القاعدة(al-qāʿidah). 오사마 빈 라덴을 수장으로 하는 이슬람교 수니파의 국제 테러리즘 네트워크. 그렇지만 하는 행동의 과격성을 보면 와하브파에 더 닮았다. 실제로 빈 라덴을 필두로 주요 멤버의 대부분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와하브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다.
이름인 "알 카에다"에서 "알"은 정관사를 의미하며 "카에다"는 아랍어로 앉다의 의미를 가진 동사 "카아다"에서 파생된 단어로 "기반, 근본"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알 카에다는 영어로 쓰면 "The Base", 우리 말로는 "기반"이나 "근본"정도로 번역이 가능할 것이다.
지부는 이라크, 북아프리카, 차드, 수단 등 다양하게 퍼져 다국적 테러리스트들이 서방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인터넷을 이용해 폭탄제조법, 검문통과법 등을 한큐에 뚝딱 배우고 있다.
하는 짓이 워낙에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의 테러집단 GLA와 닮아서 리얼 GLA로 불리기도 한다. 애초에 GLA의 모티브도 이 작자들이라고 봐도 된다.
2 조직사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당시, 미국은 돌풍작전(Operation Cyclone)이라는 이름으로 소련에 저항하는 아프간 내 무자헤딘에게 ISI(파키스탄 정보부, Directorate for Inter-Services Intelligence) 자금과 무기지원을 하고 있었다. 이슬람국가들도 이에 동참하였는데, 사우디아라비아는 매년 600만 달러를 지원하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ISI의 집중적인 지원을 받은 단체가 마크탑 알-키타맛(MAK,Maktab al-Khidamat)인데, 이 단체는 무슬림 형제단 단원이었던 압둘라 아잠(Abdullah Azzam)과 오사마 빈 라덴에 의하여 창설되었다. 이 단체는 막대한 자금을 이용해 무기를 공급하고 해외에서 오는 무자헤딘들을 훈련시켰다.
전쟁 이후, MAK는 막대한 자금력을 이용하여 많은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들을 끌어들었으며 미국으로부터 수백만 달러씩 지원받던 이슬람 무장단체인 '헤즈비 알 이슬라미(Hezb-e Islami)'가 1990년대 초부터 빈라덴과 손을 잡기 시작하면서 세력은 급속도로 커졌다.
압둘라 아잠은 MAK가 본격적인 이슬람 무장단체로 발돋움하길 원했고, 빈 라덴은 배후에서 무장단체들의 자금줄을 맡는 네트워크를 계속 유지하는것을 원했다. 1988년 중반 이후 갈등은 극에 이르렀는데,이에 빈라덴은 우선 자기 세력을 가지고 알카에다를 창설한다. 1989년 압둘라 아잠이 암살된 이후 MAK는 알카에다에 흡수된다.
미국과 긴밀한 관계였던 것으로 보이는 알 카에다가 언제부터 반미, 반유태주의를 표방했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대체로 걸프전 이후로 보는게 지배적이다. 걸프전 이후 미군이 두 성지(메카,메디나)의 수호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 진군하자 빈 라덴은 격노했고, 반미주의 노선을 확립함과 동시에 테러단체로서의 변환도 꾀한다. 아니 그럼 대체 내분은 왜 겪은거야
90년대 이후 알 카에다는 미국을 겨냥한 테러사건을 잇달아 일으켰다. 1997년 케냐와 탄자니아의 미국 대사관에 폭탄 테러를 가했으며(이 폭탄테러로 대사관 직원, 그 안에 들어가 있던 민간인까지 합쳐 500명이 그자리에서 즉사했다), 빌 클린턴 정부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알 카에다의 거점으로 간주되던 아프가니스탄의 훈련기지와 수단의 제약 공장에 토마호크 미사일 공격을 가함으로써 미국과 알 카에다의 갈등은 극단에 이르게 된다. 다만 수단의 제약공장과 알카에다 간에 실제로 커넥션이 있었는지는 논란이 있으며 이 제약공장이 남수단 쪽의 거의 유일한 제약공장이라서 되려 남수단 아이들에게 필요한 백신 보급을 끊어버렸다는 비난이 거셌다.게다가 당시 터진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성추문을 덮어버릴 전투라는 음모론까지 나오면서 이걸 토대로 왝 더 독이란 영화까지 나와버렸다.
