다", "이 액션을 홍콩에서 어떻게 찍냐" 그랬던 거죠. 전 그때 그런 건 별로 상관 안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윤석 선배가 한국으로 다시 와야 한다고 했어요. 그래야 [도둑들]이라는 영화가 외국만 떠도는 게 아니라 뭔가 순환하는 느낌을 주고, 한국으로 다시 오는 게 관객에게 굉장히 순기능을 할 거라는 거죠. 윤석 선배가 가고 안 PD가 그 얘기를 해주는데, '맞아, 부산으로 와야지… 내가 무슨 관광영화 찍을 것도 아니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게 너무 좋은 거예요.
김윤석: 전반적으로, 한국 배우가 나오는데 외국에서만 찍은 영화들 중에 성공한 영화가 거의 없어요.(웃음)
"쿨한 캐릭터, 쿨하지 않은 캐릭터"
마카오박과 팹시와 뽀빠이의 삼각관계, 첸과 씹던 껌, 그리고 예니콜(전지현)과 잠파노 사이의 관계 등 [도둑들]은 케이퍼 필름 치곤 이례적으로 로맨스 라인이 많아요. 없거나 하나 정도 있는 게 일반적인데 말이죠.최동훈: 그렇죠. [오션스 일레븐]도 그렇고 [이탈리안 잡]도 그렇고. 이런 범죄 영화 찍으면서 가장 편한 건 여자 캐릭터를 한 명만 넣는 거죠. 되게 편해요. 그런데 이 영화엔 네 명의 여성 캐릭터를 넣은 거잖아요? 영화를 낭만적으로 찍고 싶다는 것도 있었지만, 다른 범죄 영화와 조금 다르게 찍고 싶은 것도 있었어요. 이 사람들이 하는 거는 훔치는 거랑 서로 좋아하는 것 외엔 없는 거고요. 그런데 그 시작은 마카오 박과 팹시와 뽀빠이의 삼각관계였어요. 잠파노와 예니콜은 서브 플롯이었는데… 문제는 김해숙 선생님이랑 임달화 씨가 연기를 너무 잘 하셔서, 찍다 보니까 숭고한 사랑으로까지 느껴지는 거예요.(웃음). 거기까진 의도가 아니었는데….(웃음) 그 눈빛이….
김윤석: 로맨스의 막차를 탔다는 걸 아니까, 브레이크가 파열된 사랑이고, 내리지를 않는 거죠.- 그 로맨스 라인이 없었으면, 영화가 굉장히 지루할 수도 있었을 거 같아요.
최동훈: 영화가 그냥 이야기만 가는 거죠. 저는 스토리만 전달하는 영화를 정말 찍고 싶지가 않아요.
김윤석: 만약에 그런 영화였다면, 여배우가 등장하질 못했을 거예요. - 시나리오 작업은 어떠셨나요?
최동훈: 즐기면서 썼어요. 이렇게 시나리오 빨리 쓰긴 처음이에요. 초고를 20일 만에 썼어요. 그 다음에 계속 고쳐서 10고까지 가긴 했지만.(웃음) 이런 얘기하면 재수 없을 수도 있는데, 시나리오를 쓰면서 '이 영화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잘 찍기만 하면 말이죠.(웃음)
김윤석: 그런데 나는… 시나리오를 보면서 그 스케일 같은 것보다는 '아… 중국어를 어떻게 하나…' 이 생각밖엔….(모두 웃음) 마카오 박이라는 사람은 중국어를 재미 없게 하면 안 되는데….
최동훈: 전 그런 건 하나도 걱정 안 하고 쓴 거죠.
김윤석: 심지어는 중국어 장면을 안 끊고 한 테이크로 찍은 적도 있어요.(웃음) 아무튼 어색하게 들려서는 안 되겠다. 그래서 중국어 교사와 연습을 하는데, 그게 사람 잡거든요. 배운 그대로 하면 국어책 읽듯 하게 돼요. 그래서 2주 정도 배운 후엔, 그 톤을 내 톤으로 바꾸었어요. 중국어엔 성조라는 게 있잖아요? 그걸 제가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너무 이상하죠. 그거 안 바꾸고 그대로 했으면 정말 이상했을 거예요. 중국어 회화처럼 나왔을 거예요.
최동훈: 저는 중국어 연기가 좋다는 말이 안 나오는 게 굉장히 훌륭한 거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너무 자연스럽다는 거죠.* 아래 내용은 치명적인 스포일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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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들이 등장하는 쿨한 영화처럼 느껴지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의 온도가 올라가요. 감정이 고양되고, 캐릭터들이 막판에 한 번씩 뜨겁게 달아오르는 느낌도 주고요.
