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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닝 셔츠

로드365 2012. 8. 1. 23:19


    

  60년대의 미국영화를 보면, 컷 오프 트레이닝 셔츠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긴 팔 트레이닝 

셔츠를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 칠부소매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뭐니뭐니해도 사랑입니다. 

입는거야 아무려면 어떻습니까?'란 분위기가 잘 드러나 있어, 나도 제법 그걸 좋아했다.

  하긴 그런 차림은 미국의 웨스트 코스트처럼 계절을 따르는 온도차가 그닥 심하지 않은 

곳에서니까 가능한 것이지, 일본의 기후에는 적합하지 않다, 여름철 T셔츠 대신으로 

입기에는 감이 너무 두껍고, 겨울철에는 소매가 짧아 추울 뿐이다.

  나도 한번은 그 흉내를 내느라 트레이닝 셔츠의 소매를 싹둑 잘랐다가 무지하게 후회를 

했다. 일본에는 컷 오프 트레이너에 알맞는 기후가 아주 짧은 기간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나는 일본 대학에서 산 트레이닝 셔츠를 입고 이 원고를 쓰고 있다. 가슴에 

'BEAUTIFUL CAMPUS NIHON UNIVERSITY'라고 큼직하게 씌어 있다. 어째서 하필 

일본 대학의 트레이닝셔츠를 입고 있는가 하면, 별 다른 이유는 없다. 그저 옛날에 일본 

대학의 이공학부 근처에 살았던 적이 있는데, 그때 그 대학 생협에서 곧잘 물건을 샀기 

때문이다.

  나는 와세다 출신이다. 그렇다고 'WASEDA'란 로고가 들어있는 트레이닝 셔츠를 입는가 

하면, 그런 일은 절대 없다. 자기가 졸업한 대학은 여러 가지로 애증이 엇갈리는 법이라, 

아무래도 입고 있으면 살벌한 기분이 든다. 아무 관계도 없는 대학의 셔츠를 부담없이 입고 

있는 쪽이 마음이 편하다.

  그런데 이 'BEAUTIFUL CAMPUS'라는 캐치 프레이즈는 좀 그렇지 않은다 싶다. 

캠퍼스가 아름다운 일본 대학! 이건 좀 어쩐지 리조트 호텔 광고 문구 같지 않은가. 

대학에는 캐치 프레이즈따위는 필요 없다. 나는 프린스턴 대학이나 하버드의 생협에도 

가보았지만 트레이닝셔츠에는 그냥 대학 이름밖에 씌어 있지 않았다. 그런 법이다. 뭐 남의 

대학 이야기니까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 밖에도 트레이닝 셔츠에는 수많은 영어 글귀가 적혀 있다. 그 중에는 너무 엉뚱한 

것도 있어, 거리에 나가 바라보고 있으면 상당히 재미있다. '저런 글귀를 과연 누가 생각해 

내는 걸까?'하고 늘 신기하게 생각한다.

  며칠전에는 'NICE BOX 1384'라는 글귀가 씌어 있는 트레이닝 셔츠를 입은 여자를 

보았는데, 박스라 함은 사서함을 뜻하는 것일까? 그러나 나이스 박스라면 일반적으로는 

'성능이 좋은 여자의 성기'를 뜻할 것이다. 이런 경우는 등골이 오싹하다. -무라카미 하루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