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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청객>은 호불호가 확연하게 갈리는 영화다. 그러나 당혹스럽거나 웃음이 나오는 건 다 마찬가지일 것 같다. 이런 반응은 염두에 두었나?
전체적으로는 예상을 했지만, 이걸 이렇게 쓰면 사람들이 재미있어할 거야라는 식으로는 예상하지 못했다. 시나리오를 본다고 시나리오가 다 재미있는건 아니다. 영화의 시나리오는 읽는 사람이 상상을 더해서 읽어야 하는 것처럼, 이것도 시나리오를 쓸 때는 재미있다고 생각하진 못했다.

저예산으로 SF를 만들 생각을 어떻게 했나?
첫 이미지는 친구와 독일 실험영화제에 갔을 때였다. 우주에 집들이 둥둥 떠다니면서 사람들이 신호를 보내는 이미지가 인상적이었다. 영화를 만들 당시에는 피터 잭슨의 <고무 인간의 최후>를 참고했다. 엔딩에서 집이 우주로 날아가는 장면이 있지 않은가? 그 장면 정말 희안했다. 1990년대 단편 영화들이 자취방에서 우울하게 담배 피우는 신들이 많았다. 그게 너무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이 우울했다. 그런 톤이 너무 싫었다. 좀 큰 스케일로 가보고 싶었다. 창밖에 우주만 보이는 식으로 처리하면 되니까, SF를 만들고 싶어졌다. 당연히 SF영화에 대한 동경도 있었다. 할리우드 주류 영화를 좋아하는 취향이다. <에이리언>처럼 잘 만든 대작이 좋다. 스티븐 스필버그도 좋아하고.

디씨인사이드에 바친다는 인사가 나온다. 무슨 의미인가?
실제로 도움을 주진 않았지만, 자료 수집을 하면서 피리 부는 짤방을 그대로 써먹었다. 강영이가 우주에서 눈물 흘리면서 피리를 부는데 창문이 깨진다. 그때 피리 부는 구도가 웃겨서 똑같이 했다. 인용이라고 보면 된다.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그런 식으로 써먹은 게 또 있다. 백수 방에 쓰레기가 쌓여 있는 것도, 디씨에 보면 누가 더 쓰레기 많은 방인가 경쟁하듯이 올린다. 난 직접 올리진 않지만, 몇 달에 한 번씩 날 잡고 밤새도록 살펴본다. 디씨는 집합적 창작력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디씨는 B급 정서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걸 상업적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처음 보았다. 무슨 계기가 있었나?
아니다. 이걸 처음 만들었을 때는 여기까지 올지 몰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실제로 자격증 시험을 준비했다. 포기하고, 뭘 할까 고민을 하다가 인도 여행도 다녀왔다. 돈도 벌고 사회생활을 조금이라도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 회사를 1년 넘게 다니다 때려쳤다. 당시 영화동아리(얄라셩) 졸업생들의 모임이 있었다. 다들 품앗이를 하며 단편을 만들었다. 나도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그때 고시 준비를 하던 진식, 강영 선배와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다들 고시생이니까 방구석에 있는 영화를 만들어보고자 했다. 그러다 계속 이야기가 불어났다. 45분짜리 중편으로 쓰게 되었다. 단순하게 포트폴리오 용으로 생각했다. 독립영화제에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어디서 지원 받을 생각은 못했나?
서류가 너무 복잡해서 포기했다. 미디어액트는 지원했는데 떨어졌다. 일단 2006년부터 2007년까지 30회 정도 찍었다. 그런데 CG에 대한 대책이 없이 찍어서, 편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때 찍었기 때문에 카메라도 HD가 아니라 DV로 찍었다. 계획 없이 살다가 홍보 영상 일을 2년 이상 했다. 후반 작업비를 벌기 위해 시작했는데, 오히려 일에 말려서 그 일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올해 초에 때려치고, 결국 <불청객>을 빨리 편집하기로 마음먹었다. 부천국제영화제를 두 달 남겨놓고 부랴부랴 서둘렀다. 거기서 상영하기 위해 무조건 마치는 걸로 계획을 세웠다.

촬영에는 돈이 얼마 안 들었겠지만, 미니어처나 특수효과는 어떻게 해결을 했나?
촬영에는 500만원이 들었다. 후반 작업에 1,200만 원 들었다. 밥값 생각하면 대충 2000만 원 들었다. 어디서 공식적인 지원을 받은 건 없다. 부모님께 몇백만 원 빌리기도 하고, 아는 분들께 개인적인 후원을 받았다. 미니어처는 올해 들어와서 완성을 했다. 국회의사당이 나오는 건 어린이 조립세트로 했다. 그걸 사다가 잘 다듬어서 썼다. 전부 자취방에서 찍은 건 아니고, 스튜디오도 빌려서 우주 날아가는 신을 찍었다.

