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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클랜시, 덕업일치?

로드365 2013. 8. 1. 18:54



취미와 직업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곤 한다. 취미가 직업이 되면 더 이상 즐겁지 않게 된다고. 어쩌면 연애와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누군가를 짝사랑 할 때는 마치 대문호라도 된 듯 수십 수백 장의 연애편지를 양산해내고, 자기가 좋아하고 있는 상대를 찾아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간다. 그렇지만 막상 연애가 시작이 되면 상대에게 그만큼의 에너지를 쏟지 못한다. 기념일조차 기억하지 못해 마찰을 빚는 일이 다수. 시간이 얼마나 걸린다고 집에 데려다주는 것도 귀찮아한다.


그것이 갈망과 소유의 딜레마가 아닐까? 막상 원하던 것이 손에 들어오면 사람들은 종종 흥미를 잃는다. 정말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이라도 생업으로 삼으며 매일 매일 하다보면 사람은 좀처럼 열정을 갖지 못하고 지루해한다.


그런데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없는 운명인 경우라면 어떨까? 평생 동안 짝사랑을 하며 열정을 불태우듯 자신의 취미를 직업으로 삼지 못해 무한한 열정을 오랫동안 태워온 사람을 한 번 소개해보려한다.



좌절된 꿈


남자는 어린 시절 총과 무기에 흥미를 갖곤 한다. 장난감 총이나 나무 칼을 들고 마치 천군만마를 거느린 장군이라도 된 양 동네를 뛰어다닌다. 삼국지, 초한지, 징기스칸, 나폴레옹을 읽으며 ‘남자라면 이렇게 살아야지’ 하는 감동을 느끼기도 한다.


톰 클랜시는 다른 남자아이들과 같이 무기와 군사에 대한 흥미를 느꼈다. 다른 점이라면 다른 아이들이 막연하게 무기와 군사에 대해 동경하는데서 멈출 때 그는 무기의 설계도를 연구하고 군사전략을 탐구하는데까지 이르렀다는 점, 자라나면서 점차 다른 곳으로 흥미를 돌리는 동안 그는 끝까지 그 흥미를 유지했다는 점이다.


매일매일 각종 무기와 역사 속 전쟁들은 탐구하던 그의 꿈은 당연히 장교였다. 성인이 된 이후 직업군인이 되기 위해 ROTC에 지원한 그. 그러나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그는 근시라는 이유로 임용에 탈락하고 만다. 그의 방대한 지식과 열정은 그저 남보다 조금 약한 시력 때문에 묻혀버리고 말 상황에 처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그는 군문의 꿈을 접고 다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갖게 된 직업은 보험 중계인. 원래의 꿈이었던 장교와는 상당히 온도차가 있는 직업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다행일까? 그는 자신의 취미, 흥미가 직업이 되지 않은 탓에 순수한 열정과 관심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다. 본업인 보험 중계인 활동을 하면서 그는 틈이 날 때마다 신무기와 전쟁 시나리오에 몰두했다.



위대한 시작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의 위력인지 그는 현역참모나 지휘관을 압도하는 지식을 쌓게 되었고, 누구에게도 쓰이지 못했던 잉여지식은 결국 세상의 빛을 보게 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1976년 스웨덴으로 망명을 시도한 소련의 잠수함 Storozhevoy호에서 그는 영감을 얻어 1984년 처녀작인 ‘붉은 10월’을 발표한다.


행방불명된 핵잠수함을 놓고 벌이는 미국과 소련의 팽팽한 긴장 관계를 묘사한 이 작품은 깊이 있는 묘사와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큰 흥행을 한다. 2년 간 판매량 230만부. 37주 연속 베스트셀러. 사람들은 지금껏 없던 그의 소설이 ‘테크노 스릴러’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고 평했다.


이후 그는 계속해서 소설과 시나리오를 발표한다. 붉은 폭풍, 패트리어트 게임, 긴급 명령, 레인보우 식스 등등…. 소설 중 상당수는 영화화되어 그에게 부와 명성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그는 작가를 꿈꾸었던 것이 아니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지만 그가 추구했던 것은 펜이 아닌 칼이었다.


그리고 중견작가의 반열에 올라선 후 사람들은 작가로서가 아닌 군사전문가로 주목하게 된다. 미국 국방부는 홍보 및 기밀유지를 위해 무기의 데이터를 최대한 숨긴 채 일부만을 발표해왔다. 그런데 톰 클랜시의 소설에선 민간에 공개되지 않았던 데이터가 반영되어 묘사되곤 했던 것이다. 그가 국방부에 줄이 있어서 기밀사항을 무단으로 열람했던 것일까? 아니다. 평생 동안 추구해온 밀리터리 마니아 외길이 그에게 아주 한정된 자료를 가지고도 전체를 통찰할 수 있는 혜안을 부여했던 것이다.



군사 컨설턴트로 거듭나다


그의 취미생활은 이미 취미의 영역을 뛰어넘었다. 알려지지 않은 정보를 통찰하는 것을 넘어 그는 예언(?)까지 시작했다. 소설 속에서 가상의 분쟁이나 위협을 상상해서 쓴 것들이 현실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너무나도 현실조건에 입각한 상상이었기에 그의 소설에 나타난 장면들은 마치 그가 예언이라도 한 것처럼 실제로 일어났던 것이다.


특히 그의 소설 ‘Debt of Honor’(1994)의 마지막 부분에선 여객기가 미 국회의사당에 비행기를 몰고 자살돌격해 대통령 포함 거의 전원이 몰살당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후 2001년 9월 11일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건으로 재연되자 그는 순식간에 저명인사로 거듭나게 된다.


이후 미국 국방부에선 수시로 그에게 군사정책, 위기대응 시나리오 등에 대한 자문을 얻는다. 그의 해박한 지식과 상상력은 미 국방부에 큰 힘이 되었다. 이윽고 그는 민간인 중 출입증 없이 백악관과 국방부를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는 몇 안되는 인물에까지 이르렀다.



취미란 무엇인가?


사소한 신체의 결함으로 가지 못했던 길. 그것을 취미활동의 연장을 통해 결국 이루어냈다는 점에서 톰 클랜시는 우리에게 귀감이 되는 존재이다. 사람들은 보통 ‘취미’라 하면 가볍고 책임 없이 하는 것이라고 여기곤 한다. 하지만 정말로 좋아하고 몰두할 수 있는 일을 극한까지 밀어붙인다면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을 톰 클랜시의 선례로 알 수 있다.


물론 가볍게 즐기고 그러면서 재충전을 한다는 의미에서의 취미도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틀에 박힌 취미의 정의 때문에 취미의 가능성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극한까지 밀어붙인 취미활동으로 직업인 이상의 경지에 우뚝 선 톰 클랜시. 취미의 의미를 재정의한 그의 삶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남겨준다.


출처 : <아츠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