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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훈 스토리

로드365 2007. 3. 7. 18:00






"노배우로 유작을 보며 죽음을 맞는 게 꿈"
[오마이뉴스 2007-03-07 10:28]    
[오마이뉴스 천호영 기자]
▲ 5일 오후 광화문 한 호프집에서 진행된 오마이TV 생방송 '영화배우 박중훈과의 생맥주 토크'에서 박중훈씨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2007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는 작심한 듯했다. 아니면 술기운 탓이었을까. 자신의 표현대로 '까칠한'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감추고 싶어할 사정들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때론 너무 솔직해 당혹스럽기조차 했다. 그렇듯 그가 가슴에 담아두었던 얘기를 풀어내기에는 1시간 30분 예정한 시간으로는 부족했다. 50분의 시간과 생맥주 2000cc가 더 필요했다.

하지만 영화배우 박중훈, 5일 그와 광화문 한 생맥주집에서 진행한 생맥주토크 자리는 결코 지루하지도 '까칠'하지도 않았다. '대한민국 대표 코미디 배우'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시종 유머와 웃음이 함께했다. 특히 그의 장기인 화려한 비유의 구사는 계속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그것으로 이미 안주는 충분했다.

그는 겉보기와는 달리(?) 무척 꼼꼼했다. 함께한 기자들의 이름을 좌석배치에 따라 적으면서(왼손으로 또박또박 글자를 적었다) 서로의 호칭을 '기자님'과 '박중훈씨'로 통일하자고 제안했다. 또 맥주와 함께 과일안주가 나오자 "이거 오마이뉴스 정신에 너무 안 맞는 것 같다"는 농담에 이어 안주의 장식물을 제거하며 "이게 산만해 보인다구요"라고 덧붙였다.

2시간 20분 동안의 '생맥주토크'는 건배로 시작했다. 시민기자로는 하성태, 김홍주선, 김정현 기자 등이 함께 자리했다. 그 가운데 김정현 기자는 85년생으로, 박중훈씨가 대학에 입학(중앙대 연극영화과)하고 영화 <깜보>로 데뷔한 그해에 태어났다.

반환점을 돈 마라토너

박중훈씨는 지난해 <라디오스타>로 함께 출연한 안성기씨와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공동 수상했다. 지방방송 라디오 DJ로 부활한 '88년 가수왕' 최곤의 모습에 그의 이미지가 겹쳐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에 대해 영상을 통해 한 시민도 "한창 잘나가다 한때 퇴락했다가 나름으로 재기에 성공한"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고 했다.

"보통 승승장구하는 사람의 그래프가 있으면 45도로 올라가는데, 조금만 가까이 보면 (손으로 지그재그를 그려 보이며) 이렇게 올라갑니다. 그런데 전체가 올라가면 승승장구한다고 보고, 전체가 내려가면 꺾인다고 보는 거죠. 저 같은 경우도 22년쯤 배우 생활을 했는데 그 사이 흔히 얘기하는 수많은 상승기와 슬럼프가 있었어요."

<라디오스타> 전 "서너편 정도가 사랑을 못 받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마라톤으로 볼 때 반환점 정도 돌아온 거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선두그룹에서 1등을 달린 적도 있었고, 중간에 페이스를 잃어서 2, 3위로 쳐진 적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반환점 돌아올 때 2, 3위 그룹에 있다고 해서 기권시키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사회가 조로하고 경(輕)하다고 얘기하면서 우리 스스로도 좀 그렇지 않은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라디오스타> 출연 이후 현재 "개인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흘에 이틀꼴로 하루 3시간 운동도 하고, 좋아하는 영화도 많이 보고, 읽고 싶던 책도 많이 읽으며 그렇게 지내고 있다. 그는 그런 생활을 운동선수들의 동계훈련 기간에 비교했다. "촬영현장에서 열심히 하기 위해선 동계훈련 기간 자기 생활을 얼마나 잘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그에겐 지금이 "굉장히 중요한 시기"다.

그렇기에 그는 요즘 좋아하는 술도 자제하고 있다. "만약 관리를 안 하고 편하게 살아도 된다면 일주일에 세 번 마시면 좋겠어요." 술자리에선 "말장난 같지만 좋은 사람들"과 어울린다. 그 '좋은 사람들' 가운데 '안성기 선배님(그는 꼭 '님'자를 붙였다)'을 첫손가락으로 꼽았다.

