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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지혁 : 참혹한 희망을 꿈꿔온 어느 산자의 유언!

로드365 2001. 12. 17. 06:01


나 차지혁, 오늘 이 세상을 떠날지라도

살아오는 동안 모든 神도 내겐 경쟁자였다.
누군들, 황금 잔에 물 마시고 산해진미가 일상인 금테자궁에서 태어나고 싶지 않았을 것인가? 어느 누가, 부모로부터 외면 받은 생명을 소망했을 것인가? 부모로부터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자신의 존재가 부정된다는 것은 죽음보다 더 큰 고통! 천리를 날아가는 사랑의 화살을 우박처럼 쏘아대도 정작 맞춰야 할 과녁이 없다는 사실이 주는 절망감만큼 사람을 암울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부정과 모정을 거세 당한 아가페의 이방인. 고아(孤兒)!  나라고 그 쓸쓸한 이름을 염원했을 리는 없다.

버려지고 싶다고 앙탈 울음을 우는 아이가 있던가? 그렇게 어머니의 가슴을 밀어내는 아이가 있던가? 축복을 면제 받은 탄생은 울음 터트릴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알 수만 있었다면 나는 탯줄을 향한 가위의 궤적에 목 울대를 내던져 질곡이 예정된 나의 생을 반납했을 것이다. 육순 외할머니의 쪼글쪼글한 가슴에 매달려 젖을 갈망해야 했던 유아기는 차라리 참을 만 했다. 그 당시는 미스코리아의 풍만한 젖무덤도 할머니의 체온 만큼 절실하지 않았으니까.

칠칠치 못한 친구의 고급 옷이 골목대장인 나의 힘보다 강하고, 그의 손에 쥐어진 장난감이 나의 총명함보다 월등한 역량이라는 사실이 주는 충격쯤은 대수롭지 않았다. 그러나 내 친구가 그의 젊디 젊은 아줌마를 부르는 호칭이 "엄마"이고 내가 나의 주름진 얼굴의 여성을 부르는 호칭이 "할머니"라는 사실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절망의 끝자락 을 보았다. 내가 버려진 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부모 없는 놈은 할 수 없다"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말 한마디는 비수가 되어 심장을 파고들었다. 치료약이 없는 고통, 현기증. 그것은 아무리 억지 울음을 울어도 해결되지 않는 갈증이었다. 나는 절망과 친숙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절망은 소년을 조숙하게 하고, 말수 없게 하고, 홀로 있게 했다. 혼자서 노는 가난한 아이의 유일한 위안은 공상. 오직 꿈꾸는 것만이 가난과 슬픔이 가득한 현실에서 사랑과 포옹이 가득한 이상 세계로 나를 이끌어 주었다. 내가 꿈 꾼 곳은 환경 때문에 꿈의 크기가 결정되 지 않는 낙원이었다. 부모가 있든 없든 모든 아이들은 행복할 수 있고, 그가 꾸는 꿈에 커트라인이 없는 세상이다. 나는 그 낙원을 만나고 싶었다. 동구 밖 장승만큼 키가 커지면 이 세상의 슬픔과 불행을 몰아내는 훌륭한 지도자가 되겠다고 다짐한 것은 철 모르는 시절의 열병 같은 꿈 때문이다.

그러나 울타리가 부실한 아이가 마주쳐야 하는 현실은 얼마나 냉정했던가. 9살 때부터 시작 된 남의 집 머슴살이, 돌아서면 허기지는 눈치 밥을 먹고 자라야 했던 천덕꾸러기. 그가 개척해야 하는 삶은 바닷물 보다 짜고 겨자보다 매운 우울한 풍경화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미 새의 보살핌 속에 자라지 못한 어린 새가 거의 살아 남지 못하는 것은 그의 입에 들어 가는 벌레가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하늘 유영이 본능인 그에게 날개 짓을 가르쳐줄 스승이 없었기 때문에 살아 남지 못하는 것이다. 활로는 오직 야생의 근성 뿐. 천길 벼랑으로 떨어 졌을 때나 세찬 비바람이 몰아 칠때나 본능이 이끄는 야생의 날개짓이 유일한 대안일 뿐이 다. 허기진 배는 고통스러운 만큼 야생의 본능을 자극하는 힘. 나는 그 힘에 의지하여 살았다.

시장바닥 냉차장수의 박리다매 원칙을 배워가며, 반드시 살아 남는다는 것(生殘)은 위지를 곧추 세우는 원동력이 됐다. 구두닦이도 굶지 않으려면 시커먼 한 밤중에도 부지런을 떨어야 하고, 빌어먹는 거지도 '어떻게 하면 더 잘 얻어먹을 수 있는가'하는 마키아벨리적 술수의 마케팅을 연구한다는 사실을 체득해 나갔다. 울타리 튼튼한 사람이 미래를 보고 있을 때, 소년은 하루하루 이어지는 생존 전쟁을 치룬것이다. 아귀같이 살았고 잡초처럼 살았다. 일을 하지 않으면 빵을 얻을 수 없는 정글의 법칙은 그가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랐던, 받지 않고 자랐던 추호도 예외가 없는 것이다.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 미래가 없다. 남들이 인맥과 학맥을 쌓기 위한 투자를 할 때 내가 뜻모를 포춘지를 끼고 번역소를 들락거린 것은 나 역시 무엇인가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해야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학력은 짧아도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기에 나는 손에 잡히는건 무엇이든 읽어댔다. 책이든 신문이든 닥치는 대로 끼고 살았던 것이다. 저수지에서 고기를 잡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막고 품는 것이다. 두 팔 걷어 붙이고 물통 하나로 저수지 가득한 물을 끊임없이 밖으로 퍼내는 것이다. 육체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붇는 무지막지한 작업. 누구나 인생의 한 순간은 막고 품는 방법만 이 유일 대안인 순간이 온다지만, 나는 그 순간을 철모르는 어린 시절에 만난 것이다.

막고 품자! 생각한 것은 곧바로 실천해 옮기고 막히면 머리통을 들이 밀어서라도 뚫자! 그 신조 덕분에 나는 무모하리만큼 많은 일에 도전 했고 무수히 부서지고 깨졌다. 시행착오 없는 원숙함이 어디 있던가. 치기어렸던 나의 발상은 현실의 벽에 깎이고 다듬어 지면서 윤이 나기 시작했다. 시장의 흐름을 읽는 안목을 키워내고 구체적인 방법을 도출해내는 데는 현장 체험만한 스승이 없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의 욕구가 어느 곳으로 이동하는지를 본능적으로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다. 남들이 책상머리에서 세상을 배우고 있을 때 나는 머리 터지는 실전의 경제를 익혔던 것이다. 나도 성장하고 있었다. 2+3=? 이라고 물어보는 획일화된 교육에서 열외 되었다는 사실은 어쩌면 나에겐 축복이었다. 역으로 5라는 숫자를 놓고 그에 이르는 온갖 경로를 찾는 역발상을 강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역발상은 고정관념을 넘 어서는 컨셉. 고정관념, 그것은 다른 경로의 탐색을 포기하는 버릇을 길러주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다. 남들이 가는 길로만, 발견된 정답으로만 가야 한다는 의식을 심어주기 때문에 도전이 없고 발전이 없는 것이다. 이미 발견된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후발주자를 자청하는 것. 그런대도 사람들은 매번 사고의 오류를 범하고 만다. 그것은 잘못된 사고방식이다.


