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ㅗ

공중그네, 오쿠다 히데오

로드365 2007. 3. 6. 20:24
이노부 캐릭터는 여기저기 응용해 볼만 하다.
현실세계에서 카타르시스 가득한 캐릭터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엊그제 단숨에 읽은 일본 소설 ‘공중그네’
-약간 우울 모드이신 분, 심심한 사람들에게 ‘강추!’입니다.


얼마 전, 집 근처의 자주 가는 미용실에 이 책이 있길래 읽으며 킬킬 거리다가 끝내는 책을 빌려오고 말았지요. 인터넷 서점에서 보니 이 책이 청소년 권장도서로 꼽혔더군요. 워낙 웃겨서 아무나 읽어도 상관없겠지만, 제 소감으론 이 책은 '중년 권장도서' 같아요.

중년에 이르도록 멀쩡하게 자신의 일을 잘 수행해오던 야쿠자, 서커스 단원, 야구선수, 의사, 작가들이 갑자기 뭔가가 고장난 것처럼 일상 생활에서 원인을 잘 알 수 없는 장애를 겪기 시작합니다.
야쿠자가 갑자기 칼끝, 연필끝 처럼 뾰족한 것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는가 하면, 서커스 단원은 멀쩡히 잘 해오던 공중그네에서 번번이 떨어지는 식입니다. 야구선수는 새로 들어온 꽃미남 후배에게 밀려난 스트레스로 실력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리구요.

등장인물들이 이노부 의사를 찾아가게 된 원인은 여러가지이지만, 공통점을 찾아본다면 그들이 자신의 '사회적 자아'를 발달시키는 동안 무의식 속에 꽁꽁 감춰둔 강박증, 집착과 질투, 상처 받지 않으려 발달시킨 이러저러한 방어기제들이 표면으로 스물스물 기어 올라와 경고음을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는 거죠. (음....재미있는 소설을 제가 점점 따분한 책으로 변질시키고 있는 것같군요....-.-;)

이들이 찾아간 이노부 의사가 그럼 어떤 멋진 처방을 내렸을까요.
처방은 무슨....이노부 의사는 그들의 호소에 잘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제멋대로입니다.
작가는 이노부 의사의 '처방'을 통해 해결책을 제시하는 대신, 이노부 의사가 어떤 사람인지를 묘사하면서 심리적 강박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중년의 전형'을 보여주지요.
등장인물들도 별 신기한 사람 다 봤네, 하는 심정으로 이노부를 구경하다가 자신도 슬슬 변화하게 되는 식입니다. 제 생각에 작가는 심리학 공부를 했거나 심리치료를 받아본 경험을 바탕삼아 이 책을 쓰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노부 의사의 성격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아이같음' 입니다.
뭔가가 하고 싶어지면 그냥 해버리는 천진난만함, 왕성한 호기심이 그의 특징이지요. 야쿠자를 만나면 조폭 흉내를 따라하고, 서커스 단원을 만나면 공중그네 타기에 도전하고, 도무지 두려움도, 대책도 없이, 하고 싶은 건 일단 하고 보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상에만 '꽂혀' 있으니, 남이 뭔 말을 하건 전혀 상처받지 않고 남에게 이해받기를 기대하지도 않죠.

바로 이런 '아이같음'이 '자유로운 중년'이 되는데 결정적으로 필요한 요소입니다.
좀 따분한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면, 애실리 몬테규라는 인류학자가 '유형(幼形) 성숙'을 통해 중년의 성장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어요. 우리와 조상이 같은 침팬지와 달리 인간은 성인이 되어서도 어린이의 특성을 그대로 갖고 있는데 그걸 '유형 성숙'이라고 부르지요.
(참고로 이 '어린아이적 특성'이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궁금하시면 '영원한 어린아이, 인간' '서드 에이지, 마흔이후 30년'을 보세요. 두 책 모두 '강추!'입니다.)

유형 성숙의 심리적 특성은 개방적인 마음, 호기심, 즐거움, 흥분, 웃음, 장난기 같은 것들입니다. 애실리 몬테규는 이같은 특징들을 행동 특성으로 확대하는 것이 중년기의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합니다. 사회적 가면, 지위나 인정에 대한 욕구를 떨쳐내고 자신 안의 어린아이적 특성을 다시 발견하는데 성공하면, 인간은 신체적 노화는 겪더라도 평생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거죠.
어린아이적 특성을 좀 더 열거 한다면 이런 것들도 포함되지 않을까요?  쾌활한 장난기, 뭐든 배우려는 태도, 실수를 통해 기꺼이 배우려는 마음, 실수나 성취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 자기자신을 용서하는 능력....이 모든 특징들은 '공중그네'에서 이노부 의사의 성격과 딱 들어맞는 것들이죠.


책에 '중년'이라고 콕 짚어 나오진 않지만 이노부 의사가 자신의 존재 자체로 보여주는 '처방'을 정리해 '처방전'을 쓴다면 이런 것들이 아닐까 싶네요.
아이와도 같은 호기심을 잃지 말라, 하고 싶은 것은 미루지 말고 일단 하라,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라, '제 멋대로인 삶'이 '제대로인 삶'이니 달라지려고 너무 애쓰지 말라....책 안엔 이런 명언이 등장하기도 하지요.^^ 

"성격이란 건 기득권이야. 저 놈은 어쩔 수 없다고 남들이 손들게 만들면 이기는 것이지." (!!!!)

공중그네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어딘가 수상해보이는 정신과 병원을 배경으로, 이라부 박사와 여러 환자들이 벌이는 요절복통 사건들이 그려진다.


출처 http://www.bookino.net/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