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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 폰 트리에, <도그빌>로 돌아온 문제적 감독 라스 폰 트리에

로드365 2003. 8. 8. 17:03


거장인가? 사기꾼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도그빌>로 다시 논쟁의 중심에 선 라스 폰 트리에, 열광과 혐오의 이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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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대로다. 라스 폰 트리에는 다시 도발적인 영화를 내놓았다.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나왔던 <도그빌>은 관객의 극단적 반응을 예고하는 작품이다. ‘영화언어의 혁신을 이룬 걸작’이라는 찬사와 ‘철학의 빈곤을 드러낸 가짜 예술품’이라는 비판이 트리에의 다른 영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치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듯 으르렁댄다.
<뉴욕타임스>의 평론가 A.O.스콧은 올해 칸영화제를 취재한 기사에서 이렇게 썼다. “칸영화제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그 장대한 규모와 더불어 논쟁적 영화를 선호하는 취향이다. 그리고 이것이 칸영화제가 트리에를 그처럼 환영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중략) 칸영화제에서 월요일에 있었던 <도그빌> 시사회는 전류가 흐르는 듯한 순간이었다. 마침내 논쟁거리가 생긴 것이다. <도그빌>은 냉소주의에 기반한 가학적이고 자의식으로 뭉쳐진 실습작인가? 아니면 권력, 순수, 복수의 본질을 파헤치는 혁신적인 작품인가? 도그마95 이론의 수장이며 교활한 앞잡이인 트리에는 세계사에 남을 천재인가? 아니면 교활한 지적 사기꾼인가?”

실제로 <버라이어티>의 평론가 토드 매카시와 <빌리지 보이스>의 평론가 짐 호버먼은 극단적으로 상반된 평가를 내렸다. “<어둠 속의 댄서>에서 사형제도를 비판한 뒤, 트리에는 <도그빌>에서 정반대로 사형제도를 옹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도그빌>은 미학적 실험과 더불어 미국적 가치의 이데올로기적 종말을 향해 한방을 날린다는 의도가 명백하지만 미학적 성취에서 부끄러운 결과를 낳은 점도 분명하다. 이 덴마크 작가는 <도그빌>에서 미국, 권력, 오만함, 은총, 자비, 용서, 복수, 진실, 심판 등 얼핏 보기에도 굉장히 많은 문제를 던지지만 그가 이런 문제를 씹어서 뱉는 방식은 전과 다름없다. 그것은 선동을 한다는 목적으로 정교하게 고안된 것이다.”(토드 매카시) “단 하나의 세트에서 훌륭하게 연출된, 3시간 가까운 상영시간 가운데 단 1분도 지루하지 않은 <도그빌>은 수난으로 이뤄진 작품이지만 엔드 크레딧을 위해 카타르시스를 아껴둔다. 팝뮤직과 사진 이미지가 나란히 등장하는 엔드 크레딧은 <도그빌>이라는 매트릭스에 파열구를 낸다. 트리에의 타이밍은 섬뜩하다. 흔히 얘기하듯 미국은 지상에서 가장 기독교적인 나라이며 <도그빌>은 그 말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해한다.”(짐 호버먼)

 <도그빌>  

문제의 영화 <도그빌>은 설정에 익숙해지기까지 얼마 동안 마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의 세계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 무대는 있지만 배경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는 평평한 무대바닥에 분필로 선을 그어놓고 이곳이 로키산맥에 위치한 마을 도그빌이라고 말한다. 거기엔 집도, 창문도, 문도 없지만 배우들은 그것들이 있는 양 행동하고 연기한다. 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릴 때 관객은 문을 여닫는 시늉을 하는 배우들만 보게 된다. 내레이션은 대담하게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있다’고 여기라고 주문한다. 아무도 임금님이 벗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답답함,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무대장치에 친숙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는다. 프롤로그와 9개의 장으로 나눠진 이야기는 동화구연을 하는 듯한 해설자의 음성과 배우들의 진지한 연기가 맞물리면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그리고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 세트 못지않게 당황스럽다. 도그빌을 찾은 낯선 여인 그레이스는 도그빌 주민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주민들의 이기심과 욕정으로 인해 잔인한 학대에 직면한다. 사람들은 강간당하고도 항변하지 못하는 불쌍한 그녀의 목에 쇠종이 달린 개목걸이를 단다.

<도그빌>은 트리에가 미국에 관한(USA) 삼부작 가운데 첫 번째로 만든 작품(U에 해당)이다. 인간을 개로 취급하는 마을, 도그빌이 현실의 미국이라는 그의 주장은 엔드 크레딧이 오를 때 등장하는 대공황기 미국인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과 데이비드 보위의 노래 <영 아메리칸>으로 대변된다. 혹시 USA 삼부작의 부제가 “나는 고발한다. 미국의 죄악을!”이 아닌가 싶은 공격적 태도는 칸영화제에서 밝힌 그의 말로도 확인된다. “나는 미국인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악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부시가 그렇게도 논해왔던 적국들보다 악하지 않다고 보지도 않는다. 나는 인간이란 어디에서나 얼마간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미국에 대해서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권력은 부패한다. 이것은 사실이다. 이들이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내가 미국에 해를 가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조롱은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도그빌>의 비판자들은 트리에가 미국을 조롱한다는 사실을 문제삼지는 않는다. <필름코멘트>에서 평론가 켄트 존스는 <도그빌>에서 비판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종잡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라크를 공격한 현실의 미국이 아니라 인간의 나쁜 본성 자체를 공격하는 영화로 보이기 때문이다. 트리에 역시 “도그빌이 미국일 수도 있지만 다른 나라의 어느 마을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혼란을 불러올 만한 말이지만 <도그빌>은 그만큼 모호한 면을 갖고 있다. 이 영화는 엔드 크레딧만 떼어내면 반미와 별 관련이 없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미국에 대한 그의 비판은 단지 언론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인가? 그는 정말 평론가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 것인가? 혼란을 정리하자면 몇 가지 쟁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트리에는 파시스트인가?

