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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인터뷰. 언론인으로 산다는 것

사/ㅗ 2011. 6. 11. 23:30 Posted by 로드365



언론인으로 산다는 것

“파업을 해 본 사람이 남의 파업을 이해합니다”라고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은 파업을 앞둔 날 시사저널 기자들 앞에서 말했다. 깔끔하고 세련된 ‘주류’ 이미지를 가진 손석희 씨가 어떻게 노조를 이해할 수 있는 걸까? 아, 그렇다. 15년 전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모두에게 잊혀진 사건이지만, 과거 MBC 노조가 지금의 시사저널과 비슷한 이유로, 그러니까 공정보도를 위해 파업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손석희 아나운서는 쟁의대책위원이라는 이유로 구속, 영등포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손석희 씨의 매형이자 MBC PD였던 주철환 씨(현 이화여대 교수)는 처남을 면회한 후 당시의 아픔을 MBC 투쟁속보에 글로 남겼다. 당시 대학 1학년이었던 나는 한겨레신문을 통해 그 면회기를 읽었다. ‘푸른 수의는 영화에서나 보는 것인 줄 알았는데 바로 눈 앞에 그 수의를 걸친 석희의 모습을 보자 처남댁은 한마디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울음부터 터뜨렸다’

1992년 10월의 일이다.

그리고 15년이 지났다.

“글쎄요. 그때는 오히려 지금보다 힘들지 않았어요. 차라리 황우석 사건이 더 힘들면 힘들었을까. 그 때는요. 국민들이 우리를 지지했거든요. 시청자들과 시민들이 모두 우리를 지지했으니까. 그런 싸움은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MBC 파업 이야기를 꺼내자 손석희 교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민망해요. 저는 그 때 특별히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없었고, 구속된 건 단지 직책을 맡았기 때문일 뿐인데. 괜히 공짜로 영웅처럼 된 것 같아서… 밖에서 보시는 것과는 달리 그렇게 고통스럽지도 않았어요……. 말씀드린 것처럼 대중의 지지를 받는 싸움은 어려울 것이 없어요. 하지만… 황우석 때는 정반대였죠.”


2006년 12월, 동선동 성신여대 교수 연구실에서 만난 손석희 씨는 이렇게 1992년 MBC 파업 사태와 2006년 황우석 사태를 비견했다. 황우석 사건이 터진 지 꼭 1년이 되던 때였고 그가 ‘아나운서 손석희’에서 ‘교수 손석희’로 변신을 선언한 지 꼭 1년 되던 때였다.


2005년 12월은 MBC가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빠져 있을 때였다. 그래서인지 그의 변신에 대해 이런 저런 말들도 많았다. ‘황빠’들은 몰락하는 MBC를 탈출한다고 비아냥거렸고, <조선일보>는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몸세탁’한다고 기사를 썼다. 나는 그가 ‘박수칠 때 떠나라’는 격언을 실천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침 그가 <시사저널>이 2005년 10월에 뽑은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1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언론인으로서 정상에 올랐을 때 떠난다. 왠지 타이밍이 절묘했다.


“그건 전혀 아니에요”

라고 손 교수는 사래를 쳤다.


“영향력 순위 같은 것은 의식하지 않아요. 이 말을 해야 믿으실 것 같은데, 교수직을 2005년 11월에 처음 제안 받은 게 아닙니다. 이미 2004년에 다른 학교에서 오퍼가 있었어요. 그런데 해를 넘기면서 최문순 사장이 취임하고, 저에게 아나운서 국장직을 맡겼어요. 사장 취임 후 첫 인사를 내렸는데, ‘No’ 하기 힘들었죠. 방송국에서 국장이라는 건 일종의 봉사하는 자리고, 나도 조직에 기여하고 싶은 기회가 됐고. 그래서 차마 회사에 ‘학교 갑니다‘라고 이야기는 못하고 ’국장 일 년만 하고 그 다음에는 그만 두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마침 국장직 마칠 때 쯤 돼서, 여기서 제안이 온 거죠.“


 그는 성신여대 문화정보학부 학부장을 겸하고 있다. 2006년 처음 출범한 신생 학부다. 대학교 학부 과정 하나를 그가 창조해내야 한다. 일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다는 점이 그가 이직을 결심하도록 마음 흔든 요소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그만큼 바빠졌다.

“원래 하던 <시선집중><백분토론> 진행은 계속 하면서 새로운 일을 추가로 맡았으니까요. 물론 전에도 국장 보직을 맡기는 했지만, 그건 제가 잘 아는 일이었고. 하지만 여기는 학부를 새로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익숙치 않고, 그래서 신경이 더 쓰입니다.”


