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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미. 색깔있는 강렬한 섹슈얼리티의 배우

로드365 2011. 6. 11. 18:54


[그 배우의 섹시그래피] 색깔있는 여자 오수미

종종 '2대 애마' 오수비와 혼동되기도 하는 배우 오수미는 한국영화사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성격파 배우이자 '운명의 여인'이었다. 지난해 한 예능 프로그램에 그녀의 남편이었던 사진작가 김중만이 나오면서 잠깐 환기되기도 했지만 오수미는 소수의 영화 팬들에 의해서나 기억되는 이미 잊힌 배우다. 하지만 그녀의 '색깔 있는' 인상은 좀처럼 잊히지 않을 강렬함이다. 

세기상사의 신인배우 공모전에 입상하고 < 어느 소녀의 고백 > (1970)에서 당대의 대배우 신영균을 상대역으로 주연을 맡으며 데뷔했을 때 그녀의 나이는 스무 살이었다. 이때만 해도 독특한 느낌이 있긴 했지만 오수미는 청순한 신인배우였다. 본명은 윤영희였던 그는 데뷔작에서 맡았던 역할의 이름을 예명으로 활동을 이어나갔고 한국과 홍콩이 합작한 액션 영화와 전형적인 통속 멜로의 히로인이 되었다. 

이때 운명처럼 만난 영화가 바로 < 이별 > (1973)이었다. 신성일과 김지미라는 최고의 스타와 함께 프랑스 로케이션으로 촬영된 이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사람은 당대 최고의 실력자였던 신상옥 감독. 23세의 여배우는 자신보다 24세 연상의 감독과 사랑에 빠졌고 두 아이를 낳게 된다(결국 신상옥 감독은 조강지처인 배우 최은희와 1976년에 이혼했지만, 이후 북한으로 납북되면서 1983년에 재결합한다). 

1975년과 1977년에 신상옥 감독의 아들과 딸을 낳으면서 오수미의 1970년대 하반기 필모그래피엔 커다란 공백이 생긴다. 그런데 신상옥 감독은 1978년에 납북되었고 이후 그녀는 싱글맘으로서 두 아이를 키우며 배우 생활을 해나간다. 서른 살 이후 그녀의 캐릭터는 그런 상황에서 만들어진 것이었고, 이 시기 오수미는 충무로에서 가장 독특한 이미지를 지닌 여배우였다. 

1980년대의 오수미는 20대 시절의 풋풋함을 걷어냈고 퀭하면서도 강렬한 눈빛과 한껏 부푼 퍼머 머리와 깡마른 육체가 그 자리를 채웠다. 당시 에로티시즘의 열풍이 불고 있었던 충무로의 글래머 스타 홍수 속에서 오수미는 독보적인 카리스마의 배우로 어필했다. 그는 그 시대의 유일한 요부였으며 남성을 끝내 파멸로 몰고 가는 팜므 파탈이었다. < 색깔 있는 남자 > (1985)는 그 정점이었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먹잇감을 절대로 놓치지 않는 독거미의 끈끈하면서도 축축한 느낌을 드러낸다. "색깔 있는 남자, 당신 날 흥분시켰어"라고 속삭이는 그 음산한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떤 '경지'다. 그러면서도 < 사람의 아들 > (1980)이나 < 서울 예수 > (1986) 같은 종교적 영화에서 인상적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동생인 윤영실과 공연한 <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 > (1982)도 화제가 된 작품이었다. 치정과 음모가 넘치는 이 영화는 당시로서는 드문 에로틱 스릴러. 국립무용단원 출신이며 모델로 유명했던 윤영실은 이 영화로 본격적인 배우 생활을 시작하는가 싶었지만, 1986년에 실종되었고 지금까지도 의문의 사건으로 남아 있다. 

1986년에 신상옥-최은희 부부가 북한에서 탈출해 남한으로 돌아오자 오수미는 두 아이를 그들에게 맡기고 배우로서 새로 시작하려고 결심했다. 하지만 동생의 실종은 그녀에게 큰 고통을 안겨 주었고 1982년에 재혼했던 사진작가 김중만과도 헤어지면서 오수미는 점점 더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는다. 마지막 작품은 '3대 애마' 김부선, 당시 각광받던 신인 오혜림 등과 함께 한 < 토요일은 밤이 없다 > (1987). 30대 후반이라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균형 잡힌 몸매로 출연하는데 작품적으로 주목받진 못했다. 

이후 약물에 의지해 살아가던 오수미는 1990년 대마초 사건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새로운 삶을 구상했다. 하지만 1992년, 하와이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녀의 나이 42세. 비극적인 죽음이었고 파란만장한 삶이었다. 

강렬한 섹슈얼리티의 소유자였지만 오수미의 눈빛은 항상 슬픔으로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운명의 굴레 속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다가 결국은 요절한 배우 오수미. 만약 살아 있었다면 올해 60세가 되었을 그 배우가 세상을 떠난 지도 20년이 다 되어간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  일요신문 | 2010.05.14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