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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필름2.0 머시기 키드들의 활약으로 이런 글들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은 담대 한개피도 간지나게 보이게 피려고 고민하던 시절.
그립기도 하다.
이제는 늘어난 빤쓰입어도 아무 상관없는 아저씨의 시대를 넘어 안드로메다의 시대로 근접조우 중.
지금은 2011년이다.




데이비드 린치-컬트영화의 스타일리스트   

 컬트영화란 무엇인가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아심을 가진다.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컬트를 부르짖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컬트영화를 뭐라고 딱히 정의 내리기는 쉽지 않다. 다만, 음악계에는 언더그라운드가 있듯이 영화계에서 이와 비슷한 개념 정도랄까. 컬트영화의 소재는 이단적이다. 상식 밖의 극 전개, 정도를 벗어나는 주제, 끔찍하기까지 한 주인공들의 기이한 행동들, 철저히 흥행성을 외면한 작가주의 등 보수 기성 세대들에게는 외면 당하기 쉬운 영화이지만 소수의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그야말로 열광적인 숭배를 받는다. 초현실주의 회화와 실험적 영상을 컬트영화의 대부로 칭송 받고 있는 데이빗 린치는 현 시대의 공격적인 상황과 본능을 억제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환각상태를 자유로운 허구 속에 재구성하는 일관된 작업을 해오고 있는 스타일리스트이다.


역겹거나 혹은 열광하거나

 데이빗 린치의 영화를 보고 나면 둘 중의 하나를 결정해야 한다. 어쩌면 열광하든지, 아니면 역겹든지! 그는 이제까지 우리들이 너무나도 친숙하게 여겨온 것을 불현듯 불안에 가득 차서 돌아보게 만든다. 그것은 프로이드가 예술의 숭고함에 대해서 말하면서 그것이 만들어 내는 그 친숙하면서도 낯선 불길함, 또는 (같은 말이지만) 낯선 것 속에서 발견되는 친숙함이라는 번역될 수 없는 말, 그래서 그저 ‘섬뜩함(unheimlich)' 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 없는 형상을 만들어낸다. 이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는 자기가 다루는 대상을 결코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또는 추상적인 인상을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해서 주의를 기울여 세상의 일부로 끌어들인다. 데이빗 린치는 회화에서 프란시스 베이컨이 해낸 그 고립된 현실의 형상을 담아내는, 베일 것처럼 예리한 표면의 감각을 꿈틀거리게 만들어준다. 또는 보르헤스의 소설처럼 마술적 리얼리즘의 모퉁이에서 기어이 길 잃게 만든다. 영화를 보는 동안 그걸 지켜보는 내내 우리들의 눈가 주위로 벌레가 기어다니는 듯한 그 스멀거림, 또는 유충의 알이 터져서 내 손가락 사이를 타고 내려가는 끈적거림이 피부 위에 머물면서 종종 그 윤곽을 붙들 수 없는 이상한 나라에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것도 하나의 스타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데이빗 린치는 자신을 붙들어매는 그 어떤 호칭을 붙이려 할 때마다 아냐, 아냐, 난 거기가 아니라 여기에 있는걸, 이라고 말하면서 번번이 숨바꼭질에서 우리를 놀리곤 한다. 



비시간적 향수와 역설의 영화

 그는 처음에는 ‘컬트영화의 제왕’, 또는 ‘심야영화의 루시퍼’ 라고 불리곤 했다. ,<이레이저 해드>는 거기에 걸맞는 역겨움과 질겁할만한 장면들과 머리카락을 일으켜 세우는 소름끼치는 소리고 가득 차 있다. 기독교의 전통 안에서 금기를 위반하는 대담무쌍한 난교(亂交)가 가져온 무시무시한 이미지들, 그 안에서 착한 주인공 헨리는 비명을 지른다. 심야영화관에서 그 비명에 일제히 야유를 보내고 박수와 환호로 호응한 컬트 영화광들은 데이빗 린치를 오해한 것이다. 