그는 아직 가입한 학회가 없다고 했다. 1년 동안은 학회에 안 들 거라고. 아직 자신을 학자로 생각한 적도 없고, 학자로서 실감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인터뷰도중에도 ‘학자’라고 불리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그냥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자리매김하면 될 것 같은데”

“그럼 교육자라고 불러드릴까요?”

“교육자도 너무 버겁고. 그냥 선생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선생도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으니. 아직 제 정체성이라는 게 중간자적 입장입니다.”

그는 자신이 ‘반인반수’란다. 반은 방송인 반은 교수.


반인반수 손교수에게 ‘대학생들과 직접 접하시니 요즘 학생들이 예전과 어떻게 다른지’ 물었다. 그는 에피소드 하나를 이야기해 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신생 학부라 보니 주로 1학년들을 가르치는데 봄 학기에 <방송의 역사>라는 과목을 맡았다. 방송의 역사를 말하다보면 우리 정치사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근데 아직 1학년이라 그런지 해방 후 현대사에 대해 너무 모르더란다. 교과서에 딱 나와 있는 사건만 안다고. 5.18 광주 운동도 잘 모르고.


“그래서 학생들에게 왜 이것도 모르냐고 꽤 다그쳤죠. 그러다 기말고사 끝나고 방학이 됐는데 수강생 하나가 교수실로 찾아 왔어요. 자기가 고등학교 내내 필기한 서브노트를 가져와 보여주면서 ‘나는 이렇게 공부 열심히 했는데 왜 나에게 모른다고 하냐’고 항변하더군요. 그 학생 공부 열심히 했더라구요. 고등학교 때 누가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모르는 것에 대해 다그치지 말라고. 억울하다는 거죠. 그 일로 내가 반성했어요. 요즘 학생들 탈정치화 되어 있다고 몰아붙일 필요도 없는 것 같애. 그런 환경이 되어 있지 않은데...”


“과거에는 대학 선배들이 현대사를 학회나 동아리에서 가르쳤는데요.”


“신 기자가 딱 정리한 셈이 되는데. 그러니까 요즘 그런 게 없는 거에요.”


손 교수는 교수 생활에 만족해 보이는 듯 했다. 이제 자유인이니까 MBC 말고 다른 방송에 출연할 생각은 없는지 물었다.

“그런 제안을 종종 받기는 하는데. 내가 물어보죠. 신 기자는 내가 KBS나 SBS에 나가면 어떨 것 같아요?”

“별로 문제는 안 될 것 같은데요?”

“글쎄……”


그는 시청자들이 아직 자신과 MBC를 떼어놓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MBC에서 내치지 않는 한, 다른 방송에 출연할 이유가 없다고.


“MBC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신 것 같군요. 1년 전 떠나시는 날 기분은 어땠어요?”

“그게 본의아니게 너무 소란스럽게 되어서 부담됐죠. 사의를 밝힌 뒤 처음 한 두달 정도 회사에서 많은 분들이 말려줘서 고맙고 미안하고…”


MBC를 떠나서 옛 직장 MBC나 아나운서국을 보니 어떻냐고 물었다.


“MBC 뭘요?”

“예를 들어 요즘 아나운서들… 몇 몇 방송국을 중심으로 아나운서들이 연예인화 되는 현상이 있는데. 손 교수님 아나운서 국장으로 계실 때 그렇게 오락 방송에 팔리는 거 막았다고 들었거든요”.


“꼭 요즘만 그런 건 아니에요. 과거에도 상업화되기는 마찬가지 였어요. 제가 국장시절에 막은 것은.. 아나운서들이 일회용으로 팔리는 걸 막았어요. 어차피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은 이미지화 되고 그것까지 반대할 수는 없구요. 어느 쪽의 이미지인가가 중요한데, 굳이 나누자면, 오락이든 교양이든 지켜야할 이미지가 있는거죠. 근데 일회용으로 나가서 망가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그 이미지가 흐트러지니까요


“일회용이라는게 설날 특집프로에 아나운서들이 나오는 것 말인가요? “


“제가 아나운서 국장 하는 동안에는 설날 오락 프로에 아나운서들 출연 안 시켰어요. 보직 아나운서를 전문가라고 이야기는 못해도 전문가 이미지는 가져야 밑천이 될 수 있고, 또 조직 집단으로 봤을 때도 그게 좋고. 그래서 전문화적 이미지를 갖기 위해서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될 것이 있는데, 지나친 망가짐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딱 한번이면 모르겠는데, 명절 때마다 나오는 건, 개인의 이미지 구축에도 도움이 안 되고. 집단의 도움이 안 되니까… 그 대신 어떤 한 분야 오락 프로에 나가서 자기 몫을 잘 하고, 이 사람은 정말 굳이 문제 없다 그러면 좋고,  저를 포함해서 말리지 않아요.”


