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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벌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소설가로서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효과적으로 만들어낸 셈.
나도 얼떨결에 하나 받아서 읽어 보았다.
기존 유통비용보다 훨씬 돈안들이고 앱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이니.
허나 정통 소설보다는 야설에 딱일듯. 



2010년 신춘문예에서 고배를 마신 한 아마추어 작가가 있었다. 젊은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원심분리기'라는 단편소설은 아쉽게도 심사위원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 그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쓴 맛을 본 소설, 주위 사람들에게라도 보여주자는 생각이 들었다.

'원심분리기'를 읽은 지인들은 "잘 읽었다. 내용이 괜찮은데"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이런 주위 사람들의 호응을 밑거름 삼아 앱으로 방향을 바꿨다. 2010년 6월 그렇게 해서 '원심분리기'라는 원제의 소설은 '길잃은 도로시'로 바뀌어 애플 앱스토어에 올려졌다. 무료 앱으로.

'길잃은 도로시' 앱을 올린 뒤 일일이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많이 내려받아달라는 청탁성(?) 전화였다. 첫날 '길잃은 도로시'는 40여 명만이 내려 받았다. 속상한 나머지 친한 친구에게 하소연했더니 "노벨문학상 받은 작가의 글도 보지 않는 세상"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잊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튿날, 천 명이 '길잃은 도로시'를 다운받았다. 그 다음날은 만 명이 내려 받았다. 시간이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길잃은 도로시'의 다운로드 속도는 질주했다. '길잃은 도로시'는 지금까지 20만 명이 내려 받은 앱이 됐다.

최근 그는 8번째 앱 작품인 '우슬라의 꿈'을 내놓았다. '우슬라의 꿈'도 무료 이벤트 기간 동안 7만 명이 내려 받는 인기를 얻었다.

한 보잘 것 없는 여자의 일상을 다룬 소설이다. 원고지 80여장의 분량으로 그가 직접 그린 삽화가 군데군데 포함돼 있다. 동화 '인어공주'를 연상시키는 '우슬라의 꿈'은 내세울 것 없는 한 여성의 일상과 그녀의 사랑 이야기를 담아 차분하면서도 감성적으로 다가온다.

문체는 간결하고 주인공 여자를 둘러싼 주변 환경의 묘사 또한 사실감을 전해준다. 다만 주변 인물들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조금 아쉬운 대목이다.


8번째 앱 소설 '우슬라의 꿈'을 내놓은 주인공은 이수정 씨이다. 앱스토어에서는 '크리스탈(Crystal)'이란 필명을 쓴다. 이 씨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지금은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규모가 큰 잡지사에서 아트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처음 앱에 올리기로 한 것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괜찮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기 때문에 그림과 디자인을 직업 할 수 있고, 또 남편이 프로그래머여서 앱을 쉽게 만들 수 있는 환경도 작용했던 것 같아요."

'우슬라의 꿈'은 지난 2일까지 무료로 내려 받을 수 있는 이벤트를 실시했다. 이 이벤트 기간 동안 '우슬라의 꿈'은 7만 명이 내려 받았다. 최근 독서 시장이 녹녹치 않다는 상황에서 상당한 반향이 아닐 수 없다.

무료 이벤트라는 장점도 작용했겠지만 글과 그림, 디자인이 받쳐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 씨는 자신의 전공(삽화, 그림, 디자인)에다 글쓰기 까지 '토털 시스템'으로 앱 소설을 쓰고 있는 셈이다. 이수정 씨가 앱을 통해 자신의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글을 읽고 소통하기를 원해서였다.

어떤 사람이 입사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 보이는 반응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 번째 "나는 뒤떨어지는 사람이다. 아! 괴롭다"라고 반응하는 사람이 있다.
두 번째 "역시 그 회사는 내 취향이 아니었어"라며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사람이 있다.
세 번째, 있는 현실을 보태지도 더하지도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또 다른 현실을 준비하는 사람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경우는 현실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세 번째의 경우는 다르다.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또한 현실을 극복하고 변화시키려는 적극적인 사람이다.

이수정 씨가 세 번째에 해당된다. 신춘문예에서 자신의 작품이 떨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현실을 바꾸기 위해 그녀는 새로운 곳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그곳이 바로 자유롭게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 앱스토어였다.

이수정 씨가 꼽는 앱의 장점은 무엇일까.

"앱을 통하면 어디서든 볼 수 있다는 것과 다른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또 전자책으로 출판하지 않고 앱으로 만든 이유는 있을까.

"온전한 책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표지가 있고 글 속에 그림이 들어 있고, 단행본을 읽는 느낌 그대로를 전달해 주고 싶어 앱을 선택한 거죠."

이수정 씨의 첫 번째 작품인 '길잃은 도로시'는 일본어판으로도 출시됐다. 현재 영문판도 준비 중에 있다. 일본판 '도로시'도 무료 앱 다운로드 TOP10에 들어갔다. 영문판은 출시를 앞두고 있어 어떤 반응을 보일 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신춘문예에는 떨어졌지만 이수정 씨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20명의 심사위원의 입맛에 들어 채택되는 신춘문예보다는 수십만 명의 독자들이 먼저 자신을 알아줬기 때문이다. 입맛이 제 각각인 수십만의 독자들이 그녀의 작품을 즐겨 읽고 있다면 이 보다 더 행복한 순간은 없지 않을까.

"동화를 쓰고 싶었어요. '우슬라의 꿈' 이후에는 창작동화를 쓰고 싶어요. 앞으로 독자적인 출판사를 운영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앱을 통해 새로운 책문화를 만들고 싶은 것이 제 꿈입니다."

'우슬라의 꿈'을 내려 받고 후기를 올린 독자들은 "다읽고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하는 책이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수정 씨의 '앱 소설'이 앞으로도 미소를 짓게 하는 내용으로 가득하기를 바라는 독자들의 의견도 많았다.

이수정 씨의 앱 소설 작품을 보고 싶으면 애플 앱스토에서 'Crystal Book'으로 검색하면 된다. 무료로 제공되는 것과 유료로 제공되는 앱이 있다. 홈페이지(www.crystalbook.co.kr)나 트위터(@ecrystal)를 통해서도 소통할 수 있다. 
 
정종오 엠톡 편집장 ikokid@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