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돈나

마돈나 madonna About

로드365 2012. 8. 14. 19:22


Madonna Louise Veronica Ciccone[1] (1958~)

미국의 가수. 자타공인 The Queen Of Pop.[2]


목차  

1 바이오그래피

2 디스코그라피

2.1 정규 앨범

2.2 OST

2.3 컴필레이션 & 라이브 앨범

2.4 중요한 싱글들

2.4.1 빌보드 1위

2.4.2 빌보드 2위

2.4.3 빌보드 3위~10위

2.4.4 빌보드 11위~20위

2.4.5 그 밖의 싱글

3 필모그라피

4 각종 기록

5 논란

5.1 낙태 논란

5.2 'SEX'

5.3 신성모독 (1)

5.4 신성모독 (2)

5.5 이라크전쟁에 대한 비판

5.6 키스 퍼포먼스

6 기타

6.1 스캔들

6.2 마돈나와 게이 커뮤니티

6.3 마돈나와 패션

6.4 마돈나와 뮤직비디오

7 어록

8 내한공연(?)



1 바이오그래피 


1983년 데뷔하여 지금까지 정상의 자리를 굳게 고수하고 있는 최고의 스타. 처음엔 단순한 섹시 여가수 정도로 취급받았으나 20년 넘는 세월동안 끊임없는 변신과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적 역량으로 지금은 그 누구도 그녀에게 뭐라 할 수 없는 확고한 위치에 올랐다. 나이는 쉰이 넘었지만 (58년생) 여느 20대보다 훨씬 탄탄한 근육질 몸매로 아직도 무대에서 날아다니시는 사기 캐릭터. 특히 유럽에서의 인기는 예나 지금이나 대단한데, 80년대에는 빌보드 유로 차트에서 가장 성공한 가수였고, 90년대에도 1위 앨범 + 싱글 수로는 5위 안에 들었고, 2000년대에도 싱글은 에미넴에 밀려 2위였지만, 역시 앨범 + 싱글로는 가장 오랜 기간, 가장 많은 1위를 가진 가수이다.


자동차의 본고장인 디트로이트에서, GM에서 일하던 엔지니어인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인 아버지와 프랑스계 캐나다인이었던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큰 부자는 아니었지만 찢어지게 가난하지도 않은 중산층 가정이었다. 디트로이트에서는 어린 시절을 흑인들과 같이 지냈다고 한다. 덕분에 흑인 배우들과 염문설이나 흑인 인권에 대하여 꽤 진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어릴적에 동네 흑인 아이들과 친하게 지냈던 점이 컸다고. [3] 한때는 너무 배가 고파서 쓰레기통을 뒤지기도 했다고 고백[4]한 바 있지만 이것은 가수가 되기 위해 뉴욕에서 고생하던 무명시기의 이야기이다.

80년 초반, 미국 유명가수들이 총집합하여 에티오피아 기아 문제를 후원하던 앨범 "We are The World"에 참여하지 않아 욕도 먹었는데 그 당시 그녀는 이런 이벤트 때만 잠깐 관심을 가지는 것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면서 이전부터 미국 내 흑인 빈민가에 기부하였던 일을 이야기한 바 있다. 의외로 공부를 잘하는 우등생이어서 미시건 주립대에 무용 전공 장학생으로 입학했다가 가수가 되느라 중퇴했다. 아이큐가 140이라는 설도 있다.


1977년 단돈 35달러를 가지고 뉴욕에 입성하여 백댄서와 밴드 활동을 하며 기본기를 닦았다. [5] 이후 남자들을 이용해서[6] 차근차근 연예계에 데뷔, 2집 앨범 수록곡인 'Like A Virgin'으로 수많은 마돈나 워너비(Wannabe)를 만들어내며 월드스타가 되었다. 댄스 팝, 디스코, 힙합, 알엔비, 일렉트로니카 등 수많은 장르를 섭렵하며 30년간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80년대에는 'boy toy'를 휘두르는 물질적인 여자(material girl)로, 90년대에는 누드집 "SEX"를 발간하는 등 성(性)에 대해 도발적으로 외치는 섹슈얼한 여자로, 2000년대에는 아이의 어머니이자 당시 미국에서 갓 시작되던 일렉트로니카를 선구자적으로 도입한 아티스트로, 2010년대에는 정치적 견해를 분명히 말하는 의식있는 아티스트이자 투어마다 전석을 매진시키는 '팝의 전설'로 끊임없이 이미지를 바꿔가면서 그 명성을 유지해왔다. 


많은 미국 여가수들의 롤모델이며, '제 2의 마돈나'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가수들은 숱하게 많다. 물론 그 중에 마돈나를 뛰어넘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7] 2000년대 초중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와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포스트 마돈나 자리를 놓고 유력하게 경쟁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런 이상한 여자가 갑툭튀할 줄이야... 현재는 이 여자만큼 포스트 마돈나에 가까운 사람은 일단 없는 듯.


가수외에 연기자로도 활동해 "딕 트레이시", "그들만의 리그"등의 영화를 찍었으나 마돈나 본인의 연기력도 사실 좋은 편은 아닌데다가 출연한 영화들이 대개 '육체파' 이미지를 소모하는 류의 영화였던 탓에 골든 라즈베리만 피하는 데에 의의를 둬야 할 판이었다. 게다가 "90년대 영화배우중 가장 많은 라즈베리 상을 수상한 여배우"라는 불명예까지 떠안는 수모도 겪었다. 라즈베리 시상식의 안방마님. 하지만 1996년작 뮤지컬영화 에비타에서 제법 호평을 받으며 골든 글로브 상을 받았다.[8] 지금은 연기는 그만두고 본인이 감독을 하며 영화에 도전하고 있다.물론 평은 좋지않다.


2011년, 본인이 직접 감독한 영화 W.E가 개봉했고, 수록곡 Masterpiece로 골든글로브 주제가상을 받았다. 2012년 2월 3일 12집 M.D.N.A의 첫 싱글 "Give Me All Your Luvin' (MIA와 Micki Minaj 피처링)"과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 2월 5일 슈퍼볼 하프타임쇼를 통해 이 곡과 과거 히트곡인 Vogue, Music, Like a Prayer 등의 무대를 선보였다.함께 합동무대에 선 LMFAO의 레드푸는 마돈나 들다가 저승 인사 하는 줄 알았다고 후일담을 밝히기도. 그러니까 언니 근육량 좀 어떻게.. 


M.D.N.A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 모두 좋지 않아서[9] 빌보드 1위를 한 지 십 년이나 지났고(?)[10] '포스트 마돈나'로 인정받을 확률이 매우 높은 이상한 여자도 나타나고 해서 슬슬 마돈나 위기설(?)이 대두되는 중. 그러나 이미 몇 번의 침체기를 극복한 전력이 있으니, '이 누님은 분명히 어떤 수를 써서라도 다시 살아날 거다.'는 의견이 (아직까지는) 일반적이다. 유일한 문제는 누님의 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