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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남성 미용사 1호, 유지승

나/넘버원NO.1 2011. 6. 18. 12:58 Posted by 로드365


[직격 인터뷰] 유지승 "난 영원한 현역… 미용대학 만들고 싶다"
미용 인생 50년… 국내 남성 미용사 1호 유지승

고객 머리 스타일은 내가 결정
김지미·유지인·정윤희·노주현 등
유명 연예인들 내 손 거쳐가

미용은 세계 수준이지만
홀대받는 문화 영역 중 하나
왜 문화부 아닌 복지부 통제 받나

우리나라 남성들이 제집 안방 드나들듯 자연스럽게 미용실을 출입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미용실은 여성 전유물로 여겨졌던 게 사실이다. 배우 탤런트 가수 등 연예 활동을 하는 남성만 미용실을 드나들었을 뿐이다. 

미용업계에서는 남성들이 이발소가 아닌 미용실에서 커트를 하거나 염색을 하는 식으로 '미용 문화'에 익숙해진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라고 본다. 남성들한테 미용실 문턱이 이렇게 높았으니 남성 미용사 역시 '청일점 시대'가 꽤 오랜 시간 지속됐다. 서울 명동이나 충무로, 강남 등에 있는 대형 미용실에선 남성 미용사들을 볼 수 있었으나, 소위 '동네 미용실'은 남성 손님 만큼 귀한 존재였다. 

국내 남성 미용사 1호는 유지승씨다. 우리 나이로 70세. 올해로 미용 경력 50년을 맞았다. 1962년 명동의 한 미용실 스텝으로 출발한 유씨는 고희(古稀)의 노년이지만 여전히 씩씩한 현역이다. 자신을 찾아오는 손님은 다른 스텝에게 맡기는 법이 없다. 후배들은 그를 '커트의 달인', '미용계의 거목'으로 부른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그를 17일 만났다. 어떻게보면 우리의 삶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논의의 중심에선 멀어져 있는 미용 이야기와 그의 50년 미용 인생을 듣기 위해서다.

_ '미용의 장인'으로 불리지 않나.

"과찬일 뿐이다. 나의 닉네임은 네로였다. 명동 사보이호텔 옆에서 미용실을 운영했던 70년대에 후배 미용사들과 직원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일 때문에 아무리 늦은 시간에 퇴근하더라도 출근이 늦어 게으르면 그 자리에서 혼을 내는 성격이었다. 기본이 안 된 미용사는 내쫓기도 했다."

_악명으로 이름 높았다는 얘긴가.

"그건 아니고… 스텝이 일에 대한 열정이 있고 근면해야 고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고 봤던 것이지."

_미용 인생에서 커트에 쏟은 시간이 얼마나 되나.

"하루에 15시간 이상씩 일한 날이 허다하다. 수십만 시간 되지 않을까. 상상에 맡기겠다."

_50년 전 처음으로 머리 만진 고객 기억하나.

"…. 어떻게 기억하겠나. 아마도 그 고객은 날 기억할 수도 있겠지. 커트가 마음에 들었다면."

_그 고객의 커트를 했던 장소는 어디인가.

"명동에 있던 스완미용실이라는 곳이다. 정확히 62년 이었는데, 당시 윤희미용실과 함께 명동의 2대 미용실로 꼽혔던 유명한 곳이야. 스무 살 때였지. 거기서 석 달 동안 연습생 생활을 한뒤 라멜미용실로 옮겨 실전에 투입됐다. 정식 미용사가 된 것이지. 보통 미용실에 들어가 고객의 머리를 직접 만질려면 3년 정도 걸렸는데, 나는 일종의 대(大)월반을 한 거다."

_실력이 뛰어났다는 건가.

"연습생 시절에 원장이 인정을 해준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선 석 달 만에 고객의 머리를 맡겼겠는가. 내가 커트를 해준 고객들이 입소문을 냈던 모양이다. 그땐 점심 먹을 시간 조차 없었느니."

_미용 기술은 따로 배웠나.