손 교수는 마봉춘(나경은 아나운서의 별칭)을 연예 프로에 처음 투입한 것이 자신이라고 강조했다. 연예인들의 역할에 대해서 한 번도 폄하 생각해본 적이 없고 이 사회 소중한 역할을 하고 계시다고 ‘안전판’ 발언도 덧붙였다. 역시 조심스런 사람이다.


손석희씨와 말하다보면 ‘기자들에게 책잡히지 않게 인터뷰당하기’의 모범을 보는 듯 하다. 어떤 질문을 해도 꼬투리 잡힐 말은 언급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교수가 되어 교수 사회를 바라보니 어떻습니까?”라며 논란이 될 만한 유도질문을 했더니 끝내 언급을 피했다. 1년 전에 인터뷰할 때도 민감한 정치 이야기는 아슬아슬하게 피해갔던 기억이 났다.


내가 손석희씨를 처음 인터뷰 한 것은 2005년 10월이었다. 매년 <시사저널>이 선정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으로 손석희씨가 1위에 뽑혔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는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지금은 이사)이 10년 가까이 1위 장기 집권을 하고 있어서, 이 조사 결과를 보도할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손석희씨가 처음으로 ‘김대중 아성’을 깼을 때, 드디어 우리 언론도 세대교체를 하는 구나.라고 기뻐했다.


2005년 당시 인터뷰 장소는 MBC 아나운서국장실이었다. ‘2006년에 또 영향력 1위 하실까요?’라고 물었더니 그는 ‘그렇지 않을 겁니다. 한 사람이 계속 영향력을 과점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라고 예측했다.


“손 교수님 예언 틀린 거 아시죠? 2006년 시사저널 영향력 조사에서 또 1위 하셨어요. 2연패 안 할 거라더니.”


“그럼 그때 제가 거기서 뭐라고 말해요.”

서로 크게 웃었다.

“2위하고 격차가 더 벌어졌거든요.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분야의 독점 체제가 심화되는 거 아니에요?”


“올해 똑같은 질문을 해도 답은 마찬가집니다. 근데 한 가지 물어봅시다. 도대체 <시사저널>에서 말하는 ‘영향력’이라는 말이 좀 모호한데. 정확히 무슨 뜻인가요? 설명좀 해 봐요”


이 사람. 나를 인터뷰하고 있구나.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겨우 답했다. “타인에 대한 파급력 아닐까요. 나의 의지나 철학이나 소신을 다른 사람에게 관철시킬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구요. 언론인은 매체를 통해 자신의 철학과 소신을 대중에게 파급시킬 수 있으니까.”


손석희 교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요. 저는 단지 질문만 하는 사람이에요. 저는 질문만 할 뿐 제 프로그램에서 제 의견을 코멘터리 이야기한다든가. 그렇게 하잖아요. 그럴 시간 있으면 질문을 하나 더 하겠습니다. 굳이 저널리즘을 구분해서 말하자면. 손석희 저널리즘은 질문 저널리즘입니다.”


질문 저널리즘. 만약 주간지 인터뷰 기사라면 제목으로 쓸 만한 워딩이었다. 학술 용어로도 쓸 수 있겠다. 2006년 5월 하순 문화연대 미디어센터 주최로 포럼이 있었다. 주제가 ‘MBC 시선집중’이었다. 그 때 토론자였던 홍성일씨 왈 <손석희가 자주 쓰는 레토릭은 "어떻게 봐야 합니까?",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주어진 시간 사용 다 했습니다" 정도다”> 라고 말했다. 그게 질문 저널리즘일까?


 “문화연대 포럼이 있었는지는 몰랐는데요. 포럼 원고 있으면 메일로 좀 주세요. 근데 홍성일씨 말은 긍정의 뜻입니까 부정의 뜻입니까?”


“교수님이 자기 주장을 내세우지 않는 다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장점이기도 하면서 어떤 이들은 아쉬워하기도 하구요.”