<도그빌>의 이야기는 대공황기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전제하고 있지만 구약성서의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를 각색한 것처럼 보인다. 인간의 타락에 노한 하나님이 도시를 송두리째 없애버린 것처럼 영화는 타락한 마을 도그빌은 지상에서 없어져야 한다고 결론내린다. 그런데 과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구약성서식 세계관은 세상의 악을 몰아내는 데 일조할 수 있는가? 토드 매카시가 지적한 대로 이것은 <어둠 속의 댄서>에서 비판했던 그 사형제도를 옹호하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 또한 파시스트 국가(악의 축!)는 전쟁과 같은 파시즘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은 부시 행정부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악마와 싸우려면 악마가 돼야 한다? 트리에가 파시즘에 매혹을 느낀다는 주장은 <도그빌>에서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니다. <유로파>가 나왔을 때도 좌파 진영에선 그를 파시스트로 단정했다. 전후 독일의 모습이 만들어내는 좌절과 허무가 파시즘에 대한 향수처럼 보인 것이다.

하지만 정반대의 해석도 가능하다. 트리에의 열렬한 지지자 민규동 감독은 곧 출간될 책 <도그빌북>에서 예수처럼 느껴지는 그레이스를 미국의 표상으로 이해한다면 트리에는 신이 보잘것없는 인간성 이상의 본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아쉬워하는 것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도그빌>을 종교적 우화를 가장해 구약성서식 논리를 비판하는 영화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브레이킹 더 웨이브>에서 스코틀랜드 교회를 비판하던 장면을 떠올리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도그빌>이 브레히트의 연극 <서푼짜리 오페라>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대상을 거리를 두고 관찰하게 만드는 브레히트의 방법대로 <도그빌>은 무대장치를 의도적으로 노출한 영화다. 현실이 아니라 연극이고 영화라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본다면 <도그빌>에서 그레이스의 복수는 카타르시스로 이어지지 않는다. 관객은 제3자의 시선으로 도그빌 주민의 잔인함과 그레이스의 복수가 합당한 것인지 생각할 기회를 얻었을 뿐이라는 해석이다.

2. 트리에는 사디스트인가?

골든하트 3부작에 이어 <도그빌>에서도 관객은 너무 착해서 희생양이 되고 마는 여자를 만난다. 그레이스가 <브레이킹 더 웨이브>의 베스나 <어둠 속의 댄서>의 셀마와 다른 점은 극의 말미에 드러날 뿐이다. 트리에의 여인들이 고난의 가시밭길을 걷다 피흘리며 쓰러지는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할 뿐 아니라 불편하게 한다. 어째서 그의 여인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착해야 하는가? 트리에 영화에 대한 열광과 혐오는 여기서 확연히 갈린다. 2000년 칸영화제에서 한 여성기자는 트리에에게 “당신은 왜 <브레이킹 더 와이프>라 불릴 만한 영화들을 만드느냐”고 질문했고 답변은 “나도 모른다”였다. <어둠 속의 댄서>를 찍을 때 주인공 비욕과 트리에의 갈등이 화제가 된 것도 여주인공에 대한 가학적 태도가 촬영과정에도 반영됐으리라는 의구심 탓이 크다. 올해 칸영화제에선 니콜 키드먼이 USA 3부작의 남은 2편에도 출연할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됐다. 트리에는 키드먼의 출연을 거듭 확인했지만 그녀는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고 최근 키드먼의 출연이 무산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칸영화제에서 <도그빌> 상영 때 키드먼이 영화를 다 보지 못하고 나왔다는 사실을 보도한 <뉴욕타임스>의 기사에서도 행간의 의미가 눈에 띈다. 기사는 키드먼이 트리에의 다음 영화에 출연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암시했다.

하지만 트리에 영화가 눈을 의심할 만큼 생동감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는 사실을 부인하긴 어렵다. <브레이킹 더 웨이브>가 다다른 기적의 순간, <백치들>에서 백치의 삶이 고결해 보이는 역설, <어둠 속의 댄서>의 처절한 비극, <도그빌>에서 그레이스의 수난과 복수는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주인공의 절절한 연기로 인해 설득력을 갖는다. 거꾸로 트리에의 여인들이 만들어내는 성스러운 분위기는 가학적 현실과 대비를 이룬다. 세속의 가치판단에 물들지 않은 그들의 고결한 영혼은 ‘선’(善)을 추구한다고 내세우는 사회와 종교와 법질서가 순결하지 않다는 점을 고발한다. <사이트 앤 사운드>에서 평론가 호세 아로요는 이렇게 썼다. “칼 드레이어의 <잔다르크의 수난>(1927)에서처럼, 얼굴이 말해주는 것이 바로 영화의 진실이다. 그것은 사회가 지키고 보호한다고 말한 그 사람을 죽이고 압살하는 것이 다름 아닌 그 사회라는 고발이다.”

3. 트리에의 형식실험은 성공했나?

널리 알려진 대로 데뷔작 <범죄의 요소>에서 <유로파>까지 3편의 영화에서 기교중독자라는 평판을 얻었던 트리에는 TV시리즈 <킹덤>을 거쳐 <브레이킹 더 웨이브>에 이르면서 이전과 전혀 다른 영화를 만들었다. 이야기와 캐릭터가 볼품없다는 비판에 답하기라도 하듯 <킹덤>의 이야기와 <브레이킹 더 웨이브>의 캐릭터는 강렬했다. 이후 <도그빌>까지 트리에는 이미지를 조작하는 기교를 거부하는 대신 카메라를 최대한 인물에 밀착시켰다. 이미지는 점점 지워졌고 인물은 그 숨결이 느껴질 만큼 가까워졌다. 디지털카메라는 트리에의 새로운 무기로 <도그빌>에서도 위력을 발휘한다. 관객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 영화에 배경이 없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게 된다.

트리에가 영화적 기교에서 멀어진 과정은 그 자체로 논란거리다. 지지파는 여기서 그 근원에서부터 영화의 본질을 되묻는 숭고한 태도를 발견하는 반면 반대파는 이미지의 죽음을 미학적 파산선고로 여긴다. 의 평론가 케네스 튜란이 <어둠 속의 댄서>를 혹평하면서 밝힌 입장은 트리에의 형식실험이 어떻게 비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한마디로 제리 브룩하이머가 로베르 브레송의 흉내를 낸 것 같다는 것이다. 주인공 셀마가 비극의 수렁에 빠지는 과정이 여러 가지 비약으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은 이런 혹평의 진원지다. 아마 <어둠 속의 댄서>를 <아이 엠 샘>과 비교해본다면 이런 비판이 무엇을 지적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도그빌> 역시 이같은 논란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도그빌 주민들과 그레이스의 심경의 변화를 설명할 때 등장하는 내레이션은 과연 얼마나 ‘영화적’인 것인가? 트리에는 “만약 특정한 연출방식으로 영화를 낯설게 보이게 만든다면 다른 모든 것은 정상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멜로드라마의 관습에 의존하는 이야기는 트리에의 실험에서 불변의 요소인 셈인가? 아니면 사유의 빈곤, 철학의 부재를 위장하는 말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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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 폰 트리에 Film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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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출생 |
1984년 <범죄의 요소> |
1987년 <메데아>(TV) |
1988년 <전염병> |
1991년 <유로파> |
1994년 <킹덤>(TV) |
1996년 <브레이킹 더 웨이브> |
1997년 <킹덤2>(TV) |
1998년 <백치들> |
2000년 < D-Dag-Lise >(TV) |
2000년 < D-Dag >(TV) |
2000년 <어둠 속의 댄서> |
2003년 <도그빌> |





