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ㅜ

문재인 인터뷰.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드365 2011. 6. 15. 19:48

일단 그의 말은 이렇다. 그럼에도.

잘 못할 것 같으니까 그렇다. 내가 괜찮게 평가받고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은 고맙고 과분한 일이지만 결국 정치권 바깥에 있어서 그런 거다. 막상 현실 정치 들어서면 그게 아니지 않나. 그때는 착한 역할만 못 한다. 현실 정치에 필요한 자질과 능력이 있다. 나는 그런 것들이 여러 가지로 부족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또 하나는 정치를 한다면 원칙을 지켜 나가는 정치를 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노 전 대통령이 절절하게 오랫동안 보여 줬다. 나는 도저히 엄두가 안 나서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간들 문제없이 이기나. 나도 박근혜 전 대표에게 안 된다. 다 모여야 이긴다. 우선은 그런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선수로 나서는 건 아직 생각하지 않고 있다.



“대선? 아직 생각안해… 야권 통합이 먼저” 노무현 재단 문재인 이사장 2011.6.15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2012년 총선 및 대선 출마에 대해 “2012년에 벌어질 상황과 관련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은 (출마) 결정을 내릴 시기가 아니다.”면서 “그때 가서 결정하겠다.”고 출마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문 이사장은 15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12년 총선·대선 출마 여부, 참여정부의 공과, 친노 진영 잠재적 대선 후보들의 경쟁력 등에 대한 생각을 털어놨다. 문 이사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계승하는 정치인이 누구냐는 질문에 “정치 세력으로 보면 민주당이고, 개인으로 보면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라고 말했다.

인터뷰는 부산 연제 법조타운의 ‘법무법인 부산’ 사무실에서 이도운 정치부장과의 대담 형식으로 1시간 50분 동안 진행됐다.

→최근 출간한 ‘운명’이라는 저서를 통해 노무현 정부를 회고했다. 노무현 정부는 성공했나, 실패했나.

-성공을 넘어선 정부다. 성공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사에 새로운 획을 그은 정부다. 예를 들면 권위주의 청산이 대표적이다. 돈 안 쓰는 선거, 깨끗한 선거 같은 것이 당대에 가능할까 했지만 참여정부는 해냈다.

→그러나 제도화되지는 못했다.

-권위주의 해체 문제는 특별법 같은 걸 만들 수 없다. 문화의 문제다. 참여정부가 시도했다가 이명박 정부에서 단숨에 퇴행했다. 그래도 다음에 다시 괜찮은 정부가 들어서면 참여정부가 중단했던 지점부터 새롭게 할 수 있다.

→아쉬웠던 점은 무엇인가.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더 잘했어야 했다. 두 가지 과제를 우리 사회 문제로 인식하고 정책과제로 처음 제시했다는 의미는 있지만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고, 정책적인 면에서도 우선순위에 뒀어야 했다는 후회가 있다.

→참여정부 공직자 가운데 업무 수행을 잘했다고 생각하는 분은.

-경제 분야에서는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이다. 우리나라 정보통신 수준을 세계 최고로 높였다. 사회 분야에서는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훌륭했다. 개별적인 복지정책들을 패키지로 만들어 냈다. 또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면에서 강금실 법무장관도 큰 역할을 했다.

→현재 정치인 가운데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계승한 정치인이 있다고 보나.
-상황이 아주 미묘한데…. 세력으로 치자면 노 전 대통령 뜻은 민주당 쪽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정치인 개인으로 치자면 노 전 대통령의 이념 철학을 가장 잘 계승한 분이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라고 생각한다. 유 대표는 다른 정당에 있어서 그 부분이 착잡하고 미묘하다. 그래서 야권이 통합해야 하는 이유도 된다.

→유시민 대표가 노 전 대통령의 어떤 점을 계승했나.

