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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수 감독, 범상치않은 욕망

로드365 2007. 2. 28. 18:47
보통 영화속 캐릭터들이 쿨한척해서 거부감이 들곤 했는데
바람난 가족 캐릭터들은 쿨하더라.
아주 화려하거나 흥행 돌풍 감독은 아니지만 쌔끈한 현대정서를 표현할 줄 아는 감독.
감독의 삶도 웬지 그럴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만나보고 싶은 감독.




임상수 감독 인터뷰(1) - 나는 느낀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자 할뿐. 

황석영의 원작 소설 ‘오래된 정원’을 영화화한 임상수 감독을 1월 11일 오후 2시 광화문에 있는 t-class 커피숍에서 만났다. ‘처녀들의 저녁식사’, ‘눈물’, ‘바람난 가족’, ‘그때 그 사람들’까지 내놓는 작품마다 논란이 일어 문제적 감독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임상수 감독은 ‘나는 작가적 양심을 가지고 예술가로서 내가 판단해서 느낀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자 한다’면서 ‘영화는 그렇게 단순한게 아니다. 진영논리를 가지고 영화를 표피적으로 해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임상수 감독은 고은 선생과의 대담에서 ‘차이와 공존을 생각할 때 영국의 테러사건이 떠오른다’고 하면서 이등시민으로 모멸받으면서 살아왔던 이슬람인들의 현실을 외면하면서 ‘그들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영국인들의 위선을 지적한 바 있다. 그걸 보면서 무지는 위선을 낳는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상대방에 대한 무지 또는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으면 위선적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권력을 잡고 있는 민주화운동 세력에게서도 비슷한 위선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들은 여전히 힘겹게 사는 노동운동 진영이나 서민들에게 ‘세상이 좋아졌는데, 왜 그런 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는지 이해가 안간다’고 말하기도 하지 않는가? 하지만 임상수 감독은 그런 류의 정치적인 해석을 경계하고 있었고, 좀 더 정교하게 영화를 봐주기를 원했다. ‘내가 사실을 보여주면 그 사실이 생각을 낳을 거라고 기대했다’고 한 임상수 감독의 말이 어쩌면 모든 예술 행위, 내지는 사회를 향한 발언의 목적이자 본질일 것이다.

장정일은 ‘공부’를 통해 소설이나 영화와 같은 문화의 중요성을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문화는 이미 추인된 사회현상에 의문을 제시할 뿐 아니라 새로운 현상을 재빨리 진단한다. 적어도 제대로 된 문화라면, 그 사회가 어물쩍거리고 있는 지체를 메워주어야 한다’

임상수 감독의 얘기를 들으면서 진보, 개혁 진영에서는 과연 문화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승호(이하 지) - 고은 선생과의 대담에서 ‘차이와 공존을 생각할 때 영국의 테러사건이 떠오른다’고 하시면서 이등시민으로 모멸받으면서 살아왔던 이슬람인들의 현실을 외면하면서 ‘그들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영국인들의 위선을 지적하셨는데요. 그 얘기를 들으면서 무지가 위선을 낳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던데요. 감독님이 그동안 해오셨던 영화가 우리 사회에 있는 모습 중 하나를 그대로 보여줬는데, 한국 사회에서 잘 안받아들여졌던 것 같습니다. 낯설어하기도 하고, 인터넷 리플을 보면 굉장히 안좋은 쪽으로 나오는 경우도 많았는데요.(웃음)

임상수(이하 임) - 인터넷 리플이 대중의 어떤 반향을 말해주는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죠. 대중의 반향이라는 것은 어떤 커다란 덩어리의 의견인데, 인터넷에 실린 몇 몇개의 개별적인 리플로 판단할 수는 없을 것 같구요. 전 제 영화가 한국 사회에서 잘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하는데요.(웃음)


지 - ‘그때 그 사람들’도 한국 사회에서 잘 받아들여졌다고 말씀하신 것 같은데요. 정치적인 논란 때문에 흥행 면에서도 손해를 보신 것 같고, 잘 안받아들여진 측면도 있었던 것 같은데요.

