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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호, 오마이뉴스

로드365 2005. 1. 7. 14:38



[펌] 오마이와 한겨레

# <창작과 비평> 2004년 겨울호에 실린 글입니다. 내 인생에 창비에 원고를 실을 때가 오다니, 하며 감격스러웠던 기억도 있습니다. <오마이>에 대한 애증과 그보다 더 심하고 격한 <한겨레>에 대한 애증이 (그놈의 지긋지긋한 ‘애증’ 말입니다) 여러모로 교차한 글입니다. 창비 서평 꼭지에 오연호 씨가 쓴 책을 평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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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심을 잃지 않고 이 글을 쓰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종이신문’의 직업기자인 나에게 <오마이뉴스>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나 다름없다. 치부를 자꾸 건드린다. 기왕의 경계에 시비걸며, 저 스스로 또 다른 지평을 개척한다. 안보면 그만인데 자꾸 눈길가게 만드는 묘한 힘도 마찬가지다.

 

결정적으로 그 ‘불편한 텍스트’에 세계가 찬사를 보낸다. 내가 갈구했으나 아직 얻지 못한 성취를 그들이 일궈 꽃다발을 받는다. 베니스에 다녀온 김기덕이 경북 봉화에 금의환향하는 모습과 이스탄불에 다녀온 오연호 대표기자가 이렇게 <대한민국 특산품 오마이뉴스>란 책까지 발행하는 모습이 계속 오버랩된다. 자, 나는 계속 팔짱끼고 불편해 할 것인가, 아니면 남들처럼 박수를 보낼 것인가.

 

이 책이 많이 팔릴 지는 의문이다. 이제 <오마이뉴스>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슬로건은 너무도 강렬하고 유효적절해서, 이 한마디가 모든 설명을 대신한다. 전 세계를 통틀어 정치에 가장 강력히 긴박된 국민 가운데 하나일 우리에게 <오마이뉴스>를 정점으로 하는 네티즌의 정치·사회 혁명은 오히려 친숙하기까지 하다. 그러니 따로 책을 사서 일일이 설명을 들어야할 만큼 궁금증이 많지 않을 수 있다. <오마이뉴스>와 더불어 온-오프라인의 광장에서 보낸 2000년대 초입의 경험은 우리 각자의 기억에 온전히 살아있다.

 

그러나 <오마이뉴스>를 만든 사람, 그 가운데서도 ‘잉걸’을 먼저 지핀 사람의 고백에 귀 기울이는 일은 또 다른 의미다. 나는 지금도 <오마이뉴스>의 ‘오’를 오연호의 ‘오’로 읽는다. 물론 이 책에 따르면 그것은 시민기자들이 자신의 기사(my news)에 바치는 감탄사다. 이를 수긍하더라도, <오마이뉴스>와 함께 오연호를 읽는 일은 여전히 중요하고 또한 흥미롭다.

 

언론사 봉급사원은 데스크 또는 대표이사에게 어떻게 인정받을까를 궁리하겠지만, 진짜 기자는 세상을 감동시키거나 또는 뒤집어 버리기를 꿈꾼다, 고 나는 생각한다. 오연호는 그 전범이다. 특종기자나 민완기자를 말함이 아니다. 뭇 기자들과 구분되는 그의 탁월함은 이 일을 ‘폼재며’ 혼자 해치우지 않았다는 데 있다. 열정적인 젊은 언론인과 양심적 네티즌들이 기꺼이 그 꿈의 실현에 동참했다. 그것이 자신의 꿈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의 꿈’을 ‘남의 꿈’과 연결시키는 힘이 그에게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그 꿈이 어떻게 다른 꿈들과 만나 현실이 됐는지를 들려준다. 여러 가지로 이를 표현할 수 있겠지만, 저자 스스로 가장 힘주어 길어 올린 상징어는 ‘잉걸’인 듯하다. 그것은 이 인터넷 매체의 초기 화면 아랫자락에 자리잡은 기사 목록의 간판이기도 하다. ‘나무에 불이 붙어 이글이글거리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순 우리말이라는 설명도 거기 있다.

 

저자는 지리산 자락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불)잉걸’을 말한다. 불을 붙이면 금방 이글거릴 ‘잉걸 나무’를 해왔을 때에야, 할아버지는 어린 손자를 진심으로 도닥거렸다. 저자는 나이 마흔을 앞두고 다시 잉걸나무를 한아름 부렸다. 잉걸나무야 어디에나 있지만, 이를 생나무와 분간하는 눈썰미나 그 나뭇짐을 지게에 지고 산을 내려와 아궁이 옆에 가지런히 쌓아올리는 일은 아무 나뭇꾼이나 하는 게 아니다.

