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rss 아이콘 이미지



헨리 포드는 말했다. "사람이 마흔 이전에 하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 그 이후에 하는 일이 인생을 결정한다." 20세기는 아동기와 청년기의 시대였다. 그러나 21세기는 성인기와 장년기의 시대다. 매력적인 40대가 사회 중심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베스트셀러가 되니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라는 책이 나왔다. <서른엔 미처 몰랐던 것들>이 공감을 얻으니 <마흔 이후, 이제야 알게 된 것들>이라는 책도 뒤를 이었다. 청춘은 청춘대로, 중년은 중년대로 엄살인지 비명인지 모를 통각을 호소하고, 이제 서점가는 힐링과 자기계발 프로그램이 전시된 테마 파크처럼 보인다. 어쨌든 대중들은 지금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단군 이래 최대의 스펙을 가진 20대들이 가정과 학교에서 본 적 없는 ‘자기계발’의 스승에게 몰리듯, 단군 이래 최대의 건강과 수명을 갖게 된 40대도 직장과 사회에서 결락된 독창적인 ‘인생 노하우’의 카운슬러를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각 세대가 경쟁사회에 지친 자신들의 고통을 알아달라고 호소하지만, 현재는 확실히 마흔이 대세다. 2000년대 초 거품경제의 환상을 주도했던 ‘보보스’와는 달리, ‘마흔’은 지금 우리 사회의 경제와 문화의 주도권을 쥔 주인공 세대이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20대에 바라본 마흔은 ‘지는 해’였다. 그 나이에 섹스를 하고 아이를 낳고 사랑을 하고 꿈을 이룬다는 것은 주책이거나 기적이었다. 당시엔 여배우 김미숙이 마흔에 아이를 낳은 것이 화제가 됐고, 소설가 박완서가 마흔에 등단한 것도 문단의 특별한 이슈였다. 나는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 때마다 그녀들을 떠올리며 위로를 받았다. 실제 마흔이 되고 보니, 마흔은 젊지도 늙지도 않은 적당한 나이였다. 서른이 될 때는 조바심이 나서 ‘거부하고 싶던’ 세월이 마흔 즈음엔 ‘오라! 다 받아줄게’ 하는 수용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그건 나이 드는 것 말고는 ‘더 나빠질 게 없다’는 염세주의자의 결론이기도 하고, 반대로 허투루 먹은 나이가 아니니 ‘더 좋은 미래가 오겠지’라는 낙관주의자의 선물이기도 했다.


어쨌든 지금의 40대는 생산성을 위해 뒤로 미뤄뒀던 스스로의 자아 정체성을 깨닫기 위해 자발적인 재교육 시스템으로 들어가고 있다.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이나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을 보라. 고전이 실제 인생 전투에서 고전도 해보고 승전도 해본 ‘중간 어른’ 에 적합한 학습서이긴 하지만, ‘마흔’이라는 수사는 확실히 절묘한 ‘환기’효과가 있다. “사회 생활의 스타트가 늦어지고 혈기왕성한 40대가 많아지면서 지금의 마흔은 예전의 서른과 같아졌어요. 논어에서 말하듯이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 일에 흔들리지 않는 고요한 불혹의 나이가 아니라, 여전히 욕망이 들끓고 유혹에 흔들리는 나이가 마흔인 거죠.” 40대 트렌드 책을 기획한 대형 출판사 편집자의 말이다. 이렇게 ‘자기 연민’과 ‘자기 과시’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40대에게 심리학자들은 ‘인생은 사십부터’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달아주고, 산업사회의 마케터들은 ‘골든 에이지’라는 칭호를 선사한다. 최우수 유전자 샘플을 가진 40대 연예인들이야말로 ‘마흔 신드롬’ 선두에 서 있다.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김남주와 유준상은 건강한 ‘중간 세대’의 모범을 보여준다. 마흔이 넘은 김혜수는 여전히 20대 마론 인형들보다 섹시하고, 이영애와 고소영은 40대임에도 건강한 출산 능력을 자랑한다. 아이를 낳은 그녀들의 뺨은 사과처럼 붉게 모성애의 빛을 발한다. 40대 배우인 정우성과 이정재, 장동건과 이병헌은 20~30대 남자 배우들이 결코 넘볼 수 없는 육체적 위용과 쌓아온 업적의 카리스마로 ‘품격 있는 미중년’에 방점을 찍었다. “40대의 이정재는 20대의 이정재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멋있죠”라고 <도둑들>의 최동훈 감독은 말했다. 바야흐로 매력적인 40대들은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의 밀도가 최고조에 달해 있는 ‘능력자’인 것이다. “마흔은 사회적으로 20대가 가장 원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어요. 커리어는 절정에 있고 육체적으로도 활기가 넘치죠. 자신들이 가진 매력과 권력도 잘 알고 있어요”라고 비포앤애프터 성형외과 한규리 대표는 말한다.