승전가를 임신할 줄 모르는 낡은 깃발이 되고 싶지않다.

남들이 이미 장악한 시장에 뛰어드느니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시장을 장악하는 것의 부가가치가 천만배는 크다. 게다가 시장은 또 얼마나 무궁무진한가! 공기 캔이며 별 분양 등과 같은 감성 상품에서부터 광고는 곧 돈이라는 개념에 부합되는 시스템적인 것까지 손만 대면 열리는 시장이 지천이다. 자신의 이해에 따라 움직이는 소비자와 그 소비자의 욕구를 자극 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생산자의 이해를 조율하는 다양한 방법과 경로 하나하나가 곧 별개의 시장인 것이다. 발견된 정답 이외는 재고의 여지가 없다는 태도야 말로 이 나라 이 민족의 미래를 차단하는 바리케이트인 것이다. 자신 뿐 아니라 타인의 미래도 앗아가는 것이 바로 고정관념이다. 나를 그 고정관념과 맞서 싸우라고 주문한 것은 바로 운명의 신이었다. 신이 내게 허락한 유일 무기는 창의력. 자유사고의 방패가 될 실천력은 나 스스로 조달할 몫이었다. 부딪히고 깨지고 현실에서 만나는 숱한 고비들은 나의 자유사고에 균형을 잡아주었고, 어떤 시장도 가공해 내는 힘을 붙게 했다. 비로소 나는 창의적 사고의 날개를 가진 것이다.

내 나이 마흔 하고 둘. 버려진 어린 새가 이제 중년의 맹금(猛禽)이 되었다. 5%에 불과하다 는 벤처기업 생존율 보다 더 가는 바늘 귀를 통과해 확실하게 살아남은 것이다. 무수한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풍부한 경험을 통해 나는 눈을 감고도 공기가 흐르는 길목을 감지해 내는 강인한 생존력이 생긴 것이다. 그것은 '희대의 사기꾼'이라는 오욕의 이름이거나 '천재 기획가'라는 영광의 이름이거나 상관없이 어떤 조건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는 추진력이다.

환경이 강요하는 운명에 길들여 지지 않기 위해 치른 대가도 컸지만 그에 따른 반대급부도 얼마든지 컸던 것이다. 남들에게는 강요되지 않는 무수한 통과의례를 거쳐 난 내 힘으로 살아 남았다. 그 눈물 마르지 않는 시련의 길목을 무단으로 횡단해 오면서 나는 억지도 부려야 했고 반칙도 해야 했다. 누군가 나에게 그 책임을 묻는다면 정식으로 사과 올리고 싶다. 명문대학 출신들이 전화 한 통화면 해결될 일을 수년 동안 몸부림을 쳐야 겨우 한 과정의 능선을 넘을 수 있었던 나에게 절대적 도덕률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목이라도 내놓을 용의가 있다. 다만 그 잘못이 나의 타고난 천성에 연유된 것이라는 오해만은 사양하고 싶다. 남들이 말하는 억지와 반칙이 나의 정론이요, 정공법일 수 있는 것이다.

나에겐 "선배 나 이것 좀 도와줘!"라고 전화할 인간 병풍이 없었다. 나의 발상과 기획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도 없었다. 초등학교 수료 출신의 논리에 설득되는 것이 마치 십 수년 대학공부를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만 가득했던 것이다. 공들려 배웠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더욱 보완해줄 수 있고 더 가공해 줄 수도 있으련만 그네들은 한사코 안 되는 이유만 열거하기에 바빴다. 상대의 동의를 구하지 못하면 그 증명의 책임은 제안자의 몫. 나는 한 사람을 얻기 위해 또 하나의 능선을 넘어야 했다.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내가 그에게 새로운 컨셉을 제안했던 이유는 그의 조력을 얻기 위함이었거늘 종국 에는 그 조력자의 동의를 얻기 위한 또 다른 조력자를 구해야 하는 아이러니에 빠진 것이다. 늘 그런 식이었다. 나의 빈약한 배경과 일천한 학벌이 그들의 자세를 진지하게 만드는 데 장애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가 단 한번만이라도 마음을 열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면, 그래서 그 사안에 대한 가능성을 좀 더 따뜻한 눈으로 보아 주었다면 우리는 온 세상이 놀랄만한 대박을 터트릴 수 있 었으련만 나는 늘 외사랑에 함몰되고야 만 것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있는가. 새시대를 열고자하는 본능을 거스를 수 있는가 말이다. 나는 한사코 조력자를 설득시킬 수 있는 또 다른 조력자를 찾아 나서곤 했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 그 또 다른 조력자마저 온전히 나를 받아주지 않았을 때, 나는 참으로 좌절했다. 첫 단추가 꿰지지 않으므로 인한 악순환. 나보다 월등한 환경에 있는 경쟁자들은 속속들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일어나자! 동아줄 튼튼한 저들의 꿈만큼 나의 꿈도 소중하지 않은가. 그래 다시 일어서자. 눈물이 사치스러울 때는 주저앉아 우는 때다. 다 포기해버린 듯한 편한 자세로 우는 눈물이다. 나는 그럴 수 없다. 눈물도 달리면서 흘릴줄 알아야 한다. 이 세상 험한 줄 처음 알았던가. 뛰자. 걷기라도 하면서 울자. 몸이 꽁꽁 묶여 옴짝할 수 없다 할지라도 의식만은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야 한다! 눈물의 붓기가 빠지면 피식 웃음도 나온다. 내가 누군가. 나는 자유사고인이다. 아예 나는 일상의 관념을 뛰어넘는 컨셉을 준비해서 들고 다녔다. 배포가 없는 놈은 들기에도 힘겨운 컨셉, 부탁이 아니라 당당함으로 다가갈 수 있는 컨셉을 가공한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편법이나 반칙도 새로운 시장을 여는 또 다른 출발점임을 납득시킨 것이다. 힘든 작업이었지만 성과는 있었다. 가뭄에 콩나듯 죽이 맞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90년 단돈 2만3천원으로 창업, 원년 매출 1천5백억원 대를 달성한 자동차 종합관리 대행사 트리피아는 그렇게 이뤄진 신화였다. 모든 것을 소비자에게 돌려 줘 버린 후에도 이윤을 남기는 컨셉의 힘이었다. 나는 증명해 냈고 꿈을 향해 한 발자국 다가섰다. 그러나 이내 좌절을 해야했다. 내가 열고자 하는 시장이 허구가 아니라는 것에 천하를 경작할 파트너가 되어 줄 사람들이 슬슬 꼬리를 감춘 것이다. 수년간 한길로만 다가 온 그들로선 존립 기반을 잃게 될지 모른다는 경계심리가 발동한 것이다. 나의 천성이 남의 것을 빼앗지 못해 안 달하는 것도 아닌데. 천하를 훔치고자 하는 사람은 작은 시장에 연연하지 않음을 알았을텐 데. 한사코 손 내밀어 주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 가슴이 저려왔다. 내게 있어 시절인연 맺기 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다가가고 다가가도 한사코 외면하는 편견의 시도(視刀)에 나는 매일 매일 지쳐간 것이다.

