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터뷰 실패기 ; 단 한 시간만에 그 사람을 모조리 알아내기
기자는 질문하는 기계입니다. 그는 훌륭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지요. 그는 날카로운 질문으로 인터뷰어를 공격해야 하며, 촘촘하게 짠 질문의 그물로 인터뷰어를 낚아올려야 합니다. 그러나 이는 당위이지 현실이 아닙니다. 인터뷰어가 더군다나 김민기 같은 이라면 더욱 그러하지요.
김민기가 누구입니까. 김지하, 전태일과 더불어 저 불의 연대이자 화염기둥인 70년대를 뚫고 지나갔던 사람. 그리고 노래극과 뮤지컬로 80년대와 90년대를 독자적인 스타일로 풍성하게 했던 사람. 지난 30년 동안 자신의 이름의 무게와 자신의 시대의 무게를 나란히 놓고 감히 저울질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당연히 그는 질문하는 기계들, 질문의 그물을 던지는 어부들이 가장 탐을 냈던 인터뷰어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김민기 인터뷰의 역사는 김민기 인터뷰 실패의 역사라고 말해도 좋습니다. 찰나를 빛내던 인터뷰가 없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 빛은 대개 그림자에 삼키기 일쑤였던 것이죠. 단 한 사람이 있으니 중앙일보의 이헌익이라는 분입니다. 제가 짐작컨대는, 그 분은 아주 촘촘하고 넓은 인맥을 가진 분 아닌가 합니다.
지난 9월 17일 오후 3시경 대학로에 자리한 극단 학전 사무실과 인근 맥주집에서 있던 인터뷰도 그 범주를 벗어나기 어려웠습니다. 어리숙하고 서툰 질문엔 짧고 둔탁한 망치 같은 현답을 들려주었고, 선문엔 선답으로 응했습니다.
차돌같이 단단하고, 우물보다 웅숭깊은 인상이었어요. 외마디 질문을 던져본들, 무엇 하나 새로운 사실을 건질 수 없을 터였죠. 타고난 수줍음과 반세기를 깎아온 내성과 오랜 동안 연마한 겸양과 자신을 떠벌이는 일에 도통 자신을 내줄 수 없다는 꼬장꼬장함, 그 안으로 파고들 여지는 없어보였습니다.
뭐랄까요. 온통 사방팔방이 거칠고 가파른 암벽인 산 같았습니다. 공격 루트가 보이지 않는. 아마 현명한 등반 대장이라면 철수를 명하고 베이스 캠프로 돌아갈 것을 결정하지 않았을까.
인터뷰를 녹음한 테이프를 다시 들으면서, 참괴스러웠습니다. 내가 고작 이 것밖에 안 되는 것인가. 하도 무안을 당하다보니, 말은 씹히고 점점 더 말을 더듬게 되고…. 그만 하겠습니다. 집권당 대표부터 창녀까지 인터뷰를 해봤지만 이렇게 낙담한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애시당초 주어진 짧은 시간 안에 그 사람 안으로 파고 들어간다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거나 무모한 일이거나 어리석은 일이거나 그 셋 중에 하나일 것이니.
2. 유명인사 앞에서 까무러치기
여러 유명인사를 만나봤습니다만, 지금껏 가장 가슴 떨리게 만난 사람은 정현종 시인과 유종호 교수였습니다. 대학 시절 저는 열렬한 문학청년이었으니 그분들이 얼마나 크고 높고 깊어 보였겠어요.
제겐 스타, 밤 하늘을 빛으로 적시는 별이었지요, 그야말로. 습작으로 쓴 시들을 들고 그분들을 찾아 뵈었을 때 얼마나 감개무량했던지요. 그분들이 쓴 책들을 모조리 읽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찾아뵙기 전 언제 무슨 용건으로 찾아뵙고싶다며 간곡하고 정중한 편지도 하였지요.
