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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보스, 보보?

로드365 2007. 11. 3. 16:06



그러나 오늘날은 달라졌다. 혈통에 의거하던 시대에서 재능과 사교성이 엘리트 계급에 속하기 위한 요소로 꼽히는 시대로 변했다. 오늘날 〈뉴욕 타임스〉 웨딩 섹션을 보면 MBA가 Ph D와 결혼하고, 폴브라이트 장학생이 로즈 장학생과 결혼하는 식이다. 과거에 비해 혈통을 그다지 따지지 않는다. 오늘날 신문은 이 지면에 실리는 인물의 네 가지 사항을 강조한다. 출신대학, 대학원학위, 사회경력, 그리고 부모의 직업이다. 바로 이 네 가지가 오늘날 미국의 상류 사회 계급을 특징 짓는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50년대 미국의 워스프(WASP : 백인 앵글로 섹슨 종족의 신교도들) 엘리트는 지식인에 대한 반감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그들은 종종 “많이 배운 양반(highbrow)”같은 단어를 써서 정중한 경멸감을 표시했다. 그들은 또한 기득권 계층으로서 여전히 반유태주의, 인종주의, 성차별, 그 밖의 좋은 가문 출신이 아닌 사람들의 진입을 막는 수많은 울타리를 쳐놓고 있었다. 그들의 사회적 지위는 지성이 아니라 ‘동물적인 매력과 돈’에서 나왔다. 재산에 대해 비교적 단순한 태도를 보인 그들은 탐욕은 저속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대체로 검소하게 사는 편이었다. 대부분의 엘리트 지위를 당연하게 여기면서 그러한 지위는 우주의 자연스런 질서라고 생각했다. 최선을 다해 귀족의 지위에 맞추어 살려고 했던 그들은 의무와 복무, 그리고 명예를 신봉했고, 그것들을 행동으로 옮기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에 변화가 일어났다. 결정적인 전환은 대학입학위원회에 의해서 촉발되었다. 이렇다 할 사회적인 논란이나 공개 토론 없이, 입학 담당자들은 워스프 기득권 계층을 무너뜨려 버렸다. 하버드 대학의 경우가 그러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1952년도 하버드 신입생들의 대부분은 〈뉴욕 타임스〉의 웨딩 섹션에 소개되는 워스프 엘리트 계층의 자식들이었다. 명문 사립 고등학교를 나온 그들 가운데 2/3가 입학을 허가받았다. 아버지가 하버드 출신인 지원자들은 90%의 진학률을 보였다. 그러나 하버드대의 SAT(대학입학자격시험) 점수가 올라가면서 1960년도 신입생들은 훨씬 더 넓은 사회 경제적 출신들로 구성되었다. 말 그대로 전국 상위 10%에 드는 우수한 학생들만 하버드대학에 모였다. 바야흐로 하버드는 주로 북동부의 사회적 엘리트를 위한 학교에서 전국의 영리한 학생들을 받아들이는 학교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변신에 거의 모든 엘리트 학교들이 뒤를 이었다.

이렇게 해서 대학의 문은 혈연보다 재능에 바탕을 두고 활짝 열렸고, 불과 몇 년만에 대학의 상황은 크게 변했다. 하버드는 이제 출신이 좋은 사람들을 위한 학교에서 두뇌가 뛰어난 젊은이들을 위한 학교로 변신했다. 다른 명문 대학들도 유대인 쿼터를 없애고, 여성들에 대한 제한도 철폐함으로서 여대생의 수도 증가했다. 무엇보다 교육받은 인구 자체가 엄청나게 증가했다. 1960년에 대학 교수의 수는 235,000명이었는데 1980년대에는 그 수가 685,000으로 늘어난 것은 대학의 외형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학도 좋은 인재를 내보내 사회에 대한 학교의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예전 워스프 출신의 평범한 젊은이들을 내보는 대신 가문은 좋지 않아도 재능이 뛰어난 학생들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뛰어난 재능의 젊은이들은 야심과 함께 자신들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기득권 계층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상류층 미국의 문화에 대한 혁명을 잉태하고 있었다.