4. 트리에는 순수의 서약을 지키고 있는가?
아마도 도그마95가 아니라면 트리에에 대한 논란이 지금처럼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1998년 칸영화제에서 <백치들>과 <셀레브레이션>을 내놓으며 알려진 이 서약은 한때 21세기 영화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누구보다 먼저 서약을 깬 것은 바로 서약의 주창자인 트리에 자신이었다. 그는 자신의 창작과정에 어떤 제한을 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이 선언을 했지만 다시 도그마의 10계명에 얽매이는 것은 도그마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서약을 위반했다.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스스로 지키지 않을 서약을 또 다른 누벨바그의 선언처럼 제시한 이유는 단지 언론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 아닌가? 트리에를 과대평가된 감독으로 평하는 이들이 트리에를 결과(영화)보다 말을 앞세우는 감독이라고 여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의 이름 앞에 ‘선동가’, ‘호객꾼’, ‘앞잡이’ 같은 단어가 등장한 배경이다.

그렇다면 트리에의 진심은 어떤 것일까? 그는 언젠가 도그마95가 종교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도그마의 10계명을 지키면서 영화를 만드는 것은 훨씬 어렵다. 속임수를 쓰는 것은 더 어렵다. 그것이 도그마의 정신이다.(중략) 나는 영화가 종교이기 때문에 좋은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종교로 여기는 그의 관점에서 도그마95는 수도승이 그러하듯 스스로에게 형벌을 내리는 일이다. 영화를 만드는 모든 요소 가운데 일부를 제한하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그는 도그마의 10계명을 어겼지만 어떤 특정 요소를 제외하고 영화를 만든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트리에가 도그마의 정신까지 버렸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트리에 영화가 극단적인 실험에 매달리는 것도 이런 태도와 관련있다. 트리에처럼 영화를 종교적인 고행으로 여기는 감독이 아니라면 배경이 없는 하나의 무대에서 진행되는 영화를 생각할 수 있었을까? 그의 지지자들은 종교적 고행을 닮은 트리에의 극단적 실험정신이 새로운 차원의 영화로 발전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처럼 트리에 영화가 불러온 논란에는 몇 가지 쟁점이 있지만 그가 뛰어난 솜씨를 가진 감독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평론가는 거의 없다. 문제는 지금의 그를 ‘대가’나 ‘거장’으로 부를 수 있느냐는 점. 비판자들은 트리에가 오늘날 가장 과대평가된 감독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한다. 디지털혁명이 영화의 미학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것 같던 시대 분위기에 편승한 대표적 인물이며 논란거리에 목마른 칸영화제가 발굴한 히트상품이라는 시각이다. 그런 점에서 <도그빌>은 시금석 같은 작품이다. 누군가는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소리칠 것이고 누군가는 “미래의 영화를 봤다”고 주장할 것이다. <어둠 속의 댄서>가 그랬듯 <도그빌>은 중립적 입장이 불가능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트리에가 가장 과대평가된 감독인지 알 수 없지만 가장 논쟁적인 감독 가운데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것은 트리에 자신이 원하는 바이기도 하다. 그는 “영화란 신발 속에 들어간 돌멩이처럼 세상을 자극해야 한다고 했는데, <도그빌>은 어떤 자극을 주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 영화가 말이 된다는 게 자극이고 도발이다. 그 이상 더한 자극이 어디 있나?”

