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ㅗ

보크 Balk 완전정복

로드365 2011. 5. 24. 16:15

[민기자 리포트]난해한 보크, 그 실체를 벗긴다.

올 시즌 유난히 야구팬에게 강하게 다가온 규정이 있다면 바로 보크(Balk)입니다.
스프링 캠프부터 트윈스 주키치와 타이거스 트래비스의 보크가 화제가 되더니 일본에 진출한 박찬호(38·오릭스) 역시 보크 때문에 골치를 썩였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프로야구에서 결정적인 보크 관련 오심이 나오면서 경기의 결과가 좌우되고 해당 심판이 모두 징계를 받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보크는 전문 심판들도 잡아내기 쉽지 않은 아주 까다로운 규정입니다. 명백한 보크 사례도 몇 가지 있지만 애매한 사례도 많고, 찰나에 벌어지는 일이어서 그것을 잡아낸다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임무입니다. 보크가 적용될 수 있는 사례가 무려 19가지나 되기 때문에 그 까다로움은 말이나 글로 설명하기 부족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4심판 중에 누구 하나라도 보크를 선언하면 나머지 심판은 일제히 보크 사인을 따라서 내게 돼 있습니다.

보크의 모든 것을 파헤쳐보겠습니다.

■보크란?
보크란 루상에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투수가 허락된 투구 동작을 벗어나는 행위를 했을 때 처하는 벌칙입니다. 투구하는 과정이나 혹은 견제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습니다. 투수의 의중이 결정적인 요인이 됩니다. 심판의 시각에서 볼 때 투수가 고의적으로 주자를 현혹해 잡으려는 비신사적인 의도의 행위를 했다면 보크를 선언해야 합니다. MLB에 보크 규정이 처음 도입된 것은 1898년입니다.

■보크의 의도와 벌칙
보크는 투수가 규정에 어긋나게 주자를 속이는 행위는 막기 위한 것입니다. 주자의 리드를 최소화하거나 혹은 잡아내기 위해서 견제를 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비신사적인 속임수로 규정을 어기면 보크가 선언됩니다. 타자와 상대를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크를 범하면 루상의 주자 전원에게 한 베이스씩 진루권이 주어집니다.

■보크와 데드 볼
보크가 선언되면 그 순간 데드 볼, 즉 플레이가 중단된다고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루상의 주자를 견제하는 과정에서 보크가 발생하면 즉각 플레이가 중단되는 데드 볼이 선언되고 주자가 한 베이스씩 진루합니다.
그러나 타자에게 공을 던지는 과정에서 보크가 발생하면 ‘지연 데드 볼(delayed dead ball)’의 상황이 됩니다. 즉 결과나 나올 때까지 보크 선언을 유보한다는 뜻입니다. 만약 타자가 투수가 던진 공을 쳐서 안타를 만들어낸다면 보크는 무시되고 인 플레이가 이어집니다. 공격 측에 유리한 판정을 내린다는 원칙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타자가 홈런을 쳤는데 이를 무시하고 보크 선언으로 주자만 한 루씩 더 진루시킨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말이 되지 않습니다. 볼넷이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KBO 규정을 보면 타자가 안타, 실책, 4사구, 기타로 1루에 도달하고 다른 주자도 최소한 1개 베이스 이상 진루하였을 때는 보크와 관계없이 플레이는 계속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보크에 대한 오해
보크는 투수에게 적용되는 규정은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투수에게만 적용되는 규정은 아닙니다. 드물지만 때로는 포수, 심지어는 야수에게도 보크가 선언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자가 없을 때 보크 동작이 나올 때는 통상 벌칙은 없습니다. 그러나 투수가 공을 받자마자 투구를 하거나 투수판을 밟지 않고 던지는 부정행위를 하면 주자가 없어도 타자에게 원 볼을 줍니다.

■보크가 되는 19가지 사례
보크는 간단한 규정이 아닙니다. 보크로 선언될 수 있는 행위나 사례가 19가지나 되기 때문입니다. 순간적으로 규정 위반을 잡아내야 하므로 더욱 까다롭습니다. 보크의 사례를 차례로 살펴봅니다.