1960년대
“60년대”라는 말로 통칭되는 교육받은 계층의 반란은 다방면에 걸쳐 나타났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60년대의 문화적 진보주의는 성공에 대한 기존의 인식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기득권층의 파워를 무력화시키는 시도였다. 뿐만 아니라, 아직도 워스프의 생활 양식과 도덕률에 근거하는 권위를 파괴하고, 영적 및 지적 이상을 추구하는 새로운 사회적 계율로 구 질서를 대체하려는 새로운 계층의 문화적 시도이기도 했다.

60년대의 진보주의자들은 보헤미안적인 자유분방한 자기 표현을 좋아했고, 이전 엘리트의 무미건조한 자기 통제를 경멸했다. 1968년도 최대 흥행작인 영화 “졸업”은 동부 연안의 명문 학교에서 성공적으로 학업을 마치고 캘리포니아의 백인 부자 동네로 막 돌아온 내성적 성격의 한 대학 졸업생에 관한 이야기로, 엄청난 문화적 격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캐서린 로스가 배역을 맡은 엘레인은 서둘러 준비된, 그렇지만 전통적인 스타일의 결혼식을 산타바바라에 있는 신식 장로교 교회에서 치르게 되었다. 신랑은 전형적인 워스프 출신의 금발머리 의사였다. 우리는 그가 구 시대의 인물임을 얼른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이런 말로 프로포즈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멋진 팀이 될 것이오.” 결혼식이 끝나갈 즈음 교회 안으로 뛰어들어온 벤은 발코니에서 엘레인의 이름을 부른다. 엘레인의 어머니인 로빈슨 부인이 낮게 속삭인다. “이제는 너무 늦었어.” 하지만 엘리인은 벤과 함께 달아나기로 결심하고 소리친다. “나에게는 아니야.” 마침내 벤과 엘레인은 가족과 군중을 제치고 밖으로 뛰어나와 버스에 올라탄다.
그러나 버스를 타고 떠나가는 그들은 기본 좋은 표정에서 우울한 표정으로 마침내 겁에 질린 표정까지 짓는다. 일정하게 정해진 워스프 식 성공에서 탈출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음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눈앞에 돈이 있었다.
이전의 미국의 많은 세대들과 마찬가지로 60년대 졸업생들의 가치 체제에서도 핵심은 “성취”에 있었다. 어쨌든 그들은 실력있는 세대였기 때문에, 성취를 기준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도시를 벗어나 작은 공동체에서 꽃을 기르고, 돼지를 키우고, 사색을 하면서 지내지 않았다. 더욱이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엄청난 부가 눈앞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처음에 베이비붐 세대 대학 졸업생들의 막대한 인력이 노동 시장에 진입했을 때, 대학 졸업장은 재정적 보상이나 삶의 극적인 변화를 거의 보장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곧 정보화 시대가 시작되었고 그에 따라 교육에 대한 보상은 더욱 더 커져 갔다. 정보 시대는 완전히 새로운 직업군을 창출해 냈는데, 그 중에서 일부는 정말로 웃기는 것들로서 봉급만 보고는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이를테면 창의성 담당자, 최고 지식 관리자 등이다. 정보화 시대의 경제는 올리버 스톤같은 괴짜들이 억만장자 갑부가 되고, 빌 게이츠 같은 대학 중퇴생이 세상을 좌우하는 그런 경제를 형성했다.

정보화 시대는 기본적으로 교육에 대해 보상을 주었고, 교육받은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 사이의 소득 격차를 확대시켰다. 더욱이 이제는 중상류층이 중산층의 작은 일부에서 대개 높은 학위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는 뚜렷한 인구 특성 그룹으로 성장했다. 앞으로 몇 년만 있으면 심각한 경제 불황이 없는 한 미국에서 연 수입이 100,000달러 이상인 가구 수가 1,000만에 달할 것이다. 이것은 1982년의 200만 가구에 비하면 크게 증가한 것이다.

