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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준영, 프레인 대표

로드365 2005. 11. 14. 08:44
[전교학신문]국내 1위 홍보대행사 ‘프레인’의 여준영 대표이사
“성공이후 맛볼 결실을 상상하라””
국내 1위 홍보대행회사 ‘프레인‘의 여준영 대표이사.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자 몽상가이다. 그 회사의 홈페이지나 개인의 홈페이지를 보면 재치발랄한 글과 때묻지 않은 꿈이 넘쳐나는 내용에 킥킥 웃음이 삐져나온다. 그런가 하면 그가 직접 쓴 직원에 대한 감사편지 예닐곱통을 읽다보면 연애편지 이상의 순수함과 진정이 느껴져 가슴이 뭉클해진다. 사실 인터뷰를 신청하게 된 것도 기자가 우연히 들른 광화문 프레인 사무실에 넘쳐나는 자유로운 분위기 때문이었다. 직원들의 생일이 가장 큰 사내 이벤트인 회사, 금요일 밤이면 사무실이 극장으로 변하고, 회사를 위해 근속한 직원에게는 ‘스타워즈’의 제다이 목걸이를 헌정하는 등 일터와 놀이터가 함께 어우러진 이 묘한 회사의 CEO의 정체가 궁금해서였다.

인터뷰를 간 날, 여준영대표는 파란색 바탕에 노란색으로 ‘폴로 스포츠’란 글씨가 큼지막하게 쓰여진 티셔츠에 예의 제다이 목걸이를 걸고 있었다. 주황색 기다란 소파가 가로질러 놓여진 그의 사무실은 기자가 본 CEO사무실 중 가장 원색적(?)이었다. 요즘 바야흐로 문화계에 넘쳐나는 최고의 유행코드가 괴짜 아니던가. 화장실 변기에 발을 담그고 물을 내리며 스트레스를 풀었다는 애플컴퓨터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파격이 아닐까 하는 기대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PR, 시쳇말로 피할 것 피하고 알리는 일이라고들 말하는데요. 홍보란 일을 ‘홍보’해주시겠어요?

“글쎄요. 우리 엄마에게도 아들이 밥먹고 사는 일을 2년째 설명해드리고 있는데 아직까지도 납득을 못하신대니까요(하하). 제가 홍보인으로서 스스로 설정한 미션은 상품에 문화를 입히는 일이란 것이지요. 똑같은 브랜드인데도 소비자가 2배의 값을 더 지불하고 사더라도 아깝지 않게 느껴지게끔 하는 일이라고나 할까요. 0에서 1을 만드는 원초적 생산은 아니지만, 1을 100으로 만드는 확대재생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 PR사 CEO인 당신을 한마디로 어떻게 PR할 수 있을까요? 너무 짓궂은 질문인가요.

“제가 PR말고 할 줄 아는 것은 없어요. 대신 PR로 남에게 져본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 글을 아주 재미있게 쓰던데 독서를 좋아하나요?

“아니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심각한 독서장애자랍니다. 졸업후 지금까지 유일하게 읽은 책이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였는데 지인 6명이 한꺼번에 선물해주는 바람에 가까스로 다 읽었을 정도지요. 하하. 대신 신문 잡지등은 많이 읽으니 토털 독서량은 남들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영화 굳이 극장 가서 보지 않더라도, TV에서 ‘출발 비디오 여행’만 보고서도 잘 이야기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하지요."

- 성공의 85%는 인맥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당신이 오늘날 프레인을 대형홍보회사로 키우는데 네트워킹은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했나요?

“저는 외부사람보다는 주로 직원들과 놀아요. 생각해보니 내부 네트워크가 외부네트워크보다 더 요긴한 투자더라고요. 워낙 낯가림이 심하기도 하고요. 흔히 인맥관리를 많이 강조하지만 결국은 부탁하는 입장에서 만나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도와주는 위치에서 만나는게 보다 효과적인 것 아니겠어요. 네트워크를 통해서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것은 진정한 경쟁력은 아닌 것같아요. 남이 나를 키워준다는 것은 그가 결정을 바꾸는 순간, 원점으로 회귀되니까요. 결국 인맥관리에도 시간이란 기회비용이 드는 것인데 차라리 그 시간에 스스로의 역량을 강화한다는게 제 입장이지요.”

그 자신은 지극히 너무도 평범하고 온건하다고 말했지만 받아치는 대답은 통통 튀는 공처럼 경쾌하고 예측불허의 재미가 있었다. 2000년 1대의 컴퓨터와 6명의 직원으로 홍보대행사를 설립, 5년만에 연매출 100억원, 직원 150여명의 홍보회사로 키워낸 그의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매년 전년 직원의 수만큼 다시 뽑는 아메바 분열같은 성장을 기록해온 것에 분명히 존재할 남다른 이유가 말이다. 피티(PT)를 하면 100%통과된다는 불패의 신화에 연 5%이하의 이직률을 자랑하는 숫자로 증명되는 안정된 일터. 오늘의 현황에 대해 그는 ‘프레인기업 문화’라는 말로 설명을 대신했다.

“요즘 신세대는 ‘뼈를 묻을 만큼’ 직장에 대한 충성도를 갖고 있진 않죠. 그걸 강제로 요구할 수도 없고요. 어느 일이고 들여다보면 100%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잖아요.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싶은 일로 만들어주는 것,그것이 경영자로서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비록 사소한 즐거움이라도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변수를 제공하는게 관건이지요. 같이 일하는 사람이 좋고, 직장이 즐겁다는 생각을 하는 문화를 만들겠다,그것이 오늘의 성장을 이룬 비결입니다.”

