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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아웃사이더? 인사이더?

로드365 2007. 3. 13. 10:48




[서평] 진중권의 <호모 코레아니쿠스>

 "황우석 박사는 한국인의 영웅인가?"

"낸시 랭은 '된장녀'인가 '예술가'인가?"

"글쓰기로 진중권을 이길 사람은 없을까?"

"체력은 국력인가?"

항상 논쟁을 몰고 다닌 미학자 진중권은 새로운 저서 <호모 코레아니쿠스>에 한국인의 '습속'(habitus)을 '냉정하게' 분석하겠다고 공언한다. 그가 독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인의 습속을 "마치 해부를 하는 의사처럼" 객관적으로 파헤치려 시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피하기 힘들 것 같다. 저자는 비하하지도 자찬하지도 않겠다며 가치중립적인 분석을 예고했지만, '낯설게 보기'를 통한 그의 한국인 분석은 숨은 속살들을 들킨 것처럼 창피하기만 하다. 저자가 중립적이지 못했던 것일까, 한국인의 습속이 창피한 것일까?


'습속'이랑 '국민성'이랑 뭐가 다르지?

'습속'이란 무엇인가? 습속이란 "거칠게 말하면 특정 사회 성원들의 사고방식, 감정구조, 행동양식의 총합"(11쪽)이다. 흔히 사람들이 '국민성'이나 '정체성'이라 부르는 것들과 습속은 분명히 다르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습속은 "한국인이라면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는 규범적 전제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이들과 차별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국민성이나 정체성 등의 규범적 논의로부터 탈피하는데 성공했는지 몰라도 서구 선진국의 문화를 기준으로 한국인의 습속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서구 중심주의'로부터는 그다지 자유로워 보이지 않는다.
한국인의 습속을 설명하면서 그가 사용하는 '미발달', '몰취미' 등의 단어만 살펴봐도 그렇다. 과연 어떤 '발달'된 사회를 기준으로 한국인이 '미발달'했다고 볼 수 있으며, 어떤 잘난 '취미'를 기준으로 한국인이 '몰취미'로 평가받을 수 있는가?

한국인의 무조건적인 서구 추종을 비판하면서도 저자는 다시 '남을 추종하지 않는다'는 성숙한 서구의 습속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저자는 곳곳에서 그런 습속이 태동할 수밖에 없게 된 한국의 맥락을 기술하긴 한다. 그러나 이를 서구와 대비해 공평하게 고려했는지는 의문이다.
예컨대 한국의 간판에 대한 그의 분석. 눈이 아플 정도로 공격적이고 화려한 간판이 도시 미관을 어지럽힌다는 그의 지적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는 비정상적으로 높은 한국의 자영업자 비중과 그로 인한 치열한 경쟁을 전혀 고려해주지 않는다.

그저 저자는 간판이 깔끔하게 정리된 서구가 보기 좋다는 사실을 기준으로 한국의 화려한 간판들이 '몰취미'하다고 비판할 뿐이다. 그렇게 화려한 간판 없이 생존할 수 없는 많은 영세한 자영업자들의 애환 같은 것에 진중권은 결코 관심이 없다.
그는 또한 '상징'이 없는 문화라고 지적하며 한국을 저발달된 문화로 간주하지만 과거의 상징들이 철저하게 파괴되었던 우리의 근대화 과정은 무시하고 있다.
서구중심주의의 혐의를 잠시 걷어내고서 보면, 물론 저자의 재기 발랄한 분석은 이 책에서도 빛을 발한다. 가령 1부에서 한국의 근대화를 '군대화'의 과정이었다고 설명하는 부분은 주목할 만한 통찰이다.

그는 "한국인의 신체는 근대화 과정에서 '군대화'되었다"며 "개발 독재 정권이 막을 내리고 소위 민주 정부가 들어선 현재에도 오히려 '군대화'는 심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2006년 모 은행의 신입사원들이 연수에서 무박 2일로 40km를 철야 행진했던 사실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주 5일제 근무를 시행하여 여가 시간이 늘어도 한국인이 고질적으로 피곤한 이유는 우리의 문화가 이미 "'삶을 위해 일하는 문화'가 아니라 '일을 위해 사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기질에 대한 논의도 흥미롭다. '오감'에 대한 분석은 외국에 잠시라도 살다 온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할 만하다. 독일에서와는 다르게, 사람들이 길에서 부딪혀도 사과하지 않는 섬세함의 결여(촉각), 미의식을 결여한 간판들(시각), 공공장소에서도 크게 소리를 질러 대화하는 한국인들(청각), 생마늘과 삼겹살 냄새의 강렬함(후각), 식당에서 심하게 쩝쩝거리며 먹다가 쫓겨난 한국인의 예화(미각)가 그것이다.