①투구 동작 중단- 가장 흔한 보크입니다. 일단 투구 동작에 들어가면 도중에 동작을 멈추거나 갑자기 다른 움직임을 하게 되면 보크입니다. 투수가 항상 똑같은 연결 동작으로 피칭을 하면 일시 동작 정지가 인정되기도 하지만,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기 위한 불규칙한 정지는 보크입니다.

②셋 포지션에서 완벽한 정지 실패- 셋 포지션에 들어간 투수는 양손을 몸 앞에 놓고 완전히 멈추는 과정을 거쳐 투구해야 합니다. 박찬호가 일본 야구에 적응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을 겪었던 점이 바로 셋 포지션에서 완전한 정지 순간이 없었다고 해서 계속 보크 제재를 받은 것이었습니다.

③투수판을 밟고 있는 투수가 던지려는 방향으로 정확히 자유 발을 내디디지 않은 경우- 투수는 던지고자 하는 방향으로 의도적으로 명확하게 자유 발(혹은 앞발)을 내디뎌야 합니다. 홈플레이트가 되든지 베이스가 되든지 마찬가지입니다. 주키치나 트래비스에게 선언된 보크도 앞발을 명확히 1루 베이스 쪽으로 내디디지 않는 애매한 동작에서 견제했기 때문입니다.
발을 내디딘다는 것은 타자에게 경고와 같은 의미입니다. 투수판을 밟고 있는 투수가 이런 사전 동작 없이 빠르게 견제를 하면 주자는 대부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맙니다. 그건 페어플레이가 아니므로 보크가 됩니다.

④셋 포지션에서 양손으로 공을 잡지 못하면- 셋 포지션에 들어간 후에 투구를 아직 하지 않은 과정에서 한 손이 공에서 떨어지면 심판을 보크를 선언해야 합니다. 셋 포지션 전 사인을 받는 과정에서는 무방합니다.

⑤축이 되는 발이 투수판을 밟지 않고 던졌을 때- 타자에게 공을 던지는 과정에서 투수는 반드시 축이 되는 발로 투수판을 밟아야 합니다. 투수판을 밟지 않은 채 투구를 하면 보크입니다. 주자가 없을 때라도 이 반칙을 하면 타자에게 원 볼을 줍니다.

⑥얼굴이 타자를 향하지 않은 채 투구를 했을 때- 머리를 타자 쪽으로 돌리지 않은 채 투구를 하면 기만행위로 인정돼 보크가 선언됩니다.

⑦1루로 견제 동작만 했을 때- 주자가 있는데 1루로 견제 동작을 취했지만 실제로 견제를 하지 않으면 보크입니다.

⑧루상에 주자가 없는데 견제 동작을 하거나 견제했을 때- 2,3루에 주자가 있을 때는 얼마든지 견제 동작만 취해도 무방합니다. 주자가 그 베이스로 전급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루가 비어 있는데 견제 동작을 하거나 실제로 견제를 하면 보크입니다. 경기 지연에 대한 벌칙입니다.

⑨피칭 동작을 시작하고 홈으로 공을 던지지 않으면- 셋 포지션이든 와인드업이든 투구 동작에 들어간 후에 공을 홈플레이트로 던지지 않으면 보크입니다. 예를 들어 투수가 홈플레이트와 같은 선상으로 자유 발을 뒤로 뻗으면 투구 동작에 들어간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1루나 3루에 견제하면 보크입니다.

⑩지나치게 빠른 투구(Make a quick pitch)- 포수에게 공을 받자마자 곧바로 피칭을 하면 규정 위반입니다. 기본적으로 타자가 준비되지 않았는데 투구를 하면 모두 기만행위로 간주합니다. 예를 들어 투수판을 벗어났다가 재빨리 다시 투수판을 밟고 타자가 준비되기 전에 공을 던지면 위반입니다. 퀵 피치는 주자가 없을 때도 위반이 적용돼 타자에게 볼을 줍니다.

⑪위장 피칭(Fake a pitch)- 투수가 공을 갖지 않은 채 투수판을 밟으면 주자를 기만하는 행위로 간주, 보크가 선언됩니다. KBO 규칙에는 투수가 공을 갖지 않고 투수판 부근에 가로 서는 것은 무조건 주자를 속이려는 뜻으로 보고 보크를 선언한다고 돼 있습니다.

