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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14좌

로드365 2003. 12. 9. 09:51




1. 에베레스트 8,848m
2. K2  8,611m
3. 캉첸중가 8,586m
4. 로체 8,516m
5. 마칼루 8,463m
6. 초오유 8,201m
7. 다울라기리 8,167m
8. 마나슬루 8,163m
9. 낭가파르밧 8,126m
10.안나프르나 8,091m
11.가셔브름Ⅰ8,068m
12.브로드피크 8,047m
13.시샤팡마 8,046m
14.가셔브름Ⅱ 8,035m

■ K2
지리적 위치: 카라코람 발토로산군
위도: 76도30'51N
경도: 35도52'55E
고도: 8,611m

K2는 그 높이에서 뿐만 아니라 등반에 있어서도 많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산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이 봉우리가 세계 두 번째 고봉으로 알려진 것은 1858년의 일이다. 에베레스트와 같은 방식으로 이 산을 측량한 결과 8,611미터 라는 숫자가 나온 것이다. 이때까지 이 산은 K2(카라코람 제2봉이란 뜻)란 기호로 쓰여왔던 것인데 우연하게도 세계 2위의 고봉으로 밝혀지자 그대로 '케이투'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후 이 산에 최초로 다가간 사람은 영국인 고드윈 오스틴이었다. 그는 1861년 카라코룸에서 탐험을 하다가 K2에 이르는 발토로빙하를 발견해 냈다. 그후 1888년 영국 왕립지질학회에서는 그의 공적을 찬양하여 K2에 그의 이름을 붙일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실제 아주 오래된 지도 중에는 이 산의 이름이 K2 대신에 '마운트 고드윈 오스틴(Mt. Godwin-Austin)'이라고 표기된 것들이 있다. 후에 이 산은 원주민들이 초고리hogori)라고 부르는 것을 알게 되었으나 이미 K2라는 이름이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초코'는 크다라는 뜻이고 '리'는 산을 뜻한다.
발토로 빙하 깊숙히 위치한 콩코르디아 북쪽 끝에 우뚝 솟은 K2는 크게 나눠 북릉, 북서릉, 서릉, 남릉, 남동릉, 남서릉, 북동릉의 7개 능선으로 이루어진 삼각뿔형 독립봉이다. 이 산을 오르겠다고 생각한 최초의 사람은 영국인 엑켄스타인이었다. 그는 서구인들이 히말라야에 본격적으로 원정을 시작하기 훨씬 전인 1902년에 5명의 대원을 이끌고 이 산에 들어와 총 11개의 캠프를 전진시키며 등반했다. 결국 북동릉 6812미터에 도달하는 것으로 그쳤으나 이 원정으로 K2가 그렇게 만만한 산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K2의 등반에 관심을 가진 두번째 사람은 1909년 당시 이태리 왕의 사촌형이 되는 아브루찌公이었다. 아브루찌는 비록 등정에 실패했지만 그가 발견한 남동릉은 '아브루찌 릉'으로 명명되었고 그의 뜻을 이어받아 44년 뒤인 1954년에 이 루트로 초등정하게 된다. A. 데지오가 이끄는 이탈리아의 대규모 원정대가 7월 31일 아브루찌 릉을 통하여 L. 라체델리와 A. 콤파뇨니를 정상에 올리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것은 1858년 이 산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으로 판명된 지 96년 만의 일이었다. 아브루찌가 택한 대규모 캬라반과 조직적인 등반방식은 후에 히말라야 8천미터급 고산원정의 패턴으로 자리잡았다.
우리나라는 1986년 8월 3일 대한산악연맹 원정대(대장 김병준)의 장봉완, 김창선, 장병호대원이 아브루찌 릉을 통해 정상등정에 성공했다.
 



