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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 보면 삶의 내러티브가 참 다양하구나 새삼 느낀다.
신세대는 확실히 풀어나가는 내러티브가 새롭다.
발견하는 맛 새록새록 이다.
이런 발견 덕에 세상살이를 재미있게 견딘다.

90년대 끝무렵에 대학에 들어갔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세기말 학번'이라고 했다. 당시 내가 있던 대학의 총학생회은 이른바 '비(운동)권'이었고, 단과대 학생회는 NL(민족자주)이었다. 별로 개의치 않았다. 새터(신입생수련회)에서 단대학생회가 주는 가방을 받았다. '통일'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었고 보라색과 회색이 있었는데, 나는 바라던 회색 가방을 받아서 내심 기뻤다. 학생회는 신입생들에게 IMF를 주제로 촌극을 만들라고 했다. 우리는 각 과/반별로 모여 촌극을 준비했고, 한국이가 대학 들어가서 공부 안 하고 놀다가 결국 F 학점을 받지만(I am F!=IMF),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열심히 공부해 A로 올라선다는 진부한 스토리의 우리 과/반 촌극은 전체 2위를 차지했다. 그게 다였다.

우리네 동기들은 세기말의 데카당스보다는 춘삼월 소주의 데카당스에 빠져 있었고, IMF의 우울함보다는 매년 4월 신입생들에게 찾아오는--대학생들이 4월병이라 부르는--존재론적 우울증에 침윤되어 있었다. 성적性的 문제보다는 성적成績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고. 그게 다였다.

의식화 교육이나 인식론적 충격 같은 건, 단언하건데 없었다.

맑스에 대한 논의, 내지 집착이
언제까지 대학 캠퍼스를 특징짓는 하나의
강한 열기로 남아 있을지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이것은 분명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 것이고
나는 이 시대 학생들이 하는 고민과 방황은
맑스가 잊혀지는 시대가 되어도 후배 학생들에게
기억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중고교 시절에 보수적인 교육, 특히 반공 이데올로기나
발전 이데올로기에 찌든 교육을 받아온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하여 1,2년 동안 열성적으로
'맑스 학습'을 하는 것을 바람직하게 생각한다.
요즘처럼 관심의 폭이 좁고 쉽게 싫증을 내며 사고의
호흡이 짧은 대학생들이라면 '맑스 읽기'는
분명 그들의 사고의 폭을 넓히는 데 크게 도움이 되는
책 읽기 중 하나이다. 젊은이들의 외로움에 지친 모습들,
지성적이기를 포기한, '휴거설'을 퍼뜨리고 국수주의적
전통부활을 외치는 모습이 캠퍼스에 늘어가면 갈수록
상대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조(한)혜정(84-85) 선생이 1992년에 펴낸 책에서 언급한 이 글은 분명 '의식화 교육'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로부터 4년 뒤에 있은 소위 '한총련 사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7년 뒤의 대학에서 그런 '의식화 교육'은 (전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학생들의 관심의 폭은 모르긴 몰라도 훨씬 더 좁아졌고, 싫증은 훨씬 더 잘 낼 것이며, 사고의 호흡은 전보다 더더욱 짧아졌을 것이 분명하다. 2008년 오늘의 대학은 역시 잘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그 경향이 더 심해진 모습으로 비쳐진다.

독두마왕 '전두'와의 사투: 김영하 『무협 학생운동』#

어느 날 나는 시를 공부한답시고 술을 퍼마시고는, 차가 끊겨 귀가를 못해 한 선배의 집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다. NL 출신의 그 선배는, 학생회 일을 맡을 무렵 도망치듯 군에 입대한, 곡절의 주인공이었다. 술에 취하면 "그래도 나는 내셔널리스트야."라고 종종 되뇌이면서도 끝없이 서정시를 써냈던 그의 책꽂이에는 시집과 평론집이 꽂혀 있었다. 그 한편으로 '학생운동'이라는 제목의 책이 보였다. 학생운동에 대한 연구서일까, 연대기일까, 아니면 어떤 종류의 금서禁書일까; 그게 아니라 『무협 학생운동』이라는 무협지였다. 지은이는 김영하. 당시는 아직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보기 전이었고, 지은이의 이름은 꽤나 낯이 설었다. 책장을 열자, 열한 장으로 구성된 소설이었다. 첫장의 제목은 '중원에 불어오는 피바람'. 전형적이다; 가만 보면 서두의 문장도 그러하다(7):

하늘엔 먹구름이 짙게 깔려 있었다. 류는 아마도 진눈깨비가 내리려나보다 생각하였다. 날씨는 점점 추워졌고 중원 백성들의 가슴에는 재앙의 기운이 내려앉고 있었다.
류는 박통의 장례행렬을 내려다보며 희망보다는 앞날에 대한 염려가 앞섰다.
'중원에 또다시 피바람이 몰아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