최동훈: 예전에 어디서 "슬픈 스릴러를 찍고 싶다"고 한 적이 있는데, 감성이 있는 장르 영화를 찍고 싶다는 얘기였어요. 그렇지 않고 '그냥 장르영화'를 찍는 게 재미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고전 할리우드 시기에 하워드 혹스가 장르영화의 귀재였는데, 영화가 이상~~해요. 혹스의 [리오 브라보](1959)를 보면서 "나도 저런 영화를 찍어야지" 그랬는데, 정작 그 얘기는 간단해요. 누구 하나를 가둬놨는데 악당들이 와서 풀어달라고 하니까 보안관들은 판사가 올 때까지 못 풀어준다는 거죠. 그래서 악당들이 계속 보안관 사무실을 침입하려고 하고, 보안관들은 지키는 얘기거든요. 그런데 지키다가 술 먹고 노래도 하고 그래요. 장르영화에 그런 향기가 없다면….
김윤석: 늙어가는 거지 뭐….(모두 웃음) 나이 들어가는 거….
최동훈: 그런 걸 수도 있어요.(웃음) 30대 땐 쿨했는데 요즘은 이상하게 낭만적인 게 좋은 거 같아요.
김윤석: 그러니까 사실 모든 사람들이 다 신파를 좋아하거든요.
최동훈: 거부할 수 없는 통속성의 매력이 있죠.
김윤석: 그러면서 가슴은 신파 쪽으로 가는데, 머리로는 "난 거기로 안 가" 이러는 거죠. 그런데 언제까지 거부하겠어요. 신파를 인정해야지….(웃음)
최동훈: 저는 쿨한 사람이랑 쿨하지 않은 사람이 함께 영화에 나오는 게 더 재미있는 거 같아요. 다 쿨하면, 다 가족인 거죠. [범죄의 재구성]은 조금 쿨했죠. 하지만 김 선생(백윤식)은 안 쿨했어요. 속으로는 이글이글거리면서 겉으로는 쿨한 척하는 거죠. '쿨한 영화'라는 건 그 영화를 규정 짓는 표현인데, 제 영화엔 쿨한 캐릭터와 그렇지 않은 캐릭터가 있는 것뿐이죠. [도둑들]도 마찬가지인 거고요. - [도둑들]을 보면 코믹한 캐릭터와 그렇지 않은 캐릭터, 로맨스에 관련된 캐릭터와 그렇지 않은 캐릭터 등 여러 카테고리로 인물들이 나뉘면서 서로 차별화되는 게 흥미롭죠.
최동훈: 사실 다 비슷한 사람들이라면, 드라마 구조상 그 인물들을 시나리오에서 없애야죠. 이 영화가 케이퍼 무비지만, 예전에 [그랜드 호텔](1932) 같은 고전영화처럼, 인간 군상에 대한 영화이기도 한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가면 재미가 없어지니까, 장르영화로 만든 거죠. 관객들이 인간 군상에 대한 영화를 보러 오진 않으니까요.(웃음)
김윤석: [전우치] 때 이런 생각이 든 적이 있어요. 이거 나 혼자 19세 관람가 연기를 하고 있는 거 아닌가….(웃음) (강)동원이 (임)수정이 (유)해진이 그리고 신선들 세 명은 막 신나서 하고 있는데, 나 혼자 무게 잡으면서…. 최 감독 영화에서도 [완득이](2011) 같은 연기를 하고 싶은데, 왜 코미디는 안 주나 싶기도 하고…. 아니 뭐 농담인데…. 아니, 사실 어떨 땐 짜증이 나요.(웃음)
최동훈: 한 번 할까요, 코미디?(웃음) 아… 알겠습니다. 사실 저는 정말 로맨틱 코미디 한 번 해보고 싶거든요. 그냥 노는 거죠. 캐릭터, 완전히 망가트리고.
김윤석: 그 [위대한 레보스키](1998) 같은 영화 있죠? 제프 브리지스. 난 그 인간 너무 웃겨 가지고….(웃음) 존 터투로도 그렇고. 그런 역할 한 번….(웃음) 출처 - 프로들이 등장하는 쿨한 영화처럼 느껴지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의 온도가 올라가요. 감정이 고양되고, 캐릭터들이 막판에 한 번씩 뜨겁게 달아오르는 느낌도 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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