사이비 청년이 아니기에 허공처럼 깊고 시신처럼 마비된 불량한 꿈을 꿀 수 없다.

솔직히 눈물 나도록 힘겨웠다. 수없이 쓰러지면 일어나고, 무너지면 다시 재기하는 20전 21기. 완전히 끝났다고 행각했는데 다시 일어나고. 정말 이제는 끝장났다고 선언하는 그 순간에 다시 일어나는 나를 사람들은 "도저히 상식적으론 이해가 안 되는 놈"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쓰러져도 다시 일어난다는 것이, 더구나 실패한 전력을 가진 사람이 또 다시 재기한 다는 것이 과연 말처럼 쉬운 일인가?

횟수가 거듭될 때마다 뼈가 부러지고, 등골이 휘어 오장이 짓뭉개지는 아픔을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허기진 위장을 거슬러 오르는 쓴 물까지 바닥이 나도록 자신을 몰아세우는 일이요, 충혈된 두 눈을 파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며 꺼칠한 입안에 밥알을 우겨넣는 비애감을 삼켜야 하는 일이다. 나는 그런 고통을 수없이 반복하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나도 사람이다. 막 굴려온 육체일 망정 쥐어짜면 선홍색 피가 배어 나오는 인간이다. 일그러진 얼굴만 아픔을 느낀다고 어떻게 단정 지을 수 있는가? 남들이 보지 못한 눈물의 역사도 있고 애초에 반납했어야 할 삶을 한사코 부둥켜 안고 가는 이유도 있는 법이다. 왜 나라고 고통을 모르며, 왜 나라고 눈물이 없겠는가! 내 가슴에 새겨진 상처는 결코 자해의 흔적 이 아니다. 숱한 불신의 칼날이 왔다간 흔적이고, 무수한 편견의 창이 뚫고 지나간 궤적이다. 눈을 감고 던져도 꽂히는 표적. 그것이 바로 가진 것 없는 주제에 너무 큰 꿈을 꾼 죄목을 가진 나 차지혁의 또 다른 이름인 것이다. 누가 무슨 명목의 편견의 칼과 불신의 창을 던졌느냐고 묻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비아냥이고 그것이 곧 편견이건만 나는 그 대답을 한다. 사람들은 내가 시대를 열어가곤 하면 이렇게 이야기 한다. "또 무슨 사기를 치려고". 나와 함께 천하를 도모하고자 모인 동지들을 보고는 "차지혁, 그 놈이 교주는 교주인 모양일세"라고 말한다. 그것이 편견의 출발이다. 사업을 진행하면서 우리의 에너지를 알리고자 언론을 만나고자 하면, 그들은 한결같이 "언론을 이용해 무슨 짓을 할려고?"라고 입을 모은다. 임직원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 모습이, 서로서로에게 의지하고 북돋는 모습이 신흥 종교고, 개개인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내가 교주라면 전세계 모든 기업은 나와 미다스칸을 벤치마킹해야 하지 않겠는가. 시대인들의 가슴에 달려가는데 가정방문을 할 수 없다면 널리 알리는 사람을 찾을 도리밖에 없지 않은가. 미운 놈은 무엇을 해도 밉고, 고운 놈은 무슨 잘못을 해도 곱다는 법칙이 왜 영원불멸의 법칙이 되어야 하는지 피눈물로 되묻고 싶다.

돌이켜 보자. 십 수년 전 나에게 희대의 사기꾼이란 오명을 굴레 씌운 공기 캔, 아마존과 같은 인터넷 서점, 별 분양 프로젝트, 제휴카드, 광고는 돈이란 개념의 비즈니스 모델 등등이 현실로 이뤄졌을 때, 어느 누가 "그 시장의 원안자는 차지혁이다"고 말해주었는가! 벤처 캐피탈이든 뭐든 남의 돈으로 사업을 하려는 도둑놈은 이 사회에서 격리 시켜야 한다고 떠들던 사람들에게 오늘의 벤처 시대에 대한 의견을 묻고 싶다.

"나 아이템 있습니다. 투자 좀 해주십시오"라고 말하는 모든 벤처의 앞길을 막아서라! 그들은 지금 희대의 사기꾼이 걸어온 전철을 밟고 있지 않는가!

이제와서 누구의 잘못이었는가를 따지고 싶지는 않다. 이미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는 이유로 편견 받아야 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비록 10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지만 내가 예견했던 아마존과 같은 온라인 서점에 문전성시를 이루고, 비록 남의 나라 사람일망정 밤 하늘의 별도 충분히 가공할 수 있는 상품이라는 것이 이미 입증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앞서간 자의 자존심을 보상받았다. 이젠 강한 조국을 건설하기 위한 미래만 남은 것이다.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을 키우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나의 자유사고는 6년3개월의 수인생활 속에서도 결코 사그러들지 않았다. 하루가 다르게 벤처강국으로 성장해 가는 사회의 변화를 지켜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오욕의 이름을 벗을 수 있게 될 날을 기다려왔다. 너무 앞서갔다는 이유로 편견 받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맞을 준비를 해온 것이다. 사방이 가로막힌 먹방 안에서 나는 쇠사슬에 감겨 신음하던 희망이란 놈을 깨우기 시작했다. 뼈만 앙상한 그 놈을 부둥켜 안아 세우고 미음을 떠다 먹였다. 틈이 나면 교도소 운동장으로 데려가 운동도 시키고 '결코 여기서 주저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며 머리를 흔들어댔다. 분초가 다르게 변화하는 바깥 세상에 더 이상 뒤쳐져 있을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나는 투여 가능한 모든 시간을 책과 신문에 쏟아 부었다. 특히 신문에 실린 광고는 거의 하나도 빠짐없이 읽어댔다. 무릇 광고란 현재까지 가공된 마케팅의 정수요, 미래를 열어가는 사람들의 현주소를 알려주는 좌표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광고를 보고 바깥 세상과 호흡을 맞추었다. '이 시장은 이런 컨셉보다 이렇게 열면 더 파괴적이었을 텐데', '아, 여기까지 마케팅이 왔구나' 가상게임만으로도 나의 창의적 생산라인은 충분한 예열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1,300개도 넘는 많은 아이템을 가공했다. 벤처시대를 향한 조급함이 나를 잠 못들게 만든 것이다.