-노 전 대통령이 남긴 과제는 일종의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거다. 진보적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내용은 복지국가다, 그런 면에서 유 대표가 노 전 대통령이 갖고 있던 지향과 이념을 가장 잘 계승하고 있다는 거다. 김두관, 안희정, 이광재 등 전·현직 지사 세 분도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대중에게 드러낼 기회가 없기 때문에 잠재된 상태다.

→손학규 대표도 노 전 대통령의 가치와 과제를 계승할 만한가.

-그렇다. 민주당 대표로서 당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또 손 대표 스스로도 노 전 대통령의 가치를 계승하겠다고 말하고 있어서 그리 평가하는 데 손색이 없다.

→노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 문제 해결에 집중했다. 문 이사장은 지역주의에 얼마나 큰 관심을 갖고 있나.

-노 전 대통령도 부산과 경남에 대한 애정은 대단했다. 그러나 맹목적이고 비합리적이어선 안 된다는 거다. 그런 지역주의가 우리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도 100% 공감한다. 서울 사람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잘 모른다. 선거 때마다 균형이 갖춰지니까. 그런데 부산을 보면 완전히 한나라당 판이다. 이게 정상적인가. 견제가 안 된다. 호남도 마찬가지다. 유권자 뜻을 받들 필요도 없다. 공천 줄 사람에게만 충성하면 된다. 지역에서 불합리한 모든 문제는 지역주의로부터 생긴다.

→굳이 따지자면 영남과 호남, 어느 쪽 책임이 크나.

-책임은 영남이 져야 한다. 패권은 영남이 갖고 있었으니까. 영남이 우리 현대사에서 김대중 정부 시절 딱 한 번을 빼고는 줄창 권력을 쥐고 있었다. 마음을 열고 문제를 풀기 위해 더 앞장서야 하는 것이 영남 쪽이어야 한다.

→어떻게 푸나.

-선거 제도를 바꿔야 한다. 부산에서 한나라당 득표율이 50%대밖에 안 된다. 그런데 전 의석을 석권한다. 나머지 50%는 무소속과 민주당인데, 대표를 전혀 못 낸다. 대의성도 왜곡돼 있기 때문에 비례대표제를 생각해야 한다. 한편 호남은 특정 당의 득표율이 압도적이어서 비례대표로도 해결이 안 된다. 그래서 노 전 대통령은 한 정당이 특정 지역에서 3분의2 이상 당선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를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게만 되면 지역주의는 빠르게 넘어설 수 있다.

→내년 총선에 민주당이 부산에서 당선될 수 있을까.

-원래 부산은 전통적인 야당 도시였다. 3당 합당 이후 20년 동안 한나라당을 지지했던 부산 시민들이 지겨워하기 시작했다. 괜찮은 후보가 나서서 잘하면 벽을 넘어설 수 있다.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김정길 전 장관이 44.5%를 득표했고, 4·27 김해 재·보선에서도 이봉수 후보가 높은 득표율을 올렸다. 결국 우리 쪽에서 얼마나 좋은 후보를 내느냐의 문제다. 인물만 괜찮으면 지역주의를 넘어선다.


→그런 차원에서 문 이사장의 출마를 기대하거나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참 생각한 뒤) 현재 제가 갖고 있는 생각은 우선 다음 총선과 대선을 통해 정권교체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쪽에도 여러 후보들이 있다. 그런데 다 훌륭하지만 한분 한분 보면 한계가 있어서 ‘박근혜 대세론’을 못 넘어선다. 따라서 누구냐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 쪽이 힘을 모을 수 있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 개인별로는 박근혜 후보에게 부족하지만 야권통합 후보에 대한 지지는 더 크다. 다음 총선과 대선은 통합이 가장 중요하다. 통합이란 부분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할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참여가 요구되고 역할을 하라고 하면 그건 해야 된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정치 참여를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는 뭔가.