CG 작업을 위해서는 사전에 준비가 필요했을 텐데, 그것에 대한 지식이 있었나?
창문만 블루스크린 작업을 한 후 일단 찍었다. 창문이 깨지는 신이 있어서, 슈가 글래스를 직접 만들었다. 업체에 물어보니 그만한 창문 사이즈는 150만 원을 달라고 하더라. 합성수지로 하면 100만 원쯤 나온다. 돈이 너무 많이 드니 계속 연구해서 설탕으로 만들었다. 작은 사이즈만 설탕으로 만들 수도 있지만, 자취방의 창문은 아주 크다. 이걸 만들어내는 공정을 개발하는 데 여러 달이 걸렸다. 그리고 이 창문이 깨지는 신은 한 번밖에 못 찍으니까 카메라 3 대를 배치해서 찍었다. 
 


우주의 악당 포인트맨 캐릭터가 재미있다.
삼성카드 광고에서 포인트 쌓으라고 나오는 파란 인간이 있는데, 그걸 그대로 카피했다. 포인트맨을 만들어내는 데도 꽤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로스트 하이웨이>의 악당을 떠올리고 작업을 했는데, 그런 룩이 나오질 않았다. 우린 동양 사람이다 보니. 하루 찍고 포기한 다음, <엑스맨>에 나오는 시꺼먼 돌연변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렇게 검은 룩을 만들기 위해서 고민을 했다. 어차피 블루스크린을 쓰니까 파란 옷을 입고 찍은 다음에 빼면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내복을 사다가 파란 물감을 들이고 파란 수영모자를 쓰고, 얼굴과 손에도 물감을 칠하고 연기를 했다. 집에서 홍보 영상을 찍다 보니, 장비가 있어서 집에서도 녹음을 했다. 포인트맨을 직접 연기했지만 변조를 해서 내 목소리처럼 들리지 않는다.

영화의 특수효과나 촬영에 대해 누구에게 배운 게 아니다!
이것저것 많이 참고했다. <에이리언>의 서플먼트가 도움이 되었다. 새끼 에이리언이 덮치는 신이 있는데, 그걸 교묘하게 잘라서 찍어놓고 이어붙인 거더라. 머리를 잘 써서 찍은 장면이다. 그런 걸 배워서 써먹었다.

와, 스스로 연마를 했다니 놀랍다.
영화에 독수리 성운이 나오는데, 후배 화가가 포토샵으로 합성해주었다. 특수효과는 대체로 직접 했다. 강풍기를 빌려온다든지 해서.

그렇다면 CG작업만 업체에 맡긴 건가?
업체가 너무 비싸서 황수연 감독이 맡아주셨다. CG 전공이 아닌데, 이런 작업을 잘하는 걸로 소문난 분이다. 그분도 엄청나게 고생하고 개인 일정 희생해가면서 저렴한 가격에 일해주셨다.

포인트맨에 의하면, 고시생들을 지구 공간만 차지하는 놈들이라고 비난한다. 잉여인간, 루저라고 비하한다. 웃기면서도 자학적이었다.
맞다. 자학적인 면이 있다. 세상이 개판이니 시니컬한 면이 있다. 개판인데 바뀔 것 같지는 않고. 신자유주의를 다들 어떻게 막을까 고민하는데, 얼마 전 시사회에 온 분이 못 막을 수 있다고 하더라. 우리는 밀려서 다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다음 세대는 더 노예가 될 것이다. 그분 말대로 그렇게 될 수도 있는 것 같다.

엔딩에서 진식이를 찾으러 다니는 모습을 보면, 그럼에도 희망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적으로는 희망적이고 싶다. 진식을 찾아 나선다는 대사는 사실 말도 안 된다. 그냥 좋게 말하면 진식에 담긴 뜻, 정신을 배우고 계승한다는 의미였다. 음악감독님은 진식이 포인트맨이 되었을 거라 하더라. 포인트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잠시 진식이 흔들린다. 블랙홀로 들려가면서 포인트맨이 웃는 걸 보면 죽은 건 아니다. 같이 가서 회유를 당했을 수도 있을 거다. 아무리 좋은 뜻을 갖고 있어도, 선하고 바른 길을 가려고 해도, 권력이나 영생 같은 것에 회유 당하지 않을 방법이 없다. 그래서 진식이 회유 당하고 살아 있을 테니 <불청객 2>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본인이 직접 연기한 응일이 포인트맨에게 공격 당한 후, 영어로만 말하는 게 정말 웃겼다.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에서 따온 거다. 거기서 김상경이 영어로 말하는 걸 보고 쓴 거다.

김진식, 원강영 씨는 실명 그대로 연기를 한다. 두 분들의 반응도 재미있을 것 같다.
둘 다 시험 공부하는 분들이라 단편이라고 했을 때는 그래, 하자고 했다. 갈수록 회차가 늘어나니 짜증이 나고 대충하게 되었다. 다행히 두 분 다 감이 좋은 편이었다. 원활한 촬영을 위해 세부적인 디테일을 전부 요구하면 배우들은 싫겠지만, 전문 배우가 아니다 보니 그걸 편하게 받아주셨다. 연기가 뒤죽박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감이 좋았다. 영화 속의 자취방은 진식 형이 살았던 곳이다. 