후원회의 도움을 받아 수인신분으로도 유래 없이 인터넷 개인 홈페이지도 열었다. 그리고 출소 5일전, 빠른 우편 요금 340원과 인지대 60원을 지인에게 보내 단돈 400원짜리 회사를 차렸다. 그것이 미다스칸이다. 그리고 99년 1월5일, 나는 다시 세상 속으로 돌아왔다. 유예 되었던 제1호 벤처인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이 땅에도 힘없고 가난한 자의 꿈이 꽃 피울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출발점에 선 것이다.

6년 동안 나를 지원해 준 후원회 사람들도 만났다. 그들과 재기를 위한 세부 계획을 준비했다. 빈약한 자본과 열악한 환경. 맨주먹으로 출발하는 사람들의 고민이 고스란히 대두됐다. 그러나 가장 고민되었던 부분은 돌아온 탕아, 나 차지혁에 대한 거취문제였다. 벤처시대가 열렸다고 하지만 사람들의 인식 속에 나는 여전히 위험한 발상을 하는 사람일 수 있기 때문에 전면에 설 것인지 아니면 어느 시점까지는 후방에서 지원사격을 할 것인가 망설였던 것이다. 나도 전면에 서기는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후원회의 중론은 나의 뜻과는 무관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어차피 편견의 관성이 붙은 사람들에게는 언제고 간에 "저 회사는 차지혁이 조종하는 회사"라는 불신의 발톱을 세울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오해는 불신을 낳고 그 불신은 대세를 망치는 법. "차라리 정면승부를 해보라"는 주문이 결론이었다. 그렇게 전면에 선 나는 목숨을 건 재기전을 치르게 되었다. 한편으론 이제는 혁명적 사고가 편견의 구실이 되지 않을 것이란 기대감이 일기도 했다. 과감하게 포승줄에 묶인 수인복 사진을 내걸고 광고를 해서 함께 천하를 도모할 80여 명의 창업동지들을 모았다. 그리고 의욕적으로 일을 시작 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눈 터지도록 일에 매달렸다. 99년 6월 창업 이후 출원한 특허가 40여 개. 하나 하나가 새로운 시장을 경작할 무기가 되고, 세계시장을 장악할만한 위력을 가진 것들이다. 무엇을 들고 세상과 겨룰 것인지 준비를 끝낸 다음 수순은 실행할 자본을 모으는 일. 차지혁 이름 석자를 걸고 인터넷 주식공모를 했다. 문의 전화가 빗발쳤고 격려의 메시지가 쇄도했다. 4배수 청약에 2배수 입금. 망가진 자에게 보내주신 세상 사람들의 성원은 참으로 뜨거웠다. 내 눈시울도 뜨거웠다. 힘없고 못배운 사람들을 봐서라도 반드시 성공해 달라는 당부에 내 눈시울도 뜨거워졌다. 마침내 벤처시대. 그토록 열고자 했던 자유 사고의 신세계. 온갖 상처를 무릎 쓰고 고난의 능선을 달려온진 10년 만에 비로소 푸른 창공을 만난 것이다.

그런데. 호사다마라던가. 코스닥 등록에 관한 요건이 바뀌는 길목에 실시된 미다스칸의 주식공모는 인터넷 공모 한계선인 10억원을 1천만원 초과해 버렸다. 공모를 통해 모은 금액 은 7억7천만원에 불과하지만 80명의 창업동지들이 출자한 2억원의 자금이 공모로 해석되는 통에 1천만원을 초과한 셈이 돼버린 것이다. 임직원 모두가 함께 창업한 동지인 만큼 한 주 씩이라도 나눠 갖자며 출발한 동참운동이 불특정다수(50인 이상)에 의한 공모로 해석될 줄 은 꿈에도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다. 단초가 된 빌미는 작았지만 결과는 엄청났다. '희대의 사기꾼'이란 오명을 가진 이가 10억원이 넘는 주식공모를 했다는 것 자체가 두들길수록 맛이 나는 북어요리였던 것일까? 4대 방송사와 19개 일간신문의 십자포화가 이어졌다. 사기 인터넷 주식공모의 대표적인 기업, 미다스칸. 그들의 괴수 차지혁! "여러분 조심하십시오!" 딱 그 짝이었다. 소명기회나 반론권의 기회는 원래부터 해당 사항이 없는 사안이었는지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고 쓰는 기자가 없었다. 그저 손발 묶인 포로처럼 '희대의 사기꾼'에다 당대의 '인터넷 사기꾼'으로 몰려버린 것이다.

금감위가 조금 더 자세하게 행정지도를 해줬으면 하는 아쉬움도 없지않다. 사후조치에 대한 부분도 대동소이하다. 비록 미다스칸의 실수가 사실이라 해도 고의성이 없다면 따끔한 행정 지도만으로도 충분했을터인데 검찰 고발 조치를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과하다는 마음이 안 들 수 없다. 너무 나갔다는 생각이 든다. 경위야 어찌되었든 주주님들에게 죄송스럽다. 좀 더 준비되고, 좀 더 조심스럽게 사업을 진행했어야 하는 데 사소한 실수로 너무 많은 심려를 끼쳐드렸다.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싶다. 미다스칸 임직원들에게도 면목이 없다. 한창 추진 중이던 제휴사들과의 결별과 투자 규모를 결정하고 있던 캐피탈과의 협의 중지. 밤낮을 달려 땀 흘려 온 결과물들이 한 순간에 무너져야 했으니 얼마나 상심이 컸겠는가. 그들의 잘못이라면 오로지 한 가지. 흠결 많은 오너를 만났다는 것 뿐이다. 그런데도 그들까지 함께 망가져야 했으니 실로 참담한 마음이다.

언론인들이여, 내 운명에 힘찬 입맞춤으로 뜨거운 시대정신의 자국을 파줄 수 없는가!

