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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 맛

로드365 2013. 5. 3. 13:15




요시모토 바나나를 만나다

지금, 상처 받아 아파 하고 있나요?


한국과 요시모토 바나나의 인연은 깊다. 그는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외국 작가 중 한 명이며, 한국 음식을 좋아해서 단골 음식점이 있고, 한국의 스타 이승기의 팬이라며 드라마 투어를 하기도 한다. 이번 만남을 준비하고 기념하기 위한 선물로 MBC 드라마 ‘구가의 서’ 포스터를 받은 그녀는 꼭 벽에 붙이겠다고 아이처럼 좋아하기도 했다.(이후에 실제로 붙였다며 메일도 왔다!)


<사우스포인트의 연인>의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

2013년 봄, 요시모토 바나나의 초기 대표작 <하치의 마지막 연인>의 후속편 형식으로 숙명적인 사랑을 다룬 러브 스토리 <사우스포인트의 연인> 한국어판이 출간되었다. 신간에 대한 질문에 곧바로 “아주 독특한 책이에요. 배경은 하와이, 이야기도 아주 특이하지요. 이 책이 한국에서 출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사실 좀 놀랐답니다”라고 말했다.


상처를 받았을 때, 상처를 받았다고 느꼈을 때, 그 상처를 더욱 아프게 하는 건 ‘이런 상처는 나만 받았을 거야, 이런 일은 나만 겪는 일 일 거야’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일이라고 바나나의 소설 ‘데이지의 인생’에서 읽었더랬다. 


그 전까지 치유 문학이라고 그녀의 소설을 분류 시키는 의견에 크게 동의하지 못했었는데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지? 왜 나만 이런 일을 당하는거지 라는 생각은 잘못되었다고 말해주는 그녀의 소설은 분명 우리에게 ‘치유’의 주문을 걸어 주고 있었다.

 <사우스포인트의 연인>은 <하치의 마지막 연인> 후속편 성격이 강하다고 작가의 말에서도 밝히고 있습니다. ‘시한부 연인’이었던 하치와 마오의 뒷이야기를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그리고 ‘하치’를 쓰면서 처음부터 후속편에 대한 구상이 있었는지 가르쳐 주세요.


처음에 <하치의 마지막 연인>을 쓰면서는 제일 먼저 끝나는 부분을 정했어요. 마지막에 갑자기 끊어지듯, 그렇게 끝내는 방식의 글을 써 보고 싶었거든요. 당시에는 그 이야기를 그렇게 마치는 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나중에 과연 그렇게 끝내는 게 맞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고, 그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그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등장인물들도 너무 젊었고, 그들이 인생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와중에 결단을 내려 버리게 했어요. 그런 의미에서는 일부러 진지한 결정을 내리지 않은 결말이었다고도 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이후로 시간이 흘렀고, 인생이라는 것이 그런 식으로 완벽하게 한 시기를 마무리할 수 있는 게 아니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져 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 등장인물들에게 알려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 마침 <사우스포인트의 연인>을 집필하던 시점에 하와이에 관련하여 두 개쯤 써야 하는 글이 있었어요. 하나는 하와이에 대한 가이드북 같은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단편집이었죠. 그걸 쓰고 있자니 ‘하치’의 후속이 될 <사우스포인트의 연인>에 대한 구상이 무르익으면서, 하와이의 정말로 멋진 점에 대해 써 보고 싶어진 거예요. 제가 생각하기에 하와이의 ‘진심으로’ 좋은 점은 첫째, 땅이 좋으며, 둘째, 아주 특별한 바람이 불고, 셋째, 어디에도 없는 꽃들이 핀다는 데 있어요. 흔히 우리는 그런 걸 가리켜 천국이라고 표현하지요. 물론 거기 실제 사는 사람들이 진짜 천국에 산다는 의미는 아니지만요. 


