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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규, 별 거 없는 우아한 세계

로드365 2012. 10. 2. 22:47


한국에 웹 서비스가 막 상륙했을 즈음 조경규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대번에 ‘아!, 피바다’라고 외칠 것이다. 그는 일군의 컬트 마니아를 거느린, 좀 과장하자면 ‘세기의 아티스트’였다. 이름도 서늘한 ‘피바다 학생 공작소’에서 선보인 기괴한 이미지들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만, 얼마 안 가 문을 닫게 되었다. 인터넷에서는 그의 작품을 볼 수 없냐는 애잔한 질문들이 오갔지만 피바다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이후 조경규는 삐삐밴드의 베스트 앨범 커버를 그리고, 황신혜 밴드의 콘서트 포스터를 그리기도 했다. 소설가 박민규와 황신혜밴드의 리더 김형태씨와 ‘무규칙이종예술구국결사 극동 3인방’이라는 복잡한 이름을 가진 밴드를 결성하기도 했다. 여하튼 조경규는 그렇게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가 돌아왔다.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이미지를 가득 들고서. 혹자는 설마 [팬더댄스]의 조경규가 [피바다]의 조경규일 리 없다고 세찬 도리질을 하기도 했다. 여하튼 그 둘은 아니 그 셋, 그 넷은 모두 한 사람이다.  

 


세상 뭐 별 거 있어?


여하튼 모두 그의 것이 맞다. 어린이용에서부터 성인용에 이르기까지 조경규의 다채로운 작업의 맥락을 유추한다면 그것은 편견을 뒤집는 탈경계의 카타르시스가 아닐까. 거대한 쓰레기 더미로 변한 우드스탁을 바라보며 어느 히피는 전율하듯 내뱉는다. “아름다워!” 이안이 감독한 [테이킹 우드스탁]의 급소 혹은 반전, 그것은 전복된 미학이다. 조경규의 작품 역시 쓰레기를 보며 감탄에 젖는 미학이 있다. 세상 뭐 별 거 있어, 라고 유희하는 듯한 조경규의 작업은 그래서 속셈이 없으며, 정체를 알 수 없고, 축지법을 쓰는 냥 이곳저곳을 넘나든다. 아마도 이런 그가 꿈꾸는 세상은 ‘누구든 웃을 자유가 있는’ 우아한 세상일 것이다. 


초등학생을 위한 ‘신세대 21세기 뱀 주사위 놀이’는 권선징악의 룰에 따라 움직이고, 노동자들을 위한 “일 안하고 돈 벌게 해 주세요”라는 꼴라주 작업은 이상하게 평화롭다. 식탐의 황제이자 미식가인 팬더댄스의 만찬은 우리를 더없이 행복하게 한다. 맛있는 설렁탕 한 그릇이면 세상 그 무엇이 부러울까 싶은 사소한 유희들이 만들어내는 행복한 꼴라주. 여하튼 우린 즐기면 그만인 것이다. 아마도 그러라고 그린 것일 테니까. 어떤 ‘의도’없이 그저 노는 마음으로 말이다. 

 


1. 단도직입적으로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금은 베이징에서 아내와 두 아이랑 같이 살고 있다. 하루의 8시간은 취침. 6시간은 일. 10시간은 먹고 놀고 쉬려고 노력한다. 요즘 열심히 매달리고 있는 작업은 만화다. 단행본으로 2권 발간된 식도락 만화 [차이니즈 봉봉클럽]의 후속편을 미디어 다음에서 연재중이고, 스마트폰 전용만화 [팬더댄스와 베이커리]도 그리고 있다. 물론 본업인 그래픽디자인과 일러스트도 나름 열심히 하고 있다. 들어오는 일은 절대 거절하지 않는 것이 철칙이다. 



2. 무엇이 당신을 ‘그리기’의 세계로 인도했나. 

어릴 적 보았던 TV 만화 [톰 소여의 모험] 때문이었다. 8살 때부터 줄거리가 있는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22살이 될 때까지 독자는 우리 형 하나뿐이었는데, 암튼 엄청나게 그렸다. 지금도 라면박스로 3개 가득 가지고 있다.  



3. 언더문화가 ‘들끓는’ 시기에 이십대를 보낸 문화세대다. 당신의 이십대는 문화적으로 어떤 것이었으며, 지금과 어떤 차이가 있나.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에는 인터넷이 없었다. 무척 행복했고, 대단한 행운이었다. 쓸데없는 정보에 노출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나름 창의적이면서도 재미난 일을 꾸밀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았다. 책도 많이 보고, 음악도 싱글 개념보다는 앨범 전체를 듣던 시절이었다. 당시 서울의 문화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지금도 그렇고. 현시대의 문화를 그다지 향유하지 않는 편이라. 먹으러 다니거나 서점에 갈 때 빼고는 주로 집 안에서 시간을 보내길 좋아했다. 요즘은 궁금한 게 있으면 지식검색을 하지만, 그때는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보던 시절이었다. 난 도서관에서 시간 보내는 걸 무척 좋아했는데, 그 버릇이 지금도 변치 않아 요즘도 필요한 정보는 대부분 책을 통해 습득한다. 서점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놀이터이자 쇼핑센터다.