2000년에는 자폭 보트를 이용해 예멘에 주둔한 미 군함의 오른쪽 선체에 구멍을 내고 미 해군 17명을 죽게 하고 30명을 부상시키는 등[1] 알 카에다의 테러는 과격을 치달았다(여담이지만 군함의 이름은 cole(양배추)호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알 카에다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진 않았으나 2001년 9월 11일, 보통 9.11 테러라고 부르는, 4대의 여객기를 납치하여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펜타곤에 박아버리는 테러를 일으킴으로써 알 카에다의 이름은 전 세계인들에게 각인되었다.
조지 워커 부시 당시 미 대통령은 알 카에다를 겨냥하여, 전 세계 모든 테러를 근절하겠다는 소위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알 카에다의 본거지로 알려진 아프간을 공격한데 이어, 알 카에다와 후세인이 연관이 있다는 억지를 부리면서 이라크를 침공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우습게도, 이 사태는 오히려 부시 대통령이 다음 대선에서까지 당선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라크전은 알 카에다에게 오히려 호기를 만들어주어 다수의 테러리스트들이 이라크에 잠입하여 게릴라전과 테러를 일으키게 된다. 부시 대통령이 말한대로 테러가 근절되기는 커녕 오히려 테러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버렸으니 아이러니한 일.
2009년 10월, 이들은 리얼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를 실현하려고 중국의 위구르 사태에 개입하겠다고 하면서 세계를 긴장시켰다. 이어서 2010년 4월 10일, 이들은 6월 남아공 월드컵에 테러를 가하겠다고 경고했다. 목표는 6월 12일 열린 C조의 영국-미국 경기. D조에 속한 독일과 프랑스도 테러목표물로 언급되었다.
"경기장에 관중이 가득 찬 가운데 미국-영국전이 생중계되는 도중 폭발음이 진동하고 경기장이 아수라장이 되면서 수십, 수백 명의 시신이 뒹굴게 되면 얼마나 놀라운 사건이 될 것인가"
하지만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은 테러없이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그러던 2011년 5월 2일, 끈질긴 추적 끝에 파키스탄에서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군과의 교전 중 사살당하면서 리더를 상실하였다. 빈 라덴 사후 알 카에다를 이끌 것으로 추정되는 인사들로는 조직 내 2인자인 알 자와히리와 뛰어난 화술로 '설교 전문가'로 자리매김한 안와르 알 올라키가 유력 후보로 꼽히고 있다.
그리고 아이만 알 자와리히가 공식적으로 알 카에다를 이어받았다. [2]
그리고 소말리아 지역의 책임자이면서 알 샤바브 민병대의 최고 지휘자인 파줄 압둘라 모하메드(Fazul Abdullah Mohammed)가 소말리아에서 사살되었다.
현지 시간으로 2011년 6월 8일에 알리 데레(Ali Dere)와 함께 4만 달러와 의약품, 랩톱, 휴대전화와 여권을 차에 싣고 아프구예(Afgooye) 부근을 지나던 도중에 소말리아군의 검문소에서 정지하지 않자, 소말리아군이 즉시 사격을 가해 두 사람 모두 사망했다고 한다. 소말리아와 미국 관리들이 죽음을 확인했다.
빈 라덴 이후 2인자로 부상한 아티야 압드 알-라흐만(Atiya Abd Al-Rahman)이 2011년 8월 22일 파키스탄에서 무인기 공습을 받고 사살당했다. 파키스탄 내에 있는 알카에다는 괴멸적인 타격을 받았으며 세력이 약화되고 있는것으로 추정된다.