그러나 1부를 가혹한 생체공학을 통한 '근대인'의 주조를 보여주는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에서 시작한 이 책은 2부에서 '한국의 문명화'가 덜 되었다는 푸념으로 돌아온다. 3부에서는 원본에 꿀리지 않는 복제물로서 '시뮬라크르(simulacre)'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한국의 '짝퉁'에 대한 미학적 분석을 시도한다. 그러나 진중권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짝퉁은 당당한 짝퉁이 아니라 짝퉁은 짝퉁일 뿐인 것에 그친다.

저자는 '상징'보다 '물질'을 강조하는 한국인의 생산 관념이 세계의 주요한 짝퉁 생산국으로 한국이 남아있게 하는 이유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저자의 설명대로 한국이 세계 수위의 짝퉁 생산국으로 남아있는 이유가 그 생산 관념이 아직 물질에 고착되어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서구문화의 상징에 대한 동경 때문인지는 생각해볼 문제이다.


무조건적인 긍정이나 부정 대신 '독자적 모델' 검토해야

서구 문화를 기준으로 하면 한국인의 습속은 창피할 만큼 미발달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호모 코레아니쿠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더디게 발달해오지 않았다. 경제발전과 민주화에 있어 한국은 서구가 100년에 걸쳐 해오던 것들을 10년 단위 내에서 해쳐왔다. 그 압축적 근대화 과정에서 병폐가 없는 게 이상한 일일 것이다.

<호모 코레아니쿠스>에서 한국 사회가 보여주는 병폐의 한 단면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지침으로서 이 책이 유효한지는 의문이다. 서구를 추종하다 생긴 문제들을 서구 선진국을 기준으로 비판하는 것이 정당한지가 의문이다.

한국적인 것을 고정된 실체로 보고, 무조건적인 찬양을 보내는 것도 국수주의라는 점에서 경계해야겠지만 이제는 작금의 병폐들을 극복할 만한 독자적 모델을 검토해볼 때가 아닐까. 문제도 기준도 대안도 서구에 있는 불공평한 게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2007.2.14 오마이뉴스


[한겨레21] 한국인, 그 신기한 동물들

진중권의 경쾌하고 날카로운 한국인 분석 <호모 코레아니쿠스>

진중권 교수의 새 책이 나왔다. <호모 코레아니쿠스>(웅진지식하우스 펴냄, 1만3천원). 그의 새 책이 나왔다는 것 자체는 별로 이야깃거리가 되지 못한다. 책의 표지가 닳기도 전에 다른 책이 나올 테니까.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한국인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다작이라는 면에선 한참 높은 곳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강준만 교수도 일전에 <한국인 코드>에서 한국인을 도마 위에 올린 적이 있다. 요즘 유행일까? 

책을 이야기하기 전에 짚고 가야 할 문제 하나. 단일한 특성을 가진 ‘한국인’이라는 집단을 상정할 수 있는가. 진 교수와 강 교수 모두 이 문제엔 매우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이유로 한국인의 속성을 분석하고자 한다. 강준만 교수는 서구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적용하는 한국 학계의 풍토에 반발하고, 우리의 현실을 우리의 토대 아래 바라보고자 한다. 그는 한국인의 특성들을 추출해서 그것의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을 균형 있게 관찰한다. 따라서 그에게 우리의 근대는 서구의 근대와 그냥 다른 것이다. 진중권 교수는 이 책에서 한국인만이 갖고 있는 단일한 민족성이나 정체성 같은 개념은 거부하면서, 자신의 시도가 익숙해져 있는 제 문화를 ‘낯설게 보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난 뒤 한때 그의 신경과 오감에 낯설게 다가왔던 것들, 한국인의 신체, 한국인의 습속을 그대로 기록하는 것. 외부의 시선으로 한국인의 몸을 관찰하는 것. 그에게 우리의 근대는 서구의 근대에 비해 왜곡되고 열등한 것이다.

책은 한국인의 습성을 진중권 특유의 경쾌하고 날카로운 문장으로 파헤치고 있다. 1장은 근대화를 다룬다. 살인적인 속도로 진행된 근대화가 한국인의 신체를 어떻게 마음껏 구겨서 끼워 맞춰놓았는지 관찰한다. “일본인들이 게으르다고 했던 조선인의 몸. 몇십 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한 자본주의적인 신체가 되었다.” 근대화의 첫 번째 단추는 인간개조다. 여기엔 정치적 성격인 ‘국민의 군대화’와 경제적 성격인 ‘합리적 생산 시스템’이 작동한다. 대학 정문에서 교통정리를 하다가 교수의 차량인 지나갈 때마다 거수경례를 붙이는 복학생들, 포로수용소를 연상시키는 학교의 조회 등 불필요한 세리머니는 ‘군대화’를 상징한다.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가면서 과거에 국가가 하던 훈육을 지금은 시장이 대신하는 듯한 모습이다. 아직도 신입사원들에게 유격훈련을 시키는 시대착오적인 회사들이 이를 증명한다.