남동철 namd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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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 폰 트리에의 말, 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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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데어도르 드레이어 아마도 <잔다르크의 열정>과 <게르트루드>는 <브레이킹 더 웨이브>와 관련있을 것이다. 그의 영화들은 더 아카데믹하고 세련된 것이다. 내게 새로웠던 건 이야기의 중심에 놓인 한 여자였다. 드레이어의 모든 영화는 한명의 여자가 중심 캐릭터로 나온다. 그리고 그녀는 고통을 당한다. <브레이킹 더 웨이브>의 처음 제목은 <사랑은 어느 곳에나 있다>였다. 그것은 드레이어의 영화에서 게르트루드가 자신의 묘비에 새기길 원했던 문구였는데 프로듀서가 반대했다. 누가 그런 제목을 가진 영화를 보러 오겠냐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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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배경 나는 종교적 인간이고 가톨릭 신자이다. 그렇지만 가톨릭 교리를 위해 가톨릭을 믿지는 않는다. 부모님이 확신을 가진 무신론자였기 때문에 나 스스로는 종교적 공동체에 소속되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어린 시절엔 종교를 장난처럼 여기며 접근했다. 당신도 어린 시절엔 좀더 극단적인 종교를 찾아다녔을지 모른다. 금욕적이고 엄격한. 난 사물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드레이어 같은 시각을 갖고 있다. 드레이어의 종교적 관점은 휴머니즘의 정수다. 그는 자신의 모든 영화에서 종교를 고발했지만 신을 모욕하진 않았다. <브레이킹 더 웨이브>도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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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헬드 카메라 <킹덤>의 경험에서 시작된 일이다. <브레이킹 더 웨이브>에는 관습적인 요소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사실적인 형식을 가미하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다. 다큐멘터리 터치가 필요했다. 만약 <브레이킹 더 웨이브>를 관습적인 기교로 찍었다면 관객은 그 이야기를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야기에 적합한 형식을 마련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야 전체 영화가 현실화할 수 있다. 이야기를 강조하기위한 스타일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정반대로 했다. 이야기에 역행하는 스타일을 선택했고 그것은 이야기 자체를 덜 강조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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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마 도그마의 모든 법칙을 따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도그마는 성경이나 십계명과 비교할 수 있다. 존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마치 ‘이즘’이 들어가는 모든 단어와 같다. 바로 포기하는 것이 낫다. 그러나 이런 불가능성이 법칙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법칙들은 우리가 그것을 따를 수 없다 할지라도 구조적이다. 유대인은 토요일에 전기를 사용할 권리가 없지만 TV를 보기 위해서 법칙을 우회한다. 그것은 사람들의 창의성을 풍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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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댄서> 이 영화는 두 가지 측면을 조합한 것이다. 뮤지컬 장면과 다큐멘터리 같은 장면. 뮤지컬에 다큐멘터리 스타일을 가미하면 흥미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가 뮤지털을 전복하거나 파괴하려 한 것은 아니다. 뮤지컬이라는 형식에 대한 존경심으로 시작된 일이다. 난 진정한 감정을 넣음으로써 뮤지컬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자 했다. 이것은 감정과 음악이 어울린 아름다운 칵테일이 될 것이라고 여겼다. 또한 난 심각한 뮤지컬이 흥미로웠다. 진 켈리의 뮤지컬 혹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어느 정도 심각한 면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 뮤지컬이 오직 오락으로 기능하기에 뮤지컬에 그보다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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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빌>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자들에게 어떻게 답하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 말이 맞을지 모른다고 말하겠다. 그렇다고 이것이 반(anti)영화라는 말은 아니다. 초기에 나는 매우 영화적인 영화들을 만들어왔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날 이것이 너무 쉽게 성취된다는 것이다. 컴퓨터만 있으면 ‘영화적’인 것을 만들 수 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산을 넘어 돌진하는 군대와 용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큐브릭이 <배리 린든>을 찍으면서 배경이 되는 산에 적합한 광량을 얻기 위해 두달을 기다려야 했던 그때는 ‘영화적’이란 것이 타당한 말이었다. 그것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어떤 꼬마가 컴퓨터로 겨우 2초 만에 이 빛을 채워넣을 수 있다면…. 그것은 또 다른 예술형식이겠지만 내가 관심있어 할 일은 전혀 아니다. 이런 경우, 난 산을 넘어 진군하는 군대를 보는 게 아니라 “좀더 멋지게 해볼까. 그림자를 더 넣고 색은 좀 빼고…” 이렇게 말하는 어린이를 볼 뿐이다. 그것이 매우 잘 만들어졌더라도 그건 날 전혀 감동시킬 수 없다. 나로선 조작되기를 원치 않는 수준의 조작이 느껴질 것이다.







<도그빌>에 관한 첫 번째 시선
순결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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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세상에는 모든 이미지가 사라져도 살아남을 것 같은 영화가 있다. 브레송이 그렇고 고다르가 그렇고 <도그빌>이 바로 그런 영화이다. 라스 폰 트리에가 분필 하나로 만들어낸 세상은 세트를 없애고, 핍진성을 없애고, 스펙터클을 없애고, 교차편집을 없앤다. 손님에게 바가지를 씌우고, 창녀에게 가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장님이 눈을 뜬 것처럼 행세하며, 값싼 유리를 비싸게 만드는 이곳은 인간의 모든 죄의식, 수치, 나약함, 허위, 사기를 모아 만든 유리의 성이다. 그곳에서 라스 폰 트리에는 다시 도그마로 귀환한다. 177분 동안 브레히트의 서사극을 보는 것 같은 단일한 무대 위의 종교적 수난극을 따라가다 보면, 영화와 연극과 소설이 삼위일체로 성큼 다가서는 기적 같은 순간이 다가온다. 히치콕이 우리로 하여금 영화를 보는 관객이라는 위치 대신 외화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인물로 영화 안에 동참시킨 것처럼 라스 폰 트리에는 우리의 상상력 없이는 절대 채워질 수 없는 또 다른 공간을 <도그빌>의 무대에 심어놓은 것이다.
라스 폰 트리에에게는 모든 영화가 새로운 시작이었다. 독일 표현주의와 필름 누아르의 매혹을 혼합한 어린이 연쇄살인범 추적극인 <범죄의 요소>는 덴마크판 같은 영화였지만 그는 프리츠 랑의 뒤를 잇는 스릴러의 대가의 자리에서 용케도 비껴 나아갔다. <유로파>에서 컬러 이미지의 표백을 통해 되살아난 기억과 공포의 나선형 계단은 전후 독일을 다시 악몽의 구렁텅이로 밀어넣는다. 사람들은 초현실적 스릴러라는 수식어로 그의 영화세계를 간신히 갈무리하려들었지만 그런 그들에게 라스 폰 트리에는 초현실적이다 못해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공포영화 <킹덤>으로 화답했다. 그건 현실에 대한 음화였고, 덴마크와 유럽 역사의 진혼제였으며, 과거라는 핏빛 벽돌로 건축한 기이한 종합병원의 일지였다. 죽음이 삶의 결손이 아니라 삶의 축적으로 변모하는 곳. <킹덤>의 모든 장소는 역사의 미로이자, 과학적 시선에 복종하게 되는 신체의 한 부분이 되었고, 그것은 미셸 푸코가 갈파한 ‘광기의 역사’의 축소판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은 모든 위대한 감독들이 그러하듯, 라스 폰 트리에 역시 단 한번도 우리에게 시시한 영화를 제공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테크놀로지를 정복해버린 탕아의 미혹이던 종교적 수난극으로 이끄는 욕지기 나는 핸드헬드의 낙원이던, 그는 늘 자신이 겨누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감독이었다. <어둠 속의 댄서>에서 라스 폰 트리에는 뮤지컬이 빚어내는 장르의 기하학을 완전히 부숴버린다. 영화의 무드와 주인공의 정서와 음악적 공연을 내러티브의 맥락 속에서 결합시키는 뮤지컬 자체의 ‘내적 논리’가 깨져나간 것이다. 관객에게는 도전하고 장르에게는 반역하며 역사와 사회 앞에서는 엄격하리만큼 지독한 냉소와 조롱을 흘리는 그의 영화들을 비판할 수는 있어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가운데 도그마란 라스 폰 트리에의 이 모든 도발이 집약된 일종의 구약 성서일 것이다. 그것은 신념이지 도덕이 아니며 (우리 모두 구약성서의 십계명을 완벽히 지켜낼 수 없듯이), 극우든 극좌든 무정부주의든 그 모든 ‘이름’들은 라스 폰 트리에가 붙인 것은 아니다.