마지막으로 제가 이 작품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남자’라는 존재의, 어떻게 할 수도 없고 미숙한 그런 부분에 대한 거예요. 좀 과장한 면이 없지 않지만 대개의 남자들은 다마히코가 보여 주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때에는 만나고 싶어 죽을 지경이라 해도 만나러 가지 않는 점이라든가, 또 그러다 보니 너무 머릿속에서 여러 생각을 한 끝에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형을 그려 버린다든가 하는 거 말이에요. 그런 모습을 여자들이 바라보면서 ‘이 사람, 아직 한참 멀었어, 어떻게 해 줄 수가 없네’라고 생각하고 마는 상황을 담아 보고 싶었습니다.


 <사우스포인트의 연인>을 집필하면서 다른 작품에서 느끼지 못한 무엇인가를 느끼셨다면?


이 소설에서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부분이 몇 가지인가 있는데요. 우선 테트라가 하와이에서 다마히코의 동생 유키히코의 여자 친구를 만나는 장면이에요. 유키히코의 여자 친구 마리코는 입이 매우 거친 여자로 그려져 있지요. 보통 소설을 쓸 때 읽는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 싫어 그런 와일드한 캐릭터는 잘 쓰지 않지만, 마리코가 나오는 파트를 쓰다가 제가 그만 스스로도 상처를 받은 기분이 들었어요. 주인공에 이입을 하지 않았으면서도 주인공이 받은 상처를 그대로 전이받은 거죠.


 작품 속 인물들은 운명적인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을 믿고 간절히 나아가려 하지만 정작 관계에 있어서는 쿨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 이율배반적인 태도에 의미가 있는지요.


특별히 이 작품에서 인물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 같아요. 전에 쓴 <하치의 마지막 연인>에도 격렬하기로는 뒤지지 않는 사랑이 그려져 있고 운명적인 부분도 매우 강렬하게 그려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납득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친 뒤에는 강인하게 이별을 받아들이고 사랑의 종말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죠. 두 작품 모두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예요. ‘사우스포인트’의 주인공 테트라는 더욱이 매우 차분하고 침착하며 냉정하게 사고하는 타입인데 그녀는 주변 사람들의 돌발적이고 충동적이고 격정적인 행동을 차분하게 바라보고 그리고 그들을 치유해 줄 수 있는 여유까지 가지고 있어요.


 그럼에도 아주 잔잔한 소설입니다. 인물 간의 관계 역시 편안하게 그려져 있고, 그 안에 드러난 갈등 역시 극한 상황까지 치닫지 않습니다. 사건들을 이렇듯 평온하게 그린 데에 이유가 있나요?


소설 속의 인물들은 매우 특이한 환경에 처해 있지만 우리가 사는 삶이 그러하듯 그 모든 것이 갑작스레 급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지속적으로 특별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은 그 상황에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겠지요.


아시다시피 소설의 맨 처음은 ‘야반도주’에서 시작됩니다. 이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급변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인물들의 반응은 항상 그런 상황을 예감했던 것처럼 차분하게 그려져 있지요. 이 글을 쓰던 당시 제 주변에는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이 없었어요. 갑자기 사는 곳을 바꾸고 도망치듯 짐도 제대로 꾸리지 못하고 집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 처한 사람의 이야기를 모르다 보니 처음 쓸 때 고생을 좀 했습니다. 


한편, 소설을 쓰다 보면 종종 있는 일인데 이런 사람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언제나 생각하지만 현실은 소설보다 놀라운 것 같아요. 이 소설을 출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에게 메일이 왔는데 그 친구는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하더군요.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정신 이상을 일으켜 옆집 지붕에 올라가시더니만 기왓장을 던졌다는 거예요. 경찰차까지 출동하는 바람에 그야말로 도망치듯 그 동네에서 떠나야만 했다고.


소설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어 언제든 손에 집어 들고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사실 그 ‘야반도주’마저 낭만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짐을 꾸리는 주인공에게 엄마가 충고한 ‘가장 소중한 것부터 챙겨라’라는 말도 그렇고, 소중한 친구 다마히코에게 편지를 남기고 갈 수 있도록 일부러 돌아가기도 하고 말이죠.