-잘 못할 것 같으니까 그렇다. 내가 괜찮게 평가받고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은 고맙고 과분한 일이지만 결국 정치권 바깥에 있어서 그런 거다. 막상 현실 정치 들어서면 그게 아니지 않나. 그때는 착한 역할만 못 한다. 현실 정치에 필요한 자질과 능력이 있다. 나는 그런 것들이 여러 가지로 부족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또 하나는 정치를 한다면 원칙을 지켜 나가는 정치를 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노 전 대통령이 절절하게 오랫동안 보여 줬다. 나는 도저히 엄두가 안 나서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출마를 안 하나, 아니면 아직은 결정을 안 내린 것인가.

-우선 대선을 예로 들었는데, 내가 나간들 문제없이 이기나. 나도 박근혜 전 대표에게 안 된다. 다 모여야 이긴다. 우선은 그런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선수로 나서는 건 아직 생각하지 않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는 언젠가 정치할 것 같나.

-그건 내가 말하기 적절하지 않다.

→저서를 읽어 보니 이명박 정부에 대한 원망이 많이 담겨 있더라.

-우리나라의 국가 리더십은 너무 대결적이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통합과 화합의 리더십이 필요한데, 이명박 정부는 그런 점이 없어 안타깝다. 대선에서 여유 있게 이겼는데도 포용하지 못하고 왜 그리 강퍅하게 적대하고 다시는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식으로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똑같이 복수하는 것이 무슨 복수겠는가. 노 전 대통령의 뜻대로 상생하고 통합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복수가 아니겠는가.

→민주당과 참여당, 민노당은 통합 인가 연대대상인가.

-나는 민주당, 참여당뿐만 아니라 민노당, 진보신당까지 포함해서 통합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다음 대선 과정에서 힘을 모으는 데도 가장 도움이 된다. 또 집권 이후 전체가 하나의 개혁을 추동하는 세력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군 복무 시절 사진이 인터넷에 돌더라. 군 복무가 인생에서 큰 의미를 갖나.

-젊고 감수성 예민한 시절에 3년을 보내는 것 아닌가. 공수부대라는 특수한 곳을 다녀왔다. 난생 처음 겪어 본 일들이 많다. 사격하고, 수류탄 던지고, 맨몸에 납벨트 매고 헤엄치고, 비행기에서 점프도 하고. 그런데 내가 근근이 그런 걸 해내더라. 그래서 새로운 일을 맡을 때 피하는 것이 아니라 한번 부딪쳐 보자는 낙관적인 생각을 갖게 만든 것 같다.

→요즘 어떤 책을 읽나.

-요새는 책 쓰느라 못 읽은 책이 잔뜩 쌓여 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문화유산답사기’, 유시민 대표의 ‘국가란 무엇인가’를 읽고 있다.

→TV도 보나.

-‘나는 가수다’를 본 적이 있다. 임재범씨가 아주 인상적이더라. 평소에 좋아하는 가수는 윤도현씨다. 록 음악이 별로 대중성은 없는데, 경연을 시키니 좋더라.  정리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문재인 "꼼짝 못하게 됐다"…대선출마 결심? 2011.6.15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현재 자신의 정치적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2012년 대선에서 '역할론'이 급부상하고 있는 문 이사장임을 감안하면, '고인의 뜻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의미라는 해석이다.

최근 이 처럼 대선 출마 여부를 두고 정치권의 관심을 받고 있는 문 이사장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2주기를 맞아 지난 30년간 노 전 대통령과 동행했던 발자취를 기록한 저서 '문재인의 운명'을 15일 출간한다.

특히 문 이사장은 책 말미에서 노 전 대통령과 함께 했던 자신의 인생과 현 상황에 대해 '운명'이라는 점을 언급, 향후 행보에 관심을 끌 만한 표현을 남겨 앞으로 본격적인 대선 행보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즉 자신이 직접 야권후보로 대선에 출마하거나 아니면, 노 전 대통령의 유지를 계승 발전시킬 수 있는 유력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킹 메이커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문 이사장은 "그를 만나지 않았으면 적당히 안락하게, 그리고 적당히 도우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치열함이 나를 늘 각성시켰다"며 "그의 서거조차 그러했다. 나를 다시 그의 길로 끌어냈다"고 밝혔다.