<도그빌>에 이르러서, 그는 다시 한번 <브레이킹 더 웨이브>에서처럼 챕터를 나누고 소제목을 붙여 관객을 앞질러나간다. 결과를 미리 제시하고 그것도 모자라 주인공의 정서를 1인칭 화자가 앞질러 고지하는 브레히트적 기법을 통해, 라스 폰 트리에는 자신의 목적이 호기심과 서스펜스나 충격 요법이 아닌, 니콜 키드먼의 전락에 대한 결과가 아닌, ‘과정’에 있었음을 분명히 밝힌다.

2003년 칸영화제에 기자들의 환호와 열렬한 박수가 터져나온 거의 유일한 영화였던 <도그빌>, 데이비드 보위의 <영 아메리카>가 화면을 채우는 마지막을 넋나간 듯 바라보며 나는 ‘라스 폰 트리에’에게 또 당했다는 행복한 놀라움에 젖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구속과 금기라는 이름 앞에서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영화와 끊임없이 혼음난교를 하는 이 백치감독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도그빌>은 <브레이킹 더 웨이브>와 <어둠 속의 댄서>와 함께 여성 수난 삼부작을 이룰 것이다. 그 모든 여자들의 수난을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없을지라도, 가슴을 턱턱 맞추는 도발과 광기라는 측면에서, 나는 라스 폰 트리에, 그의 이름 외에 금세기에 어떤 감독의 이름도 더이상 알지 못한다.

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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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빌>에 관한 두 번째 시선
현란함 뒤, 앙상한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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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 폰 트리에의 <도그빌>은 낯설고 불편하며 충격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매우 익숙한 영화이다. 이 영화를 둘러싸고 항간에 떠돌던 소문은 다소 과장된 것이거나 평자들 스스로의 열망을 영화를 통해 다시 비추어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혹시 모를 일이다. 베리만과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있는, 아니 그들의 영화를 오해하고 있는 이들에게 트리에의 <도그빌>은 어쩌면 구미에 딱 맞는 ‘화끈한’ 디저트처럼 보일지도 모른다(하지만 그저 국적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칼 드레이어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얼토당토않은 견강부회만큼은 없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이른바 ‘골든 하트 3부작’- <브레이킹 더 웨이브> <백치들> 그리고 <어둠 속의 댄서>- 에서, 라스 폰 트리에는 내재적이고 유물론적인 태도로 신파극의 무대를 그 극한으로 밀고 갈 때, 오히려 초월적인 비장함이 텍스트 속으로 더욱 쉽게 스며들 수 있음을 입증한 바 있다. 그 당치도 않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는 그 모든 것이 마치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인 양 믿게 만든다. 바로 그 놀라운 마술로 인해 라스 폰 트리에는 우리 시대(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작가가 되었다.

다시 한번,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는 종교적인 우화이다. 혹은 구약성서의 익숙한 모티브를 십분 활용한, 심판의 날을 다룬 종교극에 관한 다큐멘터리이다. 여기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의 태도를 지닌 무시무시한 복수의 신은 로키산맥의 한 작은 마을 도그빌을 향해 감시의 눈을 번득인다. 연극 리허설 무대와도 같은 앙상한 세트를 오가는 배우들의 움직임을 담은 프레임들은 사물을 투명하게 꿰뚫어보는 ‘신의 시선’을 모방한다(또한 종종 도그빌을 공중에서 수직으로 내려다보는 ‘신의 시점숏’!). 그리고 이제 트리에는 희생의 멜로드라마로부터는 멀찍이 떨어진다.

영화를 보다보면 처음엔 이것이 결국 이른바 ‘십자가의 길’(Via Dolorosa)에 관한 영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더군다나 수수께끼 같은 이유로 도그빌에 흘러들어온 여인, 니콜 키드먼의 극중배역의 이름은 아이러니하게도 ‘은총’(Grace)이다. 자칭 작가(지망생)이자 마을의 얼치기 모럴리스트인 톰에게 그녀는 진정 마을 사람들의 교화를 위해 신이 내려주신 은총처럼 여겨진다. 즉 그에게 그레이스는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미하일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사실 그녀는 신의 명을 받아 소돔을 방문했던 두 천사의 화신이었다(라스 폰 트리에 식으로 말하자면, 그녀는 결국 ‘엘름가의 악몽’을 만들어낸 프레디 크루거의 화신이 된다). 톰은 자신의 배역을 잘못 선택한 것이거나, 바보가 되어버린 롯에 다름 아니다.

라스 폰 트리에가 <도그빌>을 미국에 관한 삼부작의 첫 번째 영화가 될 것이라고 선언한 것은 이상해 보인다. 그러기엔 이 영화는 지나치게 ‘보편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때로 이 영화는 신의 아들을 모욕하고 거부했던 유대인들을 향한 뿌리깊은 증오와 일맥상통하는 감정에 사로잡혀 있는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주 의심스럽기 짝이 없는 이데올로기이다. 라스 폰 트리에의 진심이 엿보인다고 느끼게 되는 도그빌에서의 대학살 장면에 이르면 이러한 의혹은 거의 확신에 가까운 것으로 변한다.

<브레이킹 더 웨이브>에서의 천상의 종소리는 그레이스를 옥죄는 도그빌 마을 종탑의 종소리로 ‘내려앉았고’, 이제 <어둠 속의 댄서> 식의 억지스런 비극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 순간, 트리에는 정말이지 그보다 더한 악수를 둔다. 거의 베케트의 고도가 무대 위에 진짜 등장한 것과 같은 황당함.

도그빌을 내려다보는 ‘신의 시점숏’은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도움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앙상한 세트는 어쩌면 <유로파>의 스크린 프로세스를 거꾸로 뒤집은 것이다(그리고 <유로파>의 막스 폰 시도의 내레이션과 <도그빌>에서의 존 허트의 내레이션 사이의 최면적인 유사성). 기술적 (실험이 아닌) 유희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라스 폰 트리에는 말 원래의 의미에서 진정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기계신)라 불릴 만하다. 그런데 그 현란함과 억지 사이를 오가는 권위 너머로 보이는 것은 사유의 앙상함이다. 이것이야말로 라스 폰 트리에가 결코 일급의 작가는 되지 못하는 이유이다.