■ 로체
지리적 위치: 네팔히말라야 쿰부산군의 중북부
위도: 27도58'00N
경도: 86도56'00E
고도: 8,516m

세계 4위의 고봉 로체는 최고봉 에베레스트에서 남쪽으로 3km정도 떨어져 있으며 에베레스트의 사우스콜을 기점으로 분리되어 있어서 에베레스트의 위성봉으로 인식이 되어서인지 등반이 다른 8000미터봉에 비해서 등반이 그리 많지는 않으나 성공률 역시 매우 낮은 봉우리이다. 산이름 로체의 '로(Lho)'는 남쪽을, '체(Tse)'는 봉우리란 뜻으로 '에베레스트의 남쪽 봉우리'를 의미한다.
최초의 등반은 1955년 N.다이렌퍼스가 지휘하는 국제원정대가 시도를 하였는데 프리몬순에 이산의 남쪽에 서 정찰등반을 그리고 E. 슈나이더가 지형도를 제작했으며 몬순 후에 웨스턴 쿰으로부터 정상등정을 시도했지만 8,100m 지점에서 철수했다.
초등정은 1956년 5월 18일 A. 에글러 지휘한 스위스 원정대에 의해 5월 18일 이루어졌는데 F. 루이징거와 E. 라이스가 서벽을 경유하여 정상에 도달했다.
현재 히말라야의 고봉의 벽중에서 가장 등반이 어려운 벽 중의 하나로 로체 남벽이 꼽히는 데 라이홀트 메스너가 '21세기에나 가능한 벽'이라고 했다. 8000미터급 14봉을 모두 오른 폴란드의 예지 쿠쿠츠카가 89년 로체 남벽을 오르던 중 추락사했다.
한국은 1988년 10월 2일 대한산악연맹 원정대의 정호진, 임형칠, 박히동, 박쾌돈대원이 최초로 등정했다.
로체는 에베레스트와 인접한 관계로 로체봉 단독등반보다는 에베레스트와 로체를 연결하는 등반이 시도되는 경우가 많다.
 



■ 낭가파르밧
지리적 위치: 파키스탄 펀잡히말라야
위도: 35도14'21N
경도: 74도35'24E
고도: 8,125m

'산중의 왕'으로 불리는 낭가파르밧은 약 2500Km에 달하는 협의의 히말라야 산맥 서쪽 끝에 위치한 푼잡히말라야의 최고봉으로, 북쪽으로는 인더스강 상류를 경계로 카라코람과 떨어져 있으며, 동쪽으로는 캐시미르를 이어 히말라야로 통하고 있다.
다섯 개의 큰 빙하 위에 수직의 루팔(Rupal)벽이 남쪽으로, 디아미르(Diamir)벽이 서쪽으로, 그리고 라키오트(Rakhiot)벽이 북동쪽으로 내리 뻗고 그 위에 북봉, 주봉, 남봉이 사다리꼴 모양으로 400미터 정상벽을 이루며 장엄하게 솟아 있다.
'낭가파르밧'은 인도측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으로 '벌거벗은 산'을 의미하고, '디아미르'는 산의 서측 탈트계 사람들이 '정령(精靈)의 산'이란 의미로 부른다.
세계 제 9위의 고봉 낭가파르밧은 일찍이 알프스에서 등로주의를 선창하고 나선 머메리가 1895년 히말라야등반사의 첫 장을 열었던 산이다. 머메리는 불행하게도 이 등반에서 조난사하고 만다. 그로부터 58년 뒤인 1953년 7월 3일 독일-오스트리아합동대(대장 헤를리히코퍼)의 헤르만 불에 의해 초등정되기까지 독일인에게 여섯 차례나 실패를 안겨주었고 그 과정에서 31명의 히생자를 낸 산이기도 하다. 초등정 당시 본부의 명령을 어기고 단독으로 정상도전에 나서 3일만에 살아 돌아온 헤르만 불은 '8천미터의 위와 아래'라는 유명한 책을 남겼다.
보다 높고 어려운 등반을 추구하는 머메리즘의 실현 대상으로서의 낭가파르밧은 8천미터급 산 중에서 가장 많은 희생과 고통을 요구하는 산이었다. 대표적인 벽은 디아미르벽과 루팔벽인데, 특히 남동쪽의 루팔벽은 수직 고도가 4,500 미터로 세계 최대의 벽이며 그 등반성이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 7월 광주전남합동대가 낭가파르밧 정상등정을 시도했으나 정성백(조대공전 OB) 대원이 7900m지점에서 실종되고, 1992년 우암산악회가 등정에 성공했다.
 