"안성기 선배님은 1년에 두 번 드세요. 망년회 하고 부산영화제 때. 최근 2, 3년 사이에는 가끔 술 드시는데, 좋은 사람과 좋은 시간을 같이하고 싶다며 드시거든요. 그래도 한 달에 한번 먹을까. 그분과 들면 제일 편하고 재밌어요. 안성기 선배님은 술자리에서 유일하게 제게 '쫑코' 주시는 분이세요. 제가 당하는 모습이 그렇게 재밌으시대요."

"한국영화 위기(?) 극복은 영화 하기 나름"

 
▲ "스타는 밤하늘의 별이라고 하면서 우러러보지만, 손가락질을 당하는 양면성이 있어요."
ⓒ2007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해 영화계 최대의 현안은 스크린쿼터 축소 문제였다. 많은 영화인들이 축소 반대 집회에 참여했고,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 역시 1인 시위에 동참했다. 그렇지만 영화인들의 그 같은 움직임을 바라보는 시선이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 역시 "집단이기주의로 밥그릇 지키려고 하느냐, 외제차 타고 다니면서 우리 영화 봐달라는 게 말이 되느냐는 질타가 많은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에 대해 "그동안 겸손한 이미지, 느낌을 못 드려 맘 상하게 해드린 데 대해 머리 숙여 반성한다"고도 했다. 그렇지만.

"영화인들도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국민이거든요.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스크린쿼터 (축소)를 따라가야 하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느 것이 진정한 국익인가 얘기를 해야죠."

그는 스크린쿼터는 국산품 장려 애국운동이 아니며, 또 "건국 이후 할리우드 영화 못 본 적이 없다"면서 영화시장은 이미 개방돼 있는 상태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자기 나라 시장에서 철강, 자동차 관련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산에 대해 덤핑 판정을 내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스크린쿼터는 자국산업 보호책이자, 독과점 방지정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태까지 한국영화가 체력을 키운 것은 스크린쿼터라는 좋은 보약을 먹어서"라면서 "체력이 좋아졌으니 보약을 끊자는 것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나아가 '배우와 외제차' 문제에 대해 "정말 몰매를 맞을 각오를 하고 드리는 말씀"이라면서, 먼저 자신도 역시 외제차를 타고 있다고 고백한 뒤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만약 여러분이 영화에서 무비스타 역할을 맡았다면 스태프에게 어떤 차를 요구하겠는가.'

"경차 주세요 하지 않을 거 아니에요. 제일 비싼 차, 화려한 차를 소품으로 주세요 할 거 아니겠어요. 스타는 밤하늘의 별이라고 하면서 우러러보지만, 손가락질을 당하는 양면성이 있어요. 조금만 실수하면 공인이, 사랑받는 스타가 그래선 안 된다고 하고, 조금만 권리를 누리려고 하면 이 어려운 세상에 소탈하게 살아야지, 평범하게 살아야지, 이율배반적인 것을 강요당하는 거예요."

그로서는 요즘 운운하고 있는 한국영화 위기론의 정답도 “너무 간단”하다.

"한국축구 위기냐 아니냐를 얘기할 때 경기를 잘할 때는 위기가 아니다가, 경기를 못하면 위기라고 하거든요. 영화도 마찬가지거든요. 좋은 영화 많이 나오면 중흥기라고 해요, 안나오면 위기라고 하구요. 지금부터 좋은 영화 나오나 안 나오나 보면 알아요."

경제적인 면에선 흥행 작품이 많이 나오고, 예술적인 면에선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오면 위기 극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영화 만들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다만 "예전에는 두 마리 토끼(상업성과 작품성) 잡으려는 노력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한 마리 토끼, 그것도 흥행이 되는 토끼 쪽에 많이 치우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고 했다.