유운성/ 영화평론가 akeldama@ne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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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커칠 상할까봐 스탭들 양말 바람으로 다녔어”
구상에서 시사회까지, 영리한 실험 <도그빌>의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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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뭐 하는 짓이요?”
친구 니콜 키드먼을 위문하기 위해 베를린영화제에서 곧장 전용기를 타고 스웨덴의 <도그빌> 세트를 방문한 러셀 크로가 내지른 일성이었다. 그를 특별히 무례하다고 욕할 수는 없다. 그를 맞이한 것은 글씨로 쓴 ‘개’가 짖어대는, 벽도 없는 집들의 마을이었으니까. 사실 <도그빌>의 세트에 처음 도착한 배우들이나 <도그빌>을 처음 본 관객의 머릿속을 지나간 첫마디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러셀 크로의 질문 아닌 질문에 붙일 수 있는 하나의 답은 ‘실험’이다. 실험의 목적이 무엇이건 라스 폰 트리에는 가운을 걸친 실험실의 과학자처럼 영화를 만들어왔고 <도그빌>을 만들었다. 햇빛과 물과 흙이 식물의 생장에 필수적인지 알기 위해 딱 하나씩 조건을 통제하며 강낭콩 싹을 관찰했던 초등학교의 과학 실습시간처럼. “한 가지 방식으로 영화를 낯설게 만든다면 다른 모든 것은 정상적이어야 한다. 너무 층이 많으면 관객은 더 멀어진다. 너무 많은 것을 동시에 실행해 사람들을 쫓아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라스 폰 트리에의 말이다. 다음은 그가 최근 행한 영리한 실험의 전말기다.


Chapter1 : 구상

2000년 칸영화제. <어둠 속의 댄서> 상영이 끝나고 열린 리셉션에서 라스 폰 트리에는 격분했다. 일부 미국 저널리스트들이 다가와 “미국에 가본 적도 없는 당신이 어떻게 미국을 비판하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가?”라며 잔소리를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내가 알기로는 미국인들도 카사블랑카에 가보지 않고 <카사블랑카>를 만든 전력이 있다. 게다가 남의 나라에 가보지 않고 그 나라에 관한 영화를 찍는 일이야말로 할리우드가 늘 해온 일이다.” 한마디로 긁어 부스럼이었다. 오기가 난 라스 폰 트리에는 <어둠 속의 댄서>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겠다는 계획을 철회하고 미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한편 더 찍기로 했다. 그렇다면 어떤 영화를? 구체적 영감은 라스 폰 트리에가 덴마크 포크송 가수 세바스천의 <히트 송 모음집>을 감상하던 중 찾아왔다. 세바스천의 음반에는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쓰고 쿠르트 바일이 음악을 만든 <서푼짜리 오페라>에 나오는 노래 <해적 제니>를 새롭게 편곡한 버전이 들어 있었다. ‘해적 제니’의 복수극 내러티브와 브레히트식 연극이라! 1930년대 대공황기의 로키산맥의 외딴 마을을 무대로 설정한 라스 폰 트리에는, 고립된 장소에 관한 영화 <도그빌>의 형식도 고립시키고 싶었다. 로키산맥 따위엔 가고 싶지도 않다. 지도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스토리를 풀어가자. 한대의 카메라 앞에 단순한 회색 배경을 드리우고 배우 둘이서 끌고가는 1970년대 TV 연극에 대한 향수도 끼어들었다. 라스 폰 트리에에겐 극장에서 보는 연극보다 TV나 영화 속 연극이 흥미로웠다. 세트는 극히 연극적이지만 대신 카메라의 클로즈업으로 비쳐질 연기는 미니멀하고 사실적인 영화. 라스 폰 트리에는 모든 것이 기술 덕택에 쉽사리 ‘영화적’으로 둔갑하는 시대에 <도그빌>의 형식이 영화의 돌파구에 대한 한 제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Chapter 2 : 캐스팅

<도그빌>의 그레이스, 니콜 키드먼은 <어둠 속의 댄서>에서 주연한 비욕의 반대말이나 다름없었다. 비욕은 영화에 대해 눈곱만큼도 욕심이 없었지만, 니콜 키드먼은 막 스스로를 예술가로 자부하기 시작한 야심만만한 배우였으며 철저히 준비된 프로페셔널이었다. 라스 폰 트리에는 <도그빌>의 그레이스를 니콜 키드먼을 염두에 두고 썼다. 냉정한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온 키드먼을 바꿔놓는 일도 흥미로웠고 무엇보다 그야말로 볼거리가 전무한 황량한 영화 <도그빌>에서 할리우드 스타 키드먼은 유일한 스펙터클이 될 것이다. <도그빌>의 캐스팅은 작가로 불리기 원하는 모든 감독들의 백일몽과 같았다. 라스 폰 트리에가 <차이니즈 부키의 죽음>을 보고 매혹된 벤 가자라, <대부>의 제임스 칸, 인디영화계의 신성 클로에 셰비니, <뷰티풀 마인드>의 폴 베타니가 합류했고 원로배우 로렌 바콜은 미미한 극중 비중에도 불구하고 캐스팅을 수락했다. “라스 폰 트리에는 배우를 아주 잘 다루니까”라는 동료배우 스텔란 스카스가르드의 추천에 톰 역을 받아들인 베타니는 얼마 뒤 낙담했다. “배우를 잘 다룬다고? 거의 말도 안 거는데?” 스카스가르드는 태연히 받아쳤다. “그렇지? 배우 참 못 다루지? 같이 해보라고 거짓말한 거야.” 베타니는 기가 막혔지만 8주 뒤에는 자신도 동료배우에게 스카스가르드와 똑같이 조언하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45분 동안 계속 카메라를 돌리고 그 가운데 배우가 전혀 의식 못하는 2, 3분을 골라 쓰는 라스 폰 트리에와 일하면서 배우들은 연기 안 하는 법, 이런저런 감정의 조각을 표출하며 완전히 영화의 도구가 되는 법을 발견했다. “<도그빌>은 배우들이 모여 라스 폰 트리에 감독에게 바치는 오마주와 같다.” 모자를 눌러쓰고 이름도 없는 갱스터로 출연한 우도 키에르의 말이다.


Chapter 3 : 세트 + 촬영

프리세일을 위해 찍은 테스트 촬영분을 본 사람들은 <도그빌>이 상당히 특이한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화면에 잡힌 <도그빌>의 세트라는 것이, 마치 교통사고 현장에 흰색 스프레이로 그린 테두리마냥, 백묵으로 거리와 집터를 그려놓은 것이 전부였으니 무리도 아니다.

