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ㅏ

탐정 소설을 쓰기 위한 스무 가지 규칙

로드365 2013. 1. 23. 13:40

일반 독자에게는 S. S. 밴 다인이라는 필명으로 널리 알려진 윌러드 헌팅턴 라이트. 미스터리 작법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은 윌러드의 글쓰기 원칙들을 자신의 손으로 간결하게 정리한 ‘탐정 소설을 쓰기 위한 스무 가지 규칙’을 소개한다. 


“탐정 소설은 일종의 게임인 동시에 스포츠이기도 하다. 따라서 작가는 독자에 대해 공정함을 유지해야 한다.”



탐정 소설을 쓰기 위한 스무 가지 규칙


탐정 소설은 일종의 게임인 동시에 스포츠이기도 하다. 따라서 작가는 독자에 대해 공정함을 유지해야 한다. 작가는 브리지 게임을 할 때 사기가 허락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속임수나 책략 따위에 의존해서는 안 되며, 순수한 창의력만으로 독자의 의표를 찌르고 독자의 흥미를 끌어야 한다. 탐정 소설을 쓸 경우에는 매우 명확한 법칙들이 존재한다. 이것들은 성문화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구속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존중받는 동시에 자긍심을 갖춘 문학적 미스터리의 작가라면 모두 이 법칙들을 준수한다. 그런 연유로 일종의 ‘신조’라고 할 만한 것들을 여기 열거해 보겠다. 이것들 일부는 위대한 탐정 소설 작가들이 만들어 낸 관습에 입각해 있고, 나머지는 성실한 작가의 내적 양심에서 본능적으로 우러나온 것들이다.



① 수수께끼를 풀 경우 독자에게는 탐정과 평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모든 단서는 명백하게 제시하고 묘사해야 한다.


② 범인이 탐정에게 쓰는 것 외에 독자를 상대로 고의적인 속임수나 기만을 쓰면 안 된다.


③ 수수께끼에 연애가 끼어들면 안 된다. 애정의 요소를 도입하면 순수하게 지적이어야 할 경험을 소재와는 무관한 정서로 혼란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당면 과제는 범죄자에게 정의의 심판을 내리는 일이지 사랑에 번민하는 남녀를 혼인의 제단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다.


④ 탐정 본인이나 수사 당국의 일원이 실은 범인이었다는 설정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후안무치한 트릭이며, 반짝거리는 1페니 동전을 5달러 금화라고 속이고 남에게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기에 해당한다.


⑤ 범인은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 확정되어야 하며, 운이나 우연의 일치, 정당한 동기가 없는 자백 따위로 결정되면 안 된다. 범죄적 문제를 후자와 같은 방식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독자를 고의적으로 엉뚱한 방향으로 이끈 다음, 추적에 실패한 독자에게 실은 당신이 찾고 있던 것이 줄곧 내 품 안에 있었다고 고백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 작가는 단순한 장난꾼일 뿐이다.


⑥ 탐정 소설이라면 모름지기 탐정이 등장해야 한다. 탐색하지 않는 탐정은 탐정이 아니다. 탐정의 궁극적인 임무는 사건의 단서를 수집함으로써 제1장에서 악행을 저지른 인물을 규명해 내는 일이다. 만약 탐정이 그런 단서들의 분석을 통해서 결론을 낸 것이 아니라면, 그 탐정은 산수 교과서 뒤에 나와 있는 답을 보고 문제를 푸는 학생과 매한가지로 실제로 범죄를 해결했다고 할 수 없다.


⑦ 탐정 소설에서 시체가 빠질 수 없으며, 시체는 최대한 확실하게 죽어 있어야 바람직하다. 살인보다 덜 중요한 범죄로는 충분하지 않다. 살인 이외의 범죄를 위해서 삼백 쪽 이상 쓴다는 것은 너무 거창하다. 책을 찾아 읽는 독자의 수고와 노력에 대해서는 합당한 보수를 지불해야 한다. 사람들은 본질적으로는 인도적이므로 흉악한 살인은 의협심과 공포심을 자극한다. 독자들은 가해자를 정의의 손에 인도하고 싶어 하며, ‘누가 보아도 흉악하기 그지없는 살인’([햄릿] 1막 5장의 대사에 나오는 구절)이 발생할 경우는 매우 온유한 독자조차도 범인 추적에 최고의 정열을 불태우는 법이다.


⑧ 해당 범죄의 수수께끼는 엄밀하게 사실적인 수단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석판점이라든지 심령술, 독심술, 강령술, 수정구 따위를 사용한 방법은 모두 금기이다. 독자에게 합리적인 탐정과 추리 능력을 겨룰 기회를 주는 대신 영혼의 세계와 씨름하거나 형이상학적 사차원의 세계를 돌아다니게 한다면 처음부터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다.