그분들과의 만남은 아주 짧은 것이었어요. 길어야 30분 되었을까. 사실 그분들이 수업을 가르치던 교수였으니 그렇게 미안해하고 영광스러워하고 송구스러워할 필요는 전혀 없었던 것인데 혹시나 그분들의 시간을 뺏는 게 아닐까, 내 보잘 것 없는 습작으로 그분들을 괴롭히는 것은 아닐까... 별 걱정을 다 했답니다.
그분들 앞에 마주섰을 때, 저는 정말 실신 직전이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땅이 꺼져버리고 심장은 멎어버리고 호흡은 더 이상 불가능했습니다. 아, 내가 그렇게 우러르고 동경해마지 않던 그 사람이 여기 내 앞에 있다!
3. 거기서 거기지, 사람이란 게
마치 10대 소녀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팬들을 만나자마자 실신해버리는 것과 비슷한 것이죠!
하지만, 이젠 어느 누굴 만나도 시큰둥합니다. 아니, 지치고 피곤하기까지 합니다. 전 연예인이나 유명인사를 만나는 걸 이젠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젊은 여자 스타들은 더더욱. 그들은 아무런 실체를 갖지 않는, 손에 잡히지 않는 공기 같은 허깨비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난, 여태껏 어떤 여자 연예인이나 영화배우나 가수를 보고서 성욕을 느끼거나 연정을 느끼거나 흠모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부유하는 이미지이지 사람이 아닙니다. 비록 사람의 육체를 지니고, 호흡하고, 웃고 울지만 말입니다. 내게는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란 것이죠.
마치 수단에 사는 어떤 여인이 내게 텅빈 무인 것처럼, 슬로베니아의 발레리나가 내게 무의미인 것처럼, 볼리비아의 전화교환수가 내게 유령이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그러니 심은하가 파혼했다고 해서 내가 눈 한 번 깜짝했겠습니까.
'첼로와 케찹'이란 연극이 요즘 대학로에서 보기 드물게 매진 사태를 일으켰지만 전 아예 취재할 생각도 없었습니다. 거기 나오는 김호정이란 배우를 취재하기가 싫었던 것이죠. 그녀가 로카르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타는 순간, 난 이제 그를 취재할 일이 앞으로 없겠구나 이런 생각을 제일 먼저 했습니다.
스타가 되는 순간부터, 그는 실체가 아닌 허깨비가 됩니다. 그는 거짓말을 늘어놓기 시작하고, 남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게 되고, 자신의 달콤한 이미지를 핥느라 정신이 없게 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민기는 참 예외적인 존재였습니다. 무뚝뚝하고, 시큰둥하고, 불친절했지만 난 그가 정말 진국 같은 사람이란 걸 알아버렸습니다. 자기를 과시하려는 마음이 그에겐 거의 없었습니다. 유명인사로서의 거들먹거림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앞으로 김민기 선생을 다시는 만나는 일이 없게 되기를 바랍니다. 유명인사를 일로서 만난다는 건 정말 피곤한 일입니다. 허깨비를 만나 자기도 허깨비가 되어버리는 것이죠.
유명인사들은자신의 모든 사생활과 비밀을 공중에게 내줍니다. 그에게 정말 그다운 것은 하나도 남지 않게 되지요. 그의 모든 정신과 육체와 사생활은 대중들에게 아작아작 씹어먹힌 뒤이니까요.
그 텅 비어있는 삶!
우리 모두는 감사해야 합니다. 그토록 텅 빈 허깨비 같은 삶을 살지 않는다는 것에 말이죠. 거리를 다녀도 아무도 우리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커피숍에 앉아 있는데 불쑥 누군가 다가와 사인을 요구하지도 않고,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해달라고 졸라대지도 않고, 강연을 해달라고 떼를 쓰지도 않고, 유명해졌다고 시건방 떠냐는 희떠운 얘기를 듣지 않아도 됩니다.
가끔, 때로는 유명 인사가 되면 기분이 어떨까, 이런 되지도 않는 공상을 해보기도 합니다만.