<도그빌>은 ‘트롤리우드’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스웨덴판 할리우드’의 일부인 트롤해탄 지역의 사운드 스테이지에서 6주(31일) 동안 촬영됐다. 스칸디나비아 역사상 가장 비싼 영화라는 <도그빌>의 세트는 몇몇 소도구를 제외하면 벌거벗은 상태에 가까운 가로 30m 세로 60m의 플랫폼이었다. 배우를 제외한 스탭들은 세트장에서 검은 래커칠을 한 바닥이 상할까봐 양말 바람이나 슬리퍼를 착용하고 다닌다고 <사이트 앤 사운드>에 실린 현장방문기는 전하기도 했다.

 

덕분에 <도그빌> 제작진은 우천시 촬영 연기를 걱정하거나 좋은 광선을 포착하기 위해 하루종일 해바라기만 하는 수고는 면할 수 있었다. 한때 감독이란 모니터 뒤에서 배우와 멀찍이 떨어져 일하는 편이 영화를 위해 이롭다고 주장했던 라스 폰 트리에는 <도그빌>에서 직접 카메라와 장비를 메고 배우들에게 바짝 붙어 필요하다면 그들의 몸을 손으로 밀고 다니기까지 하며 세트를 누볐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과 앤서니 도드 맨틀 촬영감독은 HD카메라를 선택했다. “<어둠 속의 댄서>는 근사한 풍광을 흐릿한 해상도로 찍었으니, 감상할 경치라고는 전무한 <도그빌>은 고해상도가 필요하다”는 원칙이었다. 그러나 카메라가 워낙 무겁다보니 소소한 장면에서는 소형 디지털카메라가 동원됐다.

꽉 짜인 <도그빌>의 촬영 스케줄에도 청천벽력이 하나 있었다. 베라 역을 연기한 카트린 카트리지(<네이키드> <웨이트 오브 워터> 등에 출연)가 발작을 일으킨 아버지를 간호하러 가서 돌아오지 못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카트리지 자신도 6개월 뒤 폐렴 합병증으로 사망하는 비운을 맞았다). <도그빌>의 스탭과 배우들은 패트리샤 클락슨을 새로운 베라로 맞아 카트리지의 촬영분을 몽땅 새로 찍어야 했다. <도그빌>의 배우들은 세트에서 수킬로미터 떨어진 장원의 저택에서 촬영 이외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니콜 키드먼은 “호주에서 찍은 데뷔 초 영화 이후 이런 친밀함은 처음”이라고 즐거워했다. 하지만 키드먼의 숙소 입구에서는 파파라치들이 “키드먼의 새로운 스웨덴 연인”이라는 기사를 터뜨리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짧은 촬영은 긴 후반작업으로 이어졌다. <도그빌>의 포스트 프로덕션에는 9개월이 소요됐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배리 린든>에 대한 열광을 여러 차례 피력한 바 있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도그빌>의 음악으로 당대의 악기로 연주한 비발디를 비롯한 바로크 음악을 선곡했고 <배리 린든> 스타일의 점잖지만 어딘가 빈정거림이 묻어나는 내레이션을 깔았다.


Chapter 4 : 에필로그

2003년 5월 칸영화제. 니콜 키드먼은 러닝타임 178분으로 완성된 <도그빌>이 상영되는 도중 뤼미에르 극장의 좌석에서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거대한 이미지와 음향으로 재현되는 자신의 수난극을 차마 견디기 힘들었던 탓이다. 이튿날 기자회견장에서 니콜 키드먼은 기자들에게 해명했다.

“솔직히 어젯밤 영화를 보고 있기가 힘겨웠어요. 스크린이 어찌나 거대한지. 게다가 그 사운드와 끔찍한 상황이라니. 앉아서 보다가 이건 너무 심하다라는 생각에 자리를 떴어요. 감독은 제 뒤에서 ‘그렇지만 곧 다시 돌아올 거죠?’ 이런 식이더군요.” 하지만 동석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그럼 어찌하면 좋았겠나, 상영을 멈출 수도 없는 일이고 하는 식으로 태평하게 반응했다. 그리고 한술 더 떠 기자들이 그득한 회견장에서 공개적으로 미국 삼부작의 2, 3편에서 계속 그레이스를 연기하겠다고 서약하라고 닦달하기도 했다. 기자회견장 밖에서는 이미 논객들이 거품을 물고 있었다. 당초 400만달러 선이었던 북미 배급권의 가격은 시사 뒤 600만달러로 치솟았다(7월23일치 <스크린 데일리>는 젠트로파 스튜디오가 니콜 키드먼의 바쁜 일정을 기다릴 수 없어 2, 3편의 그레이스 역에 새로운 배우를 캐스팅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정리 김혜리 vermeer@hani.co.kr

■■ 이 기사는 덴마크 영화연구소가 발행한 < FILM >, <도그빌>의 프레스북, < LA 타임스 >, <사이트 앤 사운드> 등의 관련 기사를 종합해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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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유혹  

뉴욕 사람들이 오래도록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1964년 퀸즈에 사는 키티 제노비즈라는 젊은 여성이 난자당해 살해된 사건이지요.
그는 대낮에 범인에게 30분 동안이나 쫓겨다니며 세차례나 공격당했습니다.
무려 38명이나 되는 이웃들이 창문에서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돕기는 커녕 누구 하나 경찰에 신고 전화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뉴욕대의 학자 존 달리는 어느 심리 실험에서
방에 있는 한 학생에게 간질 발작을 연출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이 경우 옆 방에 단 한 명이 있을 때는 달려와 도와줄 확률이 85%였지만,
자신 외에 4명의 다른 사람들이 이 발작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을 때는
도와줄 확률이 38%로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즉, 사람들은 여럿이 함께 있으면
행동에 대한 책임감이 희석된다는 결론이었지요.

라스 폰 트리에가 연출하고 니콜 키드먼이 주연한 영화 '도그빌'은
도그빌이라는 작은 마을에 연약한 여성 그레이스가 숨어들면서 시작됩니다.
처음에 그레이스에게 호의를 베풀던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현상금이 나붙은 것을 알게 되면서
숨겨주는 댓가로 가혹한 노동을 요구하게 됩니다.