 왜냐하면 <블루 벨벳>으로 돌아온 린치는 그가 단지 은유적인 희생과 환유 적인 금기 사이에서 육신을 통해 가족을 폭력적으로 결합시키려는 세상에 대한 증오만으로 이 모든 것 을 단순하게 해체하는 것에 몰두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에는 이상하게도 비(非)시간적인 향수를 감돌게 만드는 기분이 있다. 린치의 영화가 가장 낯설게 여겨지는 순간은 살았던 적이 없는 시대를 만들어내면서 마치 그 이전에 거기가 고향이었던 것 같은 그 괴상망칙한 역설과 마주할 때이다. 말하자면 그는 프로이드가 말하는 원광경(Urszene)을 보고 싶어한다. 아버지와 엄마가 육신을 탐하고, 섹스 하는 그 광경과 마주친 아이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 원광경이 사도-마조히즘의 풍경처럼 보이는 것은 이유가 있다. 아이는 아버지를 죽이고 싶어하고, 엄마를 어떻게 해서든지 구해야 한다! 그러나 아이에게는 아무런 힘도 없다. 린치는 그것을 오이디푸스의 드라마로 이끌어가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쓴다. 이제 남은 방법은 원인과 결과의 위치를 뒤바꾸는 것이다. 그래서 결과가 원인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 이것이 린치로 하여금 뫼비우스의 띠와도 같은 이야기의 나라로 이끈다.


환상안의 실재의 이끌림

 아마도 지금 모든 영화 중에서도 가장 불가사의한 영화라고 할만한 (마치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았으면서도 다른) <로스트 하이웨이>와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그 자체로 숨바꼭질을 벌인다. 왜냐하면 그 영화에서 결과가 원인을 뒤쫓는 그 기괴한 구조 속에서 린치는 이야기의 우울증이라고 불리울 만한 분열증을 창조해내기 때문이다. 억압이 귀환하고, 그 안에서 인물들은 서로 가면을 바꿔 쓰고 서로가 이미 벌어진 사건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는 척 한다. 그러나 정작 그들은 자신들의 욕망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자신들이 욕망이라고 생각한 것은 대상에 이끌리는 것이 아니라 원인에 떠밀린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환상이 발생한다. 린치의 영화가 종잡을 수 없는 것은 실재 안의 환상이 아니라 환상 안의 실재에로 이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린치의 나라에서 우리는 자꾸만 길을 잃는다. 그는 눈에 보이는 것을 믿지 말라고 충고한다. 영리한 관객들은 그 함정을 자꾸만 지식과 논리로 채워서 설명하려든다. 왜냐하면 알 수 없는 대상은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뿔사! 당신의 영리함이 죄악인 것을. 데이빗 린치는 마치 표면장력처럼 아슬아슬하게 버티는 그 경계 사이에서 머문다.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곧 초자아와 이드가 미친 듯이 싸우는 지옥으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신이 린치의 나라에 오셨다면 기꺼이 당신의 불안 즐기시라. 그것이야말로 당신의 욕망이 비로소 안심하고 잠들 수 있는 곳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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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가 역사상 최초로 월드컵 1승을 거머쥐던 날, ‘세상은 변하게 마련’이라는 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높아 보이고 한국 축구로서는 절대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세계의 벽이 허물어지는 것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평소 축구는 물론이거니와 스포츠 전반에 걸쳐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내가 그 순간을 그 정도로 감격스러워했다면, 몇년째 한국 축구팀을 목이 터져라 응원했던 붉은 악마를 포함한 수많은 젊은이들이 보여준 그날 밤의 광란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구호를 경적으로 울리며 창문과 트렁크에 사람들을 가득 싣고 달리는 수많은 자동차의 행렬을 눈앞에서 목격한 그 순간만큼은, 어딘가 아주 낯선 나라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전 국민으로부터 동시에 뿜어져나온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한반도 전체를 잠시나마 다른 차원의 세계로 옮겨다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다분히 황당한 상상을 할 정도였던 것.
흥미로운 것은 한국 축구가 그런 역사적인 순간을 만들어내기 얼마 전, 한국영화도 이전엔 상상하지 못했던 사건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다. 임권택 감독의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이 바로 그것. 평소 세계적인 거장들만을 위해 마련된 것이라고 생각했던 칸의 감독상을, 다른 누구도 아닌 임권택 감독이 거머쥔 모습은 그야말로 감격적이었다. 우리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에게 그랬듯이, 외국의 영화마니아들이 임권택의 이름을 외우고 그의 작품을 찾아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찡해지기까지 한다. 따라서 그런 역사적인(?) 결정을 내린 칸영화제 심사위원단에 대해 호의적인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그중에서도 심사위원장을 맡은 데이비드 린치의 경우 그의 최근작인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여진이 아직도 남아 있는 상태여서 더더욱 호감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던 차에 데이비드 린치가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를 개설해, 아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항상 낯설고 당황스런 영화를 주로 만들어왔던 데이비드 린치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도 일단 뉴스거리였지만, 영화를 통해서는 보여주지 못했던 그의 또 다른 재능들이 독특한 스타일로 표현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수많은 팬들이 일거에 몰려들었던 것. 그 스스로도 한 인터뷰를 통해 ‘나는 이제 24시간 언제나 살아 있다. 이것이 바로 미래’라며 흥분했을 정도로, 이번에 개설된 홈페이지는 데이비드 린치의 전혀 새로운 실험이라고 불릴 만하다. 일단 전체 홈페이지를 흑백톤으로 가고 거기에 빨간색 점들을 통해 포인트를 주는 디자인부터 린치 스스로의 아이디어인데다가, 그 속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콘텐츠를 직접 새롭게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시도는 바로 데이비드 린치가 직접 만든 단편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 ‘바보 같은 땅’ 뭐 이런 식으로 해석이 가능한 이 단편 애니메이션은 팀 버튼의 <스테인보이>와 같이 스톡옵션을 받는 방식으로 쇼크웨이브사와의 계약을 통해 진행되던 프로젝트였는데, 경영난으로 쇼크웨이브사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자 공식 홈페이지용으로 작업을 전환한 것이다. 하얀 종이 위에 검정색으로 그려진 투박한 만화 형태인 이 는 영화에서는 차마 드러내지 못했던 데이비드 린치의 엽기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작품이다. 물론 그림의 완성도만 따진다면 국내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인터넷용 애니메이션에 비교할 수도 없지만, 데이비드 린치가 그려낸 썰렁하면서도 황당한 이야기는 분명 매력적이다. 9개로 예정된 전체 에피소드들 중에서 현재까지 소개된 것은 모두 5개이며, 모든 에피소드가 다 소개되면 이라는 초현실주의적인 내용의 새로운 실사 시리즈가 공개될 예정이다.