덧붙여 "수익구조에 비해 제작비가 과다하게 책정"되는 문제도 지적하면서 "이런 것들은 영화인들이 조금씩 손해 보는 마음으로 기름을 뺄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스타배우들의 고액 개런티에 대한 비판에 대해선 강하게 반론을 펼쳤다. 먼저 10년 전에 비해 영화 평균제작비가 3배 정도 올랐지만, 배우 개런티는 그 정도로 뛰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화배우가 한 편에 수억을 번 배우가 있고, 주연배우 정도로 나오면서 1, 2천만원 받는 배우도 있습니다. 스태프도 500만원만 받고 열악하게 일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하루 촬영에 700만원 정도 개런티 받는 분도 계세요. 약자를 생각하며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생각엔 동의하고 손뼉쳐야 하지만, 가슴 아프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잖아요. 비단 이게 영화계만의 문제냐, 또 그것을 만든 것이 배우의 문제냐는 데는 강한 부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 5일 오후 광화문 한 호프집에서 오마이TV 생방송 '영화배우 박중훈과의 생맥주 토크'가 진행되고 있다.
ⓒ2007 오마이뉴스 권우성
할리우드영화가 호텔 코스요리라면 한국영화는 어머니의 된장찌개

그는 <찰리의 진실>(2002)로, 충무로에서 할리우드 메이저영화에 진출한 1호 배우이기도 하다. 또 그에 앞서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99)를 통해 해외 영화시장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한류스타' 후배들에 대한 조언을 구하자 "해외에서 이렇다할 실적 있는 선배가 아니니깐, 그런 말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있다"고 전제한 뒤 자신의 경험에 바탕한 미국의 경우를 들려줬다.

"미국은 논란이 많은 나라이고, 얄미운 점도 많은 나라지만, 제가 생각하는 좋은 점 중 하나는 능력을 보여주면 굉장히 깨끗하게 인정을 하는 나라 같아요. 다만 능력이 없는 사람은 철저히 배격하고 무시하는 나라죠. (따라서) 미국에서 배우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특기가 하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해요. 성룡처럼 무술에 특기가 있을 수도 있고, 잘생겼으면 정말 미국이나 서양 사람들도 꼼짝 못하게 너무너무 잘생긴 것으로 극을 가거나, 아니면 자기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거나 다재다능한 악기를 다루거나 어학 실력이 출중하거나…."

특기가 없었기 때문일까. 그도 인정하듯이 <찰리의 진실>은 적지 않은 아쉬움을 남겼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이 더욱 컸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반드시 거쳐야 할 하나의 과정으로 보았다.

"대한민국 축구가 (월드컵) 4강을 하기 전에 무려 30여년을 예선에 떨어지거나 16강에 못 들었잖아요. 양동이에 물이 차려면, 마지막 잔으로 넘치지만, 그전까지는 많이 담아야 하거든요. 소위 '삽질'을 많이 해야 해요. 이쪽에 선배가 없잖아요. 수많은 삽질을 해야 하죠. 이 과정에서, 삽질 하나로 둑을 쌓을 수는 없지만, 제게 용기를 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현재 그는 할리우드 다음 작품으로 <비빔밥>을 준비하고 있다. "늑대소년이 됐다"는 그의 말처럼 이미 몇 년 전부터 알려져 온 사실이다. 그는 자신을 위한 맞춤형으로 시나리오 작업을 진행하다 보니 오래 걸리고 있다고 해명했다. 현재 "더 이상 안 고쳐도 촬영에 들어갈" 정도의 9번째 시나리오가 나왔다. 작업 협의를 위해 얼마 뒤 다시 미국에 들어갈 계획이다.

그는 또한 할리우드와 충무로를 비교해 "할리우드 영화가 호텔 양식당의 12원만원짜리 코스 요리라면 우리 영화는 집에서 어머님이 끓여주는 된장찌개"라고 말했다. "(된장찌개야) 가격으로 따지면 5, 6천원 정도지만 호텔 정식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이 있잖아요."