웜홀 이야기가 나온다. 상식적으로 가능한 건가? 물론 집이 날아가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지만.
블랙홀은 엄청나게 발견을 많이 했다. 현재 화이트홀과 웜홀은 개념만 있다고 보시면 된다. 웜홀은 쉽게 생각하면 지름길이다. 그 부분은 <콘택트>에서 차용했다.

영화 보면 물리학 전공이냐고 물어볼 것 같다.
생물학을 공부했다. 처음 학교 들어가서는 물리학도 하고 싶었다. 과학도를 꿈꾸었다. 우주에 대한 관심은 많았다. 스티븐 호킹 책도 어릴 때 봤다.

에셔나 마그리트가 고맙다고 한 이유는 뭔가?
웃기려고 한 거다. 기획을 할 때는 그들의 그림도 참고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삼각형은 로저 펜로즈가 고안해낸 디자인이다.

그 삼각형은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모노리스 같았다.
맞다. 포인트맨의 멍멍이 역할이다.

영화가 차용이나 인용으로 가득 차 있다. 키치 같은 느낌도 나고.
동아리 모임을 하면서 다큐멘터리를 찍는 안건형 선배의 영향을 받았다. 영화의 역사는 어차피 모방과 변주다. 선수들은 그걸 빌려온다고 말한다. 그걸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해주셨다. 그러면서 새로운 게 나오는 거라 생각했다.

전부 힘들었겠지만, 제일 힘든 건 무엇이었나?
편집이 제일 힘들었다. 돈이 없으니 전부 혼자 했는데, 아무래도 편집 체질이 아닌 것 같다. 첫 완성본에서 지루한 부분이 없이 휙 넘어갈 수 있게 10분가량을 삭제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현재 충무로에 입성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독립영화 진영도 아니다. 앞으로 어떤 길을 걷고 싶나?
당연히 직업으로서 영화감독을 하고 싶다. 먹고살려면 상업영화 감독이 돼야 할 것 같다. 내가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무협물이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얘기를 들어보니 그걸로는 데뷔가 어렵다고 하더라. 그래서 저예산 상업영화로 학원물을 생각 중이다. 여자 중고등학생들이 나와서 동아리 활동을 하는 영화다. <불청객>의 코미디 코드도 넣을 생각이다. 유치하면서 웃긴 걸 하려면 나이 대는 중학생이 더 맞다는 생각도 든다.

중학생 연기 지도는 정말 쉽지 않다. 혹시 교회 오빠 스타일인가?
아니다. 중학생과 아무 연관도 없지만 이상하게 그런 데는 자신이 있다. 이과 기질이 강해서 연기 설명할 때도 기계적으로 설명한다. 연기는 몸으로 만들어내는 환상이다. <밀양>처럼 진짜 내면 연기가 필요한 영화가 있고, 그런 게 아닐 바에는 아예 기계적인 연기로 커버할 수 있는 영역이 있는 것 같다.

그 정도 설명으로는 상상이 안 된다.
영화판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들으면서 느낀 인정투쟁을 그리고 싶다. 단지 우화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러면 망하는 거고. 최상의 리얼리티를 살리면서도 이것이 어떤 것의 상징이 되기를 희망한다. 영화바닥 사람들의 지저분한 행태를 담고 싶다. 꼭 탓할 수는 없고, 이해는 가지만 웃기는 이야기들. 그런 것들을 학원물에 녹여 내고 싶은 거다. 당돌한 학생이 교장 선생님의 관행을 무시하고 꿈을 펼쳐나가는 이야기다. 꿈과 현실이 충돌한다.

코미디 코드는 계속 잘 살렸으면 좋겠다.
탄력도 받았고, 블랙 코미디적인 요소를 사람들이 이해해주니, 좀 더 대중적으로 순화해서 이식을 시키면 어떨까 한다. <하이킥>은 혼자 봐도 깔깔 웃을 정도로 재밌다. <불청객>은 그렇지는 않다. 여러 명이 보면서 누가 웃어야, 웃는 부분이 맞구나 하며 같이 웃게 된다. 웃음의 후프가 없어서 그렇다. 난 예술영화보다는 장인의 영화가 좋다. <에이리언>이나 <터미네이터>가 모두 장인의 영화다. 그러면서 여운이 남는 영화. SO WHAT 무비를 원한다. 그런데 하며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 재미있는데 다 까먹는 영화가 아니라, 여운이나 울림이 있어야 한다. 그런 영화를 만들면 좋겠다.

다시 SF에 도전하고 싶나?
장기적으로는 만들고 싶다. 다들 우리나라에서 SF는 안 된다고 하는데, 장르는 달라도 <괴물>도 잘됐다. 내 나름대로 잘할 수 있는 안이 있다. 지금은 묻어두었다가 할 수 있는 여건이 될 때 하고 싶다.

 

인터뷰_프리미어 전종혁 기자 사진_박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