역시 그런 엄마 아래에서 자랐기 때문에 주인공이 치명적인 상처를 입지 않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적다 보면 가혹하고 두려운 현실에 대해서 상상하게 될 때가 있지요. 하지만 어쨌건 사람들에게는 그런 현실에 대한 완충이 존재하는 듯합니다. 테트라의 엄마가 한밤중에 도망치는 상황에서 보여 준 여유 있는 태도처럼요.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소설을 쓸 때 그런 두렵고 놀라운 일에 대해서 쓰다 보면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고 메일로 연락이 올까 봐 무서운 기분도 들어요.


 테트라는 퀼트 아티스트입니다. 그런 독특한 직업을 설정하신 데에 이유가 있는지요. 작품 속에서 테트라는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퀼트로 만든다는 것은 결국 그 사람에 대한 책을 한 권 쓰는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말합니다. 퀼트를 만드는 작업은 테트라에게 있어 세상과 자신에 대한 치유 행위인가요?


하와이 이올라니 궁전에 가보면 거기 오랜 세월 유폐 당했던 릴리우오칼리니 공주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요. 공주의 친구와 지인들은 그녀에 대한 마음과 함께했던 추억, 그리고 응원하고 싶다는 염원을 퀼트에 담아 그녀에게 보내 주었다고 해요. 공주는 그 퀼트를 바라보며 힘든 유폐의 세월을 이겨 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가 제게는 큰 감동으로 다가왔고 이 소설의 모티브로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하와이 전통 퀼트라는 것이 지금 와서는 로컬색이 강한 패턴 퀼트라는 식으로 남게 되었지만 실제로는 그런 ‘마음’이 담긴 예술이었던 거죠.


테트라는 내면으로 향하는 인물이에요. 자기가 품고 있는 생각과 관련해서 단호하게 결단을 내리거나 딱 잘라 말하는 대신 묵묵히 퀼트를 만들고, 그리고 그것을 매개로 해서 자기 마음이나 뜻을 표현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거예요. 보통 사람이라면 어떤 문제에 부딪칠 때, 그것을 피하거나 혹은 이겨 내기 위해서 행동을 할 텐데, 테트라의 경우에는 그것을 그저 받아들입니다. 좋아하는 남자가 외국으로 떠나면 애써 따라가는 게 아니라 그저 그 이별을 잠잠히 받아들이는 스타일이죠. 그러한 주인공의 마음속 깊은 곳에 천천히 쌓여 가는 것들이 조각조각 이어져 하나의 커다란 그림을 만드는 퀼트라는 것으로 형상화해 보았습니다.


 하와이 최남단의 절벽 지형인 ‘사우스포인트’에 대한 묘사 중 인상적이었던 것이 있습니다. ‘세상의 끝’과도 같은 장소라는 표현이 바로 그것인데요, 거기서 하치와 마오의 운명이 엇갈리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요시모토 바나나 작가 사인

제가 사우스포인트에 처음 갔을 때, 실제로 가지고 있던 모든 기억이 사라지는 듯한 특별한 체험을 했습니다. 우주에 떨어진 것 같다고 해야 할지, 지금이 언제고 내가 누구인지 잊어버릴 정도로, 그야말로 생각이 멈추어 버린 순간이었다고 할까. 사실 그 장소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전형적인 하와이의 풍경과도 좀 거리가 있어요. 특이하게도 주변에 감람색을 띤 자갈이 깔려서 환상적인 녹색 해변이 펼쳐지는 그린 샌드 비치가 있는데, 페리도트라고 하는 아주 비싼 돌이 한 줌의 모래 안에 가득 들어 있답니다. 꼭 동화 같은 이야기죠? 제게는 그 모든 것이 아주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무엇인가에 잔뜩 집착하고 있던 사람이라고 해도 그곳에서는 모두 잊게 될 것만 같은 그런 풍경이었죠. 그런 곳에서 ‘운명’이 다시 이어지지 않으면 어디에서 이어질 수 있겠어요.


 <사우스포인트의 연인>에 등장하는 엄마들은 굉장히 쿨한 사람들입니다. 테트라의 엄마도, 다마히코의 엄마인 마오도요. 요시모토 선생님도 쿨한 엄마인가요.