▲ "할리우드 영화가 호텔 양식당의 12원만원짜리 코스 요리라면 우리 영화는 집에서 어머님이 끓여주는 된장찌개." "호텔 정식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이 있잖아요."
ⓒ2007 오마이뉴스 권우성
"오래한 사람은 신선감은 덜해도 친숙함은 더해요"

최근 연예인 부부의 폭행사건, 또 연예인들의 잇따른 자살사건과 관련해 그는 먼저 연예계의 자살률과 이혼율이 일반인보다 낮은 점을 짚었다. 그럼에도 더 부각돼 보이는 것은 연예인이 갖고 있는 영향력과 파급력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어 그는 "(연예인은) '일 대 다'라는 상황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상당하다"면서 "안 좋은 화법이지만, 그 입장이 안 돼 보면 모른다"고 말했다. 그리고 연예계 후배들에겐 자신도 " 20대를 관통했고, 격정의 시기를 잘 알지만", "생명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지키고 힘들더라도 우리를 뛰쳐나가지 말고 "인내하는 멋있는 양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렇다면 인터넷 악플(악성 댓글)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네티즌 리플의 대상이 별로 되지 않는다" "좋은 거든 나쁜 거든 많이 달렸으면 좋겠다"면서 웃었다. 그러나 이어 들려준 이야기로 그저 따라 웃을 수만은 없었다.

"만약 어떤 노인이 무거운 짐을 들고 가시는데 제가 들어주는 걸 목격하면 끝내주는 사람이다 난리날 거 아니에요. 그런데 바빠 외면하면, 인간성이 그럴 줄 몰랐다, 이거 아니겠어요. 가장 큰 스트레스는 그대로의 리뷰가 아니라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지나치게 확대한다는 것이죠. 지나친 확대는 왜곡입니다. 평가를 받는 건 괜찮지만 왜곡된 평가를 받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크다는 것이죠."

그는 한국 영화배우들의 '조로현상'에 대해선 '닭과 달걀'의 문제로 바라봤다. 영화 관객의 대부분이 10대 중후반에서 20대 초중반이니, 그 정서를 대변하는 그 또래의 배우들이 아무래도 주요 배역을 맡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조로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선 30, 40대의 정서를 대변하는 영화가 많이 나오거나(닭), 30, 40대 관객들도 조금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현할 필요가 있다(달걀)는 것이다.

그는 이와 관련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청춘스타'에서 '중년배우'로 바뀐 데 대해선 "억울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그리고 비슷한 또래의 다른 배우에 비해 더욱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오래전부터 배우 생활을 한 것도 한 까닭으로 여겼다.

"오래한 사람이 올드할 수밖에 없다는 단점은 있죠. 그런데 억울하지는 않아요. 이런 좋은 점이 있기 때문이죠. 오래한 사람은 신선감은 덜할지 모르지만 친숙함은 더해요."

코믹 배우라는 이미지는 '훈장'

 
▲ "제가 출연해온 영화(36편) 중 코미디영화가 스물두세 편이 되는데 코미디 이미지가 강하지 않으면 제가 잘못 산 거 아닌가요?. 나는 오히려 훈장으로 보거든요."
ⓒ2007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의 이름 앞에는 흔히 코믹연기의 대표 배우라는 수식이 붙는다. 그것은 명예일 수도 있고, 멍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자신은 그것을 '훈장'으로 받아들였다.

"제가 출연해온 영화(36편) 중 코미디영화가 스물두세 편이 되는데 코미디 이미지가 강하지 않으면 제가 잘못 산 거 아닌가요?. 나는 오히려 훈장으로 보거든요. 인지가 많이 됐구나, 잘 살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면 그만의 코믹 연기 비결은? 그는 "코미디보다 유머를 더 우위에 둔다"고 했다.

"어떤 영화이든지 그 주제를 잃지 않으면서 유머는 있거든요. <양들의 침묵>을 봐도 유머가 있어요. 거친 느와르에도 유머가 있고, 슬픈 멜로를 봐도 유머가 있잖아요. 저는 코미디가 아니라 유머를 좋아했던 거예요. 공교롭게도 유머가 지극히 강조된 코미디에 출연하다 보니까 코미디 이미지를 많이 가지고 있는데 찰리 채플린이 코미디 이미지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않았잖아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부정하기보다는 자기 이미지를 깊게 파는 것이죠."

물론 자기 이미지를 복제하는 매너리즘에 대해선 경계한다고 했다. 그리고 또 자신의 작품 가운데 그런 매너리즘에 젖은 작품이 있다는 것도 "부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 역시 '박중훈 자신'이며 "배우는 본인의 모습과 연기하는 타인의 모습을 떼려야 뗄 수 없다"고 말했다. <라디오스타>의 최곤도 마찬가지다.