또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며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라고 심경을 전했다. 자의든 타의든, 노 전 대통령의 그림자 속에서 그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현실정치에서 손을 뗄 수가 없는 자신의 상황을 표현한 것으로도 읽힌다.

책 서문에서는 "이제 우리는 살아남은 자들의 책무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며 "그가 졌던 짐을 우리가 기꺼이 떠안는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라고도 했다.

책에서는 참여정부 당시의 비화에 대해서도 많은 내용이 소개됐다.

참여정부 조각(組閣) 당시와 관련해서는 노 전 대통령이 강금실 변호사에게 참여정부 첫 법무부 장관직을 맡기면서 '법무부의 비검찰화와 검찰 개혁'의 역할을 함께 맡겼던 것임을 밝혔다.

또 관용차에 대해 생소했던 이창동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첫 출근 때 차관과 기획실장을 자신의 차량으로 모시고(?) 출근하게 된 사연도 소개했다.

언론에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진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의 발탁은 전적으로 노 전 대통령의 아이디어였다는 점과 함께, 현 민주당 이용섭 의원을 인연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 초대 국세청장으로 발탁한 것은 자신의 아이디어였다고도 전했다.

당시 MBC 기자였던 박영선 의원을 자신이 청와대 대변인으로 추천했지만 다른 인물이 발탁돼 아쉬웠다는 점도 털어놨다.

최근에도 국회에서 논란이 됐다가 결국 무산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문제도 거론했다. 문 이사장은 "대검 중수부 폐지는 검찰의 탈(脫)정치, 정치중립을 위한 상당히 중요한 과제였다"며 "그러나 역설적으로 정치중립의 요구 때문에 손을 대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그 때 못했던 배경이 있다. 중수부 폐지를 본격 논의하기 전에 대선자금 수사가 있었다. 그 수사를 중수부가 했다"며 "대통령이나 청와대는 검찰이 정권 눈치 보지 않고 소신껏 수사할 수 있게 보장해줬다. 이 수사로 검찰이 국민들로부터 대단히 높은 신뢰를 받게 됐다. 그 바람에 중수부 폐지론이 희석됐다"고 밝혔다.

이어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중수부 폐지를 추진하게 되면 마치 대선자금 수사에 대한 보복 같은 인상을 줄 소지가 컸다"면서 "그 시기를 놓치니 다음 계기를 잡지 못했다. 아쉬운 대목"이라고 덧붙였다.

대북송금 특검과 관련한 노 전 대통령의 고민도 언급했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이 특검을 수용한 데 대해, 문 이사장은 "대통령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보다 그 수사로 인해 남북관계 근간이 손상돼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며 "그리고 그 점에서 특검이 검찰수사보다 낫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라크 파병과 관련해서는 당시 미국 일각에서 네오콘을 중심으로 대북공격설 등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대화를 위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어느 정도는 미국 정부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던 상황 때문이었음을 설명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와 관련해서는 '100% 국익 기준으로 해 이익이 되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 하는 것'이라는 노 전 대통령의 '장사꾼 논리'에 의한 것임을 밝혔다.

문 이사장은 "심지어 협상이 깨질 상황을 대비해 준비한 몇 개의 양보카드도 있었는데, 그걸 쓰지 않고도 협상을 매듭지을 수 있었다"면서 "이명박 정부가 상당한 양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야말로, 참여정부가 미국을 상대로 협상만큼은 꿀리지 않고 잘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자부했다.

2003년 가을과 2006년 가을께 문성근씨와 안희정 현 충남지사가 각각 북한을 다녀온 일도 공개했다.