원치않는 결과였지만 금감위를 원망하고 싶지는 않다. 벤처 열풍에 편승한 많은 기업들에 대한 금감위의 우려는 당연한 것이다. 수익도 발생시키지 못하는 비즈니스 모델의 주가가 수백만원이 되고, 회원만 많으면 천정부지로 치솟는 현실. 매출액이 100억 수준인 회사의 자산가치가 십 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제조회사의 자산가치에 비견되는 사회현상이 우려되고 염려되었을 것이리라. 언제고 거품이 빠지면 그 손실이 나중에 주식을 매입한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것이라는 우려는 충분히 납득이 된다.

이런 금감위의 인식에 미다스칸의 시장진입이 부담스러운 이해 관계자들의 직간접적인 이야기들, 생경한 미다스칸의 광고 컨셉, 미다스칸을 위험한 기업이라는 인식을 주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다만 어떤 연유에서든 우리 측이 해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어야 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가 가공한 비즈니스 모델이 어떻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고, 왜 세계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것인지 피력할 기회쯤은 있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미다스칸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부도덕한 기업이 아니라 이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가장 확실한 벤처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어떤 전문가가 검증한다 해도 자신 있다. 수익구조면 수익구조 파괴력이면 파괴력, 오너의 위기돌파 능력이나 직원들의 맨파워 등 어느 항목을 따져봐도 자신 있다. 지금이라도 기회만 주면 나는 그를 입증해 보일 수 있다. 그런 연후라면 어떤 결과라도 승복할 수 있다.

우리는 지난 2월 26일자 중앙일보 보도를 접하면서 복잡한 심경을 감출 수 없었다. 그 기 사에는 10억 공모 제한을 넘어서 26억을 공모하고 그나마도 개인이 유용한 기업가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에게 벌금 4천만원에 처해진 사실이 담겨져 있다.

미다스칸은 비록 행정적 착오를 범하기는 했지만 주주를 미혹시키려는 일체의 의도가 없는 경우다. 만약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면 공모금액 7억7천만원을 웃도는 15억원의 주식 청약금을 배수 계산으로 환원시켰을 리가 없지 않은가. 물론 우리가 미비한 점에 대해 얼마 든지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인터넷 공모의 전형적인 사기 모델로 규정되어지는 것은 단호히 거부한다. 언론의 입장 또한 이해는 간다. 금감위라는 정부기관의 보도자료니 만큼 그를 그래도 게재하는 것이 큰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란 판단이 무조건 잘못됐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언론의 본분에 합당하게 반대쪽 입장에 대해서도 해명할 기회를 주었더라면 하는 바람이 없을 수는 없다. 이번 사안만큼은 방대쪽 입장에 대한 해명의 기회를 부여하지 않은 것은 사실 이례적인 경우가 아닌가. 더욱이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신생회사의 입장 에서는 그 소명의 기회가 너무도 절실할 수 밖에 없는데, 그 또한 차지혁이라는 이름 때문 에 생략된 것인가? 기자정신으로 검증해 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야 해명할 부분은 해명하고 인정할 부분은 인정할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런 기회 조차 갖지 못하고 십자포화를 맞아야 한다면 어찌 억울 하지 않을 것인가. 언론의 보도 한 줄이 사형선고와 같을 수 있음을 헤아려줬으면 한다. 흠결 많은 오너를 갖고 있는 임직원들과 주주들이 감수해야 할 대가치고는 너무나도 큰 것이다. 다른 기업들의 아이템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참으로 많은 스포트 라이트를 비춰주던 언론이 유독 미다스칸에게는 철저히 외면하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이 땅에 벤처시대는 언론이 이끌어 준 것임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그 많은 온라인 업체 가운데 몇 개의 아이템이 수익을 남기고 있고, 그것의 실질 가치가 얼마쯤 되는지는 언론인 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다고 본다. 그래서 더욱 그들의 검증을 받고 싶은 것이다. 전문가의 시각으로 가망이 없다면 정말 투자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사형선고를 내 려달라. 판단해 보고 가치가 있고 비전이 있다면 우리 비즈니스 모델도 널리 알려 주었으면 한다. 적어도 기획에 있어서만큼은 독보적이라는 차지혁이 숨가쁘게 주장하는 것이라면 한 번쯤 들여다 볼만하지 않은가!


차지혁의 명예와 목숨을 건 사업설명회

우리는 2월18일 인터콘티낸탈 호텔 전관에서 명예와 목숨을 건 사업설명회를 열면서 이 시대의 모든 양심들과 벤처 전문가 그리고 식견있는 언론인 여러분을 초청한 바 있다. 언론보도 7일만에 치른 행사를 놓고 금감위에 대한 반발로 해석하는 분들도 많았지만 원래 그 자리는 21세기 전자상거래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it's MK)에 대한 설명의 장으로 준비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2월11일 보도에 대한 공개 검증의 장 성격을 가미한 것일 뿐이다. 언론에 십자포화를 맞은 기업이라 행사장이 매우 썰렁할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성원은 뜨거웠다. 1800명의 청중과 1천여명의 네티즌들이 공개 검증의 장에 입장했다. 여러 차례의 중간 박수. 몇몇 주주들은 자발적으로 이번 사안에 대해 '우리 주주들은 미다스칸에게 미혹되거나 속지 않았다'는 내용의 서명 운동을 벌여 400명이 넘는 주주님들의 명단을 가져 오기도 했다. 너무도 감사한 주주님들이다. 행사는 훌륭하게 치러졌으나 언론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했다. 당일 행사장에 참석한 몇몇 기자들은 기업 설명회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도 정작 정정 보도에 가까운 기사를 내 보낸 곳은 YTN뿐이었다. 아직도 차지혁이란 이 름은 이 세상에 있어 뜨거운 얼음이고 한사코 외면하고 싶은 풍경인 것일까?

나, 여기까지 오기에도 참으로 힘겨웠다. 아무리 좋은 비즈니스 모델을 가공해 놔도 널리 알리는데 남보다 두 배 이상의 노력과 몇 매 이상의 비용이 들어갔다. 만드는 것도 알리는 것도 자력으로만 해야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디어 수준의 아이템에게 부여되었던 수 십번의 조명 가운데 한 번만, 단 한번만이라도 우리에게 할애가 되었다면 미다스칸은 편견을 받지 않을 수도 있었다. 국내외를 막론해서 최고로 꼽히는 어떤 비즈니스 모델과 한 번 만이라도 키재기를 시켜주었더라면 분명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 것을 알 수만 있다면 이 땅의 국민들도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우리를 보아 주었을 것이다.


세계 모든 금융인들을 경악케 할 연리 67% 물품구매적금 특허출원

세계인의 성원을 받을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은 창의적 자유사고만이 가능한 것이다. 그것이 어느 분야든간에 상상 가능한 모든 것들을 가공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컨셉 하나로 전 세계에서 가장 이율 높은 금융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연리 67%의 금융상품, 이른바 물 품구매 적금이 바로 그것이다.