"그때만 해도 종합미용학원이라는 게 있긴 했지만 나는 다니지 않았어.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있다는 칭찬을 듣곤 했었지. 미용실에 들어가 어깨 너머로 배웠다고나 할까."

_청일점이었겠다.

"무슨 두말이 필요하겠나. 60년대 초반은 미용실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시절 이었어. 게다가 새파란 스무 살 청년이 여성들의 천국인 미용실에서 홀로 커트를 하고 있었으니 화제가 되지 않았겠나."

-커트 기술에 영향을 준 미용사가 있었나.

"당시에 '커트의 전설'로 불렸던 여성 미용사한테서 많이 배웠던 것 같아. 이름은 정확히 기억하기 힘든데, 미스 고 였던 것 같다. 지금은 뭘 하는지..."

_원래 미용사를 꿈꿨나.

"그렇진 않았어. 굳이 말하자면 관심 정도는 있었지. 당시 외국영화를 좋아해 즐겨봤었지. 영화에 가끔 등장하는 미용실 장면에서 남성 미용사가 활동하는 게 왠지 눈에 들어오더라구. 한 배우 전문학원을 다니던 중에 지인의 추천으로 스완미용실에 들어갔어. 지금 생각하면 순전히 얼떨결에 이뤄진 것 같기도 하다. 영화가 적성에 안 맞는다고 여기던 차에 미용일을 접했기에 더 빨리 적응했는지도 모르겠다."

_유명 인사들의 머리를 많이 만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60년대 초에는 김지미 이민지 김계자 이춘희 등 당대에 날리던 기라성 같은 여배우들이 주 고객이었다. 70년대 들어선 전양자 강문 같은 배우들이 나의 손을 거쳐 갔다."

-미용 인생 50년 중에서 정점은 언제였나.

"80년대 였던 것 같다. 고객 평가도 그랬지만, 커트 기술이 완벽한 수준이 됐다고 나 스스로도 생각했었지. 고객들이 2~3시간 커트 순서를 기다리는 건 보통이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화장실 갈 시간도 없었어."

_그때도 스타들이 찾았나.

"당시 스타 중에서 내가 커트를 하지 않은 경우는 별로 없었어. 이미숙 유지인 정윤희 강부자 김민자 김자옥 한혜숙 박정수 이효춘, 뭐 이런 연기자들이 단골이었지. 혜은이 이은하 나미 윤시내 임희숙 이은미 김연자 같은 가수들도 마찬가지야. 이들 중 상당수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커트 고객이야."

_남성 연예인들은 안 왔나.

"왜 안 왔겠나. 내가 활동하는 게 알려지면서 남자 가수와 탤런트, 패션모델들이 대거 찾아오더라. 박근형 백일섭 노주현 송승환 강석우...모두 A급 남자 스타들이었다."

_유명 연예인 전문 미용사로 통했겠다.

"연예인만 오는 것은 아니었지. 재벌가 부인들도 고객 명단에 들어있었어. 프라이버시 때문에 실명을 거론하긴 어렵지만 L, H, K씨 등 이름만 대면 금방 알 수있는 재벌가 부인들이 오곤 했다."

_일반인들은 접근하기 어렵지 않았나.

"무슨 소리? 고객의 80%는 일반인이다. 내가 최초의 남자 미용사로 50년을 한결같이 현장을 지킬 수 있었던 힘은 일반 고객이다. 30~40년 된 고객들이 많다. 이들은 가족 같은 존재들이다."

_칠순의 나이에 미용 현장을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이 있을텐데.

" '유지승 식의 커트'를 고집했기 때문이겠지."

_무슨 소리인가.

"고객들이 어떤 스타일을 원한다고 말하기 전에 내가 결정해 커트를 시작하는 편이다. 이게 소문이 났던지 고객들은 보통 나에게 커트를 일임하는 편이다. 처음에 멋모르고 왔다가 커트한 다음에 울고 나간 고객도 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제대로 커트해 줘서 고맙다'고 웃으면서 다시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_고객들에게 어떤 부분이 어필한다고 보나.

"과감하고 파격적으로 커트하는 게 내 스타일이다."