임 - 말지까지 임상수의 흥행을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구요.(웃음) 그 영화를 만들었을때 그 정도의 반응은 예상을 했던거죠. 그래서 잘 안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재판까지 가리라는 것도 염두에 뒀었지만, 그걸 자르라는 판결은 뜻밖이었어요. 상영 금지 아니면 상영을 할 수 밖에 없는건데, 상영 금지는 부담스러웠을 거고 그래서 상영이 되리라고 생각했던거죠. 그런데 그런 방법이 있다는 걸 보고, 저 쪽의 노회함에 대해 다시 한번 깨달았구요. 예상보다 격렬하게 반대하는 측이 있었는데, 박근혜씨를 놓고 대권을 다투는 쪽에서는 한편의 영화가 눈에 들어오겠습니까? 그래서 그런 반응을 보인거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고 생각하구요.

흥행이 되느냐, 마느냐에 대해서 말지까지 걱정을 할 필요가 있느냐 하는 것은 무슨 말이냐 하면, 흥행된 작품이어야지 일단 그 의미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는 식으로 흥행만이 모든 것이라는 분위기가 과도하기 때문에 얘기하는건데요. 사실은 흥행이 되게 중요하긴 하지만, 흥행이 됐건 안됐건 한 편의 영화를 만들어놓으면 (한국의 DVD 시장이 약하긴 하지만) DVD로도 출시가 되고, 케이블 TV에서 끊임없이 돌아가거든요. 한편의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는 경우보다는 부분 부분 보는 경우가 많겠지만, 어쨌거나 영화를 한편 제작해 놓는다는 것은 흥행의 여부와 상관없이 수년에 걸쳐서 끊임없이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98년에 만든 작품도 여전히 돌아가거든요) 그렇게 돌아간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예상했던 방식으로 한국 사회에 작품이 안착했다고 보는거죠.


지 - 감독님 영화들을 보고 불편해하는 태도 역시 한국 사회의 위선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현실에서 얼마든지 벌어지고 있는 일을 영화를 통해서는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고, 그런 일이 없다는 듯이 살아가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감독님 말씀은 그래도 영화를 만들어놓으면 계속 돌아가니까 한국 사회에 의미 있는 영향을...

임 - 끼친다고 자기 위안을 삼는거죠.(웃음)


지 - 이번 영화를 보면서 많은 분들이 임상수 감독님의 이전 영화와 다르다고 느낀 것 같은데요.

임 - 영화 감독은 다른 영화를 만들어야죠.(웃음) 부드러워졌다, 따뜻해졌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그렇지는 않아요. 다음 작품에서 하나도 안변했다는 걸 보여드리겠습니다. 소재가 멜로 드라마, 러브 스토리로 풀어야되는 얘기고, 상업감독으로서 80년대라는 시대를 다룬 영화를 대중들에게 어떻게 프레젠테이션할 것이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 이를테면 ‘그때 그 사람들’ 같은 경우는 폭력, 총격전 이런 것들로 포장한 것이고, ‘바람난 가족’은 섹스 이런 식으로 포장해서 내보낸거였는데, 이번 것은 부드러운 러브스토리로 포장을 해서 내보낸 것 뿐이지, 제가 변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지 - 원작에 비해서 현우보다 윤희의 비중이 더 커져서 이념보다 사랑이 더 강조된거 아니냐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은데요.