보자, 사람들이 적금을 붓는 것은 목돈을 만들기 위해서다. 또 그 목돈을 만드는 목적은 노후보장이나 주택자금 아니면 혼수용품을 사기 위해서다. 노후보장도 소비요, 주택자금도 소비의 일부가 확실하다면 결국 일반인이 모으면 대부분의 돈은 소비생활을 하기 위한 자금으로 집행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금융상품은 9백 몇 십만원의 적금을 부어야 1천만원의 목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물품 구매적금은 컨셉이 다르다. 아예 처음부터 소비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가공된 것이다.

만약 소비자가 1년 뒤의 소비를 예약하고 미리 돈을 낸다면 이를 거절할 생산자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생산자는 일반 총판을 통해 상품을 보급할 경우 치러야 30~40%의 유통마진 정도는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소비자 개개인을 총판 대리점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럼, 이 양자를 은행을 매개로 해서 시스템화 해보자.

먼저 생산자는 1년 후 구매를 조건으로 30~40%의 할인율을 보장한다. 은행은 위의 조건을 고객에게 제시할 수 있는 적금 상품을 만든다. 소비자는 자신이 구매할 총금액에서 30~40%를 제외한 금액만을 매월 분할 납입한다. 1천만원 어치 혼수용품을 사고자 하는 사람이 40%의 할인율이 적용된 '모모가구 물품구매 적금'에 가입하면, 총 600만원만 내고도 1년 뒤에는 1천만원어치의 물건을 구매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400만원은 이자와 같은 수익이다. 은행금리로 따지면 67% 정도, 30%의 할인률이 제공되는 브랜드를 선택한 경우라 면 700만원을 불입하고 1천만원의 상품을 상 수 있게 된다. 이자율 43% 선, 만약 1년 뒤에 해당 브랜드가 세일을 하고 있다면 당연히 추가 보장이다. 소비자는 무조건 이익이고, 은행은 수신고가 엄청나게 올라갈 것이며 2% 정도의 상품 수수료만해도 상상을 초월한 액수가 된다. 왜냐하면 기존 은행은 고객에게 7~9% 이자를 보장하고 기업에게는 10~11% 에 대출을 해주므로 결국 영업이익은 2~3%인 것이다. 은행은 소비자의 효용을 촉진시켜주기 위해 고객이 일정기간 이상 적금을 부으면 자동으로 대출을 해주는 시스템을 제공할 수 도 있다. 대출이자만큼은 추가수입이 되는 것이다. 기업체 입장에서도 이 상품의 반응은 상당할 것이다. 이 적금 상품의 경우는 설계도 도면이 나오기 전에 미리 물건을 판매하는 컨셉이기 때문이며, 고객의 돈이 매월 실시간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자금의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수수료 2% 정도를 은행에 지급해야 할 이자라고 생각한다면 기존의 11% 짜리 은행자금을 담보도 없이 2%에 유치해온 것과 같은 효과를 갖는 것이다. 또한 생산라 인의 효율적 관리와 재고부담의 감소, 원자재 대금의 현금 결재를 통한 추가 할인폭 등은 부수적이고도 짭짤한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어느 브랜드 업체가 이를 마다할 것인가. 각 업체마다 서로의 유통마진을 소비자에게 제시해 줄 것이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은 보다 폭은 브랜드를 선택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이 상품은 소비문화의 새로운 툴로 자리잡기에 충 분한 것이다.

예약구매의 할인률을 이자율로 치환하는 이 컨셉은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도 각광 받을 만한 컨셉이다. 자세한 것은 미다스칸 홈페이지에 올려 놓을 것이며, 이는 특허 출원한 사안임을 밝혀둔다.

아이템이 파괴적일수록 소비자의 지지는 높다. 우리의 아이템은 처음부터 국내시장보다 세계시장 공략에 초점을 맞춰 기획된 것이다. 지금은 수 천만 톤의 컨테이너 비즈니스나 이메일 한 통의 비즈니스가 동등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시대다.

20세기가 상품 수출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컨셉 수출의 시대다. 광고시장과 유통시장을 장악하는 힘, 21세기 전자상거래의 물줄기를 바꿔 놓을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진 컨셉. 나에게는 그것이 있다. 나는 그것을 공개적으로 검증 받고 싶은 것이며, 평기자들의 뜨거운 지지 아래 국내기반을 닦고 곧바로 세계로 나가고 싶었다. 최소한 오는 8월15일에는 일본 열도의 공략을 선언하고 싶었다.

나는 이번 일을 계기로 내가 좀 더 정제되고 준비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주변 사람 들에게 기우받지 않는 경영자가 되기 위해 좀 더 노력하라는 질책의 계기로 삼고 있다. 언제까지나 편견 받고 언제까지나 도전만 시도하는 경영자로 남아 있을 수만은 없지 않는가! 나는 따뜻한 시선이 눈물겹도록 그립다. 전과자가 사업을 하니 뭔가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예단보다는 '저렇게 망가진 친구가 참 대견하다'고 생각해 주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이 적어도 7가지 부류의 사람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면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증명해줬고, 명문대학 출신이 아닌 상고출신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으며, 장애인도 노력하기에 따라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또한 재혼의 전력을 가진 사람도 대통령이 될 수 있으며, 출세할 꿈도 꾸지 말라던 전라도 사람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준 것이다. 그 뿐인가 그는 전과자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증거해 줬다. 나에게도 그는 희망을 줬다. 꿈을 포기하지 않는 자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는 것은 과거에 어떤 전력과 어떤 인맥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른 조건보다는 그 자신이 열고자 하는 세상에 대해 신념을 얼마만큼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 있음을 증거해 준 것이다.

나는 김대통령이 아무런 치적을 남기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의 존재 자체가 이 땅의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으로 자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패와 좌절의 역사를 가진 모든 이들에게 꿈은 환경과 조건에 따라 정해지는 부산물이 아니라 그 환경과 조건을 극복하는 자만이 구체화시킬 수 있는 지향점임을 심어준 것이다. 나 또한 시대인들의 희망의 증거로 자리하고 싶다. 어제 무너진 자의 깃발이고, 문자이고, 살아있는 희망의 동상이고 싶다. 그것이 나의 꿈이다. 힘 없고 가난한 사람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한 성공의 정상에 이를 수 있음을 증거하는 시대의 지문이고 싶다. 문신처럼 각인된 나의 누추한 과거를 지울 수는 없지만 앞으로의 내 인생을 다시 설계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여건 좋은 사람의 조국에 대한 사랑도 나무랄 데 없지만 최악의 상황에서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기여하는 삶을 살겠다는 사람의 의기 또한 소중한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싶다.