⑨ 탐정은 한 명만 있어야 한다. 바꿔 말해 추리를 하는 자,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는 단 한 명만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너 명, 혹은 한 무리의 탐정들을 동원한다면 흥미를 분산시키고 논리의 직접적인 맥락을 끊을 뿐만 아니라 탐정에 대항해서 지적인 각축을 벌일 작정으로 있던 독자에게도 부당한 처사이다. 한 사람 이상의 탐정이 존재한다면 독자는 누구를 상대로 자신의 추리 능력을 시험해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독자 한 사람에게 릴레이 팀을 상대로 경주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⑩ 범인으로 판명된 인물은 이야기 속에서 어느 정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인물이어야 한다. 바꿔 말해서, 독자가 익숙해지고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마지막 장에서 생소한 인물이나 사소하기 그지없는 역할을 수행한 인물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작가는 독자와 지력을 겨룰 능력이 없다고 고백한 것과 같다.


⑪ 작가는 고용인들, 이를테면 집사, 하인, 시종, 사냥터지기, 요리사 등을 범인으로 지목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고상한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런다면 해결책으로서는 너무 안이하며 불만족스럽고, 독자에게 시간을 낭비했다는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범인은 반드시 상당한 지위를 가진, 보통 상황에서는 의심을 받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 미천한 자의 저열한 행동에 불과하다면 책의 형태로까지 기록할 이유가 없다.


⑫ 아무리 많은 살인이 저질러져도 범인은 한 사람이어야 한다. 물론 범인은 덜 중요한 협력자나 공범자가 있을 수는 있지만, 모든 책임은 한 사람이 져야 한다. 독자의 모든 증오는 사악한 악인 한 사람에게만 집중되어야 한다.


⑬ 비밀 결사, 카모라당, 마피아 따위를 탐정 소설에 들여놓으면 안 된다. 그럴 경우 작가는 모험 소설이나 첩보 로맨스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매혹적이고 멋진 살인도 그런 식의 집합적 책임을 지울 수 있는 단체가 등장하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맥이 빠지기 마련이다. 물론 탐정 소설에 등장하는 살인자에게는 적절한 기회가 주어져야 하지만, 어디를 가도 도피처와 집단적 보호를 제공해 주는 비밀 결사라는 후견인을 범인에게 부여하는 것은 과도한 처사이다. 자긍심이 강한 일급 살인자라면 경찰과의 한판 승부에서 그런 종류의 우위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⑭ 살인 방법 및 그것을 찾아내는 수단은 모두 합리적이고 과학적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경찰 소설(roman policier)에서 유사과학이나 순수하게 공상적이고 사변적인 도구는 용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새로 발견된 원소─편의상 수퍼 라듐이라고 부르기로 한다─를 써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정당한 범죄라고 할 수 없다. 순전히 작가의 상상에 의한, 희귀하고 알려져 있지 않은 독 따위를 써서도 안 된다. 탐정 소설의 작가라면 독물학적인 맥락의 약전(藥典)에만 의존해야 한다는 뜻이다. 쥘 베른식 공상의 세계로 날아올라 분방한 모험의 세계에서 신나게 뛰어 노는 작가는 이미 탐정 소설의 범위를 벗어나 있다.


⑮ 문제의 진상은 시종일관 명백해야 한다. 명민한 독자라면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독자가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뒤에 다시 책을 읽는다면, 해답이 처음부터 눈앞에 뚜렷하게 제시되어 있고 모든 단서 또한 범인을 지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그가 탐정만큼 똑똑하다면 굳이 마지막 장까지 읽지 않아도 자기 힘으로 사건을 해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명민한 독자가 실제로 곧잘 그렇게 문제를 푼다는 사실은 말할 나위도 없다. 해당 소설이 공정하고 올바르게만 구성되었다면 모든 독자들에게 해답을 숨길 수 없다는 것은 나의 기본적인 탐정 소설 이론 중 하나이다. 작가 못지않게 명민한 독자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작가가 범죄와 단서를 서술하고 제시하면서 적절한 공정함과 성실함을 유지했다면 총명한 독자들은 분석과 소거법과 논리에 의해 탐정과 동시에 범인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탐정 소설의 묘미는 바로 여기서 찾아볼 수 있으며, 통상적인 ‘대중’ 소설을 경멸하는 독자들이 창피한 기색 없이 탐정 소설을 읽는 이유도 이런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다.