 

인터넷이 언론의 유력한 미래가 될 것이고, 정보화 기반이 튼실한 한국이 그 대표적 사례가 될 것이며, 기성언론에 염증을 느낀 시민사회가 강력한 동력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야 ‘저 뒷산에 잉걸나무 많다’는 혼잣말에 불과하다. 저자는 그 산을 올랐다. 지금은 잉걸나무로 이글거리는 불을 지피고 있다. 뒤늦게 땅을 치는 나뭇꾼들도 있다. 이제 올라가봐야 <오마이뉴스>가 훑고 지나간 자리만 남았으니, 좀 더 기다리거나 더 깊은 산을 타야 될 일이다.

 

그 불꽃이 어디로 번지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여러 가지로 가능할 테다. 그러나 내 눈에는 뜨거워진 엉덩이를 들썩이는 종이신문이 보인다. 저자는 <조선일보>를 그 대당으로 설정하고 있는데, 사실은 <조선일보>와 샅바 잡으려고 애쓰는 <중앙일보>나 <동아일보>, 심지어 <한겨레신문>까지도 그 엉덩이가 편치 않다. 이때의 종이신문이란 반세기를 이어온 어떤 기득권의 표상이다. 권력의 씨앗이자 토양을 자처했으며, 끝내 그 권력 자체가 돼버린 불행한 역사의 상징이다.

 

<오마이뉴스>의 대표기자이자 초대 편집국장, 그리고 (사실상의)CEO인 저자는 정확히 그 반대편에서 다른 역사를 썼다. 창간 4년만인 지난 5월, 그는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세계신문협회에서 그 역사를 강연했다. 연설문의 제목은 ‘20세기 저널리즘의 종말’이란 문구로 시작된다. 그 스스로의 말처럼, ‘권력은 표준을 만들어 내는 힘에서 나온다’고 했을 때, <오마이뉴스>는 지금 ‘권력’에 다가가고 있다. 이때의 권력이란 기득권이 만들어낸 표준을 저항의 문법으로 전복시키며 세상을 바꾸는 힘이다.

 

내가 필생의 직장으로 여겼던 <한겨레신문>에 입사한 1997년, 창간 10주년을 맞은 신문사가 내놓은 책은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오마이뉴스>가 내게 ‘불편한 텍스트’인 이유는 언론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는 불쏘시개의 일부를 그들이 가져갔기 때문이다. 잉걸나무 많은 지를 <한겨레>도 알았는데, 그들이 먼저 부지런히 산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 불쏘시개가 <한겨레>의 아궁이에 있었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근거없는 미련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겨레>를 비롯한 모든 종이신문의 기자들이  ‘기사’에 매몰돼 그 기사 자체도 감당해내지 못할 때, 오연호는 언론을 고민해 소통의 문제를 해결했다. <말>지 기자시절은 물론, 80년대 학생운동권의 경력까지 감안하자면, 세상과 소통하는 일에 있어 그의 성실함과 기민함을 따라잡을 자, 아직은 많지 않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새삼 절감한다. 그와 비슷한 꿈을 간직한 이들이 있다면, <대한민국 특산품…>은 훌륭한 길잡이가 될 터이다.

 

그 잉걸들의 화력이 예전만 못함을 스스로 돌아보는 대목이 없는 아쉬움이 있다. 하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그 처음을 돌이키게 만드는 것으로 따지자면, <창작과 비평>이나 <한겨레신문>이나 <참여연대>나 심지어 <민주노동당>에 이르기까지, 떳떳할 곳이 어디 있겠는가. 오직 힘들게 부려놓은 잉걸나무로 이글거리는 숯을 한참 더 지펴야 될 텐데, 벌써부터 할아버지의 도닥거림을 기대해서는 안될 일이기에 하는 객쩍은 소리다.

 

하여 나는 <오마이뉴스>에 보내는 박수를 잠시 미루기로 한다. 다만 시기어린 팔짱은 풀고 잘 마른 잉걸나무 찾아 다른 산을 올라야겠다. 사실 오연호가 <오마이뉴스> 4년을 돌아보며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거기에 있지 싶다. 좋은 기사, 좋은 매체라고 박수치지 말고, 당신 스스로 그 꿈을 실현시켜 보라고. 이글거리는 잉걸의 꿈을 안고, 당장 가까운 뒷산부터 올라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