교육받은 엘리트는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뿐만 아니라 이제는 엄청난 책임과 권한이 따르는 자리도 차지한다. 과거 워스프들이 차지했던 부분을 넘겨받았으며 과거 근로 계층이 담담했던 직업들까지 넘겨받았기 때문이다. 이제 워싱턴의 기자 회견장에 등장하는 기자들은 대부분 예일, 스탠퍼드, 그리고 하버드 출신들이다. 전에는 이민 출신의 괴짜들이 좌우하던 정당들도 이제는 박사 학위를 보유한 커뮤니케이션 분석가들이 지배하고 있다. 훌륭한 부모를 가진 멍청한 표정의 사람들 대신에 끈없는 구두를 신은 영리하고, 야심있고, 교육받고, 성취욕이 넘치는 사람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풍요로움의 걱정
이후 30년 동안 교육받은 계층은 승리에 승리를 거듭했다. 그들은 과거 워스프 엘리트의 문화를 거의 완전히 몰아냈을 뿐만 아니라 특별한 기술을 푸짐하게 보상해 주는 경제에서 계속적으로 번창했다. 그래서 이제는 그들이 한때 비판했던 바로 그 기관들에서 윗자리까지 모두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까다로운 문제를 초래했다. 사다리의 꼭대기를 향해 올라가는 동안에도 그들이 아직도 경멸감을 감추지 않는 기존의 대상들과 다른 존재임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즉, 자신들의 풍요로움과 자존심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자신들의 성공적 영적인 측면, 엘리트란 지위와 박애주의의 이상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그들은 엘리트에 반대하면서 자란 엘리트들이다. 그들은 풍요로우면서도 물질주의에 반대한다. 그들은 무언가를 팔면서 삶을 영위할 수도 있지만 자신들이 팔리는 것은 싫어한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반기득권적이지만, 이제는 자신들이 새로운 기득권 계층이 되었음을 감지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고민은, 다소 거창하게 말하면 세속적인 성공과 내적인 덕목 사이의 갈등이다. 야망 때문에 영혼을 잃지 않으면서 어떻게 출세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물질적인 것에 노예가 되지 않으면서 무언가를 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을 축적할 수 있을 것인가? 사회의 최상층에 살면서 어떻게 속물이 되지 않을 수 있는가?

그들은 두 가지 모두를 가질 수 있는 길을 찾았다. “조화시키는 것.” 이 엘리트 계층은 또 하나의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켰다. 부르주아의 자본주의와 보헤미안의 자유분방함을 조화시켜 부르주아 보헤미안, 즉 보보 문화를 탄생시킨 것이다. 교육받은 엘리트가 1990년대에 달성한 큰 업적은 풍요로운 성공과 동시에 자유로운 정신의 반항까지도 가능한 이러한 생활 방식을 창출한 데 있다.

소비
제 3의 문화 “보보 문화”는 서서히 일련의 새로운 규칙들과 소비 규범들을 형성함으로서 보헤미안과 부르주아의 상호 경쟁적인 규범들을 대체하고 있다. 이 새로운 규칙과 규범들은 이제 ‘교육받은 계층’의 소비 패턴까지 대체하고 있다. 그것들은 적절한 것으로 여겨지는 일부 지출은 인정하고, 저속하거나 엘리트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일부 지출은 억제한다. 보보 엘리트는 재산의 축적을 무시하고 대신에 문명화를 중요시한다. 그들은 돈을 쓰는 방식을 통해 자신들이 속물이 아닌 의식 있는 사람임을 보여 주어야 하는 것이다. 보보 문화가 돈을 쓰는데는 규칙이 있다.

① 규칙 1 - 속물들만 사치품에 돈을 물 쓰듯이 쓴다. 문화적인 사람들은 필수품에 돈을 물 쓰듯이 한다. 예를 들어, 최고급 등산화에 수백 달러를 쓰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정장에 맞춰 신기 위해 최고급 가죽 구두를 사는 것은 저속한 짓이다.

② 규칙 2 - 무엇이든 누군가의 ‘직업적 특성’이 있는 것이라면 얼마나 많은 돈을 쓰든 전혀 무방한 일이다. 무엇인가를 살 때 내구성과 장인 정신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음이 입증된다면 얼마든지 돈을 지불할 만큼 똑똑한 사람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③ 규칙 3 - 당신은 작은 것들의 완벽주의를 실천해야 한다. 보보들은 언론인 리차드 스타가 얘기한 것처럼 "작은 것들의 완벽주의“를 실천한다. 가령 그들은 테라코타로 빚은 빵 그릇을 모아 나란히 진열해 놓는다. 사소한 물건인 것 같지만 빵의 숨쉬기를 높여 주는 방법이다. 그들은 타이어 흙받이 때문에 몇 시간씩 숙고하기도 한다.