"목욕탕에서 떼미시는 분을, 매일 수영복 입고 있는 모습만 봐왔는데, 어느 날 충격을 받았어요. 댁에 가실 때 옷을 입고 가시더라구요. 당연한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전 너무 생소한 거예요. (<라디오스타>에서) 제가 보여줬던 부분도 저는 익숙한 것인데, 관객들은 생소하게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는 "그런 면에서 한 가지 이미지가 집중적으로 각인된 게 부담이기도 하지만, 즐겁기도 하다"고 했다. "왜냐면 제가 실제 갖고 있는 모습인데 보여주지 않은 모습이 많잖아요. 관객은 금방 알아요. 갖고 있지 않은 모습인데 거짓말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으로 만들어내는 모습과 자연스럽게 갖고 있던 모습인데 단지 소개가 안 된 모습을 금방 알아차리시거든요. 그런 면에서 앞으로 갈 길이 많다는 게 흐뭇해요, 행복하고."

"나의 가장 큰 라이벌은 나 자신"

지난해 그는 <강적>이란 영화에 출연했다. 그동안 배우 생활을 하면서 강적, 라이벌로 느낀 인물이 있었냐고 물었다. 그는 웃으며 "별로 없는 편인데"라고 말한 뒤 20대 때 <공포의 외인구단>에 '까치' 역으로 출연했던 최재성씨를 꼽았다. 그리고는 "겉멋들인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제 라이벌은 저"라고 했다.

"제가 제일 강적이고 제일 힘들어요. 자기와는 타협하기 너무 쉽잖아요. 오늘 뭘 해야 된다, 그런데 에이 하지 말자, 한번만 마음속으로 그러면 끝나는 거 아니에요. 자기와의 약속을 지켜내는 사람이 정말 근사한 사람으로 보여요."

반대로 그럼 배우 인생의 가장 큰 파트너는 누구일까. 예상했듯이 안성기씨를 꼽았다. 둘은 <칠수와 만수>로 시작해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그리고 <라디오스타>까지 '단짝'으로 함께해왔다.

"안성기 선배님은 제일 존경하는 인생의 스승님이고, 선배님이고, 감히 표현하자면 가장 절친한 친구입니다. 선배님은 진실하세요. 그리고 누구에게나 한결 같아요. 태어나면서부터 인격을 타고 난 게 아니라, 자세히 보니까 끊임없이 자제를 하는 거예요. 본능을 이성으로 다스릴 수 있다는 게 정말 존경스러워요."

그는 이어 좋아하는 배우에 대해선 "이 배우를 좋아한다기보다는, 그 영화에 나오는 그 배우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다만 영화의 가치와 무관하게 "그저 모습만 봐도 좋은 배우가 한 명 있다“고 했는데, 그 배우는 바로 이소룡. "초등학교 2학년 때 <정무문>을 청계천에 있던 아세아극장에서 봤어요. 죽음이었죠."

 
▲ 박중훈씨가 자신의 매니저 이중희씨를 소개하고 있다.
ⓒ2007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리고 그는 배우 생활의 또 한 명의 파트너인, 자신의 매니저 이중희씨를 카메라 앞으로 불러들였다. 매니저에게 <라디오스타>의 최곤과 실제 그를 비교하면 어떤지를 물었더니 "오늘처럼 이렇게 주위 사람들을 되게 잘 챙겨준다"고 의례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그에게 매니저는 어떤 존재일까.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해요. 마비라고 봐야 돼요. 좋은 역할은 제가 다 하고 악역은 매니저가 다 하는 거 같아요. 사람은 천성대로 가는 것 같아요. 나는 하라고 해도 못할 것 같아요. <라디오스타> 끝나고 술 먹고 남자끼리 30초 정도 꽉 껴안은 적이 있어요. 저의 행복이 저 사람의 행복이고, 저 사람의 행복이 저의 행복이고. 부부 같다고 할까요."

그는 재일교포 아내를 미국 유학 시절에 만나 결혼했다. 그리고 1남2녀를 두었다. 자신은 "물론 존경하고 지금도 그립지만" 공무원 아버지(작고) 밑에서 엄하게 자랐다. 그렇기에 다짐했다. "내가 아빠가 되면 엄할 땐 엄해야겠지만 기본적으로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다." 그리고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하고 의견을 묵살하지 않아요. 그렇게 하려면 많이 참아야 해요. 그런데 그게 즐거워요."

