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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동

가/ㅏ 2012. 8. 13. 21:33 Posted by 로드365


한국의 전(前) 씨름선수 & 전(前) 방송인[2]. 개그맨 출신이나 2000년대부터 MC로 전업하였다.


1970년 6월 11일 경상남도 진양군(2011년 현재 진주시에 편입) 이반성면 길성리 평동부락에서 출생했다.[3] 학력은 대한체육과학대학교(現 용인대학교) 격기지도학 중퇴.


유재석과 함께 '유강 체제'라고 불릴 정도로 2000년대 중후반을 대표하는 인기 MC였다. 



3.1 데뷔와 초기 활동 


은퇴 후 이경규와 인연이 닿아 개그맨으로 전향, 1993년 MBC 특채 개그맨으로 데뷔한다. 이경규의 증언에 따르면 씨름하던 강호동을 연예계로 데려오려고 찾아갔을 때, 강호동은 계속 안 된다고 사양했지만 막상 자기 집에 불러놓으니 자기 집인 듯이 편하게 자고 갔다고...... 하여튼 이경규의 큰 도움으로 강호동은 방송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개그 스타일에서 한국식 만담과 일본식 만자이에 큰 영향을 받은 이경규로선 보케와 츳코미를 동시에 소화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강호동이 탐나는 인재였고 "네가 실패하면 나도 방송 접는다."[4]는 말을 하며 강호동에게 개그맨 데뷔를 도왔다.


강호동의 개그맨 데뷔는 씨름선수가 연예계에 데뷔하는 것은 한국방송사상 최초였기에 큰 주목을 받았고 특채선정 시비도 유야무야 지나갔다. 스포츠 선수 출신이라는 점과 당시 방송가를 주름잡고 있던 이경규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무명생활 없이 스타덤에 오른 강호동은 이경규가 제안한 역인 "행님아~"로 대표되는 되는 호동이 역으로 방송가에 정착하는 데 성공한다.


이때, 강호동을 밀어주는 것이 데뷔하고 곧바로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고정 게스트/서브 MC로 활약하고 고정 코너를 한두 개씩 맡을 정도였다. 지금이야 반병신인 일밤이지만 당시에는 일요일 예능의 최강자였는데, 주역 코너를 단숨에 몇개씩 푹푹 꽂아줬으니 보통 밀어준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경규의 전폭적인 지원은 도가 지나친 수준이었다. 신인에 대한 푸쉬가 지나치자 함께 콩트를 하던 이영자는 "이런 식으로 할 거면 차라리 날 잘라라"라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했으나 이경규의 영향력으로 인해 역으로 이영자가 잘려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 강호동은 이경규 없이는 아무것도 못한다는 인식이 박히게 되었고, 결국 이경규와 강호동이 결별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물론 방송상 그렇다는 것이고 현재까지도 이경규에 대해서 강호동은 각별한 감정을 지니고 있다고 자주 술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