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ㅏ

바퀴벌레

로드365 2001. 9. 30. 19:52
바퀴류는 3억 5천만 년 동안 지구의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번식을 거듭했지만 그 장구한 세월 동안 변한 것은 거의 없다(사진①). 바퀴는 최초의 양치식물이 싹을 틔울 때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최초의 공룡이 알을 까고 나오던 순간(?)과 최후의 공룡이 숨을 헐떡거리며 멸종의 운명을 받아들이던 바로 그 순간에도 가장 가까운 곳 발밑에서 조용히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촉수를 가다듬고 있었다. 바퀴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의 운항일지를 꼼꼼히 기록해 온 생명계의 블랙박스로서 세대에 세대를 이어가며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순간에는 또 어떠한 생물이 멸종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지, 궁금하다면 바퀴에게 물어보시라!

바퀴가 질병을 옮기는 지저분한 해충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 시작한 것은 바퀴보다 3억만년이나 늦게 출현한 인간이라는 족속들이 지구를 더럽히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비록 인간의 관점에서 보자면 대부분의 바퀴는 불결한 환경에서 살아간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학자들의 관찰에 의하면 사람과 한번 마주친 바퀴는 급히 도망쳐 은신처로 숨은 뒤에 꼼꼼하게 자신의 몸을 닦아낸다고 한다. 후자는 fact - 과학적 관찰에 의한 사실이고, 전자는 feel - 인간이라는 종족의 주관화된 느낌일 뿐.

대부분의 문명화된 사회에 가장 많이 서식하는 바퀴류는 독일바퀴(독일사람들은 이 바퀴를 러시아바퀴라고 부른다. 그런데 러시아에서는 바퀴를 뜻하는 단어가 tarakan amerikanski라는 사실을 알아두시압! - 사진②)이다. 최근 들어 서울 상공에도 자주 출현하는 길이 35~45mm에 날아다니기까지 하는 초거대종은 바퀴 분류상 미국바퀴(일부 지방에서는 '맥도날드 바퀴'라는 애칭으로 호명되기도 한다. - 사진③)라고 불린다.

바퀴를 원산지에 따라 분류한 이러한 명칭은 상당한 근거가 있는 것이다. 바퀴는 원래 열대지방과 아열대지방에서만 살던 유순한 곤충이었으나 15~18세기에 걸쳐 아프리카발(發) 유럽행(行) 또는 아메리카행 노예선을 타고 '대륙이동'의 장정을 거친 뒤 현지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을 통해 종족의 새로운 번성을 도모하게 된 것이다. 참고로 2001년 3월 8일 발사된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에도 중대한 우주적 사명을 띠고 수십 쌍의 바퀴가 동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NASA의 고위관리들은 여기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피하고 있다.

한편, 한국에 서식하고 있는 바퀴는 전부 외래종이며 일본바퀴 - 독일바퀴 - 미국바퀴 순으로 영주권을 획득하게 되었다.

자연은 바퀴벌레에게 몇 가지 뛰어난 방어구조를 갖추어 주었다. 이 생명체는 빛을 싫어하는 대신 육식동물들이 먹이를 찾아 배회하는 일이 적은 어둠 속에서 오히려 더 활발하게 움직인다. 바퀴는 또한 몸에 경보장치를 갖추고 있다. 이 경보장치는 2개의 기다란 촉각과 그보다 짧은, 꼬리에 붙은 한 쌍의 돌기체('촉모'의 일종)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돌기체는 주변 공기의 미세한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는 가느다란 털로 덮여 있다. 공기가 움직이면서 이 미세한 털을 움직이면 바퀴의 체내에 있는 신경섬유는 즉시 위험신호를 보내 20분의1초도 경과하기 전에 바퀴는 도주한다.

이스라엘 헤브루대학의 제프 카미 교수팀은 구불구불한 모양의 벽에서 바퀴가 장애물을 얼마나 잘 피하는지 실험한 결과, 바퀴는 초당 25번의 방향전환을 하면서 초속 1m의 속도로 내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카미 교수는 "몸의 방향을 이토록 민첩하게 바꾸는 동물은 지구상에 없다"고 평했다. 이 외에도 많은 곤충학자들이 '미로탈출 실험'을 통해 곤충들의 지능을 테스트한 결과 우리의 친구 바퀴 군이 가장 탁월한 성적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바퀴의 지능이 이처럼 높은 것으로 판명나자 재야의 일부 곤충학자들은 바퀴 종족 전체에게 '에그헤드'(egghead, 인텔리라는 뜻)라는 작위를 부여하기도 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엽 한국에서는 바퀴를 그다지 싫어하지 않았다. 서울을 비롯한 일부 지방에서는 부엌에 바퀴가 있으면 잡아버리지 않고 오히려 '돈벌레'라고까지 해서 집안이 번창하고 행운이 온다는 표시로 여겼으며, 없어지면 불행한 징조라고 여겼다.