이종도
기자는 질문하는 기계입니다. 그는 훌륭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지요. 그는 날카로운 질문으로 인터뷰어를 공격해야 하며, 촘촘하게 짠 질문의 그물로 인터뷰어를 낚아올려야 합니다. 그러나 이는 당위이지 현실이 아닙니다. 인터뷰어가 더군다나 김민기 같은 이라면 더욱 그러하지요.
김민기가 누구입니까. 김지하, 전태일과 더불어 저 불의 연대이자 화염기둥인 70년대를 뚫고 지나갔던 사람. 그리고 노래극과 뮤지컬로 80년대와 90년대를 독자적인 스타일로 풍성하게 했던 사람. 지난 30년 동안 자신의 이름의 무게와 자신의 시대의 무게를 나란히 놓고 감히 저울질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당연히 그는 질문하는 기계들, 질문의 그물을 던지는 어부들이 가장 탐을 냈던 인터뷰어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김민기 인터뷰의 역사는 김민기 인터뷰 실패의 역사라고 말해도 좋습니다. 찰나를 빛내던 인터뷰가 없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 빛은 대개 그림자에 삼키기 일쑤였던 것이죠. 단 한 사람이 있으니 중앙일보의 이헌익이라는 분입니다. 제가 짐작컨대는, 그 분은 아주 촘촘하고 넓은 인맥을 가진 분 아닌가 합니다.
지난 9월 17일 오후 3시경 대학로에 자리한 극단 학전 사무실과 인근 맥주집에서 있던 인터뷰도 그 범주를 벗어나기 어려웠습니다. 어리숙하고 서툰 질문엔 짧고 둔탁한 망치 같은 현답을 들려주었고, 선문엔 선답으로 응했습니다.
차돌같이 단단하고, 우물보다 웅숭깊은 인상이었어요. 외마디 질문을 던져본들, 무엇 하나 새로운 사실을 건질 수 없을 터였죠. 타고난 수줍음과 반세기를 깎아온 내성과 오랜 동안 연마한 겸양과 자신을 떠벌이는 일에 도통 자신을 내줄 수 없다는 꼬장꼬장함, 그 안으로 파고들 여지는 없어보였습니다.
뭐랄까요. 온통 사방팔방이 거칠고 가파른 암벽인 산 같았습니다. 공격 루트가 보이지 않는. 아마 현명한 등반 대장이라면 철수를 명하고 베이스 캠프로 돌아갈 것을 결정하지 않았을까.
인터뷰를 녹음한 테이프를 다시 들으면서, 참괴스러웠습니다. 내가 고작 이 것밖에 안 되는 것인가. 하도 무안을 당하다보니, 말은 씹히고 점점 더 말을 더듬게 되고…. 그만 하겠습니다. 집권당 대표부터 창녀까지 인터뷰를 해봤지만 이렇게 낙담한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애시당초 주어진 짧은 시간 안에 그 사람 안으로 파고 들어간다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거나 무모한 일이거나 어리석은 일이거나 그 셋 중에 하나일 것이니.
2. 유명인사 앞에서 까무러치기
여러 유명인사를 만나봤습니다만, 지금껏 가장 가슴 떨리게 만난 사람은 정현종 시인과 유종호 교수였습니다. 대학 시절 저는 열렬한 문학청년이었으니 그분들이 얼마나 크고 높고 깊어 보였겠어요.
제겐 스타, 밤 하늘을 빛으로 적시는 별이었지요, 그야말로. 습작으로 쓴 시들을 들고 그분들을 찾아 뵈었을 때 얼마나 감개무량했던지요. 그분들이 쓴 책들을 모조리 읽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찾아뵙기 전 언제 무슨 용건으로 찾아뵙고싶다며 간곡하고 정중한 편지도 하였지요.