내 순결의 막을 터뜨려줄 힘찬 애무를 나는 오늘도 꿈꾼다

세상에는 나를 미워하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를 희대의 사기꾼으로 손가락질하는 사람만큼이나 나를 아끼고 성원해주는 사람들도 많다. 매순간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주는 수 많은 사람들이 있고, 미다스칸의 주식을 단지 부가가치 창출의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꿈과 희망의 증표로 삼는 1700여 주주들이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미다스칸 카드의 확장을 위해 뛰는 지부와 지사 임직원들, 그 안타깝고 힘겨운 수고들이 있다. 그리고 나를 따라 불모지에 뛰어들어 땀으로 일구고 창의의 곡식을 심는 80여명의 임직원이 있다. 나와 시절인연을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하고 하선한 직원들도 나는 감사하고 고맙다. 그들이 나를 여기까지 일으켜 세워주는 힘이었고, 용기였고, 자랑이었음을 나는 잊지 않고 있다. 나는 결코 그들을 실망시킬 수 없다. 어느 누가 망가진 자에게 기회를 주어 봤던가. 나의 비전을 듣고 진지하게 고민해 줬던가. 또 실제로 지원해 주기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십자포화를 맞고 쓰러져있는 이 순간에도 그들의 신뢰는 나를 일으켜 세우고 있다.

내가 태어나서 이만큼 사랑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나를 낳은 부모도 나에게 이런 사랑은 주지 못했다. 흠결 많고 상처 많은 나에게 "다시 한번 일어나 달려보라"고 말해주기가 어디 쉬운가. 흠결 많고 부족한 인간을 아껴주는 많은 사람들. 부디 내 주주들을 보호하게 해줬으면 한다. 나를 믿고 의지한 내 가족을 보호하게 해주길 간절히 바란다. 그들은 누구도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을 때, 나에게 손 내밀어 주고 이끌어준 시절인연이요, 혈맹을 맺은 사람들이다. 한 집 한 집 초대 받고 싶을 만큼 내겐 소중한 사람들이다. 나는 이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천애고아에게 그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준 그들을 결코 실망시킬 수 없다.

나는 그들에게 나의 꿈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나는 그 길이 얼마나 험하고 먼 길인지를 안다. 얼마만큼 상처 받아야 하고, 또 얼마나 많은 눈물 속에 밤을 지세워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두렵다. 편견의 칼을 피하기 위해 몸을 도사릴지도 모를 육체가 미덥지 못 하다. 나 역시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이기 때문에 나의 의지를 마비시키고 나를 심약하 게 할까 두렵다. 그 두려움 때문에 실기하게 될까봐 또한 두렵다.

지금까지 달려오는 동안 이미 크고 작은 상처를 받았고, 수 없는 고난의 계곡을 건너며 여기까지 달려왔다. 요행 바라지 않는 성실함으로 충분히 노력하고 땀 흘려 왔다. 이제 내 주주들과 내 형제들을 보호하게 해 달라. 아웃사이더에게도 격려해주신 분들, 공생의 손으로 내밀어 주신 그 분들에게 한 번쯤 차지혁 문법으로 갚음하고 싶다.

아무리 내가 주는 것 없이 미워도, 화가 나서 미워도, 괜히 밉고 또 밉더라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미워 죽겠다 할지라도 나에게 공정한 게임의 룰을 적용해 주었으면 좋겠다. 나를 조금만 따뜻한 시선으로 보아줬으면 좋겠다. 직접 나를 만나보고 또 나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것이 하나라면 얼굴 한번 마주치지 않고 나로부터 손톱만큼의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들이 미워하는 것이 아흔 아홉일진데 날더러 어쩌란 말인가! 그토록 내가 용서가 안 되는 놈이라면 나의 영정 사진 앞에 향을 피우고 이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생각해 주길 바란다. 내가 시대인의 눈속에 존재하는것 조차 부담스러운 그림이라면 먹물 가득한 붓을 들어 영정의 여덟팔자를 긋고 또 긋는 것으로 잠시만 편견을 유예해 주었으면 한다.

절망도 짓 씹으면 단 맛이 나고 습관이 되면 친숙해진다. 절망 끝에 매달려 오는 희망이 보이는 것이다. 나는 기어이 살아 남아야 한다. 편견에서 비롯된 절망의 터널 끝에 있는 한 줄기 빛을 잡아야 한다. 그 절망을 딛고 서면 기어이, 그때서야 비로소 격려의 갈채를 보내줄 것인가.


3월27일 지구상에서 단 하나뿐인 "바보네가게" www.itsMK.com 오픈

지금부터는 전세계 모든 인터넷 쇼핑몰 중에서 감히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는 신비즈니스 모델인 "바보네가게"라는 쇼핑몰 it's MK에 대해서 간략히 언급하고자 한다. 나에게 있어, 미다스칸에 있어 it's MK 는 빛이자 구원이다. 절망 끝에 매달려 오는 참혹한 희망이다. It's MK 는 전혀 새로운 개념의 인터넷 쇼핑몰이면서, 네티즌에게는 오락의 장이 되기도 하는 새로운 인터넷 비즈니스의 혁명적 개념인 것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아우를 수 있는 뉴비즈니스 모델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나는 오는 3월27일 it's MK 쇼핑몰에 들어오는 사람 모두에게 행운을 퍼주는 바보네가게를 선보이고자 한다. 모든 소비자는 it's MK 에서 물건 먼저 가져가고 자신이 가져간 물건 가격을 광고를 보는 것으로 결제케하는 신개념의 쇼핑몰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3월27일 쇼핑몰 개장과 함께 선착순 가입회원 10만명 전원에게 6~2천원을 차등 적용하여 카지노 보다 더욱 스릴있는 배팅머니를 주게 될 것이다. 네티즌들은 그 배팅머니로 노트북, 오디 오, 냉장고, TV 등이 걸려있는 6억의 대박 잔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비록 이번 보도건으로 it's MK 를 구축하는 전력의 90%를 잃어야 했지만 다행히 꾸려낼 수 있었던 나머지 10%의 호흡만으로도 세상에 작지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인터넷 비즈니스의 신세계를 열어내리라 믿는다.. 나는 이번 시련이 한편으론 고맙게도 여겨진다. 이 시련을 딛고 서면 비로서 모든 편견에서 벗어난 자유인이 될 것임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 치렁치렁한 불신의 사슬을 끊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처참하게 망가진 이 순간에도 나는 새로운 시장으로의 비상을 꿈꾸고 준비하고 있다. 만약 나의 노력이 큰 열매를 맺는다면 "참 어려운 일 했네"라는 치하를 해 주었으면 한다. 먼지투성인 내 얼굴을 시대인의 고운 손으로 어루만져 주었으면 한다. 설령 또다시 실패한다 하더라도 격려 박수 받을 만큼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나는 특혜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공정한 룰을 적용시켜 달라는 것이다. 나는 세계의 CEO 들과 경쟁을 하고 싶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 자랑스러운 깃발로 휘날리고 싶다. 한번만, 단 한번만이라도 나에게도 공정 한 경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 결코 포기하지 않는 에너지로 달려간다. 미다스칸이 이 나라에 가장 부도덕한 기업으로 매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포괄적 업무 협정을 맺어준 41개 기업들이 있다. 나는 이들과 함께 새로운 시장을 열어갈 것이다. 4월 말경, 늦어도 5월 달에는 it's MK 원안의 모습으로 달려나갈 것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함께 구동 시키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이 땅의 소비자들의 성원속에 연착륙 시킬 것이다. 이번 일만 아니었으면 나는 it's MK 를 조속한 시일 내에 해외로 진출하고자 했다. 상반기는 국내기반을 잡고 하반기에는 일본이나 미국본토에서 세계의 벤처기업들과 진검승부를 펼치고 싶었던 것이다.

