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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코베인 유서Kurt Cobain

로드365 2001. 11. 16. 05:45

To Boddah,

베테랑급 바보라고 말하는것 보다 명확하게 고집이 없는 불평꾼의 입에서 나온 것 이라고 친다면 여기에 써있는 내용이 이해하기 쉬우리라고 생각한다. 내가 최초에 우리들 공동체의 독립심과 용인을 지지하고 있던, 그래 윤리라고 할까, 그것에 접해 있던 이래 몇년에 걸쳐 펑크록 101코스로부터 파생된 모든 것에 대해 그리고 만드는 것에 대해 흥분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이것에 대해 나는 뭘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백스테이지에 있고 쇼를 알리는 표시로 객석의 불이 꺼지고 관객들의 열광적인 환성이 들리기 시작해도 아무런 감동이 없다. 프레디 머큐리처럼 그것을 사랑하고 관객들이 바치는 애정과 숭배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나는 되지 않는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그가 정말 존경스럽다.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은 여러분들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구 한 사람 속이고 싶지 않다. 그런 짓을 하는것은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공정하지 못 하다. 내가 생각 할 수 있는 최악의 범죄는 거짓을 통해 마치 내가 100퍼센트 즐기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며 모두에게 돈을 뜯어내는 일이다.

나는 때때로 무대를 내려오기 전에 시간 기록기를 한방먹이고 싶은 생각이 들곤한다. 나는 지금까지 이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있는 노력을 다했다. (정말 노력하고 있다. 믿어주기 바란다. 하지만 아직 많이 부족 하다.) 나는 내자신이 그리고 우리가 많은 사람에게 영향받고 즐거움을 제공 받았던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나는 아마도 잃어버린 순간에 그것의 고마움을 깨닫는 소위 나르시스트 타입인가 보다.

너무 신경이 예민하다. 어린시절에 가지고 있던 정열을 다시 찾기에는 조금은 둔감해 질 필요가 있다. 가장 최근에 치뤘던 3번의 투어 동안에 나는 개인적으로 알고 있던 사람들로부터 Nirvana의 팬에 이르기까지 주변 사람 모두를 예전보다 훨씬 더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내 안에있는 부담과 죄책감을 지울수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선의 부분을 가지고 있으며 나는 단지 단순히 지나치게 사랑했으므로 이렇게 처량한 신세가 되버렸다. 한심하고 보잘것 없고 연약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물고기 자리의 되게 재수없는 녀석이 된거다.

왜 아무 생각 없이 즐기려고 하지 않는 것인지. 나도 더이상 모르겠다. 나에게는 야심과 배려가 넘치는 여신같은 아내(그의 아내는 현재 록그룹 'Hole'을 결성해 활동하고 있으며 99년초 현재 그들의 노래 2곡이 챠트에 상위랭크 되어있다.)와 너무나도 어린시절의 나를 닮은 딸이 있다. 사랑과 기쁨이 넘치는 프랜시스는 만나는 사람마다 누구에 게나 키스를 한다. 왜냐하면 누구나 선하고 그녀에게 위험을 가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는 어떻게 손쓸수 없을 정도의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나는 프랜시스가 나처럼 한심하고 자기 파괴적인, 죽음으로 달려가는 일만을 생각하는 인간이 되는 상상만 으로도 가슴이 찢어질것 같다.

즐거웠다. 매우 좋은 인생 이었다. 이것에 대해서는 크게 감사하고 있다. 일곱살이후, 인간이라고 하는 것 전부에 대해 증오를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단지 그들의 너무도 쉽게 타협하고 서로에 대해 공감을 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공감! 분명 그것은 단지 내가 너무나도 모두를 사랑하고 미안한 기분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몇년간 편지를 보내주고 염려해 주었던 모든 이들에게 타서 진무른, 토할 것 같은 뱃속 바닥에서 부터 감사를 표하고 싶다. 나는 손 쓸 방법이 없을 정도로 정상을 벗어난 변덕쟁이 갓난 아기다. 이미 나에게는 정열이 없다. 그리고 기억해 주기 바란다. 점점 소멸되는 것보다 한꺼번에 타버리는 쪽이 훨씬 좋다는 것을.

Peace, Love, Empathy / Kurt Cobain

프랜시스 그리고 커트니, 나의 모든 것을 그대들에게 바친다.
계속 전진하길, 커트니.
프랜시스에게 건배.
내가 없다면 더욱 온화하고 행복해질 그녀의 인생을 위해.

출처 - http://members.tripod.com/~aksgus





<커트 코베인, 지워지지 않는 너바나의 전설>, 이안 팰퍼린·맥스 윌레스 지음, 이수영 옮김, 미다스북스 펴냄, 1만1000원.