⑯ 탐정 소설에는 장황한 문장이나 부차적인 논쟁거리에 관한 문학적인 묘사, 섬세하기 그지없는 성격 분석, ‘분위기’에 대한 경도 따위가 들어가서는 안 된다. 그런 일들은 범죄와 추리의 기록에서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않다. 그런 것들은 줄거리의 흐름을 막고 소설의 주요 목적과는 무관한 문제들을 끌어들일 뿐이다. 탐정 소설의 목적은 문제를 제시하고 분석한 다음 성공리에 해답을 도출하는 것이다. 물론 소설 자체에 사실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적당한 설명과 성격 묘사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탐정 소설의 작가가 박진감 있는 현실감을 부여하고 등장인물과 범죄에 관한 독자의 흥미와 공감을 획득하는 수준의 문학적 수준에 도달했다면, 범죄 사건의 기록이 응당 필요로 하는 순수하게 ‘문학적’인 기법을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로 터득했다고 보아야 한다. 탐정 소설은 냉철한 것이며, 독자가 그것을 찾아 읽는 것은 문학적 장식이나 문체나 아름다운 서술이나 분위기 묘사 따위가 아니라 정신의 자극 및 지적 활동을 원하기 때문이다. 야구 경기를 구경하러 가거나 크로스워드 퍼즐을 푸는 일처럼 말이다. 폴로 그라운드 구장에서 야구 경기를 하는 와중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강론한다고 해서 두 야구팀 사이에서 벌어지는 경기에 대한 흥미를 한층 더 돋울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크로스워드 퍼즐의 힌트 속에 해당 단어의 어원과 철자법에 대한 논의를 삽입한다면 단어를 올바르게 짜맞추려고 노력중인 사람의 짜증을 돋울 뿐이다.


⑰ 직업적 범죄자를 탐정 소설의 범인으로 삼아서는 결코 안 된다. 가택 침입범이나 강도는 경찰 소관이지, 작가나 천재적인 아마추어 탐정이 다룰 것이 아니다. 그런 범죄는 강력계의 일상적인 업무에 불과하다. 정말로 매력적인 범죄란 교회의 중진이라든지 자선가로 잘 알려진 부유한 노처녀 따위에 의해 저질러지는 것을 가리킨다.


⑱ 탐정 소설에 등장하는 범죄는 알고 보니 사고였다든가 자살이었다는 식이어서는 결코 안 된다. [오디세이아] 와도 같은 추리 역정(歷程)을 그런 식의 맥 빠지는 클라이맥스로 끝낸다는 것은, 독자 입장에서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기만이다. 만약 그 책을 산 독자가 책에 등장하는 범죄가 엉터리였다는 이유로 책값 2달러의 환불을 요구한다면, 조금이라도 정의감이 있는 법정이라면 독자 승소 판결을 내릴 뿐 아니라 사람 좋은 선의의 독자를 농락한 작가에게 통렬한 질책을 가할 것이다.


⑲ 탐정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범죄의 동기는 개인적이어야 한다. 국제적 음모나 전쟁 정책은 다른 분야의 소설, 이를테면 첩보 소설 따위에 속한다. 그러나 살인 이야기라면 어떤 의미에서는 조촐해야 한다. 살인은 독자의 일상적인 경험을 반영해야 하며, 어느 정도까지는 독자 본인의 억압된 욕구와 감정의 배출구 역할을 해야 한다.


⑳ 마지막으로 (내 ‘신조’의 짝을 맞추기 위해서) 자존심이 있는 탐정 소설 작가라면 결코 쓰지 않을 몇 가지 수법을 열거해 둔다. 너무나도 자주 쓰여서 범죄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에게는 지극히 익숙한 요소들이다. 이것들을 쓴다면 독자에게 무능함과 독창성의 결여를 고백하는 꼴이 된다.



⒜ 범죄 현장에 남아 있던 담배꽁초와 용의자가 피우는 담배 브랜드를 비교해서 범인을 찾아내는 일. 

⒝ 수상쩍은 강령술로 범인을 두렵게 하여 자백을 이끌어 내는 일.

⒞ 가짜 지문.

⒟ 인체 모형을 이용한 알리바이.

⒠ 집 안의 개가 짖지 않은 것을 보고 침입자가 낯익은 인물임을 알아냄.

⒡ 쌍둥이 한쪽이라든지, 유력한 용의자이지만 실은 결백한 인물과 용모가 똑같은 친척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일.

⒢ 피하 주사기와 즉효성 마취약.

⒣ 경찰이 실제로 문을 부수고 들어간 다음에 벌어지는 밀실 살인.

⒤ 언어 연상 테스트로 범인을 지목하는 일.

⒥ 마지막에 가서 탐정이 해독하는 암호문 또는 암호 편지.


글 S.S. 밴 다인/스크리브너 출판사 편집부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