④ 규칙 4 - 질감이 가장 중요하다. 교육받은 엘리트들은 질감을 좋아한다. 성취 지향적인 여피들은 반지르르한 검정색 가구, 광을 낸 래커 바닥, 대리석처럼 매끈한 벽으로 우월함을 보여 주지만 교육받은 엘리트들은 자연적 불규칙성이 가득한 환경을 만들고 싶어한다. 보보들에게는 거칠거칠한 감이 진짜이고 좋은 것이다.

⑤ 규칙 5 - 교육받는 엘리트는 남들보다 뒤져야 한다. 보보들은 이웃보다 더 캐주얼해야 한다. 당신이 사용하는 가구는 약간 더 전원적인 적이어야 하며 생활 자체는 훨씬 더 소박해야 한다. 겉치레는 불명예이지만, 꾸밈없는 간소한 것은 정직하다는 표시인 것이다. 빛바랜 청바지, 못생기고 낡아 보이는 가구 등 보보는 복고적이면서 동시에 하향적이다. 노트북 컴퓨터와 휴대 전화를 사용하며 미래로 전진하지만, 주위를 장식하는 물건들은 고풍스럽고 반동적이며 역사적인 것들이다.

⑥ 규칙 6 - 교육받은 엘리트들은 예전에 값이 쌌던 것들에 엄청난 돈을 쓴다. 교육받은 엘리트들은 프롤레타리아가 사는 것과 같은 품목을 사려한다. 그런 식의 구매를 통해 보보는 평등주의와 우월주의를 동시에 보여 주려 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값이 쌌던 온갖 물건들(커피, 물, 비누, 주스)등에 엄청나게 높은 비용을 지불한다.

⑦ 규칙 7 - 교육받은 엘리트들의 구성원들은 생각보다 더 많은 제품 선택을 제공하는, 하지만 가격 같은 저속한 요소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상점을 좋아한다. 보보들은 구입하는 품목뿐만 아니라 구입하는 방식으로도 구별된다. 예를 들어, 고급 커피숍에서 그냥 커피 한 잔을 주문하는 일은 거의 없다. 대신에 그들은 더블 에스프레소, 카페인이 반만 있는 하프 디카프와 모카 크림을 주문한다. 대량 소비사회에서 단순히 장기판의 졸이 되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남의 것을 표절하는 구매를 하지 않는다.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소비를 통해 자신의 취향을 섬세하게 개발하는 것이다.

칼 마르크스는 부르주아는 신성한 것을 경박한 것으로 바꿀 뿐이라고 썼다. 그러나 보보들은 경박한 것을 신성한 것으로 바꾼다. 더럽고 물질주의적일 수도 있는 것들을 고상한 것으로 바꾸고 부르주아의 핵심적 행위인 쇼핑을 보헤미안의 핵심적 행위로 바꾸고 있다. 즉, 쇼핑을 예술, 철학, 사회적 행동으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비즈니스 라이프
라테 타운이란 더러 굉장한 자연 풍광 속에 입지해 있거나 혹은 대학을 기반으로 하는 품격 높은 자유 공동체를 말한다. 이것은 미국의 새로운 고급 문화를 잉태한 결정적인 중심지가 되었다. 라테 타운의 사업가들은 사업이 반드시 돈 벌기위한 것만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비즈니스란 자신이 사랑하는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삶은 확장된 취미이어야 한다. 더욱이 비즈니스는 한때 영혼을 파괴하는 것으로 간주되었지만 실제로는 매우 풍요로운 삶을 약속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인들의 삶에서 사실 1960년대의 진보적 사고가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는 한 가지 분야가 비즈니스의 세계이다. 예전의 진보주의가 여전히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는 곳을 찾아보려면, 기업의 사다리를 타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회사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우드스탁과 그 모든 평화 행진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 현상을 깨부수고 기득권층을 몰아내야 한다고 목소리 높이 주장하던 사람들은 경영 컨설턴트와 기업의 중역들이 되었다.