그는 “한 팀장이 아랫직원의 몸이 허하다는 말을 듣고 자신의 돈을 들여 보약을 지어주러 함께 갔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괜찮은 회사문화를 만들었구나”하는 자부심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성공이후 맛볼 결실을 상상하라

자신의 재능을 십분 발휘하며 살아오다 보니 어느날 정점에 오른 것처럼 보이는 그에게 자칫 성공이란 고리타분하거나 따분한 주제는 아닐까. 웬걸,그는 성공이란?을 가지고 아포리즘을 시리즈로 작성하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아는 사람보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 많아지게 되는 것이 성공이라 생각해요. 예를 들면 동네 어린아이조차 ‘나 걔 여준영 알아’ 그렇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요.”

이외에 거래처, 예의, 상사등의 지시에 끌리거나 밀려 원치않는 술자리에 가지 않아도 될 수 있는 것, 만원짜리 바지 사입었는데 남들이 명품으로 봐주는 것, 의무사항은 줄어들면서 선택사항이 늘어나는게 그 나름대로 생각한 성공의 증거다. 그것은 삶을 살아가면서 곳곳에 복병으로 존재하는 역경을 독이 아니라 약으로 삼은 사람만이 만끽할 수 있는 열매가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거울삼아 누구는 절대금주를 하고, 누구는 아버지를 핑계대며 주정뱅이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기성세대들은 흔히 이래라 저래라 하며 성공을 하기 위한 훈수를 늘어놓지요. 하지만 대부분 몰라서 안하기보다는 실행을 안해서이기 때문 아닌가요. 저는 성공이후 누리게 될 과실을 상상해보는게 훨씬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고 봐요. 그것이 현실의 고통을 감내하게 해주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으니까요.”

#작은 데서 승리를 거두라

여대표의 이메일주소는 hunt로 시작한다. 대학시절 여러 분야(어느 분야인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로 ‘사냥’하러 다녔고 그 이후 정한 이메일 주소란다. 대학시절 노는 것으로는 정말 후회없이 보냈다는 그는 4.0만점에 학점이 2.0. 첫직장인 코오롱에서 그를 발탁한 상사는 ‘2.0,반쪽’이라 재미삼아 놀릴 정도였다. 상경대를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광고홍보쪽으로 지원한 것은 학문적 지식이 약하면, 창의적 분야쪽에라도 승부수를 걸어야겠다는 나름의 전략때문이었다.

“직장 들어가고선 정말 열심히 일했지요. 대학때 친구들도 모두 놀랐을 정도랍니다. 회사에 그저 다니는게 아니라 성공하고 싶었으니까요.”

“제가 오늘날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당장의 목표를 충실히 수행한 덕분입니다. 처음 입사해서도 대한민국 최고의 ○○○가 되기보다는 3년내에 동기보다 10만원 더받겠다는 등 좀 유치해보이지만,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거든요. 회사 만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이번달엔 프린터를 조금 더 좋은 것 사야지, 내년엔 사무실을 넓혀야지 하며 일하다보니 목표보다 초과달성되더군요.”

그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면 오히려 현재에 수행해야 할 세부적 과제를 놓치기 쉽다는 점에서 자신에겐 오히려 ‘사소한’ 목표를 세워,하나씩 해결해가는 방식이 유용했다고 털어놓는다.

#자신만의 롤모델을 창조하라

“돌이켜보면 사회생활 10 여 년간 저는 수 백 명의 롤모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신입사원 시절, 나로선 대하기 어려웠던 기자에게 ‘격조했습니다’라고 멋지게 한마디 던지던 상사가 내 최초의 롤모델이었지요. 매일 아침 제일 일찍 출근하는 부하직원도 내 롤모델 중에 하나이지요. 그런 점에서 나는 자신 주변의 모든 선배 동료 후배들의 장점을 해체하고 조합한 가상의 인물을 롤 모델로 삼는게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게 잭 웰치나 빌 게이츠보다 상사의 전화통화법 하나가 더 영향을 미쳤듯이 말입니다.”

자신의 사회적 위치, 성공도와 상관없이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롤모델이 될 수 있고 또 롤모델로 삼을 수 있는 쌍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게 여대표의 지론이다. 롤모델을 누구로 삼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 못지 않게 어떤 면에서 내가 누군가의 롤모델이 될 것인가 하는 부담감도 동량으로 지고 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만일 과거의 위대한 인물 한명 밑에 판박이로 따라 하려는 이들만 득실거린다면 아류사회밖에 더 되겠느냐는게 그의 반문이다.

“롤모델이든 공부든 자신의 필요에 따라 재구성하고 취사선택하는게 필요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주어진 궤도대로 답습하려고만 하는 것같아요. 대학교육도 마찬가지고요. 사회는 자신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고, 배울 것이 무엇인가를 진정으로 고민하고 그 엑기스를 뽑아 창조하려는 노력을 하는 인재를 원하지요. 대부분 자신이 지망하는 분야의 위대한 역할모델에 압도되거나 또는 없다고 푸념합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 사람 자신이 왜 인물이 될 공부를 아니하는가라고요. 자신만의 롤모델을 창조하고, 스스로 롤모델이 될 것을 젊은이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 여준영 대표 프로필

1970년 서울생. 연세대학교 응용통계학과 졸업. 1994∼1998 코오롱그룹 기획조정실, 1999∼2000 홍익 인터넷 CMO(최고 마케팅 경영자), 2000∼현재 프레인(주) 대표이사, 2004∼현재 ㈜PCG 대표이사


김성회기자/sain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