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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당과 비트 토렌트, 해적질이 뭐 어때서?

로드365 2011. 6. 29. 23:06

해적당, 의회로 쳐들어가다


지난 10월 18일 스웨덴의 ‘해적당’위원이 한국을 찾았다. 23살의 아멜리아 유럽의회 의원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일단은 그의 나이와 당적이 눈길을 끈다. 23살의 정치인이라니, 만 25살 이상만 국회의원 자격이 있는, 그러나 20대 국회의원이라곤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이 나라에서는 그의 나이만으로도 눈길을 끈다. 게다가 정당이름이 ‘해적당’이라니. 혹시나 해서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 말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해적은 바다의 도적, ‘海賊’이 맞다. 바이킹의 후예답게 도적질하는 무리냐고 입방아 찧을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미안하게도 이 해적은 바다와는 전혀 무관하다.


아멜리아 엔더스도터(Amelia Andersdotte)
비록 바다에 배를 띄우고 노략질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들은 불온한 무리가 맞다. 흔히 불법 복제물을 ‘해적판’이라고 하는데 바로 여기서 ‘해적당’이 나왔다. 해적당을 풀이하면 ‘불법 복제를 자행하는 무리들’정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해적당은 마피아 같은 범죄 조직이 아니라 어엿한 유럽의회의 정당 가운데 하나다. 이미 2009년 선거에서 7.13%를 득표했을 정도니 말이다. 이 선거로 유럽 의회 의원을 2명이나 내보내기도 했다. 그 가운데 한 명이 이번에 한국을 찾은 것이다.

‘불법 복제’를 하는 불온한 무리가 어떻게 정당의 이름을 걸고 정치에 개입할 수 있었던 것일까? 병조판서가 된 홍길동도 아니고, 어떻게 도적이 의회에 참여할 수 있다는 말인지. 거기에는 ‘불법 복제’라는 말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숨어있다. 흔히 어떤 창작물을 허락 없이 ‘복제’하는 것을 두고 ‘불법 복제’라고 하는데 정말로 그것이 ‘불법’이냐는 것이다. 저작권에 의해 낙인찍힌 도둑, 곧 해적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면서 현행 저작권을 문제 삼아보겠다는 말이다. 이들의 주장은 간단하다. ’복제에 자유를!‘
 


언뜻 보아서는 무의미해 보이는 이들의 시도는 의외로 성공적이었다. 이들의 운동은 4년 전 2006년 1월 1일 해적당 홈페이지를 열면서 시작했다. 2006년에 생긴 이 불온한 신생 정당은 그해 9월 치러진 첫 선거에서 0.63%를 득표하면서 스웨덴에서 세 번째로 큰 원외 정당이 되었다. 게다가 위에서 언급했듯 2009년 선거에서 유럽 의회 의원을 배출하기에 이른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해적당이 국제 조직을 갖추었다는 점이다. 이미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15개 넘는 나라에서 공식 정당으로 등록되었으며 그 밖에도 20여개 나라에서 설립 준비를 하고 있다.

불과 5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해적당이 이렇게 세계적인 운동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데는 젊은이들의 참여가 큰 동력이 되었다. 23세의 아멜리아 의원이 대표하듯 해적당은 젊은이들이 주축이 된 정당이다. 저작권 문제를 다루는 만큼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는 젊은이들이 민감하게 반응한 결과였다.

비트 토렌트, 어둠의 항로


The Pirate Bay
해적당은 그 시작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 불온함 자체가 흥미꺼리였을테니. 그러나 해적당이 크게 주목받은 것은 2006년 5월 스웨덴 경찰이 The Pirate Bay(TPB)라는 사이트를 저작권 위반으로 수사하면서 부터였다. 접속해 보면 알겠지만 이 사이트는 비트 토렌트(Bit-Torrent) 파일을 검색하는 간단한 사이트에 불과하다. 그러나 서버를 압수하는 등 강경한 경찰의 수사는 곧 비트 토렌트 등을 사용하며 파일을 공유하는 인터넷 문화 자체를 공격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에 반대하는 젊은이들이 대거 해적당 운동에 참여한 것이었다.