이제는 억만 장자 애비 호프먼스같은 주요 재계 지도자들이 “기업 조직”을 혁신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버거 킹은 미국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때로 규칙을 깨뜨려야 한다.” 또한 애플 컴퓨터는 “약간 미친 사람들,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 반항아들, 골칫덩어리들”을 옹호한다고 표방한다. 오늘날의 반문화적 자본가들은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생각, 새로운 사고 방식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1950년대의 〈비즈니스 위크〉 인물난에서는 기업 중역이 화려하고 인상적인 사무실에 앉아, 때로는 일터에서 옷소매를 걷어붙인 모습으로 등장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개성과 일상을 강조하는 차림새가 일반적이다. 기업 설명회를 열어 반문화적 자본가들의 투자를 유도하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울 워먼은 재떨이를 수집한다. 천장에다 끊어진 번지점프용 로프를 걸어 놓고 나란히 스노보드를 매달아 놓은 사람도 있다. 실리콘밸리의 사무실에서는 벽에다 간디 사진과 만화책의 한 장면을 함께 붙여 놓기도 한다.

지적인 삶
오늘날 지식인들이 돈과 대중 문화의 유혹에서 자신을 단절시켜야 한다는 믿음은 거의 완전히 사라졌다. 정보 시대의 문화적 요인들이 스스로를 일종의 예술가나 자식인으로 생각하는 사업가들을 만들어 낸 것처럼 오늘날 지식인들은 좀더 사업가적인 특성을 갖게 되었다. 이제 ‘아이디어 시장’, ‘지적재산’, ‘관심경제’같은 어구를 사용해 정신의 영역을 시장의 영역과 결합시켰다. 지식인들은 자신의 직업을 다른 방식으로 보고 있다. 한때는 남들과 거리를 두었던 그들은 이제 교육받은 계층과 어울리면서 새로운 보보 시대에 새로운 유형의 지식인이 되고 있다.

1950년대를 기준으로, 지식인에게 가장 큰 위협은 돈의 유혹이었다. 상업화는 예술의 적이었다. 노먼 메일러는 〈벌거숭이와 죽은 자〉가 베스트셀러가 되고 나서 친구 지식인들과 많은 불화를 겪었다. 상업적으로 성공했다는 것은 그 소설에 무언가 잘못이 있다는 분명한 증거라는 것이었다. 그 당시 지식인들은 상업적인 문화는 저속한 금전적 유혹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봤다. 왜냐하면 그것은 중급 문화(대중적이지만 다소 격이 있는 저술, 미술, 음악)로 위장한 트로이 목마의 형태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1950년대의 고급 지식인들은 숨이 넘어갈 정도로 중급 문화를 공격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그보다 수십 년 전에 똑같은 전쟁을 치르면서 중급을 가르켜 “백해무익한 해충”이라고 맹렬하게 비난한 바 있다.

지식인 사업가
정보 시대의 핵심적인 특성은 정보가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을 결합시킨다는 것이다. 정보 시대는 마음의 산물을 시장의 제품으로 바꾸고 있다. 그래서 1950년대의 지식인들에게 그렇게도 중요했던 이분법은 새로운 시대에는 당연히 낡아 보일 수밖에 없다. 오늘날 지식인이 되고자 하는 젊은 학생은 세상 속을 들여다보지 권위있는 문학 평론가들을 보지 않는다. 즉, 지적인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경계를 넘나들며 TV에도 출연하고 개인 컨설팅 회사도 운영하며 신문 기고도 활발히 하는 사람들을 주목한다.

정보 시대의 경제는 연구, 조사, 분석, 수학, 저술, 그 밖의 다양한 지적 분야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비학구적인 분야인 금융 분야나 실리콘밸리에서 엄청난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그리고 보스톤의 보헤미안 지역에서 가난하게 살던 일단의 지식인 계층은 사라졌다. 오늘날 그런 지역에서는 아주 많은 수의 교육받은 분석가들과 “여론 주도자”들이 스톡옵션이나 짭짤한 로열티 수입을 올리면서 예전의 보헤미안들을 대신하고 있다.