■ 안나푸르나
지리적 위치: 네팔 히말라야 중부, 안나푸르나 산군
위도: 28도35'44N
경도: 83도49'19E
고도: 8,091m

세계 10위의 고봉 안나푸르나는 서쪽으로 칼리간다키(Kali Gandaki)강과 동쪽으로 마르산디(Marsian야) 계곡까지 수많은 연봉을 거느리고 있는 안나푸르나 산군의 최고봉이다. 안나푸르나 2봉, 3봉, 4봉의 위성봉과 닐기리, 틸리쵸, 강가푸르나, 마차푸차레 등 아름다운 7천미터급 산들을 거느리고 있다.
모리스 엘조그가 이끄는 프랑스 원정대는 본래 공격목표였던 다울라기리에서 안나푸르나로 진입하여 등반로를 정찰했는데 등반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과감하게 등반을 시도하여 6월 3일에 정상에 서는데 성공하였다.
안나푸르나는 산스크리트어로 '풍요의 여신'이란 의미이며 인류 최초로 등정된 봉우리라 하여 'Premier 8000'이란 별칭을 가지고 있다. 1949년 네팔왕국이 오랜 쇄국정책 끝에 문호를 개방했는데 이에 세계 각국의 원정대가 미답의 8천미터급 봉우리를 등정하기위해 몰려들었고, 그 tsen를 화려하게 장식한 것이 프랑스원정대의 안나푸르나 등정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성공과 달리 하산 때에는 여러 처참한 상황이 벌어졌는데 등정조 모리스 엘조그와 루이 라슈날이 3도 동상을 입고 후송되어 내려왔는데, 그는 여러날 걸린 무더운 카라반 끝에 결국 손가락과 발가락을 절단해야만 하는 불운을 당해야 했다.
이후 1970년 영국의 크리스 보닝턴이 이끄는 원정대가 험난한 남벽을 통해 등정함으로써 히말라야 등로주의 시대를 열었다. 이후 안나푸르나에는 10여개의 루트가 개척되었으나, 이산 특유의 눈사태로 수많은 산악인이 히생되었다.
우리나라도 지금까지 14명의 대원과 셀파가 눈사태로 사망했다. 한국대는 1983년부터 등반을 시도하여 84년 겨울에는 여성 최초, 동계 최초로 등정하는 성과를 이룩했으나 의혹이 제기되었다. 공식적인 최초 등정은 1994년 남벽으로 오른 경남산악연맹의 박정헌대원과 4명의 셀파에 의해서다




■가셔브롬1봉
지리적 위치: 카라코람 발토로산맥, 중국 신강자치구 경계
위도: 35도43'30N
경도: 76도41'48E
고도: 8,068m

가셔브룸산군은 콩코르디아 남동쪽 아브루찌(Abruzzi)빙하에 들어서면 만나는 남가셔브룸 빙하를 1봉부터 6봉까지 말굽형으로 둘러싸고 있다.
가셔브룸 I봉은 아브루찌 빙하에 도착할 때까지 다른 산들에 의해 숨겨져 있어 일찍이 1892년 이 산군 정찰에 나선 독일의 콘웨이(W.M. Conway)가 '히든피크(Hidden Peak)'라 불렀다. 가셔브룸은 발티어로 '아름답다' 혹은 '빛나는'이란 뜻의 'Rgasha'와 '산'이란 뜻의 'Brum'의 합성어로 '빛나는 산'을 의미한다.
1889년부터 1929년 사이의 히말라야 카라코람 개척사의 초기에 영국, 이탈리아인들이 가셔브룸 I봉을 측정하고 탐사활동을 펼쳤다. 이산의 측량기호는 K5.
1934년 스위스의 디렌푸르트의 지휘 아래 국제원정대가 가셔브룸 I봉에 대한 대규모의 탐사를 감행했는데 H. 에르틀과 A. 로흐가 남서쪽에 있는 스퍼를 올라 6300m 지점까지 도 달했고, 1936년에는 H. 드 세고뉴의 프랑스 원정대가 수송문제와 포터의 파업으로 남쪽의 스퍼를 통해 6900m까지 도달했다. 2차대전이 끝나고 1958년 미국원정대(대장 크린치)가 이 '숨겨진 봉우리'를 찾아왔다. 그리고 7월 4일 쇼닝과 카프만 대원이 강추위와 심설을 헤치고 마침내 정상에 도달했다. 이로써 미국은 8000m급 초등정 대열에 끼게 되었다.
히든피크는 알파인스타일로 등정된 최초의 8000m봉이다. 1975년 8월 베이스 캠프까지 불과 12명의 포터만 동원한 2인조 원정대 라인홀트 메스너와 피터 하벨러가 가셔브룸 I봉의 북벽을 경유하여 등정했는데 이것은 히말라야에서 최초로 이루어진 알파인스타일 등정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 충남산악연맹 원정대(대장 윤건중)의 박혁상대원이 처음으로 등정에 성공했다.
 



■ 브로드피크
지리적 위치: 카라코람 발토로산군, 중국 신강 자치구와의 경계
위도: 35도48'35N
경도: 76도34'25E
고도: 8,047m