-미용에 대한 정의를 갖고 있나.

"고객한테 맞는 머리 스타일을 만들겠다는 사명감 하나로 버틴 세월이 50년이다. 이런 마음 가짐이었다면 다른 것 했어도 성공했겠지. 미용은 기술 이전에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지난한 작업인 것 같다. 센스와 감성으로 표현하는 게 바로 미용이다. 그게 헤어 디자이너의 길이다."

_후배 미용사들은 그런 철학을 갖고 있나.

"사람에 따라 다르지 않겠나. 분명한 사실은 나를 보고 미용을 시작했던 남자 미용사 중에선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한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이철 같은 후배들이 그런 사례가 될 것 같다."

-남자 미용사 50년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텐데.

"미용 50년 기념 헤어쇼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어. 기회가 닿으면 반드시 하고 싶은 일인데, 잘 될지 모르겠다. 이런 자리를 빌려서 전국의 미용인들이 모여 헤어쇼와 함께 화합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지."

_우리나라 미용 기술은 어느 수준인가.

"기본적으로 우리 국민은 손재주가 아주 좋다. 세계 미용 대회에 나가면 상을 많이 타온다. 손재주가 워낙 좋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야. 미용 기술은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어."

_미용이 세계 수준이지만 정부나 국민의 인식은 낮은 것 아닌가.

"그게 문제야. 미용은 홀대받는 문화 영역 중의 하나다. 미용은 문화가 아니라는 사람도 아직 여전히 많아. 정부와 국민의 의식 수준이 선진화 돼 있지 않아서겠지. 선진국일수록 미용은 문화의 한 영역으로 굳건히 자리하고 있는데 우리는 안 그래."

_왜 그런가.

"알다시피 우리 정치라는 게 유치원생 수준 아닌가. 우리나라를 세계를 알리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문화다. 미용은 엄연히 문화의 범주에 들어 있지 않나. 미용은 음악과 미술, 색감의 조화, 형태의 조화 같은 걸 알아야 하는 종합 예술이지. 물론 타고난 재주도 있어야 하지만. 그런데 정부나 일반인은 미용을 너무 우습게 생각해. 미용 분야를 보건복지부가 관장하는 것 자체가 모순 아닌가. 왜 미용이 문화부가 아닌 복지부 통제를 받아야 하나. 이런 기본적인 것부터 바꿔야 한다."

_선진국은 미용을 문화로서 대우 하고 있다는 뜻인가.

"당연하지. 미국은 미용사(헤어 디자이너)를 아티스트(예술가)로 예우하는 구조다. 프랑스 등 유럽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떤 가. '남자가 무슨 할 일 없어 여자 머리 만지냐'는 소리에서 완전히 벗어난 게 20년도 채 안 된다. 남자 미용사만 지금은 1만 명이 넘는다. 미용만 놓고 볼 때 우리나라는 문화 후진국이다."

_은퇴는 고려하고 있지 않나.

"죽을 때까지 현역으로 남고 싶다. 죽는 날까지 일할 생각이야. 나이 들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복 아닌가. 자기가 갖고 있는 기술을 늙어서까지 다른 사람을 위해 쓰니 얼마나 행운인가. 이틀 쉬면 오히려 병이 날 정도니. 후배 남자 미용사들 중에 50세까지만 하고 그만 둔다고 했다가 내 얘기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든 경우도 있다고 해. '유지승도 하는데 나라고 못하겠느냐'면서 말이야. 그런데 장인 정신을 갖고 일 하는 미용사들이 많지 않은 게 안타깝다."

_후회도 있을 텐데.

"만일 배우로 연기를 했다면 지금처럼 성공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할아버지 역할만 할 게 아닌가. 또 있지. 내 일만 열중하다 보니까 남성미용가협회 등 관련 단체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부분이 아쉽다. 후배들한테 좋은 기술을 전수해주거나 시야를 넓히게 하고 선행을 함께 못한 게 마음에 좀 걸려. "

_후배 양성을 못했다는 건가.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게 하나 있어. 미용 대학을 세워 미용 전문가를 양성하는 거다. 사실 미용과가 설치된 대학(전문대)들이 적지 않지만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야. 이론과 실기를 두루 배우고 있으나, 미용실에 오면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게 현실이지. 헤어 디자이너를 꿈꾸면서 미용실에 취직했지만 그만두는 젊은이가 허다하다.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을 정도로 대학에서 제대로 교육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지. 학교에서 미용 교육이 완성 안 되는 게 큰 문제야."