인간개조 작업은 ‘회사인’을 탄생시킨다. 신임 사장이 마라톤 성적을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바람에 무리해서 마라톤 연습을 하다가 쓰러져 숨진 어느 노동자. 여기엔 제 몸을 기업의 요구에 맞게 자발적으로 뜯어고치는 한국인들의 비극이 숨겨져 있다. 출세를 위해선 인사하는 각도, 명함 주는 자세, 웃음까지 회사의 요구에 맞춰야 한다.

책의 2장은 한국인의 습속에 숨은 전근대성을 관찰한다. 지은이는 전근대성의 문제를 서구‘문명화의 과정’이 부재했던 우리의 역사와 연결짓는다. 엘리아스에 따르면 감정적이고 호전적이었던 중세의 기사들은 왕권이 강화되면서 궁정에 들어와 가신으로 변모하며 ‘궁정적 합리성’을 갖추게 된다. 부르주아 계급이 진출하면서 ‘궁정적 합리성’은 ‘상인적 합리성’으로 대체되며 귀족의 교양은 시민계급에 흡수된다. 그러나 한국은 양반계급의 교양이 시민에게 확산될 기회를 갖지 못했고, 급격히 이식되고 진행된 서구식 근대화는 ‘문명화’와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우리는 중세 기사들이나 가질 법한 ‘전사 기질’을 자랑한다. 뿐만 아니라 논리적 토론은 빈약하고 정념과 감동은 과잉이다. 귀족계급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시민사회로 전이되지 못한 탓에 양반문화는 속이 텅 비어버렸고 스스로 천박해졌다. 그것은 과시나 쓸데없는 ‘체면문화’ 등으로 나타난다.

3장은 디지털 시대의 한국인을 다룬다. 디지털 시대에 대한 그의 논의를 여기서 요약하지는 않는다. 이 문제에 관해선 앞으로 더 진화된 그의 글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한 가지 의구심만은 남겨둔다. 디지털 시대에 대한 과잉평가의 혐의는 없는 걸까?




 
1. 난 사회주의자 다
 

진중권씨와 인사동에서 만났다. 인사를 나누고 근황을 물었다. 별로 말을 아끼는 성격은 아닌 듯 싶었다. 기냥 머리 치고 꼬리 자르고, 칼 들고 곧장 들이치며 질문을 시작했다. 진중권을 만나기로 했다니, 주위 사람들이 그 사람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첫 질문은 '정체를 밝혀라!'로 해야지 하고, 마음속으로 작정을 했다. 그렇게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삼불이(이하, 삼):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당신은 무슨 주의자냐?


진중권(이하, 진): 하, 사회주의자다.

진중권씨의 대답엔 일말의 주저도 없었다. 곧장 '사회주의자'라는 명찰을 꺼내 붙였다. 물론 우리가 붙인 건 아니고, 본인이 직접 만든 명찰이었다. 어떤 알리바이도 대지 않고, 어떤 비유도 쓰지 않은 채 나온 답변이라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삼: 사회주의자라, 공식적으로 표명한 적은 없지 않나?

진: 사회주의자다, 아니다 라는 식의 명찰보다는, 구체적 현실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사회주의는 이념적 목표다.

삼: 언제부터 스스로 사회주의자라 생각했나?

진: 대학 2학년, 맑스의 『정치경제학비판』과 『공산당선언』을 읽고 나서다.

삼: 선배들의 학습을 통해서?

진: 아니, 난 개인적으로 학습했다.

혼자 책을 읽다가 사회주의자로 개종했다니, 지식인답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 당시엔 번역본도 없었고, 선배 없이 야간에 자율학습을 했다고 하니, 그럼 외국어를 직접 읽었다는 말인데, 외국어를 잘 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도 있고 해서 물었다.

삼: 당신 선후배가 당신을 언어의 귀재라고 하던데? 영어, 독어, 불어, 러시아 등등.

진: 옛날 일이지. 남들보다 말을 조금 빨리 익히는 편인 듯하다. 러시아어는 2달 공부하고 바로 번역을 시작했으니. 그냥 독해만 하고, 말을 잘 하는 건 아니다.

삼: 대학 시절엔, 조용한 사람이었다던데?

진: 말을 많이 했는데, 눈에 잘 띄지 않았던 것뿐. 그 시절에야 운동권이 목소리가 제일 높았으니까.

솔직한 인상을 말하자면, 진중권 씨는 분명 말수가 적은 사람은 아니다. 그 반대에 가까웠다.

삼: 국내에서 활동하다가 90년대 중반인가 유학갔다던데?