임 - 그런 얘기야말로 정말... 이념보다 사랑을 중요시 여겼다구요? 아직 이념을 중요시하는 사람이 한국 사회에 있습니까?(웃음) 이거는요. 오현우가 이념을 위해서 싸웠던 인생이 완전히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지 않습니까? 얼마나 허망한 상황이겠어요. 자기 일생을 바친건데. 그런데 영화 결말에는 그 남자가 어떤 살아갈 힘을 얻는건데, 그것은 한윤희가 보여준 사랑이랄까, 타인에 대한 태도, 세상에 대한 태도 이런 것에서 힘을 얻었고,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것의 관계는 이런거 아닐까요? 오현우가 이념을 위해서 일단 전두환 정권을 무너뜨려야겠다, 민주주의를 얻어야겠다, 그 다음에 사회주의를 얻어야겠다는 목표가 있었을텐데, 그 다음에 그 목표를 이룬 다음에 어떻게 살고 싶었는지, 그게 오히려 제일 중요한 궁극적인 목표였는데, 그 중간 목표들을 이루려는 싸움에 몰두하다 보니까 어떻게 살고 싶었던 것인가에 대한 것을 잃어버린게 아닌가, 그런데 한윤희가 보여준 사랑이나 삶이 그것을 가르쳐준게 아닌가 하는거죠.

 

그렇게 살 수 있다면, 한윤희처럼만 살 수 있다면 아무것도 아닌, 내 일생을 낭비해버린 아무 것도 아닌 상황에서도 인생을 다시 한번 살아갈 수 있는 것이었던거고, 80년대의 아무리 엄혹한 시절이었다고 할지라도 한윤희 같은 생각과 한윤희 같은 삶의 태도를 보였으면 그 엄혹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적으로 아름답게 살 수 있었던 것 아니겠느냐 하는거죠.

 

내가 어떤 것이 옳은지 그른 것인지 말하는게 아니잖아요.


지 - ‘그 사람을 왜 기다리고 있냐?’는 질문에 한윤희가 ‘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싶었다’고 했는데요. 신영복 선생이 언젠가 했던 ‘지금도 운동 진영에 남아 있는 사람을 보면 강한 이념이 있었다기 보다는 주위 사람들에 대한 인간적 연민을 가진 사람이 남아 있는 것 같다’는 얘기와 같은 맥락인 것 같은데요. 그런데 한쪽에서는 그걸 보면서 김지하 시인이 예전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 치워라’라고 했던 것을 연상하기도 하는 것 같거든요.


임 - 대단히 질문이 정치적이면서도 표피적이예요. 김지하씨가 ‘죽음의 굿판을 거두어라’고 딱 한마디만 말씀하셨는데, 그거는 여러 가지 맥락이 있는 거잖아요. 이를테면 분신하는 자살을 누군가가 사주했다, 어떤 조직이 사주했다는 전제가 깔려있는 거구요. 그 글을 조선일보에 썼다는 것하고, 그런 여러 가지 맥락이 생략된 말이잖아요. ‘얘들아, 자살하지 마라’고 김지하가 그 시절에 얘기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누가 과연 토를 달 수 있는 말이겠어요.


지 - ‘이념보다 중요한 건 삶의 태도’라고 말하는 방식이 80년대를 참혹하게 지낸 사람들에게는 상처가 되는 말이기도 했을 것 같긴 합니다.


임 - 그 상처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조직이 사주했다, 이런 것 때문에 생긴 상처지 ‘얘들아 죽지마라’라는 말에 어떻게 상처를 입을 수가 있어요. 실제로 자살을 자발적으로 하려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얘야, 자살하지 마라’라고 얘기했을때 거기에 어떻게 상처를 입을 수가 있겠어요. 고마운 얘기지.



ⓒ cinewel.com


지 - 그때는 그게 한 삶의 선택이기도 했지 않습니까? 가령 전태일에 대해서 태어나서부터 영웅으로 살다가 영웅으로 죽은 것처럼 묘사하는 것도 그렇지만, ‘얼마나 뜨거웠겠니?’라는 감상적인 태도로만 접근하는 것도...