이와 비슷한 미신은 일본과 유럽에도 있었으며, 러시아나 프랑스에서는 바퀴를 수호의 영물(靈物)로 간주하기도 하였다. 한편 영국이나 아일랜드에서는 열병을 가져다 주는 마녀의 변신이라고 여겼는가 하면, 중세유럽에서는 성금요일에 쓸어내면 효과적으로 구제된다고도 하였다. 아일랜드에서는 예수가 숨어 있던 장소를 바퀴가 폭로시켰다(?)는 낭설이 돌아 보이는 대로 죽이기도 했다는 끔찍한 전설이 전해진다.

바퀴의 외부골격은 오그라들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 조그마한 틈바구니도 비집고 들어갈 수 있다. 바퀴는 몸을 옹크리면 사람의 발에 밟히더라도 죽지 않고 살아 남는다. 어떤 바퀴들은 적에게 화학물질을 뿜어 약하게 만드는 또 다른 방어능력을 갖추고 있다. 키논이라는 화학물질을 뿜으면 공격하던 딱정벌레나 개미들이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새끼 바퀴는 공격자에게 다리를 붙잡히면 그 다리를 끊어버리는데 끊어진 다리는 나중에 다시 생겨난다. 또한 바퀴가 살충제 세례를 받고 용케 살아 남으면 그 체험을 기억해서 다음에 그러한 위험을 회피하는 데 활용하기도 한다.

바퀴는 페로몬이라는 화학물질을 이용하여 몇 가지 형태로 서로 의사소통을 한다. 한 가지 화학물질은 번식과정을 유발시키는 작용을 한다. 독일바퀴의 암컷은 수정을 하면 알주머니에 들어 있는 15~40개의 알이 부화될 때까지 그대로 지니고 다닌다. 다른 바퀴의 암컷은 알주머니를 떼어놓는데 그 이유는 위험하지 않도록 숨겨 두려는 의도인 경우가 많다.

바퀴는 풍성한 먹이 공급처를 발견하여 다른 바퀴들에게 알릴 때 페로몬을 이용한다.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바퀴들이 우글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며 또 바퀴가 떼지어 몰려 있는 곳에서 곰팡내 같은 기분 나쁜 냄새가 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영양학이나 신경생리학, 유전학, 신진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나 심지어 암을 연구하는 학자들까지도 바퀴를 완벽한 실험표본으로 보고 있다. 이 곤충은 질병을 이겨낼 뿐만 아니라 공간이나 먹이도 별로 필요로 하지 않고 또 매우 강인해서 어떠한 수술도 이겨낼 수 있다. 예들 들어 목이 잘린 바퀴가 죽는 것은 머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먹이를 먹지 못해 굶어죽는 것이다.

바퀴에 대한 인간의 싸움은 박멸이 아니라 사실은 억제에 그치는 것이 고작이다. 박멸하기에는 일단, 바퀴의 수가 너무나도 많다. 또한 바퀴는 가끔 치명적인 화학물질에 대한 저항수단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천적의 이용도 천적 자체가 바퀴보다 더 해로울 수 있기 때문에 별로 실효를 거둘 수 없다. 바퀴의 천적으로는 고슴도치, 독거미, 지네, 진드기 등이 있다. 인간은 바퀴 천적의 축에도 들지 못한다. 요즘 강남을 비롯한 일부지역에서 한창 인기를 끄는 CESCO뿐만 아니라 미합중국 육해공군을 총동원해서 전면전을 벌인다 한들 바퀴를 박멸한다는 것은 요원하기 그지없는 일이라는 점을 각 가정의 정책담당자들께서는 부디 숙지하시길...

설령 바퀴를 철저하게 박멸할 수 있는 어떤 획기적인 수단이 발견된다 해도 바퀴는 3억 5천만 년 동안 살아온 그대로 살아남을 것임이 분명하다. 더 깊은 어둠 속에 숨어서 부지런히 먹고 번식하면서 그때그때의 환경에 가장 최적화된 상태로 적응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생활의 지혜] 만약 방구석에 바퀴가 돌아다니는 게 싫다면, 피우다 만 담배꽁초의 담배가루를 꺼내 하룻밤 정도 물에 담궈둔 뒤 그 니코틴 액을 바퀴가 잘 다니는 곳에 뿌려두면 바퀴가 접근하지 않는다. 담뱃가루와 물의 배합은 꽁초 10개에 물 200cc가 적당하다. 니코틴은 어퍼(upper) 계열로 분류되는 마약성분의 일종으로 각성효과를 일으켜 일시적이나마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은 착각을 제공하므로 게으른 자취생들에게는 여러 모로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참고사이트]
http://my.dreamwiz.com/blattaria
http://joesapt.warnerbros.com
http://entmuseum9.ucr.edu/ENT133/ebeling/ebeling6.html#cockroach species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