하버드 대학 성인발달연구소에서 ‘중년’에 관한 연구를 해온 윌리엄 새들러 교수는 우리 생애를 네 단계로 나누었다. 배움의 단계인 10대, 20대 시기를 일컫는 퍼스트 에이지, 일과 가정을 이뤄 사회에 정착하는 단계인 20대 후반과 30대 시기를 일컫는 세컨드 에이지, 그리고 생활을 위한 마지막 단계인 마흔 이후 30년을 일컫는 서드 에이지, 마지막으로 노화의 단계로 성공적인 나이 듦을 실현해가는 포스 에이지. 이러한 생애 주기로 가장 오래 지속되는 단계이자 우리 인생의 한복판에 위치한 미지의 광활한 시간이 바로 서드 에이지, 즉 마흔 이후 30년이다.


새들러 교수는 그의 저서 <서드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The Third Age)>에서 40대를 착륙이 아닌 새로운 ‘이륙’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로 재정의했다. 이 서드 에이지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남은 노년의 시기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이를 위해 가장 먼저 일이 없으면 정체성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세컨드 에이지 중독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충고한다. 창의적이고 충만한 서드 에이지는 ‘행복한 중간’을 선택해야 한다. 최종 목표는 바로 내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사실 우리는 생애 첫 25년을 세컨드 에이지를 준비하는 데 사용한다. 좋은 직장과 높은 급여, 사회적 성공을 위해 퍼스트 에이지 모두를 투자한다.


어렸을 때 우리는 늘 이런 질문을 받아왔다. “커서 뭐가 되고 싶니?” 마흔이 넘으면 우리는 비로소 스스로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오랫동안 비슷한 직선형 삶을 살아왔지만 서드 에이지 이후 인생은 여러 방향으로 펼쳐진 부챗살과 같다.그렇다면 실제 40대들은 자신의 나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40대 초에 만났던 김희애는 담담하고 겸손하게 말했다. “눈부신 40이 유행이라지만, 나이 먹는 게 뛸 듯이 기쁜 일만은 아니에요. 노 력해서 받아들이고 감사하게 생각할 뿐. 그래도 좋은 건, 김희애가 마흔이 돼도 건재하구나, 살아 있구나, 동년배들에게 그런 위로의 샘플이 될수 있다는 거….” 사회학자 함인희 선생은 마흔이 되고서 비로소 꿈을 이루었다고 고백했다. “어서 빨리 어른이 되어 마흔 살 되는 것이 내 어릴적 꿈이었어요. 어린 시절 내 꿈 속의 ‘마흔 살 여인’ 모델은 나를 낳고 길러주신 ‘엄마’였죠. 집안 대소사를 의연하게 관장하고 소외된 이웃을 돌보기 즐겨 하셨던, 마흔은 참 근사한 어른이었어요.” 함인희 교수는 사회적 성숙의 관점에서 마흔을 이야기했다.


40대 중반의 임상심리학자 김선희는 마흔은 더 충만하게 설계된 오십을 기다리는 가슴 떨리는 플랫폼이라고 했다. “지금 만족하면 저는 이대로 카운슬러 인생을 가겠지만, 여기서 더 비전을 가지면 오십엔 힐링 전문 출판사의 사장이 돼 있을 거예요.” 영화감독 변영주는 어떤가. “20대나 30대 때는 40대가 되면 재미 없고 뻔하고 세상에 궁금한 게 없을줄 알았다. 하지만 몇 년 전 마흔 살을 지나며 여전히 세상이 너무 궁금하고 내 인생이 불안해서 즐거웠다”라고 여전히 마흔이 충동적이고 스릴있는 나이임을 이야기했다. 마흔 일곱의 박중훈은 배우에서 감독으로 새 인생을 시작했으며, 최민식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머릿속에 이야기가 넘쳐서 잠을 못 이룰 정도라고 했다. 그들은 자신의 중년을 창조적으로 재설계하면서 자기만의 진정한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이렇듯 서드 에이저들은 직선과 곡선이 통합된 복합적인 삶을 추구하고, 그래서 더 열정적인 ‘핫 에이지’가 될 수밖에 없다. 40대가 되면 사람들은 더 솔직해지고 더 깊어진다. 그러나 40대가 늘 그렇게 즐거운 것 만은 