아니, 저는 그녀들처럼 그렇게 강하지 못해요. 역시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특이한 사람들이 많죠. 워낙 개성이 강하다 보니 자기 아이들을 힘들게 할 수도 있는 그런 엄마들이 나와요. 저는 누군가가 지나치게 자신의 자유를 지키려다가 함께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묘사해 보고 싶었어요. ‘하치’ 같은 경우 남자 주인공은 태어난 순간부터 행복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 놓여 있었죠. 평범한 행복을 손에 넣는 것이 불가능한 환경이라서 자기 나름의 행복을 찾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할까요. 그런 특이한 개성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그 파문이 주위에 퍼져 나가 제대로 관계성이 정비되지 않은 경우 다른 누군가를 불행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하치’는 마침 옴 진리교 사건이 일어나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을 때 쓴 작품입니다. 그런 집단에서 자란 아이의 미래에 대해서 저 나름의 생각을 해 보고 싶었거든요.


 공간에 대해 까다로운 편인가요. 작품의 주요한 소재에는 언제나 하와이, 시모키타자와 등 ‘공간’이 쓰이는데요.


예전에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기행문을 써 본 적이 있었어요. 그걸 읽은 사람들한테 온 반응을 보고 많은 걸 느꼈죠. 작가가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에는 그런 것에 의미를 두지 않고 이야기를 썼지만 조금 지나고 보니 역시 구체적인 장소를 정해 놓고 쓰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데뷔 이래 10년 동안 쓴 소설에서는 장소나 시간이 자세히 나오지 않고 ‘언제’, ‘어디서’라는 식으로 쓰여 있어요. 하지만 10년쯤 지나고 보니 제게도 오랜 팬들이 생겼고, 그 사람들 중에서 저를 상냥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생기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남미, 부에노스아이레스, 어떤 카페’라고 쓰면 거기 다녀온 독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기쁨을 전달하고 싶었던 거예요. 병에 걸린 가족이 제가 쓴 소설에서 어딘가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거기 다녀왔더니 매우 기뻐했다는 식의 팬레터를 받고 보니 점점 더 구체적인 장소를 특정하게 되었습니다.


 상처를 극복하는 ‘치유’를 주요한 테마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제를 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또 작품을 통해 개인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다른 이야기는 다른 작가들이 잘 쓸 수 있다고 생각해서예요. 저는 언제나 감수성이 너무나 선명하고 강하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창조적이지만 그런 개성 때문에 고립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에게 일종의 안식처를 제공하고 싶어요. 


한국과 이탈리아는 제게 좀 닮은 나라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탈리아의 한 젊은 독자는 지금까지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잘 아는 듯한 문장은 만나 본 적 없다는 소감을 이야기하더군요. 한국이나 이탈리아처럼 강렬한 감정을 안고, 아름다운 풍경 가운데 살아간다면, 더더욱 그런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들은 힘들어할 것 같았습니다. 


최근 저는 그간 갖고 있던 생각을 바꾸게 될 계기가 있었어요. 예전에는 제 책을 누군가 읽고 혼자서 위안을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작가와 독자의 일대일 관계에서 좀 더 확장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본 거죠. 예를 들어서 공황장애를 겪은 사람이 제 소설을 우연히 읽고, 그리고 같은 경험을 안은 다른 사람과 그 책의 이야기를 공유하다가 함께 사람들이 많은 카페에 들러서 마음의 병을 조금씩 치유해 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소설은 독자와 독자를 연결하는 매개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에게 힘을 주고 상처를 극복하는 의지를 주는 것은 역시 ‘이해받았다’라는 느낌일 테니까요. 


또한 제 소설 <데이지의 인생>에도 등장하는 표현이지만 ‘상처는 나만 받았다고 생각할 때 커지는 법’입니다. 내가 받은 상처는 다른 사람이 가진 상처와는 달라, 내 상처는 특별해, 하고 생각할 때 상처는 그대로 프라이드가 되어 버리지요. 역시 그렇게 되기 전에 자신이 먼저 깨닫고 상처를 인정하고 공유해 나가는 것이 치유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독자들이 제일 처음 떠올려 주었으면 하는 ‘바나나 소설’의 특징이 있다면?