-미용실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 있다.

"맞아. 인구에 비해 미용실이 지나치게 많아. 그런데 10군데가 문을 열면 8군데는 경영이 힘들어. 집세 내고 재료값 주고 세금 내고 직원 월급 줄려면 미용실 한 곳당 5명이 동업해야 하는 게 정상인데 혼자 개업하니 얼마나 힘들겠어. 수지타산 맞출 수 없는 것은 당연하지. 무조건 돈을 벌려는 욕심 때문이지. 젊은 헤어 디자이너들은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면부터 버려야 성공할 수 있어."

-비싼 미용료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는데.

"턱없이 높은 미용료는 반드시 내려야지. 커트나 염색, 파머 같은 것은 엉망으로 하면서 미용료만 비싸게 받는 미용실은 반성해야 해. 미용료 바가지 여부는 고객들이 가장 정확하게 안다. 실력이 좋은 미용사와 그렇지 않은 미용사를 고객이 너무 잘 알고 있어. 미용사들이 겸손해야 하고 늘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_미용의 정수는 무엇인가.

"커트겠지. 모든 미용의 출발과 끝은 커트야. 커트가 100% 완성돼야 고객의 머리 스타일을 제격으로 표현할 수 있는 법이지. 나는 고객의 얼굴과 머리형만 보면 커트 구도가 떠올라. 손님들은 묻지 않고 맡기고 있어."

커트의 달인 유지승


1942년 광주 출생. 서울상고를 졸업한 뒤 배우에 도전했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남성 미용사로 방향을 틀었다.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한 적도 있다. 62년 국내 남성 미용사 1호로 서울 명동에 있던 스완미용실에 처음 둥지를 틀었다. 미스유니버시티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한국남성미용가협회 초대회장도 지냈다. 지금은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유지승 뷰티살롱을 운영한다.


미용계 '전통 가위손 -> 메이크업 -> 토탈 뷰티'로 진화


미용업계에도 계보가 있다. 

1960, 70년대부터 활동한 미용사들이 1세대로 분류된다. 유지승씨를 비롯해 이가자, 박철, 이철씨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 뛰어난 커트 실력을 지니고 있는 게 공통점이다. 이들은 '유지승 미용실', '이가자 미용실', '박철 헤어', '이철 헤어커커' 등 자신의 이름을 앞세운 대규모 미용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80년대에 최고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다.

80년대가 커트 기술이 뒷받침된 '전통 가위손'시대였다면 90년대는 패턴이 크게 바뀌었다. 유명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있는 미용실에 손님들이 몰렸다. 미용계에서는 "조성아, 정샘물, 이경민, 김청경씨 등이 대표적인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들은 한창 잘 나가던 유명 연예인의 메이크업을 주도하면서 미용실의 판도를 뒤바꿔놓기도 했다. 이때문에 상대적으로 헤어 디자니어의 위상은 약화된 측면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흐름도 그렇게 오래가진 못했다. 2000년 이후엔 미용실이 소위 '뷰티 살롱' 개념으로 변신했다. 미용계에선 이를 "3세대 미용실의 등장"이라고 표현한다. 뷰티 살롱이란 한마디로 토탈 뷰티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이다. 커트 염색 퍼머 등 전통적인 헤어 관련 작업 외에도 메이크업은 물론이고 네일, 피부마사지, 눈썹 퍼머넌트와 익스텐션(연장술), 웨딩화장까지 해주고 있다. 이를 담당할 전문가들이 배치돼 있는데, 유지승씨는 "손님의 스타일을 완전히 책임지는 게 뷰티 살롱의 컨셉"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뷰=김진각 편집위원 kimjg@hk.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