⑫투수판에서 공을 떨어뜨리면- 고의든 아니든 투수판에 올라갔는데 공을 떨어뜨리면 보크입니다. 그 기준은 공이 파울라인을 통과했느냐 여부입니다.

⑬투수판에서 부적절하게 벗어났을 때-해석도 애매한 규정인데 KBO 야구 규칙에 보면 투수가 중심 발을 투수판에 대지 않은 채 투구와 관련된 동작을 하면 보크라는 규정이 이에 해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⑭경기 지연- 투수가 고의적으로 경기를 지연시켰다고 심판이 판단되면 보크를 선언할 수 있습니다.

⑮셋 포지션을 두 번 했을 때 역시 보크입니다. 일단 셋 포지션을 하면 던져야 합니다.

⑯투수판을 벗어나지 않고 투구 동작을 다른 동작으로 바꿔 던졌을 때도 보크입니다. (15번과 16번은 응용 규정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⑰변형된 공을 사용했을 때- 공에 흠집을 내거나 침을 바르는 등 변형된 공을 던졌을 때 곧바로 보크와 볼이 선언됩니다. (단 상대 팀 감독이 플레이를 받아들이면 무시됩니다. 예를 들어 변형된 공을 안타로 쳐내면 보크를 주장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 규정을 위반한 투수는 곧바로 퇴장이며 추가 제재를 받습니다.

⑱포수나 야수의 보크- 포수나 다른 야수가 홈스틸이나 스퀴즈 플레이에서 주자를 방해하는 경우 보크가 선언됩니다.

⑲고의 볼넷 시 포수 보크- 고의 볼넷을 던지는 과정에서 투수가 공을 던지기 전에 포수가 포수 박스를 벗어나면 보크입니다.

■보크에 대한 결론
이렇게 다양한 규정이 있는 보크가 특히 어려운 것은 이 규정이 ‘저지먼트 콜(judgement call)’, 즉 심판 개인적 판단에 따른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투수가 고의로 주자를 속이려는 것을 막는다는데 목적이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즉 페어플레이 정신에 어긋나는 기만행위라면 보크로 인정해야 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야구는 초창기에 경기 중 욕설을 해도 큰 벌금을 부과할 정도로 젠틀맨 스포츠로 시작됐습니다. 보크의 기본도 정정당당한 대결에 위배되는 행위인지를 따지면 대개 가늠이 됩니다. 물론 찰나의 순간에 그것을 잡아내고 판정을 내려야 하는 고도의 기술과 경험과 능력이 요구되기에 대단히 까다로운 규정인 것은 분명합니다.

참고로 MLB에서 가장 많은 보크를 범한 투수는 스티브 칼턴으로 통산 90개를 기록했습니다. 한 시즌 최다 보크는 1988년 오클랜드에서 뛴 데이브 스튜어트의 18개이며, 밀워키 브레이브스의 봅 쇼우는 1963년 5월 4일 시카고 커브스와 경기에서 한 경기 5개의 보크를 범하기도 했습니다. 그 시즌 초에 셋 포지션에서 완전히 1초 이상 정지하지 않으면 엄격히 잡아라는 엄명이 떨어졌고, 쇼우가 희생양이 됐습니다. 그 경기에서 쇼우는 3연속 보크로 1루에 있던 빌리 윌리엄스를 홈까지 들여보내기도 했습니다.  - 출처



야구는 합리적인 스포츠다. 그리고 어느 종목보다 공평하다. 야구 경기에 나선 두 팀에겐 똑같이 9이닝 동안 27번의 아웃이 완료될 까지 공격 기회가 주어진다. 같은 조건을 최대한 활용해서 상대보다 많은 점수를 내는 팀이 승리한다. 투수와 타자도 마찬가지다. 투수에게는 볼넷, 타자에겐 삼진아웃이라는 페널티가 있다. 투수는 타자가 칠 수 없는 공을 네 번 이상 던져서는 안 되며, 타자는 충분히 칠 수 있는 공을 세 번 이상 그냥 지나쳐선 안 된다. 이런 규정이 없다면 타자는 치기 좋은 공이 들어올 때까지 계속해서 기다리기만 할 것이며, 투수는 투수대로 타자 배트가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곳에 공을 던지는 통에 경기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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