 


4. 1983년 동교초등학교 교내백일장 입선, 1986년 MBC 어린이큰잔치 한강백일장 입선, 1987년 서울특별시교육회 바른 어린이상 등을 수상한 것으로 알고 있다. 성인이 된 후에 혹 수상한 것이 있는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왜들 안주는지 모르겠다. 



5. C2K, 피바다공작실, 블루닌자 등 여러 이름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 특별한 이유는?

그냥 이것저것 하는 게 좋다. 실증도 쉽게 느끼는 게 사실이고.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만날 먹을 순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디자인 일이 많이 들어와 한동안 컴퓨터로 디자인만 하다 보면 그림이 그리고 싶고, 또 한동안 만화 작업 하다보면 디자인이 하고 싶다. 어린이 작업을 하다보면 어른용도 하고 싶고. 하루하루 시간을 느끼면서 살려고 한다. 그냥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으니까.


6. 위의 질문과 관련해 어느 때 가장 '나답다'라고 느끼는가.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자식은 없다지만 그래도 우선순위를 매겨보자면?

지금은 만화가 재밌다.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페이지 디자인도 할 수 있으니까. 클라이언트가 없으니까. 남한테 허락 안 받아도 되고. 시(詩)를 쓰는 것도 좋아한다. 시를 쓰면 기분이 좋아진다. 


 


7. 익살스런 풍자를 통한 사회비판이 심심치 않게 눈에 걸린다. 당신을 자극하는 사회적 현상은 무엇인가? 

난 나를 둘러싼 사회에는 큰 관심이 없다. 비판할 만한 대상이나 이유도 없고. 한 10년 전부터 TV 뉴스를 아예 안 본다. 원체 우울한 소식들뿐이라서. 신문 보는 건 좋아하지만, 정치 경제 면은 그냥 지나친다. 콜라주할 때 재밌는 단어야 놓칠 수 없겠지만.



8. 그야말로 '피바다스러운' 성난 이미지의 범람과 너무도 해사한 동심. 그 광활한 스펙트럼 때문에 어떤 독자들은 C2K와 조경규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을 것 같다. 

글쎄. 딱히 없다. 사실 직접 만나보면, 굉장히 평화로운 사람이라서 종종 놀라기는 하지만.


 

9. 당신이 추구하는 즐거움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이미지에서 어떠한 형태로 재현되는가?

한가로움. 난 바쁜 게 싫다. '바쁘다'라는 단어를 말하지도 않을 뿐더러, 누군가로부터 '나 지금 바쁘다'라는 얘기를 듣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한다. 뭐 바쁘다면야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사실 잘 생각해보면 진실로 바쁜 일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한다. 뭐 그렇다고 빈둥 빈둥거리자는 건 아니고. 늘 여유를 가지고 미리미리 해나가면 시간에 쫓길 일이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내 만화에 나오는 인물들도 대부분 한가하다. 드라마나 영화에나 나올 법한, 진짜 나쁜 악당 같은 것도 없고. 



10. [차이니즈 봉봉클럽]의 저자로서 중국, 서울, 뉴욕을 통틀어 당신의 미각을 자극하는 요리는? 

햄버거. 진짜 제대로 만든. 밤에 먹으면 정말 맛있지 ~



11. [차이니즈 봉봉클럽 – 베이징편] 작업은 어떻게 돼가고 있는가? 

Daum 만화섹션에서 이제 막 연재가 시작(cartoon.media.daum.net/series/list/chabong3)되었다. 이 책 한권을 위해 베이징에서 3년째 거주 중이다. 먹기도 엄청 먹었고 식비도 상상 초월이다. 그냥 보통 만화처럼 구상하고 그림 그리는 게 다가 아니라, 실제 식당을 소개하는 만화라 신경 쓸 부분이 많다. 식당을 돌아다니면서 취재하고 리스트 압축하고 메뉴 선별하고 하는 과정이 무척 길었다. 베이징 편을 끝내면, 한 1년쯤 중국요리를 아예 안 먹을 생각이다. 그 후에는? 물론, 다시 빠져들어야겠지. 


 

12. 그 수많은 재기발랄한 아이디의 원천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십여 년 전부터 늘 그러하듯이, 예쁜 아내와 맛있는 요리, 그리고 신나는 음악이다. 깨어있는 동안 집안에 음악이 끊이지 않는다. 


 

13. 초코파이와 몽쉘 중에 어떤 게 더 맛있는가? 

기분에 따라 달라지지만, 주로 몽쉘을 택한다. 마쉬멜로 보다는 크림이 더 맛있으니까. 빵까지 초코 맛인 몽쉘 카카오도 무척 좋아한다. 그렇다고 자주 먹는 건 아니다. 평균적으로 보자면, 일주일에 하나 정도랄까?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초코파이가 너무 먹고 싶어진다. 

 


14. 여태껏 수없이 많은 작업을 했을 텐데, 그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그 반대의 경우도 알려 달라. 