진: 석사과정 마치고 여러 단체에 있다가, 독일로 갔다. 유학 자금이 필요해서 『미학 오디세이』로 돈을 좀 벌고 갔다.

삼: 책 팔아 생활할 정도의 돈이 마련되었나?

진: IMF 터지기 전까지는 충분히 가능했다.

삼: 왜 독일로 갔나?

진: 베를린 자유대학이었는데, 사실 난 공부에 별 관심도 없었고, 학위를 하겠다는 생각도 없이 그냥 갔다. 다만, 동독 사람들을 만나고 싶기는 했다. 사회주의권 몰락 이후, 방황하다가 구체적 계획 없이 그냥 간 거다. 가서 처음 3년간은 무작정 놀았다.

삼: 독일에서는 어떻게 노나?

진: 놀기 좋다. 외국 사람들이 많으니, 서로 파티하고, 어울리고 하면서.

삼: 부인도 외국 분인 걸로 알고 있다. 독일에서 만났나? 멋진 로맨스는 없었나?

진: 독일에서 만났는데, 우리 로맨스 같은 거 없었다. 그저 좋은 친구였다.


 2. 우익 똘반 아이들? 진짜 불쌍하지....

 
삼불이: 당신을 유명하게 한 '우익 똘반 아이들'에 대한 공격은 독일에서 시작했나?


진중권: 아마 97년 무렵이다. 나한테 원고 청탁이 왔는데, '악마주의'에 대해서 쓰라고 했다. 19세기 예술가나 작가들의 악마주의적 상상력 같은 거였다.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글이 '낭만주의적 영웅' 어쩌고 하면서, 박정희를 미화하는 특집에 실리는 거였다. 허나 어쩌나, 어쨌든 원고는 보냈으니. 그래서, 내 의견을 한 4-5페이지 정도 첨부할 수 있게 해달고 했다. 그쪽에서 오케이 했고. 그래서 보냈는데, 편집회의에서 짤라 버렸지. 그 자리에 이인화도 있었다고 했는데 그냥 가만히 있었데. 완전히 열 받아서, 편집위원 명단을 알려 달라고 난리를 쳤더니, 다른 잡지를 소개해 주겠데.
그곳이 <문학동네>였거든. 그래서 접촉이 되었는데, 그쪽에서 요즘 조갑제가 박정희 찬양하는 글을 쓰고 있으니, 그걸 비판하는 글을 청탁하더라고. 그래서 썼는데, 지들이 먼저 부탁해 놓고는 나중에 못 싣겠다는 거야. 아마 <문학동네>하고 <조선일보> 사이의 협력 관계에 문제가 생길까 싶어서였겠지. 여기서 완전히 돌아버려서, 이곳저곳 더 알아봤지. 그 글이 돌고 돌다 <인물과 사상>에 들어갔고, 거기서 연락하기를, 자신은 언론의 자유를 화끈하게 보장하니 막 쓰라는 거야. 자료도 보내주면서. 그래서 연재하게 됐지. 나중에 정보를 입수했는데, 10.26 10주기를 기념해서 박정희 전기가 나온다길래, 거기에 맞불을 놓자 해서, 한 2달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그 짓만 했지.

삼: 힘들진 않았나?

진: 재밌었다. 나 혼자 재밌어서 낄낄거리고 그랬다. 마누라는 우리말을 모르니 '당신 돌았어?' 하고, 그 사람이 그러는데 내가 잠자리에서도 낄낄거렸대.

삼: 그럼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가 뜰 줄 알았다?

진: 그것보다도 걔들 글이 재밌잖아. 웃기고. 완전 코메디 수준이지.

삼: 당신은 스스로 사회주의자라 하지만, 우익 똘반 아이들 공격하는 글이 '사회주의적'이라고 하기는 어려운데.. 야만, 미개, 비논리, 비합리 등등 당신이 쓰는 용어나 논리는 오히려 자유주의에 가깝지 않나?

진: 걔들과의 싸움은 이건 '상식과 비상식'의 싸움이지, 무슨 세계관 대결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사회주의가 얼마나 좋은 건데' 라는 식의 반론은, 닭짓이다. 걔들하고 세계관 대결을 벌인다 하면, 그건 결판이 나지도 않는다. 그래서 결판이 날 수 있는 논리의 영역으로 걔들을 끌어들인 거다.

삼: 그 말은 자유, 관용, 공존 등 자유주의적 원칙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진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믿는다는 말로 이해해도 되나?

진: 당연하다. 일단 동서독을 보더라도, 그렇지 않은 사회는 매력이 없다. 재미도 없다.

삼: 정리하면, 당신은 결국 한국 사회는 수준 이하고, 그런 상황을 못 참겠다는 생각인가?