임 - 저는 정확히 그렇게 본거예요. 그 장면을 제가 어떻게 연출을 했느냐 하면, 그 여자 애가 어떤 부당함에 항거하기 위해서 자살하려고 한 것이 아니고, 다만 경찰이 잡아갈 것을 예상했기 때문에 신나를 뒤집어 쓴거고, 위협하기 위해서 라이터를 들었던 것인데, 경찰이 와서 붙잡으니까 얼떨결에 불은 켜진 것이고, 얼떨결에 자기도 예상치 않았던 불이 자기 몸에 붙게 된 것이고, 떨어져서 죽게 된 것으로 연출을 했어요. 그래서 그 여자가 할 수 있었던 말은 ‘엄마, 뜨거워’ 밖에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 여자가 마음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표현이 안됐죠. 바깥에서 본 사람들은 그걸 열사라고 표현을 하고 있죠. 저는 그런 걸 너무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하는거죠. 어땠을까요? 그 여자가 만약에 죽지 않고, 살수 있는 선택을 우리가 할 수 있게 해준다면...


지 - 감독님 의도가 정확하게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그렇게 죽어간 사람들이 있고, 지금 민주화 세력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 상황을 가지고, 국회의원이 되기도 하고, 사회 요직에 있는 상황에서 많은 실망감을 준 것도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런 것에 대한 비판이 깔려 있는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은데요. 17년간 감옥에 있다가 나오니까 어머니가 1,000만원 짜리 옷을 사주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그게 출세한 운동권에 대한 은유로 읽힐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어머니 입장에서는 보상을 해주고 싶었을 거구요.


임 - 거기에 돈 얘기가 딱 두 번 나오는데요. 윤희가 시장에서 애 업고 있는 여자한테 석류를 사는데 300원인가를 받죠. 그 차이만큼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거예요. 그런데 1,000만원짜리 옷을 지금 이 시대에 사는게 그렇게 비난받을 일이라고 생각하세요?


지 - 비난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위화감을 조성하는건 사실 아닐까요? 아직까지도 어려운 사람들이 많으니까.


임 - 사람들이 다 바라고 있는거 아닌가요? 우리 솔직하게 얘기합시다.(웃음) 천만원 짜리 옷을 사입는 상황을 누구나 바라는거 아닐까요? 내가 못하니까 화가 날뿐이지. 386이 운동을 하다가 국회의원이 되고, 출세했다고 쳐요. 출세라는 말 자체도 비아냥이 깔려 있는 단어잖아요. 다들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뭡니까? 돈 많이 벌고, 출세하려는거 아닌가요? 그걸 나쁘게 보지는 말자구요. 386이 예전에 운동권하다가 정치권에 들어간게 뭐가 나쁜 일이겠어요. 가서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거겠죠. 그런 상황이 이 영화에 있는데, 임상수가 그걸 비꼰건지, 아닌지가 뭐가 그렇게 중요하겠어요.

 

왜 그걸 질문하는지 이해가 안가는데, 그걸 보고 마음이 찔리는 사람은 찔리는거고, 그걸 보고 누굴 생각하면서 고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고소한 거고, 그걸 보고 ‘저게 뭐 어때?’하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는거죠. 전 그것만 보여주는거예요. 그게 정확히 우리의 삶의 모습인거고, 그게 옳으냐, 그르냐는 사실 제가 얘기하고 있지 않죠. 단칼에 그게 옳으냐, 그르냐 하고 얘기할 수 없는거잖아요.


지 - ‘내가 사실을 보여주면 그 사실이 생각을 낳을 거라고 기대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으신데요. 그게 임상수 영화를 관통하는 얘기라는 생각도 듭니다.


임 - 지금 얘기한 것도 그런거네요.


지 - 사실을 보여주고자 할때 어떤 점에 중점을 두시나요?


임 - 사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객관적이고자 한다고 하는 것은 척할 뿐이지, 사실은 객관적일수가 없죠. 저의 어떤 의도 같은 것이 있지만, 그 의도를 숨길 수는 없는거예요. 사실은 숨길 수 없지만, 제가 만든 영화를 봤을때 내 의도에 반대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도 나의 의도를 알 수는 있지만, 내가 만든 영화 자체에 대해서 시비를 걸 수 없을만큼 객관적이면 된다고 생각하는거죠. 그럴려면 말그대로 사실에 중점을 두어야죠. 그래야지 나랑 다른 정치적 성향을 가진 사람도 설득해낼 수 있는 힘이 생기는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