개인적으로 포스터를 좋아한다. 그림도 그리고, 디자인도 하고 전부 내가 직접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시와 공연 포스터를 몇 했는데, 그중 [페차쿠차], [선데이 아이스크림], [안은미의 바리-저승편]이 특히 좋다.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모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맘대로 한것 들이다. 그렇게 나를 대해주는 클라이언트에게는 항상 최선을 다하는데, 그래서 작업도 즐겁고 결과물도 흡족하다. 반대의 경우는, 뭐 딱히 없다. 맘에 안 들어도 마음에 두지 않는 성격 때문에. 아예 머리에 저장을 해두지 않는다.


15. 일러스트는 한편으론 편집자와의 '관계 맺기' 작업이다. 그 과정은 어떤 것이었나. 

클라이언트를 상대할 때는 언제나 '고객맞춤형'이다. 그들이 원하는 걸 100% 이해하고 소통한 후에 작업한다. 내 색깔을 아예 없애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난 딱히 내 스타일이라는 게 없는데, 그래서 보면 다 제각각이다. 그림 톤이나 컬러 톤부터 사용하는 도구까지. 근데 난 그게 재밌다. 내 스타일에 내 스스로를 가둘 이유가 없으니. 클라이언트와 충돌하는 경우도 전혀 없고. 내가 하고 싶은 건, 개인 작업으로 풀어낸다. 


16. 당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물’은 무엇인가. 

귀여운 것. 귀여운 건 내가 정말 참을 수 없다. 억지스러운 귀여움이 아니라, 정말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귀여운 그 무언가 말이다. 말랑말랑한 것도 마찬가지다. 연식 테니스볼 같은.


 

17. 당신의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입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작업을 할 때 절대로 집중하지 않는다. 집 안의 모든 것들(아이들이 뛰노는 소리와 아내가 요리하는 냄새, 그리고 음악)을 오감으로 느끼면서 일한다. 가령 난 컴퓨터 작업은 마루 한편에서 서서 하는데, 아이들이 마루에서 뛰어노는걸 보면서 한다. 책상에 앉아서 그림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아이들(다섯 살과 네 살)은 내가 일하는 줄 모른다. 옆에서 같이 그림도 그리고, 책도 보고, 얘기도 하고 그런다. 종이를 오려서 하는 꼴라주 작업의 경우, 정말 다 같이 앉아서 한다. 물론 각자의 결과물은 판이하게 다르긴 하지만. 그런 게 난 좋다. 작업에 너무 열중하면, 나중에 보기에 좋지 않다. 쑥스럽달까? 느슨하면서도 자유로운 게 좋다. 나름 집중이 필요한 시간도 있는데, 그럴 때면 아이들이 잠든 늦은 밤을 이용한다. 음악과 야식이 함께 있어 이것 또한 행복한 시간이다. 


18. 당신의 작업 도구를 알려 달라.

만화는 종이에 펜으로 그림을 그리고, 스캔해서 주로 포토샵으로 채색한다. 가장 좋아하는 펜은 ‘모나미 붓펜’이다. 모든 [팬더댄스]는 붓펜으로 그렸다. [차이니즈봉봉]도 마찬가지고. 항상 박스로 사놓고 쓴다. 디자인 할 때도 손으로 그림을 그려 스캔하는 경우가 많다. 글자든 일러스트든. 페인팅은 과슈를 좋아한다. 아크릴은 왠지 너무 매끈한 느낌이 들어서. 가위로 종이를 오리는 것도 좋아한다. 풀은 딱풀을 쓴다. 

 

19. 당신의 가장 훌륭한 작업 파트너는? 

음악, 요리, 가족, 차갑고 신선한 공기~



20. 현재 당신이 가장 이해 안 되는 것들은 무엇인가.

왜 인간은 이렇게 바쁘게 살아야 하는가? 바쁜 걸로 지차면, 개미나 꿀벌보다도 바쁜데, 왜 꼭 그래야만 하는지. 왜 이렇게 쓸데없는 걸 많이 만들어놔서 스스로 고생을 하고 있는지. 가령 자연에는 없는 ‘시간’이나 ‘돈’이나 ‘국가’같은 개념들. 



21. 자꾸 당신의 작업에 ‘재현’ 되는 것들은 무엇인가. 

인생의 의미. 그저 큰 의미 없다는 것. 부디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다가, 나중에 뒤돌아보면 “내 인생이 좋았더라”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



22. 10년 후 당신이 기대하는 당신의 모습

그저 지금 이대로!! 8시간 취침. 6시간 일. 10시간은 먹고 놀 수 있는 인생이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일에 있어서도, 그냥 이것저것 마음 가는대로 재미나게 하고 싶다. 세상에 큰 흔적을 남기고 싶은 욕망이나 열정이 내게 없으니, 얼마나 마음 편한지 모르겠다. 


 

23. 지금 행복한가? 

그렇다. 엄청.

 


24. 일러스트를 하고 싶어 하는 후배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들려준다면? 

부디 재미나게 일하시길! 하는 사람이 재미없으면, 보는 사람은 고통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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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