진: 그렇다. 일단 우익 똘반과 같은, 그 친구들 없애버려야 한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들 하니까. 일단 걔들은 고립시켜야 한다. 그리고나서 우리 사회가 이념적으로 다양해져야 한다. 한국의 좌파들은 자꾸 세계관의 차원에서 고상한 말만 한다. 구체적인 정책을 내어놓지는 못하면서 말이다.

삼: 당신이 비판하는 방식은, 논리 이전에 있는 어떤 것을 들추어내거나, 부분과 부분을 나란히 놓음으로써 그 논리의 모순을 폭로하는 방식이다. 그럼, 당신은 실제 누구나 공유할 수 있고 누구나 참이라고 믿는 논리의 세계가 있다고 믿는 쪽인가?

진: 내 비판 방식은 일종의 게임이다. 사실 장난이다. 논리는 그 게임의 규칙 같은 거다. 솔직히 난 그들을 놀려먹는 거다. 도덕적 단죄 같은 건 안 한다. 도덕적 단죄를 하면 부담이 생긴다. 내가 도덕적으로 결함이 없어야 된다는 사실이 부담이다. 누가 더 선하고 깨끗한가, 이런 싸움으로 가고 싶지 않고 가봐야 도움도 안 된다.
그냥 만지고 주물럭거리면서, 내 전공이 미학이니까, '미학적으로 풍자'하고, 그런 게 내 적성에 맞다.

삼: 당신한테 걸린 사람들, 예컨대 조선일보의 조갑제, 소설가 이인화, 이문열 등등이 그런 사람인데, 솔직히 그런 사람에 대해서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진: 진짜 불쌍하지. 인생을 왜 그렇게 사느냐 말야. 그 사람들, 지배욕, 권력욕으로 사는 사람들이거든. 그렇게 살아야 사는 거라고 믿으니, 진짜 불쌍하지. 지배하고 권력을 지녀야만 잘 사는 건가 말야. 그렇지만, 그들이 지금 이 시기에 한국에서 살고 있다는 건 최고의 혜택이다.
그런 어처구니 없는 비상식과 몰염치가 통하는 시대, 통하는 사회니까 말이다. 그러나, 또 최대의 불행이기도 하지. 나 같은 놈과 같은 시대, 같은 사회에 살고 있으니까.

삼: 당신이 행한 비판에 대해서, 당신이 인정할 만한 반론을 받아본 적이 있다고 생각하나?

진: 없다. 당연히, 있으면 안 된다. 처음에 준비할 때 철저히 준비해서, 그 주장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데, 인정할 만한 반론이 나오면 그건 내가 잘못 한 거지. 완벽한 승리를 자신할 수 있을 때 나서야 한다. 시각에 따라 다른 반론이 가능한 것, 그런 건 건들지도 않는다.

솔직히 난 진중권 씨가 사회주의자라는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본인 스스로 사회주의자라고 주장하기는 하지만, 나의 편견 탓인지 실제 진중권 씨의 삶에 딱 들어맞는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진중권씨가 자유주의적 원칙을 옹호하는 대목에선 정말 그답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중권식 자유주의(?)는 실상 녹록한 게 아닌 듯했다. 외국에서 일본인 여자와 만나 결혼해서 살고 아이를 놓고, 권력화된 제도 바깥에서 저항하고 비판하며... 이런 삶 자체를 실제 살고 있는 사람이니까. 입으론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면서 집중화된 권력에 기생하고, 대학교수로 보장된 보수적 이익에 집착하는 '먹물'이 얼마나 많은가!

3. < 인물과 사상 >, < 아웃사이더 > 의 사람들

 이제 돌아갈 수 없는 문제를 던져야 할 때이다. <인물과 사상>의 강준만, <아웃사이더>의 김규항·김정란 등과 함께 일하곤 하는데, 도대체 그들과 본인이 서로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생각하는지 말이다.

삼불이: 당신을 강준만 부류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그 사람은 공공연히 자신이 자유주의자라고 하는데, 그 사람에 대한 당신의 솔직한 견해는?

진중권: 기본적으로는 긍정적이라 판단한다. 다만, 지나치게 친민주당이 아닌가 하는 우려는 있다. 또 하나, 인물론을 전개하는 데 너무 평가적이다. 사람은 변할 수 있는데, 그 여지를 너무 줄인다는 인상이다.

삼: 김규항, 김정란, 홍세화 씨와 <아웃사이더>를 냈는데, 당신은 늘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하나? 조직 활동과 관련된 체질은 어떤가?

진: 조직 활동과 아웃사이더로서의 활동, 둘 다 잘 할 수 있다. 조직적 훈련을 받아본 적이 있으니까.