2011년 9월 30일 안와르 알 올라키가 예멘에서 CIA가 무인기를 대거 동원한 폭격을 받고 사살되었다. 알 올라키의 영향력을 생각해 보면 이 작전의 성공은 빈 라덴의 사살에 이어 알 카에다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데 큰 효과가 있을것으로 여겨진다.
나이지리아에서는 알카에다와 연계된 단체인 보코 하람(Boko Haram)이 테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북부 나이지리아에서 활동하며 니제르를 비롯한 서아프리카에 훈련캠프를 차리고 무기를 공급받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2011년 8월 26일 유엔본부를 테러해 악명을 떨쳤으며 같은 해 12월 25일 교회를 공격했다. 계속된 공격에 나이지리아는 2012년 1월 1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3 아랍 민주화 혁명과 알 카에다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으로 혁명 열기가 뜨거운 아랍권으로 알 카에다가 다시 세력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국가가 모든 기능이 정지되고 혼란이 일어나면서 알 카에다가 사회에 침입할 기회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냐는 것.
하지만 시민 혁명이 성공하면 오히려 알 카에다에게 큰 타격이 된다는 분석도 있다. 알 카에다에 들어오는 자들은 억압된 사회에 분노해 들어오는 이들이 많은데 튀니지 혁명으로 테러가 아니더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인식이 아랍 주민들에게 퍼지기 시작했다는 것. 시민 운동으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면 굳이 테러 단체에 들어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알 카에다는 원리주의 집단이라 민주화를 이슬람과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에 민주화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대놓고 테러는 몰라도 민주화는 안된다#고 성명을 발표할 정도. 어찌 보면 알 카에다에게는 미군과의 전투보다 더 큰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본인들은 리비아 민주화 운동은 전폭 지원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말과는 달리 많은 것을 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시할 수는 없는것이, '리비아 이슬람 전사단'같은 알카에다와 연계된 단체가 혁명군으로 참전하기도 했으며, 유출된 무기들이 다량으로 예멘 내 알카에다로 흘러들어간 것이 확인되어 리비아에서 알카에다가 개입한것은 기정사실이다.
예멘에서는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 지부(AQAP)가 혼란을 틈타 예멘 내 무자헤딘 세력과 결합하여 샤리아의 군대(Ansar Al-Sharia)라는 이름으로 남부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소수지만 장갑차나 탱크같은 기갑전력도 확보한것으로 보이며 살레의 정부군이나 민주화세력을 구분하지 않고 다 공격하고 있다. CIA가 드론공격으로 견제하고 있지만 이들을 막기엔 역부족인것이 현실.
시리아 민주화 운동을 돕기 위해 혼란 지역에 알카에다 분점 차리기 이라크에서 시리아로 병력을 이동 중이라고 한다.(..) 망했어요
3.1 알 카에다는 실존하는가?
과연 조직적인 실체가 존재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다. 실제로 반미 과격 테러리스트들의 중소조직들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형태라고 보는게 일반적인 이슬람 연구가들의 시각이다. 일각에선 CIA가 반미 과격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조직들을 데이터화한 데이터베이스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하고 있지만 오사마 빈 라덴의 명백한 존재 때문에 이러한 주장은 일반적이지 않다.