“그게 과제입니다. 미국에서는 언론인이 자기 주장을 확실히 하면서 주목을 받는 경우가 있죠. 저같은 경우는 공영 방송이기 때문에 한계가 더 있습니다.”


질문 저널리즘이라는데, 좋은 질문을 던지는 요령이 있을까. 손 교수는 좋은 질문이란 상대의 대답 속에서 나오는 거라고 알려줬다. 첫 질문을 던지고 상대가 대답을 하면 그 대답 속에서 다음 질문을 찾는 게 가장 좋단다.


“시선집중 인터뷰때 종종 특종이 나오는데요. 잘 보시면 대부분 미리 준비한 질문이 아니라 보충 질문 속에서 나왔습니다.”


“순발력이 필요하겠군요.”


“집중력이 더 중요하죠. 제가 질문 저널리즘이라고 했지만, 듣는 저널리즘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질문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중요하잖아요“


“사전 준비도 많이 하시겠죠?”


“제작진이 자료를 준비하고, 저도 나름대로 인터넷 검색을 한다든지 하면서 챙기는데 기본적으로 저는 진행자가 모든 걸 다 알고 있으면 인터뷰가 재미 없다고 생각해요. 그 궁금함이 청취자와 교감을 해야 해요. 예를 들면 이런 거에요. 똑같은 주제를 놓고, 백분토론과 그다음 시선집중이 연이어 방송 할 때가 있는데, 이러면 시선집중 방송 때 감도가 확 떨어져요. 백분토론때 하도 들어서 이미 내가 궁금한 게 없어지거든요.”


 손 교수에 따르면 인터뷰 주제 사안에 대해 너무 많이 아는 체 하면 역효과가 난다고.


“관심 있는 사람이 아는 수준의 70~80%를 안다고 치면, 그게 밑천이고 나머지는 정말 궁금한 것들이죠. 밑천에 대해 새롭게 알면 호기심 그런 것들이 제대로 살아나면 그 인터뷰는 살아있는 인터뷰가 되요. 그런 인터뷰를 마치고 나면 하루종일 뿌듯하죠.”


“<시선집중>이 성공한 이유 중에 하나가 섭외를 잘하기 때문인 듯 한데요. 꼭 방송에 출연시키고 싶은데 잘 섭외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까?”


“아무래도 기업인을 섭외하기 힘들어요. 정치인들은 정치적 목적이 있으니까 나올 수 있는데, 기업 총수분들은 힘들죠. 사실 기업은 한국 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인데, 유명 기업인을 여태까지 인터뷰 한 적이 없어요. 전부 안 하겠다고 하니”


“이건 가상의 상황입니다만. 만약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전화 인터뷰 섭외에 성공했다고 한다면 뭐부터 물어보고 싶으십니까?”


“쉽게 답하기 힘드네요. 일단 현안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은 하겠지만, 첫 질문이라면... 먼저 조지 W. 부시라는 사람에 대해 인간적으로 평가해 보라고 부탁하겠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김정일에 대해 인간적 평가를 다 끝낸 상태고, 그걸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죠. 하지만 김정일 위원장은 부시에 대해 개인적인 평가를 말한 적이 없어요. 일단 그 질문으로 운을 떼며 인터뷰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예상 못한 답변이 나올 것도 같구요.”


대화 도중 약간 가벼운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보았다.


“혹시 코미디언 최양락씨가 진행하는 토론 프로그램 보신 적 있으세요?”


“잘은 모르는데, 토픽이 자극적이던군요, 아무튼 순기능을 하길 바랍니다.”


손석희 교수는 어느새 한국 사회 문화 아이콘이 되어 가고 있다. 앙드레 김이나 전두환 장군처럼 그를 패러디하거나 성대모사하는 개그맨들이 생겨나고 있다. MBC라디오 프로그램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에서 배칠수는 <손석해의 시선분산>이라는 풍자쇼를 했다.


“패러디를 뭐라고 할 순 없죠. 예전에 배칠수씨를 MBC 구내식당에서 만난 적 있는데, 그 때 배칠수씨가 제 성대모사를 하겠노라고 말하더군요. 나중에 들은 말로는 제 방송 내용을 CD로 구워 보며 석 달을 따라 연습했다고 합니다. 개그맨이라는게 소질로만 되는 게 아니구나. 노력이 필요한 거구나. 하고 새삼 알았습니다.”


“비슷하던가요?”

“나중에 갈수록 똑같다는 반응이던데요.”