여러 가지 비판이 나올 수 있지만 성공한 지식인들의 삶은 세속적인 성공과 사회적인 공헌의 혼합이다. 오늘날 보보 지식인들은 지식에 대한 열정과 세속적 성공에 대한 열정을 조화시키고 있다.
즐거움
보보들의 삶에서는 모든 것에 목적이 있다. 가장 동물적인 행위의 하나인 성행위조차도 이제는 학위가 높은 사람들이 만든 안내서, 비디오 교범, 그리고 잡지 기사들에 버젓이 등장한다. 모든 것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함께 공유한다. 보보들이 향유하는 향락도 마찬가지다.

성의 혁명은 부르주아의 억압적인 태도에 반항하는 낭만주의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보헤미안의 감각주의가 중산층의 전통을 조롱하며 싸운 전쟁에 대해 피터 게이는 “즐거움 전쟁(pleasure war)”이라고 불렀다. 보헤미안들은 까다롭고 엄격한 보바리 부인을 비웃었다. 그들은 헨리 밀러의 충격적인 소설을 옹호했고 성적으로 도발적인 예술 작품들의 검열에 대항했다. 보헤미안의 반문화는 자유로운 삶과 즐거움이 있는 곳이었다.

“나는 혁명을 할수록 더 사랑을 한다.” 과격파들은 그렇게 외쳤다. 60년대와 70년대의 누드는 그들에게 혁명적인 것으로 여겨졌고, 섹스와 마약과 로큰롤을 찬양하는 록 스타들은 정말로 과격해 보였다. 이와 같은 삶의 태도에는 낭만적인 논리가 깔려 있었다. 위대한 진실은 위대한 감각에서 나온다. 가장 멋진 삶은 열정적으로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다. 용감한 사람은 자유롭고 빠르게 살며, 심오한 영역을 꿰뚫는다.

이러한 해방 운동은 승전에 승전을 거듭했다. 이제 아이들에게 자기 발전의 수단으로 성적인 측면을 탐구하도록 권장하는 곳도 있을 정도다. 그 당시부터 금기들은 무너지고 있었다. 기존의 가족구조는 과거의 것으로 보이기 시작했으며, 기존의 규범체계는 구석기 시대적인 것으로 비쳤고, 자기 절제는 위선적인 행동으로 여겨졌다. 그 자리에 성의 자유가 적어도 대중적인 토론의 장에서는 힘차게 전진했다.

사실 일부 사회 비평가들은 그 당시에 일어난 성의 혁명이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믿고 있다. 1995년 조지 길더는 이렇게 썼다. “성 모럴, 가족의 역할, 미술과 문학, 관료 사회와 대학교, 대중 문화와 공적인 삶에서 보헤미안의 가치가 부르주아의 덕목을 압도하게 되었다. 그 결과 문화적 삶과 가족적 삶은 일대 혼돈에 빠졌고, 도시에는 향락주의와 병이 만연하게 되었으며, 학교와 대학에서는 가치 판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중상류층의 미국 사회를 보면 혼돈과 비도덕이 난무하고 있지 않다. 특히 교육받은 계층의 주류 속으로 들어가면, 향락주의의 만연이나 퇴폐성의 징후를 찾기란 쉽지 않다. 흡연이 줄어들고 음주도 줄어들었으며 이혼율도 낮아졌다.

보보들은 부르주아의 자기 통제와 보헤미안의 해방을 절묘하게 조화시키는 방식으로 새로운 사회적 규범을 만들었다. 보보들은 새로운 기준으로 가능한 즐거움과 불가능한 즐거움을 구분한다. 새로운 사회적 규범으로 감각을 규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새로운 규범을 가장 쉽게 보려면, 한여름에 공원으로 가보면 된다. 여자들은 스포츠 브라와 몸에 착 달라붙는 타이츠를 착용한 채 조깅을 한다. 그러나 그들을 좀 더 가까이 살펴보면 얼굴에 퇴폐적인 향락주의의 표정을 찾기란 어렵다. 누드에 가까운 모습이 에로틱한 효과가 있다 해도, 그것은 그들의 결연한 표정 때문에 상쇄된다. 그 여자들은 운동을 하고 있다. 그들은 근육을 튼튼하게 하려는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려 애쓰고 있다. 우리가 공원에서 보는 것은 반나체의 모습이지만 그와 같은 반나체는 일종의 성취를 위한 것이다. 그들은 쾌락의 신인 디오니소스와 근로의 신인 프로메테우스를 절묘하게 결합시켰다.