가장 일반적인 설명은, 원래는 각 지역의 테러조직이나 반군들이 알 카에다와는 별도로 독립적으로 존재해 왔으며, 오사마 빈 라덴이 이들 조직들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새로운 방향성을 설정하여 만들어진 것이 국제적 테러조직인 알 카에다라는 것이다. 람캄행? 이 새로운 방향성이란 바로 미국을 공격하는 것이다. 각 지역의 테러조직이나 반군들은 당연히 자기 나라 정부와 맞서 싸우는 것이 목표였는데, 오사마 빈 라덴은 이들 지역 정부는 미국의 괴뢰이므로 이들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먼저 미국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미국에 대한 테러'라는 새로운 공통의 목표를 부여하여 이들 지역 테러조직들을 하나로 묶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알 카에다를 하나로 묶어주는 오사마 빈 라덴에 맞먹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가 없다면 금방 연대가 붕괴되고 각자 자기 지역 일에만 신경쓰는 점조직들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3]
4 이야기거리
주로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인터넷 상에 자신들이 그 사건을 일으켰다는 식으로 성명서를 발표하는게 일반적인 패턴이다. 문제는 아랍권의 대표적 뉴스 채널인 알 자지라를 통해서 이런 발표를 하는 탓에 서구에선 알 자지라가 알 카에다의 선전방송국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초거대 입자가속기에 근무하던 과학자중에 알 카에다 일원이 발견되었다. 하필이면 입자가속기라 하프 라이프를 생각한 오덕이 적지 않았던 듯. 그러나 그 과학자는 가속기에 대한 테러보단 공격 시설이 될만한 프랑스 핵 시설들의 정보를 내보내는게 임무였다.
테러 조직 중에서도 이름있는 조직이지만, 이들마저도 테러와 암살 때문에 도저히 살지 못하는 곳이 있었으니….
그러나 최근에는 급진적 이슬람 단체 알 샤바브가 알 카에다와 연계하여 소말리아의 알 카에다 테러단체로 활동중이다.[4] 7천명 규모로 정부군, UN군과 전투중이며 해적산업에도 관련이 있으며 우간다에서 연쇄테러를 일으키고 모가디슈 근처에서 군 퍼레이드까지 펼쳤다. #
알 샤바브는 2011년 동아프리카 대기근 사태에서 구호단체들을 '서구제국주의의 첨병'이라고 간주하여 쫒아내는 병크를 저질렀고, 결국 그들이 점령중인 소말리아 남부지역은 최악의 식량부족을 맞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목숨을 걸고 탈출하는 일이 빚어졌다. 이는 2012년에도 현재진행중.
참고로 두목 되시는 오사마 빈 라덴 이 양반은 정작 자식들한테 절대 알 카에다에 가입하지 말고 서방대학에서 공부,졸업후 직장을 얻고 아내(남편)얻고 잘 살아라.라 고 유언을 남겼다.(...)
이들이 만드는 선전물로 Inspire 이라는 영문잡지가 있다. 이곳에는 사제폭탄을 만드는 방법이 상세하게 나와있고 미국 내에 자생적 테러리스트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테러리스트들은 알카에다와 연관이 없으므로 추적하여 잡기도 힘들기 때문에, 미 정보당국의 새로운 골칫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퓨 리서치 센터의 2012년 조사를 보면 중동 사람들도 알카에다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다고 한다. "Unfavorable"이라 답변한 비율이 이집트에선 71%, 터키에선 73%, 레바논에서는 98%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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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콜호 자살폭탄테러 항목 참조
[2] 알 자와히리는 아잠과의 내분에서 빈 라덴의 편을 들은 심복이며, 이집트에서 지하 무장단체를 이끌며 무바라크에 대항하였다. 알 자와히리는 수니파 극단주의자인만큼 대외적으로는 이란을 비난하였지만, 무바라크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이란과 협력을 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알 자와히리에 반발을 들고 있는 알 카에다 세력도 있기는 있다.
[3] 일각에서는 이런 점 때문에 오사마 빈 라덴이 테러를 하지 않고 사업을 했다면 유명한 기업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도 한다. 당연히 실제로도 수많은 기업을 거느리고 알 카에다의 돈줄을 충당했다. 실제 빈 라덴은 사우디의 재벌 가문 출신으로 그의 형제들은 지금도 사우디에서 중장비와 유통사업 등을 하고 있다.
[4] 알 카에다의 조직이 대체로 그렇듯이, 이는 알 카에다가 소말리아에 진출했다기보다는 기존의 이슬람 군사조직이 알 카에다와 연계한 것이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