아니다. 4라는 숫자에 진입하면서 구체적으로 고개를 드는 걱정은 지금보다 더 나이 든 후 어떻게 먹고 살까다. 경제 불황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중되는 요즘은 보험 광고와 대출 광고가 더 기승을 부린다. 정교하


게 미래 시간을 계산하던 현실주의자 친구는 이혼 후 괴로워하던 한 후배에게 이런 충고를 했다. “40대가 가장 중요한 시기야. 이럴 때일수록 우왕좌왕 방황하지 말고 당장 월급의 50% 떼서 연금보험 들어라! 남자도 필요 없고 자식도 필요 없어. 나중에 돌아보면 남는 건 그거밖에 없어.” 생산성이 왕성한 40대야말로 노후대비를 위한 황금 시간이라는 말이다. 아무리 전성기 운운해도 삶보다는 죽음에 한 발 더 가까워졌다고느끼는 40대들의 절박한 리액션이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 죽어라 교과서를 들이파던 청소년 시절처럼, 노후를 위해 두 눈 질끈 감고 보험금을 붓는 일은 왠지 모를 서글픔으로 다가온다. 욕심 많은 카페 주인에게 자신의 피 같은 돈을 맡겼던 ‘레옹’의 천진한 비극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 죽음에 가까워졌다는 40대의 정서적 공포는 ‘노화’에 대한 상상력을 현실화시키기도 한다. 40대 영화감독 정지우는 영화 <은교>에서 노화에 대한 슬픔과 돌이킬 수 없는 회한을 표현했다. “내 나이 45세… 어느 순간 남자가 늙는 것에 냄새를 맡기 시작했어요. 여전히 우리의 정서는 10대고, 습관은 20대지만, 상황과 시선은 나를 노인으로 보겠죠. 그래서 노인 분장을 한 박해일을 보고 한없이 슬퍼졌습니다.” 40대에 더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사진작가 조선희도 얼마 전 <보그>가 요청한 컨트리뷰터 사진을 위해 ‘80대의 조선희’로 분장한 후 일주일 내내 우울했다고 한다. “엄마의 피부를 이식해서 내 피부에 심었는데, 그 사실적인 사진을 보고는 충격에 빠졌죠. 구체적인 노화와 대면하고 보니 말할 수 없이 슬펐어요. 이걸 수용해야 할지 저항해야 할지….”


사십이 되면 노인들도 마음이 아니라 몸이 늙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겸허해진다. 그러나 몸이 늙어도 마음이 계속 성장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노화 문제의 권위자가 최근 고백하기를 자신이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는 50세가 넘으면 성장은 없고 오직 쇠퇴만이 있다는 이론을 믿었노라고 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연구를 해본 결과 중년 이후의 삶에 접어든 사람들에게서 성장을 발견한 것은 그를 겸손하게 만드는 경험이었다고 고백했다.


촌철살인의 나이 잠언집 <도전 100세>를 보면 나이의 책갈피가 40대로 넘어갈수록 세계적인 유명 인사들의 업적에 감탄사를 내뱉기보다, 나이 먹어가는 인간으로서 친밀감이 깊어진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어이! 멘델, 자네가 43세에 유전의 법칙을 발견했다구? 사실 그 나인 자신의 한계는 유전이라고 믿는 나이라네”라고 농담이라도 하고 싶다. 51세에 노예제도를 없애기 위해 힘쓴 링컨 대통령처럼, 그즈음엔 우리도 약한 자의 아픔도 돌아보아야 할 나이이고 싶다. <곤충기> 10권을 발표한 파브르를 보면서, 우리도 84세엔 미물도 사랑할 수 있길 고대하고, 대담집 <대화>를 출간한 94세의 피천득 선생을 보며 사람이 왜 ‘무형 문화재’ 인지도 깨닫게 되는 것이다.*  <VOGUE> 2012년 09월호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