발토로산국의 고드윈 오스틴 빙하 오른족으로 솟아 있는 세계 12위의 고봉. K2와 남동쪽으로 이웃하고 있으며 북봉(7,537m), 중앙봉(8,006m)을 거느리고 있다.
산이름은 발티어로 '넓은 눈의 산'이란 뜻을 지닌 팔첸 캉리(Falchen Kangri)가 있었으나1892년 콘웨이가 이끄는 영국탐험대의 정찰 때 '폭 넓은 봉우리'란 뜻으로 현재의 이름 브로드 피크로 붙여졌다. 1954년에 헤어리히코퍼가 지휘하는 독일-이탈리아 원정대가 처음으로 브로드 피크를 도전해 남서사면에 있는 위험한 빙벽을 오르려고 시도하다가 6,900미터 지점에서 결국 포기하게 되었고, 1957년에 M. 슈무크의 지휘 아래 헤르만 불, 디엠베르거, 빈터슈텔러 등 강력한 4인조가 전원 초등정에 성공했다. 이들은 고소포터와 산소기구를 사용하지 않고 장비를 3개의 고소캠프를 전진 시킨 후 두차례의 정상공격으로 간단히 등정에 성공했다.
낭가파르밧 등정자 헤르만 불은 이 등정으로 세계 최초로 8천미터 2개봉 등정자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 악우회가 서릉으로 등정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가 일본대에 의해 전봉임이 밝혀져 오랫동안 미등정을 남아 있다가 가장 늦게 등정되었다. 1995년에 스페인 바스크 원정대와 합동으로 등반한 엄홍길과 광주전남의 빛고을 원정대가 몇 시간 차이로 정상에 서게 되었다.
 


■ 시샤팡마
지리적 위치: 중국 티베트 남서부, 시샤팡마 산군
위도: 28도21'07N
경도: 85도46'55E
높이: 8,027m

시샤팡마는 히말라야의 8천미터급 14좌 중에서 가장 낮은 산으로 동쪽으로 순코시(Sunkosi)강과 서쪽으로 트리술리(Trisuli)강을 끼고 있는 랑탕-쥬갈 지역의 최고봉이다. 이 산은 8천미터급 봉우리 중에서 유일하게 중국 국경 안에 위치한 관계로 14좌 중 가장 늦은 1964년에야 허경(許競)대장이 이끄는 중국대에 의해 초등정된 산이다.
산명은 티베트어로'황량한 땅'즉, 기후가 나빠 작물과 가축이 살 수 없는 장소를 의미한다.
이 산을 네팔에서는'고사인탄(Gosainthan)'이라고도 부르는데 이것은 카트만두에서 북쪽으로 50여 킬로미터 떨어진 힌두 성지 '고사인쿤드'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사인쿤드는 힌두어로 '성자의 거주지'를 의미한다.
시샤팡마는 티베트의 수도 라사에서는 서쪽으로 무려 420킬로미터나 떨어진 반면에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는 북북동쪽으로 불과 85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네팔서 티베트 국경 잠무를 거쳐 육로를 통해 티베트로 들어가는 팀이 많다.
이 산의 정찰은 1921년 영국 에베레스트 정찰대에 의하여 동면에서 관찰되었고, 하인리히 하러 일행의 인도 포로수용소 탈출 후 티베트로 망명 중 북서면에서 관찰되었으나 본격적인 정찰은 1949년 틸만(Tilman)에 의해 랑탕계곡 쪽에서 시작되었다.
중국은 대륙의 공산화에 성공 후 최후의 8천미터급 산을 초등정하기 위해 1961년부터 3회의 정찰로 현재의 주접근로인 북면 야북캉갈라 빙하를 통해 7,160m까지 도달한 후 1964년 10명의 중국산악인을 정상에 올리는데 성공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1년 대한산악연맹(대장 김명수)의 김창선, 김재수대원이 남서벽을 통해 최초로 올랐다.
이름처럼 시샤팡마의 가장 곤란한 점은 극심한 기상변동으로 인한 바람인데, 10월부터 시작 되는 티벳고원의 폭풍은 바람을 피할 것 조차 없는 평야지대 위에 우뚝 선 시샤팡마로 불어 와 등반가들에게 고통을 준다.
 



■ 가셔브롬2봉
지리적 위치: 카라코람 발토로 산맥, 중국 신강자치구 경계
위도: 35도45'31N
경도: 76도39'15E
고도: 8,035m

가셔브룸산군의 가장 북쪽에 자리잡고 있는 세계 13위의 고봉 가셔브룸 2봉은 K4의 측량부호가 붙여진 것 외에는 특별히 다른 이름이 없다. 8000미터 봉 중에서는 가장 등정이 쉬운 산으로 꼽힌다.
1909년 아브루찌가 이끄는 원정대와 이때 참가한 이탈리아의 사진사 V. 셀라가 북쪽과 초 고리사 방면에서 가셔브룸 산군을 정찰했으며, 1934년 스위스의 G.O. 디렌푸르트의 지휘 아래 국제원정대가 가셔브룸 II봉의 등반 가능한 루트를 살피면서 6,250m까지 올랐다.
1956년에 오스트리아의 프리츠 모라벡의 지휘 아래 6명으로 구성된 원정대가 남서릉을 경유하여 가셔브룸 II봉의 초등정에 성공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1년 8월 19일 성균관대학교 원정대(대장 한상국)의 한상국, 김창선, 김수홍, 유석재 등 대원 전원이 등정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