이런 단편 시리즈 이외에도 독특한 코너들은 많이 있다. 우선 데이비드 린치의 딸인 제니퍼 린치가 직접 진행하는 (Odd+Radio)라는 인터넷 라디오쇼가 매주 공개되고 있고, 데이비드 린치가 찍은 3분에서 10분 정도 길이의 실험적이고 몽환적인 영상물이 담겨져 있는 ‘Experiments’도 눈길을 끈다. 또한 임권택 감독에게 감독상을 안겨준 지난 칸영화제 기간 동안 데이비드 린치가 직접 찍은 일종의 비디오 에세이를 모아놓은 칸 다이어리 코너도 아주 흥미롭다. 더불어 새모이가 나오는 통 앞에 카메라를 설치하여 다양한 새들이 날아와 먹이를 먹거나 다람쥐들이 와서 새 모이를 가지고 달아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Live’ 코너와 데이비드 린치가 직접 작업한 각종 사진작품과 회화작품을 볼 수 있는 ‘Gallery’ 코너도 준비되어 있다. 이렇게 인터넷을 통한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도, 정작 데이비드 린치 스스로는 이것이 단지 아주 미약한 시작일 뿐이라고 누차 강조해왔다. 그만큼 이 홈페이지에 큰 신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홈페이지에 담긴 대부분의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서는 한달에 10달러 정도를 내야 하는 유료 회원으로 가입해야 한다. 광고를 붙이거나 스폰서를 구하지 않고 오로지 약 25만명으로 추산되는 자신의 열성적인 팬들을 위한 콘텐츠로만 가득 채웠다는 것이 그런 유료화 정책의 이유. 처음에는 이런 유료화 시도에 대해 우려의 시선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데이비드 린치 스스로가 유료화의 정당성을 홈페이지 이곳저곳에 강조해놓고 있는데다가 지난 3월 공식 오픈한 이후로 수많은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별탈없이 꾸준히 유료 이용자가 늘고 있는 중이다. 만약 데이비드 린치 공식 홈페이지의 이런 독특한 시도(홈페이지만을 위한 콘텐츠의 생산 및 유료화)가 어느 정도 성공적인 일로 판명날 경우, 향후 다른 작가 감독들의 홈페이지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2002.6.14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  

데이비드 린치 공식 홈페이지 : http://www.davidlyn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