이쯤 되면 해적당을 낳은 비트 토렌트라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할 듯하다. 비트 토렌트는 간단히 말해서 일종의 파일 전송 방법을 말한다. 기존의 경우 파일을 업로드 해놓은 대형 서버에 접속해서 해당 파일을 다운로드 하는 방법이었다면, 비트 토렌트는 파일을 저장해 놓은 대형 서버를 갖지 않는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공유할 파일의 특정 정보를 가진 소용량의 파일(토렌트 파일)만 있으면 익명의 유저들과 간단하게 파일을 공유할 수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업로더와 다운로더가 따로 있지 않고 익명의 다수 유저들이 서로 주고받는다는 점이다. 일대일 전송 방식이 아닌 다대다 전송방식인 셈이다. 즉, 파일의 정보를 가진 토렌트 파일과 익명의 유저들을 이어주는 특정 프로그램(토렌트 프로그램)만 있으면 누구나 공유에 참여할 수 있다.

스웨덴 경찰의 시도는 결과적으로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서버까지 압수당할 정도로 강한 수사를 받았던 TPB 사이트가 버젓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저작권 위반 자료가 검색되지 않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어째서일까. 일단 그것은 TPB가 파일을 저장해놓고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TPB는 자료를 공유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할 뿐 직접 그 파일을 업/다운로드 하는 일과는 무관하다.

이와 비슷한 사건으로 음원 전문 트래커(비트 토렌트 파일을 공유하는 사이트) OiNK의 운영자에 얽힌 법정 다툼을 들 수 있다. OiNK는 한 때 18만명의 회원, 20만개 이상의 토렌트 파일을 보유할 정도로 거대 트래커였다. 그러나 국제음반산업연맹(IFPI)의 조사로 끝내 문을 닫게 된다. 운영자는 IFPI와 법정 공방에 휘말렸는데 그 죄목이 흥미롭다. 저작권 위반이 아니라 회원들의 기부금 횡령이었다. 공유되는 파일들은 회원들의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고 그것을 공유 여부는 회원들에게 달려있다는 이유에서였다. 2년간에 걸친 긴 법정 다툼은 결국 OiNK 운영자의 승리로 끝났다.

3. 놀이의 윤리, 함께 즐기는 법

해적당이나 비트 토렌트나 모두 공유-복제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권장 되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해적당은 정당 활동을 통해 현행 저작권을 개정하거나 특정 부문에 대한 전면적인 폐지를 주장한다. 예를 들어 50년에서 70년에 이르는 현재 저작권 기간을 5년으로 대폭 줄이자는 주장이나, 특허권 폐지 등이 그것이다. (참고로 아멜리아 의원은 저작권 자체를 폐지할 수도 있다는 개인적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벌어지는 다양한 정보 공유 활동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는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비트 토렌트 유저들은 이른바 어둠의 경로를 부유하는 불순분자들일 뿐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무질서해보이는 이들, 불온세력 속에도 나름의 윤리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비트 토렌트를 이용한다고 돈이 나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대형 트래커 사이트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있다. 회원이 많아질수록 서버를 확장, 혹은 이전해야 하는데 경우에 따라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엔 주로 회원들의 자발적인 기부금을 통해 해결한다. 이렇게 비트 토렌토 유저들이 지갑을 여는 것을 보면 이들을 공짜만 좋아한다고 타박할 수는 없어 보인다. 즉, 최소한의 비용은 지불할 의사가 있다는 점이다. 물론 돈 한 푼 내지 않고 이용하는 사람들 있다. 낼 수 있는 사람만 내라는 뜻이다.

대부분의 트래커가 공유하는 규칙은 ‘업/다운로드 비율’에 대한 부분이다. 트래커 사이트를 이용하여 토렌트 파일을 얻을 경우 유저가 업/다운로드 한 양이 트래커 사이트에 기록된다. 이는 무차별적인 다운로드를 막기 위한 나름의 방책이다. 생각해보라. 모두가 다운로드만 한다면 어떻게 공유가 이뤄지겠는지. 공짜로 가져갔으니 공짜로 얼마를 내놔야만 한다는 의미이다. 그렇지 않고 이 비율이 크게 차이 날 경우엔 해당 트래커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