<커트 코베인, 지워지지 않는 너바나의 전설>에 실린 커트 코베인의 유서에는 “나는 당신들을, 당신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속일 수 없다. 당신들에게든 나에게든 그건 공정하지 않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나쁜 죄악은 내가 100퍼센트 즐거운 것처럼 꾸미고 가장함으로써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라는 대목이 있다. 그런데 책 날개는 그를 “기존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거부하고 일생을 끝없는 방황 속에서 살다가 요절한 천재 록 음악 가수이자, 전설적 음악 그룹인 너바나의 리더”라고 소개한다. 물론 그가 한 세대를 대변할 만큼 진지하고 재능 있는 록 뮤지션이었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과, 그를 어떤 방식으로든 들뜬 상태로 포장하여 세상에 내보이려는 수법 속에 동참시키는 일은 따로 노는 일이다. 그는 더 이상 그 `따로 놀기'에 동참할 수 없다고 말하고 죽었다.

 

그 간극이 그를 스스로 이 세상에서 지우도록 만든 것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여전히 그 간극을 생산하고 그것을 통해 그를 신비화시키고 결국은 이윤을 창출한다. 죽은 커트 코베인은 그렇게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물론 이제는 그 `착취'가 많이 누그러들었다. 커트 코베인이 자살한 시체로 발견된 지도 벌써 9년이 지난 것이다.

 

‘얼터너티브’록의 상업화?



△ 카메라 앞에서 딸 프랜시스 빈을 안고 키스를 하는 커트 코베인과 아내 코트니 러브.


돌아보면, 얼터너티브 록의 상징이었던 너바나는 동시에 얼터너티브의 `상업화'라는 이율배반의 현실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언제나 정점에 있는 사람들에겐 그런 식의 모순이 뒤따른다.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만든다. 그 떠들썩했던 모순의 진정성, 얼터너티브 록이라는 것 자체가 이제 `록큰롤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 전기는 커트 코베인과 그의 주변 사람들에 대한 조사를 통해 얻어진 풍부한 증언들을 토대로 씌어지고 있다. 커트의 어린 시절, 음악 수련기, 그리고 성공적인 록 밴드로 부상하기까지의 일들이 담담하고 솔직하게 적혀있다. 커트 코베인의 헤로인 남용에 관한 일화들이 상당히 대담하게 소개되고 있으며 그의 부인이었던 코트니 러브와의 애증관계도 소상하게 추적되어 있다.

 

지은이들은 여러 관점의 증언들을 잘 배치시킴으로써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자연주의' 속에 미국 저널리즘 특유의 흥미 본위적인 시각이 숨겨져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주인공 커트 코베인을 희생양으로 설정하고 반대편에 코트니 러브를 악녀로 놓아 그 애증관계 속에서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려고 애쓴다. 책의 후반부는 커트 코베인의 사인에 관한 의문을 다루는데 거의 모두 할애되고 있다. 지은이들은 자살이냐, 타살이냐의 의문부호 속에 은근히 코트니 러브를 끼워 넣는다. 물론 책을 다 읽어도 확인되는 점은 없다.

 

아쉬운 점은, 얼터너티브 록의 90년대적인 의미망 속에서 너바나, 혹은 커트 코베인을 바라보는 일이 누락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과잉 행동 장애'에서 사춘기의 펑크록 추종자로, 다시 얼터너티브 록의 선봉장으로 살다가 끝내 자살한 그의 행적을 담담하게 추적하는 것만으로도 미국이란 나라에서 그가 느꼈던 절망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과잉과 남용의 사슬 속에서 생존해야만 하는 백인 노동계급의 절망이 한 편으로는 무차별의 폭력과 근거없는 우월주의로 귀결된다면, 다른 한 편으로는 커트 코베인 같은 자기 파괴로 나아갈 수 있다. 순진한 영혼이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식은 그렇게 절규하다가 안으로 터지는 일일 것이다. 이른바 미국의 `X세대'가 그를 지지했던 건, 그의 선택이 막다른 것이었다는 걸 인정했기 때문 아닐까. 능란하게 구사된 다큐멘터리식 글쓰기의 행간에서 커트 코베인의 그러한 막다른 절망이 내비쳐지는데, 실은 그 간극이 역설적으로 그를 살아있게 하고 젊은이들로 하여금 그를 추모하게 한다. 그래서 여전히, 그가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4월 5일이 되면 `커트 코베인 추모 공연' 같은 것이 우리나라에서도 열리는 것이리라.

성기완/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