세계는 이미 격변기를 맞고 있다. 인터넷 비즈니스가 발달한 곳 일수록 온라인 시장의 한계에 대한 인식으로 수익성 있는 비즈니스 모델의 개발에 여념이 없는 것이다. 거대 인터넷 기업의 합종연횡이 바로 자사의 주가만큼 수익을 내기 위한 극약 처방이라는 사실은 온라인 비즈니스를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들에게 나는 최선이자 최고인 비즈니스 모델을 결합시켜 줄 것이다.

해외에 진출해 있는 국내 기업들과 연대도 하고 경쟁도 하면서 강한 민족의 의기를 떨칠 것이다. 만약 그곳에서의 진검승부에서 승리할 수 있다면 그 때는 이 모든 고난과 힘겨움이 찬란한 영광을 비추는 복선이 될 것임을 나는 확신한다. 때문에 나는 간다. 하나의 힘이 든 열의 힘이든 마지막의 안간힘까지 동원하여 달려나간다. 이젠 정말 편견 받고 싶지 않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버림받을 곳도 없다. 나를 척박한 환경의 황무지로 내버려둔 나의 생마저도 내곁을 영원히 떠난 것이다. 평생 나란 이름이 맺힌 옹이고, 매듭이었을 텐데 이제서야 벗어난 것이다. 그러나 나는 또다시 버려지고 말았다. 예전에는 죽도록 괴롭고 힘들 때마다 생모에게 하소연이라도 한번 해볼까 라는 생각이라도 품을 수 있었는데 이젠 그나마도 허락치 않은 것이다. 어차피 얼굴 맞대고 살 비빌 수 없을 바에야 이승이든 저승이든 무슨 상환이 있을까마는 사람의 마음이 그를 한사코 구분하는 것이다. 어머니라는 이름을 불러보지 못한 한보다 어머니라는 단어를 영원히 잃어버렸다는 것이 나에겐 더 아픔으로 달려온다.

봉분의 흙도 채 마르지 않은 무덤 속 당신의 눈에서 잠을 퍼 낼 수만 있다면…

며칠 전 미다스칸이 험한 파도에 휘말려 있을 때, 나는 '어머니'라는 단어와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나를 이 세상에 떠밀 듯 내어놓은 생모가 돌아가신 것이다. 남에겐 향기 나는 생화였던 그분은, 내게는 한 평생 향기 없는 조화로 자리했던 당신은 이승의 이별도 모자라 영혼의 저승으로 또 나를 떼어 놓고 떠나신 것이다. 내게 단 한번의 체온도 허락치 않은 그 분이 떠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불 켜지 않은 방에서 오래도록 주저 앉아 있었다. 당신에게 있어 나는 키운 정이 전혀 없는 자식이었지만 내게는 아득한 그리움이었고 아픔이었고, 홀로 꿈꾸던 소망이었던 그분이 떠나신 것이다.

당신이 건강하실 때는 당신의 새 식구들과 편안하게 사시다가 나이가 들어 당신 스스로 움 직일 수 없데 되면,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짐이 되고 부담이 되면 그때는 이 버려진 자식에게도 효도할 기회를 주시리라 고대해 왔는데, 무정한 당신은 내 마지막 소망마저도 허락치 않으신 채 떠나버린 것이다.

어.머.니!

목이 쉬도록 불러보고 싶은 이름. 가슴 터지도록 안아보고 싶었던 사랑의 발음기호. 다른 이들에게는 일상인 일이 왜 내겐 허락되지 않는 것일까?

생전에도 그분을 붙들고 울어볼 기회가 없더니, 나는 당신과의 인연이 끊어진 순간에도 나는 당신을 품고 통곡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분의 가족들에게 있어 성씨 다른 나는 아예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싶은 아득한 이방인이었던 것이다.

바득바득 우겨서라도 염하는 모습이라도 지켜보고 싶었다. 나도 그분 자식인데 왜 큰 절 올릴 자격이 안 되는지 따져 묻고 싶었다. 그러나 그리하지 못했다. 자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떼어놓은 모정이 어디 있겠으며, 온전히 편한 잠자리가 몇 번이나 있었겠는가. 내가 괴로움에 흘린 눈물이 한 말이면 구분이 남몰래 흘린 눈물도 서말은 됐을 것. 평생 그분의 위안이고 안식이 되어준 사람들의 배웅이 그분이 바라시는 뜻인 것만 같았다. 결국 나는 그곳에 가지 못했다. 장지는 고사하고 영정 사진 한 번 쓰다듬지 못했다. 게다가 내겐 밤 새워 부둥켜 안고 울음 울 어머니의 빛 바랜 사진 한장이 없었다. 그래서 어딘가 내 얼굴 속에 당신의 모습이 조금이라도 있을 것이기에 당신을 가장 닮고 닮은 사진을 골라 지면에 실었다. 이 사진은 내 어머니의 영정사진이요, 나의 어두운 과거를 지우는 영정사진이며,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이 시대인의 초상일 것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버림 받을 곳조차 없다. 누가, 나의 형제가 되어주고, 어머니가 되어 주 실 것인가!

나는 안다. 붕어 빵식 꿈을 가진 젊은이들에겐 대지가 씨앗을 가리지 않고 꽃을 피워내지만 시대적 문양이 될 꿈을 가진 이들은 씨앗이 토양을 가려 꽃을 피우는 것을. 그러하기에 나는 아직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인생은 짧다
청년의 때는 더욱 짧다
그러나 아무일도 할 수 없을만큼 짧진않다
나 차지혁, 꿈을 꾸는 모든 이들에게 시대의 깃발이 되고 싶다


2000년 3월24일
한사람으로 이루어진 백만의 군대
그 창의의 전사 차지혁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