삼: 다소 미묘한 질문이 되겠는데, <아웃사이더> 동인에 김정란 씨가 껴 있다는 건 이해가 안 된다. 최소한의 합의점이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김정란 씨의 글은 투정,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 속에 들어가고 싶은데, 배제되었다"는 식으로 읽힌다. 그래서 오히려 <아웃사이더>에나 안티 조선일보 쪽에 부정적인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진: 그전에도 문제가 발생했을 때, 김정란 씨가 쓴 글에 대해서 나도 불만이 많았다. 개인적인 문제와 대의가 명확하게 구분이 안 되어 있었고. 또 정치적 담론과 문학적 담론이 구분되어 있지도 않았다. 내 주변에서도 부정적인 평가가 9/10였다. 그 다음에 사람들한테 김정란 씨에 관한 온갖 부정적인 사적인 이야기까지 다 들었다.

삼: 그런데도 함께 하게 된 이유는? 그 사람도 <조선일보>를 까는 역할을 할 수 있으니까?

진: <조선일보>를 까는가 아닌가 문제 수준이 아니다. 우리 문학판 전체의 문제다. 문학판에서는 아무도 김정란 씨 같은 글을 써 주지 않는다. 김정란을 욕하는 문학평론 하는 한 친구가 있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그럼 네가 그런 글을 써보겠냐"고. 그 친구는 못하겠다고 했다, "먹고 살아야 되기 땜에". 그런 건 잘못된 거 아니냐? <문학동네>하고도 싸움이 붙었는데 황당했다... 어쨌거나 나는 지금 올바른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뜻을 합했으면 그 사람을 끝까지 보호해야 한다는 거 아닌가.

삼: 음... 막상 문학판에서는 뒤에서 군지렁대는 말은 많지만 공식적으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진: 그놈의 문학판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거기 정말 끔찍해, 끔찍해. 어떻게 그런 인간들이 시를 쓰고......

삼: 좀더 자세히 말해 줄 수 있겠나?

진: 아니... 전반적인 분위기가! (정말 끔찍하다는 표정과 제스처를 썼다) 만나서 술자리에서 한다는 얘기라든지 누구 씹는 이야기라든지 보면 문학적이기는커녕 기본적으로 몰상식 그 자체다. 또 그 무딤, '감성없음성', 또 발언의 '싸가지없음성', 마초 근성까지.

이 대목에서 진중권씨는 정말 넌더리가 난다는 표정을 계속 지었다. 말 하는 것조차 귀찮고 역겹다는 인상을 풍기면서.

삼: 정말 끔찍했던 모양이군.

진: 예술가들은 감성으로 정치적인 문제까지 알아차려야 되지 않나. 근데 기본적인 감성이라는 건 없는 동네더라고. 몇 가지 말장난으로 먹는 동네고.... 또 그 권력! 아유, 정말 끔찍하다. 그래서 따져보면 김정란 욕하는 사람들이나 김정란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다른 사람들한테 김정란에 관한 말을 많이 들었지만, 내 판단은 최종적으로 OK였다.


4. 미학연구자 진중권 - 읽고 쓰며 자유롭게 산다

삼: 비트겐슈타인 공부를 한다며?
 

진: 근대 철학을 완전히 박살낸 사람이 비트겐슈타인이다. 데리다도 사실 비트겐슈타인 읽었거든. 데리다 <목소리와 현상>에 나오는 논증, 그거 다 비트겐슈타인이 한 거다. 근데 비트겐슈타인에 대해서 한 마디도 안 하거든, 그게 비트겐슈타인을 읽었다는 증거지. 포스트모더니즘이 쓸 데 없는 비합리주의나 상대주의로 흐르지 않게 할 근거가 비트겐슈타인 안에 있는 거 같다.
그거를 언어철학적으로 접근하는 게 내 철학적 프로젝트다. 그리고 모던에 대한 포스트모던적 비판이 노출증적으로 흐르지 않게 언어철학적 기반을 마련하는 거...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이 정말로 유용한 분야가 사실은 예술이나 미학 분야다. 지금 보면 그 친구들 글쓰기가 문학적 글쓰기로 변해버렸지만, 포스트모던의 사상은 사실은 옛 아방가르드 예술적 실험 같은 걸 철학의 영역에서 하는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 미학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많은 분야 거다.
 

삼: 박사 논문은 안 쓰나?  

진: 써서 어디 갈 데도 없고 받아주는 데도 없고... 내가 일단 거기 담을 쌓았기 때문에... 근데 박사는 하고 싶어. 근데 안 붙여 주더라고, 짜증나게... 이것도 과욕인지... 아집인지...

삼: 한다면 어디서?

진: 독일은 이제 갈 수가 없고, 할 수 있다면 일본에 가고 싶다.

삼: 부인도 일본 사람이니... 부인은 뭘 하시나?

진: 미술사 전공했어. 지금은 애 낳아서 키우고 있고. 얼마 전에 애를 낳았다. 나야 항상 집에 있으니 애를 같이 봐야지. 기저귀 갈고... 젖 주는 거 빼고는 다 할 수 있지 않겠나?