그분들과의 만남은 아주 짧은 것이었어요. 길어야 30분 되었을까. 사실 그분들이 수업을 가르치던 교수였으니 그렇게 미안해하고 영광스러워하고 송구스러워할 필요는 전혀 없었던 것인데 혹시나 그분들의 시간을 뺏는 게 아닐까, 내 보잘 것 없는 습작으로 그분들을 괴롭히는 것은 아닐까... 별 걱정을 다 했답니다.
그분들 앞에 마주섰을 때, 저는 정말 실신 직전이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땅이 꺼져버리고 심장은 멎어버리고 호흡은 더 이상 불가능했습니다. 아, 내가 그렇게 우러르고 동경해마지 않던 그 사람이 여기 내 앞에 있다!
3. 거기서 거기지, 사람이란 게
마치 10대 소녀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팬들을 만나자마자 실신해버리는 것과 비슷한 것이죠!
하지만, 이젠 어느 누굴 만나도 시큰둥합니다. 아니, 지치고 피곤하기까지 합니다. 전 연예인이나 유명인사를 만나는 걸 이젠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젊은 여자 스타들은 더더욱. 그들은 아무런 실체를 갖지 않는, 손에 잡히지 않는 공기 같은 허깨비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난, 여태껏 어떤 여자 연예인이나 영화배우나 가수를 보고서 성욕을 느끼거나 연정을 느끼거나 흠모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부유하는 이미지이지 사람이 아닙니다. 비록 사람의 육체를 지니고, 호흡하고, 웃고 울지만 말입니다. 내게는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란 것이죠.
마치 수단에 사는 어떤 여인이 내게 텅빈 무인 것처럼, 슬로베니아의 발레리나가 내게 무의미인 것처럼, 볼리비아의 전화교환수가 내게 유령이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그러니 심은하가 파혼했다고 해서 내가 눈 한 번 깜짝했겠습니까.
'첼로와 케찹'이란 연극이 요즘 대학로에서 보기 드물게 매진 사태를 일으켰지만 전 아예 취재할 생각도 없었습니다. 거기 나오는 김호정이란 배우를 취재하기가 싫었던 것이죠. 그녀가 로카르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타는 순간, 난 이제 그를 취재할 일이 앞으로 없겠구나 이런 생각을 제일 먼저 했습니다.
스타가 되는 순간부터, 그는 실체가 아닌 허깨비가 됩니다. 그는 거짓말을 늘어놓기 시작하고, 남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게 되고, 자신의 달콤한 이미지를 핥느라 정신이 없게 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민기는 참 예외적인 존재였습니다. 무뚝뚝하고, 시큰둥하고, 불친절했지만 난 그가 정말 진국 같은 사람이란 걸 알아버렸습니다. 자기를 과시하려는 마음이 그에겐 거의 없었습니다. 유명인사로서의 거들먹거림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앞으로 김민기 선생을 다시는 만나는 일이 없게 되기를 바랍니다. 유명인사를 일로서 만난다는 건 정말 피곤한 일입니다. 허깨비를 만나 자기도 허깨비가 되어버리는 것이죠.
유명인사들은자신의 모든 사생활과 비밀을 공중에게 내줍니다. 그에게 정말 그다운 것은 하나도 남지 않게 되지요. 그의 모든 정신과 육체와 사생활은 대중들에게 아작아작 씹어먹힌 뒤이니까요.
그 텅 비어있는 삶!
우리 모두는 감사해야 합니다. 그토록 텅 빈 허깨비 같은 삶을 살지 않는다는 것에 말이죠. 거리를 다녀도 아무도 우리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커피숍에 앉아 있는데 불쑥 누군가 다가와 사인을 요구하지도 않고,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해달라고 졸라대지도 않고, 강연을 해달라고 떼를 쓰지도 않고, 유명해졌다고 시건방 떠냐는 희떠운 얘기를 듣지 않아도 됩니다.
가끔, 때로는 유명 인사가 되면 기분이 어떨까, 이런 되지도 않는 공상을 해보기도 합니다만.
이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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