▲ '생맥주 토크'에 참여한 박중훈씨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건배를 하고 있다.
ⓒ2007 오마이뉴스 권우성
나는 데모가 싫었어요?

그는 영화 36편을 찍는 동안 TV드라마는 <머나먼 쏭바강>(93) 단 한편에 출연했다. 영화 외길을 고집해왔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까닭을 묻자 "오기"라고 답했다.

"80년대 군부독재 시절에는 검열과 가위질 때문에 창의성이 저해되고 칼라TV 등장으로 영화가 굉장히 침체기였습니다. 80년대는 영화를 하는 사람은 대접을 못 받던 시절이었어요. 영화를 한다면 이상한 사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취급을 받았거든요. 저는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배우를 한거거든요. 오기 같은 게 있었어요. 영화가 시원치 않지만 나를 여기에 묻고 싶다. 90년대 초반까지는 그런 거였는데. 이제는 영화 하기도 바쁘고, 연기의 장르를 구분하기도 우습지만,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같아요."

80년대, 영화 세계만이 어두웠던 것은 아니다. 그는 66년생, 85학번으로 이른바 386세대. 대학생 신분이자 스타 신분이었던 그는 그 시대를 어떻게 관통해왔을까.

"고백하는데 아버님이 공무원이셨어요. 중앙관청의 이사관으로 고위공무원이셨는데, 밥상에서 매일, 다른 건 몰라도 데모하지 말라, 니 애비 죽는다, 집안 망한다, 다 빨갱이가 하는 거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어요. 그래서 관심을 가져야 하는 시대임에도, 비교적 관심을 두지 않는 전공(연극영화과)을 한데다가 집안 내력이 그러다 보니까 정말 이상했어요."

그는 "시대에 미안"하고, "신념을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분들께 사과드린다"면서 87년 6월항쟁 당시 자신의 심정을 너무나(?) 솔직히 고백했다. 강수연씨와 함께 주연했던 영화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의 개봉일은 그해 7월 4일. 당시 대부분 그랬듯이 종로에 있는 한 극장에서만 개봉하기로 했다.

"그런데 5월 6월 계속 들고 일어나니까 나는 미치겠는 거야. 저거 내 영화 개봉할 때까지 저러면 안 되는데, 이거 큰일 났다. 이런 생각만 있었어요. 자각이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지나간 시대에 대해 미안함도 있고 부끄럽긴 합니다. 제가 이렇게 인생이 끝나는 게 아니니까, 제 나름대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방법이 있겠다고 위안은 하지만 미안해요. 하지만 그때는 싫었어요."

그가 나름으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방법으로 든 것은, 배우로서, 극장을 찾는 관객들로부터 "위임받은 2시간" 동안 그들에게 위안을 주고 감동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렇기에 "그 위임을 충실하게 해냈다면" 자신의 "인생은 더할 수 없는 감사한 의미가 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살아가는 '가장 큰 목표이자 목적'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 자신의 꿈은 무엇일까. 건강, 경제적 여유, 가정의 화목 등은 기본이고,

"그것 못지않게 자나깨나 기도하고 이루고 싶은 목표는 노배우로 죽는 겁니다. 그리고 만약 제 인생을 만화로 그릴 수 있고 소설로 쓸 수 있다면, 적당한 사망 연령 때 제 아이들 손을 잡고 시사회 때, 그때는 노배우니까 단역으로 나왔겠죠, 불이 탁 켜졌을 때 저는 죽어 있는 겁니다. 그리고 자막이 올라가는 겁니다. 박중훈의 유작이고, 박중훈은 죽음을 유작과 함께했다, 그리고 노배우 박중훈, 제 정말 절실한 꿈이에요."

예정된 생맥주토크는 여기까지였다. 마지막 선물로, 기자의 성화와 네티즌의 호응에 못이겨 그는 <라디오스타>의 삽입곡인 '비와 당신'을 부르기 위해 기타를 잡았다. 꽃샘추위에 차가운 생맥주를 들이켰지만 가슴은 따뜻한 감동으로 가득했다. 그의 '절창'은 동영상으로 직접 확인해보시길!