유용한 즐거움
보보들은 즐거움에 대해 실용적인 관점을 갖고 있다. 정신을 고양시키고 삶을 확대시키는 것이라면, 어떠한 감각적 즐거움도 좋은 것이다. 반면에 비생산적이거나 위험스런 즐거움은 어떤 것도 좋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운동은 좋은 것이지만, 흡연은 10계명 가운데 적어도 다섯 계명을 범하는 것보다 더 나쁜 죄악으로 여겨진다.

보보들은 노력과 성공이라는 부르주아의 가치를 새로운 감각을 경험하려는 보헤미안의 충동과 결합시켰다. 그 결과는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그리고 지적으로 유용한 즐거움을 권장하고, 그렇지 않은 즐거움을 억제하는 일련의 사회적 규제들이다. 이렇게 해서 신교도 “근로 윤리”는 “보보 놀이 윤리(일과 즐거움은 하나라는 것)”로 대체되었는데 후자의 윤리도 전자의 윤리만큼이나 규제적이다. 보보들이 하는 모든 것들은 자기 계발과 발전이라는 삶의 소명에 부합해야만 한다.

과거 보헤미안적 가치를 추구하던 사람들은 술과 담배를 즐기고 멋대로 살았다. 오늘날 그랬다가는 병원으로 실려가기 십상이다. 그들은 병원에서 알콜 중독이나 마약 중독, 혹은 우울증 진단을 받을 것이다. 예전에 보헤미안들의 지역이었던 곳에서도 술과 난잡함의 시절은 끝이 났다. 이제는 파티가 그 임무를 교대했다. 업무의 연장선인 파티에서 사람들은 한 두 잔의 백포도주, 편집자나 대리인들과의 간단한 사교, 그런 후에는 집에 가서 아이들을 돌본다. 이제는 점심을 먹을 때 반주를 곁들이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주방의 식탁에 모여서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별로 없다. 모두가 더 건강하고, 더 질서 정연하고, 더 성공 지향적이다. 이와 같은 패턴은 다른 분야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

언론, 학계도 20년 전에 비하면 훨씬 건조하고 단조로워졌다. 이제는 좀더 많은 보보들이 탁자 밑이 아닌 파티장에서 업무용 명함을 건네고 있다. 과거의 보헤미안들이 그토록 거칠고 자유분방했던 한 가지 이유는 점잖은 부르주아 관습에 반항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부르주아들이 1960년대의 자유주의적인 문화에 동화되자, 반항할 대상이 그리 많지 않게 되었고 막상 보헤미안의 상징들이 주류 문화속으로 흡수되자, 그들은 자신들의 일부 반문화적 성향을 잃어버렸다. 즐거움을 위해 사는 것은 예전과 달리 더 이상 반항적인 문화 행위가 아닌 것이다.

더욱이 예전에는 노는 시간은 말 그대로 해방의 시간과도 같았다. 당시 사람들은 지루한 업무에 매여있었기 때문에, 밤에는 약간 난잡하게 놀고 싶어했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루한 사회에 묶여 있다고 생각해서 노는 시간만큼은 규칙을 깨뜨리고 싶어했다. 하지만 보보들에게는 일에 놀이를 결합시키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보보들은 결합과 조화의 명수들이다. 그들은 일은 더 즐겁게 하고, 즐거움은 더 부드럽게 추구한다.