그레이스를 성적으로까지 학대하던 사람들은
끝내 그의 목에 개목걸이를 채운 채 감금까지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태도가 돌변해
끔찍한 학대를 한 개인에게 가할 수 있었던 걸까요.

'도그빌'이 말하는 것은 집단이 악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영화는 미국을 공격하는 반미영화로부터
'수난당하는 신'을 테마로 한 신화적 작품으로까지 다양하게 읽을 수 있지만,
동시에 인간 마성과 집단간의 상관관계를
우화적으로 펼쳐낸 작품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닌 마성의 핵심에는 집단성이 있다는 것,
하나하나 살펴보면 다 나름대로 선량한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집단을 이루면
어떤 가혹한 행동도 망설이지 않고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니까요.

혼자서 악마가 되기 위해선 대단한 자질(?)을 타고나야 하지만,
집단 속으로 들어가면 가슴 속 한 구석의 작은 불씨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악마가 될 수 있습니다.
문화혁명기를 다룬 영화 '패왕별희'의 눈먼 대중들로부터
대공황기를 무대로 한 '도그빌'의 살벌한 마을 사람들까지,
그들이 행한 도를 넘는 악행은 결국 군중심리로부터 발원한 것입니다.

2차대전이 끝난 뒤 열린 나치 전범 재판을 보면서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악의 얼굴이 이토록 평범하다니"라고 즉각적으로 탄식한 것은
악의 집단적 속성을 잠시 잊은 채
그 악행에 동참한 지극히 평범한 개인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니콜라스 레이의 영화 '자니 기타'에는 이런 대사가 나오지요.
"군중이 되면 사람이 달라져. 짐승처럼 되어버리지.
그저 뭔가 부술 것만 찾다가 나중엔 닥치는대로 죽이게 돼"

집단은 개인의 선한 속성이든 악한 속성이든,
그것을 극대화하는 경향이 있지요.
문제는 선한 요소조차 극대화되면 악에 가까워진다는 것이겠지요.
왜냐면 선은 결국 개인적인 것이고,
흔들릴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종종 의미하니까요.
선이 정말 선다워지는 것은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할 필요가 없을 때 주저하면서도 그렇게 하는 순간이 아닐까요.
흔들릴 수 없을만큼 확신에 가득찬 선을
우리는 독선이라고 규정한 뒤 악에 가까운 특성으로 분류하지 않습니까.

"전체는 거짓이다"라고 한 아도르노는 옳습니다.
그러나 삶의 곤궁함을 이를 뻔히 알면서도
집단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레이스가 그 모진 수난을 다 받아가면서 무던히도 마을에 남아 있으려 하는 것은
결국 파국을 빚지 않기 위해서지요.
그러나 이 영화는 어떻게 끝나던가요.
결국은 파국이 빚어지지 않던가요.
하지만 그레이스처럼 파국을 만들어낼 잠재력을 갖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집단의 힘은 거부하기 쉽잖은 악마의 유혹입니다.

-조선일보 이동진-





라스 폰 트리에, 오픈 필름 타운 프로젝트  



비밀은 공개되어야 한다

1999년 1월27일, 코펜하겐의 외곽, Avedøre에서 라스 폰 트리에가 덴마크의 영화인들에게 쓴 편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영화제작은 늘 미스터리의 베일에 싸여 있다. 스튜디오, 아티스트 그리고 제작 환경들은 항상 외부인들의 접근을 불가능하게 하기 위한 모든 노력들을 기울여왔다. 그것은 움직이는 이미지가 마술과 동일시되던 시대의 유물임이 틀림없다. 모두가 알듯이, 마술가들의 비밀은 항상 숨겨져야 한다. 그러나 사실은 마술의 트릭들은 아주 고전적인 것들이다. 실질적으로는 결코 진보하지 않는 그리고 사회적 관점으로 볼 때 현저히 무의미한 것들이다….’

라스는 ‘필름은 그렇지 않다’라고 다시 한번 선언했다. 영화는 너무나 중요하게도 고전적으로 불가능했던 개인의 표현형식과 광범위한 소통을 다루고 있으므로 색다른 자각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영화, TV, 이미지, 사운드 등 이 모든 메시지들의 발달은 문명화의 진전과 동격인 것이므로 이것들이 몇몇 선택된 이들의 손에 의해 먼지 쌓인 방에 갇혀 이루어지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기술의 발달이 곧 모든 이들이 아주 싼, 하지만 완벽히 프로페셔널한 장비로 스스로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기를 가져다주게 되었고 테크놀로지가 이미 스스로 시작한 민주화를 더 한번 확인하는 일, 그것은 모든 정보와 에너지의 공유에 있다고 역설했다. 배우들, 기술스탭들, 컴퓨터전문가, 작가, 음악인, 광고인들이 모두 모여 누구에게도 서로 지배당하지 않으면서 더 위대한 미디엄의 탄생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젠트로파는 그렇게 Filmbyen이라는 살아 있는 공간을 탄생시켰다. 젠트로파는 1992년 라스 폰 트리에와 프로듀서 Peter Aalbæk Jensen이 <유로파>의 성공에 힘입어 50:50의 지분으로 만들었다. 다큐멘터리, TV 시리즈, 저예산영화는 물론 고예산영화까지 다양한 영화들을 만들어냈고, 수많은 국제적인 공동제작의 결과로 현재는 유럽 전역의 몇몇 메이저 프로덕션을 공동 소유하고 있다. 지금껏 50편이 넘는 장편을 만들어왔고 현재는 매년 3천만달러의 매출액을 올리고 있다. 덴마크는 현재 일년에 20∼25편의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는데, 그중 10편 정도가 이 필름 타운 영화다. <브레이킹 더 웨이브>는 전세계에서 3천만달러를 벌어들였다. <브레이킹 더 웨이브>의 두배에 해당되는 150만달러의 제작비를 들인 <어둠 속의 댄서>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큰 소득을 올리고 있다.

라스 폰 트리에가 선언한 대로 필름비엔은 폐쇄적인 독점을 피하고 모든 것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시장의 다른 메이저 경쟁자들과 그 스타일을 달리하며 성장을 추구해왔고, 1999년 현재의 군기지로 옮긴 뒤 그가 밀레니엄이 요구하는 비전이라고 웅변했던 ‘오픈 필름 타운’(OPEN FILM TOWN) 프로젝트는 현실화하여 현재 21개의 영화관련 업체가 뭉친 필름 타운으로 우뚝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