문씨는 남북관계에 대한 진정성을 알리는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고, 안 지사는 북측에서 먼저 정상회담에 대한 제안이 와 확인차 방문했지만 더 이상 진척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동영 의원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사실 각별한 애정과 기대를 갖고 있었다. 뭐든 도움을 주려 했다"며 '결국 탈당을 통보한 모양새가 된' 양측의 회동을 소개하면서 "왜 그렇게 서둘러서 대통령과의 관계를 파탄시켰는지 모를 일"이라고 의문을 품었다.

현 정부에 대해 일침도 가했다. 그는 "(쇠고기 파동) 촛불시위의 배후로 (이명박 정권이) 우리를 의심했다는 얘기 역시 한참 후에 알게 됐다"며 "정말 놀라운 상상력이고 피해의식이었다"고 꼬집었다.

또 "뇌물로 받은 1억원짜리 시계를 논두렁에 갖다 버렸다는 '논두렁 시계' 소설이 단적인 예"라며 "사법처리가 여의치 않으니 언론을 통한 망신주기 압박으로 굴복을 받아내려는 것 같았다"고 비판했다.

언론과의 관계에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문 이사장은 "대선 국면과 맞물려 더욱 고전했던 일이 기자실 문제였다"며 "취지와 내용은 좋은 일이었다. 문제는 시기였다. 대통령에게 세 번이나 재고를 요청했다. 나중에 상황이 어려워지는 것을 보고 그 때 더 설득하지 못했던 게 후회됐다"고 언급했다.

박연차 게이트가 불거져나올 당시에 대해서는 "그 시기 대통령은 좀 이상했다. 평소 같으면 굉장히 야단을 치고 화를 내실만도 한데, 단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면서 "도저히 달관할 수 없는 일을 달관한 것처럼 보였다"고 회고했다.

검찰 조사 때의 상황과 관련해서는 "이인규 중수부장이 대통령을 맞이하고 차를 한 잔 내놓았다. 그는 대단히 건방졌다"며 "말투는 공손했지만 태도엔 오만함과 거만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고 밝혔다. 또 "검찰의 조사를 지켜보면서 검찰이 아무 증거가 없다는 걸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대통령은 나에게 '내 자신만 정치적으로 단련되었지, 가족들을 정치적으로 단련시키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며 "노 대통령 서거 후 상속신고를 하면서 보니 부채가 재산보다 4억원 가량 더 많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아직도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수첩에 넣고 다닌다는 그는 "대통령이 마지막 얼마동안 머릿속에 유서를 담고 사셨으리라는 생각이 지금도 나를 견딜 수 없게 한다"며 슬픔을 여전히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내 인생에서 노무현은 무엇인가. 잘 모르겠다. 하여튼 그는 내 삶을 굉장히 많이 규정했다"면서 "그런 점에서 운명이다. 그가 남긴 숙제가 있다면 그 시대적 소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밝혔다.

문 이사장은 이어 "하물며 나는 더욱 그렇다. 기꺼이 끌어안고 남은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며 자신에게 부여된 '시대적 소임'을 강조했다.

pjk76@newsis.com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14일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 및 참여정부 5년의 기록, 비화 등을 담은 책 `문재인의 운명`을 발간했다.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과 30년 동행한 발자취가 녹아 있는 이 책에서 문 이사장은 안희정 충남지사와 영화배우 문성근씨의 대북 접촉 등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도 공개했다.

특히 내년 총·대선을 앞두고 야권의 숨은 기대주로 주목받는 그는 책에서 "당신(노 전 대통령)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면서 "시대적 소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전했다.

◇대검 중수부 = 중수부 폐지는 검찰의 탈정치, 정치 중립을 위해 상당히 중요한 과제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정치 중립 요구 때문에 손을 대지 못했다. 중수부 폐지를 본격 논의하기 전에 대선자금 수사가 있었다. 그 수사를 중수부가 했다. 이 수사로 검찰이 국민들로부터 대단히 높은 신뢰를 받게 됐다. 그런 상황에서 중수부 폐지를 추진하면 마치 대선 자금 수사에 대한 보복 같은 인상을 줄 소지가 컸다. 그 바람에 중수부 폐지론이 희석됐다. 그 시기를 놓치니 다음 계기를 잡지 못했다. 아쉬운 대목이다.