삼: 제도권 학자가 되는 건 완전히 접고 있는 거네.  

진: 굳이 안 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받아 주지도 않을뿐더러. 들어가면 또 이걸 해야 되니까.(손을 맞대어 비빈다) 내 인생에 특별히 도움될 거라고 생각이 안 든다.  

삼: 글면 당신이 지금 주로 하는 일이 뭐냐?

진: 글 쓰는 거지. 그게 가장 중요하고. 요즘은 출판사에서 이론서는 웬만하면 안 내줄라 그런다. 만날 나더러는 대중용 뭐를 써라 그러는데. 짜증나지. 이론서 작업을 계속 해볼 생각이다. 왜, 피아니스트한테 맨날 팝송만 치라하면 짜증나지 않겠나? 물론 팝 공연하면 몇 천 몇 만이 오겠지만, 독주횔 한다면 몇 명이나 콘서트에 오겠나. 나와 같은 이론적 관심을 가진 사람이 전세계적으로 한 500명이나 되겠나. 뭐 그런 문제다.  
 

삼: 생활비는 어디서? 원고료나 인세?

진: 그렇지 주로. 근데 내 아내도 그렇고 생활에 대해선 큰 기대는 없다. 만족하면서 살고. 
자동차도 없고 삐삐도 없고. 없이 살 수도 있거든. 좀 불편하긴 하지만. 카페 같은 데 가면 비싸니까 자동판매기 커피 뽑아서 길바닥에서 이야기 하고.
 

삼: 김포에서만 지내고 서울에 잘 안 나오냐? 집에서 읽고 쓰고...?

진: 에. 가끔 같이 산책 나가고 날 좋으면 와인 잔 두 개 들고 나가서 논바닥에 앉아서 와인 한 잔 마시고...

삼: 김포에 사는 별난 이유라도 있나?

진: 아니! 우리가 조그만 건물을 하나 갖고 있었는데 전 재산이었지. 그걸 팔아서 동생 장가 가는 데 보태고 남는 거로 집 살라 그러니까, 모자라지. 외곽으로 갔지. 싸니까. 난 유학하면서도 벌어서 가족을 부양했지. 히히.

삼: 성장환경은 어땠나?

진: 그렇게 가난하지 않았는데, 어렸을 때는 아주 가난했다.

짐작하겠지만, 진중권 씨의 벌이가 신통찮은 듯했다. 생계는 겨우 꾸려가지만 여유는 거의 없다고 했다. 사실 무엇보다도 이 대목에서 좀 안타까웠다. 진중권 씨에 대한 오호의 감정은 다양하겠지만, 이런 사람이 계속 정력적으로 활동한다면 더 재밌고 즐거운 사회가 되리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대부분일 것이다.


5. 글쓰기와 삶의 전략

삼: 당신이 글쓰고 비판하는 방식이 요즘 젊은 학생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진지하게 탐구하는 책은 거의 안 읽고, 강준만이나 당신 같은 글투로 쓴 책을 주로 읽는다 한다. 남의 말을 꼬투리 잡고, 빈정대고, 까발리고, 폭로하는 식의 어투가 확산되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무슨 책임감 같은 건 안 느끼나?

진: 내 글을 읽는데, 겉모습만 보아서는 곤란하다. 난 비판하기 위해 아주 치밀하게 읽고 구상한다. 그 논리의 구성과 따지는 안목을 보아야 한다. 또 도덕성이 중요하다. 누군가를 비판할 때, 내가 도덕적으로 우월하고 선하다는 식의 태도는 취하지 않는다. 이런 걸 보지 못하고 표피적으로 받아들여선 곤란하다. 그렇다고, 그런 문제의 책임을 나보고 감당하라는 것은 좀 지나치다. 그러지 말라고 내가 떠들고 다닐 수는 없지 않나.

삼: 맨날 남 조지기만 하는데 조지지 않고 존경하는 사람이나 인정하는 사람은 없나?

진: 존경의 감정은 안 갖는 거 같다. 누구한테도. 그런데 인정하는 사람은 많지. 내가 씹었던 사람들 말고.. 이영희 선생, 양동휘 교수라든지 꿋꿋하게 공부하는 사람들.

삼: 당신에게 철학적인 기본 입장이 있다면?

진: 이름을 붙여 말하긴 뭐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의 입장에 많이 동의하는 편이다.  

삼: 지적 충격의 계기들은?