배칠수 패러디와 관련한 일화 하나를 들었다. 배칠수씨가 손석희 목소리를 흉내내 CF 광고를 한 일이 있다. 그 CF가 마침 시선집중 방송 앞에 붙었다(광고주 입장에서 당연하지). 그런데 너무 똑같이 모사하는 바람에 듣는 사람들이 많이 헷갈렸나보다. 한번은 성균관대 모 교수가 대학 복도에서 손교수를 만나 인사하며 말했다. “이제 CF도 하시나봐요?”

오해받는 것에 딱히 기분 나쁘지는 않는 듯 했다. 유명세를 치르는 셈이다.


“손석희 교수 인터뷰하러 간다니까 몇 몇 친구들이 그중에서 특히 여성 팬들이 꼭 물어보라며 민원을 줬어요. 50대가 믿기지 않는 동안인데, 도대체 얼굴을 관리하는 비결이라도 있냐구요.”


“나 요즘 얼굴 맛이 갔는데. 특별히 하는 게 없어서 할 말이 없네요. 정말”


“술 담배를 안하신다든지?”


“술은 원래 별로 안 먹고, 담배는 꽤 폈어요. 담배 끊은 지 3년 됩니다. 마흔 여덟이 되어서야 끊은 거죠.”


“50 고개를 넘으실 때 특별한 느낌은 없었나요”


“개인적으로는 나이에 대해 갈등한 게 39살 때였어요, 30살이 될 때는 감각이 없었는데 40이 된다고 생각하니 방황이 생기더군요. 나의 청년기는 끝나는 구나 하고. 근데 49살 때는 아무런 갈등이 없었어요. 요즘 어디가서 쉰 하나라고 하면 예의상 놀래주기도 하고(웃음), 대부분 예의상이지. 뭐,


손석희교수는 골든 마우스 상을 받고 싶다고 했다. 라디오 방송 진행을 20년 하면 받을 수 있는 상이다. 그러려면 14년이 남았다. 그가 예순 다섯이 될 때다. 유명한 라디오 진행자 이종환씨가 칠순이다.


“물론 그 전에 떠나야 한다면 고집없이 떠나야죠. 제가 판단해서 떠나야 된다라고 생각이 들면 뒤도 안 돌아보고 딱 묻혀버릴 거에요.”


손석희씨가 나이가 더 들면 어떤 모습일까. 제대로 된 원로를 찾기 힘든 한국 사회. 그가 이대로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주기만 한다면, 우리는 드디어 존경할 만한 언론인 원로를 갖게 될지 모른다. 그간 훌륭한 언론인은 많이 있었지만 좌,우.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모두가 인정하는 원로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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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때문에 요즘 대학생들은 정말 초조하고 비정상적인 대학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도움말을 구하는 젊은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 줄 수 있을까요?”


“글쎄요. 대부분 도움을 구하는 학생들을 보면,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좋은지를 물어보는데, 난감해요. 선택 이후의 길에 대해 물어본다면 해 줄 말이 있지만.

모든 선택의 대상은 등가성이 있습니다. 모든 선택이 등가이기 때문에 어떤 선택이 좋은지를 물으면 할 말이 없어요.

대신 자신이 무엇을 선택했든 그 선택을 최고로 만들고 증명해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면 삶이 고단해 질 수 있는데...“


손교수는 자신 스스로는 그렇게 증명해왔다고 덧붙였다. 시종일관 겸손했던 그가 이 부분에서는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

언론인 선배로서 부러워보였다. 6년차 후배 기자인 나는 과연 쉰이 되어서 “나의 선택이 최고였다”고 증명할 수 있을까?


<많은 후배들이 손석희 선배를 모델로 생각하지만 갈수록 그 가능성이 줄어들면서 좌절하기도 합니다>


지난해 7월 MBC 김성주 아나운서가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한 말이 생각났다. 요즘 연예인인지 아나운서인지 구분하기 힘든 발랄한 행보를 보이는 김 아나운서의 모습을 볼 때마다 저 고백이 떠오르곤 한다. 방송보다 더 시장의 바람에 흔들리는 주간지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김성주 씨의 말이 남 같지가 않다. 젊은 기자들 중에 손석희 선배를 롤 모델로 생각하는 사람은 갈수록 그 가능성이 줄어들면서 좌절한다. ‘손석희는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가능성이 있는 유형의 아나운서다’라고 <매거진T>는 썼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왜 앞으로 (저 같은 사람이 앞으로) 없겠어요. 만약 그렇게 생각하는 후배가 있다면,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군요.”  글 신호철  2008.12.10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