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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포트레이트 Self-Portrait

로드365 2001. 10. 22. 20:21


    Self Portrait



셀프 포트레이트는 어떤 의미를 갖을까요?



'초상화'와 비교해보면 그 범위가 적지만, 비슷한 점도 있습니다. 자기 얼굴을 남기고 싶어하는 마음은 소멸되어가는 것을 붙잡아 놓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 소멸되어가는 것이란, 죽음을 향해 가는 인생일 수도 있고, 탄탄한 젊은 몸일 수도 있으며, 언제 사라질 지 모르는 얇팍한 재산 혹은 권력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직도 사진은, 흐르는 시간 앞에서 사라져가는 많은 것들 옆에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강운구 선생의 지난 전시 글에는 "시간과 겨루어 슬프지 않은 것은 없다" 라는 제목의 서문이 있었죠.

회화에서 찾아보자면 초상화보다는 자화상에 가깝습니다. '신의 시대'에서 '인간의 시대'로 넘어가는 르네상스 시기를 거치면서 화가들은 처음으로 자화상이라는 것을 그리기 시작했지요. 여태껏 교회를 위해 벽화를 그리던 화가들이 거울을 들여다 보고, 자기 얼굴을 그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자기 작품 귀퉁이에 사인이라는 것도 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교실 뒤벽에 내 그림이 붙여지고 이름표의 내 이름을 보는 기쁨같은 것이었을까요? 이렇게 '자아 인식'이라는 움직임을 들어, 근대적 의미의 예술가의 탄생이라고도 말합니다.

낸골딘은 남자친구에게 폭행당한 자신의 모습을 사진을 찍어 남기는 등, 아주 개인적이지만 또한 중요한 사회적인 관심사를 사진 작업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신디셔먼은 '영화 사진' 시리즈를 계속 찍어오고 있는 현대 사진가입니다. 스스로 분장을 하고 영화 속의 한 장면인 듯 꾸며놓고는 사진을 찍는 거지요. 여러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여성으로 살기'에대해 질문하고 있는 듯 합니다. 혹은 이 사회에서 여성이 어떻게 보여지는 지, 여성을 보는 시각은 무엇인지 질문하고 있는 거지요.


사진이 발달하면서 셀프 포트레이트는 더 흔해지고, 더 중요한 장르가 되었습니다. 먼저 글에서 말한 바있지만, 사진이야말로 '자기 자신을 자기 밖에서 바라보기에 좋은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보여주건 보여주지 않건말이죠.


'메멘토'라는 영화를 비디오로 빌려다 보았습니다. 사고를 당한 후 기억을 얼마 이상 지속시키지 못하는 단기기억증 환자인 주인공이 온갖 메모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 지를 확인해가며, 자신이 할 일을 결정한다는 얘기입니다. 주인공과 관객은, 주인공이 부인의 복수를 위해 범인을 찾고 있다고, 영화가 끝나기 직전까지 믿게되지요. 그 메모에는 종이에 써 놓는 자필의 기록과 몸에 새겨 놓은 문신 그리고, 즉석카메라로 찍어놓은 사진이 포함됩니다. 영화는 즉석카메라의 사진이 점점 흐려지는 것으로 시작하므로써 영화 내 시간의 흐름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안내를 합니다. 주인공은 사고 이전 '과거의 자신은 누구인 지 알지만, 현재의 자신은 누구인 지 모릅니다.' 스스로 만들어 놓은 메모를 통해서만, 자신이 누구인 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메모를 통해서만 자신과 타인의 관계를 규정하지요. 그 주인공은 자기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타인 사이의 메모 속에 있는 것입니다. 특히나, 그가 몸에 문신을 새기는 행위는 마치 '사진찍기'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내가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 지를 고민하고, 타인과 나 사이에 나를 둘러싼 이미지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그 이미지에서 정체성을 찾아간다고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로버트 메이플도프의 자화상입니다. 동성연애이기자이기도 했던 메이플도프는 자기 몸 사진을 통해 '성정체성 논의'를 풀어갑니다. 어찌 생각해보면, 성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몸만큼 꾸준하고 심각한 고민의 대상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저에게도 사춘기 이후, 이 몸뚱이는 꿈이자 짐입니다. 쭈욱~.



그에 비하면 듀안 마이클의 "as if I were dead" 라는 작품은 좀 더 추상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듯합니다.


여러분은 스스로의 사진을 찍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self portrate 라는 것 말이죠. 셀프 포트레이트를 찍다 보면, 단지 내가 어떻게 예쁘게 보일까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무엇으로 보이고 싶은가를 결정하게됩니다. 그리고, 영화의 메모가 거짓이듯 자신을 둘러싼 이미지도 허상일 지도 모른다는 걸 알게되지만, 주인공이나 우리 모두 그 허상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거지요. 주인공의 몸에는 두 가지 문신이 있습니다. 하나는 똑바로 새겨진 글씨이며, 하나는 뒤집어 쓰여서 거울에 비추어 보면 똑바로 보이는 글씨입니다. 그런데, 주인공의 몸이 찍힌 사진에서는 여전히 그 글씨는 뒤집어져 있습니다. 거울에 비친 영상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지만, 사진의 영상은 타인의 시선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그 자체로 '객관으로 드러내기'라는 또 하나의 시선입니다. 그래서, 셀프 포트레이트를 찍는 일은 스스로 대상으로 전락함으로써 주체의 상실을 경험하는 일, 소멸의 경험이며, 주체를 객체로 바꾸는 어떤 긴장을 향한 욕구는 일종의 에로티즘에 다름아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


언젠가 주가가 뚝 떨어진 날, 주식 객장에서 인상 팍팍 쓰는 투자자들을 찍기위해서 몇 시간을 기다린 적이 있습니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 객장 의자에 앉아 인상을 쓴 채, 옆에 있던 누군가에게 좀 찍어달라고 했죠. 내가 하고 있는 일에대한, 어설픈 사진적 반항인 셈이었습니다. 제 사진을 보면 누구나 "이 사진 누가찍었어? 하고 묻더군요. 전 "그건 내 사진이야. 내가 찍은 거라고. 누가 셔터 꼭지를 눌렀느냐는 중요한게 아니다"고 항변을 하죠. 사실 그 장소에서 그런 앵글로 그런 그림을 찍겠다고 결정한 건 저 아니겠어요? 제가 셀프 포트레이트에대한 글을 쓰겠다고 했더니, '삼각대가 없는데 어떻게 찍지?'라고 하던 친구도 같은 생각이었겠죠.


차분히 자기를 뒤돌아 보기 좋은 시절이죠.
셀프 포트레이트를 찍어보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r's self-p

  written by 채승우.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