<그냥 재미로(Just For Fun)> 리눅스Linux는 태어났다. 수 많은 파일이 공유되는 비트 토렌트의 세계 역시 마찬가지
어떻게 보면 트래커의 운영 방법은 놀이의 윤리와 닮아 있다. 놀이-공유에 함께 할 때만 일원으로 인정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훼방꾼은 필요 없다. 자기 혼자만 즐기고자 하는 유저는 가차 없이 철퇴를 맞기 마련이다. 구경꾼도 여기서는 필요 없다. 그래서 일정기간 접속하지 않거나 활동이 없는 회원 역시 트래커에서 쫓겨난다. 함께 놀 생각이 없는 사람은 필요 없단 말씀.

트래커를 이용하는 사람 가운데는 광적인 수집가도 있지만 대부분은 공유-놀이를 통해 더 많은 즐거움을 자유롭게 누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공짜에 홀린 사람도, 제 멋대로 질서를 파괴하는 반항아도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공유가 더 많은 즐거움을 가져다준다는 점을 아는 사람들이다. 규칙과 윤리는 더 많은 즐거움에 봉사할 뿐이다. 흔히 놀이는 질서를 무작정 파괴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재미있는 놀이일수록 새로운 규칙을 잘 만들어야 하는 법이다.

4. 우리도 해적이다

해적당의 존재는 중요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불법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저작권 자체를 의심해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과연 그것이 불법이냐고 되묻고 있는 셈이다. 또한 공유-복제로 무엇인가를 도둑질 했다고 하는데 과연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실제로 해적당은 해적질은 인정하지만 누구의 것을 빼앗지는 않았다. 그래서 해적이라는 이름으로 떳떳하게 정당 활동을 하는 것이다.

비트 토렌트의 존재는 저작권을 부르짖는 자들에게는 매우 껄끄러운 것일 수 밖에 없다. 주고 받는 이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그 내용을 다 조사한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처벌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비트 토렌트처럼 파일의 일부를 주고 받는 경우엔 어떻게 할 것인가. 분명한 것은 낡은 저작권은 결코 기술의 발달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네트워크로 정보가 공유되는 세계에서는 그 정보의 주인이 누구이냐가 결코 중요하지 않다. 어떤 정보이냐가 중요할 뿐이다.

복제기술과 네트워크는 새로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요구한다. 우리가 어떤 가수의 엘범을 다운로드 받았다고 해서 그 행위가 가게에서 CD를 훔쳐 나온 것과 동일한 행위일까? 복제 자체는 어떤 것도 훔치지 않는다. 예를 들어 CD 한 장을 훔칠 경우 누군가의 것을 빼앗는 것일 테지만 복제 누군가의 것을 늘리는 것이다. 도둑질을 할수록 그것을 가진 사람은 줄어들겠지만 복제할수록 그것을 가진 사람들은 늘어난다. 그것도 네트워크라는 무형의 공간 속에.

아래 소개된 동영상에는 저작권의 늪에 빠진 어느 불우한 노래가 소개된다. 1920년 넷 헨샤라는 사람이 부른 곡인데 불행이도 수십년이 지난 지금 이 곡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저작권 때문에 더 이상 이 곡을 평소에 들을 수 없는 것이다. 저작권이라는 금고에 갇힌 곡과 누구에게나 들려지는 자유로운 노래, 이 둘 가운데 어느 것이 좋은 노래인 것일까. 들리지 않는 음악, 읽히지 않는 글은 곧 생명력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들을 가둔 저작권의 금고를 깨뜨려서 네트워크의 세계에 던져 놓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아멜리아 의원의 방한을 앞두고 우리도 해적이다는 웹 사이트가 만들어졌다. 해적당 운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임이다. 아쉬운 점은 아멜리아 위원의 방한에도 다른 나라처럼 해적당 설립 운동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도 해적이다’ 외치는 사람들이 나왔다는 점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혹자는 도둑놈들이 무슨 자랑질이냐고 손가락질 할테다. 그런가 ‘우리도 해적이다’고 외치는 자들의 존재 만으로도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낼 상상력이 만들어진다. 어떤가, 함께 외쳐보는 것이. ‘우리도 해적이다’라고.  출처