◇안희정·문성근 대북접촉 = 안 지사는 2006년 가을 북측의 제안을 받고 한번 의논해 볼만한 사안인지 확인해보러 갔으나 별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아 국정원에 알려주고는 그걸로 끝냈고, 문씨는 2003년 가을 대통령의 친서를 갖고 북한을 다녀왔으나 정상회담 추진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북관계에 임하는 대통령의 진정성을 이해시키는 수준이었다.

◇대통령 서거 순간 = 2009년 5월 23일 새벽, 사고 소식을 접하고 양산 부산대병원에 도착했을 때 노 전 대통령은 인공심장박동으로 연명하고 있었고. 노 전 대통령의 모습에 대해 "차마 표현하기 어려운 처참한 모습이었다"고 했다. 얼마 후 도착한 권양숙 여사를 바깥에서 기다리게 한 채 의료진에 부탁해 상처를 봉합하고 피를 닦아내 권 여사는 그 모습을 보지는 않았다고 했다. 문 이사장은 노 전 대통령이 자살 나흘 전인 19일 오후부터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고 했다.의료진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의학적으로는 사망한 상태였다. 대통령님 상태로 보면 사고현장에서 바로 돌아가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유서 = 컴퓨터를 화면에 띄워놓고 다듬을 수 있는 글이 아니므로 대통령은 아무도 몰래 머릿속에서 유서를 다듬었을 것이다. "너무 많은 사람에게 신세를 졌다"는 첫 문장은, 나머지 글을 모두 컴퓨터에 입력한 후 추가로 집어넣었다.

◇참여정부 첫 각료 인선 = 당선인은 국민의 정부의 마지막 환경부 장관을 한 김명자씨를 건설교통부 장관으로 임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고건 총리 내정자와의 협의 과정에서 불발됐다. 언론에 충격을 줬던 김두관 행정자치부 발탁은 전적으로 당선인 아이디어였고, 이용섭 전 관세청장을 초대 국세청장으로 발탁한 것은 내 아이디어였다.

◇남상국 전 사장 거명 = 옥에 티는 그날 회견에서 대우건설 남상국 전 사장의 실명을 거명해 투신자살의 빌미가 됐다는 점이다. 내가 나중에 `그것은 잘못이었다`고 지적하자 대통령은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대통령은 처음에 실명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면서 그만 실명을 언급하고 말았다. 대통령도 그 사실을 확인한 후에는 두고두고 후회했다.

◇정동영 전 의장과 회동 = 열린우리당이 분당 위기로 치닫고 있을 때 대통령과 정동영 전 의장이 회동을 했다. 탈당 여부를 묻는 대통령의 질문에 그는 "당적 문제는 본질이 아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열린우리당이 깨질 위기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대통령에게 탈당하겠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도대체 왜 만나자고 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두 분의 만남은 뒤끝까지 좋지 않게 끝났다.

◇기자실 통·폐합 = 취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문제는 시기였다. 여러모로 무리란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에게 3번이나 재고를 요청했다. 대통령 의지가 워낙 확고했다. 나중에 어려워지는 것을 보고 그때 더 설득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문재인 대망론의 허와 실. 2011.8.2

대세론은 대안부재론을 부르고, 대안부재론은 대망론을 부른다. 지난 3년 박근혜 대세론이 독주하는 동안 야권은 대안부재론의 악몽에 시달려 왔다. 손학규, 유시민이 대안부재론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분전했으나 역부족이었다. 후보경쟁력의 두 핵심요소인 지지층의 충성도와 표의 확산성에서 박근혜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대안부재론은 대망론을 부른다. 대안이 없는 답답한 상황이 깊으면 깊을수록 대망론에 대한 기대도 높다. 그 결과 모든 대망론에는 거품이 끼게 된다. 2007년의 문국현 대망론이 그랬다. 문재인 대망론은 대망론의 구조를 두루 잘 갖추고 있다. 문재인 대망론의 핵심은 잠재력이다.

