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영화煐花

이자벨 아자니, 당신과 그녀만의 연애소설

로드365 2011. 6. 24. 21:02


치명적인 유혹의 속삭임, 이자벨 아자니
 
 
우연히 만난 영화광들과 담소를 나누다 보면, 포장마차의 꼼장어처럼 단골로 등장하는 질문이 있다. 최근에 발견한 영화가 무엇이냐 혹은 어떤 영화를 보고 반했냐는 식의 질문이 그런 거다. 영화에 중독 된 이들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영화를 뽑는 즐거움과 지적허영에 사로잡힐 만하지만, ‘귀찮아 병’중증인 나는 영화 ‘베스트10’을 선정하는 숙제에는 늘 관심이 없다. 요즘은 솔직히 어떤 여배우에 필이 꽂혀있냐는 원초적인 질문에 귀가 솔깃해진다.
내가 16년 동안이나 극장가를 떠돌아다니다가 영화잡지 기자가 된 사연을 한마디 요약하자면, 우습지만 오로지 이자벨 아자니 때문이었다. 남들은 으레 영화사에 길이 남은 명작이나 전설의 감독에 빠져 영화에 인생을 바쳤다고 말하지만, 그런 감동의 레퍼토리는 처음부터 막나갔던 내 학창시절과는 전혀 무관했다. 시계를 슬쩍 거꾸로 돌려보자면, 철없던 나의 중고딩시절(회자되는 쌍팔년도의 추억)은 또래 녀석들과 달리 프랑스 여배우들로 점철되어 있었다. 친구들이 라면을 안주삼아 <매춘>시리즈를 탐닉하거나 섭소천(왕조현)의 옷깃에 홀려 흐느적거릴 때, 난 대학가의 어설픈 영화제나 프랑스 문화관을 서성이며 아자니의 영화를 섭렵했다. 언젠가 ‘압구정동의 시인’ 유하 아저씨가 자신이 뿅간 여배우 리스트에 아자니를 올려놓은 적이 있었다. 당시 나에겐 그녀는 여배우라기보다는 여신이나 숭배의 대상에 가까웠기에, 다른 여배우들과 비교되는 것만으로도 잠이 안 올 정도로 불쾌했다. 한 번은 열 받아서 유하 시집불매운동을 결심할 정도였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명동 뒷골목에서 일본 판 로드쇼를 뒤적이다 이자벨 아자니가 세르주 갱스부르의 간청으로 앨범 ‘풀 마린(Pull marine)’을 내놓았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녀의 환상적인 목소리 덕분에 백만 장이 팔렸던 이 앨범에는 히트곡 ‘오하이오(Ohio)’가 수록되어 있었다. 일본 아침인사를 연상시키는 이 발랄한 노래는 현재 ‘한밤의 TV연예’ 오프닝 타이틀곡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시절 닭장(학교)에 갇혀 야자(야간자율학습)를 하던 나에겐 그녀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유일한 낙이자 생명수와 같았다. 저녁밥을 굶거나 빵으로 때우면서 돈을 절약해 매주 극장으로 달려갔던 나는 그녀의 노래를 듣고 난 후, 한동안 레코드 가게를 뒤지는 일에만 혈안이 된 적도 있었다.

배우로서 모든 영화를 누려온 이자벨 아자니. 터키계 알제리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에서 태어난 그녀가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인이 된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다. 아자니는 국제적인 혈통 덕분인지 지중해의 푸른 눈과 흑진주 같은 머릿결을 선보이며,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스크린 위에 선보였다. 이미 14살 때부터 천부적인 재능을 인정받고 '차세대 잔느 모로'로 불렸던 그녀는 세자르 여우주연상을 4번이나 수상하는 진기록도 남겼다. 그녀의 엄청난 행운이 어디 그뿐인가? 그녀는 불혹의 나이를 훨씬 넘겨서도 여전히 20대 후반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다. 1976년에 찍은 <아델 H의 이야기>를 살펴보다 20년이 지난 <디아볼릭>을 본 사람이라면 아마 섬뜩함을 느낄만하다. 그녀의 미모가 늘 한결같다는 사실, 아니 심지어 나이가 들수록 더 아름답다는 사실이다. 반면 아자니는 눈부신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연륜이 느껴지는 연기를 한 번도 선보인 적이 없다. 세월을 피해간 그녀에게 신이 내린 저주일까? 그녀는 평생토록 열정적인 20살 소녀의 이미지에만 머물러 있다.
물론 내가 사랑했던 아자니는 영화 시상식에서 살만 루시디의 ‘악마의 시’를 낭독하는 지적인 중년여성이 아니라, 난 엉덩이가 너무 예뻐서 팬티를 입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철부지였다. 즉 1980년대 영화 속에 담겨 있는 그녀의 독특한 모습에 반해 있었다. 어딘가 엉성하고 뒤틀린 영화들 속에서, 그녀의 알몸을 어루만지는 감독들(꼰대 늑대들)의 시선이 특히 나를 자극시켰다. 엉뚱하게도 나를 사로잡은 최고의 영화는 <킬링 오브 썸머(살의의 여름)>였다. 순수하게 영화적으로만 말한다면, 이 영화는 3류 에로소설의 유치한 플롯에다 진부함으로 똘똘 뭉친 불량만두다. 훗날 아자니 자신도 "영화배우로서 의식이 없을 때 찍은 영화"라고 언급을 회피했지만. 이 영상에는 분명 그녀만이 지닌 창백함과 육체의 소멸을 이끌어내는 열정이 담겨있었다. 정신분석가를 무장해체시키는 히스테릭 환자처럼 가녀린 그녀는 너무나도 병적인 사랑만을 고집하고 있었다. 
 
얼마 전, 뜬금없이 안방극장에서 1980년대 초 영화인 <올 파이어드 업>을 방영했다. 여기서 아자니는 말괄량이처럼 비명을 지르고 속옷만 입고 천방지축 뛰어다니고 있었다. 오랜만에 그녀의 모습을 본 나는 잠을 잊은 채, 옛 비디오를 넣어둔 여러 개의 사과박스를 풀러 그녀의 초기영화들을 다시 꺼내 보았다. 그리고 먼지더미 속에서 잊어버렸던 한 가지 사실을 기억해냈다. 이자벨 아자니, 그녀의 신비로움은, 어떤 장르에 출연해도 영화를 '당신(관객)과 그녀만의 연애소설'로 둔갑시킨다는 사실에 있었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