진지한 놀이
다른 집단이나 예전의 엘리트 계층은 성스러운 도덕적 규범에 복종하거나 적어도 경의를 표했을지 모른다. 이를테면 음주는 악행이다. 하지만 보보들은 즐거움을 규제하려는 보편적인 도덕적 법칙을 편안하게 여기지 않는다. 보보들은 더 평범한 자기 통제 방식들을 선호한다. 보보들에게 금지되는 것은 건강하지 못하거나 안전하지 않은 행위들이다. 보보들에게 권장되는 것은 영혼을 살찌우거나 성취감을 높이는 행위들이다. 다만 육신의 욕망을 도덕 규범이 아닌 건강 규범으로 규제한다. 보보들은 술을 악마의 유혹이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대신에 음주 운전의 위험에 대해 경고하는 식이다. 정절이 신성한 덕목이라고 예찬하지 않는다. 대신에 안전한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고 가장 안전한 형태의 섹스는 절제와 금욕임을 강조할 뿐이다.

-누군가의 글




  작성자   : 김연진 (yjkimb@lgad.lg.co.kr)  추천: 5, 조회: 120, 줄수: 97, 분류: Etc. 
보보스에 대한 짧은 커멘트 

한국에서 보보스란 계층을 언급하고
그들이 실제하는 것 처럼 소란을 떠는 것은
단순히 상업적인 것이다라고 치부할 순 없다.
실제로 한국사회에서는 '졸부'라는 말을 통해
돈은 많치만 학력이나 지적수준은 낮은 이들을 경시하는
말이 많이 떠돌아 다녔다.
'프레스티지'란 말의 가장 핵심적인 의미는
타인과의 차별화이다.
보보스란 말은 새로운 의미의 차별화이다.
그러나, 이말이 물론, 물질적인 빈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알다시피, 정신적 여유는 물질적 자유로 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그 말이 단순히 부자들의 여유나 사치로만 치부할수는
없다.
이들이 표방하는 자유란 것은 단순히 그들이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숨은 욕구나 타인 의식적이라기보다는
지극히 내면적인 자기 자신이 세계나 환타지를 포함하고 있다.

주위에 보보스가 과연 있나?
누구를 딱 집어 보보스라고 할수는 없지만,
보보스와 비슷한 이를 떠올릴 수는 있다.
그것은 우리의 어떤 행동이나 욕구등이 보보스가 추구하는 것들과
상당부분 일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주관적 동일시가 일어나는 현실에서는
보보스란 것이 존재하느냐 아니냐...만들어진것이냐 따위의
물음은 소모적이다. 이미 그 효력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케팅적으로 보면 보보스란 것은
제품이 이제 단순히 기능적 욕구나
고급감으로 인한 차별적 과시욕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제품을 차별화할 수 있는 소지나 영역이 넓어졌음을
의미하기도 하고 좀더 감각적인 이미지와 Narration을
창출해야하는 부담이 되기도 한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보보스란 것은
시대정신들간의 충돌과 부조화를 해소시키려는
집단적 동인으로 부터 나온 것이라고 볼수 있다.
물론, 이것이 프롤레타리아트와 자본가의 갈등을
해소시킨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전혀 아닌 것도 아니다.
보보스란 말은 흔히 포장된 프롤레타리아트, 조금더
부유한 프롤레타리아트. 아니 정확히 말하면 고학력 프롤레타리아트
를 의미한다.
즉, 현대 지식사회에서의 노동자를 일컫는 말로 써도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면, 이것은 어떤 효력을 가지는가?
프롤레타리이트라고 한다면, 왠지 투쟁해야할 것 같다.
그러나, 보보스하면 자신의 삶과 내면적 가치를 소중히하고
인생을 즐길수 있다.
고학력 노동자가 자신을 돈 많은 졸부와 차별화시킬수도 있을
뿐더러, 그러한 자신의 욕망에 대한 죄의식을 없애는 역할을
해준다.
사회의 생산성은 조금씩 높아진다.
일정정도의 생산성의 향상으로 노동자의 삶은 예전보다
나아졌다(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작금의 지식노동자는 대학교 다닐때, 대부분 데모를 하거나
자본의 착취에 대한 반감을 가져본 사람들이 많다.
나는 삶을 영위하고 싶다.
나는 과거에 자본을 반대하였다.
 보보스란 말은 이 두가지 인지를 교묘히 화해시키고 있다.
한국에서 보보스란 말이 유행하는 것은 이렇게
그동안 죄의식 또는 졸부, 또는 보수 아니 나쁜 것들과
차별화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해주고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해주는 기능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