부산, 경남에 기반을 갖고 있는 문재인은 '호남 기반 당의 영남후보'라는 2002년의 '노무현 신화'를 재현할 최적의 후보로 평가된다. 응집력 강한 '노사모'도 지금은 서너개 집단으로 분립돼 있지만 적어도 문재인에 대해서만큼은 '조건 없는 지지'의 뜻을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정한 지역기반에다 충성도 높은 지지층이라면 2002년의 노무현보다 모자랄 것이 없다.
 

'마이너리티'와 '레드' 두가지 콤플렉스에서 자유로워

문재인은 노무현이 갖지 못했던 두 가지 요소를 더 갖추고 있다. 하나는 대학을 나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수부대를 나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문재인이 마이너리티 콤플렉스와 레드 콤플렉스로부터 원천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 점은 또한 보수세력이 노무현에게 가했던 이념적·사회적 공격이 잘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박근혜에 맞설 유일한 대항마, 노무현의 기적을 재연할 유일한 주자, 문재인 대망론은 이같이 상당한 논리적 근거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문재인이 대선 출마에 대해 어떤 구체적 언급도 하지 않았음에도 폭발력이 큰 이유도 문재인이 그저 좋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문재인이라면 박근혜를 이길 수도 있겠다'는 '계산'이 가능한 후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망론은 과연 땅에 단단히 발을 딛고 서 있는 것일까? 아직 그렇지 않다. 문재인은 그동안 '비정치의 정치'를 해왔다. 그가 노무현을 도와 정치에 뛰어든 2002년부터 문재인은 정치의 한복판에 있었지만 그는 정치를 하지 않는 듯 행동해왔다. 실제로 그는 수많은 출마 권유를 뿌리쳤고 지금껏 단 한번도 출마한 적이 없다. 정치입문 선언을 한 적도 없다.

그렇다고 대통령 민정수석, 비서실장을 거쳐 전직 대통령을 기리는 재단의 이사장으로 있는 지난 10년간의 행보를 정치가 아니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는 지난 10년간 정치를 해왔다. 그것도 정치의 한복판, 권력의 한가운데에서 해왔다. 그의 비정치적으로 보이는 언행과 행보가 정치를 하지 않는 것처럼 비춰졌을 뿐이다. 이것이 문재인의 매력이고 정치적 영향력의 비밀이다.


대선에 출마하려면 먼저 총선부터 나서야

정치 과잉의 시대, 정략정치가 판치고 정치 불신이 만연한 시대에 권력의 한가운데서, '비정치의 정치'를 해 온 문재인이 돋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비정치의 정치'는 여기까지다. 영향력의 정치도 더 이상은 안 된다. 이제 정치의 본령으로, 영향력이 아니라 권력의 쟁취를 위해 뛰어들어야 할 때다.

대선에 출마하려면 문재인은 먼저 총선에 나서야 한다. 혈투가 벌어질 총선 때는 조력자로 있다가 선거가 끝나자마자 대선에 나가겠다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총선 출마, 그것도 한나라당 텃밭인 부산·경남에서 출마하는 것은 문재인에게도 모든 것을 건 싸움일 수밖에 없다. 총선은 '비정치의 정치'를 통해 쌓은 영향력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벽이다.

문재인이 진정 권력의지가 있다면, 그의 '운명'이 정치에 있음을 처절하게 자각한다면 이제는 정치에 뛰어들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대망론의 거품을 걷어내고 후보 문재인의 경쟁력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고성국 정치평론가 정치학 박사. 내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