저는 그런 걸 의도하지 않아요. 오히려 읽을 때는 ‘별거 없네, 쓱 읽었더니 끝났네’ 하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나 그렇게 읽었지만, 인생의 위기에 처하거나 힘든 일이 있었을 때 소설의 구절이 떠올라서 누가 썼는지, 어느 작품인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 모든 것을 극복해 나가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작품을 쓰고 싶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소설의 몰락’이라는 화두가 부쩍 여기저기서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점점 출판 시장에서 소설이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들고 있는데요, 소설의 진정한 의미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지금 고전 문학을 읽으려면 굉장히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하죠. 일본 같은 경우 메이지 유신 시대 문학까지는 요즘 독자들도 어느 정도 파악을 할 수 있지만 <겐지모노가타리> 같은 것을 읽으려면 따로 공부해야 해요. 우선은 그렇게 공부를 하면서까지 읽으려는 사람들이 줄어든 것이 사실입니다. 더 이상 소설은 삶에 가깝고 친근한 것이 아니게 되어 버렸어요. 제가 어렸을 적, 소설을 읽는다는 행위는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도움을 준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지금은 ‘고급 취미’ 가운데 하나라는 느낌이 더 강한 것 같아요. 


어쩌다 한번씩 문학 관련 학회에 참석할 때가 있는데 나쓰메 소세키 작품의 아주 지엽적인 부분을 가지고 기나긴 논쟁들을 하더군요. 학회 분들은 그런 게 당연하겠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소설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어 언제든 손에 집어 들고 읽을 수 있는 그 어떤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몰락할 수밖에 없는 거죠. 한 예로 저 역시 전자책의 등장이 큰 의미가 있다고 보았고 많이 사기도 했지만 역시 서점에서 연인이나 지인과 약속을 잡고, 손에 두툼한 종이책을 들고 읽고, 그리고 읽은 내용을 서로 나누는 방식을 더 선호하게 되더군요. 무엇이든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선행해야겠죠.


 엄마가 된 뒤 작품이 따뜻해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스스로 그렇게 느끼시는지?


소설적인 의미에서는 주변 등장인물에게도 깊이를 부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주변 인물이야, 하고 딱 자를 수 없게 된 거예요. 전에는 등장인물을 제 마음대로 인형처럼 움직일 수 있었는데. 이제는 등장인물이 진짜 인간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어려워졌어요. 


엄마가 되고 나서 예전과 실생활에서 달라진 점도 있는데, 이제는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만나도 이 사람 역시 부모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마음을 다해서 싫어하는 사람은 없어졌지요.


 요시모토 선생님에게 한국이란 어떤 곳인가요.


한국은 제게 있어 언제나 ‘편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일본은 요즘 좀 복잡해졌고 제가 태어나서 오래 살아온 탓도 있겠지만 더더욱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었어요. 아마도 그건 서로에게 없는 부분이 더 좋게 보이는 탓이겠지만 말이에요. 


또 한식을 아주 좋아하는데, 음식에 야채가 많아서 건강해지는 느낌이에요. 일본에서도 한국 식당을 자주 찾는답니다. 저번에 한국에 갔을 때에는 ‘닭 한 마리’의 원조 가게가 있다고 해서 열심히 조사했는데 세 군데나 나오더라고요. 그 중 어디가 진짜 원조집인거죠?(웃음)


P.S. 그녀의 신작 ‘사우스포인트의 연인’을 더욱 재미있게 읽는 방법! ‘하치의 마지막 연인’을 읽고 ‘사우스포인트의 연인’을 읽어 내린다면 그 재미가 아주 쏠쏠 할듯. 대를 이어 사랑을 완성해 가는 남녀의 이야기는 누구라도 부럽고 반할 만한 스토리다. 만나자마자 덥석 안아준 그녀의 마음 씀씀이처럼 이루어지는 사랑은 언제라도 반갑다!  (글 민음사 이미현 부장)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