진: 대학 다닐 때는 맑스 정치경제학이나 <공산당 선언> 읽고 뿅 갔지. 더 어릴 땐 니체였던 거 같고. 니체를 세 번 접했는데. 학부 때 굉장히 끌리는 면이 많고 사람 마음 편하게 해주는 거 같더라고. 그거로 운동권 친구들 많이 놀려주고 그랬지. 내 수준에서 이해한 거 가지고 "니들 그거 다 권력의지야, 대의 좆까지마." 그랬지. 하하.
다음엔 루카치 <이성의 파괴>로 읽었는데 군대 가서였다. 루카치는 맑스주의의 관점으로 니체 철학을 파시스트 철학의 선구로 딱 규정하더라고. 그래서 완전히 네가티브하게 이해를 해 보기도 했고. 그러고 나니 그런 구절만 보이데. 그 다음엔 요즘 포스트모더니스트 애들이 떠드는 거 가지고 한 번 이해해봤지. 맥락 자체엔 동의하지 않지만 니체 철학에서 건질 건 많다고 본다.

삼: 유학 가서는 그런 경험이 없었나?

진: 데리다의 <법의 힘>이라는 책. 세 개의 법철학이라 해서 바이마르 법에 대한 발터 벤야민의 좌파적 비판, 또 칼 슈미트의 우파적 비판이 내용인데, 데리다는 알 듯 모를 듯 결론을 냈다. 그런데 거기서 텍스트 읽기의 예술 같은 걸 느꼈다. 세미나 시간에 보면서 팍 느낀 건... 옛날에는 철학적 담론이라는 게 세계관의 표현이라 이해했는데, 그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깨졌다. 추상적인 철학적 이야기나 논리가 현실의 법 논리나 정치적 투쟁과 어떻게 매취되는가 하는 거... 세상이 다시 보이더라고. 아, 그렇게 읽는 거구나. 유학 가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이 그거야.

삼: 우리나라 지적 풍토에서 제일 약한 게 텍스틀 읽어 내는 힘 자체가 없다는 거냐?

진: 바로 그거다. 텍스트를 못 읽어. 텍스트를 읽는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모르는 거지. 추상적인 논리와 현실의 끈적끈적한 물질적 힘들이 어떻게 매치가 되고 어떻게 언어적으로 표현되고 텍스트로 생산되는가? 그 고리를 봐야 되는데. 걔들 비판하는 거도 밑에는 여러 가지 법철학적인 논리를 좍 깔고 그 스펙트럼을 바탕으로 파악한 뒤 현실의 논리나 현실의 텍스트로 들어가는 거지. 그 정치적 효과가 뭐냐? 재네들이 말하는 게 뭔지 그걸 폭로하는 거지.

삼: 한국 지식인에게 할 말은?

진: 사람들이 사실 이런 거에는 관심이 없어. 공부하는 놈들은 당연히 왜 저 새끼가 저런 쓸 데 없는 닭짓 하느냐, 그렇게 타자로만 보고. 심지어는 타자를 얘기하는 그 친구들조차도 나를 타자로 얘기하잖아. 날 왕따로 만드는 거지.

삼: 외롭지는 않냐?

진: 아, 외로울 필요 없어.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가 밥만 먹여 놓으면 혼자 잘 놀았다. 내가 젤 좋아하는 건 섹스하고 공상하는 거다. 혼자...

삼: 혼자?

진: 아, 그룹섹스에는 별로 관심 없다. 사랑하는 사람만 있음 되지. 하하하. 책 읽으면서 오르가즘 느끼고.

삼: 나름대로 굴곡도 많았던 거 같고 살 날도 많이 남았는데 당신의 삶이 한 전형이나 삶의 가능성인가? 당신 사는 방법을 자평한다면 어떤가? 나와 같은 삶의 형태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 좋은 사회가 되는 걸까?

진: 내가 사는 방식을 남들한테 권하고 싶지는 않다. 각자가 자기 방식대로 사는 건데. 근데 그런 거 있다. 자신의 삶 자체를 작품이라 간주하고 자신의 형식 원리에 따라 그걸 창조적으로 꾸며나가는 거 - 그런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도덕적인 측면에서도 자기자신의 도덕을, 사적인 도덕을 가졌으면 한다. 우리가 사는 걸 보면 미리 정해져 있다. 그래서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은 사회적 도덕이나 가치관에 억지로 꿰맞춰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을 긍정하고 자기 도덕을 만들어 나가고... 또 자기 도덕을 만들되 이상한 이기주의로 흐르지 않게끔 합리적으로 논증이 가능하게 만들어 나갈 수가 있다고 본다. 그러면 공장에서 물건 찍는 것처럼이 아니라 각자 자기 삶을 예술 작품처럼 만드는 거지. 예술에도 논리가 있잖아? 굉장히 다양한 가치관과 삶이 가능하다고 본다. 근데 막 사는 게 아니라 가꿔 나가는 그런 삶.

삼: 마지막으로 물어보자. 이 인터뷰 전체에서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대목이 있다면?

진: <조선일보> 보지 맙시다. 아하하하!  -출처 : 퍼슨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