▲ 박중훈씨가 직접 기타 연주를 하며 '비와 당신'을 부르고 있다.
ⓒ2007 오마이뉴스 권우성


덧붙이는 글
※ 박중훈씨와의 생맥주토크는 인터넷으로 생중계됐습니다. 포털 독자들께서는 '기사원문보기'를 클릭하면 전체 생방송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어수웅기자의 촉촉한 시선] 그대, 영원한 ‘라디오 스타’

  • 어수웅기자 jan10@chosun.com
    입력 : 2007.01.05 05:51 / 수정 : 2007.01.05 05:51
    • 엊그제(3일) 밤 충무로 뒷골목의 한 삼겹살집. 신문에 날 일이 벌어졌다. 배우가 기자에게 밥을 산 것. 이 훈훈한 미담(^^)의 주인공은 안성기와 박중훈. 지난해 9월 개봉했던 영화 ‘라디오 스타’의 뒤풀이로 영화담당 기자를 초대한 자리였다. 개봉 영화 홍보기간을 제외하면 배우 그림자조차 보기 힘든 게 최근 영화계의 현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분명 유례가 드문 일. 소주잔을 날렵하게 들이켜던 이준익 감독은 “나한테 돈 내라고 안 할거지? 진짜 성기 형하고 중훈이가 내는 거 맞지?”라고 되물으며 연방 너스레다.

      우스개 섞은 농담으로 시작했지만, 이 칼럼을 쓰는 이유는 ‘라디오 스타’가 지닌 희귀한 매력 때문이다. 한물간 가수와 그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매니저의 볼품없는 삶을 그린 이 영화는, 미학적 돋보기를 들이대면 여러 소리가 나올 수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경험하는 묘한 충만감은, 돋보기를 들고 싶다는 생각 자체를 접어두게 만드는 마력을 지녔다.

      박중훈은 이날 ‘치유’라는 단어를 썼다. 이번 영화를 통해 개인 박중훈, 배우 박중훈도 치유받은 것 같다는 고백이었다. 영화 속에서 그가 맡았던 역할은 ‘왕년’의 가수왕. 이제는 선택의 종류가 많지 않은 나이가 된 연기자를 보면서, 영화 속 캐릭터와 실제 삶의 이력이 자주 겹치는 인상을 받은 건 기자만이 아닐 것이다. 좋은 영화는 관객뿐만 아니라 연기하는 배우에게도 치유의 기적을 가져다 준다는 교훈을 새삼 깨닫는다.

    • 그는 전날 밤 읽었다는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한 구절을 소개했다. 화살이 멀리 날 수 있는 이유는 활이 그만큼 자신의 몸을 구부렸기 때문이라는 것. “성기 형과 내가 이렇게 사랑 받을 수 있게 된 이유는 이 영화와 관련된 모든 사람이 자신의 몸을 굽혀줬기 때문”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이날 술자리가 이렇게 숙연하고 진지했던 것만은 물론 아니다. 마흔 살 박중훈은 열네 살 위인 ‘성기 형’ 앞에서 끊임없이 어리광을 부렸다. 지난달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 공동수상 때 화제가 됐던 소감을 흉내내며 “이번에 고목나무에 꽃피신 분”이라고 ‘성기 형’을 소개하더니, “내가 알고 있는 배우 중에서 혼외정사를 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라고 마무리해 자리에 앉아있는 대부분을 쓰러뜨렸다.

      점잖은 ‘형님’은 그저 웃기만 하실 뿐이었고.

      참, 이날의 하이라이트를 빼놓을 수 없다. 불판 위의 삼겹살이 바닥을 드러낼 즈음, 박중훈이 갑자기 앞으로 걸어나갔다. 저녁 자리에 오기 직전 낙원상가에 가서 40만원 주고 구입했다는 통기타를 들고. 창틀에 기대 앉더니, ‘라디오 스타’ 주제가였던 ‘비와 당신’을 부른다.

      “이젠 괜찮은데, 사랑 따윈 저버렸는데 바보 같은 난 눈물이 날까…” 노래가 끝날 즈음, 안성기가 핑크색 우산을 들고 다가갔다. 영화의 라스트신은 삼겹살집에서 재연됐고, 너나없이 술잔을 부딪쳤다. 아무래도 오늘 밤에는